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읽은 책은 ‘世界一周の誕生 グロ―バリズムの起源 (文藝春秋社 文春新書,2003)’입니다.

부제가 ‘글로벌리즘의 기원’으로 현재 전세계적인 항로교통망과 전신망(해저 케이블)이 언제부터 기원했는지 그 역사적 연원을 추적한 책입니다.

글로벌리즘이 국가간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물품과 사람의 이동이 확대되는 현상이라고 한다면 국제무역의 활성화와 우편통신망의 발달을 떠올릴 수 있는데, 이 책은 이런 국제교역로의 확장과 통신망의 물질적 확장의 시각에서 역사를 조망합니다.

19세기 중엽이후 증기선 항로가 개척되고 영국 리버풀에서 미국 뉴욕을 잇는 대서양 항로의 개설되었고, 파나마 운하 개통으로 유럽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항로는 크게 단축되었습니다. 파나마운하 개통을 계기로 미국은 본격적으로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습니다.
반면 대서양쪽의 영국은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개통을 통해 식민지인 인도를 향한 접근성을 강화했고 인도양과 동양항로 개척을 통해 동양으로 동진을 계속합니다.

영국이 19세시 중엽 러시아 크리미아 반도애서 러시아와 부딪친 크리미아전쟁 (Crimean War ,1853-1856)도 러시아의 남진정책과 영국의 동진정책으로 일어난 전쟁이고, 구한말 한반도에서 일어난 영국의 거문도 점령(1885-1887)도 러시아의 남진을 막기위해 영국이 조선의 거문도를 불법적으로 점령했던 사건입니다.

영국이야기를 계속하는 이유는 이책의 상당부분이 영국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는 것과 무관치 않습니다.
증기기관이 처음 만들어진 지역이 영국이고 석탄을 채굴해야하고 보관하는 광산업이 발달할 수 없었던 이유도 역시 기계의 동력원이 석탄이라는 사실과 무관치 않습니다. 따라서 중기기관을 이용한 증기선도 처음 상용화된 곳이 영국이고 이런 증기선 우편선과 전함을 보유한 영국은 19세기 최강의 해군력 (naval power)을 보유한 국가였습니다.

솔직히 증기선 시대의 교통과 통신에 관한 책을 본적이 없는데 매우 시각이 신선했습니다.

또한 이 시기는 미국의 서진과 함께 미국 대륙횡단철도가 건설되었고 그 이전 영국에서는 맨체스터와 리버플 간의 철도개통을 계기로 철도망이 발달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자동차가 나오기 전이지만 철도와 증기선 운송은 셰계의 거리를 축소시켜 전 지구를 하나의 생활권으로 만든 것은 분명합니다.

증기선은 처음에 범선을 대체하기 시작하며 나타나서 주로 국제우편을 위해서 이용됩니다.

영국의 경우 처음에 운수성이 우편업무를 관장하다 이후 전쟁성으로 우편업무가 넘어갑니다. 이유는 평상시 우편업무에 임하던 우편선이 전쟁시 전함으로 전용되어야 하기 때문에 영국 전쟁성으로 우편업무가 넘어간 이후 우편선의 무장이 허용되고 함포가 설치되기 시작됩니다.

이 책이 다루는 19세기 중엽부터 말엽까지는 일본의 명치유신이 이루어진 시기이며 그 이전 미국의 페리제독이 흑선을 타고 일본에 개항요구를 한 시기입니다.

세계의 정세는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를 할양받고, 프랑스와 전쟁이후 루이지에나를 할양받고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하는 등 점차 미시시피강 서안으로 서진을 계속해 영국에게 종속적이던 대서양 시대를 넘어 태평양으로 진출해 새로운 해양 세력으로 부상하게 됩니다. 19세기에 영토확장과 함께 산업혁명을 진행한 미국은 태평양과 대서양에 접한 양안국가로 힘을 기르게 됩니다.

이 책은 주로 영국의 동양 진출을 수에즈 운하 개통과 함께 아덴만의 석탄수급기지가 전략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수에즈 운하를 통해 인도양으로 진출한 영국은 아덴에서 석탄을 수급받은 후 인도 봄베이로 향하고 이후 말라카의 싱가포르로 진출하고 마카오와 홍콩을 자나 일본의 나가사키에 진출하고 세토내해를 거쳐 요코하마까지 이릅니다.

19세기 이미 영국 리버플애서 요코하마에 이하는 정기 증기선 항로가 개설되었고 미국에서는 뉴욕에서 파나마 운하를 지나 샌프란시스코와 호놀룰루를 경유해 요코하마에 이르는 증기선 항로 역시 개설되었습니다.

당시 중국은 개항된 항구가 상해와 홍콩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코로나 발발로 현재는 빛을 잃었지만 이 책이 쓰여진 2003년만해도 이책이 다르는 ‘글로벌리즘의 기원’이 당시의 상황에 비추어 시의적절한 주제였습니다.
이 책의 집필 당시는 2003년으로 국경이 없는 글로벌한 세계가 당연시되는 세계였고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이라 자유경제시장체제에 대해 누구도 의심을 품지 않던 때였습니다. 1970년대 말 이후 세계를 장악했던 신자유주의가 아직 힘이 있던 때라 글로벌리즘의 기원을 추적해 보는 건 해봄직한 작업이었음은 틀림없습니다.

당시 지구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외국과의 교류는 피할 수 없었고 이 책은 현재 글로벌리즘의 기원을 1850년대 증기선의 발달과 함께 촉발된 대서양횡단항로와 태평양횡단항로 개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해양의 역사 특히 19세기 증기선의 발달과정을 다룬 한국어책을 거의 보지 못했는데 갈증이 일부 플렸네요.
기계적 물질문명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현대 자본주의의 시작인 산업혁명과 증기기관의 발달을 다시 한번 고찰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웃 일본만해도 해양의 역사나 어업의 역사 그리고 해군사 등에 대한 연구가 활발한 것 같은데 한국은 삼면이 바다라면서도 이 부문에 대한 연구가 매우 미진한 것 같습니다.

해양사쪽에서 생각나는 국내학자는 주강현 선생 말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무튼 이 분야의 더 많은 국내저작을 보실 원합니다.

끝으로 이 책의 체제를 말씀드립니다.

문춘신서라는 일본 문예춘추사애서 나온문고본 입니다.
겨우 200여쪽에 달하지만 일본어로 쓰여진 영국과 미국이야기는 읽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일본화된 영어를 알아듣기는 쉬운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일본저서에 비해 영어문헌을 많이 참조했는데도 쉽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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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항아리라는 출판사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출판사입니다.

이전에 읽었던 김원중 교수님 번역의 ‘ 논어(2013)’도 이 출판사에서 나왔고, 태평양 군도에서 바라 본 근대를 조망한 ‘군도의 역사사회학(2017)’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습니다.

책에서 이은혜 편집장이 언급했다시피 글항아리의 약 50%정도가 번역서이고 상당 수의 번역서가 유럽이나 미국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나온 서적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서를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직업이고, 책 한권 기획하기 위해 편집자가 스스로 준비해야 하고 독서에 투자해야 하는 양이 상당해 보입니다.

하지만 꼭 내야 하는 책과 책 판매 사이에서 갈등해야 하는 측면이 있고, 천권 정도밖에 팔 수 없지만 500-600쪽을 넘어가는 두꺼운 책을 출간하는 건 출판사 편집자가 아니라면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더구나 번역을 위해 인용된 서적들을 모두 찿아보고 일본이나 중국에서 번역된 서양 서적의 경우 교차검증도 해야하는 일이니 만만한 작업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이 일은 외서기획자라는 전문가와 함께 하는 일이지만 노력에 비해 알아주는 일이 아닌 건 분명합니다.

한국에서 신간들이 너무 빨리 절판(絕版)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현재 출판계에서 신간의 수명을 5년으로 보고 있고 출판 후 팔리지 않는 책들은 더 빨리 절판된다고 하니 책들이 빨리 사라지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중적 논픽션이 이러니 학술서나 연구서는 수명이 더 짧겠죠.

사실 1990년대 말에 나온 책들도 신간을 구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역사서나 경제서도 교과서를 제외하고 구하기가 매우 어려워 부득불 헌책방에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최근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고 있는 고 손정목 교수님의 일제시대 도시발달사 같은 책들은 길어봐야 40년 전에 출판된 책이지만 현재 헌책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도시사를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책이지만 절판이후 희귀본 취급을 받습니다.


영미권과 비교가 불가피한데, 아마존에서 보면 1960년대 출판된 책들이 아직도 신간으로(물론 복간이 된 책이지만) 출판되어 있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두껍고 각주 잔뜩 달린 책들이 인기가 있을 수 없지만 이런 책과 연구가 없으면 어떤 대중적 논픽션도 생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안타까운 면이 큽니다.

영미권의 학자들이 쓴 책들이 100쪽 이상의 참고문헌과 색인 그리고 후주를 포함하고 본문만 최소 400쪽에서 700쪽에 이르는 경우를 봅니다. 특히 역사책의 경우 분야를 막론하고 두께가 상당합니다. 역사적 인물의 평전의 경우 2-3권 분량의 시리즈인 경우도 흔하고 1000쪽을 넘는 경우도 흔합니다. 놀라운 것은 이런 책들이 대학출판부 뿐만 아니라 대형상업출판사에서도 나옵니다.
솔직히 장사가 될까 싶지만 꾸준히 이런 책들이 나오는 걸 보면 놀랍습니다.
요새 인공지능 이야기하고 머신러닝 이야기 하지만 이건 지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없다면 무용지물입니다
인공지능이 학습할 컨텐츠가 없다면 기술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그런 의미에서 논픽션 전문 출판이 수익성을 떠나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최대의 영어사전을 출판하는 옥스퍼드대학이 세계최대의 영어사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있는 건 그래서 우연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전을 편찬할 수 있는 나라가 몇 나라 밖에 없는 것도 모든 것이 전자화되고 데이터베이스화된 현재의 어두운 면입니다.

책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관심이 있을 책입니다.
독자가 독서를 지속하다 저자가 된다는 말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습니다.

책의 출판에 편집장의 개인적 취향과 독서 편력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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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택리지 - 서울은 어떻게 진화했는가 - 궤적을 찾아서 서울 택리지 1
노주석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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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여쪽 내외의 작은 책으로 신문기자인 저자가 서울의 공간(空間) 변천의 추이를 역사적, 인문지리적 관점에서 쓴 책입니다.

총 21개의 장으로 구성되었고, 조선이래 구한말,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개발연대를 지나 최근까지 그 시기가 상당히 넓습니다.

신문독자를 상대로 하다보니 각 장이 모두 짧고 압축적인 글입니다.

서울의 근현대 도시사(都市史)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입니다. 다만 아쉽게도 2022년 현재 책이 절판되어 새책은 구할 수가 없습니다.

도시에 접근하는 방법은 건축이나 도시계획같은 큰 틀의 ‘공학적 접근’도 가능하지만 이책에서 접근하는 것처럼 지리적 접근방식도 가능합니다.

서울이 언제부터 기원했는가를 따져봐야 하니 한국의 역사를 둘러볼 수 밖에 없고 중세와 근세시기인 고려말과 조선 초에 한 나라의 도성(都城)을 정하는 일이었으므로 풍수의 영향을 간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조선 초기 정도전을 비롯한 신흥 유림세력들이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한양으로 천도하면서 북악( 北岳)을 주산(主山)으로 하고 법궁인 경복궁(景福宮)을 세웠으나 풍수론의 입장과 전란( 임진왜란/ 병자호란)에 따라 법궁이 경복궁에서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으로 옮겨지고, 일제 강점이후 경복궁과 창덕궁, 창경궁이 유원지로 바뀌는 수치를 당합니다.
제가 아주 어렸을 때 창경원 동물원과 유원지에 놀러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는 그 공원을 일제가 만들었다는 걸 전혀 몰랐지만 말입니다.

이후 경복궁에서 명성황후 민씨가 일본 자객들에게 살해 된후 고종은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대피에 정사를 보고 대한제국을 선포합니다.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법궁은 경운궁(慶運宮)으로 현재는 덕수궁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조선의 역사전개에 따라 왕이 정사를 보는 궁궐의
위치도 달라졌고 이에 따라 초기 조선의 중심이었던 육조대로(六曹大路)는 명칭이 세종로로 바뀌고 육조건물도 생겼다 사라지며 관청건물들이 들어섰고일제가 만들어놓은 일본인 거주지역인 남촌과 용산지역을 연결하고 남산 아래의 일본인 거주지역과 직접 연결하기 위해 지은 태평로(太平路)를 건설해 조선시대에 처음 만들어졌던 사대문 안의 공간구조가 변형되었습니다.

일제는 북악산 아래 조선총독부와 경성부청 ( 서울시청)애서 남대문을 지나 남산 아래 경성신사까지 이어지는 자신들의 축선(軸線)을 식민도시인 경성에 구축하려 핬다고 설명합니다.

이책의 다른 한 시기인 개발연대의 강남 개발과 경부고속도로 개통 그리고 한강개발계획, 여의도 개발 등은 더 자세하게 해당 주제를 설명한 책을 보시면 됩니다.

한마디로 군인들이 불도저처럼 무분별하게 개발을 한 것이 사실이고 박정희 정권이 북한과의 체제 경쟁을 해서 무리하게 계획을 집행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습니다.

이 계획을 집행한 인물들이 모두 일제에 의해 교육을 받았거나 만주국애서 일했던 경험이 있었던 분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집행했던 경제개발계획에 미군정( 美軍政, USAMGIK, United States Army Military Government in Korea)과 일제시대 관료로 일했던 당시 엘리트들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다는 건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서구에서 200여년 걸릴 사업을 40여년 만에 끝내니 부작용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정확한 진단일 겁니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이런 시각은 독재자가 총탄에 쓰러진 뒤 40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한국의
엘리트들의 의식 속에 살아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끝으로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은 조선시대 최고의 지리서인 택리지(擇里志)의 영향을 받은 책입니다.
이 책이 조선 최고의 지리서이자 풍수학의 명저라고 저자는 소개하고 있습니다. 택리지의 저자인 이중환(李重煥)이 살기 좋은 곳을 찿기 위해 이 대작을 썼다고 하니 장소에 대한 고찰로서 어쩌면 이 책은 이중환의 택리지에 저자가 경의를 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서지목록은 상당히 인상적인데 서울역사박물관과 서울시립대 서울학 연구소 등에서 나온 저작들이 많습니다. 두 기관은 서울의 경관과 공간 그리고 생활사 등 연구에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절판이 되고 구하기 어려운 책들이라서 아쉽습니다.
정부간행물의 경우 너무 절판시기기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 책들은 서울의 공간에 관심이 있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책들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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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의 감각 - 파리 서울 두 도시 이야기
이나라.티에리 베제쿠르 지음, 류은소라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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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공부한 여성 영화학자와 그의 프랑스인 남편이 서울과 파리라는 두 도시에 대해 느끼고 생각한 점을 짧은 에세이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300여쪽에 달하는 책으로 분석보다는 ‘장소(place)’에 대한 감각과 인상 그리고 저자들의 생각이 주로 담긴 글들의 모음입니다.

전반부는 프랑스인인 남편 티에리 배제쿠르씨가 썼고, 후반부는 아내인 이나라씨가 썼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주간지 한겨레21에 연재한 글이라고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이 서울과 한국의 도시에 흩어진 각종 근대건축’유산(legacy)’에 대한 미시적 관찰기 혹은 분석기 그리고 왜 그 건물이 세워졌을까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하던 책이라면, 이 책은 서울과 파리에서 접하는 일상적인 도시의 환경과 장소에 대한 두 저자의 느낌입니다.

프랑스인인 남편은 파리에서는 경험하지 못하는 한국 ‘카페’의 편리함에 대한 소감을 적었고, 빠르게 진행되는 웨딩홀의 놀라운 결혼식 진행속도와 서구의 영향을 받은 괴이한 건물형태에 대해 썼습니다.

관악산 등산기에서는 파리에서는 볼 수 없는 큰 바위산이 서울 근처에 있고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등산문화에 대해 외국인의 시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매일 철거되고 새로 올라가는 서울을 경관에 따라 마음대로 건물을 짓거나 철거될 수 없는 파리와 비교해 ‘재조립되는’도시로 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봐서 너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유럽에서 온 이방인의 눈에는 너무도 달라 보였던 겁니다.

후반부 이나라씨의 글은 특정한 지역이나 건물과는 자체보다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서 장소를 다룹니다.

예를 들어 파리에 살고 있는 거주자로서 한국사람들이 ‘파리(Paris)’라는 도시에 대한 판타지를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파리여행에 대한 이런 판타지가 만들어진 판타지 공간, 즉 테마파크와 비슷한 모방이 아닌지 묻습니다.

해외의 도시에 사는 것과 같은 도시를 예를 들어 2주 일정으로 여행가는 건 분명 다른 상황입니다. 떠날 수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새로운 환경과 문화에 적응하는 그 자체가 벌써 현지의 삶에 들어오는 과정으로 파리건 서울이건 사람 사는 방식이 어디나 비슷하다는 걸 느끼게 됩니다.

이 책에서 프랑스적이어서 마음에 드는 장면은 국가가 노동자의 쉴 권리를 인정해 연간 유급 15일 휴가를 보장해 주었다는 점. 그리고 법으로 해변을 국가소유로 정해 모든 국민들이 경제적 여건과 관계없이 해변을 즐길 수 있게 했다는 점입니다.

프랑스 이웃나라인 이태리만 해도 일광욕을 즐기기 위한 파라솔을 임대하지 않고는 해변에서 즐길 방법이 없다는 걸 보면 프랑스의 해변 국유화는 지극히 프랑스적입니다.

장소와 공간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저는 이 책을 하나의 ‘휴식’으로 읽었습니다.

사는 곳이 서울이니 서울이 제일 관심이 많이 가고 다른 한국의 도시들도 관심이 가지만 파리는 제가 오래전에 방문했던 곳이라 관심이 갔습니다.

파리처럼 오래된 유럽의 도시는 도시 규모도 서울보다 작고 아직도 오래된 골목과 좁은 길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최소 제가 본 파리의 중심가애서 에펠탑을 제외하고 큰 고층 빌딩을 본 기억은 없습니다.

여행자의 눈으로 봤을 때 파리의 인상은 잘 ‘보존’된 도시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루브르 박물관만 잘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일반사람들 사는 건물들도 잘 보존된 도시라는 것입니다.

이건 분명 ‘첨단’을 위해 ‘철거’도 서슴지 않는 서울과 다른 점입니다.

현재 서울 도심에서 외국의 영향력이 아직도 남아있는 ‘정동’지역만이 구한말 이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건물의 역사성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한때 서울의 극장개봉관으로 이름을 날리던 최초의 극장인 ‘단성사(團成社)’가 없어졌고 명동의 중앙극장도 사라졌습니다.

힙지로라고 부르는 ‘을지로’는 현재 수많은 고층건물이 올라가고 과거의 흔적이 점점 사라지고 있지만 을지로가 힙한 이유는 을지로의 오래된 식당들과 오래된 건물들이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지 그 장소 옆에 생긴 최첨단 고층빌딩 덕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십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화상 중국집과 냉면집, 그리고 호프집과 을지로 공구상가가 을지로의 분위기를 만드는 주요 장소입니다. 여기에 을지로 개발과 함께 들어온 청년사업가등이 을지로 본래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고 힙한 가게를 낸 것도 큰 몫을 했지요. 이전에 언급했다시피 시간의 흔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과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하는 것은 진짜와 가짜를 나누는 중요한 차이입니다.

하지만 일제시대부터 ‘황금정 (黃金町)’으로 불린 이 곳은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그리고 산업화시대를 거치며 각 시대의 흔적이 겹겹으로 남아 있지만 최근에 또 재개발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과거 세대의 흔적을 일부만이라도 남겨 놓는 것이 그 세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습니다.

도시의 형태와 구역 내 건물의 모습을 이미 모든 지역이 철거되고 재개발되면 오직 사진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요행이도 사진으로 남겨진 경우에만 볼 수 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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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00여쪽 분량의 이 책은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오래된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입니다.

2010년에 나온 책이고 미술사와 건축을 공부하신 두 분 저자께서 함께 쓴 책입니다.

근대시기(1883-1945)에 지어진 건축물 중 문화재청이 보존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관청, 은행, 세관,영사관, 학교, 병원,성당, 교회와 국영회사(동양척식주식회사) 등 소위 ‘주요 건축물’위주의 답사기입니다.

전국에 산재한 근대 건축물이 망라되어서 서울 뿐만 아니라 개항지인 인천, 부산,군산, 목포를 비롯해서 대구와 강화도, 김제, 영산포, 구룡포, 그리고 강경까지 국토 곳곳에 남겨진 개항기-일제강점기 당시의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대구와 영산포, 구룡포 등지의 일부 적산가옥 (敵産家屋)을 제외하고 이책에서 다루는 건축물들은 근대시기에 살았던 일반 국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건축물은 아닙니다.

서울과 수도권 지역에 한정되지만 이런 오래된 보통의 건축물에 대한 답사기는 문헌학자이신 김시덕 선생의 도시 답사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글을 쓰기 전 잠시 이 책의 평을 보니 일제가 남긴 건축물을 답사했다고 친일답사기라고 평하시는 독자가 계신 걸 보고 놀랐습니다.

일제의 통치가 억울하고 분하면 그들이 남긴 흔적을 악착같이 보존하면서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 알려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극단적으로 말해 그들이 조선을 착취한 ‘증거’로 남겨진 것이 건축물입니다. 일본인 지주들이 조선 땅의 쌀을 일본우로 가져가 얼마나 부유하게 살았는지 그가 살던 집이 있어야 그걸보고 당시 일반 조선인들의 생활과 비교를 해야 얼마나 착취를 했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또 하나 생각해야 할 것은 호불호를 떠나 한국의 근대건축가들은 일본을 통해 건축을 배웠습니다.
역사적 사실이죠.

현재 서울대 공대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경성고공)에서교육받은 소수의 조선인들이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들입니다.
일본인들이 경성고공의 학생이었고, 조선인들은 한두명 밖에 없던 시절입니다. 이 학교를 졸업한 조선인들은 처음 일을 한 곳은 대체로 조선총독부입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습니다. 일본의 민간건설회사는 일본인만 뽑고 조선인은 뽑지도 않았죠. 그러니 이런 상황에서 실제로 친일을 한 근대 건축가가 있을 수도 있지만 당시 서양식 건축물을 조선에 지을 수 있는 건축가는 경성고공 출신 조선인 또는 일본인 건축가이거나 일본에서 교육받은 일본인 또는 조선인 건축가이거나 아예 유럽이나 미국 출신 건축가들 뿐입니다.

실제로 구한말인 19세기 말 지어진 경운궁의 서양식 건물이나 성공회 서울 대성당, 러시아 영사관과 같은 건물들은 모두 서양인들이 지었습니다.

따라서 근대건축가들이 지은 건축물이 모두 친일건축물이라고 재단하는 건 지나칩니다.

이책이 발행된 지 10여년이 지나 솔직히 사진에서 보이는 건축물 중 아직까지 남아있는 곳이 몇 곳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경복궁 옆 기무사 건물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개관했고 기무사로 사용되기 전 서울의대 부속병원으로 쓰였던 건물이라고 하더군요.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최초의 조선인 근대건축가 박길룡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건축관련 책마다 지적하는 부분이 바로 재개발구역에 대한 개발압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오래된 것을 보존하는 것보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려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니 말이죠.

도시계획사나 도시의 역사에 대한 연구가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는 건 오래된 건축물이나 생활지역을 보존하는 걸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세태와 무관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제 개인적으로는 세계 어느 도시를 가나 볼 수 있는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형태의 건물 안에 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브랜드 매장이 입점해 있는 걸 ‘발전’이라고 부르는 건 민망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의 분위기와 장소의 고유성이 없어진 상태로 덩그라니 최신의 하드웨어만 남은 곳에서 어떻게 발전이 일어나고 문화의 감각이 생길 수 있을까요?

생활의 편리도 무시할 수 없으니 다시 건물을 올리거나 리노베이션을 할 수는 있지만 최소 과거의 흔적을 남기는 것에 대해 생각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위 힙하다는 을지로나 익선동이 왜 지금 사랑받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세월의 흔적이 남은 건물과 그 분위기는 빈티지 인테리어를 시공한 건물과는 다릅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래된 건물을 답사하거나 이런 답사기를 읽는 건 삶의 공간과 장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기회를 줄 수 있기 때문애 읽어볼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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