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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활 건강
김복희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21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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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폭망하고 일주일 동안 내가 한 일이란 누워 자는 거였다. 왜 이렇게 잠이 오냐. 하면서 잤다. 간간이 드라마 보고 틈틈이 책도 읽었다. (『시지프스』 뽀갰다. 죽으면 미래로 가는 거였다니. 미래란 망한 한국이었다.) 희망 도서 왔다고 도서관 가서 책 빌렸다. 눈앞에 나의 희망 도서가 있었는데 아직 등록 안 했다고 다음에 와서 빌리라는 말 듣고 황당. 언제 또 오냐. 그러지 말고 빌려달라고 사정해서 겨우 빌려온 책 『나의 생활 건강』을 읽었다.
시인 열 명이 모여 몸, 건강이라는 주제로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요즘에는 에세이를 주로 읽는다. 얼마 전에는 백은선 에세이. (읽으면 글쓰기 의욕이 샘솟는 책이다.) 어머, 나 요즘에 시 안 읽나 봐. 시인 열 명의 이름을 보는데 처음 본 이름이 많다. 미안하지만 열 명의 시인의 시집이 한 권도 없다. 한동안 문학에 소홀히 한 나를 용서해 다오. 대체 누구에게? 용서를 구하는 건지.
코로나19가 물러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째. 사람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나. 몸과 마음을 잘 추스르며 살아가나. 시인들은 그간의 일상의 루틴을 『나의 생활 건강』에 공개한다.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고 오랜만에 간 집에서 고구마 들다가 허리 삐긋해 할머니와 요리를 해 먹기도 한다. 다섯 개의 직업을 가지고 굴리며 살아가기도 한다. 우와. 다섯 개 라니. 난 하나도 없는데.
'읽기, 쓰기, 마시기'를 하며 충실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무해한 일들. 따로 여행을 가기도 힘든 요즘. 읽고 쓰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상의 일이 아닐까 한다. 하루 확진자 수가 오백 명을 넘나들고 어제는 칠백 명까지 갔더랬지. 그런 요즘 나는 도서관 가서 책 빌려오고 누워 드라마 보고(지금 보고 있는 건 『나빌레라』와 『머니게임』. 이 좋은 걸 나만 몰랐단 거지. 나만 빼고 다들 재밌게 보고 있었단 말이지.) 배달 음식 시켜 먹는다. 아침에 눈 뜨면 오늘이 일요일인 건가 그런 생각 안 해도 돼서 겁나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다시 시험 보려고 공부하고 있는데. 진짜 하기 싫은 마음을 접어 두고 책을 읽는다. 원래 하지 말라고 하면 너무 즐거운 법. 책을 읽는데 황홀하기까지 하다. 넘나 즐거운 책 읽기. 공부 스케줄 쓰려고 산 플래너에 이번 주 읽을 책의 목록을 적는다. 드라마 뽀개면서 책도 다 뽀갤거야. 이번에는 전부 읽고 반납할 거야. 그런 생각이었지만 책 빌려온 지 3일 만에 겨우 읽은 책이 『나의 생활 건강』이다. 죽지 말고 아프지 말고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벌어지면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가자.
방, 산책, 새벽, 빵, 드라마, 영화, 책. 나를 설레게 만드는 것들. 무슨 알고리즘인지 모르지만 취준생 브이로그 보고 있는데 어쩌 다들 그리 열심히 공부하며 살아가는지. 반성 반성. 나의 생활에 카메라를 들이댄다면 한심한심하겠지만 일단은 살아남는 걸 목표로 하기 때문에 당분간 고민은 접어 두고 누워 있을 테다. 아침에 눈 뜨면 책 읽으면서. 건강한 생활인으로서.
(일본이 방사능 오염수를 배출한다고 하던데. 어쩌냐. 취뽀 하면 회 배달 시켜서 먹으려고 했는데. 미리 먹어야 되나. 이 상태로 가다간 취뽀는 힘들 것 같은데. 다들 연락 준다면서 왜 안 주는 건데요. 왜. 왜.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