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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워 - 배명훈 연작소설집
배명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2월
평점 :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절판이 되어서 아쉬웠는데 올해 초 개정판이 출간되었기에 두 번 고민하지 않고 구입했다. 총 여섯 편의 소설이 실려 있고, 모든 소설의 무대는 역사상 최초의 타워형 도시국가인 '빈스토크'다. 빈스토크는 영토라고 해봤자 빌딩 한 채이지만, 빌딩의 높이가 647층에 달하고 수용 인구가 50만 명이나 되니 도시'국가'라고 불릴 만하다.
여느 국가와 마찬가지로 빈스토크에도 정치 권력과 경제 권력이 있고, 전쟁과 테러 위협, 비리와 음모 등이 존재한다. 나라 자체의 규모도 작거니와 이웃 국가로부터의 테러 위협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데, 그러거나 말거나 한 건물 안에서 살고 있는 운명 공동체임에도 서로를 좌측과 우측, 상층과 하층으로 구분하며 갈등하고 대립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꼭 한국 사회 같다고 느낀 건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타워>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작품은 <타클라마칸 배달 사고>이다. 한 남자가 옛 여자친구에게 엽서를 보내지만 도중에 사고가 발생해 배달되지 않는다. 몇 년 후 남자는 빈스토크 군의 비밀 임무를 수행하다 사막에 추락해 실종된다. 빈스토크 정부는 실종된 남자가 정식 군인이 아닌 용역 회사 직원에 불과하며 빈스토크 국민조차 아니라는 이유로 수색을 그만둔다. 그로부터 몇 달 후, 뒤늦게 배달된 엽서를 받고 남자의 안부가 궁금해진 여자는 남자의 행방을 수소문하다 그가 몇 달째 실종 상태인 걸 알게 된다.
군대가 두 손 들고 정부도 포기한 일을 어떻게 해낼까 궁금했는데 과연 정말로 해낸다. 그것도 첨단 기술로 중무장한 빈스토크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날로그적인 기술인 '파란 우편함'과 생면부지의 타인을 돕고 싶어 하는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아무리 빠르게 바뀌고 사회가 점점 각박하게 변한다고 해도 인간 본성의 선한 마음을 잃지 않고 그런 사람들을 곁에 둔다면 살아갈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