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아이 창비청소년문학 50
공선옥 외 지음, 박숙경 엮음 / 창비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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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면 소설이지 '청소년 소설'이라는 말에는 나는 조금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예전에 소설이 연령별로 대상을 정해놓고 쓰지 않았듯이, 정말로 좋은 소설은 연령을 가리지 않고 감동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요즘은 '청소년 소설'이라는 갈래가 하나의 갈래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기술이 분화되어 각 전문 분야로 축소되어 자신들의 영역이 아니면 잘 알 수 없듯이 소설도 어른의 영역과 청소년의 영역, 그리고 동화라고 아이들의 영역으로 나뉘고 있나 보다.

 

어른들보다 더 바쁜 청소년들에게 숨통을 틔어주기 위해서 '청소년 소설'이라는 갈래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로 마음을 먹으니, 이제는 '청소년 소설'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도 생각도 다 다른 사람들에게 우선은 자신들에게 가장 가까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이 문학의 세계로 이끄는 한 방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이해할 수도 없는 동떨어진 이야기는 문학에 흥미만 떨어뜨리게 되니, 청소년들이 생각하고 경험하고 고민하는 모습을 소설로 형상화시켜 내는 작업은 문학을 위해서도 청소년을 위해서도 좋다는 생각으로 방향을 돌렸다.

 

창비에서 청소년 소설 50호 기념으로 낸 책이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이 소설집의 연령대는 중학생에 맞춰져 있다

 

고등학생은 어느 정도 어른으로 대접을 받고 있으며, 또 그들이 학교에서 공부하는 문학은 어른들의 문학과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질풍노도의 시기에 '중2병'이라는 새로운 말까지 만들어낸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설은 그리 많지도 않고 또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총7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하나하나 모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때로는 싱긋 웃으며, 때로는 그 심각함에 가슴 저리며...때로는 이렇게 환상소설로 쓸 수도 있구나 하면서, 어라 청소년 소설인데, 사회현실에 대입해도 무리가 없네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달라진 자신을 보게 되는 아이로부터 소설은 시작된다.

 

물론 작가가 다르고 내용도 다르지만 이 소설들의 공통점은 중학생 정도 되는 아이들이 겪게 되는 일과 그들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일, 또 그들이 고민하면서 나아가야 할 길들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어느 새 부쩍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데, 그 성장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른다. 어려움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고 보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의식하지 못한 채 성장해 있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그것은 '파란 아이'로 연결이 되기도 한다.

 

여기에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의 현대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갑소녀전'은 정말 우리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암울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어떻게 할 수 없이 종말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화갑소녀를 보면서, 출구도 없이 그냥 그렇게 제 삶을 소진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모습이 떠올라 너무도 마음이 아려왔다고나 할까.

 

'고양이의 날' '졸업'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야 함을, 나아가지 않음은 결국 자신을 잃어버림을 고양이라는 우의를 통하여, 또 수몰지구에서 온 아이들이 다시 떠나가는 모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대학교를 졸업해도 스스로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에 매여 사는 캥커루족들이 난무하는 시대이긴 하지만, 중학생이라는 나이는 이제 자신을 깨닫고 부모로부터 독립해 나갈 준비를 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에서 준비를 제대로 못하고 정신적으로라도 독립하지 못하면 그것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살기 힘들다. 그런 점을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함'을 이 두 소설은 잘 보여주고 있다.

 

'덩어리'는 읽을수록 마음이 아프다. 덩어리, 개체들의 집합이 아니라 덩어리가 개체들을 규정하고 지배하는 상태. 결국 개체들은 독립성을 읽고 덩어리로서만 존재하고, 덩어리에서 떨어져 나가려는 움직임을 덩어리들이 막아버리는 상태.

 

학교. 어쩌면 이것은 어른들의 사회에도 적용이 되고, 이 덩어리가 가장 극명하게 발현되는 것이 파시즘이나 전체주의겠는데...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로 어쩌면 우리는 개인의 독창성을 무력하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두가 함께 하는 말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을 통해서 통렬히 깨닫게 된다.

 

이렇게 중학생 시기, 정말로 '중2병'이 확산되는 시기,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시기를 배경으로 소설들이 창작되었지만, 이 소설들에선 해답이 있다. 당연하다. 세상에 해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 다만, 얼마나 시간이 걸리느냐가 문제겠지만.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웃음이 배어나오게 하는 소설, 이렇게 심각한 갈등을 웃음으로 풀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소설은 '푸른파 피망'이다.

 

전쟁이라는 극한의 갈등 속에서 웃음을 유발하는 해결책,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에서 영도력을 묻는 인민군 장교에게 이장이 해준 말. '잘 먹이면 돼.'

 

먹는 것,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생의 욕구이고, 생의 충족이다. 전쟁도 어쩌지 못한 먹을 것에 대한 욕구, 그리고 멀을거리로 통합되는 사람들... 유쾌하다. 이 '푸른파 피망'은.

 

한 편 한 편 따로 따로 읽고 즐기면 되는 소설들이다. 의미가 무엇일지 고민하기보다는 그냥 읽고 즐기자. 즐기는 사이에 의미는 마음 속으로 파고든다. 그러면 된다.

 

소설이 해야 할 첫번째 역할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즐겁게 해야 한다는 것. 이 소설집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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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과 비정상의 과학 - 비정상의 시각으로 본 정상의 다른 얼굴
조던 스몰러 지음, 오공훈 옮김 / 시공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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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과학은 요즘 각광받는 학문이다.

 

우리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많은 요소들이 뇌에서 작동한다고 밝혀졌고, 뇌를 연구함으로써 인간이 지닌 각종 이상 행위들에 대한 치료법도 속속 발견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뇌로 인간의 모든 것을 치환할 수는 없다. 인간에게 뇌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인간 전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도 뇌, 이것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유전이라고 한다, 와 양육이라는 두 가지 요소를 고려해야만 한다고 한다.

 

여기에 뇌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가소성을 지닌 존재라고 하고, 인간의 발달단계에서는 민감기라는 시기가 있어서 어느 순간 뇌가 폭발적으로 발달하고, 급속도로 받아들이는 시기도 있지만, 이 시기가 지난다고 해서 변화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유전으로 결정된 뇌라고 해도, 이 민감기에 어떤 배움과 환경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발전해 간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마도 이 책은 지금까지 발전해온 과학적 성과들을 총동원하여 우리 인간의 뇌와 심리, 행위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이리라.

 

인간 역시 동물이니 동물의 역사를 밝힌 진화생물학과 뇌에 관한 신경과학, 뇌과학, 여기에 유전학과 심리학까지 동원하여 우리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주로 지금까지 인간 행위를 의학에서 설명할 때는 비정상을 중심으로, 즉 증세, 질환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했다면, 이 책은 그 관점을 뒤집어서 정상을 중심에 놓기로 한다.

 

무엇이 정상적인 인간인가? 여기서 질문을 한다. 우리를 이해할 때는 대부분이 정상적일테니, 비정상은 이 정상에서 일탈한 소수일테니, 비정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정상으로 접근해야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정상은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사실 우리에게 정상적인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또는 무엇이 인간을 정상적으로 만드는가? 라는 질문을 하면 우리는 답을 할 수가 없다.

 

마치 미술에서 경계선이 뚜렷하지 않은 스푸마토 기법처럼 인간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다. 이 경계선은 겹쳐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 역시 수학에서 말하는 정상분포도의 그래프로 파악하면 된다. 중앙값과 표준편차. 그리고 양 극단.

 

이 양극단에 해당하는 것이 비정상일테고, 이런 비정상을 정상 분포 안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되는가 하는 점에 대해서 이 책이 고찰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인지심리학, 행동심리학, 분자생물학 등 최신 연구결과들을 중심으로 어떻게 정상 분포 안에 인간이 처하게 할 수 있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 책은 조심스럽다. 인간은 유전자로도 환경으로도 교육으로도 딱 뭐라고 규정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 많은 것들이 종합적이고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존재가 인간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그가 처한 배움이나 환경 또는 시기에 따라서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는 점을 이 책에서는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만큼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라는 얘기다. 그렇기에 평균적 인간, 그것이 바로 이 책에서 말하는 정상이겠고, 인간이 가장 매력적일 때는 평균에 위치할 때라는 이 책의 연구 결과는 이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리라.

 

특별나게 뛰어난 존재가 아니라 평균적인 인간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는 가장 정상적이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매력적이라는 얘기로 들릴 수 있고, 그런 인간은 정상 분포 안에 처한 인간이라는 뜻이기도 하겠기 때문이다.

 

참 많은 이론들이 담겨 있지만 우리 인간을 무엇이다라고 딱 규정짓지 않아서 좋다. 인간을 규정지을 수 있는 수많은 요인들을 알려주고, 그 요인들이 정상 분포에서 벗어났을 때 어떻게 우리들을 힘들게 하는지 보여주고, 그것을 정상 분포 안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그래, 이것이 바로 인간이다. 우리는 이만큼 복잡한 존재다. 그러나 우리들이 모이면 우리들의 정상 분포가 그려질 수 있듯이 우리 인간의 이 정상 분포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좀더 행복한 삶을 영위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명확하게 잘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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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 도서관 - 정기용의 어린이 도서관
정기용 지음 / 현실문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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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오래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순천 기적의 어린이도서관이 생각났다. 그 때 모방송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책을 읽습니다라는 프로그램으로 전국민의 독서열기를 확 끌어올린 적이 있었는데...

 

확 끌어올린 정도가 아니라 그 프로그램에 선정된 책들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엄청난 판매를 자랑하기도 했는데.. 단지 책을 읽읍시다에서 나아가 어린이도서관 만들기 운동까지로 확대되었었는데...

 

당시에는 어린이도서관을 누가 건축했는지 관심이 없었다. 단지 특이한 도서관이었다는 생각만 남아 있었다. 무척 멋있다는 생각과 좀 다르네 했던 생각만.

 

정기용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어린이도서관을 건축한 사람이 정기용이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가 어린이도서관을 짓기 위해서 얼마나 고민을 많이 하고 공부를 했는지도.

 

이 책은 그러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는 그의 노력이다. 기록으로 남겨야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을 수 있고, 좀더 나은 어린이도서관을 건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처음보다는 다음이, 그 다음이 더욱 좋아질 수 있는 기회를 지니기 때문이다. 제대로 기록이 남아 공부할 수 있기만 하다면.

 

순천, 진해, 제주, 서귀포, 정읍, 김해

 

이 책에서는 이렇게 여섯 개의 어린이도서관이 나온다. 기적의 도서관이라고 하는데... 관에서 주도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수 민간에서 주도한 것도 아닌'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일명 '책사회')이라는 단체가 발의하고 관과 반반 나누어 만들어낸 도서관.

 

지금까지는 없던 새로운 도서관. 어른이 중심이 아닌 아이가 중심이 되는 도서관. 주변을 무시하고 돌출하지 않고 주변과 어울리는 도서관, 그래서 기적의 도서관이다.

 

이 기적의 도서관 운동 다음에 우리나라 곳곳에 도서관이 많이 생겼다. 이제는 도서관에 대해서는 그렇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그토록 많이 생긴 도서관 운영이 잘 되고 있을까?

 

정기용은 기적의 도서관이라는 책을 통해서 어린이도서관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고, 도서관이 어떻게 운용되어야 하는지도 보여주었다.

 

우리나라 전통 생활방식을 살려 신발을 벗고 들어가게 바닥에 모두 온돌을 깐 도서관, 아이들의 특성을 고려하여 아이들이 숨을 수 있는 공간도, 탁 트인 공간도, 자유롭게 누울 수 있는 공간도, 바른 자세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도 만들어 놓았다.

 

무엇보다도 책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하게끔 도서관 맨 앞에 세면대를 설치해 손을 씻고 책을 볼 수 있게, 나름 경건한 의식을 행할 수 있게 하였다.

 

그래서 도서관 건축에 대해서 인식 전환을 이루어내었다. 여기까지는 성공이다. 이 책은 그 점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지금 도서관의 현실은 어떤가? 이 질문을 해야 한다.

 

정기용은 "감응의 건축"에서 건축에 드는 비용도 그렇지만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을 책정하고 그것들을 엄중하게 집행해야 한다고 했다.

 

즉 처음에 만들어진 것을 그대로 현상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사용하는 사람들의 특성에 맞게, 편리에 맞게 고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유지보수 비용이 필수적이다.

 

또 도서관은 운영하는 사람들이 중요하다. 순천 기적의 도서관은 자원봉사자들이 잘 조직되어 잇다고 하지만, 도서관은 공공기관이다. 자원봉사자는 말 그대로 자원봉사자다. 이들이 주가 되지 않고 도서관 사서들을 중심으로 한 직원들이 주가 되게 하여야 한다.

 

그런데 책 3부를 보면 현재 운영에서 가장 취약한 점이 바로 운영하는 직원들의 숫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들에게 너무 과도한 업무를 주고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미래를 이끌어갈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어린이도서관이라고 해도 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도서관을 운영하는 직원들의 숫자와 근무여건, 대우들에 신경써야 한다.

 

도서관 인프라는 많이,, 잘 구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인적 인프라를 구축할 때다. 인적 인프라는 구축되어 있는데, 그들을 활용할 도서관이 없다면 그것은 문제다. 도서관의 직원들이 과로하지 않게 과중한 업무가 아닌 자신의 능력에 맞는, 또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정도의 업무를 할 수 있게 도서관 직원의 숫자도 신경써야 한다.

 

이 책에서 이미 어린이도서관은 어떠해야 함을 너무도 잘 보여주고 있다. 벌써 20년이 되어간다. 그렇다면 이제는 도서관 내부, 사람의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제 기적은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이 정기용이 해놓은 일을 계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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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걸어 두는 나무 모퉁이책방 (곰곰어린이) 3
마리안느 머스그로브 지음, 김호정 옮김 / 책속물고기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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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을 걸어두는 나무"

 

제목을 보자마자 한 때 우리나라에서 유행했던 "걱정인형"들이 생각났다.

 

'걱정은 저희에게 맡겨두세요.'하던 그 인형. 내 걱정을 인형에게 맡기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된다는 그런 광고.

 

무슨 보험회사 광고였는데, 참 기발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게 어느 한 순간 뚝 떨어진 생각이 아니었음을, 걱정을 다른 존재에 맡기고 자신이 할 일을 하는 풍습이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호주에서 발간된 소설이다.

 

줄리엣이라는 소녀가 자신이 방을 얻게 되고, 그 방에서 오래 전부터 있었던 걱정나무를 발견하고, 할머니에게서 그 유래를 듣고 자신의 걱정을 걱정나무에게 맡겨두면서 지내게 되는 이야기.

 

걱정나무에게 걱정을 맡겨두고, 그 걱정을 다시 찾아 걱정의 무게에 짓눌려 지내게 될까? 아니다. 걱정을 맡겨두었다는 것은 그 걱정에 자신이 짓눌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걱정과 거리를 둘 수 있다는 얘기다. 걱정과 한 몸이 되지 않고 걱정을 멀찍하게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는 얘기. 그것이 바로 걱정나무가 하는 역할이다.

 

자, 네 걱정이 바로 여기에 있어. 잘 봐. 별거 아니지. 별거 아니야. 하는 것.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다면 마음이 한층 가벼워진다. 미칠 것 같은, 죽을 것 같은 고민도 털어놓기 시작하면 이상하게 그 고민의 무게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별거 아닌 것으로 느껴진다.

 

그만큼 고민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걱정나무가 하는 역할이다. 이 책에서는 걱정나무에 각 동물들이 앉아 있다. 그 동물들은 여러 고민을 나누어 맡는다. 딱히 무어라 정리할 수 없는 고민은 나무 구멍에 맡기면 된다.

 

줄리엣은 걱정나무를 통하여 자신이 지니고 있는 고민을 내려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깨닫는다.

 

'이 세상 모든 문제를 내가 다 해결해야 하는 건 아니었구나.'

 

모든 문제가 자신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는 습관이 있던 줄리엣이 이런 점을 깨달아가면서 이제는 자신의 문제에서 회피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한다.

 

소설이 맨 마지막에 그토록 자신을 괴롭히던 '휴'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줄리엣이 이제는 당당한 주체로 섰다는 말이 된다.

 

수많은 걱정이 난무하는 시대... 단지 줄리엣같이 자라나는 청소년, 어린이만이 아니라 어른들도 나만의 걱정나무, 걱정인형을 지니고 걱정을 맡겨두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또 어른들은 자기 자식들에게 이런 걱정나무들을 하나씩 선물하면 어떨까? 아이 방 벽지에 나무 하나 잘 그려넣으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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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밤 이야기 단비 청소년 문학 42.195 2
박정애 지음 / 단비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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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에 속하는 우리나라.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제 삶의 무게에 짓눌려 세상을 등지기도 하는 나라.

 

세상을 등지려고 할 때 그 때 기댈 수 있는 몸을 누군가가 주기만 한다면, 어려운 환경에서도 무언가 잡을 것만 있다면 그것을 잡고 놓치지 않고 제 몸을 지탱해가면서 꽃을 피우는 나팔꽃처럼(파란 나팔꽃) 생명을 지켜나갈 수 있을텐데.

 

맨 밑바닥까지 떨어져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상태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개뿐.

 

올라가거나 그냥 주저앉거나.

 

이 소설은 이러한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을 다루고 있다. 밑바닥까지 추락했음에도 그 밑바닥에서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는 사람들 이야기.

 

그 희망이 친구이든(정오의 희망곡), 자신의 귀에 들리던 발소리, 그리고 자신과 하나임을 알게 해주는 남편이든(첫날밤 이야기), 자신 때문에 아빠가 죽었다는 자책에 시달리는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든(살 자격), 아니면 세상물정 모르고 밝은 모습을 보여주는 아이든(아주 오래된 하루), 말을 걸어줄 수 있는 나팔꽃이든(파란 나팔꽃) 무엇이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으면 삶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소설.

 

성적때문에 절망의 늪에 빠지고 가족과 갈등이 일어나는 학생이라면 '정오의 희망곡'을 읽으며 공감하고, 공감하고, 그래서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이 있음을, 이들이 모두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며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 소설집의 맨 첫부분에 나오는 '정오의 희망곡'은 말 그대로 우리에게 희망을 주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집의 제목이 된 '첫날밤 이야기' 역시 주체로 서는 여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시댁의 횡포에 맞서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작은아기를 통해서는 당당한 주체로서 살아가야 함을, 그것이 바로 생명의 힘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살 자격'은 자책감, 죄의식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눈으로 자신의 삶을 볼 필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그냥 설교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 내가 죽는 것이 과연 내가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유일한 방법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죗값. 그건 반드시 치러야 한다. 그 죗값이 바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는 갚아지지 않는다. 그런 죗값은 다른 이의 목숨을 살리는 일로,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게 하는 일로 갚아질 수밖에 없다.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통하여 그 점을 일깨워주고 있어서, 한 때의 실수로 자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안 좋은 수렁 속으로 자꾸만 빠져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그것이 옳은 길이 아님을 깨달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아주 오래된 하루' 역시 마찬가지다. 불행의 중첩이다. 어른이 된 태호가 겪는 불행은 그가 어렸을 때 겪은 불행과 판박이다. 그의 형 태복이 말했다고 한다. 아이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죽은 부모는 부모도 아니라고. 그런 태복도 사고로 죽고 태호는 나락의 생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른이 되어 '여름'이라는 아이의 아빠가 되고서도 그가 겪은 불행은 계속 반복된다. 이럴 때 그는 어떤 선택을 하는가? 극단의 선택? 아니다. 그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한다. 살아남아야 '여름'이에게 아빠 노릇을 할 것이 아닌가. 여기에서도 그를 삶으로 이끄는 끈이 있다. 바로 장형사인데...

 

아주 작은 끈이라도 이끌어주는 끈이 있다면 그 끈은 바로 생명줄이 된다. 튼튼한 생명줄.

 

'파란 나팔꽃'도 마찬가지다. 전신불구가 된 남편도 나팔꽃에게 이야기를 하고, 그 아내도 나팔꽃에게 이야기를 하고, 중학생 아들도 중2병을 앓을 수도 없는 그 아들도 나팔꽃에게 이야기를 한다.

 

나팔꽃은 기댈 줄만 있어도 자신의 몸을 지탱하고 꽃을 피운다. 계속 뻗어나간다. 이 소설집의 마지막이 이 소설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는 모두 힘들다.

 

힘들어 죽을 지경이라고 한다. 정말 힘들다. 아이는 아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힘든 가운데서도 우리들끼리 서로 손을 내밀어야 한다. 이 나팔꽃처럼 잡을 줄만 있으면 어떻게든 그것을 움켜쥐고 삶을 유지해 나가니까.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누군가를 위해서, 또 자신을 위해서 꽃을 피우니까. 그러니까 힘들어도 우리 주변에 우리가 기댈 무언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또 우리 역시 누군가가 기댈 무언가가 되어 주어야 한다는 것도 명심해야 한다.

 

이 소설집에서는 그런 점들이 너무도 잘 표현되어 있다. 이렇게 서로를 삶으로 이끌어주는 줄이 있음을, 기댈 수 있는 기둥들이 있음을 소설이라는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살아라. 넌 살 자격이 있다. 아니 살아야만 한다. 그것은 네 의무이자 권리다. 

 

덧글

 

사실 이 소설집에는 소설이 한 편 더 있다. '젖과 독'이라는 아마도 조선시대로 추정되는 시대의 궁궐을 배경으로 한 소설. 신분사회, 선택이 여지가 없는 그런 시대에 왕세자로 태어났다는 것, 적성에 맞지도 않은 공부를 하고, 누구에게도 위안을 받지도 마음을 털어놓지도 못하는 왕세자의 모습. 유모의 젖에서 위안을 느꼈으나 이제는 그나마도 느낄 수 없는. 아직 세자빈은 그 역할을 못하는. 그래서 '독'을 생각하고, 그 '독'에 자신의 몸과 정신을 침식당하고 있는 왕세자.

 

이 소설집에서 유일하게 어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어떻게 희망이 있겠는가? 자신의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닌데... 그냥 처연하게 왕세자의 모습을 따라갈 뿐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아무리 세상이 암울하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다. 그 의지를 우리가 발휘할 수 있다.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선택을 할 수가 있다. 그러니 이 소설을 통해 선택을 할 수 있는 우리 사회에서 우리는 왕세자와는 다르게 행동해야 함을 생각할 수 있다.

 

그 선택에 바로 우리는 서로 기댈 수 있는 기둥, 줄들을 마련할 수 있고, 주변 사람에게 손을 내밀 수 있다. 이 소설을 통해 다른 소설들의 의미가 더 살아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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