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과 함께 하는 청소년 인문학
도홍찬 지음 / 글모아출판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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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만 헤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독일 작가이다. 외국 작가들 중에 우리들에게 친숙한 작가들 이름을 대라고 하면 헤세의 이름도 꼭 들어가는데... 특히 그의 작품 중에서 '데미안'은 청소년들의 필독서로써도 인기가 많다.

 

"데미안"이 성장소설이라서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필독도서, 또는 권장도서로 권하고 있기도 하지만, 또 가끔 논술문제에도 나와 청소년들이 꼭 읽어야 할 책 목록에 들어가기도 하지만, 이 소설을 읽은 청소년들은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읽어내기가 만만치는 않은 책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와 상황이 다른 독일 상황이기도 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차분히 책을 읽어나갈 시간도 부족한 우리나라 청소년들 상황이기도 하고, 또 학교 공부에 시달리느라 인문학에 관한 공부, 인문학에 관한 책들을 읽은 학생이 극소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읽어치우고 마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런 점을 극복하는데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청소년들이 이 책에 쓰여진 관점처럼 읽어낼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이 책을 읽는다면 "데미안"이라는 소설에서 무엇을 찾아내고,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도대체 소설을 읽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 책이 "데미안"에 들어 있는 인문학을 끄집어내어 알려주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소설 한 편에 얼마나 많은 인문학적 성찰이 들어있는지를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어서, 다른 소설을 읽을 때에도 이런 방식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데미안"에는 우선 서양 사상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는 기독교에 대한 내용과 고대 그리스 철학, 그리고 무의식을 다루는 심리학, 또 합리론, 경험론 같은 근대 철학 여기에 자연철학이 나올 뿐만이 아니라, 장자와 불교와 같은 동양 사상도 추출해낼 수 있다.

 

어떻게 찾아내고 어떻게 고민할 수 있는지는 이 책을 보면 알 수 있으니, 자세한 설명은 책을 읽은 것으로 대체하고, "데미안"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이 '데미안'이 아니고 '싱클레어'라는 점은 지적하고 넘어가자.  책을 읽지 않고 제목만 본 청소년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있으니 말이다.

 

유년시절부터 대학생이 되는 성년까지 싱클레어가 겪는 경험, 고민들을 중심으로, 그 고민들을 싱클레어가 어떻게 해결해 나가는가를 보여주는 소설이 "데미안"이다.

 

안락한 가정에서 벗어나 사회로 나아갈 때 분리를 경험하고, 이 분리를 다시 통합으로 이끌기 위해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선과 악을 인정하되 분리된 것으로 파악하지 않고 통합된 것으로, 이것들이 내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내부에 있음을... 그래서 결국 데미안은 싱클레어 자아임을 파악해 가는 과정. 이것이 바로 소설을 읽는 과정이다.

 

우리나라 청소년들... 고민할 시간도 없이 오직 대학이라는 목표를 향해 경주마처럼 달리고 있다. 이들은 싱클레어처럼 고민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신과 거리두기를-이를 이 책에서는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자신을 타자로 볼 수 있는 관점- 하지 못하고 있기에 고민을 할 수조차 없다.

 

적어도 "데미안"에서 싱클레어는 다른 세계를 기웃거릴 여유나 또 자신 안으로 침잠해 들어갈 여유가 있었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은 그러한 여유조차 갖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그러나 "데미안"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핑계다. 자신의 모든 것을 외부에 돌리는 핑계. 외부의 세계가 아무리 나를 압박하고 몰아가고 결국 내 삶을 살아가는 주체는 나이고, 내가 나를 살 수밖에 없다.

 

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인문학적 성찰이고, 이 책은 그래서 "데미안"이라는 소설을 놓고 청소년들에게 어떤 삶을 살지 고민하고 결정하라고, 다른 사람이 아닌 너 자신이 결정하라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너를 낯설게 볼 수도 있어야 한다고... 너 자신은 단일한 존재가 아니라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존재이니 그것을 하나하나 덜어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인정하여 또 다른   너를 찾아야 한다고 청소년들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을 좀더 쉽게 잘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의 끝부분에 실려 있는 '부록'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하고 싶다. 부록을 읽고 "데미안"에서 무엇을 찾아내서 고민해야 할지, 그 지점들을 인식한 다음, 이 책의 본문을 읽으면서 그것들을 구체화시켜 나가면 좋을 듯하다.

 

아마도 이 책은 소설을 이렇게 읽으면 좋다는 전범이 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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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응의 건축 - 정기용의 무주 프로젝트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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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 드물다.

 

우리나라 전라도 무주에서 일어났던, 그것도 10년에 걸쳐서 한 건축가가 한 마을을 건축하는 그런 과정을 건축가의 글로 직접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건축은 어떠해야 하는가, 건축은 그 마을과 그 마을 사람들과 어떤 관련을 맺어야 하는가, 그리고 도대체 공공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계속하게 하기 때문이다.

 

건축가라면 모름지기 자신만의 건축을 하고 싶어할 것이고, 그러한 자신의 건축을 실현시킬 기회를 얻는다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정기용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비용에 있다. 사실 공공건축은 공개입찰을 한다. 이 책에 보면 당시인지 아니면 지금도 유지되고 있는지 모르지만 3000만 원 이하면 수의계약이 가능하고, 3000만 원이 넘어서면 공개입찰을 해야 한다.

 

요즘말로 하면 주민자치센터, 또는 지역구청 건물을 설계하는데 건축가에게 3000만 원 이하로 받으라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에게는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데 그것은 건축이 실현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일 것이다.

 

공개입찰은 담합을 막을 수도 있지만(사실 4대강 사업에서 공개입찰을 했지만 담합을 했다는 증거나 나와 문제가 되기도 했으니,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대체로 공개입찰은 담합을 막고 투명한 선정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건축가가 한 마을을 건축하게 할 수는 없다. 한 건물을 건축하게 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런데 군수와 건축가의 뜻이 맞아 무주 마을 건축이 이루어졌다. 정기용은 이를 무주와 자신이 감응을 하고, 군수와 자신이 감응을 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땅과 하늘과 감응하는 건축, 그리고 이런 건축이 사람과 감응하는 건축, 그가 바라는 건축이었다.

 

면사무소에 목욕탕을 설치한 것은 그가 처음이리라. 그 후 그를 모방한 건축들이 나왔다고 하는데, 그가 면사무소 건물에 목욕탕을 설치한 것은 바로 마을 사람들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건축가가 마을사람들과 감응하려고 노력하고, 그 감응을 무주라는 마을로 넓혀 갔으며, 무주라는 마을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감응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무주 마을 만들기에 참여한 많은 건축들이 있지만 이렇게 무주의 어른들을 위한 목욕탕이 있는 공공건축, 시골이라 할 수 있는 무주의 아이들이 뛰어놀고 공부할 수 있는 공간, 밤하늘이 아름다운 동네에 천문대를 세워 별을 볼 수 있게 만든 건축, 마을 행사 때 내빈이라고 하는 사람들만 그늘에 있지 않고 모두가 그늘에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한 공설운동장, 구청 건물을 건축할 때 마을 사람들이 언제든지 와서 머물 수있는 공간으로 만든 건축들 등등

 

이 책을 읽으면서 무주에 한 번 꼭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도대체 어떻게 건축했기에 자연과 사람과 감응하는 건축이라는 것인지 사진이 아닌 실물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책의 끄트머리로 가면서 아니 무주는 가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 책의 후반부에 보면 정기용 건축은 이미 개발에 묻혀버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건축이 물론 원형 그대로 있어서는 안된다. 그도 말했듯이 시간을 받아들이는 건축이 좋은 건축일테니 말이다. 그러나 적어도 자연과 사람과 감응하는 그 정신은 살아있게 만들어야 하는데, 많은 부분에서 그 점이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는 개발 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나라 정말, 금수강산이라고 말할 정도로 아름다운 산과 물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그런 자연을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파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은 더 많이 사라졌겠지. 이 책을 쓸 당시가 벌써 8년이 넘은 과거이니...

 

그러나 이 책은 앞으로 마을 만들기를 하는 사람, 진짜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좋은 참조가 될 것이다.

 

무엇이 공공건축이어야 하는지, 어떻게 마을 만들기를 해야 하는지, 정말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지... 건축가와 공무원이 함께 어떤 지점에서 고민을 해야 하는지를 무주에서의 10년 기록을 통해 잘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너무 즐겁게, 좋게, 감동을 받으면서 읽었다. 이런 건축 시도가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래도 무주에 한 번 가봐야겠다. 어떤 식으로 정기용 건축이 시간을 받아들여 거기에 함께 녹아있는지 보기 위해서.

 

이 책에 나와 있는 말 가운데 기억할 만한 말들...

40.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무서워하는 대상은 국민이 아니라 감사원이거나 여러 법의 저촉 여부인 것이다. 이 일이 국민을 위한 것인지 아닌지는 그 다음 문제다.

79. 건축에서는 외관의 형식을 정하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건축에서는 사람들이 원하고 사회가 원하는 삶의 형식을 실현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먼저이고, 그 결과가 형태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는 건축의 기능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면밀한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보살펴 보는 배려에 대한 문제다.

96. 어떻게 보면 건축가는 영화인일 수도 있다. 어떤 호흡과 속도로 특별한 장면을 생성할 것이며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 것인지를 상상한다는 점에서 건축가도 영화인인 셈이다.

152. 세월이 지나면서 건축을 완성하는 것은 시간이다.

216-217. 건축가가 하는 일은 건물을 설계하기 이전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횡단하며 여러 가지를 사유해야 하고, 또 나아가서는 땅과 시대와 세상과 관습과 싸우기도 해야 하며, 모든 기술적․경제적 요인을 결합하는 능력도 발휘해야 하는 총체적 작업이다.

240. 소위 선진국이란 건물을 신축하는 데 드는 비용만큼 건물의 유지 관리 보수에 예산을 아낌없이 쓰는 나라들이다.

243. 건축가란 근사하게 집을 그리는 사람이기 이전에 우리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직하며 여러 가지 설계행위를 통해 건축을 미리 살아보는 사람을 의미한다.

262. 진보란 소위 좌파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마음과 손길 속에 있는 것이다.

283. 산 자가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소, 이것이 납골당의 존재 이유다. ... 이 세상의 모든 죽은 자를 위한 공간은 사실 산 자를 위한 것이다.

307. 우리에게는 위대한 건축가보다 우선 사회적인 필요성에 화답하는 보편적 해답을 보다 다수를 위해 생산해 낼 수 있는 ‘사회적 조절자’로서의 보통 건축가가 필요하다.

368. 건축가의 관찰력은, 우리의 농촌과 도시에서, 반복되는 문제들이 무엇인지, 또한 그럼에도 어제와 오늘이 어떻게 다를 것인지, 그리고 우리 땅의 문제점은 외국의 것과 어떤 차이를 갖는지를 예민하게 포착하는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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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독해 매뉴얼 - 스스로 시를 읽어내는 독해력 강화 노하우
김배균 지음 / 작은사람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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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예로부터 우리와 함께 했다.

 

예전 사람들도 시서화(詩書畵)라고 하여 시와 글(글씨)과 그림을 잘하는 사람을 선비라고 하기도 했다.

 

그만큼 시는 우리와 함께 있었고, 또 마음이 우울할 때나 기쁠 때나 시를 읊조리기도 했는데... 어느 순간 시가 우리에게서 멀어지고 말았다.

 

시가 멀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학교 시험에 시가 들어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다. 마음으로 음미하고 입으로 음미해야 하는 시를 찢고 자르고 해부하여 정답을 찾아내는 훈련을 하면서부터 시는 우리들에게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마음으로 읽으면 되는 시를 답을 찾아내라고 하니 어려울 수밖에... 시란 어느 하나로 해석이 되지 않고 사람에 따라서 환경에 따라서 또 읽는 시간에 따라서 다 다르게 읽힐 수밖에 없고, 다르게 해석이 될 수밖에 없는데...

 

무엇이 정답이다 하고 찾으라고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학적 감수성이 뛰어난 사람도 헷갈리고 문학적 감수성이 둔한 사람은 더욱 헷갈리는 것이 바로 시에 대한 시험이었다.

 

오죽하면 그 시를 쓴 시인들도 자신의 시가 문제로 나오면 틀리기 일쑤라고 하겠는가.

 

그런데도 시는 배워야 한다. 언어의 사용법을 익히는데 시만큼 좋은 재료도 없고, 시만큼 마음을 울리는 문학 갈래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음을 울린다는 점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현실적인 시험을 생각하자. 시를 벗어날 수는 없으니 어떻게 하면 시험에서 시를 잘 이해해서 점수를 잘 맞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한다. 특히 수험생들은.

 

그러니 일반적으로 문과 성향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시를 쉽게 이해하고 시에서 좋은 점수를 얻는 반면에 보통 이과 성향이라고 하는 아이들은 시만 나오면 고개를 젓고는 한다. 도대체 뭔 말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이과 성향의 아이들(이건 보통의 경우다,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요즘은 문과 이과 성향이라는 말도 잘 쓰지 않으려 않다)에게 시에 대해서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문과 성향의 아이들에게는 물론이고.

 

시를 정서와 행위와 시공간으로 나누어 그것을 파악함으로써 시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좋은 점은 시에 나온 언어로 시를 파악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시에 나온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게 하지 않고, 시에 나온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시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고 그 예를 보여주고 있다.

 

하여 이 책의 구호는 이렇다.

 

뜯어 모아 엮어라! 시어로 시어를 독해하라!

 

시를 읽다보면 시에서 말하는 사람과 말해지는 대상, 그리고 기본적인 감정과 행동이 나타난다. 물론 이러한 감정과 행동은 시간과 공간을 바탕으로 하니, 이것들이 바로 시를 이루는 구성요소다.

 

여기에 세세한 표현법은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직 정서, 행위, 시공간을 가지고 시를 뜯어 모아 엮어서 시어로 시어를 독해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언뜻 보면 시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거부감이 들 수도 있지만, 우선은 시의 내용을 이해해야 즐기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는가.

 

그러니 시 감상으로 가는 첫걸음이자, 시에서 점수를 잘 받는 첫걸음을 떼게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시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던 학생들,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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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하면 따져봐 - 논리로 배우는 인권 이야기
국가인권위원회 기획, 최훈 지음 / 창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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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은 불편하다. 자기 멋대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은 '나'가 아니라 '남'에서 출반한다. 즉 나를 중심으로 놓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중심에 놓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때문에 인권은 참으로 불편하다. 인권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도 불편하다.

 

반대도 있다. 인권은 '나'를 중심에 놓기도 한다. 즉, '나'와 남이 동등한 권리를 지니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므로 남과 같은 권리를 누리지 못한다면 인권이 실현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때도 불편하다. 남의 권리와 나의 권리를 비교해야 하고, 어디서 문제가 발생했는지 찾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인권의식이 부쩍 높아진 요즘이다. 그래서 인권에 대한 책도 여러 권 나왔고, 인권 교육 수준도 높아지고, 인권 교육도 필수가 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여기에 인권센터도 생기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해결되지 않은 인권 문제가 있다. 이 책에도 나오지만 우리나라는 성소수자에 관한 인권에 대해서는 참으로 완고하다.

 

서울시에서 추진했던 인권 관련 사업에서도 성소수자 문제로 인해 취소되는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는가. 성소수자와 또 문제가 되는 것은 사형제도, 그리고 피의자의 신상공개 등등은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다.

 

여기서 논쟁이 되고 있다고 했는데, 이 책을 보면 이는 논쟁이 아니라 그냥 감정에 치우친 주장일 뿐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논리를 앞세우는 논쟁에서 근거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즉, 제대로 된 전제, 근거를 들지 않고 곧장 주장으로 갔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오류라는 것이다.

 

논리적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이런 여러 인권에 대해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여전히 불편할 뿐이다.

 

이 책은 김두식의 '불편해도 괜찮아'의 후속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해서 의뢰한 책이기 때문이다.

 

김두식의 책이 영화를 중심으로 인권을 풀어갔다면, 이 책은 논리를 중심으로 인권을 풀어갔다고 하면 된다.

 

따라서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지만 자연스레 논증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즉 인권을 감정 싸움이 아닌 논리 싸움으로 이끌어내고 있다.

 

문명화된 사회라면 감정에 치우친 논쟁이 아닌 논리를 내세운 논쟁을 해야하고, 논리란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는 비폭력적인 방법이기에 우리는 논리에 대해서 배워야 한다.

 

그런 논리를 인권과 연관시켜 책을 풀어가고 있기에 이 책은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인권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더불어 논리력도 향상시키고.

 

많은 논리들이 나오는데, 우리가 자칫 빠지기 쉬운 논리의 함정에 대해서 잘 알려주고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

 

이 책에 나오는 논증 몇 가지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감정에의 호소 논증, 놀리 일탈의 오류, 논점 회피의 오류, 대중에의 호소 논증, 무지에의 호소 오류, 미끄러운 비탈길 논증(오류), 불충분한 통계의 오류(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자연주의의 오류, 정통에의 호소 논증, 허수아비 공격의 오류, 한통속으로 몰아가기의 오류 등등

 

이런 논증 방식들을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인권 문제들을 연결시키고 있는데, 이 책에서 다룬 인권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사생활 침해, 사상, 표현의 자유, 학생 인권, 양심적 병역 거부, 여성차별, 동성애, 지역,인종 차별, 학력 차별, 장애인 차별, 피의자 인권, 사형제, 동물권

 

아직도 논쟁 중이기도 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 이 중에서도 어느 정도 합의점을 찾아가고 있는 것이 있는가 하면 여전히 갈등 중인 문제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사상의 자유(국가보안법이 떡 버티고 있다), 동성애(성소수자) 문제, 사형제, 양심적 병역 거부 등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논쟁 중이라기 보다는 갈등 중이라고 보아야 하는데, 힘있는 편이 이 문제에 대해서 인권 침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결코 불편하지 않기 때문에 변화가 없다.

 

결국 인권은 불편하지 않으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한다. 무언가가 불편해야 하는데, 이는 남을 중심에 놓고 보아야 한다. 나와 남을 동등한 시선으로 볼 때 인권 의식이 싹튼다. 특히 강자에 속하는 사람들, 집단들은 자신들이 아니, 약자에 속한 사람들, 집단의 시선으로 사회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런 불편함을 인식해야만 인권이 실현될 수 있다. 지금 내가 불편하지 않다고, 내게는 지금이 더 편하다고 해서 모두가 다 편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분야에서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단 한 사람이 편안하게 생활할 수 있는 사회, 그 사회가 인권이 실현되는 사회일 것이다.

 

그래서 불편하면 따져봐가 아니라 내 불편함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불편함도 찾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겠다. 그것이 바로 인권의 출발점일테니...

 

덧글

 

이 책의 106쪽 '애매어의 오류'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타고 다니는 '말'과 입으로 하는 '말'은 내용상 서로 관련이 없고 우연히 소리가 같을 뿐이므로 동음이의어이지만, '다리'의 경우는 사람의 다리에서 강에 있는 다리로 확장되었으므로 다의어입니다.'

 

아니다. '말'이 동음이의어인 것은 맞는 말이고, 이 책에 나온 '다리'는 다의어가 아니라 동음이의어이다. '다리'가 다의어가 되려면 사람의 다리와 책상이나 의자의 다리를 예로 들어야 한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사람의 다리와 강의 다리는 동음이의어이고, 사람의 다리와 책상, 의자 다리는 다의어이다. 이건 바로 잡아야 한다. 적어도 이 책이 논리를 가르치는 책이지 않은가. 그렇다면 용어는 정확하게 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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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 정치인류학 논고
피에르 클라스트르 지음, 홍성흡 옮김 / 이학사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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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샀다. 사실 아나키즘과 관련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망설이지 않고 산 책이고. 이 책은 정치인류학 논고라는 작은 제목이 붙어 있듯이,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분석한 책이다.

 

아메리카 인디언 사회를 사람들은 흔히 원시사회라고 말한다. 이들은 국가를 형성하지 않았기에, 원시사회라는 말은 진보가 되지 않은, 무언가 부족한 사회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만, 이 책의 저자는 인디언 사회를 원시사회라고 하는 것과 뒤쳐진 사회라고 하는 것은 관계가 없다고 한다.

 

원시사회를 뒤쳐진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직선적 사고 방식에 빠져 있기 때문이고, 이런 직선적 사고방식은 서구의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약 역사가 이렇듯이 단계적으로 직선으로 발전하는 것이라면 1900년대까지 국가 없는 사회가 어떻게 남아 있겠는가라는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즉 우리는 편의상 원시사회라고 하지만, 이는 인류가 구성한 최초의 또는 바람직한 사회 형태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야만 한다.

 

그렇게 보면 원시사회라는 말은 곧 아나키 사회라는 말과 통하고, 박홍규가 북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에서 아나키 사회를 보고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라는 책을 썼지만, 이 책은 그것보다 훨씬 전에 나온 남아메리카 인디언 사회의 아나키 민주주의를 알려준 글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권의 책을 기획하고 쓴 글이 아니라,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을 모은 책이긴 하지만, 내용은 매 마지막 장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로 수렴된다.

 

그래서 각 글들은 독립적이지만 서로 연결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아나키적인 생활 아니겠는가. 나는 나대로 살지만 우리로서 살아간다는.

 

인디언 사회에서도 물론 부족이 존재하고, 부족은 부족들끼리 나름대로의 규칙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도 추장을 선정한다. 그러나 그 추장은 우리가 생각하는 지도자가 아니다.

 

추장의 특징을 이 책에서는 세 가지, 아니 하나를 더해 네 가지로 정리해 놓고 있다.

 

1) 추장은 "평화의 중재자"이다. 그는 집단의 조정자로서 그것은 때때로 평화로울 때 와 전쟁할 때의 권력의 분화로 나타난다.

 

2) 추장은 자기의 재화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된다. "피통치자들"의 끊임없는 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거절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3) 말을 잘하는 자만이 추장의 지위를 얻을 수 있다. (39쪽)

 

4) 사회-정치적 단위의 형태와 인구 규모를 불문하고 거의 모든 사회가 일부다처제를 인정하나, 또한 이들 사회의 대부분이 그것을 추장의 배타적 특권으로 인정한다는 사실이다. (43쪽)

 

이것은 바로 교환이라는 것이다. 추장에게는 자신의 이러한 역할에 따른 교환으로 여자들이 따라오는 것이고, 이 교환에 실패한 추장은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니 그가 권력을 강화해서 자신의 지배권을 돈독하게 한다는 얘기는 성립할 수가 없다고 한다.

 

여기서 말을 한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말하는 권력을 소유하는 것이다. 또는 권력의 실천은 말하기의 지배를 확실하게 하는 것, 즉 주인만이 말할 수 있는 것이다. (190쪽)

 

라고 하는데, 인디언 사회에서 말하기는 추장의 의무라고 한다. '추장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하여 말하는 것이 아니다.'(193쪽).라고 한다.  추장의 말하기는 '의례화된 행위'(193쪽)에 불과하여 그는 '거의 매일 지도자는 새벽이나 황혼 무렵에 자기 집단에게 말을 걸어야'(193쪽) 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자기가 하던 일을 할 뿐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이 말은 사회를 유지 결속시켜주는 역할을 하고, 이 말을 하는 사람이 단지 추장일 뿐이라는 것이다.

 

우리네 말과 엄청나게 다르다. 우리는 조금 높다 싶은 사람이 말을 하면 그 말은 곧 성문화된 법의 위력을 지니고 사회에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인디언 사회에서 이런 말의 권력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글쓴이는 이러한 인디언 사회는 '고대적 사회, 각인의 사회는 국가 없는 사회,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모든 신체에 똑같이 새겨진 각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즉 너희들은 권력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고 복종의 욕망을 지니지 않을 것이다.'(232-233쪽)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사회는 지배자가 없는 사회이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라는 장에서 앞에서 이야기한 모든 내용들을 정리하고 있다.

 

왜 그들은 국가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것은 필요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잉여생산물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노동하지 않았는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왜 그들은 지도자에게 권력을 부여하지 않았는가? 그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반대로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잘 살 수 있었다고 해야 한다.

 

이제야 겨우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한 나라, 선진국이라고 하는 데는 6시간 노동제를 실시하고 있기도 하지만, 인디언 사회에서는 정말로 많이 일해야 4시간 노동이었다고 하니...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에 최적화된 노동만을 했을 뿐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우리의 환경을 파괴하고, 우리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노동을 인디언 사회보다 두 배 이상 하고 있지는 않은지..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두 삶에 허덕대며 노동의 늪에서 권력의 눈치를 보며 허우적 거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어쩌면 이 책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인디언 사회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그 노동의 늪에서, 권력의 늪에서 벗어나라고 우리가 잡고 나올 막대기를 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벌써 40년 전에...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그 막대기를 필요없다고, 이 곳이 바로 우리가 살 곳이라고, 이 곳 아니면 우리는 살 수가 없다고, 권력을 스스로 인정하고, 불필요한 노동을 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아직도 늦지는 않았다. 최근에 아나키즘이 다시 고개를 들고 나오는 이유도 우리가 더이상 늪에서 허우적거리다가는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위기의식 때문이지 않겠는가.

 

아나키즘은 우리에게 막대기를 다시 던져주고 있다. 잡고 나오라고. 충분히 나올 수 있다고. 그것은 바로 우리 의지 문제라고.

 

내용들이 전문적인 것도 있지만... 맨 마지막 장을 읽으면 다 잘 정리가 된다. 아니, 마지막 장 하나만으로도 충분할지도 모른다. 이 권력과 노동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그래도 '교환과 권력:인디언 추장제의 역할', '활과 바구니', '말하기의 의무', '원시사회에서의 고문', '국가에 대항하는 사회' 이렇게 다섯 장은 꼭 읽으라고 권하고 싶다.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고, 우리 삶을 되돌아 볼 수 있고, 이 늪에서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들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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