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빛을 걷으면 빛
성해나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작년 여름의 더위를 기억한다. 기록된 수치상으로도 그렇고 체감상으로도 아마 가장 더운 여름이었을 거다.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만큼 그 기록은 올 여름이라도 다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재작년 여름, 작년 여름, 올 여름... 이런 더위는 그게 어느 해였는지 애써 어떤 사건과 결부되지 않는 한 기억하지 못할 한 해로 묻히겠지....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억되는 해는 단연코 누가 뭐래도 '1994년 여름'이었다. 수치상으로도 그 해 여름은 정말 기록적인 폭염으로 남아있지 않았던가~~~! '김일성이 죽던 해', 어떤 이들은 이렇게 기억을 할 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해도 우리 현대사에 어마어마한 그 사건을 굳이 검색해 보지 않는 한 그것이 그 해 여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그 해 여름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1994년 그 해 여름, 난 우리 둘째를 임신 중이었고 심한 입덧으로 물조차도 삼키지 못한 채 방바닥과 일체인 듯 드러누워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아직 3살 이었던 큰 아이는 거의 돌보지도 못한 채 방치되고 있던 수준이었다. 큰 아이를 임신했을 때도 거의 먹지 못하고 출산 때까지 입덧 모드였는데 하필 최악의 더운 여름에 입덧이 시작이 되었으니 그 고통이야 말로 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였다. 임신인 걸 인지하지 못하는데 내 몸은 벌써 기별을 보내준다. 바로 그 즉시 입덧이 시작되면서 거의 아무것도 삼키지를 못하고 토하고 먹은 것도 없이 내 속의 모든 것을 쏟아내야만 고통이 그나마 멈추는? 문제는 내가 입덧임에도 거의 유일하게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 그때까지 정말 정말 별로 좋아하지 않던 배추김치였다는 것인데. 이런 나의 어려움을 아는지 모르는지... 당시 어머님과 같이 살고 있을 때였는데 그 해 여름 기온이 너무 높아 배추를 비롯한 채소류의 작황이 좋지 못해 가격이 치솟았고, 평소 틈만 나면 각종 김치를 번갈아 담아주시던 어머님이 도저히 배추김치를 담그지 못하시겠단 말에 눈물 주르륵.... 어찌나 원망스럽고 서운하던지... 아니 그게 말이 되는 건가??? 싶게 그 서운함은 정말 잊히지도 않고 두고두고 내 가슴 속에 앙금이 되어 남았다. 어머님과의 트러블은 출산 후에도 예기치 못한 사태로 발전을 하였고 나는 꽤 오래 어머님을 미워하는 며느리 노릇을 했지 아마... 어머님과의 작은 틈들은 결국 다 메워지지 못하고 남았다고 한다^^ 지금은 우리 어머님도 돌아가시고 시간이 지나니 당신 나름으로 나를 큰 며느리로서 존중하고자 애쓰셨던 그 마음을 이해할 만큼의 시간이 쌓여 그런가 그 어머님이 그립고 어머님 목소리가 듣고 싶어질 때가 있더라는. 나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지만 각자의 노력과 시간이 더해져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시간들이 이루어낸 결과일 것이다.
성해나의 소설집 <빛을 걷으면 빛>을 읽었다. 총 8편의 단편들을 하나 하나 읽다 보면 작품들이 보여주는 소재가 어느 지점에서 겹쳐지는 부분이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를 소재로 그 이해할 수도 없고 메워지지 않을 오해들만 쌓이는 관계들을 어떻게 화해시킬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혹은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문제들만 남게 되는 관계들이라는 것을. 첫 단편 '언두'에서는 유수와 채팅 앱으로 만난 도호, 그리고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도호의 할머니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서로 이해할 수도 극복할 수도 없는 차이를 보여준다. 'OK, Boomer(나도 기성세대에 꼰대 소리 듣겠지만... 그래도 이 말은 참 볼 때마다 슬프다.ㅠ.ㅠ. 그렇다고 해서 여기에 등장하는 상 꼰대 아버지가 이해된다는 건 아니다. 너무나도 가식적이고 자기 중심적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 아들의 친구들에게 날리는 "여긴 내 집이야" 같은 말은 정말 참아주기 힘들다. 아무 것도 수용하지 못하면서 수용하는 척하는 그 가식적인 행태를 보고 있자면 아들 세대와의 불화는 따논 당상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러면 결국 세상 혼자 살 수 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안쓰럽단 생각은 안든다!)'와 '괸당'에서도 기성 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의 차이가 이해되고 극복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보다는 그 불화하는 세대간의 갈등을 부각시켜 보여줌으로써 생각할 여지를 남겨주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소돔의 친밀한 혈육들'에서는 가족 내에서의 문제가 역사적인 차원으로까지 발전하는 양상을 띤다. 주인공은 대학 동창 오수의 조부 상수연(100세를 축하하는 잔치)에 홈 비디오 촬영을 의뢰 받는다. 서울 도심에 이런 고택이 있나 싶게 전통적인 일본식 목조 주택 형태의 3층 집은 잘 가꿔져 있었고 한국식과 서양식이 혼재된 내부 구조의 실내는 넓고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는데 그야말로 시대가 여러 번 바뀌면서 대물림 되어온 부의 격차는 나를 알게 모르게 주눅들게 하기 충분했다. 집안의 가보로 내려오는 검劍의 가치를 감별하기 위한 감별사도 초빙이 되었는데 감별사는 그 검劍이 조선 황실에서 제작된 사인검이 맞지만 조부의 바람대로 고종 황제의 하사품은 아니라는 판정을 내린다. "사료에 의하면 황실에서 보관하거나 종친이나 총신에게 하사한 사인검은 총 아홉 자루입니다. 그 중 병인년에 만들어진 사인검은 단 한 자루고요. 고종 3년에 만들어진 검인데, 그 검은 ... ... 유실 되었죠."(198쪽) 1902년에 황실에서 유실된 사인 참사검! 주칠 십이각상, 익선관과 함께 일제에 귀속되었다가 이후 총독부 관리 몇 몇에게 기념으로 내려진 검... 조부가 가진 검이 바로 그러한 검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건 고종이 하사하신 검이 아니라, 총독이 ...... 친일을 한 관리들에게 뇌사한 검이다, 이 말입니다." (198쪽) 친일을 한 후손이라는 것이 밝혀졌는데도 모인 가족들은 그것이 그저 "조상의 과오"일뿐이며 "우리가 이룩한 건 선대와는 무관"(201쪽)하다는 말로써 오늘 날 이룬 부의 원천이 "선친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책임, 부끄러움, 죄의식에 대해 말하는 감별사의 말을 막아버린다. 캠코더로 그 장면을 모두 찍고 있던 나도 오수의 요청으로 그 장면을 깔끔하게 편집하고 삭제함으로써, 그리고 감별사는 흔적도 없이 어느 새 사라진 반면 나는 그들과 음식을 먹고 끝까지 남음으로서 그들에 동조하는 자세를 취한다. 힘없는 개인일 뿐이라는 생각으로 거대 세력에 충성하고 기생하는 삶도 있겠지만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더 오래 살아남아 역사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간 무수한 개인의 역사는 누가 기록할까 하는 생각에 착잡함이 밀려들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화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불통의 세대 갈등만을 다룬 소설집이었다면 내가 별 다섯을 줄리 만무. 8편의 단편들 중에서 '화양', 작가의 등단작인 '오즈', 그리고 마지막 단편인 '김일성이 죽던 해' 이 세 작품은 특히, 여성들 간의 연대와 소통을 보여주는 작품들로써 기억에 깊이 남을 거 같다. '화양'에서 젊은 여성 '경'은 노년의 여성인 '이목'과 만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의 등단작인 '오즈'와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8번에 걸친 임용고시에 낙방하고 아무런 의욕도 목표도 없이 아버지가 있는 고향에 내려와 있던 '경'은 아버지와 언니의 눈치를 보며 마음 둘 곳을 못 찾는다. 우연히 아버지를 피해 잠시 벗어나고자 갔던 화양극장에서 지나간 영화를 보다 '이목'을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뜨거운 음식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러면서 '이목'이 젊은 시절 스턴트우먼으로 활동했던 배우였으며 지금은 멀리 떠나있는 한 여인을 오래 사랑해왔다는 것, 지금은 뤼미에르(고양이, '빛'이라는 멋진 뜻을 가지고 있음)를 키우며 홀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녀의 사랑은 그 시절 사람들로부터 이해받기 힘들었고, 여자인데 '바지 씨(84쪽)"로도 불리고 사랑을 '러브, 그거'라는 말로 폄훼당하지만 경은 '이목'의 사랑인 '연수'를 떠올리며 둘의 사랑을 가만히 상상해본다. 특히 이 단편을 읽으며 좋았던 부분은 이런 말들... 이목과 경이 역 근처 복집에 들러 따뜻한 복국을 먹는 장면들, "미나리부터 먹고, 그 뒤에 복을 건져 먹어요."(74쪽) 이런 말, "둘 다 새알심을 듬뿍 넣은 팥죽을 좋아해서 우리는 동지마다 그걸 끓여 먹곤 했어요. 이번에는 경도 와요. 우리 같이 새알심 넣은 팥죽을 먹어요.(79쪽), 멀리 있던 '연수'가 찾아온 날 "이목씨는 경에게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둘러주었다. 경의 얇은 옷차림이 마음에 걸린다고. 눈이 오니 따뜻하게 입고 집으로 돌아가라며."(82쪽) 이런 문장들... 이 단편집은 책의 제목이 흔히 하듯 단편 중의 한 작품을 표제작으로 하여 제목을 지은 것이 아니어서 의외였는데 책의 제목이 이 단편에서 연유한 것이 아닐까가 생각하게 되었다. "이목씨는 말했다. 어둠을 걷으면 또다른 어둠이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어둠을 걷으면 그 안에는 빛이 분명 있다고. 나는 이제 살아내지 않고, 살아가고 싶어요. 견디지 않고 받아들이면서."(92쪽) 이 말은 경에게도 많은 위로의 언어가 되지 않았을까 싶어 좋았다. 이목과 경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노년과 청년 세대의 여성이지만 두 사람의 차이는 분명 존재하나 서로를 이해하고 끌어안으려는 소통과 화해의 미학이 아름다웠고, 작가가 그려낸 따뜻함을 선사하는 문장들을 읽어가면서 남게 된 그 이미지들은 오래 기억하게 될 거 같다. 지금 제철을 맞은 청도 미나리가 새파랗고 향긋하게 입맛을 돋우며 끓고 있는 복국과 그 음식을 나누는 이목씨와 경의 영혼의 대화들, 그리고 새알심 듬뿍 넣은 달콤한 팥죽이 주는 이미지가 겨울이라는 계절과 어우러져 말로 다 할 수 없는 내밀한 감정을 보여주는 이 '화양'이 다른 다 단편들보다 먼저 읽어서 더 기억에 남는지도 모르겠다. 나이 차가 나지만 그것을 권위의 상징으로 이용하지 않고 존대함으로써 동등한 개인으로 대하는 점, 표현 하나하나 따뜻함이 묻어나는 이목씨의 배려 덕분에 경은 서서히 무기력에서 벗어나 이목씨처럼 살아가고자 애쓰는 현재를 보여주어 좋았다.
역시 '오즈'에서도 젊은 세대인 나와 자신을 '오즈'라고 불러 달라는 할머니의 동거를 시작으로 처음에는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한집에서 데면데면 살지만 어느 순간 '타투'를 매개로 하여 서로의 상처난 몸을 보이면서 살아온 흔적들을 서로 보듬는 과정을 고통스러우면서도 '화양'과는 다른 분위기로 보여준다. 상처난 마음을 감추기 위하여 압화에 몰두하며 꾹꾹 눌러담는 마음처럼 정성을 다하는 할머니와 상처난 몸을 감추기 위하여 타투를 시작한 젊은 나의 이야기는 '화양'의 이목씨와 경의 관계처럼 서로 동등함을 보여준다. 괴팍하고 말수 없는 무뚝뚝한 할머니와 그런 할머니의 몸에 남은 말도 안되게 슬픈 일본어로 새겨진 똥 같은 문신들을, 할머니가 압화로 만든 아름다운 꽃들로 채워나가는 '나' 의 연대는 진정 세상 그 어느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느냐고 말하고 싶게 만든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깊이 공감이 되었던 작품은 '김일성이 죽던 해'라고 할 수 있다. 딸과 엄마의 불화, 그리고 1994년 여름의 임신 사실들이 내가 더 공감하게 되는 포인트가 되었다는 것은 뭐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김일성이 죽던 해'의 화자인
'나'는 신춘문에 당선으로 등단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관점에 대한 확신이 없다. '김해원 소설은 기성 문학의 아류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듣고 나서는 더욱. 엄마와의 불협화음은 '나'의 묹제일 수도 있지만 내가 가지지 못하는 자신감은 엄마의 영향도 무시할 수 는 없을 것이다. 매사에 말수가 적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고 대화가 되지 않는 엄마와의 관계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일상의 세세함까지 공유하는 모녀 사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다. 이러한 관계에서 기인하는 공허함은 '나'가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공고히 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보여주는데 '나'를 이해받고자 하는 마음은 일방적인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된다. 엄마가 작가인 나에게 다이어리에 적어 건네는 글 '내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라는 큰 제목을 단, '김일성이 죽던 해'로 시작되는 긴글을 읽고 난 후 그동안 이해할 수 없었고 이해받기를 원했으나 그러지 못했던 엄마와의 관계를 회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엄마의 글은 '나'가 그녀의 뱃속에 자리잡은 1994년 여름으로부터 시작된다. "김일성이 죽던 해, 그해 더위는 지금도 피부로 느껴질만큼 선연하다. 더위를 타지 않는 나도 꽝꽝 얼린 사골 팩을 이마며 목을 대야 겨우 잠들 정도였으니까. 징그러울 만큼 무더운 날에 북녘의 지도자가 죽었다기에 일사병으로 죽은 것 아니냐고 여공들이 속닥이던 것도 기억난다. 그날의 기묘한 망연함도."(363쪽) 여공이란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엄마는 '나'를 임신하고도 그 더운 1994년 여름, 공장 노동자로 일을 하고 있었고, 그 곳에서 만난 상희 언니, 문덕과 노동자 글쓰기 모임을 만들었고, 당시 유행하던 '나우누리'에 올려 놓고 자신들의 처지를 글로 표현하던 시절들, 그리고 그 모임에서도 가장 소극적이었고 현실을 피해 한 발짝 물러나 있었던 사람이 자신이었다는 것을, 그러던 엄마가 '나'를 낳은 후 비로소 자신의 글을 쓸 수 있었다는 것을. 이 후 다이어리를 건네받고 가려는 엄마에게 "밥 먹고 가."(393쪽)라고 한다든지 엄마와 티 테이블에 마주앉아 턴테이블에서 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대화를 나누고 엄마의 꿈을 묻는 장면, 엄마가 하던 대로 사과 껍질을 먹는 내가 "엄마 딸이잖아."(394쪽)하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안도감이 차올라와 찔끔 눈물이 나기도 했다. 지금도 살짝 어긋나는 대화를 하지만 대화는 하는, 이젠 크게 싸우고 몇 년씩 얼굴 안보고 살지는 않는, 하지만 우리 딸과 나 같은 세세한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는 결코 될 수 없을 거 같은 나와 우리 엄마가 생각이 나서.
올 봄에 엄마와 해외 여행을 계획 했었다. 엄마가 가고픈 곳이 동유럽이어서 나는 이미 다녀온 곳이라 이번엔 안가고 엄마와 친구 두 분이 모여 세 분이 같이 가시기로 했다. 나와의 여행은 자연스레 내년 봄, '튀르키예' 여행을 함께 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김일성이 죽던 해'의 딸 해연과 엄마 이순이씨처럼 우리도 그닥 잘 맞는 엄마와 딸은 아니다. 세대간의 차이도 분명하고 엄마나 나나 서로 굽힐 생각이 없는 채로 서로 피하는 대화 주제는 입에 올리지를 않으니 지금은 평온한 듯 하지만 나는 솔직히 언제 엄마가 또 예전처엄 부르르 떨며 자신의 주장에 핏대를 올릴까 싶어 걱정한다. 그런 엄마와의 여행이라니... 동생은 극구... 말린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엄마와 딸이다. 모녀지간에도 이리 어려운 것이 이해, 화해, 포용, 연대일진데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연대와 화합, 이해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이런 생각이 든다면 성해나의 <빛을 걷으면 빛> 중에서도 '화양', '오즈', '당춘', 그리고 '김일성이 죽던 해'를 권해주고 싶다. "온전히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해하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기를... 아무튼 강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