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강설 사서삼경강설 시리즈 6
이기동 옮김 / 성균관대학교출판부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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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이 별 거 아니고, 오히려 진부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이야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젊은시절, 앞만 보고 내달리던 그 시절엔 고전이란 과거의 유물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고전하면 우선 떠오르는 생각은 고리타분하고, 웬지 상투를 튼 아저씨들이 공자왈 맹자왈 한다든지, 아니면 현실과는 상관없는 구름 따먹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쉽다.

 

또 이제는 스마트한 시대가 되어서 고전은 정말로 고리타분한 옛것, 박물관에나 있어야 할 기념품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고전이란, 고전이라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시대의 검증을 거쳐 이겨냈다는 이야기다.

 

여러 시대에 걸쳐 수많은 검증을 거쳐 사람들의 삶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는 인정을 받은 것들이 고전이라는 이름으로 우리 곁에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고전은 박물관에 있어야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삶 곁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고전이란 예나 지금이나 도덕적인 소리, 옳은 소리라는 인식만을 지니고 그래서 고전을 배운다는 것은 삶의 즐거움을 어느 정도는 포기한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데.. 고전을 공부함으로써 삶이 더욱 즐겁고 풍요로와질 수 있는데... 마치 요즘 어려운 시대에 인문학 공부의 붐이 일어나듯이 말이다.

 

우연히 서경을 펼쳐들게 되었다. 서경, 4서 5경 중의 하나. 그냥 지식으로만 외우고 있었던 이 책은 그래도 논어나 맹자는 한 번쯤 호기심에서라도 읽어보기라도 하지만 서경은 그냥 책 제목만으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다.

 

서경에 대한 관심은 최근에 "상서 깊이 읽기"란 책에서 비롯됐다. '상서'가 서경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기도 했고, 여기에 나오는 '바람과 풀'의 이야기를 김수영의 '풀'이란 시에 대입한 글을 읽은 적도 있기에 그렇다면 마음 먹고 서경을 한 번 읽어보자 한 것.

 

하나라, 은나라, 주나라의 이야기다. 이 중에 주나라의 이야기가 가장 길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요, 순, 우, 탕이라는 임금과 주문왕, 주무왕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냥 왕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치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천명을 이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주나라까지의 역사를 통해 후세인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책이다.

 

군주와 신하, 백성의 관계를 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데...

 

어쩌면 이 책을 지금의 정치가들이 읽는다면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정치란 이래야 한다는 주장이 잘 나타나 있다.

 

공자가 본받고 싶어했던 주공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결국 주공은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건국한 정당성을, 백성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또 전 나라인 은나라 신하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이 말들을 통해 정권교체기의 정치가들이 자신이 어떻게 정치를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보는 지침으로 삼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경에 나오는 바람과 풀의 비유보다는 당태종이 말했다는 물과 배의 관계가 더 백성과 군주의 역할과 일치한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래도 바람이 제대로 불지 않을 때 풀들이 얼마나 힘들지는 바람과 풀의 비유를 통해 알 수 있지 않은가.

 

그 바람에 기뻐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꺾이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는 풀들의 모습, 그러나 바람이 지나간 다음에 다시 자신들이 몸을 꼿꼿이 펴는 풀들.

 

이것이 어찌 옛날의 모습만이겠는가. 지금 우리 시대의 모습이기도 하지 않는가.

 

이렇게 생각해 보면, 서경은 정치가들의 필독서이기도 하겠지만, 나와 같은 일반 국민들이 필독서이기도 하겠단 생각이 든다.

 

바람과 함께 하는 방법을, 또는 바람을 이기는 방법을, 그 바람이 좋은 바람이 되게 하기를 우리 역시 바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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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 - 행복할 경우 읽지 말 것!
아르튀르 드레퓌스 지음, 이효숙 옮김 / 시공사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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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였던가, 치르치르 미치르가 파랑새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가. 결국 파랑새는 자신들의 곁에 있다는 그 도덕적인, 당연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이야기.

 

이 동화를 간단하게 줄이면 행복은 마음 속에 있다가 되고, 이를 종교적으로 표현하면 원효대사의 한 마디, 일체유심조(一切有心造)가 되고, 의학자인 프랭클의 말로 하면 행복은 의미를 찾는데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깨달음을 얻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랴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인생의 의미, 또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려면 어느 정도 인생을 산 나이 든 사람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젊은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 "네가 뭘 알아? 네가 인생을 살아봤어?"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쓴 사람, 그것도 용감하게 제목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붙인 사람, 또 작은 제목으로 '행복할 경우 읽지 말 것!'이라고 한 사람은 젊은 사람이다. 책에 있는 작가소개에 정확히 나와 있지 않은데, 20대 중반이라고 한다. 책 내용에서 유추하면 기껏해야 25세이다. 25세란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직장도 갖지 못했을 확률이 높은, 그래서 인생경험이나 사회경험이 거의 없다고 여겨지는, 이런 나이대의 사람이 이런 제목의 책을 쓰면 '웃기는 소리'나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라는 소리를 듣기 쉬울텐데...

 

인생에 대해서, 행복에 대해서 아는 것이 나이와 비례하지는 않는데, 또 역사를 살펴보면 큰사상을 이룩한 사람들은 이미 젊은시절에 그것을 이루었는데, 예수도, 부처도 그리 나이가 많다고는 할 수 없는 나이였으니, 나이를 따지지는 말자.

 

그냥 책을 읽으면 된다. 어쩌면 작은 제목은 당연한 말이 된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책"을 이미 행복한 사람이 일을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에 눈길이 가고, 손에 드는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테고, 이들은 지금 자신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책의 도움을 얻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이 책을 읽으며 행복에 대한 답을 얻으려 할 것이다. 그리고 읽은 다음 "뭐야, 이거. 도대체 뭔 소릴 한 거야?"할 테다.

 

무슨 철학적인 내용이 있지도 않고, 그렇다고 구체적인 방법론도 없고, 그냥 자신의 일상을 책에 담고 있다.

 

기대했던 "행복론" 또는 이상하게 당위적인 말로 너무도 지당한 말로 행복은 이런 거야 하는 말도 없다.

 

20대 젊은이의 일상이 책에 담겨 있을 뿐이다. 다만 그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불행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게 된다.

 

요즈음의 생활양태에 맞게 이 책의 전개는 무지 빠르다. 그리고 편제도 보통의 책처럼 글자가 많이 배열되어 있지도 않다. 그림과 글이 적절히 어울리고 있으며, 글은 짧은 편에 속한다.

 

속도감이 느껴진다.

 

20대에 권태를 느끼고 은퇴를 생각하는 친구에게 자살을 이야기한다. 은퇴와 자살이 무엇이 다르냐고 하면서. 어짜피 끝 아니냐고.

 

하지만, 이는 직선적인 사고다. 출발에서 이미 끝을 보고 달리는 경우에만 해당한다. 그러나 출발에서 끝을 볼 수는 없다. 인생은 직선이 아니기 때문이고, 인생은 단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출발하여 끝으로 가는 과정은 숱한 일들로 채워져 있다. 이 일들은 정해져 있지 않다. 많은 경우 우리가 우연이라고 하는 일들로 점철되어 있다. 그런 우연들에 대해 우리는 그냥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해석을 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행복에서 멀어진다. 즉, 행복은 인생의 과정이다. 이쪽도 저쪽도 모두 존재하는. 그러한 과정들이 모여 우리는 삶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삶이라는 직업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시간의 뒤를 볼 필요는 없다. 시간의 뒤를 보면 해석이 개입하게 되고, 이는 자책과 후회로 연결되게 된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앞을 보면 된다. 그리고 그 순간에 충실하면 된다.

 

어짜피 출발점은 이미 지났고, 끝은 아직 오지 않았다. 나는 지금 무수한 일상들 속에 있다. 그리고 이 일상속에서 삶이라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은 바로 행복이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책을 읽는 일은 바로 그 순간은 다른 것을 잊고 책에 집중하기에 행복해진다. 행복하게 된다. 또한 이 책을 놓는 순간은 그 순간으로 다 읽었다는 만족감에 행복해 진다. 결국 이 책을 읽었다는 행위 자체가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읽지 않을 정도로 자신이 행복하기에 역시 행복하다. 참 재미있는 제목이다. 읽거나 읽지 않거나 우리는 모두 행복하다.

 

불행하다고 생각한다면 한 번 읽어 보자. 무엇이 행복인지...

 

행복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책도 있구나 하자.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도 행복이니까... 

 

결국 우리의 일상이 바로 행복이다. 바로 파랑새다. 그 파랑새가 우리 주변에 너무도 많이 있다. 그걸 알아차리라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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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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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죽음이란 두려운 대상이다. 도대체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막연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다. 이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죽음에 대해서 많은 책들도 나와 있고, 많은 종교도 생겨있다.

 

죽음, 인간에게 주어진 영원한 화두라고 있는데, 이러한 죽음에 대한 강의가 예일대에서 있었다고 한다. 그 강의를 바탕으로 책으로 내었고.

 

죽음에 대해 종교적인 차원에서, 또는 과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고 철학적인 차원에서 접근했다고 봐야 한다. 윤리학이 철학의 한 분야이니.

 

삶을 전후로 죽음이 있는데, 삶의 전후에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존재에 대한 논의가 타당하지 않다는 말은 당연하게도 들린다. 이런 생각을 하면 죽음에 대해 위안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런 해답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존재일 때는 이미 생각을 할 수 없기 때문이고, 그런 비존재에 대해서 생각하는 존재는 살아있는 존재, 삶을 누리고 있는 존재이고, 이 삶을 누리고 있는 존재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즉 미래를 현재로 끌어오면서 두려움에 쌓이게 되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알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그런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 책은 여러가지 사례들을 들어 설명해 내고 있다.

 

읽으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다. 아니 이게 어디 책 한 권으로 정리될 문제이던가. 그런 문제였다면 그 많은 사상들과 그 많은 종교들이 나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다만 다시 한 번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는 것이 이 책을 읽은 의미일 것이다.

 

책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우리는 죽는다. 때문에 잘 살아야 한다. 죽음을 제대로 인식한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행복한 고민을 할 수 있다. (507쪽)

 

그렇다. 확실한 것은 우리는 죽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음 이후는 모른다는 것이다. (내세를 믿는 종교인들도 영생을 믿는 사람들도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그들이 어떻게 될지 잘 모른다. 심판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이 어떤 심판을 받을지는 확실히 모른다.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 아님 환생을 할지. 다만 예측을 할 뿐이다.)

 

여기서 우리는 죽기 전에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해져 있는 인간의 수명 (그래서 우리는 모두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속에서, 존재하는 동안,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이다.

 

어떤 삶이 가치 있는 삶일지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런 가치 있는 삶을 실천하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르게 볼 수 있는 관점을 지녀야 하는 것.

 

결국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잘 살 것인가라는 질문이 된다.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는 당위가 된다. 잘 사는 것은 죽음에 대한 책임이자 의무이다. 

블랙홀- 죽음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간다는

누구는 시간까지도

빛까지도 들어가

나오지 못한다고 말한 세계

또 누구는 들어가는 곳이 있으면

나오는 곳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다른 세계로 가는 길목이라고 말하기도 하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잊기 위해

이 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하여 이 세계와 저 세계의 경계에 놓여

각기 다른 세계를 볼 수 없는,

한 세계에선

단 한 번 경험으로

끝내야 하는

블랙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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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콜버그의 호프집 - 통념을 깨는 윤리학
이한 지음 / 미토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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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목에 있는 콜버그를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고등학교를 나왔으면 윤리시간에 도덕발달단계 하면서 외우기라도 했으려나? 단지 시험을 위해.

 

이 책에서 제목을 콜버그의 호프집으로 했지만, 콜버그의 이론을 설명해주는 책은 아니다. 단지 우리나라 사람들의 도덕 수준이 콜버그의 분류를 따르면 하위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그것은 상당히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서 제목을 이리 붙였다고 생각한다.

 

더한 문제는 우리 자신이 도덕의 하위 단계에 속해 있으면서도(이는 원초적인, 일차적인 욕망에 우리 사회에 휩싸여 있다는 말도 된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을 처음에 지적한다. 도덕과 윤리, 또한 기존의 허위의식과 윤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자기기만에 빠려 있는 사회에서는 윤리적인 사고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사실. 이러한 윤리적인 사고가 부족하기에 논쟁은 커녕, 목소리로 누르려 하거나, 힘으로 누르려 하는 모습만 보이고 있는 현실.

 

정치권을 필두로 경제권, 법조계, 교육계 등에서 이러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윤리를 빙자한 허위들의 범람.

 

그런데 윤리란 무엇인가? 생각해보면 도대체 윤리가 뭐지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도 윤리와 도덕, 법과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부분이 있는데, 법을 윤리가 포함하고 있는, 즉 윤리는 법의 필요존건이고, 법은 윤리의 충분조건인 상태를 윤리가 잘 발현되는 상태로 이야기하고 있다.

 

법은 윤리에 포함되는 하나의 영역. 그럼에도 윤리란 말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 자유권의 경계, 간통, 포르노, 국가보안법, 세금, 여성의 사회참여, 복권, 징병제 등이다.

 

이런 상황을 보니, 윤리에 대해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이 윤리를 정의로 치환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결국 윤리란 무엇인가라는 말을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말로 바꾸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가장 정의로운가를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나 할까?

 

이 책에서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도 로크나 롤스 같은 사람들은 정의에 대해서 논한 사람들이니, 윤리를 정의로 치환하여 생각을 해도 별 무리가 없을 거란 생각이 든다.

 

자유권의 경계에 대해서는 우리의 자유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으며, 간통과 포르노에 대해서는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통념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고 있다. 이를 자유권, 또는 윤리의 관점에서 판단해 보면 지금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통념은 고정관념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신의 관점에서 이것도 정의란 관점에서 생각해도, 이 책에서 논한 결과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고...

 

국가보안법은 더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자유나 정의의 문제가 아니라, 힘의 문제로 유지되고 있으니 말이다. 힘의 논리로 자유, 정의의 논리를 누르고 있는 상태는 윤리적인 상황은 아니니, 국가보안법 문제는 철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런 책을 읽어도 이미 이 책의 논리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읽으니, 정작 읽어야 할 사람들은 읽지 않고 생각을 하지 않고 사회적 통념만을 유지하고 있으니...

 

세금과 여성의 사회참여에 대해서는 지금도 논쟁 중이다. 그래서 참조할 게 많다. 아마도 다수결의 원칙이 아니라, 무엇이 정의로운가로 접근을 한다면 이도 우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징병제도 현실의 논리, 힘의 논리가 아니라 정의의 논리, 윤리의 논리에서 접근해야 한다. 접근의 방식이 달라지면 대책이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이 책은 징병제에 대한 대책으로 모병제를 다루고 있는데, 지금은 논의가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이미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으니...

 

군대가 꼭 필요할까? 군대를 없앤 나라도 있는데... 군대는 윤리적으로, 아니 정의의 면으로 보았을 때 필요한 존재인가? 이런 근본에서부터 문제에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현실 논리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현실을 추구하기 위해서 정의, 윤리의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이니...

 

접근은 근본에서부터, 그러나 대책은 현실적으로... 이것은 모순인가? 아닐 것이다. 완전한 윤리, 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되, 지금 이 자리에 맞는 윤리, 정의도 추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소설 식으로 쓰였지만, 갈수록 읽기가 어려워진다. 아마도 논하는 내용이 어렵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이는 여러 철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 법학적 지식이 필요하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이 책의 효용성은 우리가 그렇겠지라고 생각하고 만 사항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하는데 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언제까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로 살아갈 것인가. 이 책은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바르게 생각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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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워야 사람이다 - 고전으로부터 배운다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 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4
윤천근 지음,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 글항아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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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부끄러움에 관한 책을.

윤동주는 부끄러움의 시인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서시'만 보더라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로 시작하고 있다.

이런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왜 사람에게 중요한지를 윤동주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이광수와 비교를 하면서 말이다.

 

부끄러움을 다른 말로 하면 성찰이다.

성찰이 바로 우리를 사람답게 해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치열한 자기 성찰, 이것이 바로 부끄러움의 다른 모습이다.

성찰하지 못하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기 성찰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바로 자기 자신을 남의 자리에 놓아야 한다. 남의 자리에 놓인 자신을 엄정하게 평가하는 모습, 이것이 바로 자기 성찰이다.

그리고 이러한 성찰을 통해 부끄러움이 나온다.

부끄러움을 알면 고치게 된다

 

속된 말로 싸가지 없는 사람이라는 말이 있다. 싸가지를 사가지로 적어놓고 보면, 사람이 갖추어야 할 요소 4가지를 갖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면 4가지는 무엇일까? 유교에서 말하는 인의예지(仁義禮智)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요소 아니던가.

또 4가지를 예의와 염치로 볼 수도 있다. 결국 인의예지나 예의와 염치가 없는 사람은 사람 축에 들지 못하고 비난을 받는 존재일 수밖에 없다.

 

이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요소가 바로 부끄러움이다. 그러한 부끄러움은 성실과 끈기를 지녀야지만 유지될 수 있다. 부끄러움을 지니고 산다는 일, 그것이 결코 쉽지 않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끄러움에 관한 옛사람들의 글을 모아놓았다. 단지 공자와 맹자의 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삼국사기나 삼국유사에서도 골랐으며, 또한 중국의 유명한 학자인 정호, 정이, 주자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자인 김시습, 이황, 조식, 이이의 글에서도 골랐다.

 

중국과 우리나라를 아울러 부끄러움에 관한 글을 모아 그것에 대한 해설을 덧붙임으로써 부끄러움에 대한 성찰을 하게 만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가히 부끄러움에 관한 '고문진보'라 할 수 있다.

 

부끄러움, 사람됨의 기초일텐데... 가끔 보면 부끄러움을 잃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것도 사회지도층이라는 사람들에게서. 그런데도 그들은 당당하다. 아마도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의 부끄러움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런 모습은 사람의 모습이 아니라 짐승의 모습임을 알 수 있을텐데...

 

글을 읽기는 쉬워도 행하기는 어렵다고 했는데... 글조차 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현실.

우리, 사람됨의 기준으로 '부끄러움'을 두자. 저 사람은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가? 아닌가를 평가의 기준으로 두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남을 보는 기준만이 아니라, 나를 보는 기준으로도 '부끄러움'을 두자. 나는 부끄러움을 아는 사람인가. 과연 나는 자기 성찰을 하고 있는 사람인가?

 

부끄러움에 관한 '고문진보'

방대한 고전을 다 읽기 힘들 때 부끄러움에 관해서, 성찰에 관해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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