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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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만에 쓰는 리뷰다. 이거 실화임? 이틀에 한 번은 리뷰를 쓰던 나였는데. 게을러진 건가, 인간. 그건 아니고 한 달 동안 책 읽고 리뷰 쓰는 거 말고 다른 일을 했다. 지금도 하고 있다. 공부. 믿기지 않는다. 학교 다닐 때도 하지 않던 공부를 뒤늦게 필받아서 하고 있다. 오늘도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기출문제 4회분을 꼬박 풀었다. (아, 얼마 전에 본 컴활 2급은 합격 했습니다요. 자랑을 했나, 안 했나. 기억이 가물가물.)


4회분을 풀고 느낀 건. 나란 인간은 멍청하고 한심해서 어디 갖다 버리든지 해야겠다는. 틀린 걸 또 틀리고 자빠졌다는. 채점하면서 비명을 질렀다. 으이구. 어림잡아 여섯 시간을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 사이 간식도 먹긴 먹었다. 배가 고파서 도저히 문제를 풀지 못하겠다는 핑계로. 무슨 공부를 하느냐. 궁금하실 수도 있는데. 과연 궁금해하시려나. 합격하면 자랑하겠습니다요.


나름 열공 모드로 지내느라 본업보다 열심히 했던 책 읽기와 리뷰를 쓰지 못했다는 사연을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그렇다도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은 건 아니다. 전자책으로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다시 읽고 있었고. (아직 다 못 읽은 건 함정. 예전에 감탄하면서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아껴 읽고 있다고 자위해본다.) 선물로 받은 백은선의 산문집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읽어서 드디어 오늘 완독했다. 예! 소리 질러!


주간 문학동네에 『우울한 나는 사람이에요』로 연재한 산문을 모아 놓은 책이다. 리뷰 쓰기 전 자주 사이트 방문해서 읽으며 글쓰기 뽕을 맞았던 산문들이다. 희한하게도 백은선의 산문을 읽고 나면 무엇이든 쓸 수 있겠다는 무모한 용기가 생겨서 마구 자판을 두들겼다. 그건 너무나도 솔직하게 너무나도 솔직해서 읽는 사람이 부끄러울 지경에 이르는 글이었다. 부끄러웠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나는 솔직하지 못한 인간이라는 걸 깨닫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의 솔직함을 보는 일이란 나의 거짓을 들켜버리는 일이었다. 산문을 읽으면서 나의 위선과 위악이 차례로 떠올랐고 조금만 더 솔직해질 수 없을까를 반성했다. 현대문학에서 나온 백은선의 시집이 있었는데. 나는 그걸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채 한 번씩 올라오는 시인의 산문을 기대하며 지냈다. 공부한다고 문구류 사러 간 서점이었는데. 그렇다. 나에게 서점이란 책 보다 문구를 구경하는 곳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문구를 챙긴 다음 예의상 매대 쪽을 보았고.


아이스크림은 좋아하진 않지만 색감은 좋아하는 민트 빛을 띤 백은선의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를 발견했다. 한동안 공부한다고 책을 멀리했는데. 그걸 나무라는 냥 책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공부 다 하고 잠이 들기 전 한 챕터씩 읽었다. 모니터로 보는 것보다 물성이 있는 종이책으로 보는 게 더 슬프고 아프고 그랬다.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지는 읽어보면 알겠다. 책에도 나오는데 돈 주고 사서 보는 걸로. 시인이 산문을 쓴 이유는 대단, 거창한 게 없었다.


전 남편이 진 카드 빚을 갚기 위해서라고 했다. 2008년부터 만나 여러 도움을 준 사람이었다는데 이혼할 때는 사억 육천 중에 오천을 주었다고. 전 남편은 매매로 집을 얻었고 아이와 함께 사는 백은선은 영끌해서 대출받아 전세. 아빠 집에 갔다 온 아이는 그 집이 좋았다고 고백하듯 말한다. 화장실이 두 개라고. 책에 다 있는 내용이다. 그만큼 이 책은 시인 백은선의 삶보다 사람 백은선의 삶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가 추천해 주는 책을 읽으려고 메모했고 최근에 나온 『도움 받는 기분』은 사서 읽을 거다.


붉은 스탠드 밑에서 읽는 『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는 그래도 문학, 어서 이 길로 돌아와야지, 재촉했다. 문학 없이 살 수 있겠어. 책의 문장을 읽다가 다른 생각에 빠지는 너를 만나야 하지 않겠어. 물었다. 그럴 때마다 울고 싶었지만 이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맺어야겠지. 잘 끝내고 돌아올게 하고 답했다. 나 역시 내가 싫으면서도 좋다. 이상하기까지 한 내가 말이다. 나를 버릴 수 없어서 수많은 밤에 책을 읽었다. 좋은 사람이 되길 글렀어 하면서도 남에게 잘 보이고 싶어 가식을 떤다.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하고 싫고 이상한 사람이 되어 가지만. 책의 문장은 그런 나를 위로한다. 한동안 글을 쓰지 않아 글 쓰는 걸 잊어버렸을까 봐 어제는 오랜만에 한글을 열어서(한글을 열어 글을 쓴다는 건 나 지금부터 제대로 된 글을 쓸 거야 같은 행위라서 피했다.) 아무 말 대잔치를 했다. 다행히 한글을 안 까 먹었더라. 손이 기억하는 한글 자모의 위치.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밤에 쓴 거라서 안 열어보았다. 「내가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은」이라는 글의 마지막 문장, '그때까지는 살아야지'를 반복해서 읽는다.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거든.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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