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기생충 열전 - 착하거나 나쁘거나 이상하거나
서민 지음 / 을유문화사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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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말하기 거북한 단어다.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기 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특히 지저분하다거나, 병과 관련된 말과 함께 쓰이는 단어니, 기생충이라는 말은 자주 쓸 수가 없다.

 

그런데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라니... 나는 기생충을 의대에서 연구하는 줄 몰랐다. 생물학과라든지, 아니면 수의학과 정도에서 기생충학을 배우는 줄 알았는데, 아니란다.

 

우리나라에서 기생충학은 의대에서 시작했다고 한다. 의대에서 시작했기에, 기생충학이 사람들을 치료하는데 도움을 많이 주었겠지만, 반대로 의학이 발달하고 환경이 좋아지는 현대에 들어서는 기생충학을 공부하는 사람이 많아지지 않아, 또 대학에서도 교수를 채용하지 않아 앞으로 20년이 지나면 과연 의대의 한 분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다. (42-44쪽)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기생충학은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저분하다고 여겨지던 기생충을 연구한다는 것 말고도, 기생충과 인간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고, 우리들 건강의 많은 부분이 기생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기생충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도 무지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과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기생충에 대해서 일반인들이 읽을 만한 책이 별로 없다는 깨달음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하는데...

 

기생충이 지저분해서 읽기에 거부감이 있는 사람은 기생충 부분을 빼고 이 책의 1부만 읽어도 된다. 기생충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읽으면 적어도 기생충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할테니 말이다.

 

기생충에 대한 거부감에도 한 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은 계속 읽으면 된다. 2부에서는 '소화기계에 사는 기생충'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요충, 회충 등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기생충들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이들 소화기계에 살고 있는 기생충들은 우리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주지 않는 것들이고, 오히려 우리의 면역체계를 강화해주고 있기도 하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된다.

 

3부에서는 '조직을 침범해 사는 기생충'을 다루고 있다. 이 친구들은 좀 위험하다. 우리의 생명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이 어떻게 우리 몸 속에 들어오는지 그 경로를 아는 일은 중요하다.

 

감염 경로를 안다면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날것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이 기생충들을 조심해야 한다. 역시 알아야 예방할 수 있다.

 

4부에서는 '뇌에서 사는 기생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뇌에서 산다. 이거 좋을 리가 없다. 조심, 조심 하는 수밖에 없다. 특히 말라리아 같은 경우는 아직도 제대로 된 백신이 없다고 하니 조심해야 하는데, 이들은 특히 모기나 파리에게서 감염되는 경우가 많으니, 조심할 것.

 

5부에서는 '기타. 우리 몸 이곳저곳에서 사는 기생충'을 알려주고 있다. 폐디스토마나 회선사상충, 주혈흡충 같은 기생충은 아주 위험하고 우리가 조심해야 한다고, 그리고 영화로 많이 알려진 '연가시'같은 경우는 아직까지 사람에게 감염된 경우는 없으니, 영화는 영화로 즐겨야 한다는 것까지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또는 우리가 알아야 할 기생충들에 대해서 쉽게 잘 설명해주고 있다. 감염경로라든지, 치료법이라든지, 조심해야 할 사항들, 그리고 그 기생충들의 특징까지 쉽게 쉽게 설명해주고 있어서 징그럽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던 기생충들에 대해 친근감까지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물론 그렇다고 기생충에 친근감을 느낄 수는 없겠디만, 이렇게 서민과 같이 기생충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있기에 우리들이 좀더 나은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생충은 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니, 우리의 식생활습관이라든지 생활습관 등을 돌아보면 충분히 기생충으로 인한 질병은 예방이 가능할 듯하니, 기생충에 대해서도 기본적인 지식은 알고 있어야 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은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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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주의 화가의 삶과 그림
시모나 바르톨레나 지음, 강성인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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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유파라고 하면 '인상파'일 것이다. 인상파라는 말이 좀 거세다면 인상주의라고 하면 되겠다.

 

인상파 중에서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은 고흐다. 그러나 고흐는 후기 인상파에 해당이 되니, 아마도 고흐를 제외하고 인상파 하면 모네를 떠올리지 않을까 한다.

 

나는 가끔 마네와 모네가 헷갈리는데, 이름이 비슷하기 때문일테고, 그들의 작품을 직접 보지 못하고, 책을 통해서만 만났기 때문에 그림들이 지니고 있는 차이점들을 잘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이 책은 이러한 인상파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다. 인상파의 시작부터 절정기, 그리고 후기 인상파와 인상파가 영향을 준 화가들까지.

 

하여 인상주의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개관할 수 있는 좋은 책인데... 편제는 이렇게 되어 있다.

 

서문에서는 당시 프랑스 화단을 주도하고 있던 아카데미에서 벗어나는 데서 인상주의가 시작되었음을, 기원에서는 사실주의 화가라고 할 수 있는 쿠르베와 우리가 밀레를 대표로 알고 있는 바르비종파에 대해서, 그리고 인상주의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마네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있다.

 

이들은 실내에서 바깥으로 그림을 가지고 나온 화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역사화, 인물화 중심이던 아키데미 회화에서 벗어나는 단초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세 번째 인상주의에서는 본격적으로 인상주의의 양식,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고 있으며, 인상주의가 일본회화에서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다음 장에서 이를 구체화하여 자주 그린 주제들이라고 하여 인상주의 화가들이 주로 그린 주제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다음에는 그들 스스로 열었던 전시회에 대해서, 또 그들을 지지했던 지식인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뒤로 가면 미국과 영국의 인상주의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길이라고 하여 인상주의가 그 뒤 미술에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야기해주면서 책이 끝난다.

 

아주 많은 인상주의 화가들과 그림들이 책에 소개되어 있어서 인상주의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알 수 있다는 장점과 함께 작가와 작품을 구체적으로 소개해주는 부분도 마련하고 있어서, 좀더 깊이 있는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무엇보다 인상주의라고 하는 한 유파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는 점이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인상주의에 대한 책들을 읽으며, 그들은 실내에서만 이루어지던 그림을 밖으로 끌어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점, 빛을 그림에 들여와 빛에 의해 색채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그림으로 보여주었다는 점이 특징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이 인상주의 화가들이 우리나라에서는 진경산수화를 도입한 화가들과 같은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관념에서 현실로!

 

이것이 바로 인상주의의 모토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는데... 지금은 굳이 어느 유파의 그림이 옳다 그르다 할 필요는 없고,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는 그림들을 감상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인상주의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할 수 있어서, 인상주의의 흐름과 대표적인 화가들, 작품들이 한 눈에 들어오게 해준다는 점에서 이 책이 의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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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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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제목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주는 책인 줄 알았다.

 

그렇지 않아도 험난한 세상, 자꾸 불안감을 조성하는 세상에서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었다.

 

제목만 보면 '상처받지 않을 권리'다. 그래, 지금 내가 받는 상처는 내 탓이 아니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나만 너무 상처받을 필요 없어. 라고 생각하고 책을 골랐다.

 

그런데, 아니다. 개인의 상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우리가 힘들게 살아가는 이 시대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그러므로 작가도 나오지만, 그 작가와 짝이 되는 철학자, 사회학자들이 나온다. 작품과 사상의 조화. 그런 조화를 통해 우리 시대를 분석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분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름 대안도 제시하고 있지만, 대안은 결국 우리들의 몫이다. 작가가 제시한 협동조합은 지금도 많이 논의되고 시도되고, 실천되고 있지만, 아직 우리 사회의 주요 운동으로 자리잡지는 못했다.

 

왜 그럴까? 인문학적 성찰이 부족해서? 아니면 실천력이 부족해서? 그도 아니면 자본주의 세력이 너무도 강고해서?

 

이것저것이 다 합쳐진 복합적인 요인 때문에 협동조합 운동이 지지부진하겠지만, 무엇보다도 큰 요인은 불안감 아닐까 한다.

 

이 책의 3장에서 부르디외로 설명되는 이야기가 아마도 지금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가능성보다는 잠재성에 매몰되어 있다고. 가능성은 구체적인 실천 가능성이고, 실천을 의미한다면, 잠재성은 막연히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것.

 

그래서 현대 자본주의의 아비투스는 가능성을 중심으로 움직인다고 하지만, 노동자들이나 소시민들은 잠재성을 중심으로 움직이기에 그들이 혁명을 일으키지 못하고 현재에 주저앉아버린다는 것.

 

그러니 그들보고 용기없다고, 또 생각없다고, 한심하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는, 즉 그들을 구별지워 그 틀 속에 가두워버린 체계에 대해서 숙고해야 한다고 하는 부르디외의 논의는 시사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우리는 상처받으며 살고 있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서 현재를 즐기기 보다는 잠재적인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근에 사람들의 관심을 끈 드라마 "미생"을 보더라도 우리가 얼마나 현재를 희생하면서, 현재를 불안하게 살아가는지, 미래가 가능성이 아니라 잠재성으로 다가오는지 알 수 있다.

 

"미생"이 그렇게 인기를 끈 이유가 바로 우리들 자신이 "미생"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여기서 한 단계 나아가야 한다.

 

상처받지 않을 권리는 우리에게 있다. 어떻게 나아가야 하나? 그 대답이 바로 4장에 있다. 보드리야르. 그가 제시하고 있는 상징으로서의 선물. 바타유의 영향을 받았다는 저주의 몫. 즉 대가를 요구하지 않는 증여, 선물.

 

우리는 그런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그런 추구가 가라타니 고진이 이야기한 '생산-소비 협동조합'(428쪽)일 것이다.

 

노동자는 생산자이자 소비자이다. 생산자의 자리에 섰을 때 노동자는 '을'이되지만, 소비자의 자리에 섰을 때 노동자는 '갑'이 된다. 그런데 생산자의 자리에 섰을 때도 노동자가 '갑'이 될 수 있다.

 

그것은 그가 생계의 기로에 서지 않았을 때, 그의 자유의지로 노동을 선택할 수 있을 때다. 그럴 때 노동자는 '갑'의 위치에서 생산의 위치를 선택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자유이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계가 보장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지금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소비자의 자리에 섰을 때 '갑'인 것처럼 느끼지만, 사실 지금 사회에서는 소비자의 위치에서도 노동자는 '을'이다. 자신이 욕망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신의 욕망이 아닌 타인의 욕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에 의해 조작된 욕망이 내 욕망인 것처럼 들어와 작동하는 사회에서는 소비조차도 '을'의 행위에 불과하게 된다.

 

이런 점을 이야기하기 위해서 우리가 누려야 할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인문학적 성찰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8명이 등장한다.

 

이상, 짐멜; 보들레르, 벤야민; 투르니에, 부르디외; 유하, 보드리야르

 

돈에서, 도시로, 다시 아비투어로, 그리고 그 현란한 자본주의의 극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해야 할 우리들의 일로 내용은 이렇게 점점 넓고 깊게 전개가 된다.

 

마지막에 '선녀와 나무꾼'으로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교환가치가 사용가치를 넘어섰지만, 이제는 상징가치가 우세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 상징가치는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증여, 즉 선물이라는 사실. 이것은 바로 '공동체'에서 가능한 일이고, 이러한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서는 '생산-소비 협동조합'에 대해서 고민해야 한다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기본소득이 연결이 되지 않을까 한다. 생계 문제에서 노동자가 벗어나게 하는 것. 그 때에서야 노동자들이 자유롭게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인문학적 성찰은 여유에서 올 수밖에 없으니, 정작 노동자에 대해서 글을 써도 노동자들이 읽을 시간이 없고, 읽지도 않고 오로지 지식인들만 읽는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즉 노동자들에게 잠재성이 아닌 가능성을 사유하게 하려면 그들이 최소한 생계 문제에서는 벗어나야 한다는 것.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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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에서 읽은 시 2 담쟁이 교실 19
하상만 지음 / 실천문학사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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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에서 읽은 시2" 권이다.

 

첫번째 책을 흥미롭게 읽었기에 이 책도 이어서 읽게 되었는데, 1권보다는 과학에 대해서 좀 약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과학 지식이 무궁무진하겠지만, 시에서 그 과학 지식을 찾아 함께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런 일을 한 시인이자 교사인 작가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번 2권은 과학적 지식보다는 시인의 감성이 더 많이 나타난 책이다. 시에서 객관적인 과학적 사실을 찾아내서 설명해주기보다는 감성적 설명이 더 많아졌다. 그만큼 이 책은 건조한 서술보다는 작가의 감성이 들어간 표현을 더 많이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학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특히 2권에서는 천문학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 시에서 '해' '달' '별'이 많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우주에 관한 서술이 많은데, 우주는 과학적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시적이기도 하니, 자연스레 책 내용에 감상이 더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렇다 저렇다 해도 과학과 시를 연결시키고, 독자들에게, 특히 교사라는 직업을 가진 시인답게 청소년들에게 다정하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식으로 책을 쓴 것에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요즘 청소년들 하늘을 몇 번이나 볼 수 있을까? 하늘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거나 우주를 향해 자신의 꿈을 펼쳐보려는 생각을 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있을까?

 

마찬가지로 요즘 청소년들 시를 몇 편이나 읽을까? 시를 읽으며 마음을 넓고 깊게 하고, 세상 사물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청소년들이 몇이나 될까?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과학과 시를 융합하여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시각을 전해주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자, 시 한 편.

 

이 시에서는 과학을 찾아도 되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을 찾아도 된다. 정말 시는 우리가 찾을 수 있을 만큼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보물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공손한 손

                    - 고영민

 

추운 겨울 어느날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갔다

사람들이 앉아

밥을 기다리고 있었다

밥이 나오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밥뚜껑 위에 한결같이

공손히

손부터 올려 놓았다

 

하상만 엮고 씀, 과학실에서 읽은 시2, 2014년 1판 1쇄. 193쪽

 

이 책에서 발견하는 과학은? 바로 열의 이동 방법. 열의 이동 방법에는 복사, 대류, 전도가 있다고 하는데, 밥뚜껑에서 느껴지는 열은 바로 전도. (175쪽 참조)

 

열은 뜨거운 데서 차가운 데로 이동을 한다. 이런 과학적 사실에 작가는 사회적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추운 겨울 밖에서 일하느라 몸과 마음이 얼어버린 사람을 데우고 있는 따듯한 밥 한 공기를 생각해봐. 이 세상의 추위를 나누려는 열의 의지가 느껴지지 않니? (196쪽)라고 말이다.

 

우리는 연말이면 온갖 자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더 자선에 대해서 강조한다. 왜 연말에. 추우니까. 추우면 더 힘든 사람이 있고, 추우니 열의 전도가 필요하니까. 따뜻한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열이 이동해야 더 세상이 훈훈해지니까.

 

밥 한 공기에서, 그 밥뚜껑에서 과학적 사실과 그리고 우리가 사회에서 할 일을 찾아내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이것이 바로 시 읽기이고, 시의 존재의미라는 생각이 든다.

 

유독 추운 올겨울, 이 시처럼 열의 이동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 뜨거운 태양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밥뚜껑 정도는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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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실에서 읽은 시 담쟁이 교실 16
하상만 지음 / 실천문학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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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시.

 

지금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이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대상이 있을까 싶다.

 

과학을 좀 잘한다 하는 아이들은 시라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고 진저리를 치고 있고, 시를 좋아하는 아이들은 과학은 도무지 알 수 없다고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오죽하면 학교 교육 현장에서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곧 통폐합이 된다고 하는데, 이도 교과목 간의 의견 차이가 커서 어떻게 될지 모른다. 교육은 정권과 상관없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백년지대계는 커녕 십년지소계도 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원) 태양계와 안드로메다 성운과 같이 동떨어지게 교육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교육현장의 현실과는 다르게 자꾸 통합, 통섭, 융합이라고 하여 무슨 STEAM교육을 하라고 학교에 공문이 자꾸 내려오나본데, 세상에 과학과 시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지 않고, 그냥 하라고 하니, 제대로 될 턱이 없다. 그것도 대학입시에 목 매달고 있는 교육현실에서.

 

이 때 책이 나왔다. "과학실에서 읽은 시"

 

과학실에서 읽은 시라는 제목을 보고, 시와 과학을 접목시키려는 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 시에서 어떻게 과학 이야기를 풀어갈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사실 시와 과학이 동떨어진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시와 과학은 우리 삶에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시 따로, 과학 따로 생각하고, 교육하는 현실에서, 시를 좋아하는 아이는 과학을 멀리하고, 과학을 좋아하는 아이는 시를 멀리하는 이런 현실은 사라져야 하는데도, 그것이 쉽지 않다.

 

그 쉽지 않음에 이 책은 도전하고 있다. 시를 제시하고 그 시에서 과학을 발견해내고, 그것을 설명하면서 다시 시와 만나게 한다.

 

즉 시인은 감성으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과학자는 이성으로 세상을 만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를 심장과 머리라고 표현한다면, 어떤 사람 말대로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머리에서 심장까지의 거리일 수도 있지만, 가장 가까운 거리가 심장에서 머리까지일 수도 있으니.

 

학교 수업시간에 시 한편을 놓고 과학교사와 국어교사가 함께 수업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얼마나 좋은가. 시를 통해 감성과 이성을 동시에 자극하는 그런 수업.

 

시를 읽으며 감성을 채우고, 감성을 통해 이성을 자극하고, 이성의 힘으로 분석하고 정리하고, 다시 이를 감성에 적용하는 그런 수업.

 

과학과 시는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존재하는 그런 것임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우리는 지금 머리와 가슴(심장)까지의 거리를 가장 가깝게 해야만 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책, 시에서 찾아낸 과학. 비록 시인이 시를 통해 과학을 이야기해서 과학자가 보기엔 과학적 지식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겠지만, 시와 과학이 만나는 접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하겠다.

 

자, 시 한 편을 보자.

 

이 시에서 찾아낼 수 있는 과학은. 또 그런 과학으로 다시 우리 가슴을 울릴 수 있는 내용은 무엇인지. 이 책에 나와 있는 내용 말고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연습. 지금 필요하다.

 

궁금하면 이 책을 읽어 보라.

 

 

내 목구멍 속에 걸린 영산강

                                          - 손택수

 

 

  두엄자리에서 지렁이가 운다. 지렁이 울면 낭창한 대 하나 꺾고 낚시를 가시던 할아버지.

 

  그날 붕어조림을 삼키면서 나는 붕어가 샄민 지렁이,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헛구역질을 하고 말았는데

 

  지렁이가 할아버지를 삼킬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할아버지가 삼킨 붕어와 붕어가 삼킨 지렁이 잘디잔 흙알갱이가 되어 지렁이 주둥이 속으로 빨려들 줄은 몰랐다.

 

  비 내린 뒤의 영산강변 할아버지 무덤가에 지렁이가 기어간다. 그래 지구상의 모든 흙은 한 번쯤 지렁이의 몸을 통과했다.

 

  머잖아 저 몸속에서 붕어를 삼킨 할아버지와 내가 머리 딱 부딪치며 우르릉 쾅쾅 천둥번개 치는 시간 있겠구나.

 

  주물럭주물럭 시간대를 마구 뒤섞는 장운동, 저 몸속으로 산맥 하나가 통째로 빨려 들어가고 말랑말랑한 반죽물 밭이랑 논이랑이 되어 꿈틀꿈틀 빠져나올 수도 있겠구나.

 

  강 주둥이에 아침부터 누가 철근을 박고 있다.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며 시멘트를 퍼붓고 있다. 컥컥 헛구역질을 하며 강이 움찔거린다.

 

하상만 엮고 씀. 과학실에서 읽은 시. 실천문학사. 2014년 1판 5쇄. 46-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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