알라딘 주최 "문화초대석:인문학 스터디 6기 2회차 고전문학이 그려낸 소수자"후기

안녕하십니까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사는 김민정입니다. 이번에 길벗출판사 강당에서 열린 소수자 관련 인문학 스터디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라고는 하지만, 이런 좋은 강의를 듣고 후기에 정말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문장밖에 쓰지 못하다니 제 문장력이 한스러울 따름이군요.
뭐, 그러면, 영양가 없는 서론은 치우고 본문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서울에 지인들이 살고 있기에 기왕 서울 가는 김에 아침부터 서둘러서 지인들과 점심도 먹고 수다도 떨다가 함께 길벗출판사에 도착했습니다(애초에 이런 일이 아니면 합정역에 올 일이 없기에, 함께 간 지인이 아니었다면 벌써 길을 찾는 데에 애를 먹었을 겁니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작별인사를 나눈 뒤, 기대감을 가득 안고 강의실에 들어섰습니다.(처음에, 유리문 쪽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은 확실히 에러군요. 그게 창문인 줄 모르고 그걸 열려고 약 1분 정도 고민했습니다.)
제가 시간 되기 약 5분 전 정도에 들어섰던지라, 이미 앞자리는 모두 차 있었고 저는 뒤쪽 책상에서부터 세어서 앞에서 두 번째 책상에 앉았습니다. 사실은 필기도 하면서 강의 자체를 녹음하고 싶었지만, 아침에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엠피쓰리를 충전대에 꽂은 채로 그냥 나와 버려서 그냥 필기로 만족했네요. 디카로 영상을 찍을까 했지만 매너모드로 해놔도 소리가 너무 커서 그건 포기했구요. 뭐, 어쨌든 나름 열심히 필기해 가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마이너리티 즉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므로 소수적 관점으로 문학에 관해 사유해 보자는 서두로 시작한 강의는, 카프카의 사상을 거쳐 김시습, 허균,이언진, 박지원, 김병연을 언급하며 소수자에 대한 의미있는 담론으로 끝을 맺었었지요.  

어느 정도 예습을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히 익숙한 작품들로 익숙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내용이 새롭게 다가와서 좀 놀랐습니다. 정신적 주변부에서 매암을 돌며 그네들 동류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했던 고대인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살았던 궤적을 다시 한 번, 다른 관점에서 좇아가 보는 일이 특별하게 다가오더군요.  

다만, 예를 든 인물들이 모두 (이성계의)조선시대에 살던 남성이라는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소수자는 항상 있어왔을 터인데, 친근한 인물을 예로 들려고 했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몰라도 특정 시기의 인물들로 범위를 좁혀 버리니,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왕에 '고전문학' 속의 소수자를 그릴 생각이셨다면, 고래로부터 지금까지(단군조선 시기부터 대한제국 이전 시기까지)각 시대에 살다 간 소수자 이야기를 넣을 수도 있었을 테고, 지배 계층이 지었지만 거기서 소수자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할 수도 있었을 테지요.  

후반에 질문 시간에 어떤 여성분이 여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균형이 맞지 않는 대로 넘어갔을 분위기더군요.  

뭐 결국 이야기의 골자인 "소수자는 상대적인 개념이다"라는 사항을 확인해 준 것에서 그쳤지만, 그분의 질문으로 이야기가 묘한 균형을 맞춰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질문하세요~"하니까 모두들 묵묵부답이시길래 질문 없이 끝나려나 보다 했는데, 두 분이 각각 강의를 정리하는 질문을 해 주셔서 참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한 분은 국어과 교사로 계신 분인데 학생들이 고전을 기피하려 하는 이유와 그 해결책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놔 주셨고 조현설 교수님 또한 그분의 의견에 동조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셨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야 5년이 되었는지라 아직 고등학교에서 들은 문학 수업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분들 대화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설령 학생이 작품에 흥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빡빡한 진도와 딱딱한 수업분위기상 해당 작품을 깊이 탐구할 수는 없는 환경이니까요.  

문제풀이가 가장 중요한 득점 수단인 이상,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지 않고 해당 작품에 대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들을 많이들 할 테고 그러면 배우는 건 겉껍데기뿐이지요.  그 점이 저는 내내 아쉬웠습니다. 그렇기에 두 분 대화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네요.  

한 분은 소수자에 대해 질문해 주셨고 한 분은 고전 문학에 대해 의견을 내 주셨으니, 질문하신 두 분이 강의의 핵심을 꼭 집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생들이 들을 수 있을 만한 시간대에 강의를 잡으셨다면, 그래서 이 강의를 고등학생분들도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이 강의, 고등학교에서 봉산탈춤 지문 배우면서 소수자에 대한 보충 및 심화학습하는 것 같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뭐, 고등학교에서 한 번쯤은 다루는 인물과 작품을 언급하신 까닭도 있겠고요.  

친근한 작품들로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셨기에 강의 듣는 분위기가 열정적이고 진지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군요.  

이번 강의의 핵심은 "소수자는 관계지향적인 개념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대는 소수자인가?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이겠군요.  

이 문제, 이 화두에 대해서는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의미 있는 강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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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MD 바갈라딘 2011-04-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게 정리해주시니 그날 질의 응답 시간이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그나저나 언제 하면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올 수 있을지... 그러고 보니 5기 서민경제학 때 한 고등학생이 강의를 들으러 와서 야간자율학습 대신 여기에 왔다는 확인서를 받아간 기억이 나네요. 7기 여름방학 편에서는 청소년들과 함께할 내용을 준비하고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kimsam 2011-04-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강의에 함께 참석해서 들은 사람입니다. 강의 소감을 써야지하며 들어 왔다가 그냥 님의 글을 읽고 갑니다. 제가 듣고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잘 정리하셔서요..그냥 쓰신 글에 다리 하나 얹을려고요...좋은 시간있습니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소수자!!! 어쩌면 우리도 책에서 말한 여러 영역 외에 다른 부분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이 사회의 소수자가 아닐까?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느끼고 경험한 여러가지 것들을 속으로 되뇌이기만 하고 속으로 삭히기만 한다면 우리도 사회의 소수자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조금은 생각하게 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창작하는돌고래 2011-04-2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죠? 너무 멀어서 참석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대전인 줄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지방인 관계로 어제의 2강을 듣기 위하여 좀더 일찍 길을 떠났다.  1강때는 함께 길을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선약으로 인하여 혼자서 빗속의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교과서를 열공(?)하면서...... 

 강의 주제에 수록된 교과서를 읽으면서 과연 조선시대(책의 내용이 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되어 있기에)의 소수자에 대해서 나의 생각과 강의 내용과의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가를 짐짓 가름하면서 생각을 좁혀 보았다. 

 교수님의 강의 첫 一聲(일성)이 "소수자=마이너리티"라는 말씀은 아마도 당시의 시대가 유가적 사상이 국가 통치 기반의 전체적인 기틀로 확고하게 제도화된 기반위에서 다른것은 차치하더라도 중앙정치 판에서, 그리고 그 중앙정치판의 권력과 위세를 등에 업고 민초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몇몇의 실세들의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는 잘못된 經世에 대하여 같은 양반(?), 아니면 권력자들, 그것도 아니면 밀려난 경계선밖의 outsider들이 밖에서 바라 본 정치판에 대하여, 겉으로는 묵묵히 그러나 속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적 울분을 가진 민초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그리고 그에 반하는 사상적 반감을 토해낼 수 있는 있는 범위의 한계를 가진 자들은 그나마 글을 읽고 깨우쳤던 그리고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자들이란 소위 신분적, 계급적 우위의 지위를 가진 양반들과 중인들.......그 중에서도 당시의 정치권에 대하여 자의든 타의든 고운 시선을 두지 않았던 사상적으로 진보적인 일부의 지식인들........  

-15세기: '김시습' - 유가적인 사상에서 겪는 양심의 괴리(사상적,정신적갈등에서)에서 현실정치와의 끝내 타협을 거부하는 어찌보면 그 시대의 진정한 경계인이었으리라. 

-16세기: '허균' - 흔한 말로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식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실천적인 사람'으로서, 아마도 이는 어렸을때의 서자 출신의 가정교사인 '이달'로부터 받은 양반이 아닌 외 사람들의 흘러가는 생활적인 고통에 대하여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았으면 그의 작품은 탄생하지도 못했으리라. 

-17세기: '연암 박지원' - 이 사람에 대하여 말을 한다는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할지는 몰라도, 어찌보면 3종 형님의 권세를 악용(?)하여 나름대로 당시의 조선사회를 뒤흔들만한 스캔들내지는 정치적인 사건을 만들만한 위치였음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이 분은 그러한 양반들의 inner line 안에 있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그의 친구(?)들은 주로 중인출신의 책 읽는 삶들이 주류였다는 것은 어릴적에 성격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어 문밖 출입을 하지 못하고 동네 어른들을 집안으로 모셔놓고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얘기하는 옛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관계로 양반으로서 가진 권력의 누림을 스스로 거부했다고 생각된다. 

-19세기: '김병연' - 실명보다는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사람으로서 모르고 써낸 과제로 댓가(?)로 벼슬길에 오르나 뒤에 밝혀진 조부의 행위에 대한 양심적인 가책에 대하여 책임지고 죄를 씻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소수자의 길을 떠난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표상이다.  

이외에도 아마도 수많은 소수자가 되었던 지식인 많을터인데도 불구하고 이 날의 강의에서 거론된 위 사람들은 게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소수자였기에 그랬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는것을 표출하자면, 어찌하여 그 분들은 조선시대에 음지로 내몰리고 핍박받고 소외된 소수자들을 위해서 계몽적인 일을 했다는 자료는 왜? 없을까,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있다고들 하지만 아주 소소하게 단편일률적인 것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는 이미 고인이 되신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범죄자의 편에 있다'는 말씀대로 그나마 우리가 오늘날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고, 있도록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원척적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 위정자들보다는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지만 그들보다는 더 아름답게 살다간 조선의 지식인들이 계셨고 그 분들이 남겨놓은 보물보다도 더 빛나는 그 분들의 글이 남아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반성과 기쁨의 마음으로 2강의 후기를 마무리 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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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자, 혹은 마이너리티는 문학은 말 할것도 없이 모든 예술의 화두 일것이다. 그 이유는 당연히 예술가 작가 본인이 우선 세상과는 다른 삶을 살아가는 소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나치의 선동영화를 만들었던 레니슈펜스탈이나 친일파 문학인들 처럼 프로파간다나 관변예술이 되어 권력자에게 기생하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 예술가들은 고정관념과 보수적 사고에 자극을 주고 변화를 요구하는 소수자적 정신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김시습과 허균, 연암 그리고 이옥과 김병연. 조선 중후기의 이들 문인들은 신분적으론 대단한 가문의 양반자제들이었지만 기득권의 권세를 멀리하고 유랑을 하거나 반란을 꾀하면서 사상적 소수자의 길을 선택한 작가들이다. 유교라는 사상적 기반을 중심으로 하는 조선사회에서 도가적 전통과 불교적 유산을 그려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김시습과 허균을 시작으로 소수자에 대한 애정을 담아 새로운 문체로 충격을 던졌던 연암을 거쳐 유배와 방랑의 와중에도 하층민의 삶을 보며 세상을 고발하고 문제제기를 했던 이옥과 김병연까지... 재미있는 것은 그 수많은 조선시대의 문장가 중에, 현대까지 인정받고 사랑받는 이들은 당시에 반짝했던 권력의 봉사자들 사대부가 아니라, 바로 이들 인 것에 있다. [금오신화]가 그러하고, [홍길동전]도 그러하고, [연암집]과 [박씨전] 그리고 김삿갓의 시가 그러하다. 이러한 문자문학과 더불어 실제 소수자들이 향유하였을 구비문학까지 이르면, 곧, 한국고전문학의 역사는 소수자의 역사라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것이다. '양지 속에서 음지를 지향한다'라는 말이 있다. 작가의 삶 그 자체가 성적, 신체적, 신분적 소수자가 아닐지라도, 작품 내에는 정신적,사상적 소수자의 시각으로 늘 주변부에 대한 애정과 사랑을 그려내야 한다는 말이다. 한국 고전 속 소수자 캐릭터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지금 이 순간! 우리도 정신적인 소수자가 되어가는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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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라딘 인문학스터디 6기 - 여섯 가지 주제로 본 우리 고전문학 의 두번째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구비문학의 대가이신, 존경하는 조현설 교수님의 사근 사근한 말씀에 살짝 졸음도 왔지만 역시 명불허전 입니다. 네 종류의 소수자 중(성적 소수자 - 여성들의 목소리, 신분적 소수자 - 하층 남성들의 문학적 형상, 신제척 소수자 - 장애자를 보는 눈 , 사상적 소수자 - 소수적 지식인의 고투) 특히 사상적 소수자의 작품에 대해 말씀을 나누어 주셨는데요. 소수자의 삶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에서의 소수자는 주변부에 머물러 있으면서도 끝없이 변주되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카프카를 분석하면서 소수자의 문제를 처음으로 이끌어 내면서 시작되었다고 보는데 불행히도 우리나라 고전 문학에 빗대어 보자면 적용할만한 것이 마땅치는 않아 아쉽다는 말을 하시더군요. - 요 이야기는 나중에 참고로 하여 들뢰즈의 책을 읽어볼 생각입니다. 

  사상적 소수자를 중심으로 본 고전문학 작가와 작품으로 크게 김시습의 [남염부주지], 허균의 [호민론], 박지원의[광문자전],  김병연의 한시로 나누어 이 분들의 삶과 이런 글을 쓸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배경을 재미있게 설명해 주셨답니다. 일종의 아웃사이더이면서도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잃지 않는, 신념이 굳은 사람은 사상적 소수자로서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던져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시습의 예를 들자면 명분과 현실사이에서 고민을 하지만 결국 전기(傳奇)라는 표현양식으로 기존의 관습적인 통념을 깨트리는 일종의 철학소설로서의 [남염부주지]를 썼는데요. 우리가 피상적이고 재미없게 읽었던 그 것이 사실은 김시습의 사유적 세계의 총체를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나니 다시 한번 꼼꼼하게 정독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세번을 읽어도 이해가 아니 되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들으니 대략감이 좀 잡힐 것 같습니다. 이에 한 걸을 더 앞으로 나아간 허균의 [호민론]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결론적이긴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삶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 같습니다. 박희병 교수님이 쓰신 이언진 평전인  나는 골목길 부처다 라는 책을 꼭 읽어봐 야 할 것 같습니다. 세상에나 고전의 바다는 정말 끝이 없군요. 이옥 전집도 지금 막 시작하려는 차인데 순위가 주루루 밀리게 생겼습니다. 
 

  문학으로 본 박지원의 소수적 미학은 아마도 실사구시의 정신이 아니였나 싶습니다. 실질에 무게를 두었던, 기존의 통념믈 전복하고 낡은 생각을 바꾸는 힘으로 깨달음을 주시려고 했던 연암의 꿈은 아직도 진행형입니다. [광문자전]에서 말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것이 아니였을까요?  고전 다시 보기, 바르게 보기의 눈이 조금씩 떠져가는 느낌이었습니다. 김병연의 시도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하층민의 삶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조선시대 계급의 허구성을 폭로하고 조롱했던 그의 시는 소제시부터 시작하여 희작시,파작시,그리고 파격시에서 정점을 이루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만히 한번을 읽고 두번을 읽고 세번을 읽다 보면 자꾸 새로운것이 보입니다. 고전은 정말 공부해야만 하는 아는 것만 보이는 비급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현재 사회에서 소수자는 누구일까요 ? 누가 소수자인가요 ? 소수자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선생님께서 이런 질문을 던지시더군요. 관계적이고 위상적인, 상대적 개념으로서 소수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말씀이 마음에 오랫동안 남아 있습니다. 부자가 된 석숭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 하여도 그들의 입장에 서서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노력해 간다면 좀 더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구태의연하고도 뻔한 생각이지만 한번도 지키지 못한 제 자신을 탓해 봅니다.  주말마다 하루씩은 이런 강의를 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습니다~
 

좋은 강의 해주신 조현설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 말씀 드립니다. 3강부터는 지방이라 참석하지 못해 아쉬움이 너무 큰데요. 다행히 알라딘MD께서 동영상으로 강의를 올려주신다고 하니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입니다. 비록 직접 듣지는 못하지만 영상으로라도 미진한 부분을 보강할 수 있으니까요 ^^  앞으로도 요런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강의 많이 마련해 주시실 바라며 늦게까지 고생하신 MD님 고생 많이 하셨구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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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러브 2011-04-28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으로는 지방에서도 강의가 되어서 좋다는 생각도 듭니다.
약간은 서울에서 사는 이득을 너무 많이 보나하는 생각도 했거든요..

dimeola 2011-04-28 10:33   좋아요 0 | URL
녜 충분히 공감합니다. 아무래도 출판사가 서울 쪽에 거의 있으니 그런 거 같구요. 이런 점에서 휴머니스트 출판사의 이번 결정은 정말 대단한 듯 싶어요. 장소 섭외도 그러하거니와 경비도 만만치 않을텐데 말이죠 ^^
 

어찌 하다보니 일찍 도착하게 되었는데, 금새 자리가 꽉 찼습니다. 

늦게 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조현설 선생님의 차근차근한 강의,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는 네시간으로도 모자란다고 

그 소수자 중 한 부류만 한시간 반정도 말씀하셨습니다.   

조선의 학문 주류에서 벗어난

김시습, 허균, 박지원, 김삿갓(김병연인가요) 

이들에 관하여 이야기해 주셨는데 

누가 소수자인가 하는 질문이 마음에 남게 된 강의였습니다. 

볼펜도 안가져가고 하여 뭔가 적고 싶었는데 못적은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강의이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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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ami 2011-04-27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에서 매번 책만 구입하다 알라딘공부방을 알게되어 신청했습니다. 벅차게 감사하게도 1,2강 모두 초대해 주셨고 기쁜마음으로 고전문학의 대가이신 신동흔, 조현설 님의 강의를 들었습니다. 참석하신 많은 분들의 열정에 놀라고.... 이 시대의 고전읽기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보는 좋은 시간들이었습니다.
좋은 강의해주신 두분께 감사드리고 이렇게 뜻깊은 자리마련해 주신 알라딘 또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후로도 계속 좋은 강의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