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비를 보았다.

 

요즈음은 춘심산촌의 밭일을 오후 3시 넘어서부터 시작한다. 땡볕을 피하는 거다. 어제도 그렇게 밭일 하다가 땀을 식힐 겸 그늘을 찾아 숲에 들어갔는데 20미터쯤 전방에 낯선 동물이 있었다. 담비였다.

내가 처음 본 동물을담비라 인식한 것은 언뜻 족제비를 닮았으되 그보다 훨씬 몸이 더 컸고(다 자란 개만했다.) 결정적으로는 금빛의 아름다운 털 빛깔이었다. 담비와 나는 그늘져 어둑한 숲속에서 몇 초 간 상대를 응시했다. 가슴 섬뜩했지만 삽을 쥐고 있어서 그를 믿었던 것 같다. 여차 싶으면 삽은 무기가 될 수 있다. 담비가 먼저 옆의 높은 나뭇가지를 타고 더 깊은 숲속으로 사라지면서 우리의 짧은 조우가 끝났다. 나는 숲을 나와 농막에 두었던 스마트폰으로담비를 검색해 봤다. 그 동물이 담비가 맞았다. 고라니는 물론 새끼 멧돼지까지 잡아먹는다는 사나운 담비.

아내한테 함부로 숲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를 주어야 할 일이 생겼다. 한 가지 걱정이 더해졌지만 동시에 도시 근교 춘심산촌의 생태계가 뜻밖에 건강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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