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 없는 세계
백온유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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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우 없는 세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인수의 세계!

   스스로 집을 나왔든, 쫓기듯 몸을 피해 집을 나왔든... 청소년들이 집을 나와 겪는 일들은 이제 어떤 글을 읽는 것보다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뉴스나 칼럼 등을 통하여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었지만 이보다 더 자세히 알기는 어려울 정도로 너무 세세히 알게 되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 읽는 내내 드는 이 답답함을 어찌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졌다. 특히 이 작품의 화자인 "인수!"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상황에서도 하고 싶은 말,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속으로만 삼키는 그 아이의 속마음이 너무 너무 답답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화자인 인수는 공부도 못하고 성격도 극소심형이고 말도 별로 없어서 어느 곳에서도 있는 듯 없는 듯한 사람.  거기다 돈을 좀 번다는 자칭 자수 성가형 아버지는 가정 폭력을 일삼는 사람이다.  하지만 아버지에게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듯 하다. 


   "어머니를 가여워하고 애처로워하는 마음을 서운함이 앞질렀다. 내가 희생한 보람도 없이 너무도 쉽게 아버지를 용서하고 상황을 무마해버린 어머니에 배신감을 느꼈다." (61)


   "기묘하게도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날의 폭행이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다시 일상을 살아갔다. 부부동반 모임에도 빠짐없이 나갔고 결혼기념일에는 서로 선물을 주고 받았다. 다음 날에는 다시 폭행, 그 다음 날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주 앉아 밥을 먹었다. 이런 일관성 없는 일상에 대해서라면 어렸을 때부터 자주 반복되어온 일이라 초연해질 법도 한데 나는 점점 더 심한 멀미를 느꼈다. 두 사람이 아무렇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내가 유별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61)




   가정 내에서 아버지에 의한 일상적인 폭력이 난무하고 그것을 반성하고 대화를 통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다시 받아들이며 화해를 하고 다시 폭력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최소한의 과정은 인수의 집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결핍"의 가정에서 자란 인수이기에 폭력을 행하고 그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으며 자식인 인수에게 어떠한 악영향을 미칠 것인지 돌아보지 않는 부모를 정말 일상적으로 보고 자란 인수라면 어떠한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인수에게는 답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을 거 같다.  그래서 마음 속에 드는 의문이나 불안, 배신감, 고통, 슬픔을 안으로만 삭이게 되었고, 어머니를 때리고 자신을 무섭게 하는 아버지 뿐만 아니라 맞는 어머니마저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머니를 때리는 아버지에 대항하여 서로 몸싸움을 벌이다 아버지를 밀어 넘어뜨려 버렸고 코뼈 골절로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아버지에게 잘못을 빌라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던 그날로부터 인수의 삶을 미세하게 틀어지기 시작한다. 

   집을 나온 이후에도 환청에 시달리기도 하고 모든 의욕을 상실하였으며 한 여름의 더위에도 극심한 추위를 느끼는 등의 정신적 문제를 경험한다.  이러한 증상은 집을 나와 집단으로 생활하던 '우리집'이라고 부르던 곳에서의 생활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직장을 갖고 일상을 보내는 생활 중에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난다.  집을 나와 생활하는 청소년의 시간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시간들도 위험 속에 노출이 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인의 삶과는 다른 신체적, 정신적 문제를 내포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그러한 위험 속에 노출이 되었던 인수를 변호사를 동원하여 빼내려 하면서도 자신의 명예와 주변의 평판만을 생각하고 아들 인수의 진정한 내면은 돌아보려 하지 않는 아버지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라면 당연히 인수부터 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말이다. 



   거리에서 생활하는 청소년들은 그 불리한 삶의 양상들로 인하여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어른들로부터 노동 착취를 당하는 건 기본이고 폭력과 폭행에 다반사로 노출된다.  우리는 흔히 그 아이들을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이라는 말로 부르면서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지만, 그 아이들이 집을 나와 어디에서 생활하는지, 어디에서 밥을 먹고 어디에서 돈을 벌어 생활을 이어나가는지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이 소설은 그러한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던 나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으면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어떻게 마련해야 할지... 이런 구체적인 방식이 소설에서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다시 생각하게 하고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사실 잘 모르겠다. 작품 하나 읽었다고 내가 당장 무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지만, 관심을 가지고 환기시키는 역할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글을 남겨두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못하고, 도움의 손길도 내밀지 않는, 그래서 아직 인수와 같이 외롭고 고통에 찬 삶을 살아가는 아이들이 이 사회에 셀 수 없이 많다면,  그건 정말 너무 마음이 아플 거 같다. 나처럼 화가 나는 상황이 생기면 화를 내고 퍼부어버리고, 친구들에게라도 나의 치부를 털어놓고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인수처럼 겁이 많고 소심하면서 가장 지지해 주어야 할 어머니, 아버지로부터도 관심을 받지 못하는 환경에 처해 있다면, 그래서 누구에게도 터놓고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치료를 도와야 한다. 하나하나 쌓여만 가는 심리적 고통으로 인하여 고통의 나날이 누군가의 따뜻한 온기로 데워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다운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인수가 '이호'를 만나고 그 따뜻함을 경험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이젠 '이호'에게 하나하나 자신을 내보이고 부디 말할 수 있기를... 어떠한 제도적인 장치보다 아름다운  '이호'라는 사람의 따뜻함,  가장 좋은 결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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