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정원 대산세계문학총서 125
바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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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지성사에서 꾸준하게 번역되어 출간되고 있는 대산세계문학총서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선뜻 도전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때로는 엄청난 분량 때문에(최근에 출간된 벤 오크리의 <굶주린 길>) 혹은 정말 처음 듣는 생소함, 그것도 아니라면 읽기 시작했지만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하는 다양한 이유 때문이다. 최근에 실패작으로는 에른스트 윙거의 <대리석 절벽 위에서>을 꼽을 수 있다. 다닐로 키슈의 책도 호기심에 사기는 했지만 아예 펴보지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중국 3대 문호로 손꼽히는 바진 선생의 신간 <휴식의 정원>이 번역되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냉큼 사기는 했지만 독서는 요원하게만 느껴지던 차에 어제부터 읽기 시작해서 이틀 만에 다 읽을 수가 있었다.

 

아직까지 바진 선생의 다른 작품들과 만나볼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망설여지기는 했지만, 200쪽 조금 넘는 분량이라 다른 작품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었다고나 할까. <휴식의 정원>은 기본적으로 바진 선생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문인 라오리의 시선을 통해 중일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청두에서 있었던 몇 가지 사건들을 한 바구니에 꿰어 담아 만든 이야기다. 국가의 운명을 건 전쟁이 한창이었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전쟁에 대한 일화는 공습경보 한 차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가 대후방이라고 칭하던 국민당 정부가 장악하고 있던 일본군의 침략이 미치지 못하는 쓰촨 지방의 청두가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한다.

 

십 수 년간을 타지에서 떠돌던 소설의 화자 리 선생은 청두에 돌아와 잠시 호텔에 머물다가 거리에서 우연히 소학교, 중학교 심지어 대학까지 동문한 친구 야오궈둥을 만나게 된다. 부친으로 받은 받은 전답이라는 경제적 바탕으로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유복한 생활을 누리던 지기에게 리 선생은 식객으로 신세를 지게 된다. 그리고 라오야오가 몰락한 양씨 일가에게 사들인 대저택에 위치한 “휴식의 정원(憩園)”에 머무르게 되면서 보고 듣고 직접 체험한 일들을 독자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중국에서는 역사시대 이래 유력자들이 문인들을 식객으로 보호해왔다. 예나지금이나 예술가들은 예술활동과 경제활동을 더불어 할 수 없었기에, 유복한 경제력을 지닌 이들이 예술가들의 예술활동을 지원하는 식객 시스템을 유지해왔다. 소설을 이끌어 가는 화자인 우리의 리 선생은 비록 친구의 집에 얹혀사는 식객이긴 하지만, 염치를 아는 지식인으로 아랫사람들에게조차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그런 점에서 개인적으로 리 선생의 인격에 대해 합격점을 주고 싶다.

 

그가 “휴식의 정원”에 들어오게 되는 첫 날, 아름다운 정원에 있던 동백꽃 가지를 꺾어 가려던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은 저택의 이전 주인이었던 양씨네 셋째 나리의 두 번째 아들로 이름은 한얼이다. 아직 어린 소년이지만, 당돌하게 자기주장을 펼쳐 보이는 이 소년의 가계에 얽힌 이야기가 소설의 한 축을 구성한다. 바진 선생은 조금 뜸을 들이면서 휴식의 정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얽힌 사람들의 일상과 미스터리를 조금씩 풀어 나가는 방식으로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마지막으로 소설 쓰기에 매진하는 바진 선생의 페르소나 리 선생의 창작욕을 섬세한 바늘로 찌르듯 환기시키는 역할을 맡은 친구 라오야오의 새부인 완자오화가 등장한다. 조용하면서 동양적 외모를 가진 전형적 현모양처의 화신으로 등장해서, 소설가 리 선생에게 왜 좀 더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글을 쓰지 않느냐고 되묻는 당찬 여성상을 들어내 보이는 결기가 인상적이다. 자고로 모든 예술가에는 예술혼을 자극하는 뮤즈가 필요하다고 하던데, 그런 점에서 야오 부인은 훌륭한 독자이자 비평가가 아닐 수 없다. 첫만남에서 그녀의 웃음 덕분에 자신의 창작열의 매개였던 ‘알 수 없는 중압감’마저 덜어낼 수 있었다고 표현할 정도다. 그녀에게 들은 자아의 확장이라는 말은 큰 울림으로 작가에게 다가온다.

 

다년간의 작품 활동을 통해 청장년의 혈기를 다스려낸 중년의 바진 선생은 인생을 관조하듯 휴식의 정원이라는 공간을 채우는 동백꽃송이, 바닥에 떨어진 사기 주걱 같은 모양의 목련꽃에 대한 단상은 물론이고, 몇 마리의 귀찮은 파리와 모기에조차 섬세한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작가의 타인에 대한 진정성과 인도주의 정신은 도박과 축첩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처자식에게 외면당한 양씨 집안의 양멍츠를 구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장면과 아직 자아를 이루지 못한 십대소년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고 한얼을 도우려는 모습에서 정확하게 포착할 수가 있었다.

 

한편, 늙은 하인에게 들은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이 야수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생채기를 내기도 했다고 증언한다. 야오 집안의 말썽꾸러기인 샤오후의 미래를 걱정하면서도 식객인 자신의 처지를 고려해서 친구에게 말하는 수위를 조정하는 장면 또한 일품이었다. 바진 선생이 전개하는 몇 가지 이야기 군상 속에서 적절하게 자리한 균형이야말로 <휴식의 정원>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구성의 화룡점정으로 작가 개인의 일과 생활 그리고 작품마저 공허하고 허무하게 만드는 변화무쌍한 감정의 소용돌이와 싸우며 글쓰기에 매진하는 예술가(자신)의 고뇌까지 얹어 놓으니 그야말로 천의무봉이 따로 없을 지경이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는 ‘휴식의 정원’은 중국인들이 이상향으로 품어온 무릉도원의 다름이 아닐 것이다. 걱정과 근심 없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전쟁이라는 폭력의 극한 속에서도 그런 공간은 가정이라는 이름의 울타리에서 존재한다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바진 선생은 한 발짝 더 나가 그런 공간이라도 모든 가정이 가진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톨스토이의 예언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내 주었다. 또한 작가는 모든 이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포기하지 않는 인도주의 이상(理想)과 희망이야말로 시대가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가치라는 사실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 번 핍진하게 그려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독서로 부족함이 없다.

 

[리딩데이트] 2014년 12월 21일 ~ 22일 오후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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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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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아직도 준전시상태라는 사실에 대해 미처 모르고 살았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한국전 휴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이렇게 긴 명칭의 휴전협정 어디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 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대치 상태에서 어디로부턴가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이북을 의심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미묘한 정전 상태에서 소설가 배명훈은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미사일 폭격이 자신이 즐겨 찾던 맛집을 골라 때려 부순다는 것이 <맛집 폭격>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 <맛집 폭격>을 보고는, 배명훈 소설가가 맛집 투어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맛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산문 에세이류가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듣도 보도 못한 인도음식인 마살라 도사나 터키식 패스트리인 바클라바 그리고 하몬 이베리코 같이 물설고 낯선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라는 희한한 명칭 소속의 민소는 미사일 피격 장소를 찾아 조사 하던 중, 피격 장소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혼자서 소설을 이끌어 가기에는 힘들었던 듯 윤희나라는 낙하산이지만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주인공과 어느 순간에라도 썸을 탈 수 있는 그런 사이드킥이 투입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의 페이지 사이로 미사일 하나가 책갈피처럼 파고들었다. (44쪽)

 

서울 도심 한복판에 미사일이 매일 같이 떨어지는 가운데도 사람들이 일상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이 아닌 마당에야,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삶은 평소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지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긴 북한이 보유한 어마어마한 수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안에 수도권이 들어가는 마당에 64년 전처럼 피란 가겠다고 바리바리 짐을 싸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슬쩍 빗겨나가 작가가 고른 소재가 바로 맛집 피격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소설의 제목에 대해 한 가지 딴지를 걸고 넘어지자면 폭격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적의 군대나 시설물, 또는 국토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설에서 미사일은 인도양의 모처에 위치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 않았나. 차라리 <맛집 때려 부수기>가 낫지 않았나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어찌어찌해서 주인공 민소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았던 “하나였던 영혼을 둘로 쪼개 나눠 가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일상화된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음모론도 등장한다. 유사 이래 사회가 혼란할수록 기승을 부리는 음모론 조성을 위한 모든 조건은 비정상이 일상화된 국가에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에스컬레이팅’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불안과 긴장을 각성제로 총력전에 돌입하려는 시민의 폭력적 측면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어쩌면 전쟁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의 완결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기존의 적과 우방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린 상황에서, 국지적 분쟁을 조장해서 계속해서 무기를 팔아 수익을 내기 위한 초국적 군사용역 전문 기업이 등장해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민소가 사랑하는 여인 송민아리가 예의 복잡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이트 칼라 용병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소가 맛집들을 정밀 타격하는 미사일 공격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에게 위해가 점증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 <맛집 폭격>은 마치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처럼 초반과 중반까지는 미사일 공격에 대한 미스터리와 맛집이라는 대칭 구조가 잘 어우러지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식의 설정(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소설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독자는 작가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당장에라도 달려가 맛보고 싶은 맛집 순례기에 가까운 절묘한 묘사와 기술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입안 한가득 침이 고여 오게 만드는 바삭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자극하는 찹쌀탕수육과 자본주의 정신이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먹고사니즘과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을 고찰해 본다면 그 또한 아주 황당무계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한발에 자그마치 100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토마호크 미사일급의 공격을 그토록 오래 감당할 수 있다는 설정은 여전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 또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소설이 아닌 현실적 핍진성의 연장에서 본다면 불가능한 의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오늘 점심은 그저 바삭바삭하고 입안 한가득 쫀득함이 물밀듯 밀려오는 그런 찹쌀탕수육으로 한 끼를 때웠으면 하는 바람일 따름이다. 아, 그리고 읽다가 만 배명훈 작가의 전작 <은닉>도 마저 읽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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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바다출판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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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렇게 문득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모든 귀결점이 바로 죽음으로 향해 있다는 생각이 들면, 아스라해지는 기분을 지울 수가 없다. 하지만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으로서 언젠가 맞이하게 될 운명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사는가 또한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신형철 선생의 팟캐스트 <문학이야기>를 통해 알게 된 일본 순문학 작가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은 그렇게 죽음 혹은 상실에 관한 네 가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나의 편견일 수밖에 없지만 그동안 일본 문학에 대한 나의 평가는 야박했다. 서구, 라틴아메리카 작가들의 책을 꾸역꾸역 읽어대면서도 이웃 나라 일본 문학에 대해서는 왠지 서구의 그것에 비해 한 수 아래로 생각해온 게 사실이다. 지금은 소원해진 지인도 언젠가 나에게 일본 문학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예로 들면서 그런 충고를 해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신형철 선생이 손에 꼽은 하지만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순문학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미야모토 테루 작가를 만나게 됐다. 소개된 세 명의 작가 중에 이 책이 절판되었다는 이유도 다른 작가의 작품에 앞서 이 책을 읽게 해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이 죽일 놈의 절판본에 대한 사랑이란.

 

신형철 선생이 직접 낭독해준 <밤 벚꽃>에 아무래도 먼저 손이 갔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들이 같이 읽는 낭독이 주류 독서방식이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가 홀로 읽는 묵독이 대세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그런 낭독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래도 독서라는 것이 개인적인 체험이다 보니 낭독보다는 묵독이 더 낫지 않나 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단편 <밤 벚꽃>의 주인공은 고베에 사는 49세의 이혼녀 아야코다. 소설은 그녀의 단아한 목소리로 전개된다. 20년 전에 이미 이혼했고, 외아들이었던 슈이치를 1년 전에 사고로 잃었다.

 

그렇게 폐경기에 접어 든 혼란스러운 그녀에게 두 명의 남자가 찾아온다. 한 명은 전 남편인 야마오카 유조 그리고 다른 한 명은 아들을 잃고 하숙을 친다는 말에 하룻밤 신세지겠다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신원불명의 한 청년이다. 이 둘 때문에 아야코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여전히 서먹하지만, 죽은 아들의 아버지이기도 한 유조를 대하며 아야코는 그동안 자신이 미처 몰랐던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남편의 외도로 가차 없이 이별을 선언했지만, 그 때 한 번만 눈감아 주었더라면 하는 후회가 그녀를 엄습한다. 그런다고 뭐가 달라졌을까. 전기기술자를 자처하며 그녀를 찾아온 다른 한 청년은 일박을 정중하게 요청하는데, 알고 보니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로 아야코가 거주하는 저택에서 신혼의 첫날밤을 보내고 싶은 속셈이다. 그들을 유혹한 밤 벚꽃을 바라보며, 아야코는 자신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음을 회상한다. 존재의 부재를 대면하고서야 비로소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된다고나 할까. 삶은 언제나 우리에게 판단과 결정을 요구하는데, 그 결과는 온전하게 자신의 책임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 뒤에 바로 따라 읽은 <박쥐>는 맨숭맨숭한 느낌이었다. 나(곤스케)는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시절 친구로부터 친구 란도의 죽음을 전해 듣는다. 마침 여자친구 요코와의 만남에 늦은지라 경황없이 그녀에게 달려간다. 요코는 교토의 시센도를 보고 싶어 하지만, 나는 시센도보다 요코에 대한 순수한 욕망에 더 관심이 있을 뿐이다. 소설집 <환상의 빛>에서는 기묘한 순간에 죽음 혹은 상실이라는 공통된 주제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를 격발시킨다. 요코네 집에서는 가업을 이을 데릴사위를 찾고 있기에, 그녀와의 이별은 필연이다. 오래전 오사카의 어느 항구에서 봤던 박쥐처럼, 곤스케의 상념은 부서진다. 상남자였던 란도와 함께 오사카 항구에 산다는 묘령의 소녀를 찾아 나선 기이한 여정이 이어진다. 그 여행은 요코와의 교토여행과 대조를 이루며, 곤스케가 반추하게 된 삶의 진실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든 마주하게 될 필연적인 요코와의 이별에 방점을 찍는다. 이거야말로 신형철 선생이 추천한 담백하기 짝이 없는 일본 순문학의 맛이었던가.

 

<침대차>는 밤을 타고 달리는 야행열차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다. 나는 내일 중요한 계약을 앞두고, 야행열차를 타고 목적지 도쿄로 향한다. 우리네 삶에 뚜렷한 목적지가 있었던가. 야행열차를 타는 나의 준비물은 주간지 두 권과 포켓용 위스키가 전부다. 신칸센을 타면 더 빨리 도쿄에 다다를 수 있겠지만, 저혈압이 있는 주인공은 침대차를 선택한다. 야행열차의 완만한 울림과 사람들의 북적거림 그리고 독특한 정적이 주는 감상이 야행열차의 제 맛이 아니겠냐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기계쟁이에서 능력 있는 영업사원으로 변신한 나는 파트너 고타니와의 합작품인 이번 계약에 얽힌 사연들을 회상하며 밤을 달린다. 그러던 중, 도중에 승차한 어느 노인의 통절한 울음소리를 들으며 초등학교 시절 친구였던 가쓰노리와의 추억을 되살려낸다. 자신에 집에 놀러 왔다 강에 빠져 죽을 뻔한 가쓰노리가 결국 대학교 때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사실에 도달하게 된다. 미야모토 테루 작가는 동승한 노인 역시 그런 참척의 슬픔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추정을 독자로 하여금 하게 만든다.

 

그렇게 세 편의 이야기를 다 읽고 나서야 비로소 표제작인 <환상의 빛>을 읽기 시작했다. 한신 전차에 치어 자살한 남편을 그리는 유미코가 주인공이자 화자로 등장한다. 남편과 그렇게 사별한 후, 유미코는 7년이 지나 오쿠노토의 소소기 바다에 새로 둥지를 틀게 되었는데 그곳은 짙은 초록빛 물색과 일 년 내내 해명이 울어대는 가난한 바닷가였다. 우리 같은 속물들은 당장 이제 막 태어난 아들 유이치와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가 걱정인데, 정작 당사자 유미코는 남편이 왜 죽었는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알고 싶어한다. 하지만, 죽은 남편이 그 이유를 들려줄 리 만무하다. 그에 대한 질문과 대답 모두 유미코의 몫인 셈이다.

 

죽은 사람은 죽었어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사람들의 말처럼 유미코 역시 하루의 삶을 이어가고, 효고에서 멀리 떨어진 소소기 바다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미야모토 테루는 그녀의 신산한 삶의 원형을 제공하는 과거사에 동반자살한 이웃의 돈을 훔쳤다는 억울한 누명을 쓴 아버지의 이야기와 역시 치매로 가출한 할머니의 실종이 가족 책임이라며 경찰들이 찾아와 가난한 자기 집의 다다미까지 뜯어내고 땅바닥을 파낸 에피소드를 배치한다. 독자는 이 지점에서 과연 유미코가 소소기에서 새남편 세키구치 다미오 씨의 아내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녀가 알고 싶어 하는 삶의 진실은 도저히 알 방법이 없다. 새남편 다미오 씨와 새출발하기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극복해야 하는데, 여전히 죽은 남편과의 대화는 계속된다.

 

<환상의 빛>을 다 읽고 난 소감은 솔직히 말해서 신형철 선생이 추천한 것처럼 그렇게 좋은지는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나도 좋은 것은 아니니까. 좋다면 기발한 아이디어 혹은 구성이나 플롯이 좋다던가, 서사의 전개 기법이 좋다든가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죽음과 상실이라는 주제를 전면에 내세운 미야모토 테루의 <환상의 빛>에서는 나의 감성을 울리는 무엇인가를 찾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나의 일본순문학에 대한 눈높이가 미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일본 출신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표제작 <환상의 빛>을 영화화해서 데뷔했다고 하는데, 기회가 되면 그의 작품도 한 번 영화로 만나 보고 싶다. 아마 그렇게 되면 정말 유미코가 말한 그 소소기 바다가 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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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족의 역사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1
리쿤우 지음, 김택규 옮김 / 북멘토(도서출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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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을 좋아하는 편이다. 약간 판화 스타일의 거친 듯한 그런 그림체를 좋아하는데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리쿤우 작가의 <내 가족의 역사>는 일단 합격점에 가깝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중국사에 대해 관심이 많아 고사성어 선집과 태사공 선생의 <사기열전> 따위를 즐겨 읽어서 그런지 인민해방군 출신 작가가 사진과 그림으로 보여주는 중국현대사에 대한 기록이 인상적이었다. 리쿤우 작가의 전작 중에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중국인 이야기>란 책이 있다고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전작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이야기의 발단은 중국 쿤밍의 어느 골동품시장에서 시작된다. 이 그래픽노블의 내레이터인 리 선생이 골동품 시장에서 라오치라는 골동품 중개상으로부터 <지나 정벌 쌍륙도>이라는 이름의 그림을 소개받게 되는데, 이것이 청일전쟁에 대한 희귀한 자료였다는 것이다. 메이지 27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딱 120년 전인 1894년 우리나라에서는 갑오동학운동이 벌어졌던 해이자 당시 동아시아의 강국 청제국과 부국강병의 기치를 내세운 일본 메이지 정부가 조선의 미래, 나아가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한판대결을 벌인 도박판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장차 제국주의의 초석을 다지게 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자료임에 틀림 없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라오치는 자신의 스승이 더 놀라운 자료를 가지고 있다면서 리 선생에게 예의를 갖추고 자신의 사부를 한 번 찾아오라는 말을 건넨다.

 

라오치의 스승이 가지고 있는 자료는 바로 193777일 베이징 남부의 루거우차오에서 벌어진 총격전이 중일 간의 전면전으로 확대되는 과정을 일본 종군기자들이 사진 기록으로 남긴 대단히 귀중한 자료였다. 리 선생은 준비한 카메라로 수천 장에 달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중국에서는 항일전쟁으로 부르는 중일전쟁이 끝난 지 70~80년이 다 되어 가도록 어떻게 이런 자료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는지 궁금해 한다. 그리고 그렇게 기록한 자료를 가지고 동료들과 분류 작업을 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한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비록 왕조제에서 공화제로 이행하기는 했지만, 19세기 아편전쟁 이래 서양 세력의 침탈에 시달리던 1930년대 중국은 이웃 일본처럼 부국강병의 기회를 갖지 못했다. 오히려 제국주의 열강의 먹잇감이 되어 굴기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 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장제스가 이끄는 국민당 정부와 마오쩌둥의 공산당 간의 국공내전으로 눈앞에 닥친 일제의 침략에 공동전선조차 형성할 수가 없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 전차와 같은 신식무기와 공병부대, 병참부대, 우편부대 등 다양한 병제를 갖춘 일본군의 전략 전술 앞에 중국군은 무력하게 무너졌다. 중국을 대표하는 대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는 물론이고 국민당 정부의 아성이라 할 수 있는 난징까지 함락당하는 장면들이 리쿤우 작가가 찍은 라오치의 사부가 어렵게 모은 자료 사진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유구한 중국 역사 중에서도 유독 치욕적인 일제 침략 시기를 리쿤우 작가는 <내 가족의 역사>에서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외면하고 싶은 치욕스러운 역사적 사실을 후세에 알려 다시는 그런 치욕을 겪지 말자는 작가의 의도일까. 만화 작가로서의 창작열보다 어떤 면에서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요하게 중일전쟁 당시 이모저모를 작가를 예리하게 파헤친다. 일본 침략군에 대항해서 항거에 나서라는 벽에 쓴 격문은 물론이고, 일본군에게 포로로 잡혔지만 당당한 중국군 포로들의 모습도 빠지지 않는다. 일본군 역시 전근대적 무기로 무장한 중국군을 깔보기는 했지만, 악조건을 무릅쓰고 싸운 중국군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면도 사진에 남아 있다. 난징공략전에서 무자비한 살상을 벌인 일본군이 보여줬던 그것과는 다른 장면이라 그런지 인상 깊었다. 친일 괴뢰정권의 수반이었던 왕징웨이와 부역자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매국노들이라고 외치는 작가의 일갈은 <내 가족의 역사>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책을 읽으면서 라오치의 사부가 대륙을 돌며 어렵사리 구했다는 자료의 정체를 일본인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와서 거액을 줄테니 물건을 넘기라고 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리쿤우 작가가 문제의 자료를 만나게 되는 과정은 마치 중국 고사에 나오는 장량이 황석공으로부터 얻은 <태공병서>의 사례가 떠올랐다. 나중에 라오치와 그의 사부를 작가가 찾아 나서지만 종적을 찾을 수가 없지 않았던가. 자료를 조사하던 중, 일본 항공대의 쿤밍 폭격으로 작가의 장인어른이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비극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끝으로 이 그래픽노블은 대단원에 이른다.

 

이웃나라 일본은 여전히 중일전쟁 당시 그들이 중국 각지에서 벌인 전쟁범죄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아니 나아가 역사 교과서에서조차 부인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 그들이 벌인 역사에 대한 진상조사와 진정성 있는 사과 없이 그들이 주장하는 평화공존은 요원하게만 들릴 뿐이다. 그래서 만델라가 남긴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말을 되새기게 하는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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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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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 아저씨의 죽음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아파트의 어느 특정 주민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분신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점이다. 이 사건을 두고 경비노동자의 최저 임금 예외 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인간이 타인을 자기와 같이 똑같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우리에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로도 유명한 페터 비에리 교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특성이자 권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문학적 사례를 통해 <삶의 격>에서 기술한다.

 

어쩌면 페터 비에리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의 격, 다시 말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아래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대중은 모두 자신이 가진 노동을 팔아 생활의 밑천이 되는 돈을 벌기 마련이다. 역설적이지만, 그 돈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존엄성의 유지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터 비에리 교수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인사청탁의 예를 들고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장 하워드에게 주인공 로먼은 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해야 한다. 들어 주지 않을 부탁이라고 생각한다면 청탁자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탁 혹은 부탁은 들어 주는 이에게 일종의 암묵적인 강요가 아닐까. 부탁을 구걸로 만드는 예속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되겠는가.

 

비에리 교수는 상호 간의 존엄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만남이라는 요소에도 주목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경비노동자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언행의 본질과 작가가 역시 초반에 언급한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의 사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거나, 그런 게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바로 관계의 취약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경비노동자나 난쟁이를 철저하게 타인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만약 내 아버지나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비에리 교슈는 프란츠 카프카의 저명한 소설 <소송>의 예를 들면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소송에 걸렸다고 주인공 요제프 K.를 협박해서 굴욕감을 느끼고 무력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내놓는다. 주인공이 알 권리를 배제당한 상태에서 그의 가진 권리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송두리째 무시당하게 되는데 그 결론은 파멸이었다.

 

사실인 체 하는 허언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차원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정도의 허풍 정도라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공약(空約)은 어떨까. 자신을 뽑아만 준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비에리 교수는 고질적인 이런 공허한 헛소리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악의적 허풍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대신 당장의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정치권의 작태를 우리는 그야말로 매일 같이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비에리 교수는 모두 8개의 카테고리에서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들려준다. 사실 누구나 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한 지식인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에 나오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소멸을 다룬 장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우리는 외적 행위와 내적 생각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한 개개인의 사변적 태도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된다. 그의 서술은 결국 안락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 걸까.

 

어떤 이야기도 그렇지만, 페터 비에리 교수는 명확한 결론으로 독자를 유도하지 않는다.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것 또한 독자가 가진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의 타인과 관계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호모 소시에타티스(Homo Societatis)에게 불가항력적인 요소인 결함과 과실 때문에 발생하는 존엄의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존적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삶의 격을 지키기 위한 존엄성이라는 미로를 이렇게 멋지게 정리해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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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0-24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3장까지 읽었는데 이 작가의 지성과 품위랄까요...그런 점에 감탄하며 꾸역꾸역 읽었습니다.레삭님 리뷰 읽으니 좀 정리가 되는 듯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