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
단 T. 셀베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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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선과 악의 이분법을 아직도 믿고 있나. 나에게는 선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상대방에게는 절대악으로 비출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웨덴 출신의 단 T 셀베리의 국제 첩보형 SF 스릴러 모나 (Mona)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먼저 첫 페이지를 읽기 전에 스웨덴 말로 쓰인 원서 대신 영역본을 중역했다는 출판사의 설명에서 여전이 영미문학에 편향될 수밖에 없는 우리 출판계의 상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을 선(이스라엘)과 악(헤즈볼라/하마스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서구인들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잠정적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최첨단 미사일 공격을 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소설 <모나>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복수를 위해 바이러스 공격을 준비하는 천재해커의 타깃이 바로 금융권이라는 사실이다. 천재해커를 후원하는 그룹이 이란과 사우디 오일머니를 가진 거부들이라는 사실은 911 테러의 케이스를 알고 있는 현재로서는 놀랍지도 않다. 모사드 그룹의 리더가 말하는 대로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종래의 전쟁이 정치군사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은 정치군사 위에 서 있는 경제/금융이라는 보다 명확한 표적지를 갖게 된 셈이다. 정치에서도 항상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프로파간다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오지 않았나.

 

소설 <모나>의 핵심 스토리라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억울하게 죽은 아내 나딤과 딸 모나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가진 세계적 IT 기술을 이용해 변화무쌍하고 대항할만한 안티바이러스조차 존재하지 않는 슈퍼바이러스인 모나를 창조해낸 사미르 무스타프의 이야기다. 복수의 근간에는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해묵은 갈등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마인드 서프라는 BCI(대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채용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 스웨덴 출신의 주인공 에리크 쇠데르크비스트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 한나를 구하기 위해 모나 바이러스의 창조자 사미르를 추적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단 T 셀베리 작가는 복수와 사랑이라는 전통적 주제에 세계의 화약고 중동세계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FBI를 능가한다는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비밀 첩보 조직 모사드까지 동원한 그야말로 스펙터클 첩보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두 아이팟 카우보이들의 대결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출발해서 프랑스 니스를 거쳐, 천년왕국의 실제적인 수도 텔아비브 그리고 가자 지구의 칸 유니스를 아우르는 세계적 스케일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앗아간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알라에게 맹세한 사미르가 서방세계를 공격하는 창이라면, 어떤 특별한 군사훈련도 받지 못한 평범한 기술자 에리크는 방패로 슈퍼바이러스 모나를 막는 최전방에 나선다. 사미르가 실수로 니스에서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그의 흔적을 추적해 접촉하는데 성공한 에리크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미르와 접촉하기에 이른다. 슈퍼히어로 같이 선을 위해 싸우는 무적의 캐릭터가 아닌,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초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다른 길에 서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절박함에서 두 카우보이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야기 구조를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단 T 셀베리는 모사드의 비밀 특수요원 라헬 파포와 이스라엘 권부의 핵심에서 헤즈볼라의 끄나풀로 활동하는 '시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개발해냈다. 라헬 파포는 두바이 작전에서 이스라엘의 파멸을 목표로 한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최초의 단서를 잡아내며 화려하게 등장하는데, 이후 이스라엘에 도착한 에리크를 도와 거의 성공할 뻔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막는데 수훈을 세운다. 트로이 목마에서 유래한 암호명 시논의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 외부의 공격만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헤즈볼라 조직은 이스라엘 최고권부에 시논이라는 이름의 스파이를 배치해서, 국가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에 대한 사전정보를 가지고 대응전략을 구사한다. 이 둘은 <모나>의 속편에 해당하는 <시논>에도 등장할 정도로 단 T 셀베리 작가가 애착을 가진 캐릭터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소설 <모나>는 무엇이 선과 악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이스라엘 집속 폭탄으로 억울하게 죽은 한 남자의 복수를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개발에 몰두했던 마인드 서프의 성공에 빠져, 아내 한나를 위험에 몰아넣은 것이야말로 주인공 에리크의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을까. 확실하지 않은 가설을 가지고, 모나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곁에서 간호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까. 물론 에리크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소설의 전개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겠지 말이다. 인간사가 그렇듯,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명확하지 않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곡예를 펼쳐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에리크와 사미르는 입체적 캐릭터에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소설 <모나>는 스릴러 독자들이 원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 창궐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비롯해서, 비밀 첩보조직 모사드, 컴퓨터와 대뇌 사이의 인터페이스, 컴퓨터 바이러스에서 기원해서 생명을 위협하는 돌연변이 생체 바이러스, 억울하게 죽은 아내와 딸의 복수, 사랑하는 아내를 살려야 하는 절박함에 내몰려 세계를 누비는 천재과학자 등 이 정도면 블럭버스터급 할리우드 영화는 찜 쪄 먹을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던가. 어쩌면 단 T 셀베리는 본 시리즈 같은 연작을 염두에 두고 시리즈(혹은 영화화)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아랍권에 대한 부정적인 서구세계의 시선이 곳곳에 담긴 것 같아 조금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곧 출간 예정이라는 <시논>과의 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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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1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스릴러 분야의 책은 우리나라에 나오는 경우가 드문 편인데 출판사가 엄청난 시도를 했군요.
 
비비안 마이어 : 나는 카메라다 비비안 마이어 시리즈
비비안 마이어 지음, 박여진 옮김 / 윌북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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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오래 전에 흑백사진 찍고 현상과 인화하는 법을 배웠다. 아주 오래 전부터 배우고 싶던 거라 그런지 그 과정이 너무 재밌었다. 그런데 그 시절은 이제 막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어 기존의 습식 현상기법과 이제 곧 세상을 바꿀 건식 현상기법의 대결이 막 시작된 터였다. 그리고 후자의 완벽한 승리로 귀결된 것이 오늘의 모습이다. 예전 사진 현상 인화의 단점 중의 하나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것이다. 사진의 기초 재료인 필름은 가격이 비쌌고, 암실을 갖추지 못했다면 현상과 인화는 하는 수 없이 DP점에 맡겨야 했다. 그러니 돈이 많을 들 수밖에. 암실이 있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눈칫밥을 먹어가며 어렵게 찍은 필름을 현상하던 시절이 비비안 마이어의 책을 보며 오롯하게 피어올랐다.

 

전혀 알지 못했던 미국 출신의 사진작가 비비안 마이어의 이름은 엉뚱하게도 영화를 통해 처음 알게 됐다. 우리나라에 아직 개봉은 하지 않았지만, 외신을 통해 무명의 사진가 비비안 마이어를 다룬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 호기심은 이 책에까지 도달하게 됐다. 모름지기 시대는 앞서 나가는 존재를 알아주지 않는 법이다. 비비안 마이어는 생전에 보모로 일했으며 자신의 아티스트 삶에 대해서는 비밀에 부쳤다고 한다. 다른 무명의 아티스트들처럼 그녀 역시 사후에 이름을 날리게 되었으니 그 또한 기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비비안 마이어는 죽으면서 현상도 안한 어마어마한 양의 필름 네거티브를 남겼다고 하는데, 죽을 즈음엔 거의 노숙자나 다름없었다고 했던가. 사진첩을 보니, 심지어 현금으로 바꾸지 않은 체크(수표)도 있었다고 한다. 할 말이 없었다.

 

그녀의 사진들을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 특히 뉴욕과 시카고[Chicagoland]이라는 도시와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가 있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는 그저 그런 일상이겠지만, 그것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가 반세기 정도 지난 다음에 보게 되면 지금은 사라지고 없어진 것들에 대한 회상과 여러 가지 요소들이 복합적인 융합작용을 일으키면서 기묘한 감상을 자아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녀가 주로 다룬 뉴욕에도 몇 번 가봤지만, 그녀가 사진을 찍던 시절의 그것과는 너무 다른 모습에 조금은 놀랐다. 모름지기 사람의 모습이 세월의 풍상에 따라 바뀌듯 그 사람이 사는 도시의 모습 역시 변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비비안 마이어가 사진을 찍던 시절은 1950년대, 1960년대는 이미 칼라사진이 일반화된 시절이었는데 우리의 주인공은 롤라이플렉스 카메라를 목에 걸고 흑백사진을 고집했다. 그런데 흑백사진을 찍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흑백사진 고유의 콘트라스트가 주는 아우라는 칼라사진의 그것에 비할 바가 아니며, 하물며 요즘 디지털 사진의 그것과도 격이 다르다. 사진이라 하면 모름지기 빛이 창조해내는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우리 앞에 살던 선구자였던 비비안 마이어는 그 점에 주목했으리라. 그녀 사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셀프 포트레이트가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아마 피사계 심도 조작에 정통했는지 요즘처럼 자동초점도 아닌 수동카메라를 조작해서 흐트러지지 않는 멋진 셀프 포트레이트 사진을 찍었다는 점이 놀랍기만 하다.

 

초반에 프랑스에서 찍었다는 사진도 있지만, 비비안 마이어 카메라의 대상은 미국과 미국에 사는 사람들의 일상이었다. 아이들의 워나비 캐릭터인 미키마우스 모자를 쓰고 천진하게 웃는 흑인 꼬마의 얼굴, 뉴욕의 마천루에서 철근을 나르는 인부의 고단한 모습, 플로리다 해변가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일상의 모습, 삶에 고단함 혹은 실연에 지친 어느 아가씨의 모습에 이르기까지 삶의 매순간 벌어지는 각양각색의 모습을 비비안 마이어는 카메라에 담았다. 물론 오드리 헵번이 등장하는 극장의 프리미어 사진도 있지만, 너무 급하게 찍어서 그런지 많이 흔들렸다. 사진이 갖는 기록성이라는 점에서 감안한다면 그 정도의 실수는 눈감아 줄 수 있지 않을까.

 

<비비안 마이어: 나는 카메라다>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대부분 장소와 시간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진도 많이 실려 있다. 그런 사진들은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도대체 이 사진은 어디에서 찍었을까? 보통 사진을 찍을 때, 스냅샷이라고 하더라도 피사체 특히 사람이 카메라 렌즈를 의식하지 않게 하라고 들었는데 그녀가 찍은 많은 사진들을 보면 사진 속의 인물들은 대놓고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탤런트 릴리스(Talent release)라는 서류도 사전에 받으라고 했는데, 그 시절에는 아마 그런 게 없었던 모양이다. 초상권과 저작권 혹은 퍼블리시티권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그야말로 사진가에게는 엘도라도 같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오는 4월 30일, 그녀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가 개봉한다고 한다. 뉴욕타임즈 보도에 따르면 비비안 마이어가 남긴 필름을 두고, 2007년 처음으로 그녀의 작품을 세상에 알린 부동산 중개업자이자 길거리 사진가인 존 말루프(경매에서380달러에 필름들을 사들였다고 한다, 영화 <비비안 마이어를 찾아서>의 연출가이기도 하다)와 마이어 연구가라는 데이비드 딜이 수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비비안 마이어 사진의 소유권 분쟁 중이라고 한다. 2009년 비비안 마이어가 죽고 나서 그녀의 사진이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뒤에야 소유권을 주장하고 나선 모습이 석연치 않지만, 이 소송 역시 베일에 감춰진 작가의 신화를 알리는데 단단히 한 몫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녀가 남긴 15만 장이나 되는 사진 중에 엄선했다고 하지만 235점의 사진만으로 한 사람의 삶을 평가하기는 부족한 점이 없지 않지만, 세상에서 잊힐 뻔한 사진작가의 발견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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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중경삼림 - Wong Kar Wai Collection Vol.2
왕가위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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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어젯밤 늦은 시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개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막 텔레비전을 끄려던 차에 왕정문이 나오는 영화 <중경삼림>을 보게 됐다. 정말 오래전 영화였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극장에 가서만 세 번이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같이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던데. 이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데, 난 크리스토퍼 도일의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을 운운하고 있었다. 왜 좋냐고? 글쎄.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가 임청하와 금성무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젊은 날의 양조위와 왕정문(혹은 왕비)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고, 두 번째 에피소드 중에서 왕정문이 일하는 샐러드바에 매일 같이 찾아와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줄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 663(양조위 분)의 이야기부터 본 것 같다.

 

모름지기 영화에 로맨스가 빠져서는 될 이야기도 안될 법. 친척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는 페이(왕정문 분)는 경찰 663에 대한 호감을 몰래 키워가고 있다. 조연으로 등장한 663의 애인이 누군가 해서 찾아 보니 주가령이라고 한다. 역시 조연도 그냥 쓰지 않은 모양이다. 페이는 매일 같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산다. 아마 언젠가는 캘리포니아에 갈 꿈을 꾸는 모양이다.

 

샐러드바 주인장의 권유로 경찰 663은 생선튀김과 샐러드를 사서 애인에게 주었다가, 아니 음식도 이렇게 골라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하물며 남자친구는 하는 말을 남기고 가차없이 663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그가 자주 들르는 샐러드바에 들러 이별의 편지와 아파트 열쇠를 맡기고 떠나는데, 이게 바로 페이가 663의 집을 드나들게 되는 결정적 계기 혹은 비밀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다. 페이는 빈 시간을 이용해서 663의 집을 찾아 전여친의 흔적을 세세하게 지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신 자신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어제 난 여기까지 보고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꺼야했다.

 

그전에 리뷰를 쓰면서는 홍콩 반환을 앞둔 브리티시 홍콩 시절의 불안감을 중점적으로 쓰곤 했던 기억인데, 이제 시니카 홍콩이 된지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난 그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홍콩에 갔을 때 부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퀄룽의 청킹맨션을 찾기도 했는데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을 참 좋아해서 홍콩에 갔을 적에 싱글 CD를 사기도 했다. 참 사연 많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무더운 여름날에 하이네켄 맥주를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뭔 놈의 방송 규제가 그리도 많은지 경찰 663이 노점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에도 솜방망이가 따라 다니고, 페이가 663의 집에서 몰래 바꾸어 놓는 정어리통조림/파인애플 통조림도 흐릿하게 처리가 되고 있었다. PPL이 언제부터 방송가를 슬금슬금 점령해 왔는데 고작 영화에서 몇 컷 보여주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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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 2004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1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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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로또를 산다. 예전에는 잘 살지 않았는데, 몇 번 꼴등에 당첨되다 보니 한 주간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은근한 기대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막상 로또에 당첨이 되면 그 돈을 가지고 뭘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 로또에 맞은 친구들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시나리오 작가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쓴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은 우리 나이로 10살짜리 꼬마 데미안과 그의 형 안소니 커닝엄의 돈벼락 맞은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이 커닝엄 형제처럼 다 영악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동산에 많은 괌심을 가지고 있는 안소니는 특별하다. 아니, 사실상의 주인공이 데미안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가톨릭 성인 열전을 꿰고 있다는 점에 특히 그렇다. 거의 모든 방면에 수호성인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우리 사바세계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꼬마 데미안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됐다. 물론 성녀 카타리나의 죽음처럼 비극적인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들려 줘서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유럽의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앞두고 영국과 몇몇 나라를 제외한 전유럽에서 유로통화 출범을 앞둔 시대적 상황이 전개된다. 영국은 실제로는 유로 대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국 통화 파운드를 고집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국도 파운드화를 유로로 대치하기로 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신의 은둔처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던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돈벼락이 떨어진다. 자그마치 22만 9,370파운드(대략 우리 돈으로 4억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의 돈뭉치가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굴러 떨어졌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 돈은 폐기하기 위해 모은 구권을 탈취한 강도 일행이 실수로 떨어뜨린 돈으로 우연하게 데미안과 안소니가 습득하게 된 돈이다.

 

어머니의 죽음 덕분에 알게 된 수많은 성인들과 환시를 통해 직접 대화를 하기도 하는 데미안은 횡재하게 된 이 많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원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선한 의미의 도움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습득한 파운드를 보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해진 날짜까지 파운드를 유로로 바꿔야 한다. 물론 이런 거금을 들고 은행에 간다면 바로 의심을 살 것이다.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은행직원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유로로 환전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금융실명제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서구 사회 금융권의 선진적 단면을 볼 수가 있다. 이미 꽤 오래 전의 일인데도 영국에서는 그랬구나. 여전히 차명계좌와 불법자금 거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거액의 돈을 갖게 된 데미안과 안소니 형제는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펑펑 써댄다. 아이들의 세계지만, 돈이 보여주는 위력은 놀랍다. 자전거를 사지 않고 대신 빌려 주는 대가로 10파운드를 친구들에게 뿌리고, 미술 과제를 대신해주는 대가로 100파운드는 우습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린 결과, 아이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작가는 어른 세계에 빗대 통화팽창으로 인한 경제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커닝엄 형제에게도 문제가 찾아온다. 바로 돈을 탈취한 대열차강도들이 흘린 돈 22만 파운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인지수사가 동원된다. 최근에 느닷없이 생긴 돈으로(데미안이 기부한 돈이다) 식기세척기에 텔레비전 같은 최신 전자제품을 사는데 돈을 쓴 모르몬교 이웃들이 타깃이 된 것이다. 용의주도한 안소니 덕분에 꼬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열 살짜리 꼬마의 기부 행동이 화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아빠의 새로운 여자친구로 등극한 도로시 아줌마까지 가세해서 도대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파운드를 유로로 바꿀 시간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돈이 생겼다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이 소설을 통해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우리는 막연하게 로또에 당첨된다면 마냥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역전에 성공한 이들이 자산관리에 실패해서 추락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나는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을 읽는 동안, 나의 행복 매니지먼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평범한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가끔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다. 요즘 들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많이 부족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No pain, no gain 란 말처럼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로또는 예외겠지만.

 

단박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대개의 경우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역전된 느낌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영화 <밀리언즈>를 코미디로 분류했던데, 개인적으로 코미디보다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금 막 영화예고편을 찾아봤는데 판타지에 가까운 감동 드라마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새들을 사서 들판에서 풀어주는 장면과 남은 돈을 가져다 기찻길에서 태우다 하늘나라로 간 엄마와 만나는 장면은 최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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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의 비용
유종일 외 지음,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엮음 / 알마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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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롭게도 <MB의 비용>을 읽기 시작한 2015년 3월 13일, 각종 부정부패에 대한 정부는 무관용 원칙에 입각한 선전포고를 했다. 중심에는 이 책에서도 다룬 바 있는 포스코건설 동남아사업단 100억대 비자금 의혹으로 검찰이 포스코건설 본사 압수수색이라는 초강수를 두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MB정권 5년 동안의 실정에 대해 그동안 수많은 의혹과 무수한 고발들이 오래전부터 이어졌었는데, 왜 지금까지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야 비로소 수사가 시작되었는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어쨌든 잊지 말아야 할 기억투쟁의 서막이라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MB의 비용>은 아무래도 최근에 나온 전직 대통령의 자화자찬과 왜곡된 수치로 점철된 <대통령의 시간>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앞으로도 후자를 읽어볼 생각이 없지만, 왜 똑같은 사안에 대해 이렇게 다른 시각이 존재할 수 있는지 나 같은 일반 독자로서는 도저히 가늠할 수조차 없을 것 같다. 전직 대통령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22조라는 엄청난 국민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을 필두로 해서, 자원 확보와 자주개발률이라는 구호 아래 진행된 자원외교 42조라는 천문학적 비용, 원전마피아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알려진 원전비리, 한식의 세계화라는 미명 아래 영부인이 직접 나서서 주도했던 한식세계화 사업 등 우리가 과거에 치렀거나 앞으로 치러야할 MB의 비용은 들으면 들을수록 혈압이 치솟는다.

 

MB 대통령 당선 직후 세상에 떠들썩하게 선전했던 쿠르드 유전 개발로부터 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원외교는 그 자체가 부실 덩어리였다.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위해 자원 확보를 하겠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자원외교는 전 정권의 실세 영일대군 이상득 의원과 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결국 실형을 살게 된 박영준 왕차관(미스터 아프리카)의 지휘 아래 진행되었다. 규정에 따른 절차와 원칙을 무시하고 오로지 정권의 홍보와 실적을 위해 속도전으로 전개된 자원외교 사업은 묻지마 투자의 전형이었고, 그에 따른 후폭풍은 엄청났다. 최근에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를 통해 볼리비아 리튬 광산 국유화 선언으로 인해 우리가 수입할 수 있는 리튬 자원은 전무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페루의 사비아페루 유전개발은 전직 페루 대통령이 나서서 말릴 정도였지만, 석유공사가 7,161억원이나 투자해서 성사시킨 계약은 개발허가와 판매권이 아닌 서비스계약으로 석유를 뽑아낼 수만 있지 정작 판매는 페루 정부로 귀속되는 엉터리계약이었다. 광물공사가 주축이 되어 진행된 멕시코 볼레오 광산 개발사업 역시 엄청난 손실을 보았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손실이 그야말로 눈덩이처럼 불어날 전망이다. 3대 에너지 공기업인 석유공사, 가스공사 그리고 광물공사가 나선 MB 집권 5년 동안의 에너지 자원 외교의 실적은 초라하다 못해 처참할 지경이다.

 

MB 집권 시기 의욕적으로 진행한 4대강 역시 책의 1부에서 다루고 있는 국고의 <탕진>이라는 주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애당초 그의 대선 공약 중의 하나였던 대운하 건설이 국민적 저항으로 무산되자, 다른 이름으로 포장해서 내놓은 것이 바로 4대강의 시초였다. 자그마치 22조에 달하는 천문학적 비용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는 질문에 4대강에서 준설한 모래를 팔아 비용을 마련하겠다는 엉뚱한 대답이 들려오기도 했지만, 결국 이 사업 역시 국민의 혈세가 소용된 사업이었다. 홍수대비효과와 많은 수의 일자리 창출효과 등 온갖 장및빛 청사진으로 도배가 되었지만, 이 역시 감사원 감사 결과 실패한 사업이었고 4대강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보들은 수질오염과 녹조라떼 같은 환경재앙의 원인이 되었다. 지금까지 들어간 비용만도 국민의 입장에서는 억울한 판인데, 강이 다시 흐르게 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존의 12개 보 철거를 위해서는 2천억 정도의 비용이 그리고 현상유지만을 위해서도 지속적인 비용이 청구될 전망이라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게다가 4대강 사업에 참가한 건설사들의 계획적인 담합으로 탕진된 비용은 보상받을 길이 없다고 한다. 그들이 이미 받아 챙긴 1조 6천억 원에 비해 비용에 비해 재판과정에서 11개 업체들에게 물린 벌금은 고작 업체당 5,000만 원에서 7,500만 원 정도라고 한다.

 

그 외에도 최악의 국가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던 원전 케이블 납품비리, 국가안보를 볼모로 잡아 대기업 롯데에 몰아준 특혜의혹, 낙하산 인사가 회장이 된 KT의 무궁화 위성 헐값매각, 현재 검찰의 수사망에 걸린 포스코 정준양 전 회장의 비자금 의혹 등 수많은 이슈들이 바로 탕진의 주범이라는 것이 <MB의 비용>에서 다루고 있는 주장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화가 나는 점 중의 하나는 성과도 보이지 않는 영부인 한식세계화 사업의 디너파티 예산은 아끼지 않으면서, 당시 영유아들에게 제공하는 백신 비용 등의 예산을 가차 없이 깎아낸 정부의 행태다.

 

한편 후반부를 장식하는 <실정>에서는 지난 정권에서 파탄난 대북한정책, 부적격인사, 내곡동 사저에 관한 비리문제, 부자감세 그리고 미디어법 등에 대해 전문가들과의 대담을 통해 접근하다. 북한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을 하면서 북한의 핵포기와 내부붕괴를 압박했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그렇게 집권 5년기를 허송세월했다. 5·24선언으로 남북경협와 금강산 관광 등이 모두 중단되면서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되었다. 경협을 통한 지원이 북한에게 일방적인 퍼주기가 아니라 평화통일을 위한 선불이라는 개념에 공감할 수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왜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한 분석과 감사원이 제 기능만 제대로 하더라도 정권마다 되풀이되는 형사처벌로 가기 전에 시정하고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MB의 비용>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대척점에 서 있는 <대통령의 시간>을 읽을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시간이 된다면 비교 대조를 위해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비용이다. 문득 어느 개그 프로그램에서 이 책의 정가가 자그마치 28,000원이라는 말을 듣고 한참을 웃은 기억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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