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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 - 2004년 카네기 메달 수상작 ㅣ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41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5년 3월
평점 :
매주 로또를 산다. 예전에는 잘 살지 않았는데, 몇 번 꼴등에 당첨되다 보니 한 주간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고나 할까. 물론 은근한 기대감도 없다고 할 수는 없으리라. 그런데 막상 로또에 당첨이 되면 그 돈을 가지고 뭘 할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그런 로또에 맞은 친구들의 이야기라면 어떨까. 시나리오 작가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쓴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은 우리 나이로 10살짜리 꼬마 데미안과 그의 형 안소니 커닝엄의 돈벼락 맞은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이 커닝엄 형제처럼 다 영악한지는 모르겠지만, 그 중에서도 부동산에 많은 괌심을 가지고 있는 안소니는 특별하다. 아니, 사실상의 주인공이 데미안도 만만치 않다. 수많은 가톨릭 성인 열전을 꿰고 있다는 점에 특히 그렇다. 거의 모든 방면에 수호성인이 떡하니 버티고 서서, 우리 사바세계를 관장하고 있다는 것을 꼬마 데미안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통해 알게 됐다. 물론 성녀 카타리나의 죽음처럼 비극적인 이야기를 수업시간에 들려 줘서 아이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되겠지만 말이다.
유럽의 실질적인 경제통합을 앞두고 영국과 몇몇 나라를 제외한 전유럽에서 유로통화 출범을 앞둔 시대적 상황이 전개된다. 영국은 실제로는 유로 대신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자국 통화 파운드를 고집하고 있지만 소설에서는 영국도 파운드화를 유로로 대치하기로 했다는 가정 하에 이야기가 진행된다. 자신의 은둔처에서 하나님에게 기도하던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돈벼락이 떨어진다. 자그마치 22만 9,370파운드(대략 우리 돈으로 4억 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다)의 돈뭉치가 데미안에게 그야말로 굴러 떨어졌다. 소설을 계속해서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이 돈은 폐기하기 위해 모은 구권을 탈취한 강도 일행이 실수로 떨어뜨린 돈으로 우연하게 데미안과 안소니가 습득하게 된 돈이다.
어머니의 죽음 덕분에 알게 된 수많은 성인들과 환시를 통해 직접 대화를 하기도 하는 데미안은 횡재하게 된 이 많은 돈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기 원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선한 의미의 도움도 색안경을 쓰고 보는 어른들의 시선에 대한 작가의 비판이라고나 할까. 게다가 시간이 없다. 언제까지 습득한 파운드를 보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정해진 날짜까지 파운드를 유로로 바꿔야 한다. 물론 이런 거금을 들고 은행에 간다면 바로 의심을 살 것이다. 이 돈이 어디서 났는지 은행직원에게 설명하지 못한다면 유로로 환전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금융실명제가 엄격하게 시행되고 있는 서구 사회 금융권의 선진적 단면을 볼 수가 있다. 이미 꽤 오래 전의 일인데도 영국에서는 그랬구나. 여전히 차명계좌와 불법자금 거래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우리나라의 그것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예상하지 못했던 거액의 돈을 갖게 된 데미안과 안소니 형제는 그야말로 돈을 물쓰듯 펑펑 써댄다. 아이들의 세계지만, 돈이 보여주는 위력은 놀랍다. 자전거를 사지 않고 대신 빌려 주는 대가로 10파운드를 친구들에게 뿌리고, 미술 과제를 대신해주는 대가로 100파운드는 우습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린 결과, 아이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기에 이른다.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 작가는 어른 세계에 빗대 통화팽창으로 인한 경제상황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그렇게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렇듯 커닝엄 형제에게도 문제가 찾아온다. 바로 돈을 탈취한 대열차강도들이 흘린 돈 22만 파운드를 찾아 나선 것이다. 바로 여기서 인지수사가 동원된다. 최근에 느닷없이 생긴 돈으로(데미안이 기부한 돈이다) 식기세척기에 텔레비전 같은 최신 전자제품을 사는데 돈을 쓴 모르몬교 이웃들이 타깃이 된 것이다. 용의주도한 안소니 덕분에 꼬리가 잡히지 않았지만, 열 살짜리 꼬마의 기부 행동이 화를 불러오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아빠의 새로운 여자친구로 등극한 도로시 아줌마까지 가세해서 도대체 아무도 믿을 수가 없는 상황이다. 설상가상으로 파운드를 유로로 바꿀 시간마저 턱없이 부족하다. 더 큰 문제는 막대한 돈이 생겼다고 결코 행복하지 않다는 점이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프랭크 코트렐 보이스가 이 소설을 통해 다루고 싶었던 주제가 아닐까.
우리는 막연하게 로또에 당첨된다면 마냥 행복할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인생역전에 성공한 이들이 자산관리에 실패해서 추락한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나는 <하늘에서 돈이 내린다면>을 읽는 동안, 나의 행복 매니지먼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평범한 현실주의자를 자처하면서도 가끔 허무맹랑한 꿈을 꾸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는 편이다. 요즘 들어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많이 부족해서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지 못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삶의 일부분이 아닌가. No pain, no gain 란 말처럼 고통 없이 얻어지는 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로또는 예외겠지만.
단박에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대니 보일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대개의 경우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는데, 이번에는 순서가 역전된 느낌이다. 네이버 영화에서는 영화 <밀리언즈>를 코미디로 분류했던데, 개인적으로 코미디보다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지금 막 영화예고편을 찾아봤는데 판타지에 가까운 감동 드라마였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처럼 새들을 사서 들판에서 풀어주는 장면과 남은 돈을 가져다 기찻길에서 태우다 하늘나라로 간 엄마와 만나는 장면은 최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