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 -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
뤼스 이리가라이 지음, 박정오 옮김 / 동문선 / 199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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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다음 장면들은 차이를 인정하는 모습일까, 아니면 차별이 교묘하게 나타나는 모습일까?

 

장면 1

학교 출석번호. 분명히 한 반에 남녀가 모여 있는데,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출석번호를 정할 때 아무런 고민도 없이 남자가 1번부터 시작하도록 하고, 여자는 남자 아이들 뒤를 이어서 번호를 매긴다. 모든 일이 컴퓨터로 처리되어 굳이 남녀를 분리해도 되지 않는데... 관행이 습관으로 굳어지고, 이게 당연한 문화가 되어 이제는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당연스레 행해지고 있다

 

장면 2

연말 이러저러한 대상 시상식. 어느 방송이나 대부분은 남자 한 명을 사이에 두고 여자 두 명이 나온다. 이상하게도 주요 진행은 가운데 남자가 하고 양 쪽의 여자들은 보조 진행자란 인상을 준다. 21세기 이제는 뉴스에서도 남녀가 거의 동등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데, 연예 활동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남성 중심주의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장면 3

예전 어느 대선 때 이야기. 예전이라고 해봤자 그리 오래 전 얘기도 아니다. 한 10년 됐나? 모 여성후보가 대권후보로 나오자 여성계가 양분되었다. 이념을 떠나서 여자 후보가 나왔으니 이 후보를 지지하자는 측과 어떻게 이념을 떠나서 지지하냐는 측으로. 결과는? 뭐... 지금은 단지 여성 후보라는 이유로 그 후보를 지지해야 한다는 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그동안에 대선후보까지는 아니더라도 서울시장 후보로는 여성 후보가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여성이냐 남성이냐가 아니라, 어떠한 정책을 지니고 있는냐로 쟁점이 모아지고 있다.

 

장면 4

미스코리아, 기타 무슨무슨 아가씨 선발대회. 아직도 하고 있는 대회가 많은데... 텔레비전에서는 중계를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여성을 상품화한다는 것. 그런데 아직도 무슨 아가씨 대회를 만들자는 사람이 있나 보다. 무슨 아가씨보다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사람을 뽑아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런 대회가 의미가 있나? 지역 홍보를 위한 수단일텐데...

 

장면 5

시에서 가끔 말하는이를 찾을 때 너무도 단순하게 둘로 나눈다. 기다림의 정조가 강하고, 소극적이며, 수동적인 화자가 나오면 여성적 화자, 당당하고 적극적인 화자가 나오면 남성적 화자. 그래서 김소월, 한용운의 시에 나오는 화자들은 대부분 여성적 화자라고 하고, 이육사, 유치환의 시에 나오는 화자들은 대부분 남성적이라고 한다. 과연 그러한가? 여성의 특징이 수동적이고 소극적이며 애상적인가? 꼭 여성만 그러한가?

 

장면 6

다시 학교. 평가를 하는데, 음악과 미술은 남녀 구분없이 평가를 한다. 절대평가인 셈. 그런데 체육에서는 남자의 기준과 여자의 기준이 다르고, 그 기준에 따라 평가를 한다. 가끔 남학생들이 볼멘 소리를 한다. 우리는 여자에 비해 미술, 음악 실력이 모자라는데, 왜 이 두 과목은 똑같이 평가를 하고, 체육은 우리가 잘하는데, 기준이 다르냐? 다 다르게 하든지, 다 같이 해야 하지 않냐고.

 

여기서 이리가라이의 책이 빛을 발한다.

 

1987년부터, 평1989년까지 발표되었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각 편의 끝부분에 년도가 적혀 있다.

짧막한 글들이지만 여러가지로 생각할거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뭉뚱그려서 말하면 평등이란 같음을 추구하지 않고, 다름을 추구한다는. 그래서 이 책의 부제가 '차이의 문화를 위하여'이다. 여성이 여성해방운동을 하는데, 이는 자칫하면 남성의 자리에 자신을 놓는 운동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고 이리가라이는 주장한다.

 

여성은 여성다움을 추구하고, 남성은 남성다움을 추구하되, 이는 사람다움이라는 공통분모 앞에서 행해져야 한다는. 그래서 남녀의 차이를 부정하지 말고, 남녀의 차이를 인정하되, 그 지점에서 서로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는 주장이다.

 

즉 상대는 극복되어져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대상이어야 한다. 그래서 여성과 남성의 차이를 무시하는 운동이 아닌, 차이를 인정하는 운동이어야 한다고 한다.

 

참 어려운 일이다. 여성성, 남성성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사람다움을 찾아가야 한다니. 그래서 이 차이가 차별이 아니라, 공생이 되어야 한다니 말이다. 이런 논점을 지니면 장면6이 이리가라이의 주장에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할 수 있는 일은 함께 하되, 엄연한 차이가 나는 일은 다르게 해야 한다는.

 

이러한 생활이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다면 차이는 차별로 나아가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남녀는 서로가 배타적인 집합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하는 교집합을 많이 지니고 있는 두 집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를 인정하고 여기에서 남녀가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이리가라이 책, 꼼꼼하게 읽을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논조를 받아들이면 단순히 남녀간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다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점에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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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공자 - 패자의 등장과 철학자의 탄생 제자백가의 귀환 2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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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백가의 귀환 2권이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제자백가의 사상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처음에 관중을 이야기한다. 관중 부분을 읽으면서 서양 산업사회가 막 대두하던 시기, 엄청나게 많은 사회사상가들이 생각나고, 결국 혁명을 성공시킨 레닌이 생각났다. 성공한 사람. 그는 다른 모든 사상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다음 사람들은 그를 계승하거나 극복하려고 한다.

 

1. 제자백가에 왜 관중이 나오는가?

 

관중이 제자백가 시리즈 제일 앞에 나온다. 의외다. 관중이라 함은 관포지교의 주인공으로, 그냥 우정의 대명사로 생각하고 말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러한 관중을 보아준 포숙을 대단한 사람으로 여기기도 하는데...

 

이 책에 의하면 관중은 어지러운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뜻을 펼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이 모신 사람을 춘수시대의 패자가 되게 만든 사람. 그러면서 자신의 정치적 역량을 다 펼친 사람이다.

 

이 덕분에 관중은 춘추전국시대 많은 학자들의 역할 모델이 된다. 다들 관중을 꿈꾸었으나, 관중처럼은 되지 못했기에, 관중은 제자백가를 다루는 이 책에서 맨 앞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다고 한다.

 

즉, 관중을 계승하거나 넘어서려는 노력들이 제자백가들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2. 관중에 의한 국가주의의 탄생

 

그렇다면 관중은 어떤 사상을 지니고 있었는가? 강신주에 의하면 관중은 자신의 겪은 현실체험을 정치사상으로 승화시키고 완성시킨 사람이다. 나와 남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며, 이상적이 아닌 현실에서의 정치를 이해했던 사람. 그래서 그는 백성(여기서 백성은 귀족층을 의미한다)만이 아닌 민중을 발견한 사람. 민중을 국가의 힘으로 전환시킨 사람이다.

 

이러한 압도적인 힘을 바탕으로 현실정치에서 다른 나라들을 굴복시키고, 제나라 환고을 패자로 모시게 만드는 사람이다. 그는 주어야 받을 수 있다고 하면서, 힘을 바탕으로 무조건 누르지 않고, 우호적인 자세로, 주변국들이 또 민중들이 자발적인 복종을 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이 민중들의 자발적인 복종이 바로 국가주의의 시초가 된다. 이 때부터 우리는 국가주의가 탄생했다고 볼 수 있고, 국가라는 개념이 우리들 삶에 깊숙히 들어오는 계기가 된다.

 

국가는 모든 사람의 삶을 통제하는 기구인데, 이를 억압적기구로 인식되지 않고, 이데올리기적 기구로, 합의와 동의하에 자발적인 복종을 유도하는 기구가 된다. 이런 국가가 삶에 들어오면 사람들은 국가를 벗어나는 사유를 할 수 없고,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도 된다.

 

관중은 처음으로 이 일을 해낸 사람. 그래서 제자백가들의 귀감이 되는 사람. 그를 계승하려든, 극복하려든 말이다.

 

 

3. 공자는 핵심 사상은? 

 

관중이 왕을 중심으로 민중까지 아루르는 국가를 꿈꾸고 건설했다면, 공자는 민중은 배제하고 있다. 그리고 예가 중심이 되는, 즉 주나라의 예를 다시 회복하는 목적을 지니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간다고 한다.

 

우리는 공자의 핵심사상을 인으로 알고 있다.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 그것이 인이고, 이로인해 공자가 예수나 부처와 같은 반열에 든다고 생각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강신주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가 주장하는 공자의 핵심사상은 예이다. 그것이 주나라의 예.

 

강신주에 의하면 이 때 한자어에서 사람을 의미하는 인은 귀족을 나타내며, 백성을 의미하는 민은 민중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민이라고 했을 때에야 모든 사람이 된다고 하는데, 공자는 인과 민을 철저히 구분하고, 민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닥 한다. 

 

도를 함께 할 수 없는 소인에 불과한 존재들일 뿐이다.

 

그러면 귀족 중심의 예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예를 실현하지 않는 사람은 사람 축에도 끼지 못하니, 이는 왕을 전복시킬 수 있는 힘을 발휘하기도 한다고 한다. 사람들 자신이 예를 회복했을 때 비로소 이상적이 나라가 실현된다고 했으니, 그의 주장이 서로 권력을 잡으려 한 춘추시대나 전국시대 때 뜻을 펼치기는 어려웠으리라.

  

 

4. 왜 공자의 학파가 주류가 되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대에, 공자의 학파는 주류 학파가 되었고, 나머지 학파들은 이단이 되었다. 이는 국가주의의 확립과도 관계가 있다. 한 나라로 통일이 되었을 때, 이제는 안정이 필요하다. 변혁이 필요없는 시대에는 예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는 간단히 말하며 제 자리를 알고, 제 자리에 맞는 행위를 하라는 규범이 아니던가? 모든 것에 제자리가 있다는 사상, 그 자리를 지켜야 훌륭한 인간이라는 사상은 하나의 국가로 통일되어 있던 나라에서 통치자들에게 유용한 사상이 되리라.

 

그러니 공자의 사상이 후대에 올수록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런데 왜 춘추전국시대에 사라지지 않았을까? 이때 공자의 사상은 개에게나 주어버려도 될 사상이었을텐데 말이다. 이를 강신주는 귀족계급이 공자의 사상을 지지했다는 데서 찾는다.

 

왕에게는 쓸모없고, 또 자신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는 사상이지만, 귀족계급들에게는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또 언제든지 권력을 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상이기 때문이란다. 자신들이 예를 지켰다면 예를 지키지 않는 군주를 몰아낼 수 있는 근거, 그게 바로 공자의 사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그렇게 예에 관한 논쟁이 많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말이다.

 

국가주의의 확립으로 철저한 신분제를 유지하면서, 신분에 맞는 예를 구현하는 사회, 이를 공자의 사상에서 찾았기에 공자의 사상은 주류로 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5. 우리는 이들의 사상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나?

 

결국 관중에게서 시작된 국가주의의 탄생이 공자에게서 확립되었다고 나는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서 정리하였는데, 이 근거를 관중의 끝부분에서 강신주는 아나키즘을 언급하고 있으며, 공자의 사상을 귀족들의 예로 정리한데서 찾는다.

 

관중은 시혜라는 탈로 국가의 억압을 가리는데 성공했는데,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를 빼앗긴 줄도 모르고 자발적으로 국가에 복종하게 되었으며, 이는 공자의 예를 통해 더욱 확고하게 굳어지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다른 세상을 꿈꾸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찾아야 한다.

 

최근 복지국가의 논의에 빠져, 국가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뒤로 미루고 있는 경우도 있으며, 사회의 혼란을 이야기하면서 예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논의도 있는데...

 

우리의 자유는 우리의 철저한 성찰을 통해서만이 찾아질 수 있다는 사실, 이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관중과 공자를 통해서 재확인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이 책의 관중 부분을 읽으면서 김수영의 푸른하늘을 이라는 시가 생각났다. 진정한 자유란 자신의 생명을 걸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사실, 이걸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목민에게 길들여지는 가축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것이 국가권력이든, 예라는 올가미든.

 

른 하늘을 제압하는/노고지리가 자유로웠다고/부러워하던/어느 시인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자유를 위해서/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사람이면 알지/노고지리가 / 무엇을 보고/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왜 고독한 것인가를/혁명은 /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김수영, 푸른하늘을. 전문

 

 

이제 출간될 3권에서는 국가주의가 발현되는 모습을 손자와 오자를 통해서 이야기한다고 한다.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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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시대 - 춘추전국시대와 제자백가 제자백가의 귀환 1
강신주 지음 / 사계절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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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질전환의 법칙이라고 하던가. 물이 끓어오르다가 일정한 온도에 이르면 자신의 존재를 다른 존재로 바꿔버리는 현상, 그리고 쌓이고 쌓인 지식들이 어느 한 순간부터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 현상.

 

일정한 양이 되지 않으면 질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는 운동선수들이 처음에 기본기를 충실히 익히는 자세와 같다. 일류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기본기가 철저한 상태에서, 그 기본기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방법을 지녀야 한다. 이도 역시 양질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정한 양이 충족되지 않으면 질적인 저서가 나올 수가 없다. 공부가 쌓이고 쌓이면 어느 순간부터는 이제는 내 안에만 쌓아놓지 않고, 밖으로 내보내기 시작한다. 내 공부를 남과 함께 공유하게 된다. 이도 역시 양질전환이다.

 

최근 강신주는 많은 책들을 내놓고 있다. 자신의 안으로 쌓았던 공부를 이제는 남들과 공유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래서 반갑다. 그 많은 지식을, 생각을 자신만 지니고 있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번에 강신주가 내놓은 책은 무려 12권으로 기획되어 있는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다. 춘추전국시대, 그 혼란한 시기를 온몸으로 감당해나갔던 사람들이, 혼탁한 세상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고민한 흔적, 그것이 바로 제자백가다.

 

여기서 우리는 김춘수의 꽃이란 시를 생각해볼 수도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그는 다만/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그는 나에게로 와서/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그에게로 가서 나도/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무엇이 되고 싶다./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김춘수 꽃 전문

 

아주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이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라는 구절이 주목을 한다.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오는 말이지만, 우리는 춘추전국시대를 살았던 그 많은 학자들을 제자백가라는 이름으로, 또는 유가, 묵가, 도가, 법가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때 그들 고유의 사상을 놓칠 수 있다.

 

즉 우리가 이름을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의 고유성은 이름이라는 형식에 귀속되어 버리고 만다. 이를 '꽃이 되었다'고 이 시에서 표현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의미없는 존재를 나와의 관계를 통해서 의미있는 존재로 바꾸는 모습, 이것이 김춘수의 꽃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언어는 존재를 의미있는 존재로 만들어주기도 하지만, 그 존재를 의미에 구속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 사상사의 측면에서 보면 이름을 지어 규정하는 순간, 고유성보다는 보편성이 더 확연하게 다가오게 된다. 그래서 강신주의 말처럼 같은 유가라도 공자와 맹자와 순자는 다른데, 이들을 하나의 개념인 유가로 묶었을 경우 우리는 차이점보다는 동일성에 더 주목하게 되고 만다. 이것이 제자백가를 다루는데 있어서 우리가 지니는 커다란 위험성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유가, 묵가, 법가 등은 그 시대 그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러한 학파로 인식하고, 행동하지 않았음에도 우리가 그들을 생각할 때 그 틀 내에서 생각하도록 우리를 강제하기 때문이다.

 

이 책, 철학의 시대에서 강신주가 강조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후대에 붙여진 이름에 얽매이지 말자. 우리는 그들이 무슨 학파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그들의 사상이 어떤 경로를 통해 나왔고,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를 살펴야 한다고 강신주는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제자백가들 각자를 고유명사로 보고, 그들의 삶과 사상을 살피자고 한다. 그러한 작업을 2권부터 하겠다고 한다.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중 첫 번째 권인 이 책은 그래서 우리에게 제자백가를 우리가 어떻게 보아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혼탁한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들, 이들을 읽으면서, 우리는 지금 이 세계에서 우리는 어떠한 철학을 지녀야 하는지 생각해보는 계기를 갖게 된다.

 

단지 지식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닌, 그 시대를 극복하려는 철학을 통해, 우리 시대를 잘 살아낼 수 있는 철학을 마련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제자백가 시리즈를 읽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서 늘 느끼는 점이지만, 글이 쉽게 읽힌다. 결코 가볍지 않은 내용을 이해하기 쉽게, 읽기 쉽게 전개하는 그의 글쓰기 솜씨에 감탄을 하게 된다. 이는 오랜 동안 쌓였던 내공의 힘이 드디어 바깥으로 발현되어 그러리라 생각한다.

 

우리도 천천히 그러나 꼼꼼하게, 지금을 중심에 놓고, 나는 어떻게 사유하고, 어떻게 행동할지를 고민하면서 이 책을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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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 - 사랑과 자유를 찾아가는 유쾌한 사유
강신주 지음 / 동녘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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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인문학적 비빔밥이라고 하자. 

각자 자신의 개성을 지니고 있지만, 하나가 되어서는 또다른 개성을 빚어내는 존재. 

비빔밥을 생각하면 된다. 

비빔밥의 재료들은 따로 존재해도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빛을 발한다. 

그러나 이들이 하나로 합쳐졌을 때 역시 또다른 음식을 만들어낸다. 각자 다른 것들이 하나로 뭉쳐 입안에서 내는 그 맛이라니... 

강신주의 책은 인문학적 비빔밥이라고 할 수 있다. 

시와 철학과 인생이 멋지게 어우려져 아주 맛있는, 멋있는 책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이 14명의 시인과 철학자들을 묶어놓고 있다는 점,  

책의 뒷면에 소개되어 있는 "시인과 철학자가 오른 인문학 봉우리 14좌" 

이 말에서 히말라야 최고봉 14좌를 연상했다면 그건 나만의 착각일까?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 저 높은 봉우리에서 세상을 내려다 보듯이 우리 자신을 관조할 수 있지 않을까? 

정상까지 오르는 그 괴로움이 정상에 올랐을 때의 기쁨으로 바뀌는 순간, 우리는 말할 수 없는 즐거움으로 충만해 있지 않는가. 

결국 철학적 시읽기의 괴로움이란 철학적 시읽기의 즐거움이라고, 강신주가 먼저 낸 책과 같은 의미로 읽을 수 있다. 

시 한 편에 그 시에서 연상되는 철학자와의 관련성, 그리고 그 철학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을 이야기하고, 결국 시와 철학과 인생이 하나로 엮여, 다름이 다름으로써 더 빛을 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 시는 물론이고, 철학적 지식 또는 사유를 얻게 되고 그에 더하여 우리의 인생에 대한 성찰까지 할 수 있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 비빔밥을 먹는 것과 같은 맛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니... 

우리도 한 번 이런 인문학적 비빔밥을 먹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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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의 즐거움 - 한국의 대표지식인 스물두 명이 말하는 한국, 한국인, 한국적인 것
주영하 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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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학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기는 힘들다. 마치 사람이란 무엇인가 하면 대답하기가 힘들듯이. 

그래서 한국과 관련된 사항들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노력을 먼저 한다. 전체가 전체로 이미 존재한다고 보지 않고, 부분들이 모여서 전체를 구성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퍼즐조각을 맞추는 놀이와 같다. 

천 조각의 퍼즐을 맞춘다고 생각해 보자. 완성된 조각이 정해져 있어서 그 완성된 모습을 향해서 한 조각 한 조각 맞추다 보면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퍼즐맞추기와 다른 점은 퍼즐맞추기는 맞춰야 할 그림이 정해져 있지만, 한국학은 각자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 모습을 만들어간다. 

즉 결과가 정해져 있지 않고, 각 조각들로 대변되는 과정들을 통해 결과가 드러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한국학이라는 큰틀에 대해서 고민하기보다는 한국학을 이루고 있는 구성요소들을 하나하나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 노력들을 통해서 우리는 한국학이라는 큰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국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일까? 그 요소들 역시 정해져 있지 않다. 정해져 있지 않고, 우리가 찾은 하나하나가 바로 한국학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이 책에서는 스물 두 명의 지식인들에게 한국, 한국인, 한국적인 것에 대해서 글을 쓰게 하고 그 결과물을 모아두었다.  

따라서 한국학이라는 큰틀에 대해서 답을 얻으려 하지 말고, 각 분야에서 한국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어가면 된다.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도 있고, 처음 듣는 내용도 있으리라. 

스물두 개의 요소들은 각각 한국인의 마음, 사랑, 음식, 책, 의학, 철학, 얼굴, 종교, 미술, 건축, 과학, 역사, 정체성, 경제, 드라마, 영화, 문학, 신화, 사유, 역학, 끼, 본성이라는 분야로 나뉘어져 이야기가 되고 있다. 물론 한국인의 마음도 역시 많은 다양한 요소로 나누어지겠지만... 그 많은 요소들을 다 찾을 수는 없고, 대표적인 요소를 통하여 구성해가야 한다. 

한국학이라고 이 책을 다 읽어야 한국학에 대한 개념이 잡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다 읽을 필요도 없다. 제목이 한국학의 즐거움 아니던가? 자신이 관심 없어하고, 재미없어 하는 부분을 억지로 잡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런 읽기를 하면 한국학에서 더 멀어질 뿐이다. 

자신이 흥미를 지니고 있는 한국학 분야부터 읽으면 된다.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한국적인 드라마를 분석한 글을 읽으면 되고,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은 영화배우를 분석한 글을 읽으면 된다. 

나는 개인적으로 한국의 얼굴이란 제목을 달고 있는 마애불에 관한 글과 한국의 종교, 그 융합성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한옥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읽었고, 지금도 우리에게 유효한 것이라는 생각을 지니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이 책은 자신이 흥미있는 부분부터 읽으면 된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자신만의 퍼즐을 하나 더 덧붙인다면 한국학이라는 퍼즐에 한 조각을 더할 수 있으리라. 

외국인이 우리를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는 책도 많이 나와 있지만, 우리나라 학자들이 한국에 대한 여러 요소들을 자신들의 시각에서 쓴 이 글 읽으면 한국학이란 무엇인가, 또는 한국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의 답을 찾는 열쇠를 얻지 않을까 한다. 

 

덧말 

한국의 신화를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사실혼과 합법혼을 이야기하는 중혼제에서...  

334쪽 중혼제는 고구려 온달의 경우와 신라 서동의 경우에도 나타난다로 되어 있는데... 

서동은 백제 무왕의 젊은시절 이름이라고 하니, 그를 신라 서동의 경우라고 하지 말고, 백제 서동의 경우라고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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