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폭격
배명훈 지음 / 북하우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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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아직도 준전시상태라는 사실에 대해 미처 모르고 살았다. 1953년 7월 27일 맺어진 한국전 휴전협정의 정식 명칭은 '국제연합군 총사령관을 일방으로 하고 북한군 최고사령관 및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을 다른 일방으로 하는 한국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이다. 서글픈 사실 중의 하나는 이렇게 긴 명칭의 휴전협정 어디에도 우리나라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언제 다시 무력충돌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대치 상태에서 어디로부턴가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두말할 것 없이 이북을 의심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런 미묘한 정전 상태에서 소설가 배명훈은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어느덧 일상이 되어 버린 미사일 폭격이 자신이 즐겨 찾던 맛집을 골라 때려 부순다는 것이 <맛집 폭격>에서 풀어나가는 이야기의 핵심이다.

 

처음에 이 소설의 제목 <맛집 폭격>을 보고는, 배명훈 소설가가 맛집 투어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맛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산문 에세이류가 아닐까 하고 지레 짐작했지만, 뭐 언제나 그렇듯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듣도 보도 못한 인도음식인 마살라 도사나 터키식 패스트리인 바클라바 그리고 하몬 이베리코 같이 물설고 낯선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것이 이 소설의 특징이라고나 할까. 에스컬레이션 위원회라는 희한한 명칭 소속의 민소는 미사일 피격 장소를 찾아 조사 하던 중, 피격 장소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물론, 혼자서 소설을 이끌어 가기에는 힘들었던 듯 윤희나라는 낙하산이지만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 주인공과 어느 순간에라도 썸을 탈 수 있는 그런 사이드킥이 투입된다.

 

그 반복되는 일상의 페이지 사이로 미사일 하나가 책갈피처럼 파고들었다. (44쪽)

 

서울 도심 한복판에 미사일이 매일 같이 떨어지는 가운데도 사람들이 일상을 그대로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게 다가왔다. 한국전쟁 같은 전면전이 아닌 마당에야, 국가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삶은 평소와 다르지 않을 거라는 작가의 지적이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하긴 북한이 보유한 어마어마한 수의 장사정포의 사정거리 안에 수도권이 들어가는 마당에 64년 전처럼 피란 가겠다고 바리바리 짐을 싸는 것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슬쩍 빗겨나가 작가가 고른 소재가 바로 맛집 피격이 아닐까. 그리고 여기서 소설의 제목에 대해 한 가지 딴지를 걸고 넘어지자면 폭격에 대한 사전적 정의는 “비행기에서 폭탄을 떨어뜨려 적의 군대나 시설물, 또는 국토를 파괴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는데 소설에서 미사일은 인도양의 모처에 위치한 잠수함에서 발사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지 않았나. 차라리 <맛집 때려 부수기>가 낫지 않았나 하는 공상에 빠져본다.

 

어찌어찌해서 주인공 민소는 불의의 사고로 죽은 것으로 알았던 “하나였던 영혼을 둘로 쪼개 나눠 가진 것만 같았던 사람”이 일상화된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음모론도 등장한다. 유사 이래 사회가 혼란할수록 기승을 부리는 음모론 조성을 위한 모든 조건은 비정상이 일상화된 국가에서 그야말로 빛의 속도로 ‘에스컬레이팅’하기 시작한다.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운다는 것은 불안과 긴장을 각성제로 총력전에 돌입하려는 시민의 폭력적 측면을 자극하는데 효과적으로 작동한다. 어쩌면 전쟁이야말로 공포 마케팅의 완결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냉전의 종식으로 기존의 적과 우방이 엉망으로 뒤섞여 버린 상황에서, 국지적 분쟁을 조장해서 계속해서 무기를 팔아 수익을 내기 위한 초국적 군사용역 전문 기업이 등장해서 모종의 음모를 꾸미는 장면은 낯설지 않다. 문제는 민소가 사랑하는 여인 송민아리가 예의 복잡한 컨설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화이트 칼라 용병이었다는 사실이다. 민소가 맛집들을 정밀 타격하는 미사일 공격의 진실에 다가설수록, 그에 비례해서 자신에게 위해가 점증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보는 듯한 기시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소설 <맛집 폭격>은 마치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 시나리오처럼 초반과 중반까지는 미사일 공격에 대한 미스터리와 맛집이라는 대칭 구조가 잘 어우러지면서 적절한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 같다. 하지만, 미사일 공격의 배후에 엄청난 음모가 숨겨져 있다는 식의 설정(물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소설은 비틀거리기 시작한다. 독자는 작가에게 묻기 시작한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뭐지?’라고 말이다.

 

개인적으로 당장에라도 달려가 맛보고 싶은 맛집 순례기에 가까운 절묘한 묘사와 기술에 대해서는 합격점을 주고 싶다. 입안 한가득 침이 고여 오게 만드는 바삭바삭하고 쫀득한 식감을 자극하는 찹쌀탕수육과 자본주의 정신이 도대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자세히 모르겠지만, 먹고사니즘과 우리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물신주의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현실을 고찰해 본다면 그 또한 아주 황당무계한 설정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한발에 자그마치 100만 달러를 호가한다는 토마호크 미사일급의 공격을 그토록 오래 감당할 수 있다는 설정은 여전히 부담스럽게 다가온다. 이 또한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우리의 소설이 아닌 현실적 핍진성의 연장에서 본다면 불가능한 의제는 아니겠지만 말이다.

 

다른 건 모르겠고, 오늘 점심은 그저 바삭바삭하고 입안 한가득 쫀득함이 물밀듯 밀려오는 그런 찹쌀탕수육으로 한 끼를 때웠으면 하는 바람일 따름이다. 아, 그리고 읽다가 만 배명훈 작가의 전작 <은닉>도 마저 읽어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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