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
킴벌리 맥크레이트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타인의 시선은 우리의 감옥이며, 그들의 생각은 우리의 새장이다.

버지니아 울프, 월요일 혹은 화요일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는 것들은 가끔 우리를 완벽하게 배신하곤 한다. 그 사람의 말투, 행동, 평상시 습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배경들이 그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이중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거나,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짓말쟁이라던가 하는 문제는 아니다. 누구나 여러 가지 다양한 면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전부 보여줄 수는 없다는 선택과 다양성의 문제이다. 이 문제는 특히나 부부, 부모 자식 관계 등 가족간에 발생할 때 더욱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나 연인 사이라고 하더라도, 가족이 되기 전에는 어쨌거나 남남이기 때문에, 받아야 할 상처가 조금 덜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이에게서, 내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할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엄청난 충격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그 동안 믿고 있던 모든 것이 산산이 깨져버리는 경험은 단순히 '배신'이라는 단어로 치부하기엔 어딘가 부족한, 한 세계가 끝나는 경험인 것이다. <아멜리아는 자살하지 않았다>에서 케이트는 자신의 딸 아멜리아의 친구 관계에 대해 추적하면서, 자신이 전혀 모르는 딸의 모습이 학교에서 존재했다는 걸 깨닫고 충격에 휩싸인다. <제이컵을 위하여>의 앤디는 사건을 조사하면서 숨겨진 사실이 드러나자, 자신이 얼마나 아들을 제대로 알지 못했는지 깨닫기 시작한다. <클라이머즈 하이>의 유키는 자신을 무시하는 아들 준과의 관계가 불편하고, 서먹하기만 하다. <솔로몬의 위증>에서의 부모들은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냈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서의 부모들이 틀린 거라고 혹은 자녀들이 잘못했다고 만은 볼 수 없다. 관계와 소통은 한 쪽에서가 아니라, 양 쪽에서 노력해야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케이트는 바쁘게 일하는 싱글 맘이다. 늘상 바쁜 회사 일 때문에 딸인 아멜리아와 많은 시간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항상 주말에 함께 뭔가를 한다거나, 최대한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면서 살았다. 어느 날 그녀는 아멜리아에게 3일 간의 정학처분이 내려졌다는 연락을 받고 학교로 가게 된다. 교통체증을 피해 지하철로 겨우 도착했으나, 학교에는 앰뷸런스와 경찰들이 모여 있다. 그리고 차마 마주하기 싫은 현실과 맞닥뜨린다. "따님은 옥상에서 떨어졌습니다. 바론 부인, 따님, 아멜리아는 사망했습니다."라는 경찰의 한 마디. 이후로 그녀의 모든 삶이 다 무너져 내리고 만다. 딸의 죽음은 9일 만에 경찰에서자살로 판결이 내려지고,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던 케이트에게 익명의 문자가 온다. <아멜리아는 뛰어내리지 않았어. 라는. 과연 평소 우등생이었고, 모범적인 생활을 했던 아멜리아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정말 그녀의 죽음이 자살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 개입된 타살이었던 걸까? 이야기는 이후 딸의 죽음에 밝혀진 진실을 쫓아가는 케이트의 스토리와 아멜리아가 죽기 전의 실제 그녀의 삶에 대한 스토리가 일렬로 배치되어 극적인 긴장감을 부여한다. 10대들만의 은밀하고, 순수하지만 폭력적인, 그들만의 세상은 명문 사립학교라는 허울 아래 숨겨진 추악하고 잔인한 진실을 들려준다.

 

"그녀는 아주 어린 아이가 된 듯, 동시에 말할 나위 없이 늙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버지니아 울프, 댈러웨이 부인

 

이 작품은 아사이 료의 <누구>에서처럼 SNS를 주고받는 내용을 고스란히 페이지에 옮겨놓아 실감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네 살 때 읽는 방법을 익힌 후로 언제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모범생 아멜리아가 실제 친구들과 주고 받는 메세지 내용, 페이스 북에 올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 속에 나오는 문구들에 대한 것들은 이후에 우리가 도달하게 될 결말에 대한 일종의 복선이 된다. 가상의 공간인 그레이스 홀은 아이비리그 대학 인재들의 요람이자, 해마다 수천만 원의 수업료를 내고 다녀야 하는 고급 명문 사립학교이다. 이런 공간에서 한 여학생이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음을 맞이하고, 그 죽음에 얽힌 진실을 추적하는 케이트의 이야기는 미야베 미유키의 <솔로몬의 위증>을 떠올리게 만든다. 진실을 밝히는 주체가 아이들이냐, 어른이냐의 차이에서 출발하지만, 이 작품은 예기치 못한,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달려간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들은 모두 외우고 있을 정도로 정통해있는 아멜리아가 영어 숙제 표절이라니, 그것 때문에 정학을 받고 수치심에 자살까지 했을 거라는 학교와 경찰의 추측은 정황상 말이 안 된다. 케이트는 익명의 문자 제보를 받고서야 자신이 슬픔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있었음을 깨닫고 딸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한다. 하지만 속속 드러나는 진실들은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것들이었다. 네가 싫어라고 적힌  수십 개의 쪽지, 친아버지가 궁금하지 않느냐는 의문의 문자, 속옷만 입은 채 야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딸의 사진, 표절했다던 숙제와 내용이 다른 또 하나의 숙제.. 이런 단서들은 사립학교에서 펼쳐지는 집단 괴롭힘과 난교, 마약이 횡행하는 비밀 클럽 등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혹은 알면서도 외면했던 엄청난 세계로 우리를 인도한다.

 

뉴욕 최대 로펌의 유능한 변호사인 케이트는 직업적으로는 성공한 여성이지만, 사랑에 서툴어 번번히 실패했었고, 아멜리아를 낳게 된 것조차 실수로 하게 된 임신 때문이었다. 혼자 아이를 키워야했던 싱글 맘으로서 그녀의 고뇌와 그로 인한 그녀의 죄책감은, 아직 엄마가 아닌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움과 공감이 되도록 잘 묘사되어 있다. 워킹맘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이라면 아마 더욱 공감이 될 만한 현실이라 케이트에게 감정 이입하게 될 것 같다. 나름 아멜리아와 각별한 사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왜 그 고민들을 말하지 않았을까 자책하는 케이트에게 건네는 사촌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나도 부모 노릇 하는 동안 95퍼센트 정도는 끔찍한 기분이 들어.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나머지 5퍼센트 때문에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있다는 정도야. 가끔 완벽한 순간이 있는 채로, 대부분은 겁에 질려 있는 것. 마약 하는 것 같아. 한번 맛을 보면 중독돼서 멈출 수가 없다니까>라고. 너는 좋은 엄마였다고. 최선을 다해 자식을 사랑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자녀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부모가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주는 걸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내 생활의 모든 것을 전부 다 부모에게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성장하면서 점차 비밀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고민이 만들어지면서 점차 어른이 되어가는 것 일 테니 말이다. 그러니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자녀들은 부모님을 위해.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서의 뛰어난 스토리 텔링을 보여주는 감각적인 작품이지만,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이런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서 더욱 기억이 오래 남는 작품이 아닌가 싶다. . 이런 작품이 데뷔작이라니, 세상엔 왜 이리 뛰어난 작가들이 많은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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