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격 -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방법 일상인문학 3
페터 비에리 지음, 문항심 옮김 / 은행나무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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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의 어느 아파트 경비노동자 아저씨의 죽음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그 아파트의 어느 특정 주민에게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분신했다는 것이 사건의 요점이다. 이 사건을 두고 경비노동자의 최저 임금 예외 건으로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을 수 있겠으나 그 중에서도 인간이 타인을 자기와 같이 똑같은 존중을 받아야 하는 인격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주는 충격의 파장은 상상을 초월했다. 스위스 출신의 철학자이자 우리에게는 파스칼 메르시어라는 필명으로 쓴 <리스본행 야간열차>로도 유명한 페터 비에리 교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져야 하는 특성이자 권리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방식의 문학적 사례를 통해 <삶의 격>에서 기술한다.

 

어쩌면 페터 비에리 교수가 이 책에서 말하는 삶의 격, 다시 말해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 무엇보다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 체제 아래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돈이 필요하고, 대중은 모두 자신이 가진 노동을 팔아 생활의 밑천이 되는 돈을 벌기 마련이다. 역설적이지만, 그 돈이 없다면 인간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존엄성의 유지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페터 비에리 교수는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에 나오는 인사청탁의 예를 들고 있다. 인사권을 가진 사장 하워드에게 주인공 로먼은 하고 싶지 않은 부탁을 해야 한다. 들어 주지 않을 부탁이라고 생각한다면 청탁자는 부탁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청탁 혹은 부탁은 들어 주는 이에게 일종의 암묵적인 강요가 아닐까. 부탁을 구걸로 만드는 예속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되겠는가.

 

비에리 교수는 상호 간의 존엄성 형성 과정에서 중요한 만남이라는 요소에도 주목한다. 서두에서 언급한 경비노동자에 대한 학대에 가까운 언행의 본질과 작가가 역시 초반에 언급한 난쟁이 멀리 던지기 대회의 사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존엄성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거나, 그런 게 뭐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의 대부분은 바로 관계의 취약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그들은 경비노동자나 난쟁이를 철저하게 타인으로 생각한다. 그들이 만약 내 아버지나 형제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행동을 할 리가 없을 것이다. 한편, 비에리 교슈는 프란츠 카프카의 저명한 소설 <소송>의 예를 들면서 아무 것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소송에 걸렸다고 주인공 요제프 K.를 협박해서 굴욕감을 느끼고 무력하게 만드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내놓는다. 주인공이 알 권리를 배제당한 상태에서 그의 가진 권리이자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은 송두리째 무시당하게 되는데 그 결론은 파멸이었다.

 

사실인 체 하는 허언에 대한 분석도 눈여겨볼 만하다. 타인에게 해가 되지 않는 차원에서 긴장을 풀어주는 정도의 허풍 정도라면 어느 정도 수용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정치인들의 반복되는 공약(空約)은 어떨까. 자신을 뽑아만 준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제들을 해결할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선거가 끝난 다음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변하는 그들의 모습을 수도 없이 보아 오지 않았던가. 비에리 교수는 고질적인 이런 공허한 헛소리야말로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악의적 허풍이라고 단언한다. 사실 대신 당장의 닥친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두루뭉술하게 넘어가려는 정치권의 작태를 우리는 그야말로 매일 같이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비에리 교수는 모두 8개의 카테고리에서 인간의 조건으로서의 존엄성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들려준다. 사실 누구나 다 이미 알고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한 지식인의 면모를 읽을 수 있었다. 특히 마지막 장에 나오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의 소멸을 다룬 장은 특히나 인상적이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이라는 운명 앞에 우리는 외적 행위와 내적 생각으로 자신의 죽음에 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는 울림이 있다. 죽음이라는 명제에 대한 개개인의 사변적 태도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하게 된다. 그의 서술은 결국 안락사,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개인의 권리에 대한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과연 인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허용해야 하는 걸까.

 

어떤 이야기도 그렇지만, 페터 비에리 교수는 명확한 결론으로 독자를 유도하지 않는다. 던져진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그것 또한 독자가 가진 존엄성을 존중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불특정 다수의 타인과 관계하면서 살 수 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인 호모 소시에타티스(Homo Societatis)에게 불가항력적인 요소인 결함과 과실 때문에 발생하는 존엄의 상실을 극복할 수 있는 실존적 경험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삶의 격을 지키기 위한 존엄성이라는 미로를 이렇게 멋지게 정리해준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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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0-10-24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 3장까지 읽었는데 이 작가의 지성과 품위랄까요...그런 점에 감탄하며 꾸역꾸역 읽었습니다.레삭님 리뷰 읽으니 좀 정리가 되는 듯 싶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