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 신영복 유고 만남, 신영복의 말과 글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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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람은 대개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방식에 근거해 타인을 판단하고, 거기에 맞춰 사람을 가려내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러한 분류와 경계는 잠시 내려놓아도 좋으리라.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의 유고 모음집이다. 그의 삶은 크게 감옥 이전 20년, 감옥 20년, 그리고 감옥 이후 20년으로 나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같이 징역 살았던 사람들은 서로 만나면 동창생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20년간 옥살이를 일명 ‘나의 대학 시절’이라 일컬었다. 출소 후, 신영복 선생은 성공회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게 되는데, 결국 그에게는 세 개의 기간 하나하나가 모두 ‘대학’이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감옥에서의 그렇게 긴 세월이라니, 누구보다도 무섭고 두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힘들고 고통스럽던 징역살이를 토로하기보다는 거기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의식과 삶에 대해 깊은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된다. 게다가 사람들이 겪었던 사회의 실상은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꽤 차이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글은 잘 몰라도 무식이 더 날카로운 통찰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노인의 한마디.
집을 그릴 때 집을 짓는 순서처럼 주춧돌부터 그리기 시작한 옛날 목수.
그리고 교과서가 아닌 당사자들의 삶에서 바로 듣는 생생한 역사의 순간 등등.
  신영복 선생은 수많은 재소자들과의 만남이 그 죄의 질과 양을 떠나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는 충격과 경이의 연속이었노라 언급한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그의 겸손한 마음과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봐주는 시선이 더욱 인상 깊게 다가왔다. 신영복 선생은 사람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발견할 줄 아는, 자신의 언어는 뒤로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교감할 줄 아는 분이셨던 것이다.
  사실 세상에는 처음 만났어도 잠깐만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재소자들을 만나면 편견으로 대하지 않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본인들의 넘치는 자신감과 달리, 죄가 있든 없든 그냥 눈앞의 사람조차도 제대로 바라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저는 어느 개인에 대한 이해는 그가 처한 처지와 그 개인을 함께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p.37)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이해에서 출발하여 사실보다는 진실에 주목하고 그 사람과 그 처지를 함께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자세를 만들어 내는 것이 바로 방금 이야기한 '관계'의 문제입니다. 대상을 대상으로 저만치 떼어 놓고 인식한다는 것은 적어도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에는 부정확하고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p.38)


  

이 책은 그 외에도 자본주의의 환상과 열등의식, 존재론적 패러다임 등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에 대해 신영복 선생은 관계론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와 더불어 가치에 대한 이야기, 대학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 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함을 언급한다.
  그리고 신영복 선생의 단조로웠던 고등학교 시절이라든가 붓글씨와의 인연처럼 살아생전의 추억들, 손글씨를 직접 볼 수 있는 미발표 유고까지 실려 있어 그의 삶을 한층 더 가깝게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는 신영복 선생의 담백하고도 소탈한 문체 덕분에 편안하게 읽을 수 있던 책이 아닌가 싶다. ‘시냇물’이라는 그 동요처럼 모두가 시냇물에서 강물로, 강물에서 바다로 나아갈 수 있기를.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며 다 함께 단단히 뿌리내리고 밑동을 키워갈 수 있기를 마음 깊이 응원해본다.

 

대나무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무들은 마디나 옹이로 먼저 밑둥을 튼튼하게 합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일상사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됩니다. 새 학교를 시작하든, 묵은 학원을 다시 시작하든, 새직장을 시작하든, 어제의 일터에 오늘 다시 불을 지피든, 모든 시작하는 사람들이 맨 먼저 만들어 내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짧고 많은 마디입니다.(p.203, <죽순의 시작>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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