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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7시에 부산 남천동에 위치한 인디고 지하 소강당에서 나는 고전 인문강의를 들었다. 강의자는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정출헌 교수님으로 기존에 나는 국문학 쪽의 교수 강의를 들어본 적은 있으나 한문학에서 들어본 적이 없다. 처음 느낌을 말하자면 국문학과 출신 교수님은(전공이 판소리 무속서가) 다소 고전에 대해 상당히 텍스트적으로 분석한다면 한문학과 교수님은 고전을 분석하기 보다는 이야기의 외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전개한 듯 하였다.

왜냐하면 예전에 “고전, 대중문화를 엿보다”라는 서적에서 보인 젊은 국문학과 교수들의 이야기로 통해 어느 정도 한국 고전에 대해 생각을 하고 갔었기 때문이다. 역시 그런 면들이 있는지 한국 고전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남성중심 즉 유교적인 문화에 대한 내용이다. 한국은 유교도 주자의 성리학이 도입되어 조선 정치사상이 되었는데, 그런 부분이 강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보아 한국에서는 유교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유교의 핵심을 뭐라 하기는 그러나 적어도 나는 충효(忠孝)가 유교의 근간이 되는 사상이고, 거기에 인의예지(仁義禮智)가 달라붙어 하나의 철학체계를 이루는 것 정도만 안다. 어째든 오늘 강의를 들으면서 머리에서 확실하게 남는 것은 김만중의 구운몽이다. 구운몽은 1명의 남성과 8명의 여인이 서로를 탐하다가 깨달음을 얻고 이상적인 존재로 된다는 이야기인데, 이것이 애니메이션 오타쿠 입장에서 보면 가장 완벽한 미소녀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내지 애니메이션이란 것이다.

 

애니메이션은 단순히 생각하기 보다는 인간의 사고나 상상력이 하나의 이미지로 변환되어 형상화된 것이다. 그런 만큼 인간 깊숙이 잠든 내부 잠재의식까지 들어낼 수 있어 인간의 의식구조를 아는데 있어서 애니메이션만큼 좋은 것이 없다. 그런데 흔히 애니메이션을 생각하면 머리 크고, 비인간적인 몸매를 가진 미소녀가 나와 1명의 남자에 다수 붙어 모두 만족하는 이른바 하렘이 보이는 것이 미소녀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나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그 이름을 줄여 미연시라고 하나, 적어도 미연시라는 개념은 조선시대 사대부에게도 존재했다.

 

김만중은 완벽한 자신만의 세계에서 하렘국가를 만든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한국 문학을 남근적인 부분 즉 남성이 사회를 지배하는 문화 이데올로기 면이 매우 강하다. 물론 모두 나쁜 것은 아니나 그것을 역으로 돌아보면 교수님이 말했듯이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합리화하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런 부분은 16세기 이후로 점점 두각을 나타내는데, 이른바 열녀(烈女) 만들기라는 교조적인 사회현상은 임진왜란이라는 무능력한 조선정부의 하나의 강압적인 방법이었다. 이것은 마치 마빈 해리스(미국 콜럼비아 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의 “문화의 수수께끼”처럼 유럽의 공포로 몰아넣은 마녀사냥과 비슷한 형태이었다.

 

유럽의 종교와 정치계가 무능하고 부패하여 국민들이 불만을 제기하자 이른바 마녀사냥으로 자신의 과오를 오히려 국민 스스로 잡아내게 하는 이른바 “한국식 공리주의(일정한 개인을 희생하여 대다수나 단체를 유지하는 방법)”로 공포정치를 발휘한 것이다. 단지 서양은 거짓으로 마녀로 만들었다면 한국은 억지로 열녀를 만든 것이다. 열녀가 되면 그 집안은 열녀문이 세워지고 국가에서 상을 받으니 말이다.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역시 전쟁이 아닌가 싶다. 전쟁에 많은 남자들이 참가하고 죽자 집에 남은 여자들은 재혼도 불가능하고, 남편의 부재로 경제적으로 궁핍해지니 시집에서 억지로 죽이기 바라는 것이 아닌가? 한국의 대부분 고전이나 문학을 보면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는 형태가 매우 뚜렷하게 보인다. 강의 첫 부분 효심이 지극한 심청이는 아주 훌륭하고 착한 인물이다.

 

하지만 그녀를 바닷물에 몰아넣게 해버린 시주받은 스님과 뱃사람들은 이른바 소수약자를 희생하여 자기들의 이익인 종교재단의 재산축적, 재앙방지를 위한 희생양을 정당화시킨 것이다. 또한 효녀지은에서는 딸이 늙은 노모를 위해 품삯을 하거나 동냥을 해서 도저히 생계가 이어갈 수 없어 몸을 판다는 이야기로 들은 것 같다. 그런데 몸을 판다는 것으로 어머니와 생계를 유지해도 그 자체가 효로 인정받는 것은 일종의 남성 지배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의미도 된다.

물론 희생양은 여성만이 아니다. 주몽신화 이후 유리왕자이야기는 이른바 후레자식이라는 애비 없는 자식의 설움이 당시 우리 사회에 널리 퍼진 사실이다. 아들과 아버지는 가까이 있으면 서로 피곤하나, 멀리 떨어져 있거나 아버지가 없으면 아들은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권위는 막대한 것이 분명하다. 유리왕이 등극 후에 아들인 해명태자가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아버지 유리왕은 아들에게 자결할 것을 명령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명령을 받아 자결을 한다. 한국에서는 문화적으로 남자들이 이른바 허울 좋은 체면 내지 명예에 의해 목숨을 잃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예전에 영화관에서 천둥의 신 토르를 봤다. 토르는 북유럽 신화에서 오딘의 아들로 그는 너무 자신의 혈기를 과시하다가 아버지에게 지구로 내침을 당한다.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반항하였으나, 결국 그는 아버지의 권위 없이는 자기는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깨달음과 동시에 그는 아버지로부터 권위를 받는다. 다소 해명태자의 허무한 죽음은 안타깝지만, 적어도 한국에서는 그리스신화 오이디푸스왕 이야기처럼 살부(殺父)의식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희생되는 점이다. 그런 점은 무속신화 중의 하나인 이공본풀이에서 등장한다. 아버지 원강아비는 서천꽃대감을 역임하기 위해 집을 떠나나 자신의 아내인 원강아미와 아들인 할락궁이를 내버려두고 가야 했다.

아버지는 입신양명하여 큰일과 업적을 받아 하고 있었으나 아내는 남의 집 종살이하다가 살해당하고, 아들은 이를 피해 서천으로 도주한다. 물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서천꽃대감을 하고 어머니를 구했으나, 이른바 여성인 어머니와 남성인 아들의 희생은 불가결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한국 고전이나 문학을 보면 바로 그런 가부장적인 제도에서 희생이라는 극적플롯을 필수적으로 지내야 하나의 과업을 이루고 서사로서 결말을 유도할 수 있었다.  

그래도 한국 고전과 문학에서 아버지의 그늘이 컸던 모양이다. 형제관계에서 연안 박지원 선생의 시조를 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우리 형님 얼굴과 수염 누구를 닮았는가.

돌아가신 아버님 생각날 때마다 우리 형님 쳐다봤지.

이제 형님 그리우면 어디에서 보아야 할까.

두건 쓰고 도포 입고 나가 냇물에 비친 나를 보아야겠지

이 시조에서 아들이 아버지 없음에 슬퍼하는 연암의 비극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연암이 아버지 없는 이른바 후레자식에서 아버지를 볼 수 있던 것은 오로지 형님이었다. 그러나 이제 형님도 없으니 그 슬픔을 자신에게서 찾던 것이다. 두건과 도포는 일종의 남자가 집안어른이 되었음을 알리는 하나의 상징이다. 연암이 두건과 도포를 착용하기 전에는 그는 아직 어른이기를 거부했으나, 이 상징적인 의상을 입음으로 어른이 된 것이다.

어째 보면 한국의 남성들이 진정 어른이 되는 순간은 아버지와 혹은 아버지를 닮은 그 누군가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진정 어른이 되지 않나 싶다. 가부장에서 다음 가부장으로 이동하려면 그 앞의 인물이 소멸할 때 가능하기 때문인 듯하다. 이런 가부장 제도에서 한국 남성들은 체면이나 위엄을 지키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였다. 물론 여성 역시 제도권 내에서 약자로 살아갔으나 남성들은 그런 문화적 위치에서 자기를 내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점에서 부부의 사랑은 조금 마음 깊이 다가온 듯하다. 같이 살아온 남편이 세상을 하직하자 눈물을 자아내게 할 만한 길고 긴 편지와 아내의 죽음으로 자신의 인생을 달관한 한 남자의 이야기는 정말 신기했다. 남은 인생이 30년이나 앞으로 같이 보낼 날이 천백 년이 되지 않겠냐는 말에 불행 속에서 앞으로 같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생과 사를 동시에 보는 듯한 느낌이다. 그것은 마치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모든 것을 극복한 영원회귀하려는 초인의 자세와 같았다.

하지만 모든 부부관계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씨남정기에서는 당시 조선시대의 사대부의 관념을 알 수 있기 좋은 지표였다. 처와 첩이라는 존재로 통해 무능력한 남성과 적자만 낳기 위해 씨받이로 살 수 없었던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당시로선 본처가 옳겠지만, 지금의 시대에서 보자면 첩의 입장이 가련하다. 자기가 살기 위해 자기 자식마저 죽일 수밖에 없던 남씨는 악독한 모성애를 보이나, 이것은 개인의 인성이나 성품보다는 사회구조가 만들어낸 일련의 왜곡현상인 것이다.

 어째든 최근 한국의 문화콘텐츠의 일환으로 고전이나 문학, 무속서사가 많이 애용된다. 2010년 12월에 발매된 “고스트메신저”이라는 애니메이션은 한국 무속서사에서 나오는 인물들을 인용하여 다시 현대적으로 살려낸 하나의 신화라고 볼 수 있다. 김용석 교수의 서사철학에서 7가지 서사 중에서 제1의 서사는 신화라고 했다. 서사는 즉 문학이고, 문학은 우리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제공하여 교육, 오락 등과 같은 역할을 한다. 다시 새롭게 조명되는 한국 고전과 문학, 기존 서구사회 문화에 얽매인 한국사회로서 이런 내용을 접해보는 것은 좋은 기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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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고전문학강의가 있다는 소식을 보자마자 댓글로 참여하여 좋은 기회를 얻었다.
강의를 들으러가는 마음가짐의 일환으로 관련책자는 읽고가야지하고 인근 도서관을 찾았으나 읽어보고싶던 프로이트-심청을 만나다나 기타 추천도서는 죄다없고 살아있는고전문학교과서만이 비치되어있었다. 아쉬운마음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냐며 빌려서 가족편을 정독하며 강의시간을 기다렸다.
인디고서원의 지하1층은 책관련강의를 하기에는 빛이 너무 부족했다. 그렇지 않아도 눈이 침침해 휴대용독서등을 가지고 다니는데 그 덕을 볼정도로 어두웠다. 좌식으로 된 자리에 올망졸망 사람들이 모여 앉아 아담한 분위기속에 정출헌교수님의 강의는 시작되었다.
고전문학속의 가족의 재발견이라는 테두리안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리는 마음과 부부. 형제간의 관계를 조명하는 고전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는데 시간이 빨리감을 아쉬워해야했다.
특히나 심청전에 대해 하실말씀이 많으셨는지 듣고있던 내가 더 안타까워 심청전만 따로 어떻게 시간빼서 강의를 해주시면 안되냐고 여쭙고싶었다. 이부분은 서점관계자분께서 독자의 아쉬움을 어떻게 잘 다음기회로 연결해주셨으면 하는마음이지만..^^;

특히나 예습이랍시고 읽어갔지만, 역시나 작가가 하고싶은 말과 독자가 읽는것의 한계는 바로 여기서 나타난다. 심청이가 인당수에 빠지기전 두려워 뒷걸음쳤을때 했던 말인 "부친에 대한 ()이 부족한 때문이다"에서 빈칸에 들어갈말은 무엇일까? 나는 분명 읽었지만 항상 떠올리는 효녀심청의 이미지에 효라고 대답을 했다. 하지만 정답은 바로 정이다. 비로소 아.. 심청전은 바로 그런거구나. 이것은 효의 대표작이라고도 할수있지만 심청이는 효를 실천하기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거라기보다 인간으로서의 도리로, 자신을 키워주신 심봉사에대한 깊은 정으로 이를 행한거구나. 라고 효와 정사이의 미묘한 관계를 어렴풋이 느낄수있었다.
바로 이런것이 밑줄효과가 아닐까? 글을 쓰는 저자가 밑줄을 긋고 별표를 치고싶은 부분이 분명있지만 문맥상, 미관상 밑줄쫙에 별표열개는 칠수없다. 하지만 이렇게 강의를 통해서 그 부족한 하이라이트를 전달해줄수있는것이다.
정말 죽어서까지 효를 실천해야하는 표본의 심청이가 이번 강의로 인해 살신성효 심청이가 아닌 다정다감 심청이로 내안에서 변모를 했다.
그리고 조선중기때부터 많이 등장하기 시작한 형제간의 다툼에 대한 경계는 바로 재산상속제도의 변화와 더불어 나타나는 것이란점도, 흥부가 그렇게 힘든 생활속에서 제비다리 하나 고쳐주고 얻은 박씨로 로또대박을 얻은것이라기보다 자신이 할수있는 최선의 생활테두리안에서 노력끝에도 인간임을 잊지않고 측은지심을 발휘할수 있었던 그 심성에 대한 보답이었던것. 부자가 되었음에도 형님을 생각하고 가난한 사람을 생각할수있는 그의 그릇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볼수있었다.
삼강오륜이라고 하면 아~ 열심히 외워서 도덕 윤리 점수 올리는데 보탬이 되었던것의 하나였지만 저것이야말로 인간을 알리는 지침이 되는게 아닌가.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위해서는 그것의 절대적인 정의를 알고있는 것이 정답일것이다. 하지만 절대적인 정의라는 것이 존재할까? 그럴수없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질문의 대상이 가지는 관계들을 파악함으로써 답변을 할수있다.
요즘 사람들이 묻는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그렇다면 인간이란 어떤 관계를 가지느냐에서부터 차근차근 나아가면 아마도 답을 얻을수있을지도 모른다.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 아니다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귀에 남는다.
오히려 이황의 글처럼 나도 고인 못보고 고인도 날 못봤지만 그 길이 앞에 있듯이 오래된 것은 새롭게 나를 이끌어주는 눈길위의 발자국이 될수있을것이다.
점수에 연연하느라 밑줄만 그어댔던 그 작품들을 진짜 책한권으로 만나고 싶어졌다.


그리고 강의를 마치고난뒤 질문시간에 가족에 편입된 며느리나 첩. 계모들은 왜 악인으로 표현되는가라는 우문에 그들뿐아니라 남자조차도 가부장제도에 의한 피해자들이라는 현답을 이끌어내주셨던 교수님께 다시한번 감사를드리고싶다. 오는길에도 많은 생각을 해야만했다. 끝없는 생각이라 어떻게 매듭은 나지않았지만..
책은 끊임없는 대화라고 하지만 답답해질때가 많다. 책밖으로 끌어내 대화할수있는 기회가 좀더 좀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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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머리가 호강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인문학 고전 스터디 1, 2강을 모두 듣게 되다니... 

게다가 지난번 1강 때 길벗 사옥에 도착하고서 강당을 찾느라 약간 헤맸다는 댓글을 남겼더니 알라딘 진행자 분들이 2강 때는 화살표와 포스터로 안내를 해주셔서 처음 오는 사람들도 장소 찾기가 수월했을 것 같다.  이런 행사를 주관하는 진행자 분들의 작은 정성이 그 매체에 대한 강력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을 강의 시작 전부터 새삼 절감한다.  

 

 필기구 하나로 두 시간 가까이 청중들을 사로잡은 조현설 교수님. 

우리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의 확장이란 차원에서 소수자의 시각에서 보는 고전문학이라는 접근법을 생각해내셨다고 한다. 

들뢰즈는 유대인이면서 독일어로 창작활동을 했던 카프카  해석에서 [소수자]라는 개념을 도입했지만, 우리 고전 문학에서 그와 비슷한 사례를 찾기는 어렵다. 결국  성, 신분, 신체, 그리고 사상에서의 소수자와 그들의 문학이 주요 대상이 될 터인데 2강에서는 문자 활동의 주요 담당자였던 조선시대 사대부, 그중에서도 주변부에 속하는 사상적 인물들을 주로 살펴보았다. 

김시습은 [남염부주지]에서 불교, 유교의 기존 관념들을 부정하고 작가 나름의 세계를 펼치는 과정에서 특유의 팽팽한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있다. 결국 '전기(傳奇) 라는 반 유가적인 형식을 선택한 김시습의 성향을 잘 보여주는 것이 [금오신화]이다.

허균은 유교를 기본으로 하되 불교와 도교를 망라한 작품 활동을 했다. 특히 [호민론]에서 호민이란 사회에 숨어서 틈새를 노리다 불만을 표출하며 앞장서는 사람들로, "왜 조선 시대에는 호민이 없는가"라며 사회 저항 세력을 공공연하게 부추기기도 했다. 이런 작품의 연장선에서 홍길동전의 이해가 가능하며, 이같은 혁명적 사고를 하던 허균이 아니면 홍길동전 같은 작품을 과연 누가 쓸 수 있겠냐는 교수님의 말씀에 호민론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박지원은 18세 때 [광문자전]을 지었는데 사유가 완전히 성숙하지 않은 나이의 작품이지만 비천한 거지의 내부에 숨겨진 재능에 주목함으로써 기존 통념을 부정, 전복하는 박지원 특유의 사유 체계를 보여주고 있다는 설명이다. 당시의 순명배청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청의 발달한 문물을 배우자고 말하되, 조선 사회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것을 에둘러 말하는 글쓰기 전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를 두고  '연암은 조선 시대의 대 문호'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김삿갓으로 유명한 김병연은  민란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19세기 조선사회에서 전국을 떠돌며 접하는 하층민들의 곤궁한 삶을 호흡이 짧은 시로 노래했다. 특히 파자시, 파격시, 숫자시 등을 통해 전통을 전복하고 한시의 관습을 조롱거리화하기도 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소수자란 누구인가'와 교과 과정에서 고전 작품을 다양하게 수용하기 위한 고민 등이 논의되었다. 또한 조선시대에 여성은 남성에 비해 소수자라고 할 수 있지만, 사대부 집안의 여성은 상대적으로 소수자라고 보기 어려운데 이런 예에서 보듯이 [소수자]는 결국 관계적이며 위상적, 상대적인 개념이라고 정리되었다.   

마지막으로, 갈수록 다양화되는 현대사회를 생각해 볼 때, 고전에서 소수자문학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자는 과제(?)를 받았다. 

 1강 때보다 더 많이 모인 사람들과 진지한 열기로 시간은 금방 지나갔지만 강의 끝무렵 살짝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김시습, 허균, 박지원... 이들을 과연 조선시대의  소수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일까. 

2강의 추천자료 중 [역사 속의 소수자들] 서문에는 소수자를 '자신이 지닌 어떤 특징으로 말미암아 사회의 주류/지배 집단으로부터 차별받는 비주류/하위 집단 혹은 그 구성원을 말한다.때로는 명백한 사회 집단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지만 역시 주류에 반하는 사상이나 생각을 가진 어떤 개인이나 공동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전자는 사회학적 측면에서 본 소수자 집단-이른바 사회적 소수자-이고, 후자는 지적 이단자로서의 소수자다. 비주류/하위 집단으로서의, 혹은 지적 이단자로서의 소수자라는구분은 단순히 수적 소수자란 듯이 아니라(소수자 집단의 구성원 수가 더 많은 경우도 있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권력-자결권-이 미약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고 정의하고 있다.

사상적 이단자들도 소수자이긴 하겠지만 유교 질서를 내세우는 조선 사회에서 진정한 소수자는 유교 테두리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을까. 무속인들, 승려들.  

그리고 사상이 아닌 성, 신분, 신체상의 무수한 소수자들일 기녀들, 예인들, 기인들...그들의 여러 기록들.

교수님이 강의 시작 초입에 말씀하셨던 구비문학의 특수성-개인적 발화에서 다소 미흡함이 있고 보편적, 집단적 목소리- 때문에 소수자 문학은 기록, 즉 문자화라는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사대부들과 접점이 있게 된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그리고 부족한 시간을 고려하더라도 정작 소수자들의 문학은 강의에서도 소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살짝 남았다. 

 

좋은 강연 해주신 조현설 교수님과 밤 늦은 시간까지 뒤에서  여러가지 챙겨주신 알라딘 진행자분들께 감사드린다. 지방 순회 강연으로 계속되는 인문학 스터디, 내겐 이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지만 다른 분들껜 정말 좋은 기회가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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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주최 "문화초대석:인문학 스터디 6기 2회차 고전문학이 그려낸 소수자"후기

안녕하십니까 대전광역시 대덕구에 사는 김민정입니다. 이번에 길벗출판사 강당에서 열린 소수자 관련 인문학 스터디에 참석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라고는 하지만, 이런 좋은 강의를 듣고 후기에 정말 상투적이고 일반적인 문장밖에 쓰지 못하다니 제 문장력이 한스러울 따름이군요.
뭐, 그러면, 영양가 없는 서론은 치우고 본문에 들어가도록 하지요. 서울에 지인들이 살고 있기에 기왕 서울 가는 김에 아침부터 서둘러서 지인들과 점심도 먹고 수다도 떨다가 함께 길벗출판사에 도착했습니다(애초에 이런 일이 아니면 합정역에 올 일이 없기에, 함께 간 지인이 아니었다면 벌써 길을 찾는 데에 애를 먹었을 겁니다.).   

내려가는 계단에서 작별인사를 나눈 뒤, 기대감을 가득 안고 강의실에 들어섰습니다.(처음에, 유리문 쪽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있었던 것은 확실히 에러군요. 그게 창문인 줄 모르고 그걸 열려고 약 1분 정도 고민했습니다.)
제가 시간 되기 약 5분 전 정도에 들어섰던지라, 이미 앞자리는 모두 차 있었고 저는 뒤쪽 책상에서부터 세어서 앞에서 두 번째 책상에 앉았습니다. 사실은 필기도 하면서 강의 자체를 녹음하고 싶었지만, 아침에 급하게 나오는 바람에 엠피쓰리를 충전대에 꽂은 채로 그냥 나와 버려서 그냥 필기로 만족했네요. 디카로 영상을 찍을까 했지만 매너모드로 해놔도 소리가 너무 커서 그건 포기했구요. 뭐, 어쨌든 나름 열심히 필기해 가면서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국 사회가 다양해지면서 마이너리티 즉 소수자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므로 소수적 관점으로 문학에 관해 사유해 보자는 서두로 시작한 강의는, 카프카의 사상을 거쳐 김시습, 허균,이언진, 박지원, 김병연을 언급하며 소수자에 대한 의미있는 담론으로 끝을 맺었었지요.  

어느 정도 예습을 하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히 익숙한 작품들로 익숙한 이야기를 하고 있음에도 내용이 새롭게 다가와서 좀 놀랐습니다. 정신적 주변부에서 매암을 돌며 그네들 동류의 이야기를 충실히 전했던 고대인들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이 살았던 궤적을 다시 한 번, 다른 관점에서 좇아가 보는 일이 특별하게 다가오더군요.  

다만, 예를 든 인물들이 모두 (이성계의)조선시대에 살던 남성이라는 점이 약간 아쉬웠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소수자는 항상 있어왔을 터인데, 친근한 인물을 예로 들려고 했기 때문인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잘 몰라도 특정 시기의 인물들로 범위를 좁혀 버리니, 뭔가 균형이 맞지 않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왕에 '고전문학' 속의 소수자를 그릴 생각이셨다면, 고래로부터 지금까지(단군조선 시기부터 대한제국 이전 시기까지)각 시대에 살다 간 소수자 이야기를 넣을 수도 있었을 테고, 지배 계층이 지었지만 거기서 소수자의 삶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할 수도 있었을 테지요.  

후반에 질문 시간에 어떤 여성분이 여성 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균형이 맞지 않는 대로 넘어갔을 분위기더군요.  

뭐 결국 이야기의 골자인 "소수자는 상대적인 개념이다"라는 사항을 확인해 준 것에서 그쳤지만, 그분의 질문으로 이야기가 묘한 균형을 맞춰간 느낌이 들었습니다.  

"자 질문하세요~"하니까 모두들 묵묵부답이시길래 질문 없이 끝나려나 보다 했는데, 두 분이 각각 강의를 정리하는 질문을 해 주셔서 참 다행이다 싶더라구요.  

한 분은 국어과 교사로 계신 분인데 학생들이 고전을 기피하려 하는 이유와 그 해결책에 대해 진지한 이야기를 풀어놔 주셨고 조현설 교수님 또한 그분의 의견에 동조하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이끌어가셨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 이제야 5년이 되었는지라 아직 고등학교에서 들은 문학 수업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분들 대화에 깊은 공감을 했습니다.  

설령 학생이 작품에 흥미가 있다고 하더라도 빡빡한 진도와 딱딱한 수업분위기상 해당 작품을 깊이 탐구할 수는 없는 환경이니까요.  

문제풀이가 가장 중요한 득점 수단인 이상,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지 않고 해당 작품에 대한 문제를 풀 수 있다면 그것이 효율적이라는 인식들을 많이들 할 테고 그러면 배우는 건 겉껍데기뿐이지요.  그 점이 저는 내내 아쉬웠습니다. 그렇기에 두 분 대화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네요.  

한 분은 소수자에 대해 질문해 주셨고 한 분은 고전 문학에 대해 의견을 내 주셨으니, 질문하신 두 분이 강의의 핵심을 꼭 집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고등학생들이 들을 수 있을 만한 시간대에 강의를 잡으셨다면, 그래서 이 강의를 고등학생분들도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남더군요.  

제가 강의를 들으면서 '이 강의, 고등학교에서 봉산탈춤 지문 배우면서 소수자에 대한 보충 및 심화학습하는 것 같구나'라고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겠네요. 뭐, 고등학교에서 한 번쯤은 다루는 인물과 작품을 언급하신 까닭도 있겠고요.  

친근한 작품들로 무거운 주제를 풀어내셨기에 강의 듣는 분위기가 열정적이고 진지할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군요.  

이번 강의의 핵심은 "소수자는 관계지향적인 개념이어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그대는 소수자인가?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살아가고 있는 소수자들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 것인가"라는 질문이겠군요.  

이 문제, 이 화두에 대해서는 한번 곰곰이 생각을 해 봐야겠습니다.  

의미 있는 강연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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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MD 바갈라딘 2011-04-28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꼼꼼하게 정리해주시니 그날 질의 응답 시간이 자연스레 떠오르네요. 그나저나 언제 하면 한국의 고등학생들이 올 수 있을지... 그러고 보니 5기 서민경제학 때 한 고등학생이 강의를 들으러 와서 야간자율학습 대신 여기에 왔다는 확인서를 받아간 기억이 나네요. 7기 여름방학 편에서는 청소년들과 함께할 내용을 준비하고 있는데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kimsam 2011-04-28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날 강의에 함께 참석해서 들은 사람입니다. 강의 소감을 써야지하며 들어 왔다가 그냥 님의 글을 읽고 갑니다. 제가 듣고 말하고 싶었던 내용을 잘 정리하셔서요..그냥 쓰신 글에 다리 하나 얹을려고요...좋은 시간있습니다.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여러가지를 생각했습니다. 소수자!!! 어쩌면 우리도 책에서 말한 여러 영역 외에 다른 부분으로 정의될 수 있는 이 사회의 소수자가 아닐까? 우리가 이 사회 속에서 우리가 느끼고 경험한 여러가지 것들을 속으로 되뇌이기만 하고 속으로 삭히기만 한다면 우리도 사회의 소수자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
아무튼 제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 지 조금은 생각하게 한 의미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창작하는돌고래 2011-04-2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떻게 하죠? 너무 멀어서 참석하기 어려울 거 같아요. 대전인 줄 몰랐어요. 죄송합니다...
 

 지방인 관계로 어제의 2강을 듣기 위하여 좀더 일찍 길을 떠났다.  1강때는 함께 길을 나서는 사람이 있었는데 선약으로 인하여 혼자서 빗속의 기차에 몸을 싣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교과서를 열공(?)하면서...... 

 강의 주제에 수록된 교과서를 읽으면서 과연 조선시대(책의 내용이 주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되어 있기에)의 소수자에 대해서 나의 생각과 강의 내용과의 어느 정도로 일치하는가를 짐짓 가름하면서 생각을 좁혀 보았다. 

 교수님의 강의 첫 一聲(일성)이 "소수자=마이너리티"라는 말씀은 아마도 당시의 시대가 유가적 사상이 국가 통치 기반의 전체적인 기틀로 확고하게 제도화된 기반위에서 다른것은 차치하더라도 중앙정치 판에서, 그리고 그 중앙정치판의 권력과 위세를 등에 업고 민초들을 위한 정치가 아닌 몇몇의 실세들의 정치적인 안정을 꾀하는 잘못된 經世에 대하여 같은 양반(?), 아니면 권력자들, 그것도 아니면 밀려난 경계선밖의 outsider들이 밖에서 바라 본 정치판에 대하여, 겉으로는 묵묵히 그러나 속으로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내적 울분을 가진 민초들의 마음을 대신하여, 그리고 그에 반하는 사상적 반감을 토해낼 수 있는 있는 범위의 한계를 가진 자들은 그나마 글을 읽고 깨우쳤던 그리고 소통의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자들이란 소위 신분적, 계급적 우위의 지위를 가진 양반들과 중인들.......그 중에서도 당시의 정치권에 대하여 자의든 타의든 고운 시선을 두지 않았던 사상적으로 진보적인 일부의 지식인들........  

-15세기: '김시습' - 유가적인 사상에서 겪는 양심의 괴리(사상적,정신적갈등에서)에서 현실정치와의 끝내 타협을 거부하는 어찌보면 그 시대의 진정한 경계인이었으리라. 

-16세기: '허균' - 흔한 말로 '법보다 주먹이 먼저'라는 식처럼, '몸이 먼저 움직이는 실천적인 사람'으로서, 아마도 이는 어렸을때의 서자 출신의 가정교사인 '이달'로부터 받은 양반이 아닌 외 사람들의 흘러가는 생활적인 고통에 대하여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적으로 무장되어 있지 않았으면 그의 작품은 탄생하지도 못했으리라. 

-17세기: '연암 박지원' - 이 사람에 대하여 말을 한다는 자체가 불경죄(?)에 해당할지는 몰라도, 어찌보면 3종 형님의 권세를 악용(?)하여 나름대로 당시의 조선사회를 뒤흔들만한 스캔들내지는 정치적인 사건을 만들만한 위치였음에도 어찌된 영문인지 이 분은 그러한 양반들의 inner line 안에 있기를 스스로 거부(?)하고, 그의 친구(?)들은 주로 중인출신의 책 읽는 삶들이 주류였다는 것은 어릴적에 성격적으로 약간의 문제가 있어 문밖 출입을 하지 못하고 동네 어른들을 집안으로 모셔놓고 양반이 아닌 사람들이 얘기하는 옛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란 관계로 양반으로서 가진 권력의 누림을 스스로 거부했다고 생각된다. 

-19세기: '김병연' - 실명보다는 김삿갓으로 더 유명한 사람으로서 모르고 써낸 과제로 댓가(?)로 벼슬길에 오르나 뒤에 밝혀진 조부의 행위에 대한 양심적인 가책에 대하여 책임지고 죄를 씻겠다는 뜻으로 스스로 소수자의 길을 떠난 19세기의 대표적인 지식인의 표상이다.  

이외에도 아마도 수많은 소수자가 되었던 지식인 많을터인데도 불구하고 이 날의 강의에서 거론된 위 사람들은 게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소수자였기에 그랬지 않았나 생각한다. 

다만, 약간의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 있는것을 표출하자면, 어찌하여 그 분들은 조선시대에 음지로 내몰리고 핍박받고 소외된 소수자들을 위해서 계몽적인 일을 했다는 자료는 왜? 없을까, 하는 미련이 남습니다. 있다고들 하지만 아주 소소하게 단편일률적인 것만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는 이미 고인이 되신 '김대중 대통령'의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범죄자의 편에 있다'는 말씀대로 그나마 우리가 오늘날 양심의 가책을 조금이나마 느낄수 있고, 있도록 살아갈 수 있는 삶을 원척적으로 뿌리를 내릴수 있었던 것은 지난날 위정자들보다는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지만 그들보다는 더 아름답게 살다간 조선의 지식인들이 계셨고 그 분들이 남겨놓은 보물보다도 더 빛나는 그 분들의 글이 남아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하는 반성과 기쁨의 마음으로 2강의 후기를 마무리 짔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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