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를 키운 여자들』을 읽고 있다. 2007년도에 출간됐는데, 현재는 품절 상태다. 예니 비스트팔렌-마르크스, 클라라 비크-슈만,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톨스토야의 이야기까지 읽었다.


나중에 시아버지가 된 하인리히 마르크스가 무언가 천재적인 것을 지니고 있는 아이라고 서술할 정도로 특히 활발하고 지적 호기심이 왕성했던 예니(38)는 결혼 후에는 마르크스의 원고를 정서하고 다듬고 논문을 복사하고 자료를 정리하며, 인쇄업자나 출판자와 상의하는데 자신의 모든 역량을 다한다. ‘혁명의 심부름꾼이자 카를 마르크스의 비서로서 살아간다. (43)


성공한 아내에 대한 질투, 스스로에 대한 좌절, 전통적인 성역할 또는 종속 관계의 혼란 때문에 불거진 슈만과 클라라의 갈등은 슈만의 자살 위협으로 더욱 극적으로 치닫는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 분열 증세를 보였던 슈만은 1854, 클라라와 처음 불화가 있던 당시의 자살 협박을 실행에 옮겨 자살을 시도하고 후에는 정신병원으로 호송된다. 1856, 그가 죽은 후에야 비로소 클라라는 자신의 힘으로 삶을 극복해 간다.


그녀는 연주회를 여는 것이 아무리 힘들어도 재미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저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라며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81)    






소피아 안드레예브나 베르스가 34세였던 톨스토이 백작과 결혼했을 당시 그녀는 불과 18세였다. (94) 이미 유명한 작가였던 톨스토이의 열렬한 구애에, 청혼한 지 7일 뒤에 결혼식을 올렸다. 여성에 대해 극단적으로 상반된 태도를 보였던 톨스토이는 자신의 유년기에 대한 보상으로 소피아가 아이들에게 전형적인 어머니 상이 되어 줄 것을 강요하며, 아내가 직접 아이들에게 젖을 먹여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101) 소피아는 처음부터 우월한 위치에 있었던 톨스토이의 정신적 구속자신이 가졌던 가능성과 에너지를 빼앗아 갔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했다. (106)


그녀는 남편의 성적인 욕구에 자신을 맞추었으며, 끊임없이 남편의 원고를 정서하였다. 수차례에 걸쳐 『전쟁과 평화』를 정서하였으며, 일기 또한 계속해서 써 내려갔다. 그녀는 그 밖에도 꼼꼼히 교정하였으며, 나중에는 편집자로서 맡게 된 작품들의 출판에도 신경을 썼다.


그녀가 하루에 처리하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많았다. 그녀는 다섯 시간 이상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이런 모든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위안을 삼은 것은 톨스토이가 이와 같은 희생을 할 가치가 있는 천재라는 확신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이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 때면 늘 혼란에 빠지곤 했다. (107)



이번주의 에세이아버지의 유산』을 마쳤고, 이번주의 사회학천재를 키운 여자들』을 읽는 지금, 이번주의 소설전쟁과 평화』가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에 기대어 생각한다면, 모든 인간과 모든 삶에 대한 초상, 톨스토이가 남긴 불멸의 걸작 『전쟁과 평화』에는 소피아의 흔적이, 눈물이, 고통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는 것인데, 나는 소설 어디에서도 그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으리라는 예상이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

찬란한 매혹, 그 처절한 애증 천재를 사랑한 여자들.

천재를 사랑했으나, 보상은 없었다. 천재가 되도록 사력을 다해 애썼지만, 아무도 그녀를, 그녀들을 기억해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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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08 15: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예니 비스트팔렌이 마르크스한테 낚여서 인생이 급전직하한 사연은 참..... 마르크스 이 ㅎㄹ..

단발머리 2017-12-08 15:1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말이예요. 어디까지나 제가 읽은 책의 범위에서 이해하자면 말이예요. 참.... 마르크스... 쩝쩝...

그런 의미에서 말이예요. 저는 이 책 살짝 읽고, 구글링 한 번 해 봤을 뿐이니까요.
프레디 데무트는 엥겔스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아들인 거죠? 그런 거죠, syo님?
저요, 그것과 관련된/자세히 설명된 책 하나만 추천해 주시면..... 빨갛게 멋진 syo님~~~~^^

syo 2017-12-08 15:22   좋아요 0 | URL
네. 아들은 통설인 듯.
그것과 관련된 책을 제가 읽어보지는 못했는데요. 쉬쉬하는 분위기 같기도 하고.... 그러나 어쩐지 그나마 상세할 거라고 심증이 가는 책으로는 예니 평전인 《레드 예니》가 있구요. 그리고 두 사람의 사랑을 주로 다뤘다는 《자본과 사랑》이라는 책도 있어요. 그러나 이 책은 무려 1000 페이지에 육박하므로....

syo 2017-12-08 15:23   좋아요 0 | URL
헉...《사랑과 자본》이었네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7-12-08 15:33   좋아요 0 | URL
세상 엄청 엄청 감사합니다.
정말 syo님 모르는 게 없으신 듯!!!!!
<레드 예니>랑 <사랑과 자본> 일단 장바구니에 넣어 볼께요.
감사합니다. 빨갛고 멋지고 지적인 syo님~~~~

syo 2017-12-08 15:35   좋아요 0 | URL
빌려 보세요... 특히 사랑과 자본 ㅋㅋ 부담이 너무 커요

다락방 2017-12-08 15:51   좋아요 0 | URL
천페이지에 육박.....

육박하다..단발머리님이 강신주를 사랑할 때 습득한 단어가 아니었던가요......(맥락 없는 뜬금댓글 ㅋ)

syo 2017-12-08 15:56   좋아요 0 | URL
맞아 강신주가 자주썼던 것 같네요. 육박하다, 육박해 들어오다...

단발머리 2017-12-08 15:57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은~~~
나와 강신주와 육박하다를 기억하고 있단 말이예요?!!
와락!!!

다락방 2017-12-08 16:01   좋아요 0 | URL
그럼요! 저는 단발머리님과 강신주와 육박하다를, 이 모두가 함께 들어간 페이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단발머리 2017-12-08 16:02   좋아요 0 | URL
아.... 새삼 행복해요~~

우리 알라딘 세상은 아름답네요.
단발머리와 강신주와 육박하다를 기억하는 다락방님도 있고,
<사랑과 자본>을 추천해주는 syo님도 있고요~~~

단발머리 2017-12-08 16:03   좋아요 0 | URL
그그그..... 그래야겠죠?
천 페이지 구입했는데 못 읽으면 좀 많이 슬프겠죠?
천 페이라~~~~
하루에 3쪽이면 일년이고, 6쪽이면 6개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17-12-08 16:04   좋아요 0 | URL
쇼님 그리고 단발머리님.

우리가 아직 [제2의 성]을 다 읽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지마세요!! ㅎㅎㅎㅎㅎ

syo 2017-12-08 16:05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면 걔도 1000 페이지.....

다락방 2017-12-08 16:07   좋아요 0 | URL
이번 주말에 1권 완독? 콜? (저는 조카들이 와서 아마 곤란할 듯...)

단발머리 2017-12-08 16:0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저는 반 읽었으니까, 1권 완독 콜이요~~~~!!!!

내 책은 합본이랍니다!!!!!!!!!!!!!!!!!!!!!!!!!!!!!!!!!!!!!!!!!!!!

syo 2017-12-08 16:11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 다락방님이 말한 저 ‘1권‘은 ‘한 권‘을 말하는 겁니다.....그쵸, 다락방님?

단발머리 2017-12-08 16:16   좋아요 0 | URL
아니예요~~ syo님~~~

다락방님~~ 상권 하권 중에 한 권이죠~~~ ? 그죠?

다락방 2017-12-08 16:17   좋아요 0 | URL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뭐라 대답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위해서는 단발머리님이 맞다고 하고 싶고 단발머리님 약올리기 위해서는 쇼님 말이 맞다고 하고 싶다. 아아 이 내적갈등을 어떡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7-12-08 16:19   좋아요 0 | URL
아..... 단발머리님 날름 드시려고 하신다 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7-12-08 16:2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내적 갈등 내려놓으시고요~~
자신이 무슨 책을 샀나~~ 생각해보세요~~ 다락방님 <제2의 성>은 상하예요. 그죠~~~
고로, 1권! 상권 한권 읽기가 이번주의 콜이예요~~~

그럼 이만, syo님은 저의 메롱을 받으시고요,
저는 주말 1권 완독 콜을 외칩니다! 코올!!

syo 2017-12-08 16:43   좋아요 0 | URL
으윽.... 메롱을 받고 말았다.

단발머리 2017-12-08 16:52   좋아요 0 | URL
이게 바로 은혜를 원수로~~
<사랑과 자본>을 메롱으로^^

2017-12-08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8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7-12-0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섯 시간 이상을 자지 않고 수고를 해야 하는......... 저는 그냥 포기하렵니다. 천재 사랑하기 ㅋ

단발머리 2017-12-08 16:04   좋아요 0 | URL
아... 그럴까요?
저도 그 수면 시간이 가장 두려운 거였고요.
다른 것도 많아요. 일테면 계속해서 애를 낳으면서도 천재 남편의 작업이 방해될까 걱정하는 ㅠㅠ
이 책이 그렇게 놀라운 책이예요.

수이 2017-12-08 16:12   좋아요 0 | URL
읽고 시지만 저는 그래도 전쟁과 평화에 일단 한표를~
제2의 성 읽기 프로젝트는 부러워요. 하지만 지레 포기하고마는;

단발머리 2017-12-09 12:21   좋아요 0 | URL
<제2의 성>은 지금 잘 지내고 있어요. 저희집 식탁 오른쪽 빈틈에서요. ㅎㅎㅎㅎㅎ
시작할 떄는 사기충전되어 있어서, 한 달 안에 다 읽겠다 했는데, 목표 수정 해야겠어요.
올해 안에로요~~~

<전쟁과 평화>도 세 권 아니면 네 권이라... 사실 저는 그 쪽도 마음이 떨려요, 떨려~~~~

다락방 2017-12-08 16:43   좋아요 1 | URL
야나님, 제2의 성으로 얼른 오세요! 지금 합류하셔도 따라잡으실 수 있을거예요. 제가 300쪽에서 읽기를 멈추고 있으므로..... 컴온!!

단발머리 2017-12-08 16:47   좋아요 0 | URL
야나님~~ 나도 지금 잠깐 휴지기예요~ ㅎㅎㅎㅎㅎㅎㅎ
같이 가요~~~!! 컴온!!

syo 2017-12-08 16:53   좋아요 1 | URL
야나님 저는 앞쪽 100 페이지만 지금 세 번째 읽고 진도를 못나가고 있어요!! 얼른 오세요. 컴온!!

단발머리 2017-12-08 19:00   좋아요 0 | URL
야나님~~~
다락방님도 syo님도 이렇게 마중 나오셨는데...

이제 저희랑 같이 가시죠~~ ㅎㅎㅎㅎ

수이 2017-12-08 20:34   좋아요 0 | URL
그럼 합류해보는 걸로?!!!!!!!!! 일단 이사하고난 후에~ 살짝 끼렵니다.

졔졔 2017-12-08 17: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희진쌤 강연에서 아인슈타인 에피소드가 너무 충격적이어서 그부분 먼저 읽었는데요. 아인슈타인에 대한 다른책도 읽어보니 밀레바를 ‘식견있는 검토자’역할일 뿐이었다는 내용이 있더라구요. 제가 다 울컥하고ㅠㅠ 억울하고ㅠㅠ흑흑

단발머리 2017-12-08 18:29   좋아요 0 | URL
저는 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이야기인데, 정말 들으면서도 믿기 어렵더라구요.
이런 방식으로 가리워지고 묻혀진 천재 여성들의 에너지와 재능을 생각하면
인류 전체에게 얼마나 큰 손해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생각할수록 정말 울컥한 일이죠.. ㅠㅠ
 






 










정희진 선생님을 두 번 만났다. 처음에는 주말 도서관 강좌에서, 두번째는 평일 저녁 도서관 강좌에서. 최근 알라딘 최고의 핫플레이스였던 <한겨레21: 페미니즘*민주주의 특강>에 참석하고 싶었으나, 수요일 저녁에는 시간내기가 어려워 포기하고 말았다. 두번째 평일 저녁 강의에는 2-30대의 젊은 여성들이 많이 참석했다. 사진으로만 봤던 한겨레 특강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주말 오후의 첫번째 강의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참석했다. 정희진 선생님은 강의 주제였던 엄마, 페미니즘, 인문학의 단어 하나하나가 얼마나 방대한 주제인지, 왜 나에게는 이렇게 어려운 강연만 주어지는지에 대해 잠깐 언급하시고는,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 참석자들에게 물어보셨다. 한 분이 손을 드시고는, 나는 그냥 정희진이라는 사람 때문에 왔다.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시라고 말씀하셨다. 앳되 보이는 학생은 페미니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참석했다고 했다. 적극적이지만 소심한 나는, 크게 말하지 않는 나는, 3년치의 용기를 싹싹 긁어 모아 손을 들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큰애가 깜짝 놀라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전업주부인데요. 최근에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있습니다(부끄럽다, 이 말이공부한다 말하기에는 너무 공부하지 않는 나).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전업주부와 페미니즘이 만나지지 않아요. 시간 많은 여자들의 한가한 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해서 자꾸 위축됩니다. 이런 말을 하는데, 전업주부와 페미니즘이 만나지지 않는다,에서 울컥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이 집중한 가운데 무언가를 말한다는 데서 긴장했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생각한다. 전업주부와 페미니즘 때문이라고는, 그 둘이 갈등하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열정적이고 시원한 강의였다. Meta gender가 젠더에 기반하되 어떻게 젠더를 넘어설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하셨다. 2-300년 정도 계속되어 온 인종, 계급의 문제보다 더 근원적이고 역사가 오래된(?) 성별의 문제가 어떻게 갑을관계의 모델이 되었는지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구체적으로 혹은 이성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이 처한 여성이라는 위치 때문에 여성이 성별 이데올로기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앎은 위치성에 의해 결정되기에 그러하다고 말씀하셨다. 강의 도중 몇 개의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한 권, 한 권 아름다울 뿐더러 두껍고 어려워 보인다. 일단 도서관에서 한 권 빌려왔는데 외모가 후덜덜하다.



 























<괴델, 에셔, 바흐> <천재를 키운 여자들>, <세계 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문명과 전쟁>, <파시즘의 대중 심리>  





 


마지막으로 페미니즘의 두 기둥은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라고 하셨는데, 이 부분에서는 절망조차 사치였다. 언젠가 만나야 할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은 미루고 싶은, 그리고 못 본 척 하는 이름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

 


마침 주말에 읽었던 책에는 프로이드가 등장했다.



 

As the eminent psychoanalyst Clara Thompson put it : Freud never became free from the Victorian attitude toward women. He accepted as an inevitable part of the fate of being a woman the limitation of outlook and life of the Victorian era. … The castration complex and penis envy concepts, two of the most basic ideas in his whole thinking, are postulated on the assumption that women are biologically inferior to men.” (125p)

 





결국 만나게 되어 있고, 언젠가 만나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만나게 될 것이다. 만나면 반가울지 괴로울지, 지금은 알 수 없다. 일단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5번 정도 읽고 나서 생각해 볼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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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12-06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자본론보다 괴델에셔바흐가 더 어렵던데요.....

단발머리 2017-12-06 13:40   좋아요 0 | URL
syo님은 좋으시겠어요. 마르크스는 이미 훑으셨잖아요.
많이 읽으셨잖아요. 좀 아시잖아요~~~
전 마르크스도 해야 하고 프로이드도 해야 하고 또, 또, 또. ㅠㅠㅠ

그나저나 만난김에^^
syo님~~ 프로이드책 기본으로다가 쉬운걸로 입문편으로 저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syo 2017-12-06 14:50   좋아요 0 | URL
음, 프로이트 전반을 다룬 걸로는 파멜라 투르슈웰의 《지그문트 프로이트 컴플렉스》랑 맹정현의 《프로이트 패러다임》 이 추천할만 해요. 맹정현 책은 저도 사 놓고 읽는 책입니다.

2017-12-06 14: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7-12-06 15:25   좋아요 0 | URL
아하.... 지금 검색해 볼께요. 두 권 다 읽을꺼에요. 올해 안에~~ 는 아니구요.
일단 얼른 찾아서 읽어볼께요. 너무너무너무 감사해요.

역시!! syo님한테 물어보길 잘했어요.
로쟈님도 많이 아시겠지만, 그럼 뭐하나요?
나는 로쟈님을 직접 만나 싸인도 받았지만, 그럼 뭐하나요?
로쟈님은 댓글을 막아두셨고, 열어 두셨어도 물어볼 수가 없는데요. 어려워서... ㅠㅠ

고로 로쟈님보다 syo님!!!
(걱정 마세요, 로쟈님은 바쁘셔서 제 글 안 읽으세요~~~ ㅎㅎㅎㅎㅎㅎㅎ)

2017-12-06 15: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6: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16: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7 1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7-12-06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휴...
저도 양성평등에 반대한다 다섯 번 읽은 다음에 이 페이퍼 다시 읽고 추천도서 하나씩 읽어야겠네요.
갈 길이 멀다, 멀어요. 멉니다 단발머리님. ㅠㅠ

단발머리 2017-12-06 14:03   좋아요 0 | URL
우리의 갈 길은 멀죠. 정말 멀고 머나먼 길입니다.

<천재를 키운 여자들>부터 읽으려고 했는데요. 좀 멀리 있는 도서관에 가야해서 <괴델,에셔, 바흐>를 먼저 빌렸어요.
syo님 댓글처럼 무지 어려울 듯 해요. 일단 저는 펴보지도 않았습니다. 외모에서 풍기는 ‘나는 어려운 책이다‘의 압력 때문이죠.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는 선생님이 말씀하셨던 제목이랑 똑같지는 않은데 제가 검색해보니 이것 같아서 올렸구요.
<문명과 전쟁>은 <전쟁과 문명>이라 하셨는데, 이 책이 맞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걸 알려 드려요.

우리 같이 가요. 같이 한 번.... 가 보자구요~~~~~~~~~~~~~~~~~

졔졔 2017-12-06 14: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정희진작가 도서관 강연 들었는데 단발머리님과 같이 들었네요! 단발머리님 질문이 저에겐 도끼같았어요. 저는 미혼이고 페미니즘 입문의 입문자여서;; 그런고민을 해본적이 없더라구요ㅠ 전업주부와 페미니즘....님 질문 덕분에 더 좋은 강연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용기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단발머리 2017-12-06 18:58   좋아요 1 | URL
어머~~~ 최졔님 정말 반가워요. 우리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있었군요.
저 질문하다가 울컥해서 약간 멈짓하기도 했잖아요. 많이 부끄러웠는데, 최졔님 댓글 보니 용기내기 잘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졔님도 용기내어 제 글에 댓글 달아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앞으로도 자주 자주 뵈어요~~~

에이바 2017-12-06 14: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The castration complex and penis envy concepts, two of the most basic ideas in his whole thinking, are postulated on the assumption that women are biologically inferior to men. 이거 핵심이네요. 그래서 프로이트 읽기가 영 끌리진 않는데 언제까지나 외면하긴 힘들겠죠. 호프스태터 책 개정판인가요? 저 책이 추천도서가 될 줄이야~ 눈이 돌아갑니다 ㅠㅠ 모녀가 함께 듣는 강연, 따님의 페미니즘이 어떤 역사로 적혀 나갈지^^ 우리보다는 좀 더 명쾌했으면 좋겠어요. 단발머리님의 고민하시는 만큼 곁에서 지켜보며 자기 주관을 세울 좋은 계기가 되지 않을까요. 그건 그렇고 엄마가 발언하는 걸 보고 의외라 생각했을까요? 반응이 귀여워요. 단발머리님 멋있습니다.

단발머리 2017-12-08 11:29   좋아요 0 | URL
저는 프로이드의 ‘프‘도 모른 시절부터 (물론 지금도 이름밖에 모르지만,,,) 인간 이해의 중심에 ‘성‘을 둔다는 것에 약간 의문이 들었어요. 물론 인간은 성적이고, 성적인 존재죠. 하지만 성이라는 측면에서 집착한 인간 이해는, 뭐랄까 뭔가 빠진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결국 프로이드 이론도 자신이 속했던 사회적, 문화적 틀 속에서 ‘여성‘을 어떤 식으로 이해했느냐를 반영할 수 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젠 한 발짝 떨어져서 읽고 판단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도 들고요.

호프스태터 책도 에이바님은 알고 계시는군요. 역시나~~~~!!! 링크한 책은 개정판이구요. 두 권이 한 권으로 나왔어요. 제가 사진 찍어 올린 책은 예전 책의 포스를 풍깁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길, 헌 책방에 아주 많이 있을 거라고. 예전에 유행했었나봐요.

제 아이는 엄마는 진정한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 두 명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커뮤니티는 저로서는 사실... 좀 감당하기 어려운 측면이.... ㅠㅠ

전 멋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제가 좋아하고 동경하는 에이바님이 멋있다고 하셔서 진짜 진지하게 멋있는 사람이 되어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에이바님^^
 






, 어떻게 생각하니?

 

아버지는 여든이 넘도록, 오른쪽 눈의 시력을 거의 잃은 것을 빼면 그 나이의 남자치고는 경이로울 만큼 건강해 보였지만 여든여섯에 안면신경마비에 걸렸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은 플로리다 의사의 오진이었다. 본래 이 병은 바이러스 감염으로 발생하며 보통 일시적으로 얼굴 반쪽이 마비된다. (9)

 

 



이렇게 다섯 줄, 두 문장을 읽고는 나도 모르게 하아… ”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나는 얼마나 그를 사랑하는가. 나는 필립 로스, 필립 로스를 얼마나 사랑하는가. 그러니까, 아침부터 저녁까지, 늦은 오후부터 그 다음날 아침까지 나는 필립 로스를 읽었다. 웃으면서 읽었고, 책을 덮고 나서는 다시 펴서 한번 더 읽었다. 그를 읽을 때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한 켠에 쌓아 두었다. 오랫동안 치우지 않아 정체 모를 다용도실 상자 속 그 물건처럼. 긴 시간 숨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청소 타임은 생각보다 빨리 왔다. 레베카 솔닛은 그녀의 책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에서 두 번이나 그의 이름을 언급했다. 보내야 하는가. 나는 필립 로스, 필립 로스를.

 


장소는 부엌 및 거실. 식탁에 앉아 러스크를 먹는 딸아이를 쳐다보며 이 부분을 읽는다.

 들어봐아. 이게 무슨 말인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버지는 자신에게 돈을 쓰는 것에는 옆에서 보기에 짜증이 날 정도로 인색했다. 두 손자가 돈이 필요하다 할 때는 망설임 없이 활수하게 내어주었음에도 자신이 좋아하거나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지 않고 몇 푼 되지도 않는 돈을 계속 절약했다. (25)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근데, ‘활수하게. 활수하게!!

처음 듣는 단어인데. 그러게, 엄마도 그래. 활수하게, 활수하게!!라니

 

활수하다 : 무엇이든지 아끼지 않고 쓰는 솜씨가 시원스럽다. (네이버 국어사전)

 

필립 로스를 사랑하는 나는, 그의 책을 번역해 주신 정영목님도 사랑하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삼각관계가 된다. 마음을 가득 채우는 황홀한 행복감에 유일한 홍일점인 나는 기뻐 어쩔 줄을 모른다. 그 때, 저 쪽 구석에서 조용히 자전거를 타고 있던 둘째가 말한다계속 읽어봐 봐, 엄마. 계속 읽어줘.

 

그러니까, 듣고 있었던 것이다. 무심한 듯 페달을 돌리는 이 깜찍한 초딩도 필립 로스, 정영목님에게 빠져들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이 필립 로스꺼야. 필립 로스!

~~ 로스 (네 친구니ㅠㅠ)

, 필립 로스 알아?

알지, 엄마가 하도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했으니까. 알지~~.  

 

그랬던 것이다. 나는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하면서 살았던 거다. 미국의 생존 작가 중 최초로 라이브러리 오브 아메리카 (Library of America, 미국 문학의 고전을 펴내는 비영리 출판사)에서 출간한 완전 결정판(9)을 다 구매할 수는 없으니(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구입해도 읽기 어렵다), 화면 속의 사진을 닳도록 보고 또 보았던 것이다. 그의 작품에도 나오는 유대인의 코’, 얼굴 전체를 가늠하는 유대인의 코를 말이다.


 














하도 들고 다니며 읽어, 두어 군데 뜯겨져 나간 <유령퇴장>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깨끗한 필립 로스와 필립 로스들. 나는 이렇게 필립 로스, 필립 로스 하며 살았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들릴 때마다 필립 로스자리에 가서는 한 권씩, 한 권씩 구입해 모아두었다. 물론 읽는 것보다 구입하는 데에 방점을 찍었기에 이 아름다운 컬렉션이 가능할 테다. 읽지 않아도 좋아, 나는 필립 로스의 색감마저 사랑한다. 보라색의 그와 분홍색의 그를, 주황색과 노란색의 그를,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랑했고 그리고 사랑하는 필립 로스를 읽는다.

필립 로스. , 나의 필립 로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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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7-12-05 14: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수하게, 저도 처음 보는 단어인데 원문엔 뭐라고 되어 있었을까 궁금해져요.
필립 로스를 좋아하시는군요 ^^

단발머리 2017-12-05 14:18   좋아요 0 | URL
그래서, 어제..... 원서 <Patrimony>를 주문했습니다.
활수하게,를 위해서만은 아니지만, 활수하게,가 궁금한 건 사실입니다. ㅎㅎㅎㅎㅎㅎ

사랑합니다, 필립 로스를^^

다락방 2017-12-05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활수하게..

이건 그러니까... 뭐지, 저도 며칠전에 찾아본 단어.... 그새 까먹었네 ㅠㅠ
찾아보고 왔어요. 그러니까 제가 얼마전에 찾아본 ‘수꿀하다‘ 처럼, 제가 알지 못했던 단어로군요!!

필립 로스...
가슴 아픈 이름이죠 ㅠㅠ

단발머리 2017-12-05 14:34   좋아요 0 | URL
수꿀하다,는 몸서리치다,와 좀 비슷한 것 같아요. 그쵸?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될 때의 즐거움은 참 색다른 것 같아요.ㅎㅎㅎㅎㅎㅎ

필립 로스라는 이름에 대해서라면.....
전 마음이 아프고,
다락방님은 가슴이 아프고.

근육통 같은 아픔과 애잔한 슬픔을 동시에 주는 이름이죠.
필립 로스... ㅠㅠ

blanca 2017-12-05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책 마지막 장 읽고 그냥 울어버렸어요. 번역되기 전에 원서로 도전했는데 모르는 단어가 충격적으로 많아 그냥 던져버리고 싶었는데 참고 참고 또 참고 찾고 또 찾고 하며 다다른 그 마지막에 젊은 아버지와 어린 필립 형제가 함께 찍은 사진 묘사 부분에서 정말 이 사람의 글은 어떤 인간의 묘사력의 정점에 도달했구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이제는 쓰지도 않고 대중앞에도 나타나지 않는 그의 모습이 그답기도 하고 너무 아쉽기도 하고 그래요.

단발머리 2017-12-05 15:37   좋아요 0 | URL
전... 전에 blanca님 <Patrimony> 리뷰 읽었던 것 기억이 나요. 작가를, 한 작가를 너무 너무 좋아해서, 그가 쓴 말에 그 말에, 그 말 그대로에 닿고 싶어서 사전 찾아가며 읽는 그 마음이 기억나요.
전 단어도 함정이지만, 구조가 어렵더라구요. 마구 꼬여있어서요. 풀다가 제가 그만 이렇게... @@

저도 부지런히 읽고 나서, blanca님이 말씀하신 그 마지막 장에 얼른 도착하고 싶어요.

쓸 얘기를 다 썼다고 하는 그의 말이 일면 이해되면서도, 아쉬운 마음은 사실.... 아쉬워요. ㅠㅠ

blanca 2017-12-05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단발머리님 필립로스 컬렉션... 나도 사고 싶다.... ㅋㅋ

단발머리 2017-12-05 15:40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서는 좀 다른 표지더라구요. 전 처음 산 책이 <유령퇴장>인데 교보에서 사기 시작해서, 필립 로스 책은 다 교보에서 깔마춤으로다가 (알라딘 미안^^) 어제 주문한 <Patrimony>도 역시 교보에서 주문했어요.

필립 로스 컬렉션은 얼마 안 되는 제 자랑거리 중에 가장 빛나는 것입니다. ㅋㅋㅋㅋㅋ

2017-12-05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09: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7-12-05 1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발머리님의 따님은 이런 뜻이 아녔을까요 아~~ 로스 당연히 알지 생쥐 인간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립 로스는 언제나 제게 단발머리님의 쥐야 인간이야로 남아 있답니다. 에브리맨이랑 포트노이 사놨는데 아유 읽을 엄두가 안 나네요 흑흑 원제도 좋네요.

단발머리 2017-12-06 10:13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그러게요. 우리에게 필립 로스는 ˝인간이야? 쥐야?˝의 필립 로스죠.
그 우스운 상황과 글을 기억해주시는 에이바님이 계셔서 너무 행복해요.
오래오래 기억하고 이야기해 주세요~~~

에브리맨이랑 포트노이 중에 에브리맨이 더 많이, 더 쉽게 읽히는거 같아요.
포트노이는 미국에서도 너무 야한 거 아니냐고~~ 물론 저는 ˝인간이야 쥐야?˝ 때문에
시원하고 명랑한 소설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2017-12-05 23: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6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은 어디까지나 편집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면을 기억하고, 자신에게 불리한 면을 잊어버린다.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얼마나 많은 엄마들이 순수의 상징인 아이들의 정직한 이중성에 절망하는가. 자기한테 불리한 거는 쏙 빼놓고 이야기 하는 거 있죠? 아이에게까지 갈 필요도 없다. 바로 내가 그렇지 않은가.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제3자에게 이야기할 때, 기억 속의 는 얼마나 침착한 사람인가. 얼마나 이성적이고, 얼마나 예의 바른 사람인가. 내가 말하는 기억 속의 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사람이다. 오로지 좋은 사람. 실제와는 다르게.


기억에 관한 책이라면 제일 먼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쌍욕과 저주를 애인과 친구에게 퍼부었던 과거의 나와 만난다면 어떨까. 책을 읽었던 사람 10명 중의 8명은 첫번째 페이지로 되돌아 갔다는 데 500원을 건다. 기억이라면 모디아노를 빼놓을 수 없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를 읽었던 M도서관 어린이실의 뜨뜻한 방바닥을 확실히 기억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버린 주인공에 대해서는 잊어버렸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기억과 싸우는 <살인자의 기억법>도 기억난다. 70대 노인이 화자로 등장하는 <에브리맨> <유령 퇴장>도 함께.

















캐나다는 물론 미국, 유럽까지 충격에 휩싸이게 했던 토머스 키니어 씨와 그의 가정부 낸시 몽고메리 피살 사건의 주범 제임스 맥더모트는 교수형을 당했다. 공범으로 지목되었던 그레이스 마크스, 일명 메리 휘트니라고 불렸던 그녀는 혐의를 부인한다.


그레이스 마크스 그녀는 피고석에 서서,

모든 걸 부인했지.

저는 그녀가 목 졸리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저는 그가 쓰러지는 소리도 듣지 못했습니다. (28)


질문은 하나다. 그레이스는 영악하고 잔인한 살인마일까? 아니면 가혹한 누명을 뒤집어쓴 순결한 희생양일까? 당시에 만들어졌던 수많은 문서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이 책을 집필한 마거릿 애트우드는 <작가의 말>에서 확실하지 않으면 가장 확률이 높은 안을 선택하되 그럴듯한 모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기록상에서 단순한 암시에 그치고 누가 봐도 분명한 빈틈이 발견될 때는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고 적었다.(677) 소설은 정신과 의사 사이먼 조던 박사와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인생을 돌아보고, 비극이 벌어졌던 바로 그 날, 그 장소, 그 시간의 기억으로 점점 좁혀져 간다.


나로 말하자면, 나는 정확히 471쪽까지 단 한 번도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는 술주정뱅이 무능한 아버지 밑에서 동생 다섯을 돌보며, 캐나다로 건너오는 배에서 엄마를 잃고 엄마를 바다에 장사 지내야 했던 그레이스가, 이집 저집 하녀로 떠돌며 자신의 일을 억척스럽게 그리고 성실하게 해내는 그레이스가 마냥 불쌍했다. 나는 언제고 그녀 편이었다. 그런데 471쪽을 읽고 나서는, 작은 의심이 고개를 들었다.

 

제이미 월시의 증언에 따르면 8시쯤, 그러니까 당신이 쓰러진 직후에 마당으로 찾아 갔다고 합니다. 맥더모트는 그때까지 총을 들고 있었는데, 새를 쏘았다고 우겼다더군요.”

저도 알아요, 선생님.”

당신은 펌프 옆에 서 있었다고 했고요. 당신이 제이미에게 말하길 나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고, 낸시는 라이츠 부인네 집에 놀러 갔다고 했답니다.”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 뭐라고 딱 잘라 말할 수가 없어요. ” (472)


애트우드는 사건의 조각을 맞추기 위해 최선과 최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진실은 아무도 알지 못 한 채로 남겨졌다. 30년 동안 교도소와 정신 병원을 옮겨가며 지냈던 그레이스는 1872년에 사면되었다. “거처가 마련된뉴욕 주로 건너갔다고 하는데, 이후의 행적은 모호하다. 진실은 정말 수수께끼가 되어 버렸다(683).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불린다고 하던데, 여자 이야기라고 무시하고 싶어서 붙이는 말이라면 동의하지 않지만, 남자가 모르는 세상을 조롱하기 위함이라면 받아줄 만하다.


그때쯤 우리 아버지는 지긋지긋해했어요. 뭐하러 자식새끼를 또 낳아 놓느냐,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느냐, 그런데 멈출 줄 모르고 먹여 살려야 할 입을 또 하나 더하느냐,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말이에요. (162)


메리가 너는 이제 여자가 된 거라고 말했을 때 저는 다시 눈물이 났어요. 메리는 저를 감싸 안고 다독여 주었어요. 늘 바쁘거나 지치거나 아팠던 우리 어머니라도 그렇게 다독여 주지는 못했을 거예요. 그러더니 제 것을 살 때까지 쓰라고 빨간색 플란넬 페티코트를 빌려 주면서 어떤 식으로 옷을 접어서 핀을 꽂으면 되는지 가르쳐 주고, 어떤 사람들은 이걸 이브의 저주라고도 부르는데 자기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이브에게 주어진 진짜 저주는 무슨 문제가 생기자마자 그녀 탓으로 돌렸던 바보 같은 아담을 참고 견뎌야 했던 거라고 말했어요. (245)


그는 길거리에 험악한 남자들이랑 떠돌이들이 많으니 보호 차원에서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했어요. 내가 아는 중에서 유일하게 그런 남자가 지금 여기 이 부엌에 나와 앉아 있다는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오려고 했죠. 하지만 맥더모트가 예의를 갖추려고 하고 있었으니 입술을 꾹 깨물고 고맙지만 그럴 필요 없다고 했어요. (381)



퀼트 이불을 연상시키는 파란색 표지를 한 장 넘기고는 한 달음에 읽었다. 그레이스가, 예쁜 용모에 손이 야무진 하녀 그레이스가 자꾸만 생각난다. 그녀를 본다. 그녀를 다시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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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07: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04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언어는 도구일 뿐이며, 외국어는 일의 수단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천 번도 넘게 들었다. 그렇게 믿었다. 그 신념에 따르면 언어 습득은 효용성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하기에, 특별한 방도가 없는 나는 영어학습법’, ‘영어공부법책을 찾고 또 찾아 읽었다. 제목만으로 학습법을 요약할 수 있는 책들이 많고도 많았지만, 알고 있다고 해서 실천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책에 쓰인 대로 실천한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 물론 단정해서 말할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그런 일은, 그런 기쁜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암울한 시간. 정영목님의 이 한 마디가 나를 위로해주었다면 과장일까.

 



외국어를 배우는 것이 곧 무언가를 하기 위한 도구를 얻는 것이라는 실용적인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외국어 공부도 얼마든지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가 될 수 있다.(『21세기 청소년 인문학』, 103)






그 자체가 목표인 공부, 외국어를 배우는 일이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언어가 수단일 뿐이라는 말보다 더 작게 들렸지만, 내 마음속의 속삭임에 더 가까웠기에 나는, 기꺼이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언어 공부』를 읽었다. 16개 언어를 구사하는 헝가리 통역사의 언어 공부법. 10개 언어로 말을 하고 기술 문서를 번역하며, 6개 더 많은 언어로 소설책을 즐기고, 11개 더 많은 언어로 언론지를 이해하는 사람. 롬브 커토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확히는 그녀의 비법이 궁금해서.

이미 여러 번 썼지만 다시 한 번 강조를 해야겠다. (그리고 이게 마지막이라는 약속도 감히 할 수가 없다.) 무제한적인 반복을 제공해주는 것은 오직 책뿐이다. 시련 없이 몇 번이고 다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읽기뿐이다. 그리고 책은 목격자를 품게 되어 있다. 책은 반복해서 파헤쳐질 준비가 되어 있다. (109)

그러니까, 그녀는 책이라고 말하는 거다. 오직 책 뿐이다.



크라센이 생각난다. 그의 수많은 실험 중에서도 한국 주부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로맨스 소설 실험. 언어 능력을 키우는 데 있어서 읽기와 회화 구사 능력 사이의 관계를 알아보기 위해 한 가지 실험을 했다고 한다외국에 오랫동안 살았지만 회화 능력에 큰 진전이 없는 한국 여성들을 대상으로 절반의 실험 대상자들에게만  ‘미국 학원 로맨스물’을 읽도록 하고 일정 기간 후에 두 실험 대상자들의 언어 능력을 비교했는데, 10대를 대상으로 한 학원 로맨스물’을 일정기간 집중적으로 읽었던 실험 대상자들의 영어 실력이 그렇지 않은 그룹에 비해 크게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책인가. 책 혹은 책 뿐인가.



롬브 커토는 단어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단어장 쓰기도 권한다. 책읽기와 단어장 쓰기라, 지나치게 고전적이고 평범한 방법 아닌가. 잘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실천하지 않았던 바로 그 방법 아닌가.


나는 어수선한 단어장을 쓰도록 온 마음을 다해서 추천한다. 옥구슬 같은 글자로 깔끔하게 새겨진 줄들은 마치 사막의 풍경과도 같다. 모두 한데 섞여서 졸리게 만들어버린다. 기억력이 매달릴 곳이 없다. 다양한 도구(, 연필, 색연필)를 써서 다양한 스타일로(비스듬하게, 꼿꼿하게, 소문자로, 대문자로 등등) 써야 탄탄하고 꾸준한 발판을 얻게 된다. 그러니까 단어장의 이점은 쓰는 사람의 개인적인 특성에 있는 것이다. (136)


<내가 언어를 공부하는 방법>이 내가 찾던 챕터가 아닌가 한다. 그녀의 16개 국어 습득 비법은 이러하다. 일단 배우고 싶은 언어의 두꺼운 사전을 하나 구입하고, 거기서 글자 읽는 법을 익힌다. 나라 도시 이름들을 보면서 글자-음소 관계를 추측한다. 사전을 보면서 단어를 외우는 게 아니라, 가로세로 낱말퍼즐을 풀듯이 그냥 훑어보고 찬찬히 읽는다. 그 후에는 연습문제 정답이 달려있는 교재와 문학 작품을 산다. 책에 나오는 대로 연습문제를 풀고 정답을 찾아본다. 그리고는 그 언어로 된 희곡이나 단편소설을 읽기 시작한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이해한 낱말들을 공책에 적고, 두 번째나 세번째 읽을 때 모르는 단어를 찾아본다. 언어 학습 초기 단계에서 해당 언어의 뉴스 방송을 탐색한다. 방송을 듣다가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그걸 적어놓고, 사전에서 그 단어를 찾아내면 조용히 자축한다. 하루나 이틀 뒤에 단어들을 나만의 단어 사전에 기록한다. 일주일에 한 번씩 방송을 녹음하고, 여러차례 반복해서 듣는다. 선생님을 구하려 다니고, 원어민을 찾으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방법대로 실천하고 끊임없이 공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게 다인가. 정말 그런가.  


고등학교에 들어갔더니 입시 제도가 바꿔 있었다. 이름도 거창한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바로 그것이었는데, 특별히 영어는 듣기 평가가 도입되고 독해의 비중이 어마어마하게 늘었다. 평소 문법에 약했던(정확히는 듣기도, 발음도, 독해 실력도 약하지만) 나로서는 차라리 독해 비중이 늘어난 게 다행이라 싶었다. 그렇게 어수선했던 2학년 여름. 당시의 발언으로 추론하건대 현재의 박사모가 분명한, 하지만 학교와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넘치시고 실력 또한 출중하셨던 모교 출신의 영어 선생님은 여름 방학 보충 교재로 『Letter from Peking』을 선택하셨다. 펄벅이라면, 중학교 때 읽었던대지』아들들』의 펄벅으로만 알았던 나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는데


 


Then his last letter came. It began: “My dear wife, First, before I say what must be said, let me tell you that I love only you. …”







중국 공산화 직전, 외국인이었던 엘리자베스는 중국을 떠나야만 했고, 중국계 혼혈인인 남편은 중국에 남게 된다. 그의 사상을 의심하는 당의 의심과 협박에 못 이겨, 그녀의 남편은 새로운 여자를 집에 들이게 되고, 그녀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 뿐이란 걸 알아줘요. 보름 동안 얇은 평가 문제집 하나를 선정해 문제 풀기 신공 전수를 지상목표로 삼는 보충 수업 업계에서 Letter from Peking은 하나의 혁명이었다. 공부가 적성에 맞는 이 땅의 수많은 고등학교 수험생들 중에 보충 수업 교재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겠지. 공부가 적성에 맞지는 않았지만, 나도 그 사람들 중 하나였다.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뜨겁던 그 해 여름에 나는 보충 학습 교재를 사랑했다.


Letter from Peking이 유일한 이유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 이후로 나의 애정은 더욱 더 가열차졌다. 목표이던지 혹 수단이던지, 절대적 필요 때문이던지 혹은 취미였던지. 나는 그녀를 원했고, 그녀는 곧 내게 올 듯 했다. 두어 번 넘겨본 교수법 책에서는 “meaningful”“survival”이라는 단어가 반복됐다. 내게도 그랬다. 그러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내게 항상meaningful했고, 나는 그녀가 필요했다 for survival. 나는 부끄러움을 무릎쓰고서라도 그녀를 원했고, 그녀는 금방이라도 내게 올 듯 했다. 하지만, 올 듯 올 듯 그녀는 내게 오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힘껏 끌어안았지만 그녀와 입맞추지 못 했다. 우리의 사랑을 연애라 부를 수 있겠지만 어쩌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 뿐. 그녀와 내가 보낸 시간들은 둘만의 추억의 순간이 아니라, 나만의 어설픈 짝사랑의 세월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그녀와의 이별을 준비한다


그녀를 보낸다. 필수 제2외국어 구텐탁의 독일어와 교양수업 6개월 부에노스 디에스의 스페인어, 히라가나, 가타가나에서 미끄러진 일본어 모두 그녀를 향한 내 사랑 아니 집착 때문에 실패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새롭게 내 마음을 사로잡을 그, 그녀가 아베세데의 봉주흐일지, 아비시디의 부온 죠르노일지 모르겠으나, 일단 시작한다.

영원히 내 것이 되지 않는 그녀를 이제야 보낸다.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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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13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에 공부가 미래를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행위로 인식된 탓에 목숨 걸 듯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공부에도 노력이 필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유라고 생각해요.

단발머리 2017-11-15 15:01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본인을 위한 것이겠지만, 가끔 그 공부가 자신을 억압하는 도구가 되기도 하죠.

수이 2017-11-13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프랑스어랑 스페인어랑 중국어랑 동시에 시작하시는 건가요? 두근두근

2017-11-15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psyche 2017-11-14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흠... 저의 경험으로 보면 책읽기로 영어실력이 느는건 아닌듯해요. 읽어서 아는것과 말하고 듣는건 완전 다른거더라구요. 책을 읽어도 모르는 단어 찾아보지 않고 대충 글 문맥상 이런뜻이겠구나 하고 넘어가다보니 단어실력도 하나도 안늘구요. 단어를 글로 보기 때문에 실제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도 사실 모르고 넘어가니 듣기도 안되고, 말하기는 더더욱. 안그래도 읽으면서 단어장이라도 써야 공부가 좀 되는게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군요. 하지만 이게 쉽지 않은게 책을 읽다가 리듬이 깨지니까 안하게 되더라구요. 차라리 미국 드라마를 자막없이 되풀이 해서 보는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단발머리 2017-11-15 15:10   좋아요 0 | URL
네, 읽는 것과 말하고 듣는 게 다르죠. 그 중에 한 가지라도 능숙하면 참 좋을텐데.
그 잘 하는 한가지에 의지하게요 ㅠㅠ
저도 단어를 잘 안 찾아보는 편이라 항상 그 실력(얼마되지도 않는 실력)이 제자리 걸음입니다.
미국 드라마는... 자막없이 되풀이해 보기는 했는데, 외울 정도로 되풀이해서 봐야겠죠?
그런거 보면, 제가 실력이 안 늘었던 이유는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시간 낼 열정이 없어서 아닐까요? ㅎㅎㅎㅎㅎ

2017-11-15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17 1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