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경식 선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을 천천히 읽었다. 그의 저서 중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만났던 미술 작품과 작가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쓴 기행문이다. 여행 지역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등의 북부 지역이다. 서경식 선생이 유럽을 처음 여행한 것은 1983년이라고 한다. 1971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그의 두 형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그로 인하여 한국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가 1983년 뜻밖의 기회로 유럽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그의 두 분의 형님들도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석방이 되었다. 형들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형들과 편지를 썼는데 형들이 말한 미술 작품들을 홀로 유럽에서 직접 보고야 말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그의 심정을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유럽을 돌아보면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남긴 책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다. 그로부터 30 여 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가기도 하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내(책에서는 아내를 F로 지칭한다.)와 음식을 즐기고 그 여행을 이렇게 책을 남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넘 부러웠다. 물론 나는 관심은 있지만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물론 이탈리아 작가들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 뿐이라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을 붙인다는 것이 넘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만큼 나같이 단편적인 지식만 있는 독자들에겐 어려운 학술서보다 더 큰 지식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지리책을 볼 수도 없고, 정치, 경제 ,예술... 그리고 문학 작품을 얼마나 읽어야 알고 싶은 갈증을 다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를 뿐더러 특히 미술에 관한 한 더더욱 나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탈리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음... 시도조차도 안한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에겐 이 정도의 책이면 딱 적당하단 생각이 들었단 거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들이나 여행, 미술 전시회 등의 경험으로 이탈리아에 대해 극히 적은 부분을 알긴 하지만 어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다시 시작하는 듯한 한계에 부딪히게 되더라는... 어차피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단 걸 알기 때문에 딱 이 정도로 시작을 하는 것도 나에겐 뭔지 모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여러 미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면서 천천히 감상해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읽으면서 나름 유익한 시간을 가져 보았다. 특히나  이 책의 미덕이라면 너무 많은 문장으로 책을 모두 꽉 채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 이 부분이 특히 맘에 들어왔다. 글은 책의 오른쪽, 나머지 왼쪽 여백에는 관련 작가의 사진이나 작품, 장소, 사진 등을 실었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읽고 싶은 책들도 여럿 만나게 되어서 도서관 검색도 이용해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투자한 시간 대비 가성비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닐런지...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베니스 등의 대도시와 소도시들도 여러 군데 방문을 했었지만 '페라라'는 관광 상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아서인지, 그리고 내가 검색해 보아도 '페라라'만의 특별함, 독특함, 아름다움 등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는 아니기 때문에 조르조 바사니의 책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읽기 전까진 이 도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에서의 페라라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성벽 안에서>에서 묘사하는 페라라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조르조 바사니의 기억, 작품 속 페라라와 서경식 선생의 페라라를 서로 번갈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거리를 상상하게 되고 사진으로 보았던 에스텐세 성과 에스텐세 성벽에 붙어 있는 1943년 11월 15일의 페라라 학살 사건의 희생자 추모 명판, 그리고 유대인 묘지, 또 서경식 선생이 다녔던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그 거리 이름들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마치 내가 지금 거길 간다 해도 그 거릴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조르조 바사니의 <성벽 안에서> 중에서 '1943년 어느 날 밤'은 에스텐세 성의 추모 명판과 이어지는 스토리이다. 1943년 11월 15일, "트럭을 나누어 타고 베로나와 파도바에서 들이닥친 파시스트군은 반파시스트 지식인, 변호사, 유대인 등 열한 명을 사살하고, 시신을 에스텐세 성의 해자 근처에 방치하며 본보기로 삼았다(이탈리아 인문기행, 129쪽)." 또한 추모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43년 11월 15일 새벽, 시민 열한 명을 학살함에 따라, 전횡 체제가 나치 독일과의 공범 행위를 시작했다. 정치적 자유를 회복한 페라라는 정의와 신과 평화의 이념 아래, 이 비열한 범죄를 규탄한다.1945년11월15일(같은 책, 127쪽)." 이 사건을 알고 있고 조르조 바사니의 이 단편을 읽었다면 이 명판을 보고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관광객으로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총살이 있던 그 보도를 이용할 사람은 자신이 삼가면 좋을 행동을 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게 될까? 

      그는 마침내 여행 안내서에서 머리를 들 것인가. 들지 않을 것인가?" 

                                                 (<성벽 안에서>의 다섯 번째 이야기 '1943년 어느 날 밤' 중에서, 223쪽)

서경식 선생은 거기서 어떤 전율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이런 경험을 책으로 하고 있다니! 아. 진짜 너무 멋져서 말이 안 나온다~~~!




서경식 선생이 토리노에 간 이유는 당연히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모 레비, 그리고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대항했던 체사레 파베세,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의 레지스탕스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특히 프리모 레비의 묘지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했는데 하필 유대인의 안식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묘역의 문을 닫아버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철책 너머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그의 묘비만 눈에 담고 돌아왔다니 안타깝지만 이것도 여행자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 싶어 미소 지을 밖에... 역시 프리모 레비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책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급히" 책을 주문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것이 인간인가>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자전적 소설인 <가족어 사전> 두 권이다.


















미술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된 감상을 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 맘에 감동을 주는 그림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남겨야 한다면 두 작품이 떠오른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벅찬 감동이 일어 검색을 하게 만든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의 『제4계급』, 그리고 '위대한'이란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미켈란젤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조각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이다. 『제4계급』은 교회(제1계급), 귀족(제2계급), 부르주아(제3계급)에게 학대 당해 왔던 제 4계급인 노동자들의 각성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중앙에 남성 두 명과 아기를 안은 여성 한 명이 힘차게 걸어 나가고 있고 그 뒤를 이어 결의에 찬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노동자들이 이들을 따라 걷는 모습이 가로로 긴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그 힘차고 희망에 가득한 그 분위기.... 그 분위기가 마치 그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으리란 것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어서 프랑스 혁명의 시민 봉기를 그림으로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았을 때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및 유럽 전역의 진보파와 사회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작품이기도 하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1900년」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로도 차용이 된 작품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미술 작품들과 천정화는 사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관광객에 떠밀려 또는 그 넓고 광대한 박물관을 틈 없이 채운 회화 작품들에 질려서 찬찬히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까마득히 높은 천정에 그려진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본다는 것도 불가능했으므로 내가 그 작품들을 감상했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아, 그리고 그곳 바티칸 성당에서 보았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에타」상像. 너무도 아름답지. 유리 안에 갇혀 있어 안타깝기도 했고. 위대한 작품, 위대한 작가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 내가 미켈란젤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사실이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론다니니의 피에타 」像은 그야말로 '미완성의 완성'을 보여주는 극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상계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미켈란젤로가 89년의 생애의 고투 끝에 만든 마지막 미완성 작품"(305쪽)이며 "미완"이라고 썼지만 "완성"을 뛰어넘어버린 !  이 미완의 피에타로 남긴, 탈진해버린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을 두고 일본의 역사 학자 하니 고로는 "누구라도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인상'을 받는다"(309쪽)면서 자신만의 식견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보기를 독려한다. 피에타 상은 대부분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지만(앉은 채로) 이 조각상은 어머니가 뒤에서 아이를 감싸 안아 올리듯 서 있다. 무덤 구멍으로부터 죽은 예수님의 모습을 들어 올려 세운 모습이 마치 지금 여기 이 지상을 떠나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도로 마른 예수님의 몸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감동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혹 이 책을 만든 반비 편집자들도 너무 감동 먹어서 그런걸까. 이 작품이 296, 304 두 쪽에 똑같이 실려 있다.^^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전시관에 있다는데(특히 이 작품 하나만 전시관 한쪽에 전시가 되어 있어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일지 짐잠이 간다), 스포르체스코 성의 견고한 성채와 정원만 산책하고 돌아온 나는 대체 뭘 보고 온 것일까? 서경식 교수도 썼듯이 "건물 밖은 북적댔지만(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 안은 관람자의 그림자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미완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상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아쉬움이 참 많이 남지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책들이 있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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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장 차별과 차별금지:
로머 대 에반스 판결과 적의

내일 모레가 반납일인데 3주 가까이 여유부리며 읽다 발등에 불이 되어버림. 꼭 다 읽고 반납하고 싶다!
총 6장 중 이제 4장을 읽고 있다.
4장 읽다보니 이게 2장에서 읽었던 평등조항에 관한 법률근거 중에서 ‘위한의 의심이 가는 차별‘, 즉 ‘위헌의심차별‘이라 불리는 이 구분은 ‘합리성 심사기준‘과도 연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장으로 다시 돌아가 읽고 밑줄긋기 하기로 했다.
반납하고 나면 기억에서 지워지겠지.

미국 수정헌법과 관련한 평등조항. 그리고 젠더와 인종, 종교, 장애, 차별, 차별금지를 다루는 누스바움의 글을 읽다보니 요즘 뉴스에서 보여지는 부정적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라는 나라와 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



평등보장조항에서는 어떤 집단에게 가해지는 체계적 불이익을 뿌리 뽑겠다는 생각이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만큼 이 조항은 위계질서나 차별과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특별히 높은 법령을 심리할 때 엄격한 심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돼왔다. 다시 말해, 이런 구분들은 평상시보다 더 강력한 근거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한다. ‘위헌의 의심이 가는 차별suspect classification(이하 위헌의심차별이라 부른다-옮긴이)‘이라 불리는 이구분은 합리성 심사기준rational basis review뿐만 아니라 훨씬 더 엄중한 시험도 통과해야한다(합리성 심사 기준이란 그리 통과하기 어려운 기준이 아니다. 입법부가 그럴싸하다고 생각하기만 하면 거의 모든
이유가 합리성 심사기준을 통과할 이유가 된다.) - P86

예컨대 인종이라는 기준을 필수적으로 활용해야만 압도적인 국익이 달성될 수 있다고 증명하지 못하는 한, 정부는 인종에 따라 사람들을 정당하게 구분할 수 없다. 젠더와 관련된 구분은 중간 정도의 엄격한 심사intermediate scrutiny를 통과해야 하며, 때때로 ‘준위헌의심차별quasi-suspect classification‘이라 불린다. - P87

앞으로 이 책에서는 엄격한 심사의 기준에 대해 매우 자세히 논의할 것이다. 성적지향이 위헌의심차별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만일 그렇다면 어떤 근거에 따라서 그런지를 놓고 많은 토론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본격적인 법적 논의에 들어가기 전부터도 엄격한 심사라는 이념의 일반적정신이 소도미 법이나 동성결혼 및 관련된 제반 문제를 생각할 때 적절히활용될 수 있다는 점만은 알수 있다. 사람들을 구분하는 몇 가지 방식은 위계서열화의 유산이다. 그러므로 대단히 중요한 국익이 걸려 있지 않는 한, 이러한 구분에 의거한 제한은 평등보장조항에 따라 허용될 수 없다. - P87

매우 중요하게도, 연방대법원은 어떤 법안이 민주적 다수의 의지를 반영한다고 해서 평등보장조항이 가하는 제한을 비껴날 수 있는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합의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설령 선거구 전체가 찬성한다 할지라도 연방헌법의 평등보장조항을 위반하는 도시 법안은 통과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

연방대법원은 다수가 어떤 법을 원하더라도 그 법이 오직 반감이나 혐오에만 의존하는 경우, 해당 법안은 평등보장조항에 따라 금지된다고 판시했다. 하기야 ‘농무부 대 모레노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내렸던 결정을 보면 이 결론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이 사건에서는 비전통적인 가족을 차별한 식료품 할인구매권 프로그램 federal foodstamps program이 문제가 되었다. 이 사건에서 연방대법원은 모레노의 승소, 그러니까 농무부의 패소 판결했었다. 

클리번 판결과 모레노 판결은 성적 지향을 다룬 
‘로머 대 에반스‘ 사건의 선례로서 연방대법원의 획기적인 판례라 할 수 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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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세 자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288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오종우 옮김 / 열린책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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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의 삶을 실천하고자 했던 안톤 체호프의 삶의 경험이 녹아있는 단편 ‘아내‘에서의 나탈리야 가브릴로브나, 현실의 벽에 안주하지 않고 자신들의 일을 찾아 주체적으로 살고자 애쓰는 ‘세 자매‘인 올가, 마샤, 이리나 모두 그녀들의 남편과 오빠를 앞서간 주인공들이다. 단편,희곡의 최고봉 체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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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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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의 더위를 기억한다. 기록된 수치상으로도 그렇고 체감상으로도 아마 가장 더운 여름이었을 거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그 기록은 올 여름이라도 다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재작년 여름, 작년 여름, 올 여름... 이런 더위는 그게 어느 해였는지 애써 어떤 사건과 결부되지 않는 한 기억하지 못할 한 해로 묻히겠지....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해는  단연코 누가 뭐래도 '1994년 여름'이었다.  수치상으로도 그 해 여름은 정말 기록적인 폭염으로 남아있지 않았던가~~~!  '김일성이 죽던 해', 어떤 이들은 이렇게 기억을 할 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우리 현대사에 어마어마한 그 사건을 굳이 검색해 보지 않는 한 그것이 그 해 여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 해 여름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4년 그 해 여름, 난 우리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심한 입덧으로 물조차도 삼키지 못한 채 방바닥과 일체인 듯 드러누워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3살 이었던 큰 아이는 거의 돌보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던 수준이었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거의 먹지 못하고 출산 때까지 입덧 모드였는데 하필 최악의 더운 여름에 입덧이 시작이 되었으니 그 고통이야 말로 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임신인 걸 인지하지 못하는데 내 몸은 벌써 기별을 보내준다. 바로 그 즉시 입덧이 시작되면서 거의 아무것도 삼키지를 못하고 토하고 먹은 것도 없이 내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고통이 그나마 멈추는?  문제는 내가 입덧임에도 거의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그때까지 정말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던 배추김치였다는 것인데. 이런 나의 어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시 어머님과 같이 살고 있을 때였는데 그 해 여름 기온이 너무 높아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의 작황이 좋지 못해 가격이 치솟았고, 평소 틈만 나면 각종 김치를 번갈아 담아주시던 어머님이 도저히 배추김치를 담그지 못하시겠단 말에 눈물 주르륵.... 어찌나 원망스럽고 서운하던지... 아니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싶게 그 서운함은 정말 잊히지도 않고 두고두고 내 가슴 속에 앙금이 되어 남았다. 어머님과의 트러블은  출산 후에도 예기치 못한 사태로 발전을 하였고  나는 꽤 오래 어머님을 미워하는 며느리 노릇을 했지 아마... 어머님과의 작은 틈들은 결국 다 메워지지 못하고 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시간이 지나니 당신 나름으로 나를 큰 며느리로서 존중하고자 애쓰셨던 그 마음을 이해할 만큼의 시간이 쌓여 그런가 그 어머님이 그립고 어머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더라는.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각자의 노력과 시간이 더해져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시간들이 이루어낸 결과일 것이다.   





성해나의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읽었다. 총 8편의 단편들을 하나 하나 읽다 보면 작품들이 보여주는 소재가 어느 지점에서 겹쳐지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를 소재로 그 이해할 수도 없고 메워지지 않을 오해들만 쌓이는 관계들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혹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만 남게 되는 관계들이라는 것을. 첫 단편 '언두'에서는 유수와 채팅 앱으로 만난 도호, 그리고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도호의 할머니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서로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차이를 보여준다. 'OK, Boomer(나도 기성세대에 꼰대 소리 듣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참 볼 때마다 슬프다.ㅠ.ㅠ.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등장하는 상 꼰대 아버지가 이해된다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가식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아들의 친구들에게 날리는 "여긴 내 집이야" 같은 말은 정말 참아주기 힘들다. 아무 것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수용하는 척하는 그 가식적인 행태를 보고 있자면 아들 세대와의 불화는 따논 당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러면 결국 세상 혼자 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안쓰럽단 생각은 안든다!)'와 '괸당'에서도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가 이해되고 극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불화하는 세대간의 갈등을 부각시켜 보여줌으로써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에서는 가족 내에서의 문제가 역사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띤다. 주인공은 대학 동창 오수의 조부 상수연(100세를 축하하는 잔치)에 홈 비디오 촬영을 의뢰 받는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고택이 있나 싶게 전통적인 일본식 목조 주택 형태의 3층 집은 잘 가꿔져 있었고 한국식과 서양식이 혼재된 내부 구조의 실내는 넓고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시대가 여러 번 바뀌면서 대물림 되어온 부의 격차는 나를 알게 모르게 주눅들게 하기 충분했다.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 검劍의 가치를 감별하기 위한 감별사도 초빙이 되었는데 감별사는 그 검劍이 조선 황실에서 제작된 사인검이 맞지만 조부의 바람대로 고종 황제의 하사품은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다. "사료에 의하면 황실에서 보관하거나 종친이나 총신에게 하사한 사인검은 총 아홉 자루입니다. 그 중 병인년에 만들어진 사인검은 단 한 자루고요. 고종 3년에 만들어진 검인데, 그 검은 ... ... 유실 되었죠."(198쪽) 1902년에 황실에서 유실된 사인 참사검! 주칠 십이각상, 익선관과 함께 일제에 귀속되었다가 이후 총독부 관리 몇 몇에게 기념으로 내려진 검... 조부가 가진 검이 바로 그러한 검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건 고종이 하사하신 검이 아니라, 총독이 ...... 친일을 한 관리들에게 뇌사한 검이다, 이 말입니다." (198쪽) 친일을 한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모인 가족들은 그것이 그저 "조상의 과오"일뿐이며  "우리가 이룩한 건 선대와는 무관"(201쪽)하다는 말로써 오늘 날 이룬 부의 원천이 "선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 부끄러움, 죄의식에 대해 말하는 감별사의 말을 막아버린다. 캠코더로 그 장면을 모두 찍고 있던 나도 오수의 요청으로 그 장면을 깔끔하게 편집하고 삭제함으로써, 그리고 감별사는 흔적도 없이 어느 새 사라진 반면 나는 그들과 음식을 먹고 끝까지 남음으로서 그들에 동조하는 자세를 취한다. 힘없는 개인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거대 세력에 충성하고 기생하는 삶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아 역사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간 무수한 개인의 역사는 누가 기록할까 하는 생각에 착잡함이 밀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화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세대 갈등만을 다룬 소설집이었다면 내가 별 다섯을 줄리 만무. 8편의 단편들 중에서 '화양', 작가의 등단작인 '오즈',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김일성이 죽던 해' 이 세 작품은 특히, 여성들 간의 연대와 소통을 보여주는 작품들로써 기억에 깊이 남을 거 같다. '화양'에서 젊은 여성 '경'은 노년의 여성인 '이목'과 만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등단작인 '오즈'와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8번에 걸친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아무런 의욕도 목표도 없이 아버지가 있는 고향에 내려와 있던 '경'은 아버지와 언니의 눈치를 보며 마음 둘 곳을 못 찾는다. 우연히 아버지를 피해 잠시 벗어나고자 갔던 화양극장에서 지나간 영화를 보다 '이목'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뜨거운 음식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이목'이 젊은 시절 스턴트우먼으로 활동했던 배우였으며 지금은 멀리 떠나있는 한 여인을 오래 사랑해왔다는 것, 지금은 뤼미에르(고양이, '빛'이라는 멋진 뜻을 가지고 있음)를 키우며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의 사랑은 그 시절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기 힘들었고, 여자인데 '바지 씨(84쪽)"로도 불리고 사랑을 '러브, 그거'라는 말로 폄훼당하지만 경은 '이목'의 사랑인 '연수'를 떠올리며 둘의 사랑을 가만히 상상해본다. 특히 이 단편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이런 말들... 이목과 경이 역 근처 복집에 들러 따뜻한 복국을 먹는 장면들, "미나리부터 먹고, 그 뒤에 복을 건져 먹어요."(74쪽) 이런 말, "둘 다 새알심을 듬뿍 넣은 팥죽을 좋아해서 우리는 동지마다 그걸 끓여 먹곤 했어요. 이번에는 경도 와요. 우리 같이 새알심 넣은 팥죽을 먹어요.(79쪽), 멀리 있던 '연수'가 찾아온 날 "이목씨는 경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경의 얇은 옷차림이 마음에 걸린다고. 눈이 오니 따뜻하게 입고 집으로 돌아가라며."(82쪽) 이런 문장들... 이 단편집은 책의 제목이 흔히 하듯 단편 중의 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여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니어서 의외였는데 책의 제목이 이 단편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목씨는 말했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92쪽) 이 말은 경에게도 많은 위로의 언어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좋았다. 이목과 경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년과 청년 세대의 여성이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나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소통과 화해의 미학이 아름다웠고, 작가가 그려낸 따뜻함을 선사하는 문장들을 읽어가면서 남게 된 그 이미지들은 오래 기억하게 될 거 같다. 지금 제철을 맞은 청도 미나리가 새파랗고 향긋하게 입맛을 돋우며 끓고 있는 복국과 그 음식을 나누는 이목씨와 경의 영혼의 대화들, 그리고 새알심 듬뿍 넣은 달콤한 팥죽이 주는 이미지가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말로 다 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을 보여주는 이 '화양'이 다른 다 단편들보다 먼저 읽어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차가 나지만 그것을 권위의 상징으로 이용하지 않고 존대함으로써 동등한 개인으로 대하는 점, 표현 하나하나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목씨의 배려 덕분에 경은 서서히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목씨처럼 살아가고자 애쓰는 현재를 보여주어 좋았다.


역시 '오즈'에서도 젊은 세대인 나와  자신을 '오즈'라고 불러 달라는 할머니의 동거를 시작으로 처음에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한집에서 데면데면 살지만 어느 순간 '타투'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상처난 몸을 보이면서 살아온 흔적들을 서로 보듬는 과정을 고통스러우면서도 '화양'과는 다른 분위기로 보여준다. 상처난 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압화에 몰두하며 꾹꾹 눌러담는 마음처럼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와 상처난 몸을 감추기 위하여 타투를 시작한 젊은 나의 이야기는 '화양'의 이목씨와 경의 관계처럼 서로 동등함을 보여준다. 괴팍하고 말수 없는 무뚝뚝한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몸에 남은 말도 안되게 슬픈 일본어로 새겨진 똥 같은 문신들을, 할머니가 압화로 만든 아름다운 꽃들로 채워나가는 '나' 의 연대는 진정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깊이 공감이 되었던 작품은 '김일성이 죽던 해'라고 할 수 있다. 딸과 엄마의 불화, 그리고 1994년 여름의 임신 사실들이 내가 더 공감하게 되는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은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김일성이 죽던 해'의 화자인 

'나'는 신춘문에 당선으로 등단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 '김해원 소설은 기성 문학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듣고 나서는 더욱. 엄마와의 불협화음은 '나'의 묹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자신감은 엄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매사에 말수가 적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고 대화가 되지 않는 엄마와의 관계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일상의 세세함까지 공유하는 모녀 사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관계에서 기인하는 공허함은 '나'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나'를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은 일방적인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엄마가 작가인 나에게 다이어리에 적어 건네는 글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라는 큰 제목을 단, '김일성이 죽던 해'로 시작되는 긴글을 읽고 난 후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받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엄마의 글은 '나'가 그녀의 뱃속에 자리잡은 1994년 여름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 그해 더위는 지금도 피부로 느껴질만큼 선연하다. 더위를 타지 않는 나도 꽝꽝 얼린 사골 팩을 이마며 목을 대야 겨우 잠들 정도였으니까. 징그러울 만큼 무더운 날에 북녘의 지도자가 죽었다기에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고 여공들이 속닥이던 것도 기억난다. 그날의 기묘한 망연함도."(363쪽) 여공이란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도 그 더운 1994년 여름, 공장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곳에서 만난 상희 언니, 문덕과 노동자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고, 당시 유행하던 '나우누리'에 올려 놓고 자신들의 처지를 글로 표현하던 시절들, 그리고 그 모임에서도 가장 소극적이었고 현실을 피해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러던 엄마가 '나'를 낳은 후 비로소 자신의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이 후 다이어리를 건네받고 가려는 엄마에게 "밥 먹고 가."(393쪽)라고 한다든지 엄마와 티 테이블에 마주앉아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엄마의 꿈을 묻는 장면, 엄마가 하던 대로 사과 껍질을 먹는 내가 "엄마 딸이잖아."(394쪽)하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차올라와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지금도 살짝 어긋나는 대화를 하지만 대화는 하는, 이젠 크게 싸우고 몇 년씩 얼굴 안보고 살지는 않는, 하지만 우리 딸과 나 같은 세세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는 결코 될 수 없을 거 같은 나와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나서.





올 봄에 엄마와 해외 여행을 계획 했었다. 엄마가 가고픈 곳이 동유럽이어서 나는 이미 다녀온 곳이라 이번엔 안가고 엄마와 친구 두 분이 모여 세 분이 같이 가시기로 했다. 나와의 여행은 자연스레 내년 봄, '튀르키예' 여행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김일성이 죽던 해'의 딸 해연과 엄마 이순이씨처럼 우리도 그닥 잘 맞는 엄마와 딸은 아니다. 세대간의 차이도 분명하고 엄마나 나나 서로 굽힐 생각이 없는 채로 서로 피하는 대화 주제는 입에 올리지를 않으니 지금은 평온한 듯 하지만 나는 솔직히 언제 엄마가 또 예전처엄 부르르 떨며 자신의 주장에 핏대를 올릴까 싶어 걱정한다. 그런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동생은 극구... 말린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엄마와 딸이다. 모녀지간에도 이리 어려운 것이 이해, 화해, 포용, 연대일진데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연대와 화합, 이해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성해나의 <빛을 걷으면 빛> 중에서도 '화양', '오즈', '당춘', 그리고 '김일성이 죽던 해'를 권해주고 싶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를...  아무튼 강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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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13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하수 2024-03-13 20:18   좋아요 1 | URL
1994년의 그 여름을 기억하시는군요! 큰애의 몸에 땀띠 돋아서 욕실에 담가놓으면 뛰어나오고 엄마 몰래 비 오는날 집압 물웅덩이에서 물장구치고 놀던 모습 .. 근데 엄만 아이를 제대로 케어할 수 없는 상태고... 그때의 막막함은 말도 못해요. 그때만큼 시엄니와 친정엄마가 야속한 적은 진짜 없었던거 같은 그 절망감 때문에 울던 날들이요..
지금도 아리네요 ...
전 시어머니가 일단 저에 대한 곡해나 억하심정은 일도 없단 것이 느껴졌던 시간이었거든요. 거기다 수술 후 갑자기 돌아가시는 바람에 더 아쉬움이 남았죠.
아직도 ‘증‘이 5배시라니... 제 마음으론 이해가 되고도 남죠. 밉고 야속하던 시간들도 많았으니까요. 어찌하면 며느리의 그런 감정조차 지난 일이지.. 옛얘기하는 시간이 올 수 있을지 정말 어려운 문제네요.
 

세 자매: 전체 4막 중 2막
베르시닌 알렉산드르 이그나티예비치:
중령, 포병 중대장
투젠바흐 니콜라이 리보비치: 남작, 중위

프로조로프 안드레이(세르게이, 안드류샤, 안드류시카)에게는 세 명의 여동생들이 있다.

올가(올랴, 올류시카, 올레치카)
마샤(마리야, 마셴카)
이리나(아리샤)

베르시닌 : 무슨 문제가 좋을까…………. 꿈을 꿔보는 건 어떨까요.
이를테면 우리가 죽고 2백 년이나 3백 년 뒤에 사람들은어떻게 살지....... - P136

투젠바흐 :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우리가 죽은 뒤 
사람들은기구를 타고 날아다닐 겁니다. 양복 모양도 달라지겠죠. 어쩌면 오감을 넘어서는 이른바 여섯째 감각을 일깨워 발달시킬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인생은 다를 바 없을 겁니다. 고단하고, 알 수 없는 일들이 가득하고, 때로 행복하기도 한 인생. 1천 년 후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아, 인생은 고달파> 하며 한숨을 내쉴 겁니다. 그러면서 지금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지 않으려 하겠죠. - P136

베르시닌 : (잠시 생각한 뒤) 어떻게 말해 볼 수 있을까요? 지상의 모든 것은 점차 변해야 한다고 봅니다. 실제로 바뀌어 가는 모습을 우리가 보고 있지 않나요. 2백 년, 3백 년, 아니 1천 년 뒤, 이런 기간은 문제가 아니고요. 새롭고 행복한 인생이 다가올 겁니다. 물론 우리는 그런 인생을 살수 없겠죠. 그럼에도 그런 인생을 위해 지금 일하며 살고, 아, 또, 고생도 합니다. 그런 인생을 창조해 가고 
있는 겁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사는 목적이고, 
우리 행복도 거기에 있겠죠.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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