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공포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에리카 종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에리카 종의 작품에 대한 배경을 얘기하자니, 자연스레 마광수 교수가 떠오른다. 그의 작품 <즐거운 사라> 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구속이 되고, 대학교수직에서 면직까지 당했었던 그 당시 우리나라는 1990년대였다. 보수적인 문학계의 엄청난 화제였던 이 일화를 누구나 다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에리카 종의 <비행공포>는 무려 1970년대에 출간된 작품이니, 당시 얼마나 사회적인 비판을 받았으며 문학계의 충격이었을지 짐작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전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은 <비행공포>의 출간 이후, 에리카 종의 말을 빌리자면, “욕설을 담은 협박편지와 찬사를 가득 담은 편지들이 동시에 쏟아지는 나날이었다고 하니, 어느 정도였을지 당시 상황이 눈에 훤히 보인다. 이번에 비채에서 출간된 이 작품이 저작권사와 정식 계약한 최초의 한국어판이긴 하지만, 그 동안 다양한 한국어(해적)판이 출간되었었고, 초기에는 음란성을 이유로 소각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하니, 문제작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이렇게 많은 비속어가 들어 있으면서 이렇게 지적인 책은 본 적이 없다> <역사적으로 평가 받는 작품이 이렇게 '세속적으로' 재미있기도 힘들 것이다> <이 소설에는 기품과 도도함, 총명함과 예리함이 있다> <이 소설의 서술방식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솔직하고 똑똑하면서 재미있다는 것이다> 등등의 평가는 이 작품의 가치와 재미에 대해 말해주는 시작에 불과하다.

 

나는 결혼 자체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결혼의 의미를 믿었다. 적개심으로 불타는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려면 한 명의 단짝 친구 정도는 둘 필요가 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져버리지 않을 한 사람,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져버리지 않을 한 사람. 그러나 결혼생활이 나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할 때 고개 드는 이 갈망은 어쩌란 말인가? 그 불안감, 그 굶주림. 뱃속에서 쿵 하는 울림, 보지에서 쿵 하는 울림, 모든 구멍으로 씹질하고 싶은 이 욕망은 어쩔 것인가? 쌉쌀한 샴페인과 젖은 키스, 어느 6월 밤 작약 향기가 풍겨오는 펜트하우스, <위대한 개츠비>에 나오는 부둣가 초록 불빛에 대한 이 욕망은 어쩔 것인가?

 

이 작품은 시인이자 소설가인 에리카 종의 자전적인 요소가 생생히 담긴 이야기이다. 첫 남편과의 결혼, 이혼 후 정신과 의사인 두 번째 남편과의 결혼 등 네 번의 결혼과 대학원에서의 생활, 학회 참석, 가족들과의 관계, 결혼에의 굴레와 거침없는 성적인 상상과 욕망에의 실현까지 다소 거칠고, 적나라한 언어로 그려진다. 일반적으로 수치스럽다고 표현되는 욕구와 은밀한 생각들까지 독자에게 모두, 전혀 가감 없이 드러내는 이 인물은 작가 그 자신이자, 현대 여성을 대표하는 일종의 여성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여성의 역할과 지위와 현대에 이르면서 많이 변했고, 이혼율이 증가하면서 남녀 관계가 많이 변하기도 했지만, 아직도 여성이라는 주체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형화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부분들을 과감히 깨부수는 새로운 형식의 이 작품은 쓰여진 지 4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매혹적이다. 간단히 요약하자면, 주인공 여성의 성적 모험담' 정도가 되겠지만, 사실 직접 작품을 읽어보면 생각보다 직설적인 표현들이 낯뜨겁다거나, 불쾌하다기보다는 유쾌하게 읽힌다는 것이 당혹스러울 정도이다.

 

 

‘여성은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라는 거대한 질문에 온몸으로 답한 여주인공의 이야기는 40년이 흐른 지금 시점에서 읽어도 여전히 생동감 넘치고, 흥미롭고, 어떤 면에서는 속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최근에 읽었던 '고삐 풀린 뇌'에서도 그렇지만, 자신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그것을 감추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은 당당한 자아를 찾는 것과도 연관되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은밀하게 어두운 곳에서만 즐기거나, 수치스럽다고 해서 감추거나 하지 말고, 아무 거리낄 것 없이 드러낼 수 있어야 비로소 그 욕망에 충실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 말이다.

 

남자와 여자, 그리고 여자와 남자. 그 둘의 문제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남자들이 사냥꾼이자 원시인이었을 때, 여자들은 평생 임신을 걱정하거나 아기를 낳다가 죽을까 봐 걱정하며 살았다. 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일이 일어났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차갑고 반응이 없고 뻣뻣하다고 불평했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음탕해지기를 원했다. 거칠어지기를 원했다. 이제 여자들이 음탕해지고 거칠어졌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던가. 남자들이 시들어버렸다. 참으로 절망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을 말할 때, 적나라한 언어로 표현된 성적인 욕망에 관한 부분이 주요 이슈이긴 하지만, 나는 의외로 그녀의 책에 대한 애착이나 관련된 에피소드들에 더 마음이 갔다. 어쩌면 자전적 요소가 다분한 작품이라 내가 에리카 종이라는 작가와 주인공을 동일시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활자화된 모든 것을 성지로 여기며, 글쓰기가 자신의 삶에 있어 유일한 희망이자 탈출구였다는 대목들.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잘 골라 펼쳐 든 책 한 권은 방패이자 방화벽이며, 투명인간의 망토란 걸 알았다>는 부분들. 시끄러운 집안에서 자라면서, 책을 은신처 삼아 도피하는 법을 배웠다는 어린 그녀가 부모님이 소리를 질러도 들리지 않고 오로지 책에만 몰입하는 장면이 막 그려졌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한 자신은 안전했다고 믿는 그 무모하리만큼 순수한 그 애정에 공감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위 '책벌레'라는 인종들을 무조건 편애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니까 '삶이 나를 속이더라도 나는 한 권의 책을 읽겠다'는 식의 막무가내 애정을 가진 이들에게 조건 없이 너그러운 편이다. 그런데 배경지식으로 알고 있던 에리카 종이라는 작가에게서 의외로 이런 면을 발견한 것이다.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언어의 돌직구에 휘청거리다가 뜻밖에 이런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페이지 곳곳에서 맞닥뜨리고는 마음이 설레었다고나 할까. 이렇게 당당하고, 쎈 여성도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구나. 하는 반가움과 묘한 이질감 같은 거 말이다. <난 글 쓰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 그래야만 계속 쓸 수 있으니까> 라는 마치 선언 같은 문장은 그녀의 성격과 그녀가 지내온 환경을 짐작하게 한다. 책벌레였던 그녀는 삶이 자신을 져버릴 때마다 문학에 매달렸는데, 작품 속에선 항상 자신이 여주인공인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대체 남자 주인공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책 속에, 영화 속에 존재하느라 바빠서 우리의 삶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대목에서는 픽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우리도 잘 그러지 않나. 예를 들어 드라마 '상속자들'을 보면서, 왜 현실에는 이민호 같은 남자가 없는 걸까? 한탄하기도 하고 말이다.

 

구구절절 말이 길었지만, 에리카 종의 이 작품은 가능한 많은 이들이 읽어봤으면 하는 바램이다. 단순히 이 작품이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욕망에의 실현 외에도 이 책은 책과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줄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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