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계곡 모중석 스릴러 클럽 35
안드레아스 빙켈만 지음, 전은경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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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작품을 끝까지 읽고 나니 이중에 과연 누가 악인인지, 대체 이들 중에 누가 더 나쁜지, 판단하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다. 아주 예쁘거나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 평범한 여자 주인공. 그녀가 좋아했던 남자는 그녀를 무시하고 조롱하고, 업신여겼다. 그런 그녀를 짝사랑했던 또 다른 남자. 그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의 차에서 버려지는 여자를 걱정하며 다가가지만,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그에게 여자는 엉뚱하게 화를 낸다. 그녀가 토해내는 악담과 분노에 순간적 감정으로 남자는 순전히 우발적으로 여자를 죽이게 된다. , 여기서 과연 누가 악인일까? 여자를 우발적으로 죽이고 만 그녀를 짝사랑하던 남자일까? 아니면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업신여기고, 산길 도로 한 복판에서 내쫓은 남자일까? 자신의 창피한 모습을 보인 것이 수치스러워 마음에도 없는 화풀이를 하며 악담을 하고 만 그녀일까? 물론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가장 나쁘지 않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애초에 산길 도로에서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를 무참하게 내팽개치지 않았다면, 수치심에 있지도 않는 일을 떠벌리며 악담을 퍼붓지 않았다면, 그 남자도 우발적으로 그녀의 목을 조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요시다 슈이치는 약자들을 이용해 돈을 뜯는 양아치들, 특종을 얻기 위해 가해자의 가족을 쫓아다니는 매스컴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방치하는 사회. 그 모두가 악인일 수 있다고 작품을 통해 이야기했었다. 안드레아스 빙켈만은 요시다 슈이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인간 내면에 숨어있는 악에 대해서 말한다.

 

사진 속 젊은이들은 지쳤지만 행복해 보였다. 서로 신뢰하는 친구들. 이 신뢰가 얼마 지나지 않아 깨질 거라는 조짐은 사진에서 전혀 알아챌 수 없었다. 그늘도, 구름도 없고 이상한 눈길도 없었다.

 

심리 스릴러의 제왕이라 불리는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신작 <지옥계곡>에서도 우리는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모두 다 악인이 될 수도, 모두다 선인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상황에서, 과연 누가 더 나쁜가.에 대한 윤리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이는 다섯 명의 친구가 있다. 남자 셋, 여자 둘, 거기 두 커플이 있고, 그들 중 한 여자를 남몰래 짝사랑하는 남자가 있다. 어느 날 그들 다섯은 등반을 하기로 한다. 마라는 하필 전날 저녁 먹은 것이 체해서 등반을 포기하고, 비도 억수같이 퍼붓는 날씨였지만 오래 전부터 세운 계획이라 남자들은 올라가겠다고 말한다. 라우라는 마라를 혼자 두는 것이 신경 쓰였으나, 남자친구인 리키와 함께 싶어하는 눈치였고, 마라는 혼자 괜찮으니 등반을 하라고 말한다. 날씨가 나쁠 때는 위험한 코스인 지옥계곡으로 넷은 올라갔고, 혼자 여자인 라우라는 가는 도중에 완전히 기진맥진 지치고 만다. 혼자 돌아가겠다고 하지만 여자 혼자 내려가기엔 위험한 길이었는데, 마친 누군가 산을 타고 내려온다. 리키는 전혀 모르는 남자인 그에게 자신의 여자친구인 라우라를 같이 데리고 가달라고 맡기고, 남자들만 나머지 등반을 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모든 것이 바뀐다. 산에서 내려온 뒤 라우라는 친구들에게서 입을 닫아버린다. 내려오는 동안 낯선 그 남자와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 일체 말을 꺼내지 않으면서, 친구들과의 사이에 벽을 쌓아버린다.

 

마라는 리키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리키에게 감정이입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야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정말 이 정도로 무감각하고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못 느끼는 걸까?

"우리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이 빌어먹을 개 자식아. 자기를 버린 우리 모두에게! 우리는 가장 좋은 친구를 돕지 않았고, 덕분에 그 친구는 죽었어."

 

그렇게 절친이었던 친구들간의 관계는 서서히 멀어지고 그러던 어느 날 그들은 갑작스럽게 라우라의 자살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가 지옥계곡에서 자살하려던 순간, 그곳을 순찰 중이던 산악구조대원 로만에게 발견이 되지만, 도움을 주려던 그의 손길을 뿌리치고 라우라는 계곡 아래로 투신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의문의 자살이라는 참혹한 결말에서 시작해서, 친구들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던 건지에 대한 과정을 역순으로 추적할 수 있게 진행이 된다. 피해자와 가해자, 관찰자의 시점을 오가며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는 매 장면마다 긴박하고 섬뜩한 공포를 느끼게 만들어준다. 라우라는 왜 스스로 방어벽을 치고는 자신의 고민을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걸까? 이들이 정말 그녀의 친구였다면, 그대로 놔두면 안 되는 거 아니었을까? 부잣집에서 어려울 것 없이 자란 오만하고 이기적인 리키는 산과 날씨에 지지 않으려고, 전혀 모르는 남자에게 완전히 지친 자기 여자친구를 데리고 내려가달라고 떠넘겼었다. 당시에 라우라가 얼마나 상처를 받았을지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게다가 그녀의 자살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다른 여자를 만나고 다닌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는 부분을 배제하고 언급하자면, 나는 사실 범인, 즉 가해자보다 더 나쁜 놈이 이 작품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그녀에게 나쁜 행동을 했지만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으므로) , 사실 그녀가 죽음에 이르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다른 데 있었기 때문이다. 범인 덕분에 라이라의 평범한 일상이 험난한 지옥처럼 변해버리고 말았지만, 하지만 그때 누군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면 그녀는 결코 지옥 계곡 아래로 투신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몰린 그녀를 등 떠민 것은 결국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친구 중의 하나였는지도 모른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죽는 그 순간까지도 라이라는 그 끔찍한 배신에 대해 전혀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테지만.

 

이 작품은 <사라진 소녀들><창백한 죽음>에 이은 안드레아스 빙켈만의 세 번째 국내 출간 작이다. <사라진 소녀들>에서는 시각장애인 소녀의 실종사건을 통해 인간의 사악한 본능에 대해 그렸었고, <창백한 죽음>에서는 소시오 패스의 실체를 생생히 추적해서 수사하는 것을 보여주었었다. 두 작품 모두 겉으로는 평범하지만 그 가면 뒤에 숨어 있는 인간의 내면을 집중적으로 묘사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그래서 그를 심리 스릴러의 제왕이라 칭할 것이다. 우리가 도덕성이라고 부르는 그것이 얼마나 나약한 토대 위에 세워진 모래성 같은 것인지,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일상 속의 지옥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 이제 스타트랙 다크니스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톤으로 “shall we begin?” 이라고 당신에게 말을 건네보고 싶다. 한번 시작하면 다시는 전과 같아질 수 없다.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당신 주변의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걸 깨닫 될 테니 말이다 내 가장 가까이 있는 그 사람도 결국에는 타인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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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0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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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하라 료의 신간이다. <그리고 밤은 되살아난다><내가 죽인 소녀>를 잇는탐정 사와자키시리즈 세 번째 작품인 <안녕 긴 잠이여>는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날 수 있었던 꿀 맛같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평상시에 책을 굉장히 빨리 읽는 편이다. 시간을 쪼개어 한 달에 수십 권의 책을 읽으려다 보니 생긴 습관이기도 하고, 재미난 책의 진짜 묘미는 두 번째 읽는 데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능한 책을 빨리 읽은 뒤에 좋은 책은 여러 번 읽는 방식으로 꽤 오래 습관이 들어버렸다. 그런데 하라 료의 작품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천천히 아껴서 읽고 싶어진다. 그러니까 내용이 지루해서 진도가 안 나가는 게 아니라, 다음 내용이 궁금한데도 불구하고 일부러 천천히 아끼고 싶은 마음이라고 할까. 급하게 후루룩 읽어서 페이지를 끝내버리고 싶지 않고, 가능한 책을 읽을 수 있는 가장 쾌적한 환경에서 여유 있게, 아주 느긋한 마음으로 맛을 음미하듯이 문장들을 꼭꼭 씹어먹고 싶다. 오래 기다렸으니, 그만큼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싶다고나 할까. 그래서 책을 읽는데 무려 일주일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어떤 책들은 후다닥 읽고 리뷰를 쓰기도 했으니 얼마나 이 책을 아껴가며 읽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어쩌면 이것은 하라 료가 작품을 쓰는 스타일에 나도 모르게 영향을 받아서인지도 모르겠다. 작가가 책을 늦게 쓴다고 독자까지 덩달아 천천히 책을 읽어야 하는 법은 없지만, 뭐 암튼.

 

 

하라 료는 자타가 인정하는 독보적인 과작(寡作) 작가이다. 데뷔 이래 19년 동안 단 여섯 권만을 썼을 뿐이다. 사와자키 시리즈 세 번째 작품 <안녕 긴 잠이여>는 전작 이후 6년이 걸렸고, 네 번째 작품 <어리석은 자는 죽어야 한다>는 9년이 걸렸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국내에 출간된 <내가 죽인 소녀> 이후에 이번 작품이 나오는데도 4년이 넘었다. 이건 뭐 '기다릴 테면 기다려봐!'는 식의 으름장을 놓는 것도 아니고, 팬들이 기다림에 지쳐 나가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고, 마치 약을 올리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 태도가 하드보일드와 너무도 잘 어울리기도 하거니와 어딘지 마음에 든다. 집필 스타일 뿐만 아니라 전개되는 내용도 그렇기 때문이다. 이렇게 겉과 속이 한치의 오차 없이 똑같은, 정직한(?) 작가라서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작품에서 사와자키 탐정이 의뢰인을 만나기까지 할애되는 페이지가 무려 100페이지이다. 이러다 작품이 끝날 때까지 의뢰인이 안 나오는 거 아니야? 하는 조바심이 들 정도가 되어야, 사와자키는 의뢰인을 만날 수 있게 된다. 탐정이 의뢰인을 만나야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기에, 그렇다면 초반 100페이지 동안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거냐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궁금한가? 그렇다면 직접 읽어보시라. 왜 하라 료의 팬들이 그의 작품을 이리 오랜 시간 기다려서 읽게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신주쿠에 위치한 허름한 '와타나베 탐정사무소'를 운영 중인 탐정 사와자키. 그가 사백여일 동안 도쿄를 떠나 있다 오랜만에 돌아오면서 맡게 되는 사건은 십 일년 전 승부 조작 사건에 얽혔던 전직 고교 야구 선수가 의뢰한 누나의 자살문제이다. 당시에 의뢰인인 우오즈미 선수의 가방에서 다섯 개의 돈뭉치가 나와 승부조작 혐의에 대한 조사가 진행되었지만, 일주일 뒤 그의 혐의는 무죄로 풀려난다. 하지만 조사하는 과정에서 경찰서로부터 연락을 받지도, 동생과 통화를 하지도 못한 그의 누나가, 풀려나기 전날 아파트 6층 베란다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그는 무려 십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나는 그런 일로 자살을 할 만한 사람이 아니라며, 누나의 죽음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다. 목격자의 증언에 따르면 명백한 자살이고, 사고나 타협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고 하는데, 대체 왜 그는 '누나가 그런 문제로 자살할 리가 없다'는 말을 십일 년 동안 계속하고 있는 걸까. 앞서 밝혔지만 의뢰인인 우오즈미를 사와자키가 만나는데 무려 100페이지 정도가 할애된다. 그리고 그들이 만나고 정식으로 의뢰를 한 다음에 우오즈미는 갑자기 낯선 누군가에게 폭행을 당하고 병원으로 실려간다. 그러니까 의뢰를 받기 전, 후 모두 이 사건은 오로지 사와자키 스스로 알아보고, 해결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는 증거도 없고, 물증도 없는 십일 년 전의 사고를 향해 차근차근 다가선다. 그리고 당시의 증언을 했던 세 명 모두 정확하지 못한 사항을 증언했다는 걸 알게 되는 등 일련의 사항들을 통해 우오즈미 유키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걸 확신하지만, 그렇다고 타살이라는 것을 증명할 만한 증거는 발견하지 못한 채 이야기는 계속 된다.

 

 

하라 료의 작품에 대해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단어는 하드보일드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하드보일드는 스토리 그 자체로서의 매력보다는 문체와 스타일에서 묻어나는 거라고 생각한다. 하라 료가 레이먼드 챈들러의 광팬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테니, 이번 작품 <안녕 긴 잠이여>라는 제목이 챈들러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따온 거라는 건 눈치 챘을 것이다. 사와자키 탐정은 챈들러의 필립 말로만큼이나 시크하고,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그래서 그가 툭툭 뱉어내는 말투, 그리고 행동에 대한 묘사에서 빚어지는 그 분위기가 참 좋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밖에서 가볍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는 지저분한 사무실 벽의 얼룩을 노려보며 시간을 보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자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음은 병원으로 가고 싶었지만 탐정의 업무 목록에 의뢰인의 침대 옆에서 마음을 졸이는 일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나는 주차장으로 내려가 블루버드를 몰고 나와 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하기로 했다> 는 정도의 불필요한 수식을 뺀 무덤덤하고 시크한 행동. 가끔은 위험한 순간에조차 무모하게 용기 있는 순수함(?) 이라고나 할까. 머릿속으로 손익을 계산한다거나, 자신이 피해를 볼만한 상황에서 빠진다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에 가담한다거나 하는 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캐릭터이다.

 

흔히들 하드보일드 범죄소설이라 칭해지는 부류는 범죄나 폭력, 섹스에 대해 이렇다 할 감정 없이 무미건조한 묘사를 하고, 비정하며, 냉혹한 사회의 모습을 불필요한 수식 없이 날 것 그대로 묘사하는 수법으로 지칭된다. 추리소설에서 추리사건해결그 자체보다는 탐정의 행동에 중점을 두는 하나의 유형이라 하겠다. 그래서 이런 류의 작품은 감정과 도덕적 판단을 배제하는 차가운 정서를 대표하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이상하게도 하드보일드 작품의 캐릭터들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건 사실 아이러니 하긴 하다. 가끔은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인간같으니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대목도 종종 있지만, 그럼에도 밉지 않고 정이 가는 캐릭터들이라고 할까. 아뭏튼 묘한 매력을 발산하는 것이 하드보일드 작품의 탐정 캐릭터들인 것 같다.

 

작품의 후반에 실려 있는 번역자의 멘트가 재미있어 옮겨본다.

 

역시 하드보일드란 바로 이런 거다, 라고 간결하게 설명할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작가 하라 료도이거다라고 정의를 내놓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예를 들어 그 조건을 설명합니다.

 

“《빅슬립》(출판사에 따라 《깊은 잠》 《거대한 잠》 앞머리에 어느 저택을 방문한 탐정 필립 말로에게 버릇없는 그 집 막내딸이키가 크네요?”라고 삐딱한 태도로 묻는 장면이 나온다. 이 말에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현실적으로는 히죽히죽 멋쩍게 웃어넘기거나 아니면 화를 내거나 둘 중 하나다. 하드보일드 소설에서는 그러면 실격이다. 이 물음에 제대로 대답할 수 있는가 없는 가로 독자는 그 소설을 판정하게 된다. 말로는 어떻게 대답했을까? 《빅슬립》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여기서는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늦어진 한국어판을 기다려준 분들을 위해 그 답을 영문으로 적어둡니다. “I didn’t mean to be.”

 

 

레이먼드 챈들러의 깊은 잠을 다시 뒤져보니, 해당 장면이 기억이 났다.

 

키가 크네요, 그렇죠?” 라고 묻는 그녀에게,

필립 말로가 대답한다.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오.”

 

 

, 이제 대충 분위기가 짐작이 되는가?

 

이래서 내가 필립 말로를, 사와자키를, 그리고 하드보일드작품을 사랑할 수 밖에 없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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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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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리카 종의 작품에 대한 배경을 얘기하자니, 자연스레 마광수 교수가 떠오른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 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구속이 되고, 대학교수직에서 면직까지 당했었던 그 당시 우리나라는 1990년대였다. 보수적인 문학계의 엄청난 화제였던 이 일화를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는 무려 1970년대에 출간된 작품이니, 당시 얼마나 사회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문학계의 충격이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비행공포>의 출간 이후, 에리카 종의 말을 빌리자면,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가득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당시 상황이 눈에 훤히 보인다.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된 이 작품이 저작권사와 정식 계약한 최초의 한국어판이긴 하지만, 그 동안 다양한 한국어(해적)판이 출간되었었고, 초기에는 음란성을 이유로 소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니, 문제작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비속어가 들어 있으면서 이렇게 지적인 책은 본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 이렇게 '세속적으로' 재미있기도 힘들 것이다> <이 소설에는 기품과 도도함, 총명함과 예리함이 있다>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하고 똑똑하면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등등의 평가는 이 작품의 가치와 재미에 대해 말해주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결혼의 의미를 믿었다. 적개심으로 불타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명의 단짝 친구 정도는 둘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져버리지 않을 한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져버리지 않을 한 사람. 그러나 결혼생활이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고개 드는 이 갈망은 어쩌란 말인가? 그 불안감, 그 굶주림. 뱃속에서 쿵 하는 울림, 보지에서 쿵 하는 울림, 모든 구멍으로 씹질하고 싶은 이 욕망은 어쩔 것인가? 쌉쌀한 샴페인과 젖은 키스, 어느 6월 밤 작약 향기가 풍겨오는 펜트하우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부둣가 초록 불빛에 대한 이 욕망은 어쩔 것인가?

 

이 작품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리카 종의 자전적인 요소가 생생히 담긴 이야기이다. 첫 남편과의 결혼, 이혼 후 정신과 의사인 두 번째 남편과의 결혼 등 네 번의 결혼과 대학원에서의 생활, 학회 참석, 가족들과의 관계, 결혼에의 굴레와 거침없는 성적인 상상과 욕망에의 실현까지 다소 거칠고, 적나라한 언어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수치스럽다고 표현되는 욕구와 은밀한 생각들까지 독자에게 모두, 전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인물은 작가 그 자신이자, 현대 여성을 대표하는 일종의 여성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의 역할과 지위와 현대에 이르면서 많이 변했고,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남녀 관계가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여성이라는 주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을 과감히 깨부수는 새로운 형식의 이 작품은 쓰여진 지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주인공 여성의 성적 모험담' 정도가 되겠지만, 사실 직접 작품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직설적인 표현들이 낯뜨겁다거나, 불쾌하다기보다는 유쾌하게 읽힌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여성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온몸으로 답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4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여전히 생동감 넘치고, 흥미롭고, 어떤 면에서는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고삐 풀린 뇌'에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것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당당한 자아를 찾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은밀하게 어두운 곳에서만 즐기거나, 수치스럽다고 해서 감추거나 하지 말고,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남자. 그 둘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이 사냥꾼이자 원시인이었을 때, 여자들은 평생 임신을 걱정하거나 아기를 낳다가 죽을까 봐 걱정하며 살았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차갑고 반응이 없고 뻣뻣하다고 불평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음탕해지기를 원했다. 거칠어지기를 원했다. 이제 여자들이 음탕해지고 거칠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던가. 남자들이 시들어버렸다.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말할 때, 적나라한 언어로 표현된 성적인 욕망에 관한 부분이 주요 이슈이긴 하지만, 나는 의외로 그녀의 책에 대한 애착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들에 더 마음이 갔다. 어쩌면 자전적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라 내가 에리카 종이라는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활자화된 모든 것을 성지로 여기며, 글쓰기가 자신의 삶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였다는 대목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잘 골라 펼쳐 든 책 한 권은 방패이자 방화벽이며, 투명인간의 망토란 걸 알았다>는 부분들. 시끄러운 집안에서 자라면서, 책을 은신처 삼아 도피하는 법을 배웠다는 어린 그녀가 부모님이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책에만 몰입하는 장면이 막 그려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 자신은 안전했다고 믿는 그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그 애정에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책벌레'라는 인종들을 무조건 편애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니까 '삶이 나를 속이더라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겠다'는 식의 막무가내 애정을 가진 이들에게 조건 없이 너그러운 편이다. 그런데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던 에리카 종이라는 작가에게서 의외로 이런 면을 발견한 것이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언어의 돌직구에 휘청거리다가 뜻밖에 이런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페이지 곳곳에서 맞닥뜨리고는 마음이 설레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당당하고, 쎈 여성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반가움과 묘한 이질감 같은 거 말이다. <난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만 계속 쓸 수 있으니까> 라는 마치 선언 같은 문장은 그녀의 성격과 그녀가 지내온 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책벌레였던 그녀는 삶이 자신을 져버릴 때마다 문학에 매달렸는데, 작품 속에선 항상 자신이 여주인공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대체 남자 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책 속에, 영화 속에 존재하느라 바빠서 우리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목에서는 픽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우리도 잘 그러지 않나. 예를 들어 드라마 '상속자들'을 보면서, 왜 현실에는 이민호 같은 남자가 없는 걸까? 한탄하기도 하고 말이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에리카 종의 이 작품은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순히 이 작품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욕망에의 실현 외에도 이 책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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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킴벌리 맥크레이트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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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타인의 시선은 우리의 감옥이며,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새장이다.

버지니아 울프, 월요일 혹은 화요일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가끔 우리를 완벽하게 배신하곤 한다. 그 사람의 말투, 행동, 평상시 습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짓말쟁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보여줄 수는 없다는 선택과 다양성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특히나 부부, 부모 자식 관계 등 가족간에 발생할 때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나 연인 사이라고 하더라도, 가족이 되기 전에는 어쨌거나 남남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상처가 조금 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이에게서, 내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그 동안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경험은 단순히 '배신'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한 세계가 끝나는 경험인 것이다.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에서 케이트는 자신의 딸 아멜리아의 친구 관계에 대해 추적하면서, 자신이 전혀 모르는 딸의 모습이 학교에서 존재했다는 걸 깨닫고 충격에 휩싸인다. <제이컵을 위하여>의 앤디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자,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클라이머즈 하이>의 유키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들 준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서먹하기만 하다. <솔로몬의 위증>에서의 부모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서의 부모들이 틀린 거라고 혹은 자녀들이 잘못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관계와 소통은 한 쪽에서가 아니라, 양 쪽에서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바쁘게 일하는 싱글 맘이다. 늘상 바쁜 회사 일 때문에 딸인 아멜리아와 많은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항상 주말에 함께 뭔가를 한다거나, 최대한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아멜리아에게 3일 간의 정학처분이 내려졌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가게 된다. 교통체증을 피해 지하철로 겨우 도착했으나, 학교에는 앰뷸런스와 경찰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차마 마주하기 싫은 현실과 맞닥뜨린다. "따님은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바론 부인, 따님, 아멜리아는 사망했습니다."라는 경찰의 한 마디. 이후로 그녀의 모든 삶이 다 무너져 내리고 만다. 딸의 죽음은 9일 만에 경찰에서자살로 판결이 내려지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케이트에게 익명의 문자가 온다. <아멜리아는 뛰어내리지 않았어. 라는. 과연 평소 우등생이었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아멜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개입된 타살이었던 걸까? 이야기는 이후 딸의 죽음에 밝혀진 진실을 쫓아가는 케이트의 스토리와 아멜리아가 죽기 전의 실제 그녀의 삶에 대한 스토리가 일렬로 배치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10대들만의 은밀하고, 순수하지만 폭력적인, 그들만의 세상은 명문 사립학교라는 허울 아래 숨겨진 추악하고 잔인한 진실을 들려준다.

 

"그녀는 아주 어린 아이가 된 듯, 동시에 말할 나위 없이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이 작품은 아사이 료의 <누구>에서처럼 SNS를 주고받는 내용을 고스란히 페이지에 옮겨놓아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살 때 읽는 방법을 익힌 후로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모범생 아멜리아가 실제 친구들과 주고 받는 메세지 내용, 페이스 북에 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속에 나오는 문구들에 대한 것들은 이후에 우리가 도달하게 될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이 된다. 가상의 공간인 그레이스 홀은 아이비리그 대학 인재들의 요람이자, 해마다 수천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다녀야 하는 고급 명문 사립학교이다. 이런 공간에서 한 여학생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케이트의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을 떠올리게 만든다. 진실을 밝히는 주체가 아이들이냐, 어른이냐의 차이에서 출발하지만, 이 작품은 예기치 못한,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달려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은 모두 외우고 있을 정도로 정통해있는 아멜리아가 영어 숙제 표절이라니, 그것 때문에 정학을 받고 수치심에 자살까지 했을 거라는 학교와 경찰의 추측은 정황상 말이 안 된다. 케이트는 익명의 문자 제보를 받고서야 자신이 슬픔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는 진실들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것들이었다. 네가 싫어라고 적힌  수십 개의 쪽지, 친아버지가 궁금하지 않느냐는 의문의 문자, 속옷만 입은 채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딸의 사진, 표절했다던 숙제와 내용이 다른 또 하나의 숙제.. 이런 단서들은 사립학교에서 펼쳐지는 집단 괴롭힘과 난교, 마약이 횡행하는 비밀 클럽 등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엄청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뉴욕 최대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인 케이트는 직업적으로는 성공한 여성이지만, 사랑에 서툴어 번번히 실패했었고, 아멜리아를 낳게 된 것조차 실수로 하게 된 임신 때문이었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했던 싱글 맘으로서 그녀의 고뇌와 그로 인한 그녀의 죄책감은, 아직 엄마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움과 공감이 되도록 잘 묘사되어 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라면 아마 더욱 공감이 될 만한 현실이라 케이트에게 감정 이입하게 될 것 같다. 나름 아멜리아와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그 고민들을 말하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케이트에게 건네는 사촌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나도 부모 노릇 하는 동안 95퍼센트 정도는 끔찍한 기분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나머지 5퍼센트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있다는 정도야. 가끔 완벽한 순간이 있는 채로, 대부분은 겁에 질려 있는 것. 마약 하는 것 같아. 한번 맛을 보면 중독돼서 멈출 수가 없다니까>라고. 너는 좋은 엄마였다고. 최선을 다해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자녀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활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부모에게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성장하면서 점차 비밀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고민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것 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녀들은 부모님을 위해.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서의 뛰어난 스토리 텔링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작품이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런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더욱 기억이 오래 남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이런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세상엔 왜 이리 뛰어난 작가들이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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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송어낚시
리차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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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무에 새겨진 그런 말들은, 세월이 지나면 마치 기차역 옆 식당에서 졸린 눈을 비비며 즉석 음식을 주문 받는 요리사가 그릴에 깬 계란처럼 알아볼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부자들은 정식 요리처럼 대리석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겨, 마치 멋진 거리를 떠난 말이 하늘로 날아가듯 할 것이었다.

나는 음영이 드리우는 석양에 그레이브야드 하천에서 낚시를 드리웠으며 꽤 많은 송어를 잡았다. 죽은 자들의 가난만이 나를 괴롭혔다.

 

제목만 보면 웬 낚시하는 방법에 대한 책인가 싶겠지만, 서두에서도 밝혔듯이 당연히 이 작품에선 송어 낚시하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린 시절의 꿈을 찾아 여행을 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이다. 송어로 상징되는 목가적인 꿈을 찾아, 송어가 뛰놀던 강을 찾는 남자의 여정은 물질문명에 대한 비판과 미국사회에 대한 풍자성이 짙어, 미국적인 은유와 상징이 다소 난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굳이 내재된 의미를 파악하려고 애쓰지 말고, 스토리적인 면을 따라가려고 하지 않는다면, 반대로 너무나 가볍고 쉬운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자본주의적인 풍요가 정신적인 풍요에까지 이르지는 못하는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므로 잃어버린 인간성을 찾으려고 하는 주인공의 여정이 낯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브라우티건의 팬임을 자처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작품이 순수하고, 엉뚱하고, 즐거운 사고를 한다고 말한다. 짧고 간결한 문체 속에 내포되어 있는 은유들은 우리를 상상도 못했던 곳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다. 마치 송어처럼 투명한 느낌의 단어들과 상상력으로 충만한 문장들은 읽는 재미도 주지만, 머리 속에 잔상도 남겨준다.

 

그것은 아주 간단했다. 나는 내 친구의 삶을 위해 10달러를 지급하고는 208이 지니고 있는 원래의 의미를 알아낸 것이다. 어떻게 그 번호가, 녹아 흘러내리는 눈처럼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와, 오랫동안 다른 고양이를 보지 못한 탓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마지막 고양이라고 믿으며, 전혀 두려움을 모른 채, 화장실 바닥엔 온통 신문이 깔려 있고 프라이팬 위에서는 맛있는 요리가 끓고 있는 '미국의 송어낚시 호텔'에서 장난치며 살고 있는 한 마리 작은 고양이의 이름이 되었는지를.

 

모든 에피소드들이 다 재미있었지만, 특히나 기억에 남는 것 중에 하나는 208이라는 이름을 가진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그 고양이는 아주 작았을 때부터 다른 고양이를 전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을 지구에 살고 있는 유일한 고양이로 생각한다고 했다. 방 밖으로 나가 본 적도 없고, 다른 고양이도 본 적이 없다는 당연히 그러지 않겠는가. 나도 집에서 강아지를 기르고 있는데, 우리 집 강아지도 좀 독특한 놈이다. 이상하게도 이 놈은 어릴 때부터 산책을 데리고 나가거나, 동물 병원을 가거나 할 때 다른 강아지들을 만나도 좀체 관심이 없는 것이다. 산책 길이든 어디든 강아지들은 서로 다른 강아지를 만나면 다가가서 아는 체를 하거나, 냄새를 맡거나 짖게 마련이다. 그렇게 다른 강아지가 다가와도 우리 집 강아지는 모른 체 하거나 관심이 없다. 그래서 우리가 우스갯소리로, 이 놈은 분명 자기가 강아지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해. 라고 했을 정도로. 208 고양이에 대한 에피소드를 읽는데, 문득 우리 집 강아지가 떠올라서 피식 피식 웃고 말았다. 어쩜 이렇게 비슷할까 하고. 브로드웨이와 콜럼버스 가에서 반 블록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낡고 싸구려 호텔인 '미국의 송어낚시', 그리고 그 곳에서 자신이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마지막 고양이라고 믿으며, 전혀 두려움을 모른 채 살고 있는 한 마리의 작은 고양이 208. 이 에피소드를 읽다 보면 하루키의 어떤 작품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하루키가 브라우티건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 클래식 시리즈의 작품들은 모두 표지가 너무나 산뜻하고 예쁘다. 그래서 이번에 출간된 모던 & 클래식 시리즈 작품인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와 존 스타인 백의 '붉은 망아지, 불만의 겨울' 세 권을 함께 책장에 꽂아두면 책장 전체가 화사해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멋진 색감과 디자인의 책은 읽기에도, 소장하기에도 너무나 행복한 일이니 말이다. 어쩜 이렇게 책과 잘 어울리는, 산뜻한 표지를 뽑아낸 건지 감탄스럽다. 게다가 중간중간 삽입된 삽화들도 책의 감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존에는 꽤 얇은 책인데도 불구하고 작품에서 보여지는 수많은 메타포들로 인해 난해하고 어렵다고 하는 이들이 꽤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에 출간된 개정판으로 만나보면 그런 불만들이 쏙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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