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국의 위기 - 정치에서의 거짓말.시민불복종.폭력론 한길그레이트북스 117
한나 아렌트 지음, 김선욱 옮김 / 한길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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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1조다. 우리는 공화국에 산다. 그런가? 그렇다고 대답을 해야 한다. 공화국에서는 국민들은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하며, 자신의 정치적인 참여를 제약받지 않아야 한다. 표면상으로, 우리나라는 헌법이라는 권력 유지 체제를 지니고 있어서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공화국이 위기에 처해 있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국민들로부터 권력을 위임받은 사람들은 부정과 부패에 연루되어 있고, 탈법에 범법까지 자행하고 있으며, 이러한 위임받은 권력에 대한 견제가 이루어지지 않아, 국민들은 무력감에 빠져 있다.

 

그렇다고 폭력 상황으로 나아갔냐면 그것은 아닌데, 연일 폭력이라고는 학교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으니, 정치권력이 붕괴되고 있는 지금, 학교폭력을 다루면서 정치권력의 붕괴를 희석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의 눈길이 가기도 한다.

 

이 때 아렌트의 책에 이런 구절이 나왔다.

 

"자신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가 반대하지 않을 때는 일단 자기가 동의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것은 아렌트가 이의를 제기할 권리를 말하고, 이를 집단적으로 말할 때 시민불복종이 된다고 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그런데 이를 거꾸로 생각하면, 우리가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권력을 쥐고 있는 집단은 우리가 동의한다고 여기고 자신들의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 애쓸 것이다. 그러니 그건 내 양심에 맞지 않아 하고 속으로만 불평해서는 안되고, 이를 행위로 나타내야 한다. 이처럼 시민불복종은 결코 양심의 운동이 아니며,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행사하는 행위에서 나오는 권력이라고 한다.

 

그렇다. 양심이 아니라 행위다. 그렇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아니면 벌어졌던 수많은 행위들은 -촛불부터 희망버스, 희망비행기, 하다못해 삼보일배까지- 나 자신의 양심 선언이 아니라, 우리들의 시민불복종 운동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한가지가 빠져 있단 생각이 든다.

 

그 무엇은, 이 생각들이 우리들의 양심에 의해서 행위한다가 아니라, 우리의 이런 행위들이 하나의 정치적 목적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으로 전환되어야 하며, 이를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집단의 의견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행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고 행위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모든 행위들은 단발성으로 끝나고, 결코 사회를 변혁시키지 못하게 된다. 아렌트의 시민불복종이란 이 책의 내용을 따라가면 그렇게 된다. 그리고 사실 그렇게 되었다.

 

이렇게 된 데에서는 이러한 변혁을 추동할 집단이 없다는 점과, 그리고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젊은세대의 부족이 원인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이 책 마지막 부분에 실린 아렌트의 말

 

"대학은 젊은이들이 수년 동안 모든 사회적 집단과 사회적 의무에서 국외자의 입장에 서게, 즉 진실로 자유로울 수 있게 해줍니다."

 

이 말이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시민불복종이 사회변혁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대학은 학생을 자유롭게 해주지 못하고, 학생을 자본의 틀에 얽매이게 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래서 가장 자유로울 세대가 가장 자유롭지 못하다는 역설이 성립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권력의 누수가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대체 권력은 형성되고 있지 않다. 준비된 집단이 없다는 말과도 같은데,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이 사회는 어느 정권이든, 권력이 새는 상태로 계속 존재할 수밖에 없으리라.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꿈꾼다면, 그것은 개인에게서가 아니라 집단에게서이다. 이를 명심한다면, 이 책의 1부에서처럼 정치권 자신도 자신들이 속고 있는 상황일테니, 우리가 현실을 바로 보는 태도를 지니고, 우리라는 집단의 의견을 형성해서 이를 관철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얼마나 좋은가? 이미 우리는 너무도 좋은 수단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이 책, 특히 시민불복종 부분, 참조할 사항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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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한길그레이트북스 11
한나 아렌트 지음 / 한길사 / 199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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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고민하는 책이기도 하고, 인간의 삶을 조건지우는 요소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책이기도 하다.

 

유명한 단어들이 등장하는데, 노동, 작업, 행위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세가지 조건이라고 한다. 여기에 사유니 관조니 하는 다른 요소들이 있기는 하지만, 활동적 삶이라고 하는 이 인간의 조건이라는 책에서는 노동, 작업, 행위가 주요 요소로 나오고 있다.

 

노동은 우리가 태어나서 죽을 수밖에 없다는 운명에서, 필연성에서 도래하는데, 이는 우리에게 자유를 느낄 틈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죽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을 한다. 여기에 자유가 개입할 여지가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노동은 순환적이다. 이는 자신의 후손들을 생산하는 데서, 즉 다산성으로 나타난다. 노동의 필연성이 다산성을 유발하고, 이 다산성이 인간의 조건을 형성한다.

 

그러나 죽음의 존재들은 불멸을 꿈꾸기도 한다. 아니 꿈꾼다. 의식이 있는 존재가 자신의 유한성을 깨달았을 때, 그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그는 생각이 없는 존재, 즉 사물에 불과하다. 그러한 불멸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작업이다. 자신이 생산물을, 즉 노동에서처럼 한 번 사용하면 사라지고 마는, 그래서 사라져서 순환성을 일으키는 노동 생산물이 아니라, 순환성을 깨는 불멸성을 지니는 대상을 창조하는 노력이 바로 작업이다. 유한한 인간이 무한을 꿈꾸며 자신의 현존을 후대에게도 알리고 싶은 욕구가 바로 작업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과 작업은 결국 생산물에 관계하고, 이는 인간의 자유를 구속하는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인간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지는데, 이것이 바로 공론 영역, 즉, 공적인 영역이다. 이 공적 영역을 정치 영역이라고 할 수 있고, 정치 영역을 구성하는 인간의 조건이 바로 행위이다. 이 행위는 자신의 존재 전체를 던지는 용기가 필요하고, 이 용기는 바로 자유에서 발생한다고 한다.  또한 이 행위는 바로 나와 같은 남을 전제로 해야만 하기 때문에, 행위에 대한 용서와, 남을 의식한 약속 이행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만 한다고 한다.

 

나와 남이 관계를 맺어가는 공간에서는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기 때문에 용서와 믿음이 필수적이라고 하는데, 이를 행하는 공간이 바로 정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생물학적인 삶을 유지하는 공간이 아닌, 실존적인 삶을 영위하게 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략 정리를 하면 노동과 작업은 개인의 영역이라고 한다면, 이를 사적 영역이라고 하자. 행위는 공적 영역, 요즘 말로 하면 사회적 영역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태어남이라는 기적을 지닌 인간이 자신의 삶을 유지하는 요소로 노동과 작업을 지니고 있다면, 같은 기적을 지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인간적 삶을 유지하는 요소에는 행위가 있다.

 

이러한 행위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하여 노동에게 자리를 내주게 되는 사태가 지금의 현실이고, 우리는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사유의 힘을 필요로 한다. 노동이 행위를 전복시키고, 노동행위만이 전면에 나서게 된 이유는 과학기술의 발전에 있지만, 이에 몰입하다보면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게 되는 자유를 상실하고, 필연성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한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바로 이 현실을 직시할 정신의 힘, 아렌트가 나중에 전개하고자 했던 사유, 의지, 판단을 필요로 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인간의 활동적 삶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으므로, 노동, 작업 , 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하고 있다.

 

쉽지 않은 책이고, 어떻게 이해해야 잘 이해했는지 알 수 없는 책이다. 많은 부분이 그리스 철학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근대 철학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핵심을 잘 잡아내기 힘들다. 철학적 소양이 부족한 나에게는 말이다.

 

다만, 그냥 내 맘대로 이해하고, 이를 내 삶에 적용시켜야지 하는 생각으로 끝까지 읽고 나간 책인데...

 

과연 인간의 조건이란 무엇일까...지금, 우리 시대에 어떤 삶을 살려고 노력해야 인간적인 삶을 향유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다.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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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론 한길그레이트북스 61
한나 아렌트 지음, 홍원표 옮김 / 한길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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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자유 없는 혁명은 실패한 혁명이다

 

아렌트의 혁명론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이것이다. 혁명은 공적 자유를 창출해야만 한다. 공적 자유를 창출하고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 혁명은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공적 자유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공적 자유를 정치적 자유라고 하면, 또 인간이 다른 누군가에게 자신의 권력을 양도하지 않고, 공적인 분야에서 자신의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니고 있는 상태라고 정의한다면, 이는 평의회라고 하는 작은 집단에서 가능하리라고 본다.  평의회를 다시 말하면, 작은 단체에서 조금 큰 단체로 또 더 큰 단체로 자신의 생각을 가진 사람이 진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들 각 단체는 수직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지만 이 단체에 참여한 사람들은 그 단체에서는 수평적인 권리를 지니고 있다. 다른 사람을 대표하지만, 또한 그 신뢰에 바탕한 자신의 의견을 지니고 공적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바로 이러한 평의회의 모임이다.

그러면 이러한 혁명 개념에 맞는 혁명이 있었던가? 아렌트는 프랑스 혁명과 미국혁명을 주로 다루고 있다. 우리는 미국 혁명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데, 미국의 독립이나 건국이라는 말을 쓰는데, 아렌트는 미국의 독립, 건국을 혁명이라는 말로 이야기하고 있으며, 이 미국의 혁명만이 유일하게 성공한 혁명이라고 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혁명의 시원으로 이야기하는 프랑스 혁명은 실패한 혁명인가? 프랑스 혁명은 공적 자유의 문제를 밀고 가지 못하고, 사적 차원으로 문제를 치환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공적 자유를 추구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 또는 빈곤층의 해방 문제로 바뀌었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한 혁명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이러한 혁명은 가능한가

 

우리는 이 책을 이런 질문에 역점을 두고 읽어야 한다. 도대체 혁명이란 아렌트에 의하면 새로운 시작이고 공적 영역의 자유 추구라는데, 이 시대에서 과연 가능한가? 우리는 어쩌면 혁명이 불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지 않은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구분하고, 정치사회에서 정권을 교체하더라도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하지 않으면 혁명은 불가능하리라고 이야기를 한 사람이 있는데, 이는 아렌트의 논의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

오히려 아렌트의 논의에 따르면 시민사회는 경제 차원의 문제이니, 혁명과는 관계가 없고, 오히려 혁명의 발목을 잡는 요소가 되지 않는가? 이런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아렌트의 말대로 미국이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데는 미국에서는 빈곤의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는 사실, 이들은 오로지 정치적인 문제로 출발하였고, 이 시작된 문제를 어떻게 유지, 발전시키느냐에 관심을 가졌고, 그래서 유지, 발전할 수 있는 제도를 확립하고, 이에 권위를 부여했기에 혁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렇다면 공적 자유를 지칭하는 정치 사회에서의 혁명을 꿈꾼다면 우선, 시민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시민사회의 문제가 기본적으로 해결이 된 상태에서 정치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과연 그런가? 여기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한다.

시민사회와 정치사회의 문제가 동시에 일어날 경우, 아렌트의 논의에 의하면 혁명은 방향을 잃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직도 아렌트의 논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시민사회를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집단이 이를 바탕으로 정치적 영역에서 권력을 장악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행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아렌트에게서 배울 점은 두가지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하되, 다시 종합해야 한다는 어려운 문제가 발생한다.

99%가 시위에 나섰다. 이는 정치적 영역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다. 이게 아렌트 논의의 핵심이다.

이 99%가 제대로 사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정치적 영역에서 제도를 확립하고, 이 제도를 유지 발전시켜야 하는 일을 담당하는 개인 또는 집단이 바로 혁명을 이끌어가는 개인 또는 집단이 될 수 있다. 

 

다시 우리나라를 생각하면...

 

아렌트의 논의에 보면 우리나라는 힘든 나라임에 틀림없다. 우선 국회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 아렌트의 책을 참조하면 이들은 단지 국민을 대표한다기 보다는 국민의 의지를 호도해서, 즉 국민의 권리를 그들이 모두 전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아렌트의 이 책 논의를 따라가면 지금의 국회제도에서는 국민은 공적 영역에 참여할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단지 특정한 시기에 투표를 할 뿐이다.

또 이 책에 나오는 미국의 상원의 역할을 기대할 수도 없고, 단지 우리는 하원의 역할만 하는 국회를 지니고 있을 뿐이며, 그래서 공적 영역의 자유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고, 미국 혁명에서는 권위를 대표하는 사법부를 지니고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과연 그러한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특히 헌법에 관한 모든 권리를 국민이 헌법재판소에 양도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공적 영역에서 자유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가능성은 있다. 우리가 공적 영역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 지방자치제를 통해 어느 정도는 확보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이러한 작은 지역 정치에서부터 자신의 공적 영역에 참여할 자유를 행사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새로운 정치 이야기를 쓸 수 있다.

 

아렌트의 말처럼 인간은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존재이고,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우리의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존재이다.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 그것은 바로 아렌트 말에 의하면 혁명이 가능해지는 세상이리라.

 

이상 내 멋대로 이해한 아렌트의 혁명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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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 이야기 4
김선욱 지음 / 자음과모음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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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에게 철학이 무얼까라고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망설이고 답을 하지 못한다. 철학은 뜬구름 잡는 이야기, 아니며 너무나 형이상학적인 이야기, 그래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라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는 철학하면 특정한 사람들만이 하는 학문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에서도 소크라테스부터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 여기까지는 그래도 학생들이 이름은 한 번쯤 들어본 사람들이고, 칸트, 헤겔이 나오면 머리가 아파오는데, 이들 말고도 데카르트, 스피노자, 니체, 하이데거, 사르트르 하면 머리를 쥐어싸매게 된다.

 

이런 사람들도 이름을 한 번 들어봤을까 말까 한 학생들에게 한나 아렌트 이야기를 하면 누구? 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리기 십상이다.

 

사실 아렌트는 학생들 뿐만이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무척 어려운 사람 아니던가. 이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학생들에게 해주어야 한다면 참 막막하겠단 생각이 들었는데...

 

이 책은 한나 아렌트의 핵심 사상을 이야기하면서도 결코 어렵지 않다. 유대인 차별을 통한 정치적 인간이라는 이야기, 전체주의 이야기, 악의 평범성 등을 한 편의 동화 속에서 잘 구현해 내고 있다.

 

철학적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동화라는 장르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놀랍고, 이를 예전에 시도한 책이 위기철의 논리시리즈였는데, 이보다 더 정교하게 동화 속에서 아렌트의 사상을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더 놀랍다.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 또다른 철학을 전공한 사람이거나, 철학에 관심있는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과 철학에 대해서 전혀 무지한 사람에게 이야기하는 것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일이다. 특히 더 힘든 일은 철학에 대해 무지한 사람에게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용어부터 사상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설명해 내야 한다. 그러나 이 책은 왕따라는 동화 속의 현상을 통해서 인간은 정치적 행위를 해야 함을, 정치적 행위를 하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권리, 권력을 행사하지 못함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우리가 쉽게 다수결 원칙으로 넘어가는 문제를 전체주의 문제와 연결시켜 참여와 대화가 필요함을, 그래서 다름을 인정하고 그 다름을 통해 더 나은 합의를 이끌어가기를 알려주고, 다름으로 인해 남을 멸시하는 문제를 왕따 문제를 예루살렘의 아히히만의 예를 들어서, 악의 평범성을 들어서 설명해주고 있다.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동화 속에서 이야기가 하나의 흐름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개되기에 동화를 읽으면서 아렌트의 핵심사상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된다.

 

결국 동화로 철학이야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이 철학을 완전히 소화해낸 상태에서 이를 남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이 책은 아렌트 소개에 완전히 성공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지금 학교 폭력 문제가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학교 폭력, 이를 이 책에 나오는 왕따와 같은 문제로 볼 수 있는데, 이에 대한 해결책을 이 책은 아렌트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아이들은 자신의 문제를, 어른들은 어른들의 문제를 이 책을 통해 인식하고 해결하려는 자세를 갖출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이 초등학생이니 초등학생이 읽어도 좋지만, 사실 초등학생에겐 약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고(책을 제법 읽은 초등학교 고학년이면 재미와 이해를 함께 할 수 있는 책이지만), 중학생 이상이면 충분히 이해하면서 읽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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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세기 - 이후 오퍼스 01
한나 아렌트 지음, 김정한 옮김 / 이후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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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 읽기를 다시 시작하다. 어떤 책을 고를까 하다가 가장 얇은 이 책을 선택하다. 먼저 머리에 기름을 칠한 다음 아렌트의 다른 책으로 넘어가는 편이 더 아렌트에 쉽게 접근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폭력의 세기, 제목을 영어대로 번역을 하면 폭력에 대하여 정도가 되겠다. 폭력에 대하여, 20세기후반에 일어났던 여러 폭력을 보면서 아렌트가 폭력과 권력에 대해서 나름대로 성찰한 내용이다. 그리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많은 면에서 생각할거리가 많다.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폭력과 권력을 구분해야 한다. 아렌트가 말하는 폭력은 "도구적이고, 그래서 다른 모든 수단들처럼 항상 그것이 추구하는 목적을 통하여 지침과 정당화를 필요로 하는 상태에 있다"고 한다. 이에 반에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고, 필요로 하는 것은 정당성"이라고 한다.

 

그래서 권력은 "그냥 행동하지 않고, 제휴하여 행동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조우한다....집단에 속하는 것이며, 집단이 함께 보유하는 한에서만 존속한다고 한다." 즉, 폭력은 사적 영역에 속할 수 있지만, 권력은 공적 영역에 속한다.

 

이런 논의를 참조하면 폭력의 상황에 사람들이 눈감을 경우, 그 폭력은 권력의 이름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명심해야 한다. 결코 권력이 될 수 없는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 사람들은 이를 권력으로 착각하고 거기에 순응하게 된다. 이러한 무관심, 또는 감성의 부재가 사회에 폭력이 만연하에 만드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폭력을 극복할 수 있는가를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란 소설을 통해서 깨우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힘센 폭력에 굴복하는 아이들이, 자신들의 힘으로 폭력을 물리치는 과정이 나타난 소설인데, 이 소설을 아렌트의 이 책에 대입하면, 결국 폭력은 개인의 힘으로 나타나지만, 이러한 폭력을 극복하는 상태는 집단의 힘으로, 즉 집단의 행동으로 공적 영역에의 참여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공적 영역에 집단이 행동으로 나타내는 힘을 우리는 권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권력은 당연히 정당성을 획득하며, 폭력을 굴복시키게 된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더 마음에 새기게 된 말은, "권력이 이미 거리에 있을 때에도, 그 권력을 줍고 책임을 맡을 만한 그와 같은 우발적인 사태에 대비해 왔던 조직 성원들이 필요해진다"는 아렌트의 말이다.

 

우리가 87년 6.10민주화 투쟁으로 권력을 쟁취해야 하는 순간, 이를 준비했던 조직 또는 조직 성원들의 부재로 우리는 권력을 넘겨주고 만 경우가 있었고, 그 후의 여러 촛불 시위에서도 거리에 이미 권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권력을 받아 새로운 권력을 창출하려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던 점에서 이 구절은 통열하게 다가온다.

 

이러한 폭력에 대한 고찰은, 정당한 권력을 창출하려는 노력을 하게끔 만드는데, 그 노력을 우리들이 기울여야 한다는 사실, 이 또한 명심해야 한다. 다만 권력은 그냥 주어지지 않고, 행동을 통해서만이 얻을 수 있다는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현존하는 권력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폭력은 물론이고, 다른 여러 요소들을 통해 권력이 아닌, 폭력을 권력으로 위장하려 한다. 이러한 속임수를 간파하고, 이미 그 권력이 붕괴하고 있음을 알게끔 해주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단순히 폭력이다 비폭력이다를 떠나서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서 어떠한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려주고 있는 책이다. 짧은 분량이지만,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덧글

불행하게도 이 책은 품절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내용은 다른 책에 다시 실려 있다. 구해서 충분히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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