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형제 없이 홀로 남은 아기는 일가친척 집을 전전하며 자라다가 너댓 살 무렵 경기
도 용인의 외가로 보내져 그곳에서 자랐다. 당진에서 용인은 먼 길이었다. 아침에 배를 타고 뱃멀미로 깔딱 숨이 넘어갈 무렵, 묻에 내려주더라는 것이 희미하게 남은 그분의 기억이었다.
오늘날 용인시 양지면 평창리, 그 당시엔 
‘번말‘이라고 불렀던 외가 동네에서 사촌들과 어울려 자라며 나의할머니는 비로소 안정된 어린 시절을 보내게 되었다.
"외할아버지가 나를 예뻐하셔서 한 손으로 달랑 안고 다니셨지. 내가 몸집이 작아서 다 커서도 안고 다니셨지. 마당에 과일나무가 많았는데 그걸 따서 주셨지.
복숭아랑 감이랑 먹고."


~~당진도 반갑고...
평창리는 내가 수시로 산책 가는 동네!
우리집이 있는 제일리에서 바로 건너 보이는 마을이다. 지금은 우리 동네나 평창리나 전원주택단지들이 많이 있는데 여전히 농사짓고 사는 원주민들도 꽤 된다.
할머니 사시던 시절엔 어땠으려나 궁금하다.

부모없이 자랐으나 구박받지않은 어린시절을 보내셔서 그리도 맘이 포근하신건가 싶다.
- P91

"네가 나한테도 저런, 그럴 때가 있는데, 그게 뭔지몰라도 별 소리 아닌데도 희한하게 기분이 괜찮더라고.
그래서 나도 놀이치료 할 때 아이들한테 한번 써봤어.
병뚜껑이 안 열려서 울고 있는 아이한테 ‘저런‘이라고말하고 가만 있어봤어. 그랬더니 아이가 눈물을 닦고금세 괜찮아져서 다른 놀이를 하는 거야. 난 너무 놀랐어.."


~~정말 그러네
난감한 상황일때 ‘저런‘이라는 말을 쓸법한데, 신기하게 자주 사용하는 사람을 본적이 없네!
스스로 해결하도록 시간을 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부모라면 누구나 알것인데
‘저런‘이라 말하고 가만히 기다린다니...
가능한 일일지...ㅎ - P121

"아, 상담에서 ‘버틴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고 핵심적인 개념이야. 상담학 교과서에 보면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해주어야 하는 일이 ‘정서적 지지가 되어주고 버틴다‘라고 되어 있어. 나는 그걸 글로 배우고 외웠지만사실은 버틴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몰랐거든. 그런데 그날 저런이라고 말하고 가만히 있는 동안 버틴다는 게 뭔지 알겠다 싶은 기분이었어. 아이가 해야할 일을 내거 대신하지않고 기다려주는거야. 그게 버티는 거였어.

~~그렇지
백퍼센트 공감! - P124

친구의 분석에 의하면 ‘저런‘은 바로 일상 속에서 만날 수 있는 평범하지만 중요한 ‘공감‘의 언어라고 했다.
"보통 아이가 속상해서 울면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괜찮아‘라고 말하는데, 사실 아이는 괜찮지 않거든. 저런이라는 말 속에는 정확한 공감이 숨어 있는 거야. 아이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놀라고 속상해하는 마음을 알아주는 말인 거지. 그렇게 아이가 정확하게 이해받고나면, 설명하는 다른 말이나 도움 행동을 주지 않아도스스로 괜찮아져. 그래서 뚜껑 열기를 다시 시도해보든지, 도와달라고 청하든지, 뚜껑 열기 말고 다른 놀이를하든지 하는 식으로 다르게 대응할 수 있는 힘을 스스로 끌어낼 수 있는 거야. 정말 놀랍지 않아? ‘저런‘은 정말이지 멋진 말이더라고!"
그는 ‘저런‘이 단순하고 흔해 보이지만 매우 맵시 있고 효과적인 공감의 언어이며, 아이의 마음속에 난 작은생채기에 발라주는 연고와 같은 것이고, 그 짧은 한 단어만으로도 아이는 지지와 공감을얻어 스스로 회복에 이를 수 있는 것이라고 ‘저런‘의 의미와 효과를 정리하며 흐뭇해했다.

~~~길지만..
아무튼 너무 맞는말이라 남겨두고 싶어 친구의 말을 다 적어본다.

작가는 이 말이 당연히 할머니의 언어라고 했다. 참으로 미니멀리스트한 언어 사용자이시지만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말만 하신 현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셨단 생각이 든다.

아... 나도 격하게 써먹고 싶어진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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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로이스 부바가 내게 이 말을 했다.
"나는 아주 좋은 삶을 살았어요." 그녀가 둘째손가락을 들어나를 가리키며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나는 아주아주 좋은 삶을살았어요. 그러니 전남편에게 꼭 그렇게 말해줘요." 그녀는 말을멈추고 실내를 둘러보았고, 이어 나를 다시 보았다. 로이스의 얼굴은 약간 방어적으로 보였고, 심지어 - 아주 조금 지루한 듯보이기도 했다. 그녀 뒤쪽 벽에는 꽃무늬 벽지가 발려 있었고,
아래로 흘러내린 작은 물 자국이 있었다. - P220

로이스가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죠." 그녀는 잠시 천장을 올려다보고 말을 이었다. "내가 여덟 살 때 부모님이 두분이 같이 나를 앉혀놓고 이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내 어머니는....… 음, 그날 부모님은 나를 낳아준 다른 어머니가 있다고하셨어요. 하지만 그 여자는 내 어머니가 아니라는 걸 아주 분명히 해두셨죠. 내 어머니는 나를 한 살 때부터 키워준 그분이었어요. 그 사람이 내 어머니였고, 그분은 이 집에서 자랐어요"-로이스가 한 손을 살짝 움직여 거실 전체를 가리켰다-"그리고 훌륭한 분이셨죠. 어머니는 너무 선한 분이라서 그걸 알려 주신 거였고, 아버지도 그런 분이셨어요-아버지가 안아주셨던 게 기억나요. 우리는 카우치에 앉아 있었고, 그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아버지는 계속 한 팔로 나를 감싸안고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그 분들은 내가 그 사실을 알 만큼 철이 들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고, 타운에 그 사실을 아는 다른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을 통해 알게 되는 것보다는 직접 말해주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신 거였어요. 나는 혼란스러웠고, 다른 아이들도 그런 경우라면 마찬가지였겠죠.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중요하지 않았으니까요. 내겐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부모님이 계셨고, 남동생이 셋 있었고, 그 애들도 모두 사랑을 받았어요. 그보다 더 좋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가지진 못했을 거예요. 정말로 그럴순 없었을 거예요." - P220

로이스는 잠시 말을 멈추고 거실 안쪽 구석을 뚫어지게 응시했다. "하지만 내 경우에 후회되는 일은・・・・・・ 이게 심지어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후회일 수도 있는데" - 그러고는 다시 나를 보았다- "그 여자가, 캐서린이, 나를 찾아왔을 때 그다지 다정하게대하지 않았는데, 그랬어야 했다는 생각이 나중에 들었어요."
"잠깐, "내가 말했다. "잠시만요." 내가 몸을 앞으로 숙였다.
"당신을 찾아왔을 때, 라고 하셨나요? 캐서린이 당신을 찾아왔었다고요?"
로이스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네. 알고 있을 줄 알았는데."
"몰랐어요." 그리고 나는 뒤로 기대앉아 더 조용히 말했다.
"몰랐어요. 우리는 그녀가 당신을 찾아간 건 전혀 몰랐어요."
"오 그랬어요. 그때가 여름이었는데...." 그리고 그녀는 어느 해였는지 말했고, 나는 곧바로 그때가 내가 구 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던 여름이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 기간에 캐서린은 내게 거의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 P228

"로이스,"내가 말했다. "내 남편은 몇 주 전까지 당신의 존재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이 말이 분명 그녀를 아주 놀라게 한 모양이었다. 로이스는 손을 얼굴에서 뗐다. "그게 사실인가요?" 그녀가 말했다.
"사실이에요." 내가 말했다. "그의 아내가 그를 떠나기 직전에, 온라인으로 조상을 찾을 수 있는 웹사이트의 구독권을 줬는데, 그걸 통해 당신에 대해 알게 된 거예요. 그의 어머니는 당신이야기를 한 번도 꺼낸 적이 없어요-아버지도 그랬고요. 윌리어은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 P233

공항 창가에서 나는 아주 넓은 주차장을 돌고 있는 윌리엄을보았다. 그는 내 시야에서 거의 벗어날 만큼 한쪽 끝까지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서서 반대쪽으로 걸었다. 나는 계속 지켜보았고그는 어느 순간 걸음을 멈추고 서서 고개를 자꾸 내저었다. 그러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 윌리엄, 나는 생각했다.
오윌리엄! - P254

나는 엄청난 감사의 마음이 물밀듯 밀려오는 것을 느끼고 그 말을 하려고 월리엄을 돌아보았는데, 그의 한쪽뺨을 타고 눈물 한 방울이 흘러내리는게 보였다. 그가 마침내 나를 완전히 쳐다보았을 때
 또 한 방울이 반대쪽 눈에서 흘러내렸다. 나는 생각했다. 오윌리엄!
하지만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 위로를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전했고ㅡ누가 위로를 원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는 내 위로를받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탑승교에서 가방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말이 없었는데, 더이상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윌리엄은 우리가 뱅고어의 공항으로 차를 몰고 가는 길부터 점점 사라지다가,
그 순간엔 완전히 사라졌다.
우리는 가방을 끌고 택시 승차장으로 갔고, 윌리엄은 나보다먼저 택시를 타며 말했다. "고마워, 루시. 곧 연락할게."
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내게 곧 연락하지 않았다. - P255

내가 얼마나 끔찍한 행동을 했던가.
지금까지 미처 생각지 못했었다. 남편에게 나를 위로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오, 그건 말할 수 없이 끔찍한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런 줄도 모르고 있었다.
그것이 삶이 흘러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많은 것을 너무 늦을때까지 모른다는 것. - P257

다만 남편은 죽었고, 윌리엄은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진실은 이것이다. 나는 매일 밤 식료품을 사러 가게에갔다 오는 길에, 혹은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집으로 가려고 모퉁이를 돌 때마다, 윌리엄이 내가 사는 건물 로비의 의자에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서며 "안녕, 루시" 하고 말하는 모습을상상했다. 나는 그 장면을 상상하고 또 상상하면서 그가 다시 나를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 P268

늦은 아침에 나는 아파트 안을 돌아다니면서 케이맨제도에가져갈 옷을 침대 위에 꺼내놓았다. 그러는 동안 중간중간 멈추고 침대에 앉아 생각했다. 나는 물론 윌리엄이 다른 곳이 아니라그곳에 같이 가자고 한 이유를 알았다. 나는 캐서린이 그랬던 것처럼 라운지체어에 윌리엄과 나란히 햇볕을 받으며 앉아 있는내 모습을 그려보았다. 내가 책을 읽는 동안 그 역시 제인 웰시칼라일에 대한 책을 읽는 장면을 그려보았다. 나는 우리가 틈틈이 책을 내려놓고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책을 집어드는 모습을상상했다.

그러다 한번은 침대에 앉아 소리 내어 말했다. "오 캐서린."

그리고 생각했다. 오 윌리엄!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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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루가 본가에 가 있는 사이, 도쿄에 있던 나의 마음속에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으로서 뻔뻔한 구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있었다. 이미 오륙 년 전부터 제주4.3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증언을 조금씩 촬영하면서 어떻게 영화로 만들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다루지 않았던 그 일에 대해 말해야만 데뷔작인 <디어 평양>을 겨우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주도에 뿌리를 둔 부모님이 한국을 부정하고 북한을 지지하며살아온, 논리적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이유가 거기 있을지 모른다고 직감했기 때문이다.
- P167

어머니와 카오루가 처음 만나는 순간은 
<수프와 이데올로기>에 나오는 그대로다. 어머니는 진심으로 카오루를 환영했고, 카오루는 존경을 담아 어머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서로를 존중하는 두 사람의 하모니에서 캠코더를 들고 관찰하던 나는 배움을얻었다. 어머니가 직접 만든 닭 백숙이 훌륭한 중개 역할을 완수했다는 사실은 구태여 덧붙일 필요도 없다. - P170

오사카 집에 방문해서 환대를 받은 카오루는 어머니가 만든닭 백숙에 진심으로 감동했다. 다섯 시간이나 우려낸 수프(국물)의 맛도 맛이지만,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어머니의 따스한 응대에도 감격한 것 같았다. ‘미국 놈, 일본 놈은 안 돼!‘라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단호한 신념은 물론, 늘 아버지 의견이 우선인 어머니의 성정 또한 내게 들어서 익히 알고 있었다. 소금을 뿌리시면 어쩌나,
김치를 던지실지도 모르겠다며 농담 섞인 불안을 내비쳤으니 그만큼 긴장했을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웃으며 환대를 해주셨다고무척이나 기뻐했다. - P171

카오루는 어머니의 웃는 얼굴에서도 홀로 사는 이의 외로움을 감지했다. 만나지 못하는 가족들 대신 가족사진에 둘러싸여 사는 어머니가 안됐다고, 자신이 네 번째 아들이 되겠다고 시간을 내서 오사카를 오갔다. - P172

어머니와 카오루가 테이블에 마주 앉아 함께 장을 봐온 마늘껍질을 벗기면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모습을 목격했을 때, 이 장면이 작품의 핵심이 되리라 확신했다. 이데올로기가 달라 서로 탓하고 싸우고 죽이는 세상에서, 이데올로기가 다른 사람들이 새로운 가족이 되어 함께 밥을 해서 나눠 먹는다는 사실이 무척 숭고하게 느껴졌다. 생각이나 가치관이 달라도 같이 살 수 있다는 것을 어머니와 카오투가 증명해주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영화의 제목이
<수프와 이데올로기> 인가보다.
요즘 이 영화가 상영되고 있긴한데, 보고 싶지만...
상영관도 멀고 시간 맞추기도 너무 힘들다. - P174

오사카에 가기 전 재일코리안의 역사와 제주4.3사건에 관한 책을 탐독한 그의 적확한 질문에 어머니는점점 적극적으로 자신에 대해 털어놓았다. 시간이 가는 것도 잊고어린 시절부터 이야기하던 어머니는 제주4.3사건에 대해서도 말하게 되었다. 기억의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 안에는 오랜 세월 봉인해온 기억, 말하면 죽을지도 모른다고 두려워할 만큼 비장한 기억도 있었다. 가슴속 깊숙한 곳에 묻어두고 무거운 돌을 여럿 올려두었던 기억의 뚜껑을 카오루와 내가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는 것 같았다.
가족이란 혈연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절절히 믿게 되었다.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기능하는 관계성이 있어야 집합체가 비로소 가족이 되는 건지도 모른다. 이해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기억을 공유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비록 당사자는 될 수 없지만, 타인의 삶을 완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윤곽정도는 앍고 싶다는 겸손한 노력 말이다. 그러기 위해 알고자 하는 것이다. 사건과 사실을, 감정과 감상을,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상상과 망상까지도. - P175

사랑하는 내 동생 영희에게.
놀라지 말고 들으렴. 건오 형이 죽었다. 심장마비로 쓰러져서그날로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어. 이미 장례식도 다 치렀다. 우편보다 빠를 거 같아서 평양에서 도쿄로 돌아가는 K씨에게 이 편지를 맡긴다. 이 소식을 들으면 오사카에 홀로 계시는 어머니가 얼마나 충격을 받으실지, 평양에 있는 가족과 친척들 모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네게 전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오빠를 용서해주면 한다. 
그리고....... - P178

어머니의 증언은 일본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오사카 대공습을 피해 제주도로 간 데서 시작되었다. 열다섯부터 열여덟까지3년간의 제주도 생활과, 열여덟 제주의 4월 3일에 무엇을 보고 들었는지 이야기했다. 한라산에서 타오르는 불길을 본 일, 의사였던약혼자가 무장대에 참가했다 산에서 죽은 일, 친한 친구와 가솔린을 옮긴 일, 밀항선을 타고 일본으로 돌아온 과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 P190

일주일 후부터 어머니가 변해갔다. "아버지! 건오! 상철이!
어디 있니?" 어머니는 이미 죽고 세상에 없는 가족들을 찾기 시작했다. 아버지, 장남, 당신의 남동생을 부르며 2층 계단을 올라가방안을 둘러봤다. 눈빛이 멍해졌고 말도 바로 나오지 않았다. 검사 결과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았다. 자기 상태에 어머니 스스로도 당황스러운것 같았다. 나와 카오루는 의사의 조언에 따라 어머니가 말하는 내용을 부정하지 않았다. - P192

충성의 노래
기억을 잃어가던 어머니가 김일성을 기리는 노래를 불렀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은 잔혹하고 순수하고 활기차고 사랑스럽고가엾고 성숙한 소녀 같았다. 인간의 불가사의한 면모가 응축된 이장면은 <수프와 이데올로기> 118분 중에도 가장 보는 이의 마음을사로잡는다. 떠올릴 때마다 숨이 답답해질 정도다.
살아가다 보면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픈 상황들을 조우한다. 그순간을 카메라가 포착할 때 기적 같은 장면이 탄생하고, 그 작품을보는 사람의 마음을 뒤흔든다. 잔인한 이야기다. 이제 와 무슨 말인가 싶지만. - P194

어떻게든 초상화를 치우는 장면을 넣고 싶었다. 넣어야 했다.
나 자신과의 결별로서, 새롭게 걸어나가기 위한 생의 마디로서.
낡은 시대에 고하는 결별이자 가족과의 결별이기도 했다. 그런시대는 이제 끝냅시다!‘ 하는 결별. 평양에 있는 가족이 걱정되지않을 리가 있을까. 지금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더욱더 가족과 헤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북에 가족이있어서 아무 말 못 했던 시대를 끝내고 싶었다. 이제 충분하지 않나. 무엇보다 나는 북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 P198

어머니가 양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과 관객을 향해 던지는 시선. 그 장면을 <수프와 이데올로기>의 마지막 장면으로 정한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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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짱아는 유아차도 아기띠도 격렬히 거부하며 오로지 내 두 팔로 안고 다닐 것만 요구했다. 피부의 80퍼센트 이상 나와 접촉되어 있지 않으면 발작하듯이 울어댔다. 한 시간쯤 동동거려 기껏 재워놓으면 5분 만에 눈을 반짝 떠버렸다. 나는 거의 언제나 녹초였다. 엄마가된다는 건 심신이 피폐해지는 일이었다.


--- 휴우... 생각만해도 얼마나 힘들었을지 감이 팍팍 온다. 비슷한 아기를 나두 키웠으니까. 난 업고 있느라 허리가 끊어질듯 아프고 손목도 아파서 손에 힘을 줄수 없을 정도였었다. 아이를 키운다는건 정말 심신이 피폐해지는 일이다. 지나고 생각해보면 산후우울증도 엄청 심했을 시기인데 그걸 몰랐다. - P36

"네가 어릴 때 한 짓을 생각하면 네 딸이 낮을 가리는 건 당연하지. 너처럼 심하게 낮을 가린 아이가 세상에 또 있었을라고?"
엄마 말이 옳았다. 사실 딸더러 뭐라고 할 수도 없는게, 꿀짱아의 낯가림은 유전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낮가림으로 악명 높았다. 삼촌들이나 고모부처럼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만 하면 기겁을 하고 자지러져서 할머니가 나를 데리고 작은 방으로 들어가 숨어야 했다.

---음...
유전 맞는걸거야^^ - P44

내 기억 속에 할머니의 얼굴은 없다. 마치 공기에서따뜻한 손이 솟아나 나를 달래고 어루만진 것처럼 할머니는 등 뒤의 익숙한 촉감과 목소리로만 존재했다. 큰일이 아니구나. 괜찮구나. 세상은 여전히 좋은 곳이구나. 나는 금세 울음을 그치고 다시 병아리에 빠져들었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인생의 첫 기억이다. 할머니는 내 기억의 시초부터 오늘까지 늘 그런 식으느 존재했다. 그 분은 내 눈 앞에 얼굴을 들이밀거나 나를 둘러싸고, 큰 소리를 내지 않았다. 눈에 보이지않는 목소리로 나를 둘러싸고, 괜찮다고, 예쁘다고, 다시 한번 괜찮다고 말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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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로부터 몇 주 뒤 거의 8월 말이었다-그가 밤중에전화를 걸어 로이스 부바, 자신의 이부누이인 그 여자에 대해,
그리고 그녀에게 연락해야 할지에 대해 고민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남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고 서로 핏줄이니 연락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그녀가 그를 미워할지 몰라서 꺼려진다고 말했다. 그녀는 분명 그의 어머니를 미워할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루시." 그가 말했다. - P110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공항에서 기다리는 동안 딸들은 찡얼거렸고, (내 기억에) 아이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비행기에 타자나는 딸들 사이에 앉아 아이들의 기분을 좋게 해주려고 애썼지만, 종종 화가 났다. 한 아이라도 울면 승객들이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보았고, 윌리엄과 그의 어머니는 비행기의 다른 어딘가에 앉아 있었다. - P117

그때 이후로 나는 내 일 때문에 세상을 돌아다녔고-책이 출간되자 외국 출판사들이 나를 초대했고 세상 곳곳에서 페스티벌이열렸다-그러니까 그때 이후 아주 많은 곳을 돌아다녔고, 비행기일등석에 탔는데, 그 자리에 앉으면 칫솔과 치약과 안대가 들어있는 작은 키트를 준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숱하게 경험했다.
삶이란 얼마나 신기한가. - P117

나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뉴욕은 내가 오래 살아온 곳이고, 익숙한 곳이다. 내 아파트, 내 친구들, 경비원,
정류장마다 한숨을 토하는 도시 버스들, 내 딸들……… 그 모든 것이 익숙했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있는 곳은 익숙하지 않았고,
그래서 무서웠다.
나는 그게 몹시 무서웠다.
하지만 윌리엄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는데, 겁이 난다고말할 만큼 내가 그를 충분히 잘 아는 건 아니라고 문득 느꼈기때문이다. - P140

다시 돌아보았을 때도 윌리엄은 여전히 그 사진을 쳐다보고있었다. 그가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말했다. "그가 맞아,
루시." 그러고는 더 조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내 아버지가 맞아." 나는 다시 사진을 보았고, 윌리엄의 아버지 얼굴에 떠오른표정은 다시 봐도 인상적이었다. 모든 남자가 야위어 보였지만, 윌리엄의 아버지는 눈썹이 짙고 눈동자도 색이 짙었으며,
경멸적인 태도가 희미하게 느껴졌다. - P155

캐서린과 나 사이에 리듬이 생겼고, 딸들이 종일 캠프에 가 있는 동안 우리는 대화를 나누었다. 병이 깊어지면서 그녀는 침대에 더 많이 누워 있었고, 침대 근처에 큰 의자가 있어서 나는 거기 앉았다. 그건 내게 힘든 일이 아니었고, 힘들었다는 인상을주고 싶지는 않다. 나는 그 여인을 사랑했으며, 밤에 내 딸들이돌아와 함께 있으면 그곳이 정확히 내가 있어야 할 장소라고 느꼈다. "아이들이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 마." 임종을 앞두고 의료장비를 방으로 들여올 때 캐서린이 내게 말했다. "아이들이 이걸 가지고 놀게 해." 그리고 (내 생각에) 아이들은 할머니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혹은 내가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기에 방에 들인 산소호흡기에 적응했고, 마지막이 다가와 간호사들이 찾아왔을 때에도 적응했다. - P181

그들이 모르핀을 주었지만-캐서린은 그것을 정말 마지매이 오기 전까지는
거부했다. 그날도 그녀는 여전히 아주 고통스럽고 불안한모습을 보였다. 내가 살피러 들어갔을 때 캐서린은 침대보를 잡아 뜯으며 거친 목소리로 무슨 말을 하고있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말이 큰 의미가 없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녀가 점점 불편해하는 것이 너무나 잘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실수를 하고 말았다. 캐서린을 지켜보다가, 내손을 그녀의 팔에 얹고 이렇게 말해버린 것이다. "오, 캐서린, 얼마안 남았어요. 약속할게요."
그러자 그 여인이 나를 쳐다보았고, 얼굴은 분노로 일그러져 있었다. 캐서린은
침을 뱉고-뱉으려고 했고- 말했다.
 "여기서 나가!" 그녀가 한쪽 팔을 들어올리자 원피스 잠옷의 소매통을 통해
맨팔이 드러났다. 그녀가 말했다.
"여기서 나가. 너 -이 몹쓸 계집애 같으니! 넌 쓰레기야!"
내가 입에 담으면 안 되는 말을 했다는 걸 대번에 깨달았다.
그녀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암시하는 말을 해버린 것이었다. 캐서린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고 나조차 (어느 정도는) 모르고있었다는 생각이 (그 당시에는) 결코 떠오르지 않았다.  - P182

시간이 좀 걸렸지만, 크리시는 회복되었다. 심리치료사를 찾아가 도움을 받았는데, 윌리엄과 내가 상담을 받았던 그 끔찍한치료사는 아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성공회 신부인 친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말했다. "네가 크리시를 위해 올린 기도가 왜 그애에게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 말에 나는 깜짝 놀랐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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