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혼란 - 지성 세계를 향한 열망, 제어되지 않는 사랑의 감정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서정일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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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인간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불꽃... 


이것이 진정 현실에서 가능한 일일까 생각해 보았다.  

여기서의 "불꽃"이란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도 무려 40 년이라는 시간 동안 간직한 사랑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을 우리는 매스컴을 통하여 간간이 접할 때가 있다.  불과 얼마 전에도 이와 비슷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전쟁으로 헤어진 연인을 만나고 싶어,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자신의 삶에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는 일념으로 몇 십 년을 간직한 사랑을 찾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현실에서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도 나는?

전 생애를 관통하는 불꽃을 가슴 속 저 깊은 곳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그 불꽃이 꺼지지 않고 살아남아서 수십 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타오르고 있어서 여전히 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면?  

섣불리 입 밖에 내어 말해 버릴 수 없었던 비밀을 잠잠히 끌어안고 있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는 순간이 찾아온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그 비밀을 그냥 말해버리고 싶어지게 될까?



**줄거리 + 결정적인 순간들

여기, 60번째 생일과 교수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이룬 롤란트에게 그의 업적을 기려 여러 제자들이 그의 글을 모아 양장본으로 엮은 문집을 선물받은 즈음에, 그의 인생이 문집에서 보여지듯 상승 곡선만을 타고 올라온 것이 아니라는 것, 세심하게 기록된 문집의 목차에는 200여 명에 달하는 사람의 이름이 적혀 있지만, 단 한 분, 그의 '모든 창조적 충동의 원천인 그 사람의 이름'은 그곳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동안 비겁하게 침묵해온  것에 대해 새삼 죄책감을 느끼면서 비밀로 남겨진 한 페이지를 그 분을 다시 불러와 자신의 곁에 세우고픈 마음에 이제라도 그 간의 비밀을 고백 하려는,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문집에서 서술하는 그에 대한 접근 방법은 모두 잘못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을 그들의 활동을 통해 서술하고 세계의 정신적 구조를 본질적으로 이해하는데 삶을 바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성장의 원천인 핵심 세포를 파악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자신의 경험을 통하여 다시금 깨닫게 되었다고 그는 말한다.  



   "우리는 무수히 많은 순간들을 경험하지만, 우리의 완전한 세계가 고양되는 순간, (스탕달 Stendhal이 기술한 바와 같이) 모든 진액을 빨아들인 꽃들이 순식간에 한데 모여 결정(結晶)을 이루는 바로 그 순간은, 언제나 단 한순간, 오직 한 번 뿐입니다. 그것은 생명이 탄생하는 시간처럼 마술적이며, 체험된 비밀로 삶의 따뜻한 내면에 꼭꼭 숨어있기에 볼 수도,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정신의 대수학도 그 한순간을 계산할 수 없고, 어떤 예감의 연금술을 가지고도 추측할 수 없으며, 심지어 독자적인 감정을 통해서도 그 순간을 붙잡기란 매우 어려운 것이겠지요." (17쪽)  



결정적 한 순간, 언제나, 단 한 순간, 오직 한 번뿐인, 생명이 탄생하는 듯 결정적인 한 순간은 단 한 번뿐이어서 그 순간을 붙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 결정적 순간이 그가 그다지도 잊지 못하고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 속에 담아 두고 있는 그분과의 만남과 사랑, 그리고 이별인 것이다. 

내가 느끼기에 결정적인 순간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나는 그때마다 츠바이크의 문장들에 심취하게 되는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 사실, 그의 문장들을 읽는 기쁨을 말로 하자면 입만 아프다. 결정적 순간을 대할 때마다 그의 문장이 어찌나 황홀하던지... 나야말로 이런 심미적 체험과 그의 책을 읽으며 츠바이크를 알게 된 것이 나의 독서 생활의 결정적 순간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새삼스럽게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롤란트의 고백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아버지가 시골 소읍에 위치한 대학의 학장이어서 어릴 때부터 인문학적인 정신의 고양에 대한 억압이 있었기에 베를린에서의 대학 생활의 초창기는 그러한 억압에 대한 반항의 심리가 있었고, 잘난 체 떠벌이는 대학 강단에 지독한 권태로움을 느낀 그는 이후 기세등등한 탐욕 속에서 남성성의 흥분과 순응적인 문화와 제약을 벗어버리고 새롭게 알게 된 방탕에 탐닉하게 된다.  "어떤 우연이 순식간에  정신적인 몰락을 진정시켜 주지 않았다면(27쪽)" 신세를 망치거나 타락의 나락으로 빠지는 것 이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는 지경에 이른 그 순간!!!  학장 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예상치 못하게 들이닥친 아버지로 인하여 "어떤 우연"의 순간이 그에게 미치게 되었다.  교수 신분의 교육자로서 아버지께서 찾아오신다는 연락도 없이 아들의 행실에 대해 알아보려고 불시에 찾아오시게 되었고 이 기습을 전혀 몰랐던 나는 그 날도 내 방을 찾아온 애인과 침대에서 뒹굴뒹굴 하고 있었는데 그 순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문을 열어 젖힌 그 순간... 그 순간....  듁은 듁은.. ㅠ.ㅠ



   "그러자 바로 그 순간, 마치 주먹으로 얼굴을 정면으로 얻어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현관의 어두컴컴한 속에서 아버지의 그림자가 또렷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반사되어 반짝이는 안경유리로 그림자가 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의 윤곽만으로도 미리 준비했던 무례한 말이 날카로운 가시처럼 목에 꽂혀 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순간, 난 말문이 막혀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아버지께 - 얼마나 무서운 순간이었는지! - 방 정리를 할 때까지 잠깐 부엌에서 기다려 달라고 공손하게 요청했습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아버지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내 요청을 승락하신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꾹 참으시는 태도로 보아 그것을 감지할 수 있었지요. 그는 내게 악수도 건네지 않고 불쾌한 표정으로 커튼 뒤쪽 부엌으로 물러나 계셨습니다. 뜨거운 커피와 무를 삶는 철제 냄비가 놓여 있는 곳 앞에서 그는 10분이나 선 채로 기다려야 했습니다."(29쪽)



하.... .. 얼마나 무서웠을까.  가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내 인생에서 그토록 창피한 적은 없었"다고 ... 그 불쾌한 순간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으셨던 인간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마주한 나는 아버지의 결정에 순종하며 베를린을 떠나 작은 대학에서 공부를 하기로 하였고, 자신을 학업에 바치기로 결심하는데, 열 아홉 인생에서 최초로 느낀 감동의 대상이 아버지였다는 것으로 귀결되는 이 아름다운 순간을 묘사하는 문장들도 정말 압권!  다시 읽어봐도 감동적이다.  "학문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고귀한 열정도 알지 못하고, 정신의 드높은 세계 속에서 열정적인 사람에게는 모험과 위험이 항상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도 전혀 예감하지 못한 채...(34) 수강 신청을 하러 찾아간 지방의 대학에서 다시 마주한 결정적인 한 순간. 



   "갑자기 교수가 책상 위로 올라서자 학생들도 따라서 일어섰고, 그가 높은 곳에서 마치 올가미로 사로 잡듯, 말로서 학생들을 그 자리에서 꼼짝 못하게 서 있도록 한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초대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서, 그의 강의에서 나오는 매혹적이고 강렬한 이야기에 자석처럼 이끌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까지는 불과 몇 분이면 충분했지요!... (중략) 목소리가 당당하게 터져 나올 때마다 그는 마치 날개를 활짝 펴듯 떨리는 두 손을 들어 올렸다가, 지휘자가 선율에 따르듯 안정된 제스처로 천천히 손을 아래로 내려 놓았습니다....(중략) 그때까지 나는 그 사람 이외에 그토록 감격에 빠져 진실하게 마음을 끌며 강의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나는 라틴어로 '랍투스'(Raptus, 순간적으로 밀려오는 황홀한 심리적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 - 옮긴이)라고 부르는 것, 즉 한 인간이 자신의 경계를 초월해 이끌려가는 상태를 체험했던 것입니다." (37 ~ 38쪽)



단 한번도 겪지 못했던 황홀한 강의를 처음 접한 그 날로부터 롤란트는 교수의 강의에 빠져들게 되었고, 자신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황홀한 그 순간의 감동을 다시 접하고 싶은 욕구에 시달린다. 교수님과 같은 건물 위층에 세를 들어 살면서 거의 매일 저녁 교수의 집을 방문하여 교수와 교류하고 알 수 없는 무기력함에 빠져 이루지 못한 저작에의 꿈을 위하여 그의 글을 받아 적어주면서 그에게 헌신한다. 하지만 그 분은 롤란트가  과도한 열정으로 그의 맘에 들고자 하는 행동들을 비난하고 그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번번이 그를 실망시키면서 완강하게 밀어내기만 한다. 아직 무르익지 않은 젊은 청년의 영혼은 실망과 절망감 속에서 몸부림치지만 불쑥불쑥 말도 없이 사라져버리는 그 분으로 인하여 상처 받은 정신은 그 분의 부인에게서 위로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 부부는 롤란트가 보기에 일반적이지 않다. 부부 사이에 대화라곤 없다. 보통의 부부와는 다르게 서로 냉랭하고(물론 그런 부부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특히 아내는 남편에 대하여 냉소적이면서도 믿기 어려운 비난의 말을 입에 담는 등의 이해하기 어려운 관계를 보여주지만, 소년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젊은 롤란트는 그 부부에게서 보여지는 이상야릇함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 분은 왜 그가 학문적인 열정과 동경으로 다가가려 하면 밀어내기만 하는 것인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와 함께 이루어낸 책의 1부가 완성이 되었고 그 기쁨을 나누는 날, 뜻밖에도 선생님의 서재 밖에서 적대적인 호기심과 질투심으로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부인을 발견하고 그들의 축제는 유감스러운 결말을 고하고 만다. 또 다시 사라진 선생님에게 실망한 롤란트는 짐을 싸서 하숙집을 떠나려 하고 그 순간 그 앞에 나타나신 교수님은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한 번은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 분의 입으로 듣는 고백은 어린 그에겐 충격으로 다가오고, 불시에 습격을 당한 듯한 젊은 롤란트로서는 그의 정열에 답을 할 수가 없었다. 



   "... 자네는 젊고 밝고... 미남이지... 그리고 자네는 우리와 가까이 있지 않았는가? 어떻게 내 아내가 자네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 자네같이 잘생기고 젊은 친구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어...나는..." 

갑자기 그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몸을 바싹 숙이고 내게 가까이 다가왔기 때문에, 숨소리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또다시 그의 눈빛이 나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그 이상한 빛... 그와 나 사이에만 존재하는 기이하고 특별한 순간, 그는 내게 더 바짝 다가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입술이 거의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나지막하게 속삭였습니다.

   "나도... 나도 자네를 사랑하고 있네." (175쪽)



   "나는 두 번 다시 선생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편지도, 소식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의 저술은 출판되지 않았고 그의 이름은 잊혀졌습니다. 오직 나를 제외하고 그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지금도 아무 것도 몰랐던 소년으로서 느꼈던 그때의 그 감정을 똑같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를 알기 전의 내 부모님과 그를 알고 난 후의 내 아내와 아이들, 그 누구에 대해서도 그보다 더 고마워하지도, 더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198~199쪽)



아무리 가슴 절절하게 사무치도록 사랑했던 사람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희미하게 희석이 되기도 하고 아예 잊기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 이 롤란트는 선생님이 갑자기 깊이 추락하듯 고통스러운 절규로 그를 떠나보낸 그 시간으로부터 떠나오지 못한 거 같다. 

가장 존경하는 그 분이 딱딱한 조개 같은 자신의 운명을 털어놓던 그날 저녁 이후로, 40 년 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 인간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불꽃은 꺼지지 않은 것이겠지! 



츠바이크는 <감정의 혼란>이 껄끄러운 문제들 때문에 출간이 원활히 진행될 수 없을 것 같다는 소회를 밝힌 적이 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도 문학의 주제로 터부시되는 '동성애'가 외적 소재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러나 깊게 보면  <감정의 혼란>을 관통하는 핵심은 심미적 체험이다. 이 소설은 이렇듯 순간순간이 한 청춘을 강렬함으로  소환한 다양한 색채의 첫 감정들 그리고 그것과의 충돌로 충만하다. "순간은 우리를 훨씬 더 변하게 만든다"는 그의 표현처럼 말이다. (역자후기 중에서, 205쪽)



나에게는 '동성애'라는 소재도 괜찮고 한 청춘의 강렬한 심미적 체험을 보여주는 많은 문장들에 빠져들어서 흠뻑 젖어 있었지만....  하지만 나는 이 작품에 별 다섯개를 줄 수가 없어...ㅠ.ㅠ

왜냐하면... 너무 금방 끝나버려서 너무 아쉽기 때문이지.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들과 아름다운 문장들은 좀 더 계속 되어야 하는데... 머리로는 이대로 완전한 결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겠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거니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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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3-08-08 10: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끝나는 게 아쉽다라... 저도 읽어보겠습니다 ^^

은하수 2023-08-08 13:38   좋아요 2 | URL
네... 넘 짧아서 아까웠어요~~ 책이 너무 얇아요 ㅠ
그래도 역시 츠바이크로군! 생각하게 됩니다^^

은오 2023-08-09 0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 금방 끝나버려서 아쉬운거 공감이요 ㅠ 저도 진짜 앉은자리에서 다읽었어요!!
그래서 초조한 마음을 샀습니다.. 이건 좀 두껍더라고요 ㅋㅋㅋ

은하수 2023-08-09 10:35   좋아요 0 | URL
은오님도 사셨네요
저도 샀는데.. 두꺼워서 또 헉했네요
언젠간 읽겠죠???~~ㅎㅎ

잠자냥 2023-08-09 23:20   좋아요 2 | URL
초조한 마음도 초초하게 책장 넘어갈 걸요?! 근데 은오님, 누운자리에서 다 읽은 거 아닙니까?

은오 2023-08-11 08:19   좋아요 0 | URL
제가 몇달전에 독서용으로 흔들의자를 샀거든욬ㅋㅋㅋㅋ 그래서 요즘은 주로 거기 앉아서 봅니다.. 거의 반쯤 누운 자세로....

은하수 2023-08-11 13:37   좋아요 2 | URL
흔들의자라구욧!
저도 급 관심~~~ 거기 앉아서 책 읽으면 편해요?
저 그게 너무 궁금^^
흔들거리면 책 읽기 불편할까 싶어 몇번을 망설이다 포기했거든요~~
그나저나 잠자냥 님이 초조한마음 도 책장 잘 넘어간다니 일단 시작할 용기가 생기네요!

은오 2023-08-11 21:34   좋아요 0 | URL
진짜 짱 편해요!!! 흔들의자가 사실 의도적으로 몸을 흔들지 않는 이상은 안흔들려서 ㅋㅋㅋ 그냥 눕듯이 기대고 다리 올리고 배랑 다리 사이에 쿠션 놓고 거기 책 올려서 읽으면 완벽.. 허리에는 안좋을 듯합니다 ㅠㅠ

잠자냥 2023-08-11 23:08   좋아요 0 | URL
은하수 님 흔들의자에서 초초한 마음 읽으면 너무 초조하게 책장 넘기느라 의자가 마구 흔들릴 것입니다. ㅋㅋㅋㅋ

은하수 2023-08-11 23:44   좋아요 0 | URL
이러다 조만간 살거 같아요~~
초조한 마음도 곧~~~^^
 
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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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인수의 세계!

   스스로 집을 나왔든, 쫓기듯 몸을 피해 집을 나왔든... 청소년들이 집을 나와 겪는 일들은 이제 어떤 글을 읽는 것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뉴스나 칼럼 등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이보다 더 자세히 알기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 세세히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읽는 내내 드는 이 답답함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특히 이 작품의 화자인 "인수!"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는 그 아이의 속마음이 너무 너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화자인 인수는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극소심형이고 말도 별로 없어서 어느 곳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거기다 돈을 좀 번다는 자칭 자수 성가형 아버지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어머니를 가여워하고 애처로워하는 마음을 서운함이 앞질렀다. 내가 희생한 보람도 없이 너무도 쉽게 아버지를 용서하고 상황을 무마해버린 어머니에 배신감을 느꼈다." (61)


   "기묘하게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의 폭행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갔다. 부부동반 모임에도 빠짐없이 나갔고 결혼기념일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 다음 날에는 다시 폭행, 그 다음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이런 일관성 없는 일상에 대해서라면 어렸을 때부터 자주 반복되어온 일이라 초연해질 법도 한데 나는 점점 더 심한 멀미를 느꼈다. 두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내가 유별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61)




   가정 내에서 아버지에 의한 일상적인 폭력이 난무하고 그것을 반성하고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받아들이며 화해를 하고 다시 폭력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과정은 인수의 집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결핍"의 가정에서 자란 인수이기에 폭력을 행하고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으며 자식인 인수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 돌아보지 않는 부모를 정말 일상적으로 보고 자란 인수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인수에게는 답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 거 같다.  그래서 마음 속에 드는 의문이나 불안, 배신감, 고통, 슬픔을 안으로만 삭이게 되었고, 어머니를 때리고 자신을 무섭게 하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맞는 어머니마저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에 대항하여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 아버지를 밀어 넘어뜨려 버렸고 코뼈 골절로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라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로부터 인수의 삶을 미세하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집을 나온 이후에도 환청에 시달리기도 하고 모든 의욕을 상실하였으며 한 여름의 더위에도 극심한 추위를 느끼는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경험한다.  이러한 증상은 집을 나와 집단으로 생활하던 '우리집'이라고 부르던 곳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직장을 갖고 일상을 보내는 생활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집을 나와 생활하는 청소년의 시간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들도 위험 속에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인의 삶과는 다른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내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한 위험 속에 노출이 되었던 인수를 변호사를 동원하여 빼내려 하면서도 자신의 명예와 주변의 평판만을 생각하고 아들 인수의 진정한 내면은 돌아보려 하지 않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라면 당연히 인수부터 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은 그 불리한 삶의 양상들로 인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어른들로부터 노동 착취를 당하는 건 기본이고 폭력과 폭행에 다반사로 노출된다.  우리는 흔히 그 아이들을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이라는 말로 부르면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지만, 그 아이들이 집을 나와 어디에서 생활하는지, 어디에서 밥을 먹고 어디에서 돈을 벌어 생활을 이어나가는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소설은 그러한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던 나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이런 구체적인 방식이 소설에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작품 하나 읽었다고 내가 당장 무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환기시키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남겨두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않는, 그래서 아직 인수와 같이 외롭고 고통에 찬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 사회에 셀 수 없이 많다면,  그건 정말 너무 마음이 아플 거 같다. 나처럼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기면 화를 내고 퍼부어버리고, 친구들에게라도 나의 치부를 털어놓고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수처럼 겁이 많고 소심하면서 가장 지지해 주어야 할 어머니, 아버지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래서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치료를 도와야 한다. 하나하나 쌓여만 가는 심리적 고통으로 인하여 고통의 나날이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로 데워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수가 '이호'를 만나고 그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이젠 '이호'에게 하나하나 자신을 내보이고 부디 말할 수 있기를... 어떠한 제도적인 장치보다 아름다운  '이호'라는 사람의 따뜻함,  가장 좋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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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말 - 평등을 향해 걸어온 대법관의 목소리 마음산책의 '말' 시리즈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헬레나 헌트 지음, 오현아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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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말』 기억하고 싶은 말들~~~!


   얼마 전 오랜만에 국제 도서전 갔다가 이 책 『긴즈버그의 말』과 『수전 손택의 말』을 사놓고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있다가 며칠 전 읽었던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 에서 긴즈버그의 판결들이 언급된 것을 보고 바로 읽게 되었다.  사실은 인터뷰집인 줄 알고 아무 생각없이 펼쳤는데... 아니었다. 진짜 긴즈버그가 했던 말들. 변호사들이나 법관들의 모임, 혹은 학생들에게 행한 강연, 비영리 단체, 대학교, 그리고 판결문, 반대 의견서, 청문회 인준에서 했던 "진짜 말들"을 모아 놓은 책이었다.  



   이 책의 목차를 보면 #법 #시민과 자유 #나의 인생이라는 챕터로 나뉘어져 있고, 관련한 긴즈버그의 말들을 모아놓았는데 처음이 #법과 관련한 것이어서 읽다 보면 사실 흥미를 가지고 계속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다.  처음부터 끝까지 명언집을 모아놓은 책은 사실 재미는 무지 없으니까.  인터뷰나 강연, 판결문들을 모아놓은 거라 '재미'라는 요소는 배제가 된 글들이어서 당연히 그럴테지... 하지만 난 이 책을 다 읽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법정에 선 페미니스트』에 언급되었던 긴즈버그의 반대 의견서나 판결문을 참고하여 가장 마지막에 있는 연보 및 주요사건 부분을 먼저 읽어보았다.  이슈가 되었던 사건들, 그리고 페미니즘의 역사에서 기억될 만한 역사적인 실제 판결이나 사건들이기도 했고, 요즘 부쩍 내가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서인지  생각보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두 권의 책에서 다룬 동일한 사건들이 다른 말들로 서술이 되어 있어서 읽는 재미가 또 남달랐다. 역시 순서를 바꿔 읽기를 잘했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세 번째 챕터인 #나의 인생을 읽게 되었고 그녀의 사생활을 잠시 나마 읽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지루한 말들도 그냥 술술 읽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의 인생과 옮긴이의 말, 그리고 이다혜(<씨네 21>, 작가) 기자가 쓴 해제 부분을 읽고 긴즈버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고 그러고 다시 다른 글들을 읽고 나니 기억하고 싶은 말들이 생겼다. 긴즈버그의 말들을 통하여 그녀의 신념과 열정, 그리고 진정한 용기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는 것이 좋았다.  그녀의 뛰어남도 다시 인정하게 되었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를 검색했더니 155cm 단신의, 강단있고 야무지게 생긴 얼굴로 대법관복을 입은 사진이 보이고,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라는 그의 미들네임 덕분인지. 다스 베이더의 몸과 그이의 얼굴을 합성한 짤이 보인다. 근엄한 표정인데도 확 친근감이 인다.~~^^




#법

   평등권 수정헌법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평등권을 그저 종이에 적힌 진술문이 아닌 실재하는 권리로 만들려면 그것을 실행할 의지가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2013년, 예일 대학교 로스쿨(26쪽)


   수정헌법 제2조는 그 기능을 다했다는 점에서 시대에 맞지 않다. 법원이 제2조를 올바로 해석했다면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미국이 신생국가였을 때 수정헌법 제2조는 매우 중요했다. 그 조항은 총기 소지에 대한 제한적 권리를 부여했지만,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한 것이었다. 그 목적이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전쟁에 나가 싸울 민병대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 2013년 9월 15일, <테이크어웨이>(미국의 아침 라디오 뉴스 프로그램), (27쪽)


   공정하게 집행되는 사형이란 있을 수 없다. 문제는 바로 그것이다. 누가 사형되는가? 그것은 룰렛 회전판이지 정의로운 제도가 아니다.                                                - 2015년 2월 12일, 스미스소니언 협회.  (28쪽)




   _ 변호사와 판사 그리고 법률 업무

   변호사들이 사회와 국가. 세계의 눈물, 가난하고 잊힌 사람들, 사회적 혜택과 신뢰를 받지 못하는 소수자라서 성공으로부터 배제된 사람들의 눈믈을 닦는 일에 나서지 않는 것은 댗체로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니다. 그보다는 무관심과 이기심, 이미 일을 과도하게 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일 가능성잉 높다. 넘어서기가 쉽지 않은 감정이다. 그러나 변호사가 스스로를 하루 일해 일당을 버는 장사꾼이 아닌, 진실한 학문적 직업인으로 생각한다면 타성과 책상에 쌓인 서류 더미, 시간 부족을 극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 보답이 참으로 크기 때문이다.

                                                                    - 2013년 5월 2일, 미국변호사협회 이니셔티브. (31쪽)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

                                                                    -1993년 7월, 미 상원 법사위원회 인준 청문회. (32쪽)



   _ 여성과 법

   고용주들은 "우리 사무실에 여성 변호사는 필요 없습니다"라거나 "여성 변호사를 한번 써봤는데 최악이었어요"라고 대놓고 말했다. 그래서 나의 대답은? '일 못하는 남성 변호사를 몇 명이나 쓰고 계시죠?"였다. 

                                                                           - 2016년 9월 7일, 조지타운대학교 법률센터. (49쪽)


   때로 사람들은 내게 묻는다. "자, 이제 여성 대법관이 세 명입니다. 미국 연방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몇 명 있어야 충분하다고 보십니까?" 그러면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아홉 명이 될 때라고.(이 발언 뒤에 긴즈버그는 "이렇게 대답하면 사람들이 의아해하지만, 대볍원이 대법관 9인 체제가 된 이후로 오랫동안 대법관 아홉 명이 모두 남성이었다. 여성 대법관이 아홉 명이 되지 말란 법이 있는가?"라고 덧붙인다.)     -2016년 9월 7일, 조지타운대학교 법률센터. (58쪽)




#시민의 자유-자유롭게 너와 내가 되자


   _법 앞에 평등한 정의

   우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끔찍한 인종주의의 한 형태와 맞서 싸웠다. 그러나 거의 전쟁 내내 우리 군대는 인종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미국의 아파르트헤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라졌어야 했다. 우리가 외국에 나가 맞서 싸웠던 대상은 미국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인종주의였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15일, 캘리포니아대학교 헤이스팅스 로스쿨. (71쪽)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많은 사람들도 텍사스의 축복 속에서 성관계를 가질 수 있다. ... 지난 시대에 그 경계선이 무엇을 의미했건 간에 성관계가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출산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리에 어긋나는 게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렇게 구분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2003년 3월 26일, 로런스 대 텍사스 사건 구두변론. 

                            합의 하에 가지는 동성 간 성관계를 불법으로 규정한 텍사스주 법률에 대해. (79쪽)



   _여성 인권 운동의 역사

   내가 작은 성취나마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내 앞에도, 내 뒤에도 여성운동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폴리 머리, 도로시 케니언 같은 분들은 내 앞에 있었던 여성 운동가들이다. 그들은 1940년대와 50년대, 60년대의 페미니스트들이다. 희망이 없던 시절, 그들 덕분에 페미니즘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3년 9월 6일, 조지타운 대학교 법률센터. (83쪽)


   "여성의 권리"라는 표현은 다소 문제가 있다. 인간의 권리다. 법의 평등한 보호를 받을 모든 인간의 권리다.

                                                                               -2006년 12월, 애넌버그 클래스룸. (100쪽)



   _여성의 권리

   여성들이 여성 단체 같은 그들만의 작은 공간에 머물면서 자기들끼리만 공감할 뿐 남자들의 세계를 건드리지 않는 것, 이보다 반反페미니스트가 원하는 건 없다고 나는 늘 생각해왔다. 세상을 바꾸고 싶다면 지렛대를 쥐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

                                                                                   -2009년 7월 7일, <뉴욕타임스>. (103쪽)




#나의 인생


   1960년대와 70년대에 얼마나 많은 회의에 참석해 발언했는지 모른다. 꽤나 근사한 생각을 말했던 것 같다. ... 그러고 나서 어떤 남성이 내가 했던 얘기를 그대로 했다. 그러자 사람들이 그 얘기에는 귀를 기울이고 반응을 보였다.

                                                                                         -2009년 5월, <USA 투데이>. (133쪽)



   _삶의 교훈들

   독립적인 사람이 되라는 것은 이런 뜻이었다. 어느 날 내가 완벽한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평생 행복하게 살기를 어머니가 바랐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런 일을 이루든 못 이루든 스스로를 부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참 멋진 충고였다.                        -2016년 9월 12일, 노터데임 대학교. (147쪽)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부끄러워하지 마라. 목소리를 높여야 할때는 외로운 목소리가 되지 않게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라.                                                                  -2016년 9월 14일, 기업법률고문협회, (150쪽)



그리고 마지막 문장...

   삶의 길을 갈 때 발자국을 남겨라. 나를 위해 길을 닦은 사람들이 있었듯이 내 뒤를 따라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한다. 후세의 건강과 안녕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갈 수 있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다하라.

                                                               -2002년 5월 26일, 브라운대학교 졸업식 연설. (1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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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을 뒤흔들었던 성고문사건을 독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당시 투쟁했던 사람,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시민들, 그분들은 또 어떤 가슴으로 바라보았을까? 펜을 들고 사는 소위 작가라는 내 자신은? 한일합방을 늑대이빨에 찢기는 양의 비극으로 비유한다면 수많은 이 강산의 딸들이 일본 병사의 화장실 역할을 했던 일은 무엇으로 비유해야 하는지,
침묵하는 이 땅 남성들에게 묻고 싶고 만일 저 아우슈비츠(Auschwitz)의 참혹함보다는 낫다고 자위하는 리얼리스트가 있다면 우리는 인간임을 사양할밖에 도리가 없을 것이다. - P17

한 사람 책임지는 자 없고 벌받은 자 없는 그들에게 푼돈얻어낸, 청풍당상의 그야말로 더럽혀지지 않았던 양반들, 차라리 그것은 희극이다. 혹자는 말하리라. 그 푼돈도 우리 발전의 밑천이 되었노라고. 그러나 자(尺]로는 잴 수 없고 저울로도 달 수 없는 가치도 있다. 그 가치로 인하여 우리는 인간인 것이다. - P17

아무리 즉물적(卽物的) 세태라 해도 우리는 그 이상의 가치를 꿈꾸며 산다. 물질도 있어야 하고 계산도 해야 하지만 삶의 존귀함도 있어야 한다. 인간의 존엄, 문화의 본질인간다운 연유도 거기 있으니 말이다. - P18

물질과 계산에 편중한 일본인들, 그들은 지난날을 잊은 듯부담 없이 이 땅을 밟는다. 어디서든 흔히 마주치게 되는 일본인, 그러나 상투적인 그들 표면보다 내면에 숨겨졌을 서늘한 칼날이 왜 자꾸 가슴에 와 닿는 걸까. 
일제 때 미신을 소탕한다 하여 무녀들을 잡아 가두었던 그네들이 한편으론 조선의 맥을 끊겠다고 봉우리마다 쇠기둥을 박았던 섬뜩한 그 일이 연상되면서 어찌하여 그들은 그토록 광란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그 광란의 뿌리는 무엇일까?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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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6-22 0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이런 책이 있었군요. 덕분에 알게되어 장바구니로 담아갑니다. 슝-

은하수 2023-06-22 23:18   좋아요 0 | URL
슝~~~
박경리 선생이 쓰신 일본 비판의 글인데 읽다보니 일견 속이 시원해지네요!^^
 
모두 다 예쁜 말들 민음사 모던 클래식 42
코맥 매카시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열여섯 살 카우보이 소년 존 그래디는 할아버지 장례식이 끝나자 집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미 이혼을 했고, 목장을 팔려는 어머니의 마음은 돌릴 수가 없다. 존은 자신의 말 레드보를 몰아 친구 롤린스와 함께 멕시코로 향한다. 말썽꾼 블레빈스를 만나 총격전을 벌이는 등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넘은 그들은 한 아름다운 목장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존은 말을 다루는 실력을 인정받으며 목장 주인의 딸 알레한드라와 운명적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평화도 잠시일 뿐, 여행 중 겪었던 말 도둑 사건에 다시 한 번 휘말리며 존과 롤린스는 위험한 모험을 시작한다."




책의 뒷 표지에 이렇게 간략히 설명이 나와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아주 깔끔한 스토리 텔링이다.  처음 책을 읽을 땐 환경적 배경에 대한 설명은 존재하지만 스토리 전개는 전적으로 주인공들의 대화를 통하기 때문에 앞 부분이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말 도둑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부터 진짜 소년의 모험이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이때 쯤이면 코맥 매카시 이 작가의 문체에도 익숙해져서 스토리를 이해하는데 하등의 문제도 없다. 오히려 뒤가 자꾸 너무 궁금해서 밤까지 읽다가 잠 안자고 싶어질 정도였다. 




책의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진짜 말을 타는 마지막 카우보이 스토리가 아닐까! 말을 대단히 사랑하고 진정 말을 다룰 줄 아는 존 그래디의 실력도 너무 멋진데다  말들이 자유로이 뛰어다니는 멕시코의 대 초원과 농장에서 농장주의 딸인 알레한드라와 운명적인 사랑을 하고 뜻하지 않은 사건에 휘말리는 일련의 과정들이 꾸밈 없는 문체로 인하여 더 빛을 발하는 느낌이 들었다.  남자들 세계의 멋짐이란 것이 폭발하는 느낌인데 이런 느낌을 일부러 장황하게 꾸며서 표현을 했더라면 그 멋짐이 오히려 반감되어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이건 내가 여자여도 충분히 느껴질만큼 멋지다고 느꼈다. 




여기서 나의 심정적 걸림돌은 사실 따로 있었는데 존 그래디와 롤린스, 그리고 알레한드라의 나이가 고작 열여섯, 열일곱이라는, 이해하기 힘든 나이에 있다.  말을 길들이고 총격 사건이 일어나고 또 진하고 진한 사랑의 스토리를 써나가는 그들의 나이... 그리고 그 이후의 모험에서 벌어지는 목숨을 건 격투 장면들, 어른들과의 협상으로 목숨을 구하는 과정, 또 그들의 예쁜 말을 다시 찾으러 가고 당했던 만큼 갚아주는 복수의 과정들을 통쾌하게 전개해 나가는 존의 나이가 고작 열 여섯이라는 것.  이것이 자꾸만 걸리적 거린다. 이들의 나이가 열아홉이라면, 스물이라면 이들이 사랑을 하고 모험을 감행하는데 걸림돌이 되지 않는걸까 생각을 해보지만 만약 이들의 나이가 그 나이라면 이미 성인이라고 할 수 있으니 스토리 전개가 당연히 달라질 것이고. 그 나이라면 말을 타고 미국과 멕시코의 국경을 넘어 시작되는 모험의 스토리에 대한 감동이 반감되었겠지.  그리고 이루어지기 어려운 사랑을 앞에 두고 차라리 도피를 택했을지도... 이러면 전면적인 수정이 이루어져야하는 거쥐. 고럼~~~!  춘향과 이도령의 나이도 이팔청춘 방년 열여섯이었을걸???  이렇게 생각해보면 열여섯이라는 나이와 존 그래디의 모험과 사랑의 스토리가 영 말이 안되는 것도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고 역시 이 나이가 적당한 나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열다섯도 열일곱도 아닌...  소년을 이제 막 벗어나 아직은 미숙한 청년으로 가는 이 나이가 이 작품에서 중요하다는 것에 고개가 끄덕끄덕해지는 것이다.  괜히 나이에 집착해서 엉뚱한 길로 혼자 새지는 말자.



그래서... 열여섯의 사랑도 모험도, 그리고 말들도 모두 다 예쁘다. 난 그렇게 느꼈다!


  


코맥 매카시...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건 <로드>였고 그 이후에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선셋 리미티드> ,<모두 다 예쁜 말들>까지 네 작품을 읽었다.  이 작품은 국경 삼 부작의 첫번째니까 앞으로  <국경을 넘어>,<평원의 도시들>을 읽게 될 것이다. 쿨론 아닐 수도 있고.

코맥 매카시의 타계에 즈음하여 서가에서 잠자고 있던 그의 작품을 다시 읽게 되었지만 나에게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서 모든 작품을 다 좋아하기는 어려울 것이고 코맥 매카시의 작품도 그렇지만 이번에 읽은 <모두 다 예쁜 말들>은 너무 당연하게 별 다섯 개를 줄 수 있다. 국경 삼부작을 몰아서 읽어도 좋겠지만 다음 책은 그에게 작가로서의 명성을 안겨준 작품인 <핏빛 자오선>이 될지도 모른다.  그 작품이 궁금해졌댜. 하지만 작품 선택의 가능성은 늘 열려 있으니까... 어떤 작품이 될 지 지금은 나로서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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