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에서 중국사를 연구하시는 조영헌 교수의 연구서를 읽었습니다. 서문에서 저자께서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기반으로 책을 집필하셨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이책의 자매편과 같은 좀더 대중적인 책이 얼마전 나왔는데, 지금 소개하는 책과 어떤면에서 다른지 아래의 저자의 최근 저작도 시간이 되면 읽고 글을 올릴 생각입니다.

조영헌, 대운하 시대 1415-1784 ( 민음사,2021)

아무튼 이책의 물리적인 외관을 좀더 정리하면 본문이 423쪽으로 통상의 300쪽 내외의 연구서보다 분량이 조금 됩니다. 그리고 각주와 참고문헌 서지목록이 약 200여쪽을 차지합니다. 일단 책의 체제나 글의 밀도 면에서 깊이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처럼 특정분야에 깊이있는 글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읽기에 부담이 없지만 통사위주로 역사서를 읽어오신 분들에게는 책내용이 어려울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책 제목이 명시해주듯, 이책은 중국의 근세, 즉 명청시대 대운하와 두 왕조의 조운정책(漕運政策)과 그 참가자들인 상인계층 중 특히 양자강과 황하(黃河)와 회하(淮河)가 만나는 지역인 회양지역에서 활동하던 현재의 안후이성(安徽省)의 휘주(徽州)출신 상인들의 사회경제적 역할에 대해 연구한 연구서입니다.

따라서 책은 중국의 명청시대 사회경제사이자 명과 청이 주면의 국가와 각 지방으로부터 조공(朝貢)과 세금을 납부하는데 꼭 필요한 대륙운송로인 대운하의 역할에 대한 물류( logistics)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전근대 시대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황제에게 진상되는 각 특산품이 현물로 조달되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곡물과 소금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회안과 양주에 거점을 둔 휘주상인들은 특히 소금거래를 장악했던 이들로 명 청 두 왕조를 대신해 소금을 운반하는 사업을 해왔습니다.

이 책이 커버하는 15-18세기는 서양에서는 ‘대항해 시대’를 알려진 시기와 겹치는데, 중국의 경우 명초기 영락제(永樂帝)가 수도를 남경(南京)에서 북경(北京)으로 천도한 이후 수당 시대 이미 건설해놓은 대운하를 이용하기 위하여 그리고 강남지역의 풍부한 물산을 수도 북경으로 운송하기 위해 대운하를 준설하고 확장했습니다. 그 결과 이 운하는 강남의 항주(杭州)에서 시작하여 북경까지 중국을 남북으로 관통하며, 중간에 중국의 큰 강인 양자강과 황하를 가로질러 건너갑니다.

조세를 징수하기 위해 거대한 물길을 뚫은거죠.

명나라 중기때인 15세기, 명은 동쪽해안에 나타난 왜구로 인해 해상교역을 원활히 할 수 없었고 이에 대한 영향으로 항행을 금지하는 해금(海禁)정책을 펼쳐 원나라 당시만 해도 바다를 통해 각종 세곡을 받았던 해운정책을 폐기하고 모든 조세물품은 전적으로 대운하를 통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바닷길을 통해 강남의 세곡과 물산들이 이동하지 못하게 되자 대운하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수 밖에 없고 왕조의 관려들이나 대운하의 수운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상인들 역시 대운하의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명과 청 조정은 특히 양주와 회안 지역에서 3가지 중요한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것은 조운( 즉 소금을 북경까지 운송하는 것), 하공( 운하 관리, 운하의 범람을 대비해 운하 준성과 제방을 쌓는 것) 그리고 염정( 국가의 전매품인 소금에 대한 통제)입니다.

북경이 북쪽에 치우쳐 대운하를 통해 올라온 곡식과 소금 등 먹거리에 대한 수급은 황제를 비롯한 지배층의 지대한 관심을 끄는 문제였고 이는 청나라 시기 강희제(康熙帝)와 건륭제(乾隆帝) 두 황제가 친히 대운하를 타고 남쪽에 내려오는 남순(南巡)을 행했다는 사실로 그 중요성이 입증됩니다. 두 청의 황제는 재위기간 중 각각 6차례나 대운하를 타고 강남지역 시찰을 했고, 특히 대운하의 중간에 해당하고 수해에 취약한 지역인 회양지역의 치수문제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농공상이 분명하던 근세시기 회안과 양주에 자리잡은 휘주상인들이 염업으로 사업에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지역의 공공사업에 참여하고 운하와 관련된 고위관리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문사계층인 신사(紳士)층과 거의 동등한 사회적 위상을 가진 건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휘주출신 상인집안 중에서 과거 신사로서 문인계급이었던 자손이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자 객지로 나가 장사를 하는 건 조선시대 사대부 양반들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중국적 특징으로 보입니다.

조선과 마찬가지로 유교사회인 명나라였지만 조선처럼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추종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책에서 잠깐 언급이 나오지만 조선에서 금기시된 양명학(陽明學)의 영향을 받은 신사와 상인계층이 있어서 문사계층이 상업활동을 그래도 할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최근에 국제정치학자인 미국 시카고대학의 존 미어샤이머(John Mearsheimer)교수의 중국에 대한 언급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는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두 전쟁에 직면해 있으면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는 실수를 했다고 주장합니다.

미국의 전략적 우위는 아시아에 있고 미국의 가장 큰 라이벌은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이기 때문에 아시아에 집중해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로 유명하신 이 분이 중국의 중요성을 이토록 강조하셨는데 최근의 한국의 중국 경시풍조는 임계점을 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국익을 생각하면 중국을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를 그만두어야 하고 중국에 관심을 더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굳이 병법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 중 하나인 중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게 당연하고 국가전략을 짜는 고위관료라면 중국을 무시하는 행위 그 자체가 국익훼손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중국을 경제에서 배제하고자 하지만 이건 미국의 극우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망상이라고 생각합니다. 불가능한 일이죠. 그 레토릭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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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로 가는 길 - 선진국 한국의 다음은 약속의 땅인가
조귀동 지음 / 생각의힘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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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을 공부하신 조귀동 작가의 책을 완독했습니다.
책의 주제는 효능감을 잃어버린 현재의 한국정치에 대한 정치경제적 분석이지만, 결론은 ‘중도’혹은 ‘무당파층’이라고 불리는 침묵하는 다수의 유권자들에게 한국정치가 어떻게 효능감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 이중노동시장으로 인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전혀 대변하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저소득층을 어떻게 정치가 대변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의제를 던지는 것입니다.

이책의 결론은 구체적 방법보다 한국정치가 이루어야 할 당위적 방향설정을 하는데 그친 건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오히려 한국사회를 위한 전략적 전술적 의사결정을 하는 정치인들이 팬덤정치, 정체성 정치 또는 포퓰리즘 정치에 매몰되어 산업화와 고도성장기 이후 그리고 계층이동서다리가 끊어져 버린 체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체제변혁을 추진해 나가지 못하고 있는 한국사회의 상황을 경제 사회 보건 교육 등 각종 자료와 연구를 인용해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즉, 한국이 왜 지금처럼 초저출산국이 되고 경제의 성장동력마저 꺼질 정도의 상황이 되었는지에 대한 경제상황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경제학에서 수학적 방법론이 도입된 이후 대중과 전문가들의 뇌리에 박힌 편견 중 하나는 경제학이 수리적 학문이라는 점인데, 사실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 이래 정치경제학( political economics)이었고, 본질은 사회의 구성원들이 어떻게 먹고 살수 있는 방법을 찿는가였고, 먹고사는 문제는 사회를 이끌어가는 위정자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정치와 경제는 동전의 양면같은 것이고 정치가들은 결국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제문제에 대한 결정을 하기 때문에 정치과정에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점입니다.


경제문제에 있어 한국의 엘리트 관료들과 정치인들이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이룬 고도성장기인 산업화시기이후 선진국에 진입한 한국경제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하고 과거의 틀에 얽매어 있는 상태가 큰 문제입니다.

선진국 경제에 걸맞는 새로운 경제체제를 빨리 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있으면, 만성적 재정부족에 시달렸던 개발도상국 당시의 관행인 ‘균형재정’의 집착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정부가 역할을 못해 민간이 맡았던 역할을 선진국이 된 다음에도 그대로 유지하는 건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특히 교육은 무상교육만으로는 부족하고 전적으로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발도상국 시기 정부가 돈이 없어 민간이 하던 일을 정부가 회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육이 그래야 경제논리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많은 국가들에서 사교육이 없는 이유는 그들의 교육이 공교육 중심이고 연구중심 대학이 사실상 모두 국립이기 때문입니다.

또 현재 한국에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하자 부실한 사립대학들이 문을 닫는 이유도 국가가 해야 할 교육을 민간에 맡겨 놓았다가 저출산과 저성장기를 맞아 경쟁력 없는 대학들이 퇴출되기 때문입니다. 교육을 경제논리에 맡겨놓았다가 대학이 망하는겁니다.

비싼 사립학교나 사교육이 활개를 차는 건 기본적으로 교육부를 비롯한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가 학원에 교육을 외주주고 있는 게 현실이고 학부모들은 높은 교육비때문에 교육이외의 다른 쪽으로 소비를 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른 겁니다.

치솟는 교육비와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전망 그리고 비싼 주거비가 한국의 기록적 초저출산의 원인이고 저성장의 주요 요인이기 때문이죠.

정치는 결국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하는 행위인데 포퓰리즘에 매몰되어 적군과 아군으로 나뉘어 정쟁울 일삼는 현재의 한국정치는 시급히 기능을 복원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특정대학의 고시출신 법조인들로만 채워지는 인적구성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할 수가 없습니다. 수사만 할줄 아는 검사출신 정치인들이 정적을 수사만 하는 모습을 봐오지 않았나요?

검사들이 수사를 잘해서 전문가라는 윤대통령의 언급은 그 자체로 코미디로 각자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길러온 전문가들을 무시하는 오만하기 짝이없는 발언입니다.

집권 2년차에 다다른 이 검사정권은 ‘무능’이 키워드로 호명되는 정부로 남았습니다. 유권자로서 고시가 정말 고위공무원을 뽑는데 유효한 수단인지 의심스럽고 오히려 기득권 ’카르텔‘로 작동한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민간에서라면 이미 자리보전이 어려울 정도의 실수를 저지르고도 책임을 지지 않는 후안무치는 한국의 관료제가 최소한의 책임과 의무도 지지않을만큼 비정상적인 상태인 걸 웅변한다고 봅니다.

농민이나 비정규직 노동자나 청년층을 대변하는 다양한 국민의 대리인들이 현재 국회에는 없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소위 586 정치인들이 30년 넘게 자리를 차지하고 기득권의 일부가 되었고, 국힘당은 검찰 경찰 고위관료출신과 지방의 토호세력둘 그리고 극우 유튜버로 대표되는 이들로 가득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정치인을 국회로 보내지 못하는 정치현실은 그 자체로 한국의 정치지형이 비정상적이라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국회의원 될 사람들의 직업군이 법으로 정해진 것도 아닌데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하기에는 국회가 너무 천편일률적입니다.

특히 검사를 비롯한 엘리트 관료들의 무능과 도를 넘은 책임회피를 지속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현재는 국가를 운영하는데 더 다양한 국민들이 참여해야 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자연계에서도 먹고 살기 힘들면 동물들이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금 20-30대 청년들이 출산을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식이 자신들보다 못한 환경에서 사는 걸 보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출산 그 자체만 봐도 한국의 위정자들과 정치가들이 한국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왔다는 명백한 지표라고 생각합니다.

읽으면서 매우 괴롭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생각거리는 충분히 던져주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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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출판되어 화제가 되었던 책입니다.

초연결사회 (hyper connected society)애 진입하면서 각 개개인이 소셜미디어로 연결되고 이는 전통적인 언론미디어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습니다.

흔히 도발자 또는 선동가로 번역될 수 있는 영어의 provocateur가 이 책의 주제이며, 이들이 변화된 공론장( 公論場)을 오염시키는 주역이라는 주장이 이 책의 핵심입니다.

현재 변화된 한국의 언론지형에서 보수언론의 한편에 ‘받아쓰기’와 ‘인용’이 하는 일의 전부인 출세지향적 ‘기레기‘집단이 존재한다면, 그 정보의 소스 (source)로 존재하는 극우 유튜버들이나 유사언론인 등 막말과 도발을 직업으로 삼는 집단을 여기서 말하는 프로버커터라고 보면 됩니다.

프로보커터들은 ‘주목(attention)’이 돈이 되는 초연결사회에서 주목을 받기위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혐오발언과 유언비어 그리고 근거없는 허무맹랑한 말과 막말 모욕스런 언사를 거리낌없이 배설합니다.

책이 비록 허무맹랑한 도발을 일삼고 조회수 장사에 혈안이 된 저급한 인터넷 시대 담론을 다루고 있지만 소수의 저급한 발언과 막말이 일상으로 침투하고 정치판을 진영논리와 대결구조로 몰고가는 상황은 결코 가볍게 볼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문제는 허무맹랑하고 어처구니조차 없는 극우 프로보커터의 발언을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이고 이를 맹목적으로 따르면서 사회구성원들끼라 이해보다는 대결, 그리고 공감보다는 혐오를 하게 되고, 소수자들이나 페미니스트들이 무방비 상태로 폭력에 노출되는 극심한 부작용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이런 소수 프로보커터들의 몰상식한 발언과 향태는 사회가 인터넷으로 연결되기 전까지는 문제가 되지 않았던 사안이지만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에 끝없이 노출되는 지금, 정보의 신뢰성(reliability)을 판단하지 못하는 많은 대중들에게 근거없는 믿음과 잘못된 오해를 끊임없이 일으키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경유 정치권, 특히 소위 보수정치권이 보수언론의 기레기 집단과의 협업하의 공론장의 여론을 교묘하게 조작하며 진실을 은폐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검찰에 출입하던 법조기자 출신이 공영방송에 낙하산으로 사장으로 임명되어 기자본연의 업무인 ’정부비판‘을 한 것을 보고 프로그램을 법적 절차도 거치지 않고, 구성원의 의사도 묻지 않은체 자르는 무도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책애도 나오지만 조중동을 비롯한 소위 주유보수언론들은 ’화장실 낙서‘에 불과한 정보가치가 없는 프로보커터들의 발언을 여과없이 인용해서 소위 민주진영 인사들을 깎아내리고 폄하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평소 극우매체들이 쏟아내는 허무맹랑한 헛소리 내지 가짜뉴스, 그리고 상대의 존재를 무시하는 혐오발언들을 보면서 나라가 왜 이모양이 되었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혐오‘의 시대에 휘둘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결국 자기자신이 올바른 판단력을 세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몰상식이 난무하는 시대에 정신차리고 살려면 끊임없이 쏟아지는 정보가 제대로 된것인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방법말고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진부하지만 책을 읽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eBook이 아니고 종이책말입니다.

억만장자인 실리콘밸리의 CEO들이 왜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만든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멀리하게 하는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이미 알려져 있듯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운명의 이기가 자식들에게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 아니까 사용제한을 두는 겁니다.


30여년 전만해도 한자를 익히기 위해 그리고 글의 논리를 익히기 위해 종이신문의 사설을 읽은 적도 있었습니다.

적어도 그 당시 기자들은 자신이 쓰는 글이 정부관료들이 불편하더라도 그냥 실어내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기자들의 상당수가 대통령실 홍보수석을 바라보고 있고 정부가 주는 보도자료 받아쓰기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요구조건( requirement)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런 언론의 타락이 사실상 이명박 정부시절 ’종편‘의 출범과 함께 시작된 것 역시 우연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 계급적 이익을 위해 언론시장을 재편해서 공론장을 사실상 악화시키고 제기능을 못하게 만든것이죠.

다시 말하지만 조회수장사를 하기 위해 막말과 혐오표현을 일삼은 극우 프로보커터들과 정부와 기득권의 입장과 주장을 받아쓰기만 하는 기레기 집단들이 언론을 자처하면 어쩔 수 없이 사회를 구성하는 일반 시민들은 ’각자도생‘을 위해 스스로의 판단력을 강화하는 방법이외에는 길이 없습니다.

후진적이고 퇴행적인 정치문화와 언론환경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스스로 대면으로 여러 사람을 만나 의견을 들어보고 책을 비롯한 각종 매체에서 읽거나 들은 혹은 시청한 정보들을 되새기면서 자신의 생각을 벼르고 가다듬는 방법말고 다른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와 관련하여 읽으려했으나 아직 읽지 못한 책을 하나 소개합니다.

정치공론장과 ’혐오의 자유‘에 대한 부제가 인상적입니다.

김학준 지음, 보통 일베들의 시대 (오월의 봄,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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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선임기자이자 북한학자인 저자가 1990년이후 2018년까지의 남북관계 30여년을 조망한 책입니다.

이책에서 남북관계를 분석하는 프레임(Frame)으로 비대칭 탈냉전 ( 非對稱 脫冷戰)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이 틀로서 지난 30여년간의 남북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비대칭 탈냉전이란 1989년 베를린장벽이 붕괴하고 이후 소련이 무너져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간의 오랜 대립인 냉전(Cold War)이 종식된 이후 한국은 이전까지 북한의 혈맹이었던 소련 중국과 수교를 맺어 국교를 정상화한 반면, 북한은 냉전당시 적대국이었던 일본 미국과 국교를 정상화하지 못한 사실을 말합니다.

한국이 경제적 정치적우위를 확실하게 점한 반면 북한은 미일과 국교정상화에 실패한 체 국가의 존립 자체가 위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국가체제위기는 이후 북한의 핵개발의 주요 동인(momentum)이 되었고, 냉전이후 북한의 대화를 이어가려던 클린턴 행정부이후 2000년대 들어 아들 부시가 정권을 잡으면서 더욱 위기국면으로 가게 됩니다.

부시정권 당시 네오콘으로 불리는 골수 자유주의자들은 군산복합체를 배경으로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고 ( 9.11테러의 배후를 이라크라고 믿고) 북한을 악의 축( Axis of Evil)로 부르며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을 펼칩니다.

한국에서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지고 북한과의 관계정상화에 공을 들이고 남북경협으로 개성공단사업과 금강산관광사업을 벌였으나 자유시장주의자라고 자칭하는 극우정권인 이명박 박근혜정부는 경제적 실익도 챙기지 못한 체 대북강경책으로 일관하고 북한 적대시정책을 ‘아무이유도 없이’펼쳐 한국의 기업들이 극심한 손해를 입은체 개성공단에서 철수해야 했고, 10여년간 이어져온 금강산 관광사업에서도 손을 떼었습니다.

경제적인 관건에서 봤을 때 이명박 박근혜 두 정부의 대북경협철수는 매우 불합리한 결정입니다.

보수를 참칭하는 정치인들 중에 남북경협에서 생긴 이익이 북한의 핵개발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이는 물증이 전혀 없는 그들의 ‘믿음’에 불과합니다.

국제원자력기구의 북한의 핵개발 능력 검증처럼 개성공단의 자금에 대한 정밀 ‘감사’가 이루어져야 확인할 수 있는 사안입니다.

믿음을 위해 실리를 포기하는 어처구니가 없는 결정을 시장자유주의자를 자처하는 보수정부에서 한 겁니다. 최소한의 어떤 합리성도 보이지 않은 결정입니다.

이후 북한은 무조건적인 핵폐기를 압박하는 미국의 네오콘을 위시한 서구자유주의자들에 맞서 핵개발을 지속하다가 전임 정부인 문재인 정부에서 한반도에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검찰정권인 현 윤석열 정부에서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부인하면서 남북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고, 한국의 중요한 경제 파트너인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면서 지난 30년간 개척한 거대시장을 스스로 포기하려고 하는 몰상식한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외교에 있어서 극단적으로 무능 (extremely incapable)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외교를 공부하지 않은 저같은 사람도 국익( national interest)이 외교의 목적이라는 걸 아는데 도대체 무슨 배짱으로 30년간 공들여온 중국 러시아 시장을 걷어차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옹호하지 않지만 전임 정부가 북한을 잘관리해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없애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애썼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합니다.

도대체 감정적으로 북한과 전쟁하자고 하는 이들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가자 전쟁을 눈으로 보고서도 그런 어처구니가 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은 그 자체로 국가의 존망을 위태롭게 하는 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책을 보면서 보수적인 군인 출신이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임동원씨의 회고록과 2차 북한 핵위기 당시 북한을 비롯한 동북아 6개국 ( 남 북 미 일 중 러)와 6자회담을 이끈 송민순 전 외교수석의 회고록을 읽어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동원, 피스메이커 (창비,2015)
송민순, 빙하는 움직인다 (창비,2016)

그리고 미국쪽에서 북한을 오래 관찰한 셀리그 해리슨(Selig S. Harrison)의 책도 봐야할 것 같습니다.

Selig S. Harrison, Korean Endgame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02)

북한은 남한 입장에서 보면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잘 알 수 없는 이웃같은 존재입니다. 더구나 한국전쟁 이전 저희 부모세대들은 북한지역에서 일상을 영위하고 살던 지역입니다.

70여년이 지나도록 한국전쟁의 ’망령‘ 에 붙들려서 북한을 계속 적대시하면 한국이 얻을 이득이 뭘까요?

미국에서 북한을 어떻게 인식할까 아는게 한국의 대북전략을 세우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어도 한국이 국익이 다른 미국의 대북전략을 따라가야만 하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이 자신들 입장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고려한 주장을 하면 한국은 한국의 국익에 맞는 주장을 하면 됩니다. 주장은 일치할 수도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북한과 대화가 싫다면 소위 보수진영에서 제일먼저 할일은 한국에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회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극열한 주장을 해도 말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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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똥장수 - 어느 중국인 노동자의 일상과 혁명
신규환 지음 / 푸른역사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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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들이 이미 지적하셨듯이 내용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본문 270여쪽 가량인데 같은내용이 지속적으로 반복됩니다. 도시사와 사회사쪽에서 흥미있는 20세기초 북경의 하층민에 대한 연구가 될 수 있는데, 내용이 부실해 좋은 평가를 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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