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서경식 선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을 천천히 읽었다. 그의 저서 중 <나의 서양 미술 순례>에 이어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만났던 미술 작품과 작가의 발자취를 찾아보고 쓴 기행문이다. 여행 지역은 로마, 페라라, 볼로냐, 밀라노, 토리노 등의 북부 지역이다. 서경식 선생이 유럽을 처음 여행한 것은 1983년이라고 한다. 1971년 한국에 들어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를 하던 그의 두 형이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어 투옥되었고, 그로 인하여 한국 여권을 발급받지 못해 해외로 나갈 수가 없다가 1983년 뜻밖의 기회로 유럽 여행을 할 기회가 생긴 것이었다(그의 두 분의 형님들도 다행히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석방이 되었다. 형들이 투옥되어 있는 동안 형들과 편지를 썼는데 형들이 말한 미술 작품들을 홀로 유럽에서 직접 보고야 말겠다고 말한 대목에서 그의 심정을 일부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이때 유럽을 돌아보면서 미술 작품들을 감상하고 남긴 책이 <나의 서양 미술 순례>이다. 그로부터 30 여 년이 지나 나이가 들어 다시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좋아하는 작품을 보러 가기도 하고 추억의 장소를 찾아 아내(책에서는 아내를 F로 지칭한다.)와 음식을 즐기고 그 여행을 이렇게 책을 남긴다는 것이 나에게는 굉장한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어 넘 부러웠다. 물론 나는 관심은 있지만 미술 작품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물론 이탈리아 작가들에 대해 단편적인 지식 뿐이라 이런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그래도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을 붙인다는 것이 넘 멋지지 않은가 말이다~~



"인문기행"이라는 제목이 붙은 만큼 나같이 단편적인 지식만 있는 독자들에겐 어려운 학술서보다 더 큰 지식을 주었다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이탈리아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해서 이탈리아의 지리책을 볼 수도 없고, 정치, 경제 ,예술... 그리고 문학 작품을 얼마나 읽어야 알고 싶은 갈증을 다 해소할 수 있을지도 모를 뿐더러 특히 미술에 관한 한 더더욱 나의 한계를 절감하기 때문에 애초에 이탈리아를 알고자 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음... 시도조차도 안한다. 그래서 나같은 문외한에겐 이 정도의 책이면 딱 적당하단 생각이 들었단 거다. 물론 그동안 읽은 책들이나 여행, 미술 전시회 등의 경험으로 이탈리아에 대해 극히 적은 부분을 알긴 하지만 어째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되고 다시 시작하는 듯한 한계에 부딪히게 되더라는... 어차피 광범위한 지식을 습득할 수는 없단 걸 알기 때문에 딱 이 정도로 시작을 하는 것도 나에겐 뭔지 모를 뿌듯함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덕분에 여러 미술 작품들을 검색을 하면서 천천히 감상해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 작품에 대해 쓴 글들을 읽으면서 나름 유익한 시간을 가져 보았다. 특히나  이 책의 미덕이라면 너무 많은 문장으로 책을 모두 꽉 채우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난 이 부분이 특히 맘에 들어왔다. 글은 책의 오른쪽, 나머지 왼쪽 여백에는 관련 작가의 사진이나 작품, 장소, 사진 등을 실었는데 이것들을 하나하나 보는 재미가 정말 쏠쏠했다. 읽고 싶은 책들도 여럿 만나게 되어서 도서관 검색도 이용해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 보기도 했다. 이만하면 이 책을 읽은 덕분에 투자한 시간 대비 가성비는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가 아닐런지...




이탈리아 여행을 갔을 때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 나폴리, 베니스 등의 대도시와 소도시들도 여러 군데 방문을 했었지만 '페라라'는 관광 상품에 들어가 있지는 않아서인지, 그리고 내가 검색해 보아도 '페라라'만의 특별함, 독특함, 아름다움 등 관광객들이 좋아할 만한 관광지는 아니기 때문에 조르조 바사니의 책 <핀치콘티니가의 정원>을 읽기 전까진 이 도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곳의 유대인들의 희생에 대해서도.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에서의 페라라는 <핀치콘티니가의 정원>과 <성벽 안에서>에서 묘사하는 페라라의 모습들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조르조 바사니의 기억, 작품 속 페라라와 서경식 선생의 페라라를 서로 번갈아 읽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 거리를 상상하게 되고 사진으로 보았던 에스텐세 성과 에스텐세 성벽에 붙어 있는 1943년 11월 15일의 페라라 학살 사건의 희생자 추모 명판, 그리고 유대인 묘지, 또 서경식 선생이 다녔던 이름도 부르기 어려운 그 거리 이름들이 너무도 익숙해져서 마치 내가 지금 거길 간다 해도 그 거릴 쉽게 찾을 수 있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조르조 바사니의 <성벽 안에서> 중에서 '1943년 어느 날 밤'은 에스텐세 성의 추모 명판과 이어지는 스토리이다. 1943년 11월 15일, "트럭을 나누어 타고 베로나와 파도바에서 들이닥친 파시스트군은 반파시스트 지식인, 변호사, 유대인 등 열한 명을 사살하고, 시신을 에스텐세 성의 해자 근처에 방치하며 본보기로 삼았다(이탈리아 인문기행, 129쪽)." 또한 추모 비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1943년 11월 15일 새벽, 시민 열한 명을 학살함에 따라, 전횡 체제가 나치 독일과의 공범 행위를 시작했다. 정치적 자유를 회복한 페라라는 정의와 신과 평화의 이념 아래, 이 비열한 범죄를 규탄한다.1945년11월15일(같은 책, 127쪽)." 이 사건을 알고 있고 조르조 바사니의 이 단편을 읽었다면 이 명판을 보고 어떤 기분을 느끼게 될지 도저히 가늠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관광객으로서는 아닐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총살이 있던 그 보도를 이용할 사람은 자신이 삼가면 좋을 행동을 하게 되리라는 걸 깨달게 될까? 

      그는 마침내 여행 안내서에서 머리를 들 것인가. 들지 않을 것인가?" 

                                                 (<성벽 안에서>의 다섯 번째 이야기 '1943년 어느 날 밤' 중에서, 223쪽)

서경식 선생은 거기서 어떤 전율에 휩싸이지 않았을까!! 이런 경험을 책으로 하고 있다니! 아. 진짜 너무 멋져서 말이 안 나온다~~~!




서경식 선생이 토리노에 간 이유는 당연히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프리모 레비, 그리고 나탈리아 긴츠부르그, 무솔리니의 파시스트에 대항했던 체사레 파베세, 아드리아노 올리베티, 레오네 긴츠부르그 등의 레지스탕스들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함이었다. 특히 프리모 레비의 묘지를 가장 먼저 보고 싶어했는데 하필 유대인의 안식일인 금요일과 토요일은 묘역의 문을 닫아버려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철책 너머로 예전에 본 적이 있는 그의 묘비만 눈에 담고 돌아왔다니 안타깝지만 이것도 여행자의 숙명이라면 숙명이겠지 싶어 미소 지을 밖에... 역시 프리모 레비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책은 읽은 적이 없기 때문에 "급히" 책을 주문했다.^^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기록'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것이 인간인가>와 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의 자전적 소설인 <가족어 사전> 두 권이다.


















미술 전시회 가는 것을 좋아하지만 제대로 된 감상을 하는 것은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눈에 들어오는 그림들, 맘에 감동을 주는 그림들이 여럿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남겨야 한다면 두 작품이 떠오른다.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벅찬 감동이 일어 검색을 하게 만든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의 『제4계급』, 그리고 '위대한'이란 수식어에 가려져 있던 미켈란젤로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조각 작품 「론다니니의 피에타」이다. 『제4계급』은 교회(제1계급), 귀족(제2계급), 부르주아(제3계급)에게 학대 당해 왔던 제 4계급인 노동자들의 각성을 그린 작품이다. 그림 속에서 중앙에 남성 두 명과 아기를 안은 여성 한 명이 힘차게 걸어 나가고 있고 그 뒤를 이어 결의에 찬 걸음걸이로 행진하는 노동자들이 이들을 따라 걷는 모습이 가로로 긴 형태로 그려져 있는데, 그 힘차고 희망에 가득한 그 분위기.... 그 분위기가 마치 그 무엇이라도 이룰 수 있으리란 것을 보여주는 듯한 모습이어서 프랑스 혁명의 시민 봉기를 그림으로 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보았을 때보다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및 유럽 전역의 진보파와 사회주의자들의 상징이 된 작품이기도 하고,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1900년」이라는 영화의 포스터로도 차용이 된 작품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했을 때 바티칸 박물관에서 보았던 미켈란젤로의 미술 작품들과 천정화는 사실 인간의 영역을 벗어난 작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관광객에 떠밀려 또는 그 넓고 광대한 박물관을 틈 없이 채운 회화 작품들에 질려서 찬찬히 둘러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능력을 요하는 일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까마득히 높은 천정에 그려진 그림을 하나하나 자세히 본다는 것도 불가능했으므로 내가 그 작품들을 감상했다는 인식이 별로 없다. 아, 그리고 그곳 바티칸 성당에서 보았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피에타」상像. 너무도 아름답지. 유리 안에 갇혀 있어 안타깝기도 했고. 위대한 작품, 위대한 작가라는 것에 반론을 제기할 수는 없을 정도로 압도적이었지만 그것은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경외감이라고 할까... 내가 미켈란젤로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사실이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론다니니의 피에타 」像은 그야말로 '미완성의 완성'을 보여주는 극치의 작품이란 생각이 들었다. 천상계에서 이 세상으로 내려온, 그래서 말할 수 없이 더 인간적으로 느껴졌다. "미켈란젤로가 89년의 생애의 고투 끝에 만든 마지막 미완성 작품"(305쪽)이며 "미완"이라고 썼지만 "완성"을 뛰어넘어버린 !  이 미완의 피에타로 남긴, 탈진해버린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을 두고 일본의 역사 학자 하니 고로는 "누구라도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인상'을 받는다"(309쪽)면서 자신만의 식견으로 이 작품을 감상해보기를 독려한다. 피에타 상은 대부분 마리아가 죽은 아들 예수를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지만(앉은 채로) 이 조각상은 어머니가 뒤에서 아이를 감싸 안아 올리듯 서 있다. 무덤 구멍으로부터 죽은 예수님의 모습을 들어 올려 세운 모습이 마치 지금 여기 이 지상을 떠나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극도로 마른 예수님의 몸이 더 부각되어 보이는 것도 감동에 한 몫을 하고 있다. 혹 이 책을 만든 반비 편집자들도 너무 감동 먹어서 그런걸까. 이 작품이 296, 304 두 쪽에 똑같이 실려 있다.^^ 밀라노 스포르체스코 성 전시관에 있다는데(특히 이 작품 하나만 전시관 한쪽에 전시가 되어 있어 얼마나 더 아름답게 보일지 짐잠이 간다), 스포르체스코 성의 견고한 성채와 정원만 산책하고 돌아온 나는 대체 뭘 보고 온 것일까? 서경식 교수도 썼듯이 "건물 밖은 북적댔지만(나도 그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전시장 안은 관람자의 그림자마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조용했다."는 것을 보면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이 '이상하리만큼 비통한' 미완의 「론다니니의 피에타 」상을 놓치고 있다는 말이 될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나의 이탈리아 여행은 아쉬움이 참 많이 남지만 그것을 보충하고도 남을 책들이 있어 그 아쉬움을 달랠 수 있으니 또한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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