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 시간에 이미 말씀드렸듯, 제 천성은 비록 게으르나 약조한 일은 어찌하든 지키려는 성정을 지닌 탓에 오늘 밤을 넘기지 않고 이렇게나마 글을 올립니다. 사실 더 붙잡고 있어봐야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은 연유도 있겠지만요. (어째 사극~~)

마지막 날, 마지막 시간, 마지막 발표를 맡은 배경완입니다. 멋진 피날레를 장식해야 할 터인데, 걱정이 앞서네요.

 

아참!! 이상원 선생님, 빨리 알라딘 회원 가입하시고, 발표문 순서랑 간략한 소감이라도 올리시죠^^

 

 

내 맘대로 뽑은 2011년 최고의 영화, 최악의 영화 - [그을린 사랑]과 [마이 웨이]

 


내 처지가 반 백수인 관계로 사람이 뜸한 조조할인 시간대에 주로 영화를 관람하게 되는데, 무엇보다 큰 이점이라면 영화보다는 먹을거리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땐 영화 시작 후 적당한 때를 봐 좌석을 옮길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작 몇천 원이긴 하지만 저렴한 가격도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좋은 점만 있는 건 결단코 아니어서, 가끔 내가 보고 싶은 영화가 교차상영으로 인해 그 시간대에 배정되지 않거나, 그야말로 진상 관객이 입장했을 때는 불가항력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사실 이런 장단점보다 나를 더 일희일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영화 자체였으니, 부족한 잠을 떨쳐내며 아침부터 출동했는데 시쳇말로 “이건 뭥미?”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오는 영화를 만났을 때의 절망감이란! 지면으로는 옮기기 어려운 육두문자가 입에서 절로 튀어나온다. 물론 아침 댓바람부터 좋은 영화를 보게 되면 관람하는 시간뿐 아니라 하루가 행복하게 되는 건 당연지사고….

 

[그을린 사랑]과 [마이 웨이]를 2011년 최고와 최악의 영화로 꼽은 데에는 우선 조조할인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현실적인 내 경험이 기여한 바가 크다. [그을린 사랑]의 경우에는 개봉관 수도 극히 적고, 무엇보다 일몰 이후 시간대로 집중 편성되어 있어 적잖은 짜증이 밀려왔다. 물론 그 이유가 단순히 상업적인 교차상영 때문이 아님을 아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에 반해 [마이 웨이]는 ‘이 시간에도 영화를 하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꼭두새벽부터 상영을 시작해, 말이 좋아 당일 상영이지 26시 종료가 뭔 말인지…. 하여간 개봉관 수도 빵빵하고, 상영 스크린 수는 단연 최고였으니 시쳇말로 골라 먹는 재미가 쏠쏠했고, 조조할인의 선택 폭도 넓다 못해 거의 ‘광활한 만주 벌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런 단순한 이유만으로 위의 두 영화를 2011년 최고와 최악의 영화를 뽑았다면 품평은 여기서 끝날 테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지금부터이니 차근차근, 잘근잘근 두 영화를 되짚고, 곱씹어 보자.

 

불타는 사랑도 아니고 그을린 사랑이라니

 

[그을린 사랑]이 이야기하는 내용만 두고 보자면, 이건 이론의 여지없이 최악의 영화다. 전쟁, 테러, 고문, 살인, 영아유기, 근친상간 등. 살인 하나만 보더라도 암살부터 명예살인, 민병대의 민간인 학살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다양하고 사실적이어서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저리도 천연덕스럽게 읊조릴 수 있을까, 놀라우면서도 눈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이 영화가 상업적인 성공을 위해 그런 요소를 희화화하거나 오락적인 요소로 취급했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 영화는 태생적으로 상업적인 요소를 잉태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결국 이 말은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가 재미있어서 또 보고 싶은 영화가 절대 아니라는 뜻,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할리우드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뜻, 어쩌면 보는 내내 불쾌하고 언짢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관람 이후에도 그 기분 나쁜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뜻, 되시겠다.

 

한 여인이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눈앞에서 사랑하는 남자를 잃고, 그 남자의 아들을 낳지만 출산과 함께 아이를 빼앗기고, 다시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나지만 정치적 격동에 휘말려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체포되어 구금된 상황에서 고문과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자신을 임신시킨 고문기술자가 바로 자신이 낳은 아들이었다니! 한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도 삶의 끈을 놓지 않는 한 아랍 여성의 일생을 차분히 그려낸 이 영화는, 그래서 단순히 반전영화라기보다는 강인하지만 순수한 영혼을 가진 한 인간을 노래한 송시(頌詩)에 가깝다.

 

이 영화가 갖는 가장 큰 덕목은 큰 목소리로 휘몰아치지 않고, 차분하면서도 객관적으로 사태의 추이를 따라가는 데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무엇보다 감정이 유쾌하든 불쾌하든 영화를 보고 나서 그 잔상이 오래 남는다는 건 내 영혼을 그토록 심하게 흔들어 놓았다는 말이 되겠는데, 그걸 격정적인 목소리로 선동한 것이 아니라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영화는 그을린 사랑이지 뜨거운 사랑이나 불타는 사랑은 절대 되지도, 될 수도 없다.

 

심신이 약한 노약자나 임산부를 비롯해 많은 분께 이 영화를 추천할 수는 없지만, 세상 쓴맛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셨던 분들이라면 용기를 내어 한번쯤 보시는 것이 어떨까? 무엇보다 그리스 비극, 콕 집어 이야기하자면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해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절대 ‘강추’하겠다. 소소한 장치들에 담긴 오이디푸스 이야기와의 연관성을 찾는 재미가 쏠쏠하다.

 

누가 뭐래도 난 내 갈 길을 가겠다고?

 

한국영화사상 최고의 제작비! 그러니까 영화를 만들면서 이제까지 한국에서는 써본 적이 없는 돈을 썼다는 점에서 이 영화는 일단 한국 최고다. 거기다 한중일 3국의 유명 배우들이 주조연을 맡았을 뿐 아니라 유럽 출신의 배우와 스텝들까지 이 영화에 참여한 것이 확실해 보이니, [마이 웨이]가 갖는 국제성은 기존의 한국영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국제성은 배우들의 국적과 영화의 배경이 되는 장소가 전 세계적이라는 뜻이지, 영화의 완성도나 혹은 감동, 흥행이 국제적이라는 말은 절대, 절대 아니다.


왜 이렇게 말하느냐? 이유는 간단하다. 나와 같은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봤는데, 같은 국적을 가진 내가 어디서 어떻게 감동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이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야기의 구조는 간단하다.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던 조선에서 한 청년이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게 되고, 이후 소련군과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2차대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다 전사하게 된다는 것. 아니다. 여기서 하나 빠뜨린 게 있으니, 그건 바로 이 조선인 청년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초월적 선’의 소유자이며, 자신의 처지가 어떻게 되었든 언제나 달리기만 한다는 사실이다.


영화의 볼거리를 위해 얼굴도 잘 생기고 몸매도 좋은 주인공이 죽어라 밤낮없이 달릴 수도 있다. 백번 양보해서 영화의 주인공이니 초월적인 선을 가질 수도 있다. 다만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과 자연스럽게 융화되면서 달린다면 뭐라 할 말이 없을 텐데, 주인공은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도 무조건 달린다. 혹한의 추위에서, 그것도 포로의 신분으로 한밤중에 수용소를 자유롭게 달린다는 설정이 도대체 가능하기는 한 걸까? 이건 흔하디흔한 SF영화의 설정보다 더 안드로메다적인 상상력이 아닐까? 초월적인 선도 그렇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초월적 선의 현현이라는 예수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힌 상황에서 인간적으로 갈등한다는 영화가 나온 이 시대에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것도 정치나 종교적 신념도 없이 오직 선을 구현하려는 설정이 실소를 금치 못하게 만든다. 단 한 번만이라도 내가 누구이며, 내가 왜 이런 억울한 상황에 놓여야 하며, 이 시련은 언제 끝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아니 그냥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밀쳐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기만 했어도 나는 주인공에게 ‘기꺼이’ 감동받았을 것이다.


이런 재앙은 시스템의 부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감독 한 명에게 절대적 권한이 집중되어 있으니, 감독의 컨디션에 따라 영화가 진행된 것은 아닐까? 시나리오고 연출이고,이 영화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단 한 사람이 결정했다는 것은 단연코 축복일 수 없다. 더욱이 이 영화처럼 300억이라는 현실감 없는 자본이 투입된 영화에서는 말이지. 영화 제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그냥 내 길을 가겠다.’는 정도가 아니고, 그야말로 ‘누가 뭐라 해도 난 나만의 길을 달리겠다.’이다.

 

그런데 [마이 웨이]를 내가 본 2011년 최악의 영화로 뽑으며 더욱 화가 나는 것은 단순히 이 영화의 실패가 이 영화만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서이다. 왜 나는 이 영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토록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생뚱맞은 용어가 뇌리를 떠나지 않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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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워니 2012-02-03 0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알라딘 회원이었습니다! 물론 비밀 번호 잊어버려서 인증 받아 간신히 복구하긴 했습니다만.^^

소감요? 그건 제가 아니라 님이 올리셔야 하지 않을지;;;

돌이 2012-02-14 18:49   좋아요 0 | URL
선생님께서 첫 시간에 알라딘 회원 가입하셔야겠다고 하셔서, 그리 말씀드린 것이니 개념치 마시옵소서. 벌써 마지막 만남이군요. 아쉬움과 해방의 기쁨이 교차합니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고, 참석자들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강의도 오랜만인데 이벤트는 없나요? 박태근 인문MD님께 뒤풀이라도 건의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깊네요.ㅎㅎ

이준입니다. 2012-02-05 0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경완님 글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놀면서, 왜! 수업을 신청했는지 궁금합니다. 정말 잘 읽었습니다. 저도 대학 다닐 때 조조할인을 무척 애용했는데, 그냥 수업 들어가기 싫어서, 아침에 영화관으로 등교한 적이 많았습니다. 어느 날은 혼자 영화를 본 적도 있었습니다. 그날의 감동, 영화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그 큰 상영관(요즘처럼 멀티플렉스가 아닌 대형 상영관)을 혼자 차지하고, 영사기 바로 밑에서 영화를 봤던 그 기억을 잊을 수 없습니다. 뭐 요즘은 혼자 가는 것도 싫고, 영화에 흥미도 없네요.
.
그러나 천병희의 숲에서 헤매고 있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을린 사랑]은 꼭 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말과 그 생생한 묘사가 정말 궁금합니다.

숙제를 위해서 굳이 사족을 달자면, [마이웨이]와 함께 제일 마지막 문단이 마음에 걸리네요. 원작을 읽어 보지도 않았고 영화를 본 적도 없지만, 원작자의 인터뷰 내용이 기억납니다. 다른 내용은 각설하고, 원작자는 영화에서 내면적 갈등의 묘사가 부족한 것이 아쉬웠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분의 감상평에서도 같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그렇다고 흥행에 실패한 것이 감독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저는 이 부분에 의문을 던집니다.

영화감독의 권력이 우리나라만 제왕적인가? 과연 원작이나 시나리오에는 문제가 없었을까?

원작자는 경영학과 출신의 소설 습작 경험이 없는 사람이고 원작은 작가의 첫 작품에 해당합니다. 물론 오랜 시간을 작품에 시간을 투자했다는 것과 영화보다 소설이 호평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그 소설이 문학적으로 우수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부실한 원작과 부실한 시나리오가 영화를 망쳤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결국, 이러한 논의는 소설과 영화를 비교 분석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따라서 제왕적 영화감독 권한에서 제왕적 대통령제 문제를 끄집어낸 것은 사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라리 [소포클레스 비극]과 같은 고전에서 모티프를 가져와 만든 저예산 예술 영화와 현대 소설로 만들어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비교논의가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돌이 2012-02-14 19:08   좋아요 0 | URL
제 실명을 밝히시다니...도대체 어찌 아셨습니까? 이준님의 과한 칭찬에 애들 표현대로 "쪽팔려서"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겠습니다. 천병희 선생님의 번역의 숲에서 몇 년째 헤매고 있는 저로서는 이준님이 무척 반갑네요. 언제 기회가 닿아 함께 공부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마이웨이]의 경우 저도 원작인 [디데이]를 읽지 못해 소설과의 비교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다만 감독이 원작을 훼손시키면서까지 시나리오를 대폭 수정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영화의 감동을 극대화하려 했던 것이겠지만, 그런 시도가 오히려 득보다는 실이 많은 결과를 낳았다고 봅니다. 공동작업이었지만 시나리오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바로 감독이었기에 제가 이처럼 말한 것입니다.

리얼리티 2012-02-05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제된 글 잘 읽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가장 큰 아쉬움은 <그을린 사랑>을 작년에 놓쳐서 이번에 리플레이 행사로 다시 보았는데, 상영일 전 날 이 글을 읽었다는 것입니다. 반전이 강렬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검색한 적도 없었는데, 마음이 아팠습니다. 물론 그럼에도 좋은 영화였습니다. 헛소리는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글의 구조와 문장 모두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좋은 글이라 생각합니다. 개인사를 언급하는 도입 부분도 성공적으로 흥미를 유발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아쉬운 점은 마지막 부분에 “이런 재앙은 시스템의 부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라고 하셨는데 ‘시스템의 부재’가 감독 한 명에게 집중된 절대적 권한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이것은 비단 <마이웨이>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에게 집중된 권한은 우리나라 모든 영화, 혹은 영화라는 매체가 갖고 있는 일반적 특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시나리오와 감독을 한 명이 작업한 영화가 모두 <마이웨이> 같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마이웨이>의 문제점 분석에는 탁월하셨지만, 그 문제점의 원인을 지적하시는 데는 오류가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이 2012-02-14 19:20   좋아요 0 | URL
따끔한 지적 감사합니다. 그렇다고 제가 리어리티님의 말씀대로 시나리오와 연출을 감독 한 사람이 모두 맡았다고 해서 영화가 '개판'이 된다는 일반론을 펼친 것은 아닙니다. 이 영화가 흥행에서나 완성도에서 실패한 것은 공부도 안하고 어설프게 영화를 만든 감독 때문이다...수학적으로 표현하자면 필요조건과 충분조건...뭐 이런 설명이 가능할 듯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뿐 아니라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일반적인 특징이 감독의 절대적인 권한이라고 하신 것도 틀린 표현은 아닙니다만, 감독의 어설픈 상상력으로 영화를 만들면 재앙이 되지요. 예술영화나 작가주의영화를 표방하는 것도 아니고, 흡사 실화를 바탕에 둔 것처럼 꾸미면서 고증도 거치지 않고 이 따위로 만들면 이건 관객을 우롱하는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전쟁영화라면 전투신을 검증할 전문가도 필요하고, 최소한 그 지역의 특징을 살릴 시나리오에 바탕해서 작업을 해야지요. 이런 전문가들이 참여하지 않았다는 걸 영화 요소요소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bytheway 2012-02-06 19: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격정적인 목소리로 선동한 것이 아니라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했다는 사실->이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참 좋은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많았는데, 같은 말을 돌려서 하고 또 하신 느낌입니다.
추상적인 이야기로 끝나는 게 보통이긴 합니다만, 그걸 구체적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이 충분하다면 더 나은 표현이 있을 거라고 봐요.
여주인의 시선을 봐야 했을까요? 대사나 감정선이나 음악이나 조명이나 편집을 봐야 했을까요?
무엇이 정답일지는 모르겠지만, 그을린 사랑의 리뷰는 약간 추상적인 돌려막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이웨이의 문제는 재미있고 쉽게 잘 이야기 하셨어요. 더 뽑아낼 게 없는 영화의 리뷰를 길게 하는 것도 힘든 일이니까요. 누가 저한테 프랜스포머2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전 정말 할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돌이 2012-02-15 01:08   좋아요 0 | URL
[그을린 사랑] 자체에 대한 영화평이었다기보다는 여러 가지 면에서 대비되는 두 영화를 간략히 비교하려는 의도였기에 "격정적인 목소리로 선동한 것이 아니라 우수에 젖은 듯 촉촉한 목소리로 노래했다는 사실->이 부분을 가지고 이야기를 끌어가"려는 생각을 미처 못했습니다. 좋은 지적으로 감사히 받아들이겠습니다. 다만 같은 말을 돌려서 하고 또 했다는 점에선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군요. 제가 호흡이 짧아 너무 간략하게는 써도 부언설명을 하는 편은 아닌데...구체적으로 지적해 주시면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12-02-11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구체적인 장면묘사가 부족한점만 빼고 더 말씀드릴 것이 없습니다!^^

돌이 2012-02-15 01:12   좋아요 0 | URL
지금 생각하니 기독교 민병대원들의 무슬림 민간인 학살을 본문에 녹여 묘사했더라면 더 좋았겠다 싶네요. 참고하겠습니다.

꽃별이 2012-02-12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조영화를 사랑하는 한 사람입니다(한 달에 2편 정도는 봅니다)...신화에 관심이 많은 한 사람으로서 오이디푸스 신화가 <그을린 사랑>에서 어떤 의도로 활용되었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돌이 2012-02-15 01:25   좋아요 0 | URL
특별히 의도라기보다는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드러나는 영아유기와 근친상간 모티브를 영화가 차용한 것이겠지요. 사소하지만 무릎을 치며 "아하!!"할 수 있는 장면 하나. 오이디푸스를 버릴 때 아이의 복사뼈에 쇠못을 박았다는 표현(물론 현대적으로는 두 다리를 묶었다고 해석학기도 한다는군요.)이 있는데요...영화에서 아이를 버리기 전, 발뒤꿈치에 문신을 새기는 장면이 나옵니다. 관객들은 여기서 이미 비밀의 열쇠를 발견할 수 있겠지요. 특히 발뒤꿈치는 오이디푸스와 그 아버지인 라이오스 왕의 가계와 관련이 있다고 하니, 저는 여기서 정말 재미가 쏠쏠했는데....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께서는 어떠셨는지. 굳이 더 연결하자면, 수수께끼(비밀)를 풀어가는 과정에서도 유사한 점을 찾을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조금 억지스럽기는 합니다만....

고리 2012-02-14 1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최고의 영화와 최악의 영화를 뽑아서 품평을 하시는데, 그에 앞서 상영 시간, 개봉관 수, 스크린 수라는 배급 조건을 비판하신 점이 재미있었어요. 영화 보는 환경에 대한 비교를 서두로 이른바 '작은 영화'와 '큰 영화'의 스타트라인을 짚어 주신 점이 좋았어요.
그나저나 <그을린 사랑>을 세상 쓴맛을 단 한 번이라도 맛보았던 사람에게 추천하신다 함은... 만인에게 추천하신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요? ㅎㅎ

<마이웨이> 부분에서 "나와 같은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를 봤는데, 같은 국적을 가진 내가 어디서 어떻게 감동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과연 얼마나 많은 세계인들이 이 이야기에 감동할 수 있을까? 그런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는 구절이 저는 마음에 좀 걸렸습니다.
→ 이 부분은 같은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감동하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로 오독될 여지가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인도 이해를 못하는데, 세계인이 어떻게 이해하겠느냐?'라는 말씀이신가요? 제 생각에는 국적이나 문화 배경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의 보편성에 기대어 감동을 얻을 수 없다고 비판하시려는 것 같았는데, 글에는 그런 점이 안 나타납니다.

그리고 '시스템의 부재가 불러온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는 문장은 영화 제작 시스템이 부재한 상황에서 감독이 절대적인 권한으로 만든 영화라서 이렇게 망한 결과를 낳았다고 생각하신다는 뜻이겠죠? '시스템 부재'가 문제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시스템'이 무엇인지 상술해 주셔야 좀더 독자의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돌이 2012-02-15 01:45   좋아요 0 | URL
관계자들이 이 영화를 홍보하면서 '세계시장' 어쩌구...그런 말들을 많이 했습니다. 이러저러한 국적의 배우를 쓴다고 별구름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인류의 보편성"에 호소할 수 있는 감동을 끌어낼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비슷한 교육을 받으며 자란 같은 '한국 사람'은 식민지배나 전쟁의 참혹상에서 느끼는 감정이 남다를 수 있고, 서로는 또 유사할 수 있다, 그런데 난 그런 걸 이 영화에서 느끼기 힘들었다, 과연 이런 감정을 영화가 인류의 공통감에 호소할 힘이 있을까? 그런 지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시스템은 이미 위에서 말씀드렸습니다만, 구체적으로 다시 설명드리겠습니다. 감독이 시나리오 작업이나 연출을 하면서 실수를 범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그런 오류나 감정과잉 등을 지적하거나 수정할 수 있는 전문가들의 참여가 부족했다, 혹은 전무했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이게 제대로 작동을 했다면 그런 말도 안되는 장면들은 걸러졌겠지요. 그리고 뭔가 이런 대작은 오리지널만이 가질 수 있는 아우라가 필요한데, 저는 왜 영화를 관람하면서 중요한 장면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에너미 엣 더 게이트]가 떠올랐을까요? 몇 해 전에 개봉한 이 영화들보다 리얼리티나 고증 모두 부족하고, 더 나아가서는 이 영화들을 흉내내거나 짜집기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정도의 자기검열도 없었다는 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은 수준이 아니라, 그런 시스템이 애시당초 없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바다 2012-02-14 2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을린 사랑이라는 영화는 꼭 찾아서 보고 싶네요. 심약한 저이지만;; 꼭 보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글을 잘 쓰셨습니다. 한 여인의 인생에 인간의 잔혹함과 광기의 역사를 담담하게 담아 낸 영화인 것 같습니다. 극적이거나 기구한 삶을 보고 '영화 같은 인생' 이라는 말을 하곤 하는데요, 실제 우리네 삶은 영화화만 되지 않았을 뿐.. 크고 작은 굴곡들을 넘고 넘어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길이지 않나 싶습니다.

돌이 2012-02-15 01:4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어쩌면 우리네 '인생 같은 영화'가 더 정확한 표현일 듯도 합니다.

시실리 2012-02-15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와 함께 그 이외의 다른 부분들, 예를 들면 배급문제, 감독의 권한 등등에 대해 언급하신 평 인상깊었습니다. 영화와 관련한 평을 흠잡데 없이 기술하셔서 리뷰를 보고 영화를 선택하려는 독자에게는 님의 의견이 충분이 전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영화 속 배우들에 대한 흠이나 감독의 판단또는 앵글에 대한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결국 그 영화의 인물이나 상황에 님의 감정이 충분하게 이입 되지 못한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잠재적 관객이 될 독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 자체에 대한 평만으로도 감독이 시나리오에 대한 해석이라든지 팀의 운용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악평의 느낌을 충분이 느낄 수 있었읍니다. 그래서 제게는 "시스템..." 이후의 글은 너무 나아간 것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돌이 2012-02-15 01:56   좋아요 0 | URL
제가 글을 마무리하며 '제왕적 대통령제' 운운한 것을 지적하신 거라면, 뭐라 변명을 드리기 힘들겠네요. 제 표현 그대로 너무도 생뚱맞게 그런 생각들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불온한 의도를 갖고 그런 건 아니니, 논리의 비약이 좀 심했다, 그 정도로 이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그런 오류를 앞으로는 각별히 주의하겠습니다.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