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 - 광복을 염원한 사람들, 기회를 좇은 사람들
선안나 지음 / 피플파워 / 201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상황이 인간을 만들까? 인간이 상황을 창조할까? 역사의 갈림길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황이 자신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팔자는 자기가 만든다.'라는 말이 있듯이, 같은 역사적 상황이라하더라도 어떤한 길을 갈 것인지는 판이하게 다르다. '일제강점기 그들의 다른 선택'이라는 책은 7개의 커다란 주제로 독립운동가와 친일파를 짝을 이뤄 재미있게 설명했다. 청소년용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선택해서 읽었으나, 일반인을 위해서도 손색이 없는 책이다. 대부분 우리가 잘아는 인물들이다. 그들의 삶을 소설 읽듯이 재미있게 풀어써서 대중성을 확보한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첫번째 주제 '명문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나'는 많은 것을 생각케한다. 진정한 명문가란 무엇일까? 대전에는 노론의 영수라고 말하는 가문이있다. 대전에서는 대단한 명문가 인것 처럼 선전하고 있으나, 나로서는 헛웃음만 나온다. 이회영가문이 나라가 망하자 독립운동을 위해서 재산을 팔아 만주로 가서 풍찬노숙을 했는데, 조선을 주무른 노론의 영수집안이 나라가 망했을 때 무엇을했는가? 그러고도 명문가라 말할 수 있는가? 명문가는 주어지는 것이아니라, 만드는것이다. 이것을 이회영집안과 이근택 집안을 비교해서 저자 선안나는 말하고 있다. 

  두번째 주제 '망해가는 나라의 부자들이 사는법'이라는 주제는 씁쓸함을 더해주었다. 조국 독립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안희제는 고문으로 순국했는데, 망국을 이용해서 부를 축적한 김갑순의 이야기는 너무도 씁쓸했다. 비단 이러한 씁쓸함은 이후의 주제들에서도 비슷하게 느껴졌다.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던 수 많은 독립투사의 후손들은 가난에 허덕이는데, 친일의 길을 갔던 친일파의 후손들은 떵떵거리며 잘살고 있다. '사필귀정'이라는 말을 우리는 후손들에게 말할 수 있을까? 악인이 승리하는 현실속에서 우리 자식들에게 정의를 위해서 살아라라고 말할 수 있있을까? 최근의 대선을 보면서 들었던 씁쓸함을 책을 읽으며 다시 느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만화영화에서는 악인이 패배하고 선인이 승리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인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얼마난 큰 노력과 희생이 필요한지를 알게되었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지를 우리는 느끼고 있다. 그러한 희생을 각오하고 정의를 실현하라고 자손들에게 말해도 될까?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서 눈덮힌 파촉령을 넘으면서 "우리 또다시 못난 조상이 되지 말자. 자손들에게는 이런 고생을 절대 물려주지 말자."라며 동지를 끌어안고 밤새 잠들지 않으려 동지를 깨우던 장준하선생의 말씀이 기억난다. 못난 조상이 정의가 패배하는 역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의를 실현하려는 조상도 온몸을 던져 못난 조상이 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우리사회가 악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것을 막았다. 오늘 우리가 정의가 승리하는 역사를 만들지 못한다면 우리는 또 못난 조상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플라톤의 대화편 - 개정판
플라톤 지음, 최명관 옮김 / 창 / 2008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철학자 소크라테스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자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말했다고 전해지는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이 사실은 그가 하지 않은 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의외로 적다. 일본의 법철학자 오다카 도모오가 '법철학'이라나는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한다."라고 쓴 것이 마치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한 것으로 와전되었다. 그래서, ,,고등학교에서 윤리 선생님을 비롯한 수 많은 선생님들이 소크라테스의 말이라며 '악법도 법이다.'라고 강조했다. 이것은 관성이되었다. 2004년 헌법재판소에서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며 독약을 먹었다."는 내용이 준법사례로 적절하지 않다고 언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도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들었을까?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을 집어들었다.

 

플라톤은 자신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죽기까지의 일련의 사실을 알 수 있는 내용들로 이 책을 구성했다. 그래서 '플라톤의 대화편'은 크게 5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첫번째 에우튀프론은 '경건에 대하여'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것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가 에우튀프론과 경건에 대해서 대화를 한 내용을 서술했다. 그러나, 첫번째 장에 에우튀프론을 배치한 것은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기 전에 소크라테스가 어떻게 그리스 청년들을 일깨워주었는지를 알 수 있도록 독자를 배려하기 위해서 배치한 글이다.

소크라테스는 에우튀프론에게 "자네 일로 알고 생각해 주게, 그런 전제 아래 자네가 약속한 대로 나를 잘 가르쳐 줄 수 있는지 말이야.(25)"라고 말하며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긴다. 그러나 대화의 주도권은 사실 소크라테스가 가지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치밀한 계산 아래 에우튀프론에게 질문을 하고 스스로 대답하도록 한다. 에우튀프론이 스스로 진실을 말하게 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우치게 했으며 이를 통해서 소크라테스의 의견에 동의하도록 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설득의 심리학을 알고 있었다. 타인의 생각을 바꾸게 하려면 진실을 가르쳐 주기 보다는 스스로 진실을 말하도록 해야한다. 학교 현장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나로서는 문답법으로 학생을 깨우치는 것이 얼마나 큰 내공이있어야하며, 얼마나 큰 인내가 있어야하는지 잘 알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내공이 느껴진다.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가장 유명한 부분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다. 일본에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번역했기에 아직도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고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일본이 서구의 문물을 받아들일 때 자신에게 알맞게 오역을 했다. 천황중심의 전체주의 국가 일본은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 양심을 지키기 위해서 국가에 저항할 수 있는 서구의 양심 있는 사상을 왜곡해서 들여왔다. 결국, '소크라테스의 변론''변명'이라 오역했다. 국가가 시키는 일을 거부하고, 국가와 당당히 맞서며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소크라테스의 행동과 말이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는 변명으로 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크라테스가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은 '변론'이라고 번역해야 타당하다.

소크라테스가 살고자 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 '크리톤'에서 친구 크리톤은 소크라테스를 살리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는 탈옥하자는 그의 제안을 거절한다. 만약 그가 살고자 했다면 유죄판결을 받고 나서 자신이 받을 죄값으로 "프로타네이온에서 향응을 받는 것 이상 어울리는 것이 없습니다."(79)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운자나, 올림피아의 우승자를 위한 잔치가 벌어지는 프로타이네온에서 향응을 베풀어 달라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많은 그리스인이 반대표를 던졌다. 소크라테스는 보통 사람들이 살고자 발버둥치는 것과는 달리 죽음과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 이를 통해서 아테네의 재판 결과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자신의 목숨을 걸고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악법도 법이다.'라며 법에 순응하는자가 아니라, 법을 뛰어 넘은 진리를 보여주기 위해서 죽음과 맞서려한 초인이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는 왜? 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 ? 그는 죽음과 맞서려했을까? 그 이유를 나는 세가지로 정리해보았다.

첫째,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장자'라는 책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시집을 가기 싫어했던 처자가 시집을 가고 나서는 너무도 좋아서 친정으로 돌아가기를 싫어한다는 내용의 이야기이다. 장자는 이에 빗대어 우리의 죽음도 이러하지 않겠는가?’라며 질문을 던진다. 장자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서양의 철학자가 바로 소크라테스이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지혜가 없으면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또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도 죽음에 대하여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죽음은 사람에게 가장 큰 선일지도 모르는데, 사람들은 죽음이 가장 큰 해악임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무서워합니다. 알지 못하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가장 비난받을 만한 무지가 아니겠습니까?"(65)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기쁘게 죽음을 맞이한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파이돈'에서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는 죽음으로서 여러 위인들과 만나서 철학적 대화를 나눌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가보지 않았기에 두려워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서 죽음이 오히려 행복한 일일 수도 있음을 설파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철학적 추론을 통해서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오히려 기쁘게 죽음에 다가갔다.

둘째, 완벽한 철학적 사유를 하기 위해서 죽음을 선택했다. 소크라테스는 이원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 그는 정신과 육체를 하나로 보지 않고 영혼과 육체를 분리될 수 있는 존재로 보았다.

 

"영혼은 육체를 떠나될 수 있는 대로 육체와 상관하지 않을 때, 육체적 감각이나 욕망을 전혀 갖지 않고 참으로 존재하고자 추구할 때 가장 잘 사유하게 되는 거야."-파이돈, 129

 

영혼이 육체를 떠나 육체와 상관하지 않을 때 가장 잘 사유할 수 있다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영혼과 육체가 분리될 수 있으며,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될 때에야 비로소 가장 잘 사유할 수 있다는 극단적 사고에 이르게 된다. 소크라테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육체를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한다.

 

"모든 쾌락과 고통은 못과도 같아서, 영혼을 육체에다 넣어 결부시켜 마침내 육체와 닮게 하여 육체가 옳다고 하는 것을 같이 하기에 이르도록 하기 때문이지. 그리고는 육체와 어울려 똑같은 습성을 가지게 되어 세상을 하직할 때에 절대로 깨끗해지는 법이 없고 하데스에 깨끗이 갈 수 없으며 언제나 육체에 물들어 있기 때문이지."- 파이돈, 162

 

영혼이 육체와 어울려 똑같은 습성을 가지게 되면 절대로 깨끗해지는 법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소크라테스는 육체를 더러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반면, 영혼은 깨끗한 것이고, 육체와 어울려 똑같은 습성을 가지지 않도록 조심해야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눈과 귀와 같은 신체 감각을 통해서 얻는 정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눈이나 귀나 아니 온 신체는 영혼과 관계하여 영혼이 진리와 지혜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고 보고, 가능한 한 이런 것과 관계를 끊고 이런 것에서 벗어난 사람이야말로 참 존재의 인식에 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파이돈, 130

 

신체가 진리와 지혜를 얻는 것을 방해한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에 동의할 수는 없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라틴어 아식스(ASICS)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현대 뇌과학을 통해서 밝혀진 사실로만 보더라도 정신과 육체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존재이다. , 신체의 특정 부분을 사용하지 않으면, 그 부분을 담당하는 뇌영역이 퇴화한다. 반면 새로운 운동을 배우면 뇌에서 운동을 담당하는 영역이 활성화된다.

영혼과 육체는 분리할 수 없으며,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임에도 소크라테스는 이원론적 사고관에 빠져 영혼은 고귀한 것이고 육체는 껍데기에 불과한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육체라는 거추장스러운 껍데기를 벗어던지고 보다 자유로운 철학을 하기 위해서 그는 죽음을 선택했다.

셋째, 불의에 맞서는 투사로서 당당한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다. 철학자라는 단어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유약한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강력한 권력을 가진 절대군주에 비하면 철학자는 약한자 일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힘이 없다고, 그의 정신 세계마져 유약하다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판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시민으로서 전쟁터에 나가서 싸운 경험이 있는 전사이기도 했다. 그는 강인한 체력의 소유자였으며, 위대한 철학자였다. 그는 자신을 고발한 자와 자신에게 유죄를 선고한 배심원들에게 아킬레우스를 예로들며 영웅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지키며 배심원들과 자신을 고발한 자에게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심지어는 "저는 몇번 죽음을 당한다해도 다른 일은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주십시오."(67)라며 당신들이 나의 목숨을 앗아간다고 협박한다 하더라도 자신은 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태도를 보인다.

 

"저는 투옥이나 사형을 두려워하여 옳지 않은 일을 제안하고 있는 여러분 편이 되느니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법률과 정의의 편을 들어야 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소크라테스의 변론, 71

"여러분, 어려운 것은 죽음을 면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비열함을 면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렵습니다. 비열함을 죽음보다 발이 빠르니까요."-소크라테스의 변론, 83

 

훌륭한 전사는 전쟁터에서 적에게 목숨을 구걸하지 않듯이, 옳은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고발하고, 유죄를 선고한 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목숨을 구걸할 의사가 없었다. 오히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부러질 지언정 굽히지 않는 당당함으로 그들과 대결했다. 죽음 앞에서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오히려 죽음이 나를 육체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함으로써 더 높은 차원의 철학을 할 수 있는 기쁨을 누리려 했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한가지 의문을 해결할 수 있다. 오다카 도모오는 '법철학'이라나는 책에서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든 것은 실정법을 존중했기 때문이며, '악법도 법'이므로 이를 지켜야한다."라고 적었을까? 1930년대 일본은 전체주의 광풍이 휩쓸고 있을 때였다. 국가가 결정하며 질문을 하지 않고 따라야했다. 집단주의 문화를 가지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소크라테스는 부담스러운 존재였다. 죽음 조차도 나의 신념을 꺽을 수 없다는 당당한 모습을 보인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면 전체주의 국가 일본은 존재할 수 없다. 그러하기에 소크라테스의 본뜻을 무시하고 "악법도 법이다."라는 논리를 만들어 냈으며, '소크라테스의 변론''소크라테스의 변명'으로 오역했다. 그들에게는 국가의 명령에 저항한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변명'으로 들려야만했다.

그리고 이 논리를 받아들인 독재자들은 교과서에 이 논리를 그대로 옮기며 자신들이 만든 악법을 충실히 따르라고 국민들에게 세뇌했다. 특히 도덕 교과서에서 윤리 교과서에서 반복해서 가르쳤다. 교과서에서 '악법도 법이다.'라는 내용이 삭제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독재자들의 논리를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있는 불쌍한 노예들이 있다. 소크라테스가 저승에서 이 사실을 안다면 땅을 치며 통탄할 것이다.

크리톤이 감옥에서 편히 잠자고 있는 소크라테스를 보고 깜짝 놀란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초연했다. '파이돈'편에서 당당히 죽음을 맞이한 소크라테스는 편히 저세상으로 간다. 그런데, 갑자기 '향연'이 이어진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는 상관 없는 에로스에 대해서 아가콘의 집에서 연설을 하고 토론을 했다. 매우 낯설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상관없는 '향연'을 맨마지막에 배치한 이유는 무엇일까? '에우튀프론'이 재판을 받으러 가는 도중에 에우튀프론을 만나 경건에 대해서 대화하면서 소크라테스가 어떠한 방식으로 아테네의 젊은이들을 깨우쳤는지를 보여주었고,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통해서 소크라테스가 사형을 받는 것이 부당함이 서술되었다며, '크리톤'을 통해서 탈옥을 거부하며 당당히 죽음을 맞이할 준비하고 있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파이돈'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과 그의 마지막 모습을 독자에게 전해주었다. 그런데, 갑자기 '향연'이 펼쳐진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플라톤이 '향연'을 맨 마지막에 배치함으로써, 소크라테스가 철학적으로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가를 돋보이기 위함으로 보인다. 특히 알키비아데스가 소크라테스를 얼마나 찬양했던가! 아마도 이는 플라톤이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를 찬양하는 내용이 보태어졌을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당당히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죽었으나 그는 영원히 인류의 가슴속에 살아남았다. 플라톤의 가슴 속에서 살아남아 아리스토텔레스로 그 생명력은 이어졌다. 그리고 그의 철학은 오늘날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있다. 죽더라도 어떻게 죽음을 맞아하는가에 따라서 그는 우리 가슴속에서 영원히 살아남을 수도 있고, 잠시 타올랐다 꺼지는 촛불처럼 사라지는 존재일 수도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을 고발한 자들과 유죄를 선고한 배심원들에게 당당히 맞섬으로써, 죽음 앞에서도 초연한 영웅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해서 영원히 살아 남을 수 있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논리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소크라테스를 지옥의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는 행동이며, 우리 스스로를 독재자의 노예로 만드는 어리석은 일이다. 스스로 노예의 길을 선택하는 자보다 어리석은 자는 없다. 나는 말하고 싶다.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 그 누구도 당신을 노예로 삼을 수 없도록, 지혜의 횃불을 들고 깨어있으라!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ini74 2022-07-08 17: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강나루님 *^^*

강나루 2022-07-09 12:21   좋아요 1 | URL
mini74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이하라 2022-07-08 18: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강나루님^^
기분 좋은 기쁜 시간 되세요.^^

강나루 2022-07-09 12:20   좋아요 2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이하라 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7-10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크라테스의 많은 사상이 제자 플라톤에 의해 정리되었기에, 소크라테스의 사상이 곧 플라톤의 사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사실 이들의 사상을 구별하기 쉽지 않은 듯 합니다. 그러면서도 미세하나마 작은 차이도 있을 듯 합니다. 강나루님의 글을 읽으며 소크라테스의 지행합일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아는 것과 행위를 하나로 보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은 추상적인 수학적 질서가 지배하는 이데아의 세계에서 구현가능하다면, 소크라테스는 이를 지향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죽음을 향한 그의 여정이 그러했듯이요. 반면, 플라톤 <국가>의 유명한 ‘동굴의 비유‘는 동굴 밖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다시 동굴로 돌아오는 죄수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이러한 방향성에서 플라톤과 소크라테스의 작은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7-10 10:24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에 대한 이해가 깊네요^^ 많이 배움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2-07-10 10:36   좋아요 1 | URL
에고 아닙니다... 정확하지 않은 개인의 생각입니다. 강나루님의 페이퍼를 읽으면서 잠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어 오히려, 제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러블리땡 2022-07-09 23: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려요 ^^

강나루 2022-07-10 10:24   좋아요 0 | URL
러블리땡님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7-10 09: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휴일 보내세요!

강나루 2022-07-10 10:25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7-10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강나루 2022-07-11 05:39   좋아요 0 | URL
thkang1001님 감사합니다.
즐거운 한주 보내세요.

bookholic 2022-07-10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주말은 잘 보내셨는지요~~~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늘 좋은 글과 좋은 책 추천 고맙습니다.
더운 여름, 마음만은 늘 뽀송뽀송 시원하시길...

강나루 2022-07-11 05:40   좋아요 0 | URL
bookholic님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scott 2022-07-11 0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 달의 당선 축하 드립니다
자주 리뷰 올려 주세요 ^ㅅ^

강나루 2022-07-11 05:42   좋아요 1 | URL
scott님 감사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행복하게 보내세요.
 
독서치료의 첫걸음 아동청소년문학도서관 3
명창순 지음 / 푸른책들 / 200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독서치료라니?? 이것이 무슨 뜻인가? 심리치료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독서치료라는 말을 잘 들어보지 못했다. 독서를 통해서 아픈 마음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에 책을 펼쳐들었다. 책을 펼치고 차례를 보았다. 독서치료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7가지 사례를 중심으로 독서치료가 무엇인지 서술하고 있었다. 친절한 설명과 실전사례가 흥미로워보였다. 

  이책에 소개된 7가지 사례들은 독서치료사가 책을 통해서 학생들의 마음을 열고 소통하는 심리상담의 한 방법이었다. 책 읽기를 싫어하던 학생들이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책이라며 책을 끌어안는 모습에서 책의 힘을 본다. 그리고 그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보았다. 상담 사례로 제시된 아이들 중에는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이 많았다. 그 아이들은 부모가 휘두른 칼날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그 상처는 가슴속 깊히 박혀서 한 영혼을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 이아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해준 것은 책이었다. 

  독서치료사의 안내를 받아 함께 읽은 책에서 자신과 비슷한 아이를 만난다. 혹은 자신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은 아이와 대면한다. 그리고 그 아이를 위로하며 자신의 상처를 치유한다. 그러한 아이들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으며 '산타클로스는 부자집 아이만 좋아한다.'라는 구절에 깊은 공감을 했다. 아버지는 산타클로스는 없다는 아버지의 진실을 말해주었다. 가난하면 산타클로스가 찾아올 가능성이 없는 현실을 아버지는 너무 일찍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선물을 사기 위해서 구두통을 메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제제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랑은 화려한 꽃이 아니라, 강물에 뜬 낙엽이다.'라는 제제의 말은 화려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물에 띄워 보내야만하는 가난한 현실 속 사랑을 직면하게 해주었다.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를 읽으며 눈물 흘렸던 어린 시절의 나의 모습을 떠올리며 그것이 독서치료의 과정이었음을 깨달았다. 상처받은 나의 영혼이 거친 황무지에 내동댕이 쳐지지 않은 것은 나에게 책이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 신분제를 학생들에게 설명하면서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서얼 차별'을 설명하는 것이었다. 양반의 수가 급증하여 양반의 특권을 누릴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서얼을 차별을 했다. 즐긴 사람은 아버지인데, 아무죄 없는 태어난 아들이 그 댓가를 받아야만하는 잘못된 시스템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켰다. 

  이 책에는 부모의 잘못으로 상쳐받아야하는 많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다. 그중에서는 "붕어빵 아저씨 결석하다."라는 책에 소개된 "부럽다 리모콘"이라는 시가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숙제를 하다 말고 

 아빠를 쳐다본다. 


  -니네 아빠 손

  얼마나 따뜻한지 모르지?


  -너, 아빠 품에서 

  잠든 적 있어?"-136쪽


 이 시를 쓴이는 얼마나 아빠의 손을, 아빠의 품을 그리워했을까? 그리고 이 글을 읽은 아이의 글은 나의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리모콘을 확 뿌셔버리지, 짜증난다. 너도 나처럼 엄마 아빠의 사랑을 받고 싶구나."-137쪽


  아이는 태어나면서 사랑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그러한 권리를 모두 누리는 것은 아니다. 무책임한 부모의 방임 때문에, 잘못된 교육관에 의해서, 혹은 경제적 이유로 상처받는다. 나의 영혼도 상처를 받았다. 명절날이 되면 친척이 오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소리를 지르며 명절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가 왜? 술을 마시면 큰소리를 치고 즐거운 명절을 공포스러운 날로 만드는지 몰랐다. 상다리가 부러지고 온 동네에 구경꺼리가 되었는데도 아버지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어머니에게 자신의 행동을 자랑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아버지에게 그러면 안된다며 나의 목소리를 내어보았지만, 공허한 메아리만 들렸다. 

  지금은 저세상으로 가버린 아버지. 그렇게 좋아하던 술도 간경화 말기가 되어서야 끊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이 되어서야 아버지께서 간경화 말기라는 사실을 알았다. 술을 마시지 못하게 말리는데도 가족의 성화를 뿌리치고 몰레 술을 마시던 아버지는 자신이 간경화에 걸렸다는 사실을 가족에게 말하기에는 면목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친척들은 돈을 아끼려고 병원에 늦게 모시고 갔다는 비난을 했다. 지금도 친척이 모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의 모습에서 아버지와 친척들에게서 받은 상처가 아직도 치유되지 못했음을 발견한다.

  보통의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이야기가 종료된다. 조용히 사색하며 나의 생각을 정리하면 책읽기는 끝난다. 그러나, '독서치료의 첫걸음'이라는 책은 마지막 책장을 덮었지만 이야기가 종료되지 않았다.책속에 사례로 제시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상처받은 영혼을 발견했다. 나의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서 새로운 책을 통해서 치유로서의 책읽기를 해야하는 과제를 만났다. 책이 있기에, 책읽기를 할 수 있었기에 나의 영혼은 치유될 수 있다. 그것을 믿고 치유를 위한 책읽기를 오늘도 계속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6-10 21: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2-06-12 20:19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보내세요.^^

이하라 2022-06-10 21: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축하드립니다. ^^
기쁜 소식과 함께 행복한 주말되세요~~

강나루 2022-06-12 20:19   좋아요 1 | URL
이하라님 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6-11 08: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보내세요!

강나루 2022-06-12 20:19   좋아요 0 | URL
thang1001님 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보내세요.^^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 대한제국 외교관에서 러시아 혁명군 장교까지, 잊혀진 영웅 이위종 열사를 찾아서
이승우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절판


  러시아어와 영어, 프랑스어를 할 수 있는 세계 시민, 이위종이 있었다. 그가 원했다면, 그는 자신의 재능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편안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다. 독립운동이라는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서 활약한 3인의 특사 중에는 25세의 이위종이 있었다.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와 영어, 러시아어로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세계 시민들에게 알렸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조국을 위해서 사용했다.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거기까지였다. 이위종이 불현듯, 러시아로 가는 바람에 특사들의 입이 사라졌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이위종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져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승우라는 재야사학자는 4년여 동안의 끈질긴 탐구를 통해서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을 다시 복원해냈다.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이라는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알게 된 그의 삶을 살펴보자. 


 우선, 이위종이 고종의 특사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러시아로 돌아간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아내 엘리자베타의 와병 소식 때문이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 아내를 보살펴야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왜? 이때 아팟을까?라는 원망도 있었지만, 어쩌랴! 가장 소중한 아내인 것을..... 

  이위종은 다시 헤이그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상설과 함께 미국으로 가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의 거중조정을 근거로 미국에 을사늑약의 부당성을 호소하려했다. 거중조정! 타국과 조선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면 미국이 중재해주기로 약속했던 이 조항을 미국은 사뿐히 즈려밟고 갔다. 어떤 학자들은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것은 "무모한 시도"라며 실패한 투쟁으로 보려는 자가 많다. 그러나 "적어도 헤이그 평화회의에 참가했던 국가들은 대한제국을 전과 다른 시각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실패한 투쟁으로 볼 수 많은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쳐서 계란이 깨진다할지라도, 적어도 바위는 계란 자국으로 올룩진다. 체면을 구긴 바위에게 계란의 투쟁은 의미없는 투쟁일 수 없다. '논어'에는 공자를 '안되는줄 알면서도 하려는 사람'이라 세상 사람들은 평했다고 쓰여있다. 안되는줄 알면서도 그 길이 올바른 길이라면 그길로 나아가야한다. 이위종은 그러한 사람이다. 아니, 우리의 독립운동가들 모두가 그러한 사람들이다. 

  이 책에는 이위종의 삶 뿐만 아니라, 그 시대에 있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이위종의 삶과 함께 녹아들어 있다. 그중에서 나의 가슴을 아프게하는 두가지 이야기가 있다. 

  첫째, 1908년 국내 진공작전의 좌영장을 맡은 엄인섭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는 안중근 의사와 함게 손가락을 자르며 조국독립을 위해서 헌신하기로 맹세했던 사람이다. 그런데, 1911년 이후 밀정으로 활약하며 수많은 동지의 뒤통수에 비수를 꽃았다. 

  두번째는 지금의 명동성당인 종현성당의 토지분쟁 소송을 해결하기 위해서 600명의 신민회 회원들이 고통을 받아야했다는 사실이다. 안명근의 고해성사를 통해서 빌렘신부는 안명근이 독립운동 자금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를 서울에 있는 뮈텔 대주교에게 알렸다. 뮈텔 대주교는 아카시 모토지로에게 고발하였다. 아카시 모토지로는 105인 사건을 일으켰다. 600명의 신민회 회원이 일제에게 잡혀와서 105명이 구속되었다. 이중에는 백범 김구도 있었다. 결국, 뮈텔 대주교는 종현 성당 토지 분쟁 소송을 해결할 수 있었다. 1911년 1월 13일 영하 21도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카시 모토지로는 뮈텔을 찾아왔다. 아카시 모토지로는 "자신의 이름과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장군의 이름으로 다시 감사하려 왔다." 뮈텔 대주교의 일기에 적혀있는 친일의 기록을 읽으며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주화 운동의 성지인 명동성당에 이러한 친일의 역사가 새겨져있다는 사실이 가슴아팠다. 

  '세상사를 속속들이 알면 우리 마음은 언제나 쓸쓸해진다.'라는 노암 촘스키의 말이 생각난다. 가장 믿어 의심치 않았던 독립운동의 영웅과 종교적 스승들에게 배신의 칼날을 받고 쓰러져가야했던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영혼은 얼마나 슬펐을까?

 헤이그 만국 평화 회의 특사 활동 이후 이위종은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내용이다.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그려져있다. 

  이위종의 삶은 그의 아버지 이범진의 행동으로 무거운 짊을 질머져야했다. 대한제국의 멸망과 1911년 이범진의 자결은 이위종에게 조국 독립을 위해서 인생을 바치라는 무언의 명령이었다. 을사늑약과 병합조약의 울분을 참지 못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수많은 애국지사를 일부 사람들은 의미 없는 죽음이라 폄하하기도한다. 과연, 그분들의 죽음이 헛된 것일까? 물론, 살아서 한명의 친일파, 한명의 일제의 앞잡이를 죽인다면 더 뜻 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인들은 그의 자결로 모든 불명예가 자신들에게 돌아왔다고 생각했다."라는 서울 주재 러시아 총영사 소모프의 보고서에서 알 수 있듯이 결코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 그리고 이범진의 죽음은 이위종의 삶을 독립 운동이라는 길로 빠져들게했다. 

  이위종은 블라디미르 사관학교를 졸업하여 러시아 제국의 군인이 된다. 러시아를 움직여 조국을 되찾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의 바램과는 달리, 그는 제1차 세계 대전의 동부전선에 투입된다. 1차 세계대전은 우리 역사와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 조선인 이위종이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동부전선에 한국인이 있었다는 사실은 영화를 통해서 잘알려져 있지만, 1차 세계대전의 동부전선에 이위종이 있었다는 사실은 처음 알게된 놀라운 사실이다. 우리 역사가 얼마나 파란만장한지를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이위종은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자 붉은 군대의 장교가 된다. 이때 시베리아의 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그러나, 연해주의 의병들을 하나로 규합하려는 계획을 추진하다가 행방불명된다. 그래서 이위종의 죽음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졌다. 아카시 모토지로의 덧에 걸린 이위종은 연해주의 고려인들을 하나로 규합하여 조국 광복의 선봉장이 될 찰라에 생을 마감한다. 너무도 가슴이 아파왔다. 그러나,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진 이 부분을 다르게 해석해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군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세력을 형성한다는 말이 된다. 마오쩌둥이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라고 했지 않은가! 혹시, 시베리아의 별이라며 명성이 자자한 이위종이 연해주의 의병을 하나로 모은 군대의 최고 지도자가 된다면 소련의 입장에서도 경계 대상이었을 수도있다. 이위종 실종의 진실을 밝히려면, 일제뿐만 아니라 소련의 자료도 면밀히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어디까지 나의 상상력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일제의 특무대가 이위종을 암살했을 가능성이 가장 큰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의 저자 비숍은 연해주 지역에 살고 있던 고려인들을 묘사하면서 "이곳의 조선인이 부유하게 된 것은 조선에서 처럼 민중의 피를 빠는 '면허 받은 흡혈귀' 같은 양반이나 관리들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라고 지적했다. 게으르고 지저분한 조선인이 '면허 받은 흡혈귀'가 없는 세상에서는 가장 근면하고 부유한 삶을 살아갔다. 거꾸로 말하자면, '면허 받은 흡혈귀'들에 의해서 조선의 발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면허 받은 흡혈귀' 중에서 상당수는 나라를 빼앗기자 일제에 빌붙어 동포의 피를 빨기 시작했다. 일제와 일제에 빌붙은 '면허 받은 흡혈귀'에 맞서서 조국 광복을 위해서 온 몸을 불사른 이위종과 같은 별들이 있었다. 광복이 된 지금, 우리는 조국을 팔아버린 '면허 받은 흡혈귀'들이 다시 활개치도록 방조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고 싶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면허 받은 흡혈귀'를 감시하고, 조국을 위한 별이 되려할 때 시베리아의 별, 이위종 선생은 편히 눈감을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람을 얻는 지혜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을 얻는 지혜'는 무엇일까? 좋은 인간관계를 위한 지혜를 얻고 싶은 마음에 책을 꺼내들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스페인을 대표하는 철학자이자, 예수회 신부란다. 1601년 태어난 그의 저서가 400여년이 지난 지금에도 많은 사람들에게서 읽히고 있다고하니, 한번 읽어 볼만한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그럼, 한번 책을 살펴보자.

 

 

1. 유가보다는 도가에 가까운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람을 얻는 지혜'를 읽다보면 유가와 도가를 비롯해서 동양의 사상가들이 전했던 인생의 지혜와 흡사한 것들이 많았다. 동양과 서양의 지혜가 서로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기도했다. 그러면서도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동양의 어느 사상에 가장 가까운 생각을 하고 있을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만약 당신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하자.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호의를 베풀어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하라!'(17)고 말한다. 당신은 나에게 악의를 가진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것인가? 동양의 철학자 공자와 노자가 이에 대해서 서로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우선, 노자의 말을 살펴보자. 도덕경63恩始章(은시장)하는 것이 없음을 실천하고, 일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이 없음을 맛보고, 작은 것을 크게 여기며 많은 것은 적게 여기니,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라고 하였다. '원수를 덕으로 갚는다.'는 보원이덕(報怨以德)이라는 말이 놀랍도록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과 일치한다.

반면, 공자는 논어헌문편에서 어떤 사람이 "은덕으로 원수에 보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그렇게 한다면 무엇으로 은덕에 보답하겠느냐? 정직함(곧음)으로 원수에 보답하고 은덕으로 은덕에 보답하는 것이다." (或曰: "以德報怨, 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라고 말하였다. 나는 공자의 말이 더 가슴에 와 닿는다. 싸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에게 호의를 베품면, 그들은 오히려 그 사람을 이용한다. '어금니 아빠' 사건과 '가평 계곡 살인 사건'의 경우 타인의 동정과 호의를 범죄에 이용한 대표적 사건이다.

이밖에도 도덕경에서 보았던 글귀와 유사한 문장이 이 책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양보는 뜻을 이루는 최고의 위장술이다.(22)""먼저 베풀고 보상은 나중에 받아라."(27)의 표현도 도덕경의 표현과 유사하다. 도덕경74장에 "남들로부터 존경 받으려거든 먼저 그들을 존중하라"는 문장이 있다. 물건을 움켜쥐려면 먼저 손을 펴야한다. 상대를 쓰러뜨리려면 먼저 상대를 일으켜세워야한다. 상대에게 얻으려면 먼저 상대에게 베풀어야한다. 노자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생각은 놀랍도록 맞닿아있다. "나중에 베풀면 대가가 되지만 먼저 베풀면 호의가 된다."라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지혜는 약한듯 보이지만, 강함을 숨기고 있는 노자 철학을 보는듯하다.

오랫 동안 예수회 신부로 활동한 발타자르 그라시안이기에 현실에서 한걸음 물러나서 세상을 바라본 지혜가 노자의 철학과 통한 비결이 아닐까?

 

2. 한비자의 지혜를 품은 발타자르 그라시안

도덕경에 대해서 최초로 주석을 달았던 사람이 바로 한비자이다. 그래서인지,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은 한비자의 말과 유사한 점이 있다.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마라."(20)는 표현도 한비자가 군주가 신하를 대할 때 지켜야할 유의사항 중 하나로 제시했다.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보이지 말아야한다. 신하가 군주의 마음을 알게 되면 이를 이용하여 아첨하며 군주를 이용할 수 있다. 그러하기에 군주는 신하에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지 말고, 신하의 말을 경청하며 그들의 지혜를 이용해야한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식과 용기를 절대 전부 드러내지 않는다."(51)고 말했다. 그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 할 때, 타인은 우리를 더욱 존경하게 한다. 한비자가 군주에게 했던 당부를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우리에게 하고 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이러한 말도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진실의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함으로써 상대방이 거부감없이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128) 타인에게 직언을 하기가 얼마나 힘든가! 한비자는 '세난편'에서 진실로 군주에게 간하기가 어려운 현실을 토로했다. 한비자도 진시황제와 대화를 나눈 이후에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군주에게 말을 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나누는 모험이다. 그러하기에 한비자에는 군주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서술되어 있고, 지혜롭게 자신의 의견을 군주에게 제시한 사례가 적혀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날카로움은 유지하되 부드럽게 전달"하라는 대화의 기술을 한비자도 공감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 원칙을 아는 것과 이를 행하는 것은 다른 차원인가보다. 자동차의 운행원리를 아는 것과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이 맞닿아있으면서도 같은 것은 아니듯이 말이다.

당신이 옳다.라는 책에서는 상대를 설득시킬때,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공감을 한 후에 자신의 말을 하라한다. 이것이 '날카로움'을 유지하면서 '부드럽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하는 지혜가 아닐까?

 

3. 발타자르 그라시안! 동의할 수 없어요.

'신독'이라는 표현이 있다. 중학교 도덕시간에 혼자 방안에 있으면서도 사거리에 있는 것 처럼 조심히 행동하라는 교과서 내용을 배웠다. 마치 살얼음을 걷듯이 조심조심 살아가라는 '신독'을 당연시 배웠는데, 국어선생님은 그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린다고 말씀하셨다. 발타자르 그라시안도 비슷한 말을 했다. "혼자 있을 때에도 몸가짐을 조심하라."(65) 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을 읽으며, 이렇게까지 살아야할까?라는 생각을 했다. 중학교 시절, 국어선생님의 표현대로 이렇게 살면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까 걱정이된다. 이렇게 동의할 수 없는 내용의 주장을 발타자르 그라시안이 하는 경우도 많았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해라"(152), "언제나 최선의 결정을 내려라(192)"는 표현은 좋은 표현이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는지,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비결은 무엇인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다. 누구인들 본질를 파악하고 싶지 않을까? 누구인들 최선의 결정을 내리려하지 않을까? 자신의 삶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마음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누구나 원하는 목표를 제시했지만,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하기에 공허한 메아리로 들린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표현중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는 표현도 있다. "운의 흐름을 읽어라"(161)는 표현은 요행수를 추구하는 듯한 표현이라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이 표현은 거부감이 덜했다. 그러나, "지는 해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마라"라는 명제를 제시한 다음, "미인은 늙어서 추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적절한 시기에 거울을 깨뜨린다."라는 설명을 한 것은 너무도 황당했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은 나이듦이 곧 추해지는 것이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 것일까? 거울을 깨뜨리면 더 이상 '추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철학자 강신주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대중강연에서 '나이듦은 익어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나이듦을 거부하고 주름살을 추함으로 인식하지 않고, 인생의 지혜가 익어감으로 파악한 강신주와 나이듦을 추함으로 인식하고 이를 거부하려 거울을 깨뜨리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어리석음이 너무도 대비를 이룬다. 우리는 곱게 나이드는 지혜를 얻어야한다. 인생의 무상함을 거부하며 영생을 누리려하다가 오히려 일찍 죽음을 맞이한 시황제를 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지혜를 얻어야할 것이다.

이밖에도 "백번 성공하는 것보다 한번도 실패하지 않는 것이 더 낫다."(138), " 실패의 책임을 다른 이에게 넘기는 것도 능력이다."(230)는 표현도 절대 공감할 수 없다. 실패가 없이 어찌 성공하길 바라겠는가! 아이가 넘어지지 않고 걸어다닐 수 있는가!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비열함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다. 탁월한 철학자의 말이라도 버려야할 것과 취해야할 것이 있다.

 

4.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눈으로 현실을 바라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 중에는 우리의 현실을 바라보는 지혜가 담긴말도 많다. 이를 살펴보자.

첫째, "신을 신성한 존재로 만드는 사람은 신상을 장식하는 사람이 아니라, 신상을 숭배하는 사람이다."(15)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말이 옳다면, 인간에 대한 권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에게 권위가 있는 것을 그를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리의 대표로 인정할 수 없는 존재에게 풍자를 던진다면 그는 더 이상 우리에게 권위를 가질 수없다. 그가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면, 우리는 더 이상 그를 존중하며 그의 권위를 존중할 필요가 없다.

둘째,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려라"(110) 한국에서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을 융통성이 없다고 비난한다. 가장 부패한 후보가 당선되는 초유의 사태도 종종 일어 난다. 우리 사회의 탐욕이 얼마나 흘러넘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결과에 많은 사람들이 망연자실한다. 이러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자신의 인격대로 행동하기 때문"에 그들과 어울려야한다. 근묵자흑이라했던가! 세상이 혼탁할 수록 원칙을 지키는 사람과 가까이 지내자!

셋째, "사악한 고집쟁이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다."(130) 사악한자가 더 권세를 누리고, 세상이 사악한자에 빌붙어 탐욕을 채우려하고 있다. 겉으로는 고고한척하면서도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투표하며 자신의 탐욕을 대리충족시키고 있다. 사악한 고집쟁이에게 진실을 말하려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탐욕을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탐욕을 정당화하며 당당히 외치기까지 했다. 이제는 사악한 고집쟁이를 피하고 싶다.

넷째, "부당한 상황에서도 화를 낼줄 모르면 무능한 사람이되고 만다."(208) 불의를 보고도 분노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많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며 조금만 참으면 편한데 왜? 오지랖 넓게 나서냐고 말한다. 정의로운 사람이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라고 비난을 받는 현실을 바라보며 탄식이 나온다. 우리가 부당함을 당하면서도 이를 참고 편히 살아갈 수록, 그들은 우리를 개, 돼지로 취급한다.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다. 때로는 진정한 분노가 덕()이다.

 

 

책은 거울이다. 자신의 고민을 가지고 책을 읽으며, 책속에 고민이 떠오르고 해답도 떠오른다. 요즘처럼 답답한 시기가 또 있을까? "자기 혼자만 정상적인 사람이 되기보다는 온 세상 사람들과 함께 미치는 것이 낫다."(112)는 발타자르 그라시안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기 때문에 나는 안되는 줄 알면서도 되게하려 노력하는 공자처럼 오늘을 바꾸려 노력한다. 그럼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의 벽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끌어 안고 오늘도 하루를 살아가야하는 우리 소시민이기에 한권의 책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책속에서 우리의 답답함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엄청난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그러나, 책속에서는 우리의 답답함에 한줄기 위안은 발견할 수 있다. 긴한숨을 쉬며 오늘도 새로운 한페이지를 넘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22-05-07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07 21:3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행복한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22-05-07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드려요~^^

강나루 2022-05-07 21:3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thkang1001 2022-05-07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주말과 휴일 되시길 기원합니다!

강나루 2022-05-07 21:35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연휴 보내세요.

러블리땡 2022-05-08 09: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5-08 18:3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편안한밤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2-05-08 2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의 리뷰를 읽으며, 발타자르 그라시안에게서 마키아벨리적인 성향도 느끼게 됩니다. 한비자와 마키아벨리가 여러모로 비교되기에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예수회 신부출신인 그라시안에게서 바티칸의 금서로까지 여겨지는 마키아벨리의 면모가 느껴지는 것이 자못 흥미롭습니다.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

강나루 2022-05-10 05:00   좋아요 2 | URL
그렇네요
동양철학자와 비교하려 했는데 마키아벨리와 비교하니 비슷한점이 많네요

scott 2022-05-09 1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 축하합니다!
오월 행복한 일만 가득 ^ㅅ^

강나루 2022-05-10 04:5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thkang1001 2022-05-10 09: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나루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강나루 2022-05-10 10:19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