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민중사 - 중세의 붕괴부터 현대까지, 보통사람들이 만든 600년의 거대한 변화
윌리엄 A. 펠츠 지음, 장석준 옮김 / 서해문집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역사학과 입학해서 선배들에게 많이 들었던 질문은, "그럼, 너의 역사관은 무엇이냐?", "너는 너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니?"라는 물음이었다. 역사학도로서,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만의 역사관을 갖기 위해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사색하고 토론해야했다. 지배층의 시각에서 역사를 바라보지 말라는 충고를 들으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왕과 양반들 중심으로 살펴볼 수밖에 없는 사료상의 한계를 절감했다. 그러면서도 역사 서술에서 소외된 민중과 사회적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 바라보고자 노력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관념적 구호에 그쳤던 민중과 약자의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라는 역사관에 실질적 결과물을 제시했다. 제목부터 매력적인 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우리가 놓쳐버린 민중의 이야기를 파헤쳐보자.

 

민중과 사회적 약자를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면, 지배층 중심의 역사에서 바라보지 못했던 역사의 새로운 모습들이 보인다. 와트타일러의 난이라고 불리는 잉글랜드 농민반란을 윌리엄 A. 펠츠는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와트타일러의 난'이라는 명칭만 소개되어 있는 것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영국 정부는 페스트로 고통 받는 농민들에게 위로를 해주기는 커녕 '노동자법령'을 통과시켜 농민의 삶을 억압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 페스트 이전으로 임금을 동결하고, 봉건적 노동 지대가 가능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봉건 영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정책을 시행한 것이다. 거기에다 백년전쟁 비용을 거두기 위해서 인두세법까지 도입했다. 잉글랜드 농민들은 이러한 억압에 대항해서 봉기를 일으켰으나, 지배층의 회유와 속임수에 걸려 패배한다. 그러나 이러한 패배는 헛되지 않았다. 영국 의회는 임금 인상을 포기했고, 귀족들은 농민에게 과도한 요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비록, 잉글랜드 농민 반란은 실패했지만, 역사에서 봉건제를 땅에 묻는 성과를 가져온 것이다. 잉글랜드 농민들이 뿌린 피가 역사의 도도한 물결이 되어, 역사를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민중의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본다는 것이, 단순히 민중들이 일으킨 반란을 공부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역사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 따라서 민중의 삶이 달리보인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산업혁명을 서술하며 제임스 와트를 비롯한 수많은 발명가를 소개한다. 이들에 의해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세계를 뒤바꿔 놓는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서술한다. 물론, 아동노동을 비롯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를 소개하는 것을 빼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산업혁명이 농촌에서 땅을 빼앗기고 도시로 이주한 노동자에게 얼마나 큰 시련을 주었는지에 대해서는 그 설명이 미약하다. 18~19세기 산업혁명을 일으킨 국가와 20세기 개도국 노동자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혹함을 선사했다. 부모가 노동현장으로 가기 위해서 방치된 아이에게는 마약 성분이 첨가된 '앳킨스 특허 유아 예방약'이 투여되었다. 이러한 현실에서 유아 사망률이 70%까지 치솟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높은 임대료와 낮은 임금 속에서 비참한 삶을 강요받은 노동자와 민중의 삶에 대해서 서술하면서도 기존 세계사책들은 이처럼 참혹한 현실을 순화해서 표현한다.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만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기존 역사책에서는 현실을 직시할 기회를 제대로 주었다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노동자들이 비참한 생활을 하는 원인에 대해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의 게으름과 과음을 지적한다. 사회 구조적 책임을 노동자 개인에게 돌리는 전형적인 술책이다. 윌리엄 A. 펠츠는 극단적 노동과 여가시간이 부족한 노동자들이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했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와 광복 직후의 농촌에서 노름꾼과 술꾼들이 많았던 이유도 같은 논리로 설명할 수 있다. 열심히 일을 해도 산미증식계획과 강제 공출로 생산한 모든 것을 빼앗기는 상황 속에서 농민들의 고통을 달래주는 것은 술과 노름이었다. 광복이 되었지만, 저곡가 정책으로 농촌의 삶은 여전히 어려워졌다. 잘 살아보고 싶었던 젊은이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갔다. 농촌을 지키려했던 이들은 농사를 지어도 빚만 늘어났다. 결국, 알콜 중독이라는 덧에 빠져 절망적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들 중에는 나의 아버지도 있었다. 술을 먹었기에 가난해지기 보다는 혹독한 노동과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다는 설명이 더 적합할 것이다. 아니, 비참한 현실이 술꾼을 만들었고, 술꾼이 현실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설명이 가장 합리적이리라....

 

세계사 교과서에서 제1차 세계 대전은 제국주의 국가들간의 충돌이라고 설명한다. 독점 자본이 민족주의와 결합하여 제국주의가 출현하고, 더 많은 시장 확보와 민족의 영광을 위해서 식민지 확보 경쟁이 발발해서 결국, 1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다는 서술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 이전에 노동자의 성장이 있었다. 19세기 마지막 20년 동안 노동조합에 가입한 노동자의 수는 꾸준히 늘어났다. 독일만 하더라도 188795천명이던 것이 1890년에는 294천명으로 늘어난다. 세계사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자본가에 대한 서술 뿐만 아니라, 노동자에 대한 서술도 있어야했다.

 

1차 세계 대전의 전개과정을 서술하면서도 참호전으로 대표되는 엄청난 인명살상만을 설명한다. 이 서술에서 놓쳐버린 것이 있다. 이 서술에서는 전선에 끌려간 민중들의 저항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 민중은 지배층들이 민족의 영광이라는 명분에 현혹되어 자발적으로 전선에 나간 것으로 서술한다. 물론, 그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돌격 명령을 내리며 권총으로 위협하는 상관에게 총을 쏜 사건들이 적지 않았다. 전선에서도 이러한 항명을 교전중 전사로 보고한 경우가 많았다. 민중은 온순한 노예가 아니다. 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황제를 위한 충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거부한 용기 있는 민중이 있다. 그들을 새롭게 조명할 때 역사는 달리보이기 마련이다.

 

1936년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 올림픽은 파시즘의 선전장이었다. 그러나, 1930년대 스포츠 운동이 노동계급 문화운동이있었다는 사실은 세계사 교과서에서 서술되어 있지 않다. 1937년 제3차 노동자 올림피아드가 아트베르펜에서 열렸다. 27천명의 노동자가 17개국에서 참여했다. 우리에게는 베를린 올림픽에 대한 기억만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는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서구중심의 역사 서술에 대항해서 역사를 균형있게 본다는 명분으로 독일과 소련의 폴란드 침공을 소련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스탈린이 독일 침략에 대비한 시간을 벌기 위해서 독일과 폴란드 침공을 선택했다는 변명을 그대로 인용한다. 그러나, 윌리엄 A. 펠츠는 독일과 소련의 야합이 프랑스와 독일의 반파시스트전선을 분열시켰으며, 심지어는 무력화 시켰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지적한다. 역사를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이 서구의 반대편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것은 스탈린이 히틀러를 도와 침략전정을 일으킨 죄악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중용이라는 말은 가운데를 뜻하지 않는다. 중용 있는 시각을 갖는 다는 것은 사물을 제대로 바라본다는 것을 뜻하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역사관의 가운데가 아닌, 정의와 평화의 시각에서 그들의 행위를 평가해야 역사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음을 윌리엄 A. 펠츠는 지적하고 있다.

 

2차 세계 대전을 서술하면서 보통의 역사책들은 독일과 소련의 전쟁범죄를 소개하며 그 야만성을 비판한다. 이러한 역사책을 읽는 보통의 사람들은 미군으로 대표되는 연합군은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일들을 전쟁기간 동안 하지 않았다고 자연스럽게 믿는다. 소련군이 독일 여성을 강간했고, 부다페스트에서만 5만명을 강간한 사실은 역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이라면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미군이 19만명의 독일 여성을 강간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는 굶주린 자녀를 둔 여성을 음식으로 유인해서 성을 착취한 경우는 제외되어 있다. 냉전의 논리로 역사를 바라볼 경우, 미군에 의해서 이뤄진 강간은 조명되지 않는다. 미군의 전쟁 범죄를 알지 못하는 우리들은 세상을 흑백 논리로 바라보게 된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의 파수꾼이다. 미국은 독재자를 미워하고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전세계 민중의 편이다.'라는 환상이 깨진지 오래다. 우리는 반공논리 속에서 미국을 비판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세상에서 살았다. 그러나, 미국의 민낯이 드러나면서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보통의 나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되었다. 윌리엄 A. 펠츠는 미국도 정의 보다는 자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례를 소개한다. 미국 대통령 제럴드 포드는 스페인의 민주화를 도와주기보다는 독재를 지지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스페인의 민주주의란 곧 '공산주의자들이 권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뜻한다며, (중략) "스페인에 필요한 일이라면 미국이 뭐든 해야한다고 생각한다."-363

 

미국도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보통의 나라이다.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독재자와도 손을 잡는다. 레이건 행정부 시기 칠레의 쿠데타에 미국이 관여했다는 사실은 너무도 유명하다.

 

윌리엄 A. 펠츠는 우리가 놓쳐버리거나, 의도적으로 서술하지 않는 진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물론,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은 불편함을 동반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편함을 감내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외눈박이 물고기의 삶을 면치 못할 것이다.

 

 

역사를 공부하며 역사의 진실을 믿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진실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역사는 진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들 중심으로 역사를 바라보려한다면, 그들의 행위를 정당화해주는 논리를 진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막기 위해서 윌리엄 A. 펠츠는 '유럽 민중사'라는 책을 저술했다. 역사를 약자의 입장에서, 민중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함을 절실히 깨닫고 있었지만, 그러한 이상을 현실화시키지는 못했다. 윌리엄 A. 펠츠의 '유럽 민중사'는 역사를 공부하는 나에게 역사를 어떻게 새롭게 바라보아야하는가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해주었다. 윌리엄 A. 펠츠가 책을 마무리하며 우리에게 당부한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친다.

 

"평범한 유럽 노동자나 농민이 지구 위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고 있다면, 이는 대부분 그들이 이제껏 싸워온 덕택이다. 오늘날 많은 이가 누리는 우위는 계몽된 지배계급이 안겨준 선물이 아니었다. 모든 개혁, 부와 권력을 쥔 자들의 모든 양보는 평범한 유럽인들의 자주적 행동의 결과다. (중략) 분명한 것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더 나은 세상이라는 이상과 이를 위해 투쟁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민중은 패배한다는 사실이다."-393~394

 

오늘 우리가 누리는 혜택은 앞선 세대의 희생위에 존재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핏땀이 없다면 우리의 다음 세대는 더 비참한 생활을 할 것이다.

 

 ps. 인상 깊은 사료를 적어 놓는다. 


독일 함대가 적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여서 '황제와 조국'의 영광을 위해 승리하든가 아니면 죽기로 결정했다는 요지의 유언비어가 나돌았다. 함대 수병들이 생각하는 '조국의 영광'은 전혀 달랐다. 수병들끼리 만났을 때 경례 구호는 '리프크네히트 만세'였다.(사회 민주당 소속 카를 리프크네히트 의원은 제국의회에서 가장 먼저 홀로 전쟁 예산에 반대표를 던지고 난 뒤 다수 민중 사이에서 반전 저항의 상징이 됐다.) -독일 대양함대에 복무한 한 수병의 회고 227쪽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3-08 17: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 보며 항상 배웁니다. 당선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투표 꼭하시고, 편안한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3-08 18: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꼭하시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이하라 2022-03-08 19:2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3-09 09:01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물감 2022-03-08 22: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리뷰당선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2 | URL
물감님, 감사합니다.
오늘 투표 꾹~~ 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bookholic 2022-03-08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즐거운 대선일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09:02   좋아요 1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저는 사전 투표했어요. bookholic님 투표 안하셨다면, 투표하시고, 행복한 대선일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3-09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강나루 2022-03-09 17: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투표 결과 나오길 기도합니다.

러블리땡 2022-03-10 0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3-10 02:4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scott 2022-03-10 2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 합니다!
나루님 리뷰 자주 읽고 싶습니다 ^ㅅ^

2022-03-11 04: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2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16
조르주 루 지음, 김유기 옮김 / 한국문화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슬람 출현 이후의 서아시아사(중동)에 관한 역사책들을 비교적 많이 출판되어 있는 반면에, 무지의 시기라 불리우는 이슬람 출현 이전의 역사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단편적인 역사 인식에서 벗어나 서아시아의 역사 전체를 알고 싶은 마음에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를 읽었다. 이 책에 대한 칭찬으로 인터넷이 도배되어 있지만, '무지의 시기'에 대해서 지식이 일천한 나에게는 칭찬할 수없는 책이다. 지도와 연표가 본문 서술과 분리되어 책의 맨뒷페이지에 제시된 점은 독자에 대한 배려가 전혀없는 출판사의 출판편의주의에 분노하게 만든다. 텍스트와 이미지가 결합되어 독자의 이해를 유기적으로 돕는 편집이 못내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된 책들 중에서 무지의 시기를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책이기에 불편한 마음을 꾹참고 읽어 내려갔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저부조작품에 대한 설명이었다.(168쪽) 조르주 루는 "군사들이 지여엥서 쉬면서 말을 돌보고 짐승을 도살하고 먹고 마시고 즐기고 하프와 탬버린에 맞춰춤을 춘다."라고 묘사하며 "그것은 보잘 것 없는 인간"이라는 단서를 붙인다. 역사서에는 등장하지 않는 병사들의 고닮픔과 희노애락을 표현한 저부조작품에서 인간적인 냄새가 풍겨나온다. 잔혹한 아시리아 군대라는 선입견을 가지고 병사들을 바라보면 그들은 살인마로 오해할 수도 있지만, 저부조 작품을 바라보면 그들도 원치않는 전쟁에 끌려나온 우리의 이웃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는 왕과 귀족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전쟁에 강제 동원되어 목숨을 걸어야만 했던 이름없는 평민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아시리아의 영광도 있었다. 저자 조르주 루가 감탄했던, 그 저부조 작품을 사진으로 첨부해주었다면, 나도 조르주 루가 느꼈던 감동을 느겼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든다. 

  까마득하게 먼 오래전의 서아시아의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역사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면 나에게 하는 질문이다. 우리 역사도 아니고 멀고 먼 서아시아의 역사를, 그것도 아주 오래전의 역사를 배워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자 조르주 루의 말을 빌어 말한다면,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뉴턴에 자신이 멀리 볼 수 있는 이유는 거인의 어깨위에 서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우리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는 거인이 닦아 놓은 토대 위에서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서양 문명의 원류인 그리스 로마 문명에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유럽 문명은 활짝 만개하여 아메리카 대륙과 아시아 대륙을 비롯한 세계 곳곳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우리는 숙명적으로 서구세력이 주도한 근현대사 속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역사를 배우면 배울 수록, 역사 앞에 겸손해진다. 오늘의 문명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서아시아의 역사를 들어다 본다. 

  오늘의 문명이 성립하는데 많은 기여를 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왜 단절되었을까?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정치는 격변하더라도 이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계속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단절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케메네스왕조 페르시아 시기에 기록하기 쉽고 배우기 쉬운 아람어가 보급되었다. 이로인해서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는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언어를 잃은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저자 조르주 루는 "자기 언어를 잊은 민족은 동시에 자기 과거를 잊고 머지 않아 자기정체성을 잃는다."(245쪽)고 말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리고 정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철저한 파괴에 의해서 문명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언어를 잃어버림으로써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사라진 것이다. 그후,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의 강줄기가 변경되면서, 강주변에 있었던 도시들은 쇠락해졌으며, 강주변의 수로 관리 또한 제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번성했던 도시들은 하나, 둘 모래속에 파묻혀버렸다. 그러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도 역사속에 파묻혀 버렸다. 


  영국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에 의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다시 모래 속에서 깨어났다. 그러나 제국주의 국가들은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문화재를 약탈해갔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 강 주변에 사는 사람들 조차도 자신의 조상들의 유물을 보기 위해서 멀리 영국과 프랑스의 박물관을 찾아가 입장료를 내고 유물을 보아야한다. 그런데, 더욱 슬픈 사실은 걸프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비롯한 수많은 사건들에 의해서 메소포타미아의 유적들이 파괴되고 있다. 저자 조르주 루는 "현대 무기가 이 위대하고 매력적인 문명의 마지막 증거를 없애지 못하도록 신께 기도하자."라고 책을 끝맺고 있다. 이슬람 사람들이 많이하는 말이 있다. "인샬라"! 신의 뜻대로라 뜻의 말이다. 찬란한 고대 문명을 이룩한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더 이상 전쟁과 폭력으로 얼룩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제 이 곳에 평화가 깃들기를 신께 기도한다. 인샬라~~


ps.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기록들을 참고로 기록해둔다. 


<히타이트군대의 바빌론 공격>

  삼수-디타나의 시대에 하티인들이 아카드 지방을 향해 진군해 왔다. 그러고 나서 그(무르실리스)는 바빌론으로 가서 바빌론을 파괴하고 후리인들을 무찌르고 사람과 물건을 바빌론에서 하투샤로 끌어갔다.(31쪽)-바빌로니아 연대기


<키루스의 움만-만다(메디아인) 정복>

  네가 말하는 이 움만-만다와 그들의 나라, 그리고 그들과 동맹을 맺은 모든 왕은 더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셋째 해에 마르두크가 그들에 대항하기 위해 안샨의 왕이며 자신의 젊은 종인 키루스를 일으켜 세웠다. 그(키루스)는 수많은 움만-만다 사람을 적은 수의 군대로 물리쳤다. 그리고 움만-만다의 왕 이슈투메구(아스티아게스)를 포로ㅗ 작아 끌어와 자기 나라에 가두었다.-211쪽


  이슈투메구 왕은 군대를 동원해 안샨의 왕 키루스를 잡기 위해 진군했다. (중략) 이슈투메구의 군대가 왕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고 왕은 포로가 되었다. 군대는 왕을 사슬에 묶어 키루스에게 넘겨주엇다. -211쪽 '나보니두스의 연대기'


<키루스의 바빌로 점령>

  타슈리투 월(9~10월)에 키루스가 티그리스 강변 우파(오피스)에 있는 아카드의 군대를 공격하자 아카드인들은 퇴각했다. 그는 재물을 약탈하고 사람들을 학살했다. 제14일에 시파르는 전투 없이 점령 당했다. 나보니두스는 달아났다. (중략)

  제16일에 구티움의 총독인 우그바루와 키루스의 군대가 전투 없이 바빌론에 들어갔다. 그 후 나보니두스가 돌아와서 사로잡혔다. 월말까지 구티인의 방패병들이 에사길의 문을 포위했지만 에사길이나 (다른) 신전에서 (의식)의 중단은 전혀 없었다.(중략)

  아라흐삼누 월(10~11월)3일에 키루스가 바빌론에 들어갔다. (도로가?) 그의 앞에서 가득 채워졌다. 키루스는 바빌론 전체에 인사했고 바빌론에는 평화가 깃들었다.-214쪽, '나보니두스의 연대기'


  비빌론의 모든 주민과 수메르와 아카드 모든 지방의 주민은 그 군주들과 총독들과 더불어 그(키루스)의 앞에 몸을 굽히고 그의 발에 입을 맞추면서 그가 왕위를 얻은 것을 기뻐했다. 그리고 그 눈부신 얼굴에 기쁨으로 경의를 표했다. 마치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고 손해와 재난을 피하게 해 준 주인을 맞이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은 그의 이름을 그렸다. -214쪽


<다리우스의 바빌론 점령>

  나는 그에게 말했다. '가거라!' 나에 대해 반대 의사를 밝힌 이 바빌로니아의 군대와 싸워라!' 빈다파르나는 (페르시아) 군대를 거느리고 바빌론을 향해 진군했다. 아후라마즈다는 나를 위해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 빈다파르나는 아후라마즈다의 뜻에 따라 바빌로니아인들과 맞서 싸워 그들을 포로로 사로잡았다. 마가자나 달의 22일이 흐른 후 그는 아라카와 그의 주요 지지자인 귀족들을 사로잡았다. 그때 나는 명령을 내렸다. '이 아라카와 그의 주요 지지자인 귀족들을 바빌론에서 말뚝에 박아 처형할 것이다."-240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소포타미아의 역사 1 한국문화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715
조르주 루 지음, 김유기 옮김 / 한국문화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게사 교과서에 메소포타미아 문명에 대해서 설명이 나와 있지만, 제대로된 정보를 얻기 힘들다.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교양을 쌓고자 선택한 책이 바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이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글들은 '최고의 책'이라는 감탄들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지식이 일천한 나로서는 쉬운 책만은 아니다. 물론, 메소포타미아의 역사1만 읽고 무리하게 결론을 내릴 수는 없지만, 지금으로서는 쉽지 않은 책이다. 

이 책에 쉽지 않은 책일 수밖에 없는 근본원인은 나에게 있다. 메소포타미아에 대한 지식이 일천하기 때문이다. 

두번째는 이책에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유적지와 지명들의 위치를 나로서는 알 수없다. 적어도 독자를 배려한다면, 해당 쳅터에 등장하는 지명을 지도에 표시하서 삽화와 함께 제공해야하지 않을까? 처음듣는 지명들의 홍수로 나의 머리속은 홍수에 떠밀려가는 나룻배의 모습을 면치 못했다.

게다가 이책에는 왕조 계보도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를 미리 살펴보니,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의 말미에 연표가 제시되어 있다. 이를 잘게 쪼개서 해당 쳅터에 배치했다면, 책을 읽는 것이 무척 수월했을 것이다. 일본에서 나온 역사책들에는 도표와 계보도가 잘 나와 있다. 이러한 배려를 타국의 저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은 무엇때문일까?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재미있는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카슈시대(기원전 15세기)에 쓰인 바빌로니아 연대기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에라-이미티 왕은 엔릴-바니라고 하는 정원사를 대리왕으로 자기 왕위에 앉히고 그의 머리 위에 왕권을 씌웠다. 에라-이미티가 너무 뜨거운 죽을 삼키다가 궁전에서 죽자 엔릴-바니는 왕위를 차지하고는 돌려주려 하지 않았고, 이리하여 군주가 되었다.-245쪽


불길한 징조가 있어서 왕이 신의 분노를 두려워하여 정원사를 대리왕으로 세웠는데, 왕이 갑자기 죽음으로서 정원사가 왕의 직책을 내려놓지 않고 실질적 왕이 되었다는 읍픈일이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있었다. 


쉽지 않은 책이다. 그러나,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보겠다는 도전을 연기서 멈출수는 없다. 이제 '메소포타미아의 역사2'를 도전해 보자.


ps. 기록들을 첨부한다. 

<수메르의 종교 사상>

깊은 꿈 가운데 갑자기 한 남자가 나타났다. 그의 키는 하늘에 이르렀고 그의 키는 땅에 닿았다. .... 그의 오른쪽과 그의 왼쪽에는 사자들이 누워 있었다. 그는 나더러 자기를 위해 신전을 지으라고 했지만, 나는 그의 심장(=바람)을 이해하지 못하했다. .....갑자기 한 여자가 나타났다. 이 여자는 누가 아닌가? 이여자는 누구인가? .... 그 여자는 손에 빛나는 금속으로 만든 갈대를 쥐고 있었다. 하늘의 아름다운 글씨가 쓰인 토판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220쪽

<고대 왕조 시대-수메르>

모든 나라의 왕 엔릴이 루갈자게시에게 이 나라의 왕권을 주고, 이 나라 앞에서 그의 정당성을 증명하고, 모든 나라가 그를 섬기게 하고, 해 뜨는 곳에서 해 지는 곳까지 모든 나라가 그의 법에 복종하게 했다. 그때 그(엔릴)는 아래 바다(아랍-페르시아 만)에서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를 지나 위 바다(지중해)까지 그(루갈자게시)에게 안전한 길을 허락했다. 나라들은 평화롭게 살았고 백성은 즐거운 가운데 밭에 물을 댔으며 수메르의 모든 왕조와 모든 나라의 군주가 우르크에서 그의 주권의 법에 복종했다. -188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결코 사라지지 않는 로마, 신성로마제국 - 실익과 명분의 천 년 역사
기쿠치 요시오 지음, 이경덕 옮김 / 다른세상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명실상부(名實相符)라는 말이있다. 이름과 실제가 서로 부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신성로마제국은 명실상부하지 않다. 괴테가 말했듯이, 신성하지도 않으며, 로마답지도 않고, 제국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교과서에서 신성로마제국을 배우지만,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와 역사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지 못한다. 세계사 교과서에서 오토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관을 받았다는 언급과 나폴레옹에 의해서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었다는 언급밖에 없으니, 신성로마제국에 대해서 제대로 알기는 힘들다. 어떤이는 환상의 제국이라고 말한다. 환상의 제국이라고도 불리우는 신성로마제국이 과연 어떠한 제국이었는지 궁금하다. 신성로마제국은 과연 어떠한 왕국이었을까?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는 말이 있다.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도 하루 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 오토1세가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받았을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관을 받은 것은 아니다. 962년 2월 21일 오토 대제는 황제 즉위 때 '황제 아우구스투스'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한편 오토는 황제 대관을 교황이 아닌 오토 주도로 거행했다. 교황은 황제에게 복종할 것을 맹세했다. 그는 독일의 왕이며 동시에 이탈리아의 왕이 되었고 여러 나라를 지배하는 황제가 되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제국 교회 정책'과 '이탈리아 지배'는 독일에게는 불행의 씨앗이되었다. 많은 것을 가졌지만, 오히려 이것이 신성로마제국의 독이되었다. 덩치는 커졌지만, 근심꺼리는 너무도 많아진, 늙은 공룡의 모습이 되어갔다. 결국, 로마제국의 위용을 얻기 위해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교황과 일전을 벌인다. 이것이 바로 카노사의 굴욕이라는 사건으로 표출된다. 

카노사의 굴욕은 성직자 서임권 문제를 계기로 황제가 먼저 싸움을 건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황제는 교황에 복종'하라는 서간문을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4세에게 보내면서 시작되었다. 그러자, 하인리히 4세는 독일 주교를 소집하여 교황을 폐위하며 마틸다와 교황 사이의 불륜설을 터뜨린다. 그러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하인리히를 파문한다. 결국 카노사의 굴욕 사건이 벌어져게된다. 눈덮인 카노사 성문 앞에서 3일 동안 교황에게 빌었고, 그로인해서 교황이 황제에게 승리한 사건으로 알지만, 힘을 키운 하인리히 4세는 교황이 살고 있는 로마를 공격한다. 교황은 노르만족을 끌어들여 황제를 쫓아 내지만, 노르만 군대가 로마를 약탈하자, 로마주민의 원성 때문에 교황은 살레르노로 망명해서 죽게 된다. 그렇다고, 하인리히 4세가 승리한 것도 아니다. 하인리히의 두아들은 아버지에게 반기를 든다. 두아들의 반란은 하인리히 4세에게 충격을 주었고, 그는 세상을 뜬다. 그리고 둘째 아들 하인리히5세가 보름스 협약을 맺는다. 과연 누구의 승리일까?

이러한 황제와 교황간의 막장드라마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신성한'이라는 형용사이다. "이는 역대 교황들이 목표로 삼았던 신권정치와의 결별을 표현한 것"이다. 결국, '신성한'이라는 형용사는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 아니라, 교황과 황제간의 피튀기는 대립과 막장드라마 속에서 등장했다. 그렇다고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을 바로 사용한 것은 아니다. 이 시기에 '신성한'이라는 형용사가 등장했을 뿐이다. 

'신성제국'이라는 명칭이 문서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57년 3월 바로바로사가 밀라노 토벌과 이탈리아 원정을 위해 제후에게 보낸 소집장에서 였다. 정치의 검을 받은 황제는 종교의 검을 갖진 교황과 동등하다는 양검론을 들고 나온 바로바로사는 명실상부한 황제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손안에 넣기 위해서 노력했고, 무리한 원정은 필연적으로 황제권 약화로 이어졌다. 프리드리히2세 시기에도 황제 개인의 뛰어난 역량으로 황제권은 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였으나, '황제'라는 위용을 보이기 위해서 이탈리아를 둘러싼 교황과의 대립은 계속된다. 결국, 많은 전비를 얻기 위해서 독일 내의 제후에게 막강한 권한을 하나 둘씩 주었다. 이러한 황제의 무리수는 황제권의 약화를 낳았다. 

저자 기쿠치 요시오는 대공위시대의 초석을 놓은 삼황조 시대(작센왕조, 잘리에르 왕조, 슈타우펜왕조)의 황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평가를 하고 있다. 


  "위대한 로마 제국 황제의 에피고넨으로서 제국을 부흥하겠다는 (중략) 그들은 이념과 행동이 여과없이 결합되어었던 유럽 중세 세계를 마음껏 헤집고 다녔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황제다운 황제였다."-130쪽


참다운 황제라면, 자신의 행위가 미래 세대의 제국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예상하고 현재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러나, 삼황조 시대의 황제들은 로마제국의 부흥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무리한 원정을 단행했고, 독일왕국의 내치에 신경을 쓰지 못하여 대공위시대를 낳았다. 수많은 제후가 다스리는 수많은 국가로 구성된 영방국가로 신성로마제국을 추락시켰다. 이러한 삼왕조 시대의 황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있을까?

아직까지 신성로마제국은 '신성제국'과 '로마제국'이라는 명칭으로 불릴뿐이었다. '신성로마제국'이 온전한 '신성로마제국'으로 불리려면 더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대공위 시대였다. 독일국왕 빌렘이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국호를 공식문서에 처음사용하면서 우리가 아는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지 못하고, 제국이 영방국가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역설적이게도 가장 환상적인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제국이 위기에 처할 수록 그들은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에 집착하게된다. 형용모순의 명칭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이라는 명칭이다. 간판과 실질이 어긋나는 사례를 우리는 흔히본다. 내실이 없을 수록 겉치장이 화려한 사례를 보면서, 슬픈 신성로마제국을 우리는 떠올려야할 것이다. 


합수부르크 왕조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면서 카를 5세시기 신성로마제국은 최대의 판도를 자랑하게 된다. 그러나 '신성한 로마 제국'이라는 헛된 환상에 집착이 더욱 심해지면서 신성로마제국은 빈껍데기만 남게된다. 30년 전쟁을 통해서 이제는 관속에 들어가야할 신성로마제국은 땅속에 묻히지 못하고 빈껍데기만 앙상하게 150년 동안 내보이며 서있어야했다. 신성로마제국이 땅속에 묻힐 수 있도록 도와준사람은 새로운 프랑스의 황제 나폴레옹이었다. 환상의 제국 신성로마제국의 역사를 배우면서 우리는 허상에 집착하기 보다는 내실에 충실해야함을 깨닫는다. 빈껍질을 부여잡고 매달리기 보다는 실질을 채운다음, 외모를 가꾸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아야할 것이다. 나폴레옹의 가장 큰 업적은 빈껍질만 남은 환상의 제국 신성로마제국이 땅속에 묻힐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폴레옹도 황제라는 껍질에 집착하다가 세인트헬레나 섬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은 또다른 아이러니일 것이다.


ps. 신성로마제국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인 금인칙서의 내용을 첨부한다. 


-선제후는 마인츠, 트리어, 쾰른의 성직자 제후와 라인 궁중 백작, 작센, 브란덴부르크, 보헤미아의 세속 제후까지 모두 7제후로 정한다. 

-선거는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거행하며 대관식은 아헨 시에서 거행한다. 

-선거는 단순 과반수로 행한다. 선거 결과에 따르지 않는 선제후는 선제후 지위를 잃게 된다. 

-선거 결과는 교황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선제후는 제후의 최상위를 차지하고 영지 내의 완전한 재판권, 광산 채굴권, 과세 징수권, 화폐 주조권, 유대인 보호권을 갖는다. 

-선제후 영지는 분할을 금하고 장자 단일 상속으로 한다. 

-선제후는 '호출에 응하지 않을 권리와 소환되지 않을 권리'를 가지며 선제후에 대한 반란은 대역죄로 처벌된다. 

-황제의 자리가 공석이 될 때 라인 궁중 백작이 슈바벤 지역과 프랑켄 법이 미치는 지역을, 작선 선제후가 작센 법이 미치는 지역을 통치한다. 

-제후 사이의 동맹, 도시의 동맹은 금지한다. 

-페대(제후 사이의 개인적인 다툼)을 금지한다. 

-선제후를 비롯한 제후의 영지 주권을 법적으로 확정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 - 심리학자가 만난 조선의 문제적 인물들
김태형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품절


역사를 공부하면서 인간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고 심리학을 공부했다. 어찌보면, 역사와 철학, 심리학을 구분한 것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편의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구분한 것이 아닐까? 역사를 만드는 인간의 철학과 심리를 보다 잘 이해한다면 이해되지 않던 역사의 퍼즐들이 잘 맞춰지리라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김태형의 '심리학자, 정조의 마음을 분석하다.'라는 책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정조의 심리만을 분석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융의 심리유형이론을 계승 발전시킨 성격이론으로 조선시대의 문제적 인물인, 이이와 허균, 연산군의 심리를 분석했다. 흥미로운 책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심리학, 나의 마음을 보다.

심리학 서적을 읽으면 새로운 지식을 얻는다는 희열보다는 나 자신을 이해했다는 기쁨이 크다. 이번 책도 마찬가지이다. 이 책에 소개된 정조와 이이는 전략가(INTJ) 유형이다. 전략가 유형은 강인한 의지와 전략 수립 능력이 탁월한 것이 특징이다. 이 유형에 내가 좋아하는 인물들이 속한다는 사실이 무척 기쁘다. 책을 읽으며 정조와 이이의 삶이 마치 나 자신의 일인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사고형(T)의 특성 중에 하나가 놀라운 비판 정신이다. 타인에게 직설적으로 비판의 말을 스스럼 없이 하는 것이 사고형의 특성이라니... 이러한 특성은 정조와 이이에게서 여실히 드러난다. 특히, 정조는 호학형의 군주이지만, 타인의 감정과 처지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부족했다. 이 책에서 예로 든 사례를 살펴보자. 무더운 여름날 좁은 방에서 업무를 보는 정조에게 신하들이 시원하고 넓은 방으로 옮기자고 건의하자, 정조는 논리적인 말로 이를 물리쳤다. '나는 괜찮다.'라는 정조는 말에는 무덥고 좁은 방에서 고생하는 신하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나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객관적인 사실관계를 전달하는 것에 치중하여 감정형(F)과의 대화가 상당히 힘든 경우가 많았다. 교무회의 혹은 학년회의에서 나의 주장을 제시했다. 그에 반하여, 회의 시간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면서, 회의가 끝나고 꿍시렁 거리는 동료 교사를 보면서, 속으로 좀비라고 비난했다. 앞에서 말할 용기가 없으면서, 뒤에서 꿍시렁 거리는 것이 좀비와 무엇이 다른가!

한편, 정조는 실천형(J)으로 강한 신념과 추진력으로 자신의 개혁을 이끌어갔다. 율곡 이이도 자신에 제시한 바른삶을 스스로 실천하면서 학문적 위업을 달성했다. 이러한 특성은 나에게서도 나타난다. 물론, 정조와 이이의 실천력에 비한다면 초라하지만 말이다. 생활기록부 작성을 비롯해서 업무를 틈틈히 계획을 스스로 세워서 추진했다. 그러니, 타 교사들이 나의 속도에 혀를 내두른다. 반면, 나는 겨울방학에 미뤄두었던 생활기록부를 작성하는 동료교사가 이해되지 않는다.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둔다면, 생활기록부 작성이 보다 수월한데도 이를 하지 않는 그들이 답답할 뿐이다. 

9도 장원공 이이, 그를 떠올리면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남들은 평생에 걸쳐 도전했지만, 합격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저세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9번이나 장원을 했다. 이에 대해서 김태형은 "그에게 과거 시험은 사회 불안을 극복하는 하나의 방편"(163쪽)이었다고 진단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4차례나 과거시험에 도전하여 장원을 했다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부모가 떠난 후에 사회에 진출하기 위한 자신감을 얻기 위해서 그는 과거시험을 보았다. 마치, 대학시절, 혹은 사회에 나와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고, 자격증을 받고 나서는 즐거워한 나의 경험과 정확히 일치했다. 용기가 필요할 때, 나 자신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서 자격증에 도전했다. 그리고 성취감을 느끼며 나자신에게 말했다. '너는 괜찬은 놈이야, 할 수 있어.'라고...

전략가(INTJ) 유형은 인구의 2%에 불과할 정도로 희귀한 성격이다. 정조와 율곡 이이의 심리분석은 곧 나를 이해하는 과정이기도했다. 그들의 삶을 통해서 나를 반성해본다. 그리고 나를 다독이며 한마디 한다. '강나루! 넌 괜찬은 놈이야, 그런데, 사고(T)만 할 것이 아니라, 감정(F)도 느껴봐.'


2. 심리학, 역사의 진실을 보다.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으며, '과연 사도세자가 미치지 않았다는 그의 주장을 믿을 수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덕일의 '세상을 바꾼 여인들'이라는 책을 읽으며, 혜경궁이 남편보다는 당파를 선택했다는 설명을 읽고서는 이덕일의 주장이 믿어지지 않았다. 남편이 없으면 평생 혼자 살아야하는 조선시대에, 남편을 버리고 당파를 선택하는 것이 가능한가? 이를 이해할 수 있는 퍼즐 조각을 김태형이 제시했다. 

우선, 사도세자는 미쳤는가?라는 질문을 풀어보자, 김태형은 사도세자가 미치지 않았다는 근거로, 공적인 자리에서 사도세자의 정신병적 증세가 나타나지 않으며, 15세(조선왕조 실록), 혹은 18, 19세(한중록)에 갑자기 정신병이 발병했다는 기록 자체가 임상 심리학이나 정신병리학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이덕일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이덕일은 한중록을 사료 비판하면서, 한중록은 사도세자를 죽인 자신의 가문을 변명하기 위해서 저술되었음을 강조한다. 가문을 위해서 영조와 사도세자를 정신병자로 몰아버림으로서, 자신의 아버지가 사도세자 죽음에 관여한 범죄를 합리화하려했다는 것이다. 이덕일이 동북항일연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며, 조선시대 비전공자라며 무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말을 떠올리며 이덕일의 놀라운 통찰력에 감탄한다. 그렇다면, 사도세자가 미쳤다는 기록은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영조실록'이 1757~1758년에 사도세자의 정신병증세가 부쩍 심해졌다고 기록한 것은 아마도 사도세자에게 너무나 불리하게 조성된 인적 환경 때문이었을 것이다."-29쪽


김태형과 이덕일의 주장은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렇다면, 자신의 가문과 당파를 위해서 남편을 버린 혜경궁 홍씨의 심리를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김태형은 혜경궁을 파파걸이라고 말한다. 건강한 단독자로 세상을 살아가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존재가 혜경궁 홍씨였다. 그러한 그녀가 결혼하고 남편과 아버지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할 때, 그녀는 남편을 버리고 아버지를 선택했다. 남편을 살리기 위해서 여성에게 약한 영조 앞에서 어린 정조를 부둥켜 않고 눈물로 호소했다면, 남편은 살아날 수도 있었다. 그녀는 매정했다. 심지어 왕위에 즉위한 정조를 암살하려한 자들을 조사해서 처벌하려할 때, 혜경궁 홍씨는 단식투쟁까지 하며 이를 막아섰다. 역모에 연루된 자신의 가문을 지키기 위해서이다. '아들을 지지하고 이해하기 보다는 자기 가문에 타격이 올 것만을 걱정'한 사람이 바로 혜경궁 홍씨였다. 

건강한 단독자로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와 결혼한다면 그 비극은 이러한 결말을 맺게 된다. 사실, 극단적 마마걸과 사귀어 보았던 나로서는, 그 사귐이 결혼에 이르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든다. 요즘, 파파걸, 마마보이가 많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판 사도세자가 탄생할 수 있지는 않을까? 건강한 자녀 양육이 건강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3. 심리학, 인간의 마음을 보다.

어느 교육청에서 유대인 밥상머리 교육을 예로 제시하며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내용의 학부모교육을 했다. 이를 본 어느 기자는 교육청을 비난하는 기사를 썼다. 학교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교육청이 반성과 대책을 내놓기 보다는 가정탓을 한다는 요지의 기사였다. 그런데, 교육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다보면, 학교에서의 교육보다 생애 초기의 가정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는다. 이것은 영조와 연산군, 허난설헌, 폐비 윤씨 등의 역사적 인물의 사례에서도 증명된다. 

영조와 연산군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병든 자아를 가졌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괴팍한 성격의 영조는 어머니의 출신이 낮다는 열등감에 휩싸였으며, 형을 독살했다는 협의를 받고 있다. 그의 이러한 병든 자아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뒤주 속에 넣어 죽였다. 이러한 사실은 비단 이덕일의 책에서만 서술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학자들의 책에서도 공통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죽음은 그의 폭주를 막는다. 


  "그의 죽음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폭주하던 영조를 멈춰세웠다. (중략) 영조의 무의식은 극도로 증오하던 아들이 죽고 나자 문득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중오한 대상은 아들이 아니라 죄의식과 열등감으로 일그러진 바로 자기 자신임을"-56쪽


가장 소중한 아들의 생명을 거두고 나서야 영조는 폭주를 멈추고 개혁의 길을 본격적으로 가게 된다. 영조의 경우는 너무도 큰 희생을 치루긴 했어도, 그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연산군의 사례는 그러하지 않다. 연산군의 비극의 시작은 계유 정난에서 부터 시작된 죄과의 결과였다. 가장 직접적으로는, 과부트리오(정희왕후, 소혜왕후(인수대비), 안순왕후)와 마마보이 성종에게서 그 원인을 찾는다. 안순왕후는 아들 제안대군의 부인을 두번씩이나 내쫓았고, 소혜왕후는 아랫사람에게 살벌하게 대하는 것은 물론이고, 국법을 어긴 수하를 비호하고, 정당하게 법집행을 한 수령을 벌주었다. 저자 김태형은 이들 과부 트리오의 심리를 '병든자아'라고 규정한다. 결국, 병든 자아를 가진 과부 트리오는 집안이 한미한 폐비 윤씨를 내쫓으려 성종을 부채질한다. 마마보이 성종은 과부 트리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폐비 윤씨를 내쫓고 그녀에게 사약까지 내린다. 

단독자로 홀로 서지 못하는 마마보이 성종은 자신의 아들을 조선 최고의 폭군으로 만들었다. 어린아이(ENFP) 성격유형을 가진 연산군은 마마보이로 자라난다. 죽음의 공포속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과부 트리오에게 의존하고, 훈구파의 눈치를 본다. 그러나 인수대비가 죽자, 그는 폭주하기 시작한다. 2번의 사화를 거치면서 그는 무절제한 삶을 살아간다. 어린아이 유형의 성격을 가진 연산군은 연예인이 되었다면 탁월한 스타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제대로 된 부모를 만나지 못했고, 성격에 맞지 않는 왕이 되어서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왕비가 칠거지악을 지었으면 버리면 그만이지 왜 꼭 죽여야했는가?"(357쪽)라는 연산군의 절규는 건강한 가정만이 행복한 인간을 만든다는 사실을 깨닫게해 준다. 

비단, 영조와 연산군의 사례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허균과 허난설헌이 비극적 삶을 살아야했던 것도 행복한 가정 환경이 그들에게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허난설헌과 허균이 어머니의 품이 아니라 비현실적인 신선세계를 동경하거나, 율도국 건설을 꿈꾼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판타지와 SF 영화 속 히어로 물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를 보면서, 어쩌면 허난설헌과 허균의 가정에서 벌어졌던 비극이 우리사회에도 만연하지 않는지 우려해본다. 



  "어머니 관계가 나쁜이는 혁명의 낙오자가 되지만, 아버지 관계가 나쁜 이는 혁명의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269쪽)라고 김태형은 말한다. 행복한 가정, 사랑스럽고 따뜻한 부모가 되지 않는다면, 이 사회를 행복하고 아름답게 만들 수 없다. 무기력한 아버지 이원수 밑에서 자라난, 율곡 이이는 집요하게 선조를 설득해서 개혁을 완수하지 못했다. 가정의 행복은 이뤘지만, 국가의 개혁을 이뤄내지 못하고 그는 죽었다. 그 댓가는 참혹했다. 누나 매창과 부인은 왜적에게 죽임을 당하고 국토는 황폐화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화목한 대가정을 건설하는데 실패한다면, 개인 차원의 화목한 대가정도 마을 차원의 이상촌도 실현이 불가능"(200쪽)하다는 진리를 율곡 이이의 사례는 보여준다. 밥상머리 교육의 중요성! 행복한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한다. 한국 사회를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개개인이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조력이 필요하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이에 대한 관심과 정책을 마련했을까?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억의집 2022-01-20 2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료에서는 사도세자가 닥치는대로 주변 사람들을 죽였다고 기록되고 김복준 교수님의 해석은 사도 세자가 오늘날 보면 연쇄 살인범이다라고 하시더라구요. 이런 저런 해석 읽으면서 역사를 알아갑니다.

mini74 2022-02-10 1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글 재미있게 읽은 기억납니다.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2-11 14:46   좋아요 1 | URL
mini74님, 고맙습니다.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2-10 18: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2-02-11 14:46   좋아요 0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풍성한 주말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2-10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2-02-11 14:4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bookholic 2022-02-12 05: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늘 좋은 책 소개 고맙습니다...

강나루 2022-02-12 07: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편안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2-12 06: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강나루 2022-02-12 07:38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2-12 0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