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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레이] 중경삼림 - Wong Kar Wai Collection Vol.2
왕가위 감독, 임청하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4년 6월
평점 :
품절
어젯밤 늦은 시간에 웃음을 찾는 사람들과 개콘을 차례로 보고 나서 막 텔레비전을 끄려던 차에 왕정문이 나오는 영화 <중경삼림>을 보게 됐다. 정말 오래전 영화였었지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아마 극장에 가서만 세 번이나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같이 사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하던데. 이 영화가 왜 좋냐고 묻는데, 난 크리스토퍼 도일의 핸드헬드 카메라 기법을 운운하고 있었다. 왜 좋냐고? 글쎄.
아마 첫 번째 에피소드가 임청하와 금성무가 나오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가 젊은 날의 양조위와 왕정문(혹은 왕비)이 나오는 에피소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끝까지 다 보지는 못했고, 두 번째 에피소드 중에서 왕정문이 일하는 샐러드바에 매일 같이 찾아와 스튜어디스 애인에게 줄 샐러드를 사가는 경찰 663(양조위 분)의 이야기부터 본 것 같다.
모름지기 영화에 로맨스가 빠져서는 될 이야기도 안될 법. 친척 집에 와서 일을 거들어 주고 있다는 페이(왕정문 분)는 경찰 663에 대한 호감을 몰래 키워가고 있다. 조연으로 등장한 663의 애인이 누군가 해서 찾아 보니 주가령이라고 한다. 역시 조연도 그냥 쓰지 않은 모양이다. 페이는 매일 같이 마마스 앤 파파스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을 그야말로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큰 소리로 틀어 놓고 산다. 아마 언젠가는 캘리포니아에 갈 꿈을 꾸는 모양이다.
샐러드바 주인장의 권유로 경찰 663은 생선튀김과 샐러드를 사서 애인에게 주었다가, 아니 음식도 이렇게 골라 선택의 여지가 많은데 하물며 남자친구는 하는 말을 남기고 가차없이 663의 곁을 떠난다. 그리고 떠나는 길에 그가 자주 들르는 샐러드바에 들러 이별의 편지와 아파트 열쇠를 맡기고 떠나는데, 이게 바로 페이가 663의 집을 드나들게 되는 결정적 계기 혹은 비밀연애의 시작을 알리는 서곡이 된다. 페이는 빈 시간을 이용해서 663의 집을 찾아 전여친의 흔적을 세세하게 지우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신 자신을 채워 넣기 시작한다. 어제 난 여기까지 보고 어쩔 수 없이 텔레비전을 꺼야했다.
그전에 리뷰를 쓰면서는 홍콩 반환을 앞둔 브리티시 홍콩 시절의 불안감을 중점적으로 쓰곤 했던 기억인데, 이제 시니카 홍콩이 된지도 한참 시간이 흘렀다. 난 그 영화를 보고, 처음으로 홍콩에 갔을 때 부러 영화의 배경이 되었다는 퀄룽의 청킹맨션을 찾기도 했는데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주인공 왕정문이 부른 <몽중인>을 참 좋아해서 홍콩에 갔을 적에 싱글 CD를 사기도 했다. 참 사연 많은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엔 미처 몰랐던 무더운 여름날에 하이네켄 맥주를 쉴 새 없이 들이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뭔 놈의 방송 규제가 그리도 많은지 경찰 663이 노점에서 마시는 코카콜라에도 솜방망이가 따라 다니고, 페이가 663의 집에서 몰래 바꾸어 놓는 정어리통조림/파인애플 통조림도 흐릿하게 처리가 되고 있었다. PPL이 언제부터 방송가를 슬금슬금 점령해 왔는데 고작 영화에서 몇 컷 보여주는 게 그렇게 큰 문제인가.
시간이 되면 다시 한 번 처음부터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