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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언들 ㅣ 시녀 이야기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김선형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1월
평점 :
전편에 해당하는 <시녀 이야기>를 읽고 나서 바로 읽었는데 이제야 리뷰를 쓴다.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의 시점으로부터 15년 후의 길리어드가 배경이다. 15년 전과 마찬가지로 길리어드는 출생률 감소라는 인류의 위기를 피하기 위한 대책으로서 가임기의 여성을 징집해 필요한 가정에 배급하는 시스템을 채택하고 있다. 길리어드에서 여성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지위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고, 가임 여부에 따라 시녀 또는 하녀로 분류된다. '아주머니'라고 불리는 극소수의 계급을 제외하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제한되고 자기 명의의 재산도 가질 수 없다. 이를 거부할 시에는 가혹한 처벌을 받거나 죽임을 당한다.
<증언들>에서 '증언'을 하는 인물은 모두 세 명이다. 길리어드의 여성 관련 정책을 주관하는 (여성으로서는) 최고 권력자 '리디아 아주머니', 상류층 집안의 딸로 태어나 순종적인 아내가 되라는 가르침을 받아온 '아그네스', 캐나다에 살면서 이웃나라인 길리어드의 사정에 대해 TV로만 접해온 '데이지'이다. 이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아그네스다. 길리어드에서 상류층 집안의 딸들은 십 대 초반에 혼사가 정해진다. 아그네스도 일찍부터 여러 가문으로부터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해 열세 살 때 저드 사령관이라는 길리어드 최고의 권력자와 결혼하는 것으로 정해진다.
사람들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자리'라며 아그네스를 축복하지만, 아그네스의 마음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중매쟁이는 아그네스의 몸이 건강한 아이를 낳기에 적합한지만 따지며 아그네스를 출산 도구 취급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 혼사를 통해 자신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질 것만 생각하고, 정작 딸인 아그네스가 어떤 심경인지는 살피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저드 사령관이라는 인물이 최악이다. 이제 고작 열세 살밖에 되지 않은 여자아이를 음흉한 눈으로 훑어본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저드 사령관의 아내였거나 약혼자였던 여성들이 하나같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찍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그네스가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은 베카다. 처음에 베카는 남성에 대한 공포와 결혼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해 정해진 혼사를 치르지 않고 아주머니가 되는 길을 택한다. 하지만 수련 과정에서 글자를 배우고 책을 읽고 일을 하면서(전부 길리어드에서 아주머니 이외의 여성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은 활동들이다) 여성에게도 한 남자의 아내가 되고 아이를 낳는 것 이외의 역할과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길리어드의 모순에 대해 깨닫고 길리어드 밖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베카의 각성은 베카 자신의 삶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친구인 아그네스의 삶을 바꾼다. 그뿐만 아니라 길리어드 사회에 균열을 내고 체제의 모순을 알리는 데 일조한다. 만약 베카가 그저 부모가 원하는 대로, 관습과 통념에 따라 혼사를 치르고 남들의 선택에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면 이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베카처럼 영혼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담대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는 삶을 살고 있는지 자문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