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책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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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 문학동네 강윤정 편집자 님이 운영하시는 유튜브 '편집자k'를 알게 되어 열심히 시청하는 중이다. 추천하신 책들도 거의 다 구입해 읽어보고 있는데 아주 높은 확률로 만족스럽다. 아무래도 직접 책을 기획하고 편집하는 일을 하는 분이다 보니, 책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안목이 평범한 독자(=나)들의 눈과는 차원이 다름을 실감한다. 


<시와 산책>은 얼마 전 업로드된 올해의 책 영상에서 보고 구입했다. 영상을 보기 전부터 이 책의 존재는 알았는데, 선뜻 구입할 마음이 들지 않았던 건 아무래도 '시'라는 단어 때문이었던 것 같다. 정확히는 시라는 장르에 대한 무지함에서 비롯된 난처함. 그래도 편집자k 님이 추천하셨으니 어디 한 번 읽어보자, 하고 읽어보니, 일단은 에세이라서 그런지 시처럼 난해하지 않았고, 그래도 시인이 쓴 글이라서 그런지 단어의 선택이나 표현의 방식이 어딘지 모르게 다른 작가들보다 한층 더 섬세하고 깊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 같은 에세이, 에세이 같은 시랄까. 


이 책은 문창과 졸업 후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며 조용히 살고 있는 저자의 일상을 담고 있다. 외풍이 그대로 들어오는 추운 방에서 이웃들이 내는 층간 소음을 견디고, 오갈 데 없는 길고양이들을 찾아다니며 물과 밥을 주고, 동네에 종종 오는 과일 트럭 아저씨와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는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 관한 내용인데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열리고 눈이 뜨이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역시 저자가 빚어낸 소박하고 아름다운 문장 덕일까. 오랜만에 맑은 글을 읽어서 마음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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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잡지 - 좀 더 제대로 살고 싶습니다 아무튼 시리즈 6
황효진 지음 / 코난북스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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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대해 특별한 애정이 있었던 게 아닌데도, 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잡지들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저자와 같은 1980년대 중반에 태어난 '90년대 키드'이기 때문일 터. 부모님이 사주신 만화 잡지 <나나>로 시작해 <윙크>, 패션 잡지 <쎄씨>, <에꼴>, <유행통신>, 일본 잡지 <POPEYE>, <BRUTUS>등으로 관심 범위를 넓혔다는 저자처럼, 나 역시 초등학교 때부터 <나나>, <파티> 같은 읽었고, <유행통신>, <신디 더 퍼키> 같은 패션 잡지를 열독했으며, 20대 이후부터는 일본의 패션 잡지, 만화 잡지, 정보지, 생활지, 문예지 등등을 두루두루 읽었기에 저자의 이력이 무척 반가웠다. 


잡지를 좋아해서 각고의 노력 끝에 동경하던 잡지 기자가 되었으나, 매체 환경의 변화로 인해 다니던 잡지사가 줄줄이 문을 닫으면서 현재는 프리랜서 기획자, 작가로 지내게 된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얼마 전 모 뮤지션의 SNS에서 모 음악 프로그램에서 노래 부를 날을 꿈꾸며 뮤지션이 되었는데, 정작 뮤지션이 되고 나니 그 음악 프로그램이 폐지되어 아쉬웠다는 글을 읽은 게 생각났다. 어린 시절에 상상했던 미래가 어른이 되어서 펼쳐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잡지나 잡지 기자처럼 어떤 매체나 직업이 아예 사라지거나 그 의미나 역할이 달라지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걸까. 저자의 경우에는 잡지라는 매체의 단발성, 휘발성이 좋아서 잡지 기자가 되었는데, 잡지보다 더 단발성, 휘발성을 가진 SNS가 등장하면서 상대적으로 잡지가 느린 매체, 장기적, 영구적으로 정보를 전달, 보관하는 매체로 역할이 바뀌는 것을 보며 적잖이 당황했다고 한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사를 쓰면서 느낀 한계와 환멸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페미니즘을 만나기 전과 후, 여성 연예인, 특히 걸그룹 아이돌에 대한 관점이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고백이 인상적이었다. 인터뷰 대상에게 페이를 지급하지 않는 관행에 대한 지적도 좋았고, 회사를 나와 저자가 직접 독립출판물로 잡지를 출간하면서 겪은 고충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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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선물 - 제1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개정판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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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작가의 등단작 <새의 선물>은 1995년을 살고 있는 화자 '나(진희)'가 열두 살이었던 1969년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전라도의 한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 외삼촌, 이모와 함께 사는 진희는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어른 못지않게 성숙하고 태도도 점잖다. 하지만 이따금 주변 사람들에 대한 묘사나 사건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어린애 티가 나는데, 그때마다 픽 하고 웃음이 나면서도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했던 소녀에 대한 연민 같은 감정이 끓어올랐다. 가령 생각이나 행동이 조카보다 철없을 때가 있기는 해도 엄연히 어른인 이모에 대해 적개심 비슷한 감정을 느끼는 대목이라든가, 그런 이모와 한 남자를 두고 삼각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스스로 착각하는 대목 등등. 


엄하기는 해도 언제나 넓은 마음으로 '나'를 받아주는 할머니와 서울 법대에 다니는 삼촌, 명랑한 이모의 보살핌을 받으며 웃자란 마음의 빈 공간을 천천히 채워가던 '나'는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인해 불완전하지만 온화했던 어린 시절과 돌연 결별하고 마음의 문을 굳게 잠글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끌려간다. 갑작스러운 단절로 인해 영원히 성숙할 수 없는 '어른 아이'로서 살게 된 '나'의 모습이 그래서 더 아프고 안타깝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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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오르는 마음
이두온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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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미스터리 소설을 전보다 열심히 읽을 생각이다. 미스터리 소설을 좋아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좋아하는 작가 몇 명의 작품만 꾸준히 읽었지 장르 전체를 두루 섭렵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서이다. 일단은 미스터리 소설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들을 차례로 읽고, 미스터리 소설 전문 잡지 <미스테리아>를 꾸준히 읽으면서 거기 나오는 작품들이나 작가들을 찾아 읽을 계획이다. 과연 잘 될 수 있을까... 


<타오르는 마음>은 <미스테리아> 김용언 편집장이 추천해서 읽은 책이다. 오랜만에 읽은 한국 추리 소설인데 기대한 것보다 좋았다. 소설의 배경은 지도에도 안 나오는 작은 마을 '비말'. 자랑할 것이라고는 드넓은 평원과 그 위에 홀로 서 있는 바위뿐인 이 마을에서 까맣게 탄 시체가 발견된다. 이후 비슷한 시체가 여러 구 연속으로 발견되면서 마을은 순식간에 전국적인 명성(?)을 얻는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유가족들은 괴로워하는 가운데, 마을 사람들은 연쇄 살인 사건을 일종의 '관광 자원'으로 이용해 큰돈을 벌 계획을 세운다. 때마침 비말에서 벌어진 연쇄 살인 사건을 모티프로 한 영화가 개봉되면서 계획이 착착 진행된다. 


여기까지가 현재로부터 6년 전의 상황. 6년이 지난 지금은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도 많지 않고, 비말을 찾는 관광객의 수도 급감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과거의 연쇄 살인 사건을 연상케 하는 또 하나의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의 소녀 '밴나'는 친구 '오기'와 함께 범인을 찾아 나서지만, 마을 사람들은 오랜만에 돈 벌 기회가 생겼는데 괜한 짓 하지 말라며 말린다. 범인 '덕분에' 사그라들던 축제에 대한 관심도 살리고, 매스컴의 주목도 받게 되었다며 도리어 흥분한다. 


사람이 줄줄이 죽어도 돈 벌 궁리만 하는 사람들. 나만 아니면 괜찮다고 문제를 덮어버리는 사람들. 진실을 추궁하는 사람을 오히려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이런 사람들을 토양 삼아 범죄는 생겨나고 범죄자는 생존한다. 죽은 사람, 살아남은 사람만 억울한 이런 사회야말로 진정한 가해의 주체 아닐까. 이런 마을 사람들 속에서 사건의 진실을 좇는 밴나의 모습이 무척 가련하고 애처롭게 느껴졌다. 사회파 미스터리의 대가 미야베 미유키가 이 책을 극찬한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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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지적 독자 시점 2
슬리피-C 지음, 싱숑 원작, UMI 각색 / 에이템포미디어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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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들이 재밌다고 입을 모아 말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한국의 직장인, 취업 준비생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현실적인 설정, 기발한 이야기 전환과 시원시원한 전개, 전형적이지 않은 인물들, 진지함과 코믹함의 완급 조절까지 작품의 모든 요소가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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