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 풍문부터 실록까지 괴물이 만난 조선
곽재식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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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겨울 밤을 보냈다. 이야기 속에는 산신령이 자주 등장하였다. 그 시절에는 산신령이 그리도 많았는데 요즘에는 왜? 산신령이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을 많이 했다. 아버지는 '네가 보지 못할 뿐이지, 사실은 산신령은 지금도 존재한단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시절에는 옛날 이야기속의 산신령, 도사, 도깨비들을 믿었다. 서양의 과학적 사고 방식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 이상 산신령, 도께비를 믿지 않는다. 그런데, 조선시대 '조선왕조실록'에 괴물이 등장한다. 작가 곽재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부터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수 많은 기록들을 뒤지며 우리의 괴물들을 한데 모았다. 어린시절 옛날 이야기를 듣던 추억을 떠올리며 책을 펼쳤다. 


  책을 펼치자 '조선 괴물지도'가 펼쳐졌다. 이책에서 소개한 괴물과 귀신들을 각지역별로 표시하고 괴물의 모습도 곁들였다. 우리 산하에 이리도 많은 괴물들이 살았다니... 흥미로움에 빠져들었다. 저자 곽재식은 단순히 과거 기록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괴물들을 합리적으로 추론해서 과학적으로 설명하려 노력했다. 한예로 '지하거인'을 설명하는 '플터가이스트' 개념을 사용한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나 기와와 돌이 날아다는 현상은 정신적으로 어떤 문제를 가진 사람이 충동적으로 물건을 던지거나 부순 다음, 자기가 한 일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착각하는 현상이 플터가이트스 이다. 특히 계유정난 이후라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억울하게 죽고, 집안이 몰락하여 양반의 자손들이 노비생활을 하였으니 얼마나 심리적으로 고통이 심했겠는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지하거인이 등장하였다는 심도 있으면서도 합리적이 설명이 이책의 곳곳에 녹아있다. 단순히 흥미 위주의 책으로 추락할 수도 있었지만, 이러한 합리적인 설명은 조선 사회의 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열쇠를 우리에게 선사해준다. 

  인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는가? 인어가 조선에도 있다는 사실을 아는가? '어우야담'에는 강원도 통천의 한어부가 인어 세끼 6마리를 잡았다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서양 동화속 주인공으로만 알던 인어가 동양에도 있었다니 너무도 흥미롭다. 순간, 우리도 인어를 문화 콘텐츠로 만들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했다. 아니, 이 책에 실려 있는 전국의 괴물들을 각국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을 소개하는 관광자원으로 소개하는 것은 어떨까? 역사가 우리 생활 속에서 살아 숨쉬고, 지역민이 풍족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자산이 되지않을까?

  

  역사는 기록하는자의 것이며, 기억하는 자의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역사가 있다할지라도 우리가 기록하지 않고, 기억하지 않는다면 그 역사는 더 이상 우리의 것이 될 수 없다. 곽재식의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이라는 책은 우리 역사속에 잠들어 있는 괴물들을 불러내어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충북 오창에 요공원을 소개하며 두꺼비 생태공원을 조성한 오창이 지내와 두끼비를 이용한 관광자원을 개발할 것을 제안했다. 책속에만 존재하는 역사를 불러내어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고 지역민과 교감하도록하는 일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할 뿐만 아니라, 역사를 우리 주변에서 살아 숨쉬게하는 강력한 효과가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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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까지 가자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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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 독서와 수업 사이에서 한 선생님이 '달까지 가자'라는 책을 읽고 가상화폐에 대해서 대화를 하고 싶다하였다. 내키지는 않지만 책을 읽어 내려갔다. 내가 소설책을 잘 읽지 않는 이유는 뻔한 줄거리 때문이다. 몇페이지만 읽어보면 결론이 눈에 들어오는 책들은 읽고 싶은 마음을 멸균시켜버린다. 장류진의 소설 '달까지 가자'를 읽으며, 가상화폐에 투자했다가 쪽박차게되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장류진의 '달까지 가자'는 나의 예상을 빗나갔다. 그것이 이책을 읽으며 느낀 유일한 호감이다. 돈에 미쳐있는 대한민국에서 가상화폐라는 지극히 위험한 곳에 자신의 전재산과 빚을 끌어모아 투자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을 두둔하는 소설로 읽혔다. 장류진은 과연 '달까지 가자'라는 책을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말하려는 의도와는 달리, '달까지 가자'는 청년들에게 가상화폐에 투자하도록 독려하는 역할을 하진않을지 걱정이 된다. 가벼운 문체에 가벼운 주제를 담아 가볍게 읽고 책을 던져버릴 수 있도록 책을 썼다. 우리의 삶이 가볍지 않을진데 가벼운 책을 읽은 것이 못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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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21-09-02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상화폐에 대해 대화를 하려면 다른 책을 먼저 읽어야 하지 않나요. 소설이 아니라… 가상화폐의 근본적인 지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쪽박 차는 경우부터 가상화폐에 접근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감히 말씀 드립니다만, 가상화폐를 투기의 수단으로 여기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는 것과 다름이 없거든요.

강나루 2021-09-03 19:45   좋아요 0 | URL
네 공감합니다.
제가 가상화폐에 관심이 없어 깊이 있는 책부터 읽자는 제안을 안했네요
 
휴먼카인드 - 감춰진 인간 본성에서 찾은 희망의 연대기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조현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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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이 붕괴한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화두가 나의 대학시절에 유행했다. 역사학도들은 나름의 이유를 생각해냈다. 나는 '인간이 49:51의 비율로 본성이 악에 기울어있기 때문이다.'라고 결론을 내렸다. 공동생산 공동분배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성선설에 기반하고 있다면, 인간의 이기심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성악설에 기반해서 만들어졌다. 악에 기울어져 있는 인간에게 공산주의 이론은 자본주의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다. 혁명의 대의 앞에 목숨을 걸었던 자들이 권력을 잡고 나서는 부패하는 사례를 보며 이 또한 인간이 악에 기울어져 있다는 강력한 근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러한 나의 생각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에 의해서 과학적 근거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이 전쟁을 일으키는 이유도, 아우슈비츠의 가스실에 무고한 생명을 집어 넣은 것도 인간의 악한 마음 때문으로 보았다. 그런데, 이에 강력하게 반론을 제기하는 책이 등장했다. '휴먼카인드'!! 제목 그대로 인간(human)은 친절하다(kind).라는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주장은 책을 읽는 동안 나의 고정관념들을 하나씩 깨주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내가 인생의 책으로 손꼽았던 책들 마져도 하나씩 무너져갔다는 것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는 강력한 도끼였다. 나의 고정관념에 강력한 도끼질을 한 '휴먼카인드' 속으로 들어가보자.


1. 인간을 '호모 퍼피'로 규정하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소련의 재미있는 실험을 소개한다. '은여우 길들이기 실험'으로 불리는 이 실험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야생의 은여우들 중에서 조금이라도 인간에 우호적인 행동을 보이는 은여우를 번식시켰다. 그 결과 지능은 높아졌고 인간에게 꼬리를 흔드는 은여우가 탄생했다. 이를 바탕으로 자자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은여우 길들이기 실험의 결과는 '당연히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 종의 진화는 가장 우호적인 자의 생존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주장은 가장 비열한 자가 살아남고 선한자는 이용만 당하다가 도퇴된다는 우리의 고정관념에 강력한 도끼질을 했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인류를 '호모 퍼피'라고 규정한다. 이 책은 사람의 길들여짐과 개의 가축화 결과의 유사성을 그림으로 제시하며 나의 고정관념에 예리한 도끼질을 했다. 

  나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인간이 가장 우호적인 자의 생존에 근거해서 진화했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부정하고 싶은 욕구가 나의 마음 저 구석에서 용솟음쳤다. 지금까지 내가 읽었던 심리학 서적과 역사 책 속에서 인간은 악하다는 근거들을 하나씩 떠올렸다. 그러면서 뤼트허르 브레흐만을 너무도 이상적인 사람으로 평가했다. 결국, 그의 주장은 헛점을 보일 것이다. 조그마한 근거에 기반해서 인간은 선하다는 주장을 할 것이고, 이 책을 다 읽으면 그의 주장을 공격할 수 있는 서평을 쓰겠다고 다짐하며 책장을 넘겼다. 

 인류를 호모 퍼피로 규정한 그의 주장에 나는 심리학자들의 논리를 끌어들여 반론을 전개하겠다는 구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인간이 선행을 하는 것도 선행을 통해서 주변의 평판이 좋아지는 만족감을 얻기 위한 것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심리학자들은 '겉보기에 이타적인 행동도 결국에는 이기적인 것이 틀림 없다고 작심하고 결론을 내렸다.'라고 비판한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반박에 순간 선악을 구별하는 것 자체가 인간이 만든 구분선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다. 같은 행동도 악하게 보려는 사람은 악한 행동이 발현된 것이라 생각하고, 선하게 보려는 사람은 인간의 선한 마음이 행동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인간은 악하다는 나의 고정관념을 접어두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하다는 껍질을 벗고 또다른 세상을 바라볼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한번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주장과 근거들을 따라가보기로했다. 그리고 책장을 덮고 그의 주장에 대해서 진지하게 다시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나는 다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2. 무너져버린 나의 인생책들!!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휴먼카인드'를 읽으면서 절망감을 느꼈다. 인간이 선하다는 그의 주장은 긍정적으로 다가왔지만,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성악설에 근거가 된다고 판단한 책들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이들 책중에는 나의 인생책으로 손꼽는 책들이 있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문명의 붕괴',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은 나의 생각의 일대 전환을 가져다준 책이다. 

  물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대해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비판은 치명적이지 않았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만났을 때 그 결과는 아마도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중요한 인종 청소 캠페인이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추측한 것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했다. 사피엔스는 여성스럽고 소통 능력이 증대되는 쪽으로 진화했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이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거대한 줄기를 근본적으로 흔들지는 않았기에 나에게 큰 중격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한나 아렌트에 대한 비판은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나의 세계관을 확대시켜준 분이시다. 그의 책 '총, 균, 쇠'를 통해서 역사를 바라볼 때, 지리적 환경을 잘 고려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통찰력에 매료되어 그의 책 '문명의 붕괴'를 이어서 읽었다. 여러 문명들을 검토하며 그 문명들의 붕괴 원인을 밝히고 이를 통해서 지구 문명을 지키는 지혜를 도출했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한다는 지혜를 이 책을 통해서 배웠다. 특히, 이 책에 소개된 '이스터섬'의 붕괴 원인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많은 석상을 만들기 위해서 나무를 베어냈으며, 이로인해서 농토는 황폐화되었고, 나무가 없어지니 배를 만들 수 없어서 바닷물고기를 잡을 수 없었다. 먹을 것이 줄었기에 이스터 섬에서는 내전이 일어났으며, 심지어는 식인도 일어났다. 1만명이 넘었던 인구는 유럽인이 왔을때, 2천여명정도로 줄어들었다. 이러한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설명을 읽으며 이스터섬을 지구문명의 축소판으로 인식하고 나부터 지구 환경을 지키는데 솔선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고고학적 발굴결과와 서구인들의 기록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이것이 거짓이었음을 밝혀낸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스터 섬의 '회복탄력성'을 강조한다. 


  "이스터 섬의 실제 이야기의 주인공은 수완이 매우 좋고 회복탄력성이 높은 사람들이다. 임박한 파멸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르지 않는 희망의 원천이다."-199쪽


  인구가 1만명을 넘었다는 주장도 거짓말이었다. 식인도 일어나지 않았으며, 내전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우리 지구문명을 지키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회복 탄력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물론 이스터섬의 회복탄력성도 서구인들이 가져온 바이러스에 의해서 무너졌지만 말이다.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이라는 책은 '생각하는 존재만이 노예로 살지 않는다.'라는 진리를 깨닫도록 해준 책이다. 평범하고 모범적인 아버지이자 이웃이었던 아이히만이 수많은 유대인들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낼수 있었던 것은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를 가지려 무던히도 노력했다. 악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 제2의 아이히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런데,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아이히만은 단순히 히틀러가 명령했기 때문에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자료가 발견되면서 아이히만이 나치이론에 동의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사람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는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해서 연기를 했던 것이다. 

  독수리가 알을 깨고 나와야지만이 푸른 창공을 날 수 있다. 재레드 다이야몬드와 한나 아렌트는 나의 생각을 새롭게 형성하게 해준 알껍질과 같았다. 나의 생각이 이제 껍질을 깨고 푸른 창공을 향해서 날개짓을 할 때가 왔다. 재레드 다이야몬드와 한나 아렌트를 떠나보내야한다는 사실이 깊은 아쉬움을 남기지만, 그들을 떠나 보내야 나는 저 창공으로 날아갈 수 있다. 그래서 선종에서는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하지 않았던가!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스승을 만나면 스승을 죽여라! 


3. 너무나도 인상적인 심리학 실험들의 붕괴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나의 인생책들만을 붕괴시키지 않았다. 그는 과감하게도 너무나 유명한 심리학 실험들도 비판했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과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 그리고 캐서리 제노비스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다. 

  스탠퍼드 교도소 실험은 고등하고 공통사회 교사용 지도서에도 실렸던 유명한 실험이다. 교도관과 재수의 임무를 부여하자, 평범한 학생들이 난폭한 교도관과 심리적으로 움츠려든 재수로 변했다. 이 실험을 나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격언을 뒷받침하는 실험으로 인식했다. 그런데 취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실험을 인간은 본성이 악하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보았다. 그리고 이 실험의 문제점을 심도 깊게 파헤친다. 실험자가 철저히 배제된 상태에서 이뤄져야하는 실험이 실험자와 실험참가자의 의도에 따라서 진행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러한 실험은 조작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스탠리 밀그램의 전기 충격 실험 결과는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을 떠올리게 했다. 흰가운을 입은 명령자의 권위에 복종해서 상대에게 전기충격을 가하는 것을 서슴치 않았다. 이 실험을 처음 알았을 때, 스스로에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라고 되뇌였다. 그런데,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실험이 의도된 실험임을 밝혀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 자신이 고통을 주고 있다고 믿는 사라은 56%에 불과했다. 그리고 상당수의 사람들은 자신의 실험이 과학발전을 위해서 해야만하는 일이라는 사명감 때문에 전압을 올렸다고 대답했다.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서 심리학 책에서 중요한 실험이라 소개 받았던 이 실험이 사실은 의도된 실험이라는 사실이 나를 충격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 넣었다. 너무도 유명한 실험이기에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주장과 근거가 진실에 기반한 것인지 의문이 들기도했다. 그러나, 이는 충격의 전부가 아니었다. 

  키티 제노비스가 칼에 찔려 죽어가는데도 목격자 38명은 도와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 유명한 키티 제노비스 이야기이다. 키티 제노비스의 이야기를 나는 상담 연수를 받으면서 교수님에게 들었다. 게다가 TV 프로그램 '써프라이즈'에서도 키티 제노비스의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뤄졌다. 38명의 방관자 이야기를 하며 심리학 교수는 위기에 처했을 때 반드시 특정 사람을 보면서 구체적으로 구조요청을 하라고 조언을 했다. 다수의 사람이 보고 있다면 개인이 받는 책임감이 경감되기에 특정인을 지칭하며 구조를 요청하라는 말에는 인간은 악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러나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키티 제노비스가 죽는 현장을 목격한 인물들을 찾아간다. 그리고 이 이야기가 기자들에 의해서 조작된 이야기임을 밝혀낸다. 미국에도 기레기가 있었다. 기레기는 한국에만 있는줄 알았는데..... 

  유명한 심리학 실험과 사례들을 심도있게 파헤치며 그 허구를 실날하게 파헤친 뤼트허르 브레흐만의 집념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진실이라 믿었던 심리학 실험 결과들이 신뢰할 수 없는 실험의 결과라는 사실에 나는 한동한 충격을 감출 수 없었다. '휴먼카인드' 나의 머리에 여러차례 도끼질을 해댔다.



  가장 좋은 책은 독자의 고정관념을 깨고 독자에게 새로운 세상에 눈뜨게 만든다. '휴먼카인드'는 나를 기존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바라보도록 했다. 물론, 그 과정에서 나의 인생책들이 부서져나가는 안타까움이 발생하기도했다. 자녀가 장성하면 부모의 곁을 떠나야하듯, 나의 정신을 성숙시켜준 인생책들을 이제는 떠나 보내야할때가 된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책을 만나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때가 왔다. 

  '휴먼카인드'는 성악설에 근거가 될 수 있는 학자들의 연구결과를 집요한 자료조사와 분석을 통해서 무력화시켰다. 그리고 선한 인간이 왜? 전쟁과 학살이라는 비인간적인 일들을 저지르는가에 대한 심도있는 분석을 했다. 긜고 우리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움직임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의 평화를 위협하는 혐오와 불평등, 편견에 맞서고 테러리스트를 보통인간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인간이 선하다는 근거없는 이상적인 이야기만을 할줄 알았던 나는 인간본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했으며, 선한 인간이 어떻게 선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방법을 알았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안목을 키워주는 '휴먼카인드'가 대중들에게 더 많이 소개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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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9-01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9-0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나루 2021-09-01 21:4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체르노빌 히스토리도 읽고 싶은책 목록에 보관하겠슫니다^^

scott 2021-09-01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3월부터 찜해놓고 잊어버렸다가 강나루님 포스팅 읽고 땡투!👆 강나루님 9월 건강하게 ^ㅅ^

강나루 2021-09-01 21: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독서하세요^^

scott 2021-10-08 15: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추카~~

제 예감 적중 👆^^

강나루 2021-10-08 17:4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예감까지하셨다니....

서니데이 2021-10-08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강나루 2021-10-08 23: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1-10-08 1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1-10-08 23: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언제나 기뿜이 가득하시길 바래요^^

겨울호랑이 2021-10-08 18: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휴먼 카인드>의 이야기는 인간 본성에 대해 ‘성선설‘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책으로 여겨집니다. 글을 읽으며 인간의 본성도 중요하지만, 이러한 본성을 어떻게 발현하느냐의 문제도 함께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10-08 23:25   좋아요 1 | URL
맞아요
책 뒷부분에 착한 본성을 발현할 방법이 제시되어있어요

bookholic 2021-10-08 23: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 님, 이달의 당선작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강나루 2021-10-08 23:2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이번 연휴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러블리땡 2021-10-09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1-10-09 05:4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thkang1001 2021-10-09 06: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 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앞으로도 계속 좋은 글을 많이 써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되세요!

강나루 2021-10-09 07: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글쓰는 즐거움을 앞으로도 계속 누리려합니다.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초딩 2021-10-12 0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 휴먼 카이드로 이달의 당선작 되신 것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
그리고 그것도 첫번째로요 ^^
좋은 밤 되세요~

강나루 2021-10-12 04:5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초딩님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황후화 2021-10-12 01: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1-10-12 04:58   좋아요 1 | URL
황후화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마음의 부력 - 2021년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승우 외 지음 / 문학사상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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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예술이 그들만의 리그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는 예술 분야만의 일은 아니다. 시가 더 이상 대중과 가까이 있지 못하고, 소설도 비평가들이 좋아하는 작품과 대중이 좋아하는 작품이 같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많은 소설을 읽었던 내가, 대학 진학후 소설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나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만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이상문학상 작품집 '마음의 부력''을 꺼내들었다. 비평가들에게 대중의 눈에 맞추라고 요구할 수 없기에 나의 눈에 맞는 작품을 뽑아 보기로 했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소개된 작품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작품이 있을까?


  제44회 당선작들은 대부분 가족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대상 수상작도 가족간에 있을 수 있는 어머니와 아들, 형제간의 미묘한 갈등을 소재로한 이승우 작가의 '마음의 부력'이다. 우리 영화에서 흥행 코드는 '어머니'이다. 어머니의 희생을 소재로한 작품은 한국인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치매 초기의 어머니와 먼저 저세상으로 간 형이라는 소재는 흥행에 적격이다. 게다가 미스터리를 풀어가듯 단서들을 찾아서 진실을 밝히는 전개 형식은 독자를 빨려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이승우 작가의 서술방식은 '부재증명'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 나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하지 못해서 타인에게 이를 부탁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담긴 소설 '부재증명'을 읽으며, 주인공이 혹시 헤리성 성격장애이거나, 아버지의 배다른 동생이 금천에 실존했을 가능성을 상상해 보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만의 흡입력은 탁월했다. 그러나, 이러한 전개방식과 눈물샘을 자극하는 소재는 영화에 익숙한 대중들에게 얼마나 다가갈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사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어머니의 존재는 '신과 함께 1'에서 보았던 내용이고, 단서를 토대로 진실에 다가가는 전개방식은 외국의 많은 영화들에게 흔히 보았던 전개 방식이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훌륭하지만, 내가 심사위원이라면 그의 작품을 대상의 반열에 올려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수작 중에서 재미있는 작품이 많았다. SF 소설을 읽는 듯한 박형서 작가의 '97의 세계'는 무한 타임루프 속에서 딸을 구하기 위한 아버지의 부성에가 느껴졌다. 윤성희 작가는 누가나 가진 가해자로서의 양심의 가책을 소재로 잔잔한 공감을 이끌어내는 '블랙홀'이라는 작품을 만들었다. 장은진 작가의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은 작품을 읽는 동안 아련한 짝사랑의 기억을 소환시키며 옛 추억에 빠져들게 만들었다. 천운영 작가의 '아버지가 되어주오'라는 작품은 희생자로만 비춰질 수 있는 어머니의 삶을, 어머니 입장에서 새로운 '사랑의 삶'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 속에서 감동을 불어 넣어 주었다. 

  그러나, 제44회 이상문학상 우수작들은 모두 훌륭했지만, 나의 마음에 깊숙히 다가왔던 작품은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었다. 어머니로 알았던 존재가 아버지였으며, 우토로라는 공간을 소재로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작품이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 전개와 한일간의 아픈 역사를 상기시키는 소재, 성 소수자에 대한 성찰 등은 타작품과 분명히 비교되었다. 조그만 일상에 갖혀서 오늘의 삶에만 관심을 갖는 소설과는 달리, 한일관계의 아픈 역사를 생각하고 성소수자에 대한 색다른 관심을 불러 일으키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소설의 전개는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소설은 끝났지만, 소설 이후의 주인공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우려섞인 말을 자주 듣는다. 2021 제44회 이상문학상 작품집을 읽으며 이러한 우려를 떨쳐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생각하는 대상 작품에 공감하기 보다는 깊은 성찰을 하도록 나를 끌어 당기는 한지수 작가의 '야심한 연극반'이라는 작품에 대상을 주고 싶다. 심사위원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소설이 사소설로 빠져들고 있다는 걱정은 당신들의 안목이 대중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한지수!! 그녀의 '야심한 연극반'을 내가 뽑은 대상작품으로 선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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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8-21 11:5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말씀에 격하게 공감합니다!

한지수 작가님의 ‘야심한 연극반‘ 때문이라도 이번 44회 작품집 꼬옥! 읽어봐야 겠네요

강나루 2021-08-21 12:13   좋아요 4 | URL
빗소리를 들으며 읽기 좋은 단편소설입니다^^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중국인 이야기 4
김명호 지음 / 한길사 / 201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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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는 왜? 사랑이야기가 빠지지 않고 나오지? 어린시절, 텔레비젼 드라마를 보면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랑이야기가 고리타분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랑은 따로 떼어 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사람이기에 사랑을 해야한다. 그 사랑은 남녀간의 사랑일 수도 있고,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일수도 있다. 그리고 스승과 제자 사이의 사랑일 수도 있다. 그 사랑이 어떠한 형태이든, 그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의미를 발견한다.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4'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장쉐량-쑹메이링-장제스의 삼각관계부터 시작해서 황푸군관학교 교장인 장제스와 그의 제자 린뱌오의 사랑,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이야기, 중국과 북한의 지도부간의 끈끈한 우정과 사랑이야기가 대하드라마 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랑의 끝에 신중국 탄생 이야기를 김명호는 배치했다. 어찌보면 수많은 사랑 덕분에 신중국이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될 수도 있다. 이들 사랑 이야기 중에서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삼각관계와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이야기를 살펴보자. 


  중국 대륙을 뒤흔든 사랑이야기를 꼽으라면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장쉐량과 장제스의 삼각관계일 것이다. 쑹메이링은 송자수의 3자매 중에서 막내이다. 첫째는 중국 최고의 부자와 결혼했고, 둘째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에서 국부로 추앙받고 있는 쑨원과 결혼했다. 셋째 쑹메이링은 한때 중국 대륙을 손아귀에 넣었던 장제스와 결혼했다. 송씨 세자매가 한명은 부를 선택했고, 한명은 명예를 선택했다. 마지막으로 쑹메이링은 권력을 선택했다. 신은 한사람에게 모든 행복을 다주지는 않는 모양이다. 쑹메이링은 권력을 선택하기 보다는 사랑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아니, 운명이 그녀에게 권력을 선택하도록 강요했는지도 모른다. 

  쑹메이링은 1925년 상하이에서 운명적 만남을 했다. 콧대가 높았던 쑹메이링은 중국 4공자 중에 한명인 장쉐량이 주는 술잔을 거부하지 않았다. 8일간의 행복한 시간을 뒤로하고 둘을 헤어졌다. 장쉐량에게는 아버지가 맺어준 부인이 있었기에 쑹메이링과 사랑의 결실을 맺을 수는 없었다. 장셰량이 떠난 사이 황포군관학교 교장 장제스가 그녀에게 접근한다. 쑨원에게 다리를 놓아달라고 요구하며 4차례에 걸쳐서 결혼요구를 한다. 심지어는 일본가지 쫓아가서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 노력한다. 장제스도 2명의 부인과 1명의 첩이 있었다. 장제스는 이들 여성과 이혼했고, 기독교로 개종한다는 약속을 하고 결혼 승락을 얻어낸다. 

  장제스가 쑹메이링에게 집요하게 접근한 것은 사랑이기 보다는 쑨원부인의 여동생과 결혼함으로서 자신의 정치적 야망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 선택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장제스에게는 황포군관학교를 통해서 배출된 군대는 있어도 정치적 자산은 없었다. 그 빈부분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쑨원의 후광이다. 반면, 쑹메이링도 장제스의 앞날을 예상하며 권력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약 장쉐량과의 사랑이 이뤄질 수 있었다면 장셰량을 선택했을 것이다. 이것은 101세의 장쉐량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104세의 쑹메이링이 통곡했다는 일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장쭤린이 일본군에 의해서 폭살당하고 나서, 장쉐량은 항일의 기치를 올리며 장제스의 국민당 정부에 합류한다. 장제스도 장쉐량의 풍모에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장제스와 장쉐량은 항일이 먼저냐, 공산당 토벌이 먼저냐를 두고 갈라선다. 1936년 그 유명한 시안사건이 발발한다. 공산당 토벌을 독려하려온 장제스를 장쉐량은 감금하며 국공합작을 종용한다. 장쉐량의 부하들은 장제스를 죽이자고 했다. 그런데 왜? 장쉐량은 장제스를 죽이지 않았을까?


  "나는 쑹메이링을 과부로 만들수는 없었다. 쑹메이링만 아니었다면 장제스는 그때 죽을 목숨이었다."-45쪽


  장쉐량이 수많은 여성과 염문을 뿌렸지만, 진정으로 사랑했던 여인은 단한사람, 바로 쑹메이링이었다. 장제스는 쑹메이링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그리고 장제스는 장쉐량을 죽이려 했으나, 쑹메이링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장쉐량을 죽이지 않았다. 쑹메이링이 장쉐량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장제스를 살리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쑹메이링이 시안에 갔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목숨을 걸 필요가 없었다. 시안에서 자신의 남편을 감금한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 시안 공항에 내려 장쉐량을 만난 쑹메이링의 얼굴은 공포보다는 옛 애인을 만난듯이 활짝 웃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시안에서 풀려난 장제스는 장쉐량을 가택연금시켰다. 그리고 자신이 죽을 때까지 그를 풀어주지 않았다. 공산당에 밀려 타이완으로 갈 때도 그를 끌고갔다. 쑹메이링은 자신의 지인들과 주고 받은 편지를 합친 것보다 많은 편지를 가택연금 되어 있는 장쉐량과 주고 받았다. 운명이 장쉐량과 쑹메이링의 결합을 이루지 못하게 했지만, 둘 사이의 사랑마져 갈라 놓지는 못했다. 

  남녀간의 사랑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제간의 사랑도 있다. 황포군관학교 4기생 중에서 가장 탁월한 학생으로 꼽히는 사람이 바로 린뱌오이다. 장제스는 린뱌오를 가까이에 두고 싶었다. 린뱌오가 편지를 두고 떠나고 나서도 장제스는 린뱌오를 잊지 못했다. 린뱌오가 총에 맞아 부상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장제스는 상당한 걱정을 했다. 그런데, 그의 애제자 린뱌오는 장제스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장제스의 사랑의 경쟁자 장쉐량의 평가에 정답이 있다. 


  "지도자는 인재를 알아보는 눈이 있어야한다. 장제스는 인재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항상 노예를 구하느라 혈안이 돼있다."-43쪽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다는 말이 있다. 이 말대로라면 린뱌오는 장제스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했다. 그러나, 린뱌오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보다는 자신이 목숨바칠 가치가 있는 존재를 선택했다. 내가 사랑하는데 너는 왜? 나를 사랑하지 않느냐고 말하기 이전에 내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하지 않을까??


  쑹메이링을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가 혁명기 중국을 뒤흔든 애절한 사랑 이야기라면, 아이쉰져러 푸이와 리위친의 사랑 이야기는 진정한 부부관계는 어떠해야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괴뢰 만주국의 황제 푸이는 일본의 강요로 새로운 여자를 선택하게 된다. 일본여자를 싫어했던 그는 여학교 교장이 보내온 사진 속에서 리위친이라는 여학생을 자신의 신부로 선택했다. 그 이유는 신분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다. 신분이 낮기에 자신이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여성이어서 리위친을 선택했다. 리위친은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푸이의 부인이 되어야했다. 푸이가 요구하는 조건들을 담은 문서에 서명을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푸이의 몽둥이질을 당해야했다. 푸이와 리위친의 관계는 사랑하는 부부의 관계가 아니었다. 주인과 노예의 관계였다. 

  일본이 패망하자, 푸이는 부인을 내팽개 치고 도망치다가 소련군에 넘겨진다. 신중국이 세워지고 나서 전범관리소에서 리위친은 푸이를 다시 만난다. 푸이는 리위친이 가져온 사탕과 과자를 허겁지겁먹는다. 자신의 부인 리위친에게 먹어보라는 말도 하지 않은채 말이다. 청나라와 만주국이 멸망했음에도 푸이는 아직까지 리위친을 노예로 보고 있었다. 리위친은 신중국에서 각성한다. 당당히 황제였던 남편에게 이혼소송을 낸다. 그리고 그녀는 자유의 몸이 되어 방송국 녹음 기술자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제 그녀는 노예의 삶을 청산하고 자유인의 삶을 시작한 것이다. 

  어느 CF광고에 "저렇게 많은 아파트 중에서 왜? 내 아파트는 없을까?"라는 문구가 있었다. 그것을 보면서 총각이었던 나는 '저렇게 많은 여성들 중에서 왜? 내 여자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다. 총각들과 모여서 술잔을 기울이며 신세한탄을 하던 중에 한 친구가 이런 말을 했다. 

  "(외모기) 김태희 정도는 되어야하는데, 눈을 낮춰야하겠다. 조건을 낮춰 결혼하면 (상대는) 열쇠를 많이 가져와야해" 

  글쎄, 그 친구가 듣기 싫어할까봐, 아무말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는 평등한 부부의 관계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원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황제이니 가난한 국수집 딸 리위친의 관계처럼 말이다. 똑똑하고 미남인 그 친구도 결혼을 했다. 자신이 원하는 연예인 수준의 미모를 가진 여성인지는 모르지만, 부디 노예와 주인의 관계가 아닌, 서로 사랑하는 부부의 인연을 맺길 바란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배우다보면, "혁명"이니, "민족주의", "항일", "공산주의", "자본주의"와 같은 거창한 용어를 자주 듣는다. 나도 모르게 역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이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그 시대를 살았던 것처럼 생각한다. 그리고 모든 역사가 그러한 거창한 명분하에 이뤄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러한 거창한 이념과 명분 이면에는 인간의 사랑이 있었다. 송씨 3자매의 사랑 이야기를 비롯해서 혁명시기 중국에서 청춘남녀가 자유로우면서도 강렬한 사랑 이야기를 김명호의 '중국인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했다. 어떤이는 사랑 이야기로 역사를 해석하는 것을 "야사"로 비하하기도한다. 특히 근대에는 인간의 감성보다는 이성을 중시하고, 이성의 무한한 진보를 확신했다. 그러나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을 통해서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밝히면서 상황은 반전했다. 인간은 이성보다는 감성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였다. 특정 이념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것 보다는 사랑으로 역사를 재해석 하는 것이 역사가 움직인 근본적 이유를 밝혀내는 새로운 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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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1-08-11 19: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역사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데 요책은 읽어보고 싶네요.
아무래도 사랑 이야기라.ㅋ

강나루 2021-08-11 21:04   좋아요 4 | URL
쑹메이링을 중심으로한 사랑이 압권이지요.
2010년 선양에서 열린 국제 학술회의에서도 가장 주목을 끈 것도 이들의 삼각 관계였다고 합니다.

레삭매냐 2021-08-14 1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끔 중국사 관련 컨텐츠를
검색하면 신문 기사로 나오더라구요.

1권인가는 읽었는데 그 다음에도 계속
해서 나오는 줄 몰랐네요.

강나루 2021-08-14 10:37   좋아요 1 | URL
지금 8권까지 나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