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시민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서진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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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누명임이 분명했다. 평범한 주부이자 교통 법규도 한번 위반해본 일 없는 모범적이고 선량한 시민이었던 은주가 어느 날 아침 경찰에 의해 체포된 것이다> 라는 카프카의 소설 <소송>의 첫 부분을 변형하여 쓰인 매혹적인 이 작품의 첫 문장은 사실 시작부터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바로 그 거짓말로 인해서 이 작품만의 독특한 색깔이 만들어진다. 우선 이 작품의 주인공인 가정주부 은주는 제목이 가리키는 '선량한 시민' 은 아니다. 선량하다는 의미가 성품이 착하고 어질다는 것이라는 걸 기억한다면, '평범하다'는 것이 '선량하다'의 동의가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은 선량한 시민이 살인 용의자로 오해 받는 이야기도 아니고, 선량한 시민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다. 추리소설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작부터 범인을 밝히고 들어가며 범행의 목적도, 결국 범인이 밝혀지지도 않은 채 이야기가 끝이 나 버린다. 그렇다면 과연, 이 작품은 어떤 이야기를 하려는 걸까.

남편의 사업 실패로 시아버지 집에 들어가 살고 있는 은주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남겨진 돈으로 식당을 차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지만, 구순의 나이에, 치매기도 있는 시아버지는 여전히 정정하시기만 하다. 그녀는 동창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에 개천에서 오줌을 누던 남자를 보고 알 수 없는 충동으로 그의 등을 떠밀어버린다. 남자의 죽음은 단순 실족 사로 처리될 것처럼 보이고, 은주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며칠 뒤 경찰에 용의자로 체포되고 만다. 당시 현장을 보았다는 목격자가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은주는 자신의 범행을 완강히 부인하고, 경찰은 그녀와 피해자 사이에 아무런 관계도 없고, 무엇보다 그녀에게서 살해 동기를 찾지 못하자 증거도 없이 계속 붙들어 들 수만은 없어서 은주를 풀어주게 된다. 하지만 목격자의 존재는 은주를 불안하게 만들고, 그녀는 자신에게 걸려오는 누군가의 전화를 통해 목격자의 존재를 파악해 그마저 살해하고 만다. 문제는 진짜 목격자가 따로 있었다는 것에 있다. 은주는 엉뚱한 사람을 목격자로 오해해서 살해하고 말았다. 과연 앞으로 사건은 어떻게 전개 될 것 인가.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 성격은 충동에 의해 무너지고, 기억은 소망에 의해 왜곡된다. 인생은 무질서한데 왜 소설 속 이야기는 그토록 질서 정연해야만 하는가. 특히 추리소설을 보면 인간은 마치 계산과 논리의 기계처럼 움직인다. 범인은 주도 면밀하게 계획을 짜고, 탐정은 그 계획을 꿰뚫어 본다. 그러고는 창틀에 떨어진 흙덩이 하나 혹은 거꾸로 뒤집혀 있는 책 한 권으로 범행 전체를 추리해낸다. 창수가 보기에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의 범행은 너무나 우연적으로 이루어지고, 범인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경찰도 마찬가지였다

강사를 하면서 소설을 쓰는 창수는 우연히 은주가 살인을 저지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그는 애초에 경찰에 신고해서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마음 조차 전혀 없었지만, 오로지 너무도 평범해 보이는 40대 주부가 대체 왜 살인을 저질렀는지 너무도 궁금했던 터라 경찰에 신고를 하게 된다. 하지만 은주는 동기가 없다는 이유로 풀려나고, 그는 그녀의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그녀의 집에 전화를 하고, 일상을 관찰하고, 미용실에서 우연히 만나 말을 건네는 등 조금씩 친분을 쌓아간다. <다른 여자보다 머리카락이 좀 길다는 것을 제외하면 너무나 평범해 보이는 사십 대의 여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사람을 죽이다니!> 그는 은주를 단순한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신비의 영역으로 바라보면서 그녀야말로 자신이 쓰고 있던 소설의 소재가 될 거라고 흥분한다.

한편, 두 건의 살인사건은 은주에 대한 의혹을 증폭시키기는커녕 엉뚱한 방향으로 전개된다. 동네에는 두 사건이 연쇄 살인범의 짓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하고, 살인이 일어난 현장에서 게임을 하려는 고등학생들은 우발적으로 친구를 죽게 만든다. 고등학생의 살인 사건 마저 연쇄 살인범의 짓인 것처럼 사람들은 소문을 번져가고, 사건은 점차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은주와 창수를 몰고 간다. 이야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결국 원인에서 비롯된 결과가 아니라 이런 변수로, 이런 결과가 만들어질 수도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사실 현실에서도 그렇지 않나. 뭐 이런 거짓말 같은 상황이 다 있나 싶은 것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니 말이다.

동기. 동기가 정말 중요한 것일까. 창수는 의심스러웠다. 어떤 결과에는 반드시 어떤 이유가 있고, 엄청난 일에는 그만큼 엄청나고 절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일지 모른다. 사람들은 누구나 때로 절박한 심정이 되곤 하지만, 그 절박 함들은 대부분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다. 반대로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이유가 때로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는 것이다. 무엇이 이러한 차이를 만드는 것일까. 그것을 동기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살인사건 수사에 있어서 용의자를 선정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가 바로 '동기'이다. 살해 동기가 있었냐 없었느냐에 따라서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 용의자로 몰리기도 하고, 실제 범인이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가기도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결과를 추론할 때 ''라는 요소를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뜻하기도 한다. 사이코 패스에 의한 무차별 살인, 묻지마 범죄가 기승을 부릴 수록 사람들이 공포에 떨게 되는 이유도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과관계가 없다는 것은 미리 예방할 수도, 방지를 위해 어떤 준비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니 말이다. 현대인들은 어떤 일이 벌어지든 그 속에서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고 싶어한다. 자신이 믿을만한 스토리라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유가 없다는 것만큼 끔찍하고, 무서운 게 없으니까.

너무도 다른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만의 잣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인물들이지만, 나름의 공감과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세상 모든 일이 다 말이 되는 것이냐. 나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할 수 없어서 나를 애태우는 상황에 매력을 느낀다는 창수, 될 것은 언젠가는 되고야 만다.고 미제 사건이라도 어떤 사소한 계기로 인해 얼마든지 뒤집힐 수 있다고 믿는 최형사, 그리고 너무도 쿨하게, 아무렇지 않게 두 건의 살인을 저질렀지만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은주.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모든 사이코 패스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걸 말하는 것은 아니다. 누가 봐도 은주는 평범한 가정주부이지, 사이코 패스의 기질을 숨긴 살인마가 아니니 말이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누군가를 죽인 것일까. 모든 결과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뻔한 명제를 뒤집는 데서 오는 쾌감은 이 작품을 현실보다도 더 그럴듯한 소설로 만들어준다. 연쇄 살인도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무서운 놀이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개인적으로 <우리 인생에는 복선도 플롯도 없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복선도 플롯도 없어 보이지만, 사실 꼼꼼히 따져보면, 시간을 돌이켜보면 우리 인생에도 숱한 복선과 뻔하지 않은 플롯이 널려있으니까. 그래서 누구나 비슷해 보이지만, 그 누구와도 같을 수 없는 각각의 삶이 존재하는 것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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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술
김정남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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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방송에서, 책에서 힐링(healing)이 화두가 되고 있다. 몸과 마음의 치유가 힐링이므로 그만큼 현대인의 삶에서 '위로'가 필요하다는 얘기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위로는 신나는 걸 그룹 노래에서도, 한바탕 울 수 있는 멜로 영화에서도, 때로는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찾을 수 있다. '힘들 땐 잠시 쉬어 가도 돼'라고 속삭이는 책 한 권이 상처를 보듬어주기도 하고,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상처 받은 자신을 토닥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작년에 시작된 힐링 열풍은 올해 '순례' 열풍으로 이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순례'란 보통 종교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러 곳을 찾아 다니며 방문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크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는 자신의 과거와 마주서기 위해서 순례를 떠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16년만에 헤어졌던 네 명의 친구들을 찾아가 잃어버린 과거를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레이첼 조이스의 <해럴드 프라이의 놀라운 순례> 에서는 20년 전 회사 동료의 편지 한 통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길을 떠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처럼 여행을 떠나는 것은 아니지만, 수잔 최의 <요주의 인물>에선 주인공 리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과거 자신이 저질렀던 과오에 대해 속죄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모두 과거를 돌아보는 이야기라 할 수 있겠다.

가령, 오늘이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이라고 가정해보자. 누가 가장 그리운가, 송희? 누나? 죽은 아내? 아니다.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 그런 인간적인 그리움 따위는 이제 겨우 지워졌다. 이렇게 오로지 나 스스로가 되어본 적도 없지 않은가. 저기 서 있는 아이가 내 분신이라면, 그 또한 나일 것이고, 우리가 함께 죽는다면 세상은 나를 비정한 아버지라고 욕할지는 몰라도, 나 스스로는 필연일 수밖에 없다고 말하겠다. 내가 없으면 저 아이도 없다.

김정남의 <여행의 기술>에선 아들과 함께 죽기 위한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생활고에 지친 아내가 집을 나간 지 2년이 되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은 자폐아이고, 겨우 연봉 이천 사백 만원 받는 교수직 조차 해임될 위기에 처한 그는 7번 국도를 통해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물론 이 작품은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끝내려고 하는 스토리이기 때문에 무라카미 하루키나 레이첼 조이스의 작품에서와 같은 긍정적인 분위기보다는,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고단한 삶을 끝내려는 비극적인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다. 사는 게 왜 이리 퍽퍽하고, 지치는 건지 세상의 온갖 불행을 끌어안고 있는 듯한 인물에 쉽사리 공감하기는 어렵다. 실제 우리네 일상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그렇지 않나. 끔찍한 현실을 마주보는 것보다는, 잠시 눈 감고 달콤한 미래를 상상하고 싶은 것이 인간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문학에서 고통을 이야기하는 것이 그리 즐겁지 않다. 긍정적인 내용만 읽더라도 삶이 달라지진 않는다는 것을 알지만, 굳이 지루하고, 우울한 일상을 공유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작고, 얇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초반 십여 페이지를 읽다가 책을 덮어버렸다. 그러다가 책을 다시 펼치게 된 것은 어느 리뷰를 보고 나서이다. 사실 초반 몇 페이지만으로 책의 전체 내용을 판단하면 안 되는 거니까 말이다.

주인공 승호가 처한 인생은 글로 읽기만 해도 참 갑갑하다. 대체 생의 어느 순간에 제대로 행복한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불행으로 점철된 삶처럼 느껴지니 말이다. 그의 아버지는 바람을 피우다 내연 녀의 남편에게 살해당하고, 그의 어머니는 화재로 인해 사망했다. 하나 밖에 안 남은 가족인 누나 역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시집에서 구박받고, 남편이 휴거론에 취해 행방불명이 되는 등 녹록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승호 역시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지만 갑자기 어둑한 생활에 안녕을 고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그들 부부의 아이에게 자폐적 소인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건 일곱 살 무렵이었다. 그 뒤로 아이는 유치원을 그만두었고, 대신 소아정신과와 언어 클리닉, 스피치 학원, 수영장을 순례하며 하루를 보냈다. <아내는 언제나 파김치가 되어 있었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는 말이 무시로 튀어나왔다. 너를 만나서 내 인생을 망쳤다는 말도 어김없이 따라왔다>는 대목처럼 그의 아내가 절벽 끝에 몰려 있다는 건 자명한 사실이었다. 무늬만 교수라는 자괴감에 빠져 강의를 다니는 승호는 세금을 떼고 겨우 백 칠십여 만원밖에 벌어오지 못했고, 아이 때문에 병원과 각종 치료 시설에 매달 내야 하는 만만치 않은 비용들은 모두 다섯 개의 카드를 돌려가며 막아야 했다. 카드 연체 금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사천만 원의 연체 금이 칠천만 원이 되는 데는 채 이 년도 걸리지 않았다고. 아내는 결국 집을 나갔고, 겨우 아이를 보살피며 버티던 승호조차 한 달 전 법원 집행 관들이 들이닥쳐 집안 곳곳에 압류물품들을 붙이고 나자.. 이제는 정말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내가 지닌 고통의 분량이란 것도, 온 생명들의 부침에 비하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 그러나 하나의 존재는 자신의 생이 전부일 뿐, 우주의 시간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고통스럽다면 그게 내가 사는 세상이고, 전부다. 빅뱅 이후 백오십억 년이라는 우주의 시간이, 이백만 년이라는 인류의 역사가 무슨 소용인가. 내 고통의 총량을 우주의 시간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누구든 이 책을 읽다 보면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충분히 불행하다고. 그러니 죽을 각오를 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고 느낄 것이다. 문제는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작품에서 자기 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인물의 고통은 지루할 만큼 우울하고, 칙칙하고, 어둡다는 것이다. 인물의 자기 연민이 지나칠 경우 제 3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는 독자들이 오롯이 공감하기란 어려우니 말이다. 그래서 어쨌다고? 그렇게 우울하고, 힘들고, 죽을 것같이 고통스러우면.. 그럼 이제 자살하면 되겠네. 라는 기분이 든다고 할까. 그런데 과연 그 방법 밖에 없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고 말이다. 그가 겪는 일들은 시간으로 따지자면 이미 모두 벌어지고 난 것들이다. 되돌릴 수도, 뭔가 결과가 달라질 수 있도록 개입할 여지도 없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는 1인칭 시점보다는 전지적 3인칭의 관점이었다면 조금 더 몰입하기가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너무 자기만의 관점에 빠져 있다 보면, 모순을 발견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조금 객관적인 서술자가 독자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형식이라야 인물의 고통을 부담스럽지 않게 경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가져본다. 그렇게 자폐아 아들과 함께 생의 마지막 여행길에 오른 승호는 결국 아내가 죽었다는 처형의 연락을 받고, 그녀가 남긴 팔 천 만원이 남아 있는 통장을 받아 든다. 그리고 잠시 외도의 대상이었던 첫사랑 여인의 남편이 부도가 나서 외국에 나가 있다는 소식도 듣게 되고, 직권 면직 무효 소송에서 이겨, 다음 학기에는 복직이 될 거라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제야 그는 <충분치는 않지만 생을 조금 더 연장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금전적으로 여유가 조금 생기고, 기쁨을 나눌 애인이 생기더라도, 그의 자폐아 아들과 지내는 생활은 여전할 것이며, 그가 대학에서 받는 대우는 달라질 게 없을 텐데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이 여행하는 7번 국도는 기존 다른 작품에서도 등장했었고, 여행지로도 유명한 경로이다. 나는 김연수 작가의 <7번 국도>라는 책에서 이미 접했던 곳이라 개인적으로 친근함마저 느끼는 장소인데, 실제 가 본적은 없지만 마치 그 길 위에 서 본적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드는 장소이다. 김연수의 작품 속에서는 자전거로 동해안을 따라 올라가며 느끼는 감상들이 여행기 형식으로 쓰여 있었다. 당시만 해도 7번국도는 동해안 전 노선이 왕복 2차선 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동해안을 여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때였다. 4차선 도로 확장 이후 지금은 자동차 전용도로가 되어 해안을 따라 자전거 여행은 사라져 버렸지만 말이다. 누구나 '한때는 희망이 아니더라도 그 비슷한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삶은 반복되는 일상의 지루함과 평범함 속의 무의미가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희망이라는 단어와는 점점 멀어지게 마련이다. 바로 그럴 때 필요한 것이 여행이다. 길들 위에서 우리는 지나간 삶을 돌아보고, 이기적이었던 나를 반성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달래주고, 내 앞에 펼쳐진 거대한 생에 대해 다시 한번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다. 끝없이 길을 걷다 보면 계속 연결되는 그 길 위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고 초라한지도 깨닫게 되고, 당장 죽을 것처럼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이내 지나가는 바람이라는 것이 보일 것이다. 내가 읽었던 수많은 책들, 내가 만났던 사람들, 먹었던 음식들, 들었던 음악과 보았던 영화들 모두 길 위에 서면 내 등 뒤에 있는 것들이니 말이다.

충분치는 않지만 생을 조금 더 연장시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찾아 든다. '생은 난처한 사건의 연속이라는 오래된 가르침을 기억하라' 라는 호피 족의 말을 떠올린다. 길은 시작도 끝도 없다. 하나의 길은 세상의 모든 길과 연결되어 있기에.

가끔 너무 되는 일도 없고, 왜 나에게만 이런 시련이 닥치는지 억울하고, 분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이면 내가 행복했던 그 순간들이,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나온 모든 일들이, 내가 사랑했던 기억들이 다 거짓말처럼 말이다. 인간이란 그렇게 자주 망각하는 동물이다. 여행의 기술이란 이런 걸지도 모르겠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연결되고, 내가 절벽 끝이라고 느꼈던 그 지점에서 또 다른 경로를 찾게 되는 것. 뒤돌아 보면 내가 걸어온 길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처럼,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이 다 지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그러니 고통스런 순간에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또한 다 지나갈 거라는 걸. 담담하게, 그러나 씩씩하게 삶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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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의 악마
모 헤이더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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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는 도쿄로 난징 대학살에 대한 증거 필름을 보기 위해 영국에서 온 20대 여성 그레이가 동경대의 중국인 교수 스충밍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극의 진행은 그레이의 시점과 난징 대학살 당시 스충밍이 쓴 일기의 시점으로 교차되어 진행된다. 과거와 현재가 끊임없이 부딪히고, 교차되면서 극의 몰입도는 점점 더해지고, 마지막에 가서야 맞닥뜨리게 되는 충격적인 진실 앞에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이 작품은 잊고 있던 과거에 대한 감동적인 역사 소설인 동시에, 굉장히 탄탄하게 잘 쓰여진 스릴러이기도 하다. 특히 과거의 스충밍이 겪은 현장에 대한 기록은 작품의 후반으로 갈수록 점점 더 살벌하고, 끔찍한 그 역사의 한 페이지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지난 달에 장예모 감독의 <진링의 13소녀>라는 영화를 보았었다. 그리고 소문만 무성했던 걸작,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를 읽으면서, 나는 마치 내가 역사의 한 순간을 체험하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처럼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세대들은 영화나 책을 통해서만 그 참상을 겨우 '짐작' 할 뿐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할 만큼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던 그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 작품은 이야기한다.

 

비명이 멎자 세상은 다시 정적에 파묻혔다. 하지만 내 가슴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지금 나는 책상에 앉아있다. 창문은 아주 조금 열어두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는다. 도망치기에는 이미 늦은 상태다. 도시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다.

역사 속의 어떤 사건이 제대로 기록되기까지 수많은 의견대립과 논쟁이 벌어지는 사례를 우리는 숱하게 보아왔다. 홀로 코스트가 20세기 서양의 대표적 역사논쟁이라면 난징 대학살은 중국과 일본의 지루한 역사전쟁을 통해 진실이 드러난 사례라 할 수 있다. ‘사실보다는진실을 중요하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과 경험을 통해, 상대적인 관점이 아닌 절대적인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아야 하는 '진실'말이다. 올해 읽은 세 편의 작품 <유럽의 교육>, <회색세상에서> 그리고 <난징의 악마>를 비교해보는 재미도 있겠다. 세 작품 모두 과거에 인간이 저질렀던 악마와 같은 행동들에 대해 담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전혀 다른 색깔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여진 이 작품들은 정서도, 감동도 매우 달라 굉장한 여운을 남겨 준다.

로맹가리의 <유럽의 교육>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폴란드를 배경으로 숲속에 숨어 살며 독일 점령군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좀처럼 끝날 것 같지 않은 전쟁 속에서 부모를 잃은 열네살 소년 야네크와 독일 군인들에게 정보를 캐내기 위해 몸을 파는 열 여섯살 소녀 조시아, 희망을 위해 끊임없이 글을 쓰는 대학생 빨치산 대원 도브란스키가 주요 인물이다. 전쟁으로 인해 굶주리고 지친 사람들, 깊은 숲속에 숨어사는 빨치산들 모두,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는 생존이다. 열여섯 소녀가 원하는 건 소박하다. 오직 사랑하고 먹고 따뜻하게 지내는 것뿐, 그런데 평화롭게 사랑하는 것, 굶어 죽지 않는 것, 얼어 죽지 않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열네살 소년은 심장을 얼어붙게 만드는 추위와 배고픔, 희망이 사라진 전쟁의 한 가운데서 음악에 마음을 빼앗길 줄 안다. 쇼팽의 폴로네즈를 듣고 감동하는 그의 모습은 나에게 위안을 주었다. 그래, 결국 예술이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음악 앞에서 순수하게 감동할 줄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 이 작은 소년은 무려 전쟁의 한 복판에서 음악에게 마음을 빼앗겨버린다. 전쟁의 한 복판을 통과하는 사람들 속에서 로맹가리의 믿음은 가슴이 울컥해질만큼 멋졌다.

루타 서페티스의 <회색세상에서>는 1941년 리투아니아를 배경으로 스탈린 지배하의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에서의 비극을 열다섯살 소녀의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열다섯 소녀 리나는 뭉크의 그림을 좋아하고 장차 화가가 되길 꿈꾸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엄마, 남동생과 함께 소비에트 비밀경찰에게 끌려간다. 강제로 열차에 태워진 그들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길고도 험난한 여정에 오른다. 사망자가 속출하는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그들이 당도한 곳은 시베리아 강제노동수용소였다. 리나는 수용소에서의 시간을 그림을 그리고, 글로 써서 기록한다. 아버지에게 어떻게든 연락하기 위해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매일 밤 모여서 각자의 그리움과 소중한 기억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눈이 내리고, 기온은 계속 곤두박칠쳤고, 배고픔에 위가 아프고 쓰릴 지경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밤에 모여 서로에게 받는 작은 위로로 인해 일도, 추위도 참을 수 있었다. 히틀러나 스탈린, 둘 중 누구 손아귀에 있든 이 전쟁으로 모두가 끝장날거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들이 미움과 원망 대신 희망과 사랑을 가질 수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모 헤이더의 <난징의 악마>는 일본인들이 저질렀던 난징 대학살에 관한 미스터리 형식을 띠고 있어, 이들 두 작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모두 나치의 유대인 학살, 스탈린의 대 숙청, 그리고 난징 대학살의 한 복판에 서서, 현대를 살고 있는 젊은 세대들은 상상조치 하지 못할 끔찍한 일이 벌어진 그 시간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리고 이런 역사적 사건 들을 외면하고픈 과거의 과오로만 남겨둘 게 아니라, 그걸 잊지 말아야 한다고 환기시켜 준다. 새삼 느껴지는 것은 역사의 진실을 기록하고, 그것을 말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이건 '기록'이 아니라 '소설'이니 말이다.

잔인하고 위험한 역사 속의 그로테스크한 캐릭터들!

사실 스충밍 교수가 보관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난징 대학살을 담은 필름을 보여달라고 집요하게, 거의 집착에 가까워 보일 정도로 매달리는 주인공 그레이의 집념은 독자의 입장에서 거의 이해하기 어렵다. 그레이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공감이 가는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어둡고, 그로테스크하다고 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인물 군상들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나 극 속으로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건 작가의 대단한 능력임에 분명하다. 이 작품은 뭐랄까, 굉장히 다크한 포스를 뿜어내는 작품인데, 뭔가에 홀린 듯 책에서 손을 놓을 수가 없다고 할까. 이렇게나 무겁고, 스릴 넘치고, 그리고 불편한 이야기이라 머리가 피곤해지는데도, 그럼에도 페이지의 끝까지 달려가고 싶게 만드는 매혹을 선사한다.

그레이는 어린 시절 우연히 주황색 표지에 수북이 쌓인 시체들 사진이 붙어 있던 책을 읽게 된다. 그 책을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난징이라는 곳을 들어본 적조차 없던 그녀였지만, 충격적인 '난징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문제는 주변 사람 누구도 그녀의 말을 믿어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두들 그녀가 꾸며낸 이야기라며, 그런 책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그녀가 전부 상상해낸 거라고 입을 모은다. <세상 어디서도 그런 잔학 행위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일본군이 잔혹하고 무자비했던 건 사실이지만 그런 입에 담지 못할 고문까지는 절대 자행하지 않았을 거라고> 유일하게 자신이 알게 된 걸 증명할 수 있는 책을 잃어버린 터라, 그녀는 직접 진실을 규명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구 년 칠 개월 십팔 일만에, 1937년 난징에서 촬영된 필름이 있고, 그걸 직접 목격하고 필름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직접 확인하러, 스충밍 교수를 만나러 온 것이다. <제 인생의 절반을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바쳤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레이의 심정은 공감대 형성이 되지 않아, 초반 스토리가 진행될 때는 좀 당황스럽다.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가며 진실규명에 집착하는 것일까. 싶을 만큼 그녀는 무모했고, 간절했기 때문이다.

"전 당시 일본군이 저지른 특정 범죄에만 관심이 있어요. 그들이 자행한 만행들 대부분을 알고 있습니다. 살상 게임, 강간. 하지만 전 교수님께서 직접 목격하신 특정 만행을 말씀 드리고 있는 겁니다. 아무도 제 말을 믿지 않아요. 다들 제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스충밍 교수는 그녀에게 필름을 보여주는 조건을 내건다. 무일푼으로, 무작정 도쿄로 왔던 그녀이기에 교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고, 그에게서 연락이 오기까지 묵을 숙소도 필요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신주쿠 가부키초의 유명 클럽에서 호스티스로 일을 하게 되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스충밍 교수가 제안한 것은, 가끔 클럽에 들르는 도쿄 최대의 야쿠자 조직의 보스인 후유키가 복용하고 있는 약에 대래 알아내라는 것이었고,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답을 찾기 위해 거의 목숨 걸고, 위험천만한 곳으로 뛰어들게 된다. 꽉 짜인 스토리는 빈틈없이 메워져 있고, 매 페이지마다 넘쳐나는 미스터리와 숨돌릴 틈 없는 긴장감은 굉장하다. 작품의 후반부로 갈수록 그레이의 과거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되면서 이상하리만큼 난징에 집착하는 그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지는 지점을 만나게 된다.

그거 알아요?

파티에서 돌아온 그는 내 방을 찾아와 말했었다. 그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우리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완벽히 메워줄 수 있는 관계예요.

자신의 죽은 아기에 대한 죄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그레이와 괴물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는 특이한 취향의 제이슨은 매우 기묘한 관계이다. 서로에게 마치 자석처럼 끌리는 그들의 위험한 사랑. 그리고 속을 알 수 없는 인물인 후유키, 무시무시한 오가와 간호사 등 캐릭터들은 하나씩 떼어내어 다른 작품을 쓸 수도 있을 만큼의 아우라와 독특한 색깔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 평범한 인물은 단 한 명도 없으니까. 그리고 그 이유는 수 십년 전 난징에서 벌어졌던 바로 그 일 때문이다.

대체 1937, 중국 난징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당시 4개월간 벌어진 일본인들의 살육, 강간, 약탈은 일명난징 대학살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물론 그들의 만행이 역사로 기록되는 데에만 60년 이상의 논쟁이 필요했다. 감춰졌던 학살의 진실을 대중에게 알렸던 인물로 중국계 미국 작가인 아이리스 창이 있다. 모 헤이더는 이 작품의 서문에 <이 작품은 용기 있는 지성으로 어둠 속에서 '난징'이라는 이름을 꺼내준 아이리스 창(1968~2004)에 바칩니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창은 <난징의 강간>(1997)을 펴내며 가해자인 일본, 피해자인 중국을 바라보는 서구의 목격자 시선으로 난징 대학살을 세계에 알렸다. 그러나 출간 이후 일부 역사가들이 책에 실린 사진의 진위와 내용의 부 정확성을 문제 삼아 논쟁이 불거졌고, 일본 우익들의 끊임없는 협박 전화는 그를 심한 우울증을 겪게 했으며, 결국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하고 만다.

"무지와 악이 같지 않다고 하셨죠? 기억하시나요?"

"그래요. 기억해요."

"정말인가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무지는 악이 아닌가요?"

"물론이죠.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정말로요?"

"그럼요. 무지는 용서받을 수 있어요. 무지는 악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묻습니까?"

"왜냐하면..... 왜냐하면...."'

난데없이 찾아 든 묘한 기분이 내게 힘을 북돋아주었다. 살짝 어지러움도 느껴졌다.

"왜냐하면 그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니까요."

모 헤이더는 지난 2012 <실종>이라는 작품으로 에드거 상을 수상했다. 워낙 데뷔작부터 베스트셀러가 되고, 매 작품마다 후보에 오르거나 수상을 했던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데뷔작인 <버드맨>은 국내에 바로 출간이 되었었는데, 2001년 이후 이번 <난징의 악마>가 출간되기까지는 무려 12년이나 걸렸다. 그녀의 데뷔작은 출간 당시 '토마스 해리스의 작품 보다 재미없으면 책값을 돌려드립니다'라는 자신감 넘치는 홍보문구를 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화제였는데 아마 국내에서는 그만큼 호평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난징의 악마>는 그녀의 세 번째 작품인데, 첫 작품과 두 번째 작품이 남성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려졌다면, 이번 작품은 여성 주인공 1인칭으로 그려진다는데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모 헤이더의 작품 리스트>

출간년도 원서 제목 국내출간 비고
2000 Birdman 버드맨 2001년 10월 데뷔작
2002 The Treatment 트리트먼트   WH 스미스 썸핑 굿 리드 상 수상/현재 영화로 제작중
2004 The Devil of Nanking 난징의 악마 2013년 10월 엘 매거진 범죄소설 상/SNCF Prix du Polar 상 수상
2006 Pig Island 피그 아일랜드   배리 상 후보/ CWA대거 상 후보
2008 Ritual 의식   CWA 이언 플레밍 스틸 대거 상 후보/배리 상 후보
2009 Skin 스킨   ITW 스릴러 상 후보
2010 Gone 실종   에드거상 수상/CWA 라이브러리 대거 상 수상

모 헤이더와 비견될만한 작가로, 일본의 기리노 나쓰오가 생각난다. 여성 작가답지 않은 포스를 자랑하는 작품의 분위기도 그렇고, 스케일도 그렇고, 어둡고 다크한 포스를 뿜어내는 마력도 있으니 말이다. 기리노 나쓰오는 국내에 꽤 팬이 많은 편인데, 그녀의 작품을 즐겨 읽는 이들이라면 모 헤이더의 작품과도 잘 맞을 거라고 생각한다. 특히나 이번에 출간된 <난징의 악마>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가미한 소설이지만, 단지 그 충격적인 진실을 까발린다는 것보다 더한 스릴러 소설로서의 재미도 충분하니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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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고전 : 한국편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김욱동 지음 / 비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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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지구상에는 하루에도 수십 종의 동물들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김백겸 시인은 <멸종>이라는 작품에서 이렇게 노래한 적이 있습니다.

일 년에 백만 종의 영혼이 지구를 떠나고 있다.

매연과 소음과 농약으로 썩어가는 지구에서 살 수가 없어서

다른 별들로 이민을 떠나고 있다.

그들의 유전자 설계도와 이름이 지워지고 있다.

 

내가 생태문학으로 접하게 된 책은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과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 정도이다. 생태문학이라고 분류되는 책들은 자연환경을 파괴하는 문명에 관한 비판 내지는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 기본 주제인데, 생각해보면 얼마 전에 읽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3인류>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를 하나의 생명체로 보고 모든 생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이아 이론에 입각해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베르나르에 따르면, 만약 가이아가 생명을 품은 유일한 행성이라면, 그건 인간들에게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가이아가 파괴되면 우주 어디에도 생명을 가진 존재가 없게 되는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3인류>의 배경도 핵무기의 무분별한 사용과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 자원 고갈 등 인류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니 결국은 환..문제가 이야기의 전반에 깔려 있다. 그러니 2013년이 저물어가는 이 시점에, 일상에 지친 우리들에게 화두는 바로 생태문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이런 류의 작품들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소박하고 검소한 삶에의 미덕을 알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굉장한 위안을 주게 되지 않을까 기대한다.

 

                                                                                                                          

<녹색고전>은 비채에서 출간되고 있는 모던 & 클래식 시리즈에서 출간된 올해의 네 번째 작품이다. 브라우티건의 <미국의 송어 낚시>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 그리고 존 스타인백의 <붉은 망아지, 불만의 겨울>에 이어서 역시나 산뜻한 색감의 화사한 표지가 눈길을 잡아 끈다. 저자인 김욱동 교수는 기존에도 생태문학 비평 집을 출간한 이력이 있고 문학을 통한 환경운동에 상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이 재미있는 것은 바로 '고전'을 통해서 생태문학을 다룬다는 것인데, 아주 특별하고 색다른 고전 읽기의 방법이 아닌가 한다. 세계의 명작들은 꽤나 많은 출판사에서 여러 가지 디자인을 통해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지만, 한국, 동양의 고전들은 그에 비해 홀대 받는 게 사실이었으니 말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교과서에서나 만나보았을 법한 글들을 이 책을 통해 읽으면서 굉장한 재미를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이번에 출간된 한국 편에 이어 동·서양의 생태문학 고전도 곧 모던 & 클래식 시리즈로 나온다고 하니 더욱 기대가 된다.

인간에게 아무리 귀찮고 해로운 벌레라고 하더라도 이 우주 안에서는 그 나름대로의 존재이유가 있기 마련입니다. 존재이유가 있을뿐더러 생태계라는 가족에게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식구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하여 어느 한 생물을 절멸시킨다면 생태계는 그 조화와 균형이 깨뜨려지고 맙니다. 우리가 빅토리아 비단나비 같은 동물이나 금강초롱꽃 같은 식물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작은 귀돌 하나가 집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듯이 작은 생물 종 하나가 생태계 전체에 크나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습니다. 생태계는 마치 그물이나 망 또는 고리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어 어느 한 부분이 없어져 버리면 다른 부분은 반드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휴고"에는 이런 대사가 있었다. 파리의 기차역사 내 커다란 시계탑을 혼자 관리하며 숨어 살고 있는 외로운 열두 살 소년 휴고가 등장한다. 그가 관리하는 시계탑처럼 기계엔 불필요한 부분이 전혀 없다. 각 부속들이 정확하게 꼭 필요한 만큼만 있어야 기계가 원활하게 돌아갈 수가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는 이 세상이 하나의 커다란 기계라는 상상을 하곤 한다. 만약에 세상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기계라면, 자신도 어떤 필요가 있을 거라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지만 나도 꼭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생태계도 마찬가지로 그 어느것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다.

 

사실 우리가 환경 재앙이라고 일컫는 것들은 모두 인간들이 저질러온 행동 때문에 발생한 문제들이다.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물을 막아 댐을 쌓고, 언덕과 산을 파헤쳐 고속도로를 닦았으며, 광물이나 귀금속을 찾기 위해 두더지처럼 땅속을 샅샅이 뒤졌고, 강과 바다에 온갖 쓰레기를 갖다 버렸으니>말이다. 만물의 영장으로 자처 해온 인류라는 존재가 말이다. 학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2050년경이 되면 지구상에서 모든 열대 우림이 사라지고, 석탄이나 석유 같은 연료들도 모두 바닥이 날 예정이라고 한다. 마치 <시한폭탄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환경 재앙의 시계가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진한영감은 하찮은 개한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륜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 자기 주인을 알아보고 짖지 않으니 군신유의요, 어미와 털의 색깔이 비슷하니 부자유친이요, 한 마리가 짖으면 여러 개가 함께 따라 짖으니 붕우유신이요, 암컷이 새끼를 밴 뒤에는 수컷을 멀리 하니 부부유별이요, 작은 놈이 큰 놈을 대적하지 않으니 장유유서라는 것입니다. 그 얼마나 그럴듯한 설명입니까?

 

연암 박지원의 〈호질〉에 등장하는 호랑이는 인간중심주의에 대해 비판한다.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하며 다른 생명들을 마음대로 지배했던 인간들에게, 그런 태도가 얼마나 자연을 해치고 질서를 어지럽히는지 설파하는 것이다. 민속극 <강령탈춤>에 등장하는 진한영감의 이야기는 더욱 재미있다. 그는 개한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오륜이 있다고 주장한다. 개한테도 오륜이 있다는 진한영감의 말은 마한영감을 놀려주기 위한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어딘지 농담 속에 뼈가 있는 듯한 대목이다. 모든 사물과 생명을 인간의 입장에서만 해석하고 판단 하려 들지 말라는 뜻일 것이다. 우리의 고전을 읽어보면 당시에는 동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애틋하고 따뜻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들이 많이 있다. 가을이면 까치 밥이라고 하여 나무에 열매를 몇 개 남겨두고, 화롯불에 던져지는 이() 한 마리를 보면서도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하찮은 동물들의 목숨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누며 배려했던 것이다. 자연과 동물들과 함께 사는 삶이었던 그 시대에만 해도, 환경오염이란 단어는 아마 상상도 하지 않았을 테니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 없다.

 

올해 전세계 환경위기시계는 919분으로 작년(923) 대비 4분 감소했고, 한국의 환경위기시계는 931분으로 작년(932)대비 1분 감소했다. 그러나 여전히위험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환경위기 시계를 보는 방법은 0~3(양호), 3~6(불안), 6~9(심각), 9~12(위험) 수준을 가리키며, 12시는 인류의 생존이 불가능한 시간을 상징한다고 한다. 언제쯤 양호한 시간대로 유지될 수 있을 까.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 까. . 오늘부터 라도 각자 삶의 속도를 늦추고 주변의 것들에 관심을 기울여보자. 빛의 온도, 공기의 무게, 하늘의 색감, 꽃의 싱그러움, 구름의 움직임.. 그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을 것 같다. 길을 걷다가 멈춰 서서 낙엽과 바람의 방향을 관찰해보고, 소소한 일에 초연해 지며, 생명을 가지고 있는 모든 존재의 가치를 생각해보자. 환경을 생각하는 일은 결국 우리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럼 40년 후의 어느 날 조금 더 아름다운 지구가 되어 있을 것 같다는 바램을 가져본다. 이 책 또한 그런 작은 발걸음에 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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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제3인류 1~2 세트 - 전2권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모국인 프랑스에서보다 한국에서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작이다. <3인류>에서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바로 '진화'이다. 인류가 어떻게 진화했고,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에 대한 고민이 뛰어난 상상력을 만나서 빛을 발한 경우라 하겠다. 베르나르의 작품들이야 워낙 기발한 상상력과 방대한 철학, 과학적인 정보들이 버무려진 걸로 유명하다. 제일 처음 만났던 그의 작품인 <개미>때부터 어쩜 이리 기상천외한 생각을 해냈을까 감탄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 신작은 그의 전작들과 많이 엮여 있다. <개미>에서 주인공의 증손자 다비드 웰즈가 이 작품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그가 저술했던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자주 인용한다.모든 작품들은 상호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개미』, 『타나토노트』, 『나무』, 『뇌』 등 제 작품은 각자 다른 주제를 논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읽다 보면 어떤 키워드가 뚜렷하게 잡힐 겁니다."라는 베르나르의 말처럼 말이다. 그래서 기존의 전작들을 이미 읽었던 이들이라면 더욱 반가울 만한 작품이다. 물론 베르나르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거라고 해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의 키워드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이번 작품은 과학 소설이라 굉장히 많은 요소들이 언급이 되는데, 페이지를 멈추고 다시 앞 장으로 돌아간다거나, 주석을 읽어봐야 이해가 된다거나 하는 부분이 전혀 없다. 술술 페이지가 넘어가는 점이 베르나르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여성이 인류의 미래라는 것은 남성을 결정짓는 생식 세포들이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그건 피할 수 없는 경향이에요. 모든 종들이 저항력과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여성화하고 있어요. 인간이 개미처럼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길이죠. 개미 사회는 95퍼센트의 암컷과 비 생식 개미, 그리고 수명이 아주 짧은 5퍼센트의 수컷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이야기는 고생물학자 샤를 웰즈의 탐사대가 남극의 빙하 아래에서 8천 년 전에 소멸한 거인들에 대한 기록을 발굴하면서 시작한다. 우리의 첫 번째 인류는 키가 무려 17미터에 달하는 초 거인들이었으며, 그들만의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이룩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중대한 발굴 현장은 의문의 사고와 함께 그대로 묻히고 만다. 나중에 수색대가 그들을 찾아냈을 때는 높이가 2미터쯤 되는 거대한 얼음 덩어리 속에 그대로 갇힌 채로 발견이 된다. 그 샤를 웰즈의 아들이 <3인류>의 주인공 생물학자 다비드 웰즈이다. 그는 <진화에 관한 학술 경연 대회>에 참가하지만 최종 선발되지는 못한다. 다비드가 연구한 것은 바로 '피그미, 소형화를 통한 진화'라는 부문인데 콩고에 가서 피그미들을 탐방해 그들이 문명인보다 면역성이 강한 이유를 밝혀보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미개한 과거의 종족인지, 아니면 오히려 미래의 인류에 속하는 사람들인지 알아보겠다는 것이다. 그는 그곳에서 여성화가 인류의 미래라고 믿는 내분비학자 오로르 카메러를 만난다. 그리고 심사위원 중의 한 명이었던 나탈리를 통해 대통령 직속 비밀 기관의 지원을 받는 과학자들이 황폐한 환경과 방사능 속에서도 살아남을 신종 인간을 탄생시키려는 비밀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바로 초소형 인간인 에마슈이다.

 

제가 지지하는 두 결선 진출 자는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사회성 곤충들은 꿀벌이든 개미든 1 2천만 년 전부터 지상에 존재해 왔고 그런 방향으로 진화했습니다. 꿀벌과 개미는 완벽하게 기능하는 사회를 만들어 냈고 전염병과 기아를 이겨 내면서 온 대륙에 도시들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종은 크기를 줄이고 암컷의 비율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지상에서 번성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든 개미와 꿀벌을 볼 수 있다는 게 그 증거입니다.

 

베르나르는 이 작품에서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설, 즉 가이아 이론을 전면적으로 등장시킨다. 가이아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으로, 지구가 인간처럼 살아 있다고 보는 이들이 붙인 이름이다. 가이아는 독백의 형태로만 등장하며,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전체 소설에서 가이아의 대목만 1인칭 서술로 독립되어 흐른다. 핵무기의 무분별한 사용, 자연재해와 환경 재앙, 자원 고갈, 대전염병, 야만적 자본주의, 종교적 광신 등 인류가 끝없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이 작품의 배경이므로, 지금처럼 지구 행성을 소모하는 자기 파괴적 생활 방식을 계속한다면 종말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는 것, 인류는 자신을 탈바꿈시켜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그 메시지다. 인간들의 행동에 분노한 가이아는 바이러스나 기상 이변 등을 통해서 인간을 심판한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을 보고 다비드와 오로르는 이게 바로 바로 우리 부모 세대의 지력과 사고력이 도달한 결과라고 해석한다. 우리 부모들은 잘못을 저질렀고 그들에 앞서 우리 조부모님들도 잘못을 범했기 때문에 그런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은 그런 실수를 이어 간다는 거라고. 우리는 새로운 인류, 새로운 규칙을 가진 신 인류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말이다.

 

신체의 크기를 줄여서 위험에 대처하는 것은 8천 년 전에 거인들이 사용한 방법인데, 저들이 그런 해결책을 다시 찾아낸 것이다. 사실 인간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일 수도 있다. 인간들은 나의 모든 표면을 침범해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그들의 크기가 줄어들면 내게는 그들이 훨씬 덜 성가실 것이다. 크기가 0분의 1로 줄어들면, 그만큼 천연자원과 식량의 소비도 감소할 것이고, 수명도 짧아질 것이다. 요컨대 나를 침해하는 일이 현격하게 줄어들 것이다.

 

<3인류>에서는 17cm 초소형 인간에마슈가 등장한다.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진화가 필요하다는 결론으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기에 이른 것이다. 에마들은 숫자로 구분이 된다. ‘에마 1’은 제 1대 여왕으로 에마슈들을 다스렸고. ‘에마 666’은 반란을 일으켜에마 1’을 살해했고, 처벌을 받은 뒤 사제로서 활동한다. 작품의 후반부에 등장하는에마 109’는 다음 편에서 전개될 이야기에서 어떤 활약을 할 거라는 예고를 한다. <개미>를 읽었던 이들이라면 아마도 그 작품과 연결된 부분들을 캐치했을 테고, 그럼 다음에 이어질 <3인류>이 스토리가 더욱 궁금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에마슈를 보는 가이아의 멘트가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에 대한 힌트가 될 수도 있겠다 거인들은 미니 인간을 만들어 문제를 해결했지만, 그 해결 책은 더 고약한 문제를 낳았다. 미니 인간들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 그들은 저희를 창조한 주인들을 배신했다.’ 라고 하니 말이다. 베르나르는 아직도 이 작품을 집필 중에 있고, 현재 1, 2권으로 출간되었는데, 앞으로 프랑스에서는 4, 한국에서는 8권으로 나올 예정이라고 이라고 하니 다음 이야기를 기대해보자.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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