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 남자
칼요한 발그렌 지음, 최세진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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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인어 남자>라고 한다. 그래서 무슨 판타지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아니 어쩌면 동화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펴고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소설 <인어 남자>의 배경은 1983년 지금은 세상을 떠난 마이클 잭슨이 앨범 <Thriller>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던 그 시절 이야기다. 그리고 배경은 복지천국으로 알려진 스웨덴의 팔켄베리(Falkenberg:스웨덴 말로 매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라는 바다 건너 덴마크의 안홀트 섬이 보이는 그런 항구도시다. 주인공은 넬라와 그녀의 남동생 로베트르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바다생물, 소설에서는 남자 인어라고 불린다. 전설에 등장하는 인어는 사이렌의 그것처럼 남자를 홀리는 그런 요사스러운 존재라고 하는데, 남자 인어는 그것과는 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놀라웠던 점은 이제 겨우 복지의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이미 스웨덴에서는 30년도 전에 이미 아동수당과 복지수당을 국민들에게 제공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회적 편의 때문에 주인공 넬라의 엄마는 제대로 된 일자리도 구하지 않은 채, 사회에 무임승차해서 하루하루를 연명해 간다. 넬라의 아버지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는데, 부모로서 자식을 돌보는 일 따위에는 조금도 관심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자라나길 바라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도 주인공 넬라는 세상에서 하나 밖에 없는 남동생 로베르트를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할 태세다. 사실 로베르트의 보호자는 부모가 아니라 넬라인 셈이다. 넬라는 학교를 졸업하는 다음 해에, 독립할 계획을 꾸미고 있다.

 

그렇게 넬라와 로베르트 남매의 가난을 이겨낸 고군분투가 아름답게 마무리되면 좋으련만, 세상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들의 삶을 고달프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부모의 철저한 무관심과 가난 뿐 아니라 학교에서 그들을 괴롭히는 예라르드 일당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한 동물학대는 예사고, 부진아로 아이들의 놀림감이 된 로베르트를 인질로 삼아 넬라마저 괴롭힌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는 그런 아이들의 세계에 대한 너무 현실적이다 못해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극한대의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청소년들이 더 이상 꿈을 꾸지 못하고, 무한경쟁에 내몰린 우리사회의 현실이 보이는 것 같아 소설을 접하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 와중에 넬라의 삶에 뛰어든 에일리언(이방인)이 하나 있었으니 그 존재가 바로 남자 인어다. 넬라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토뮈의 형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우리가 상상하는 인어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남자 인어를 만나게 되고, 남자 인어를 중심으로 모든 문제들이 휘말리게 되는 그런 상황이 전개된다. 로베르트를 인질로 삼은 예라르드가 지속적으로 돈을 요구하자, 넬라는 로베르트를 볼 때만 솟아나는 특별한 사랑의 감정으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도둑질도 마다하지 않는다. 옷가게와 신발가게 그리고 전자제품 상점에서 넬라와 로베르트가 벌이는 절도 행각은 복지천국이라 알려진 나라의 피폐한 삶 역시 우리네와 별반 다른 것이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는 리얼리즘과 판타지를 섞은 이종교배 소설을 성공적으로 창조해냈다. 소설에서 리얼리즘을 담당하는 부분은 세상에 뛰어들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십대 소녀가 헤쳐 나가야 할 세상의 파도에 초점을 맞춘다. 넬라가 아무리 수를 써도 그녀가 처한 기가 막힌 상황에서 빠져 나갈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바로 그 시점에서 작가는 판타지/남자 인어를 투입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남자 인어가 슈퍼맨처럼 불가사의한 힘을 발휘해서 넬라를 괴롭히는 예라르드 일당을 쳐부수고, 그녀에게 바닷속 보물까지 안겨 주면 어떨까하는 판타지의 극한에까지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기도 했다. 그런데 작가는 판타지와 현실 세계의 경계를 그렇게 터무니없이 허물어뜨리진 않는다.

 

토뮈 형들에게 산 채로 잡힌 남자 인어의 운명과 예라르드에게 인질로 잡힌 로베르트의 운명은 정확하게 일치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그런 상황 말이다. 너무 가난해서, 끼니조차 때우지 못하는 넬라와 로베르트에게 학교 급식이야말로 생명줄이라는 상황이 무상급식 논란에 휩싸인 오늘 우리네 현실을 반추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다. 결국 어느 정도의 운과 사회 시스템의 도움으로 넬라는 새로운 삶을 찾기에 이른다. 물론 그에 따른 희생도 필요하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는 이런 다양한 요소들을 마치 곡예사가 현란한 저글링을 하듯 그렇게 솜씨 좋게 풀어낸다. 한 가지 개인적으로 옥의 티라고 생각하는 점 하나는 넬라/토뮈와 남자 인어와의 교감 혹은 공감을 바탕으로 한 대화다. 남자 인어가 인간의 말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걸까? 텔레파시 같은 방법 대신 인어답게(?) 인간과 서로 대화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요한 발그렌 작가의 작품 중에서 우리나라에 두 번째로 소개된 <인어 남자>를 읽으면서 그의 전작 <가면>도 한 번 기회가 되면 읽어 보고 싶어졌다. 스웨덴 출신의 이 작가는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괴물이라는 존재를 주제로 삼고 있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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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딱 걸렸어! 단비어린이 문학
이상권 지음, 박영미 그림 / 단비어린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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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도 장애인 친구를 대하기는 쉽지 않다. 하물며 초등학교 3학년 학생이 그런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이상권 작가의 <너 딱 걸렸어>를 읽으면서 몇 년 전, 다니던 교회에 장애인 동생 때문에 고민하던 일이 떠올랐다. 심한 뇌성마비 때문에 정상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말하면서 쉴 새 없이 침을 흘리기 때문에 자매들이 특히나 부담스러워 했던 것 같다. 그 동생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나름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소설에 나오는 다솔이처럼 효진이를 돕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솔직하게 말해서 도저히 감당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도 역시 효진이처럼 변명하고 싶지 않다.

 

아무리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간다고 하지만, 정상인이 장애인의 마음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장애인 동생과 친하게 지내게 되면서 알게 됐다.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전철 타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놀랐던가. 승강장에서 폭이 10cm나 될까, 그곳을 건너는 것이 너무 힘들더란다. 더 힘들었던 것은 소설 속의 효진이처럼 자신을 챙겨 주는 이에게 어쩔 수 없이 더 의존하게 되는 마음 때문이었다.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심리 상태 역시 대처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다솔이의 엄마나 다솔이 담임선생님처럼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심적으로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야말로 끝이 없는 봉사와 희생정신이 없다면 애당초 시작하지 말았어야 했던 게 아닌가 많이도 고민했던 시절이다.

 

그런 경험이 뇌리에 각인되어서 그런지 어린이 문학이라는데, 읽는 데 시간이 제법 많이 걸렸다. 몇 장을 읽고 나서 책장을 덮었다가 다시 한참 뒤에 다시 읽고를 거듭했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도와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스트레스로 장염을 앓다가도, 효진이를 생각하면 또 미안해지곤 하는 다솔이의 복잡다단한 감정을 절절하게 느낄 수가 있었다. 나도 그랬었으니까. 아마 감정이 잘 훈련된 어른이라면 그렇게 하지 않았겠지만, 어린이기 때문에 삐지거나 화가 나면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바로 분출하는 장면도 볼 수가 있다. 모든 것을 이룬 나이가 아니라, 성장과정에서 접하게 되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에 대해 배우는 과정을 이상권 작가는 예리하게 짚어냈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학기 초에 누가 과연 효진이의 도우미를 할 것인가를 두고 메신저로 토론하는 장면이었다. 어른들처럼 반장이라는 자신들의 대표를 뽑는 선거도 하고, 토론도 할 수 있겠지만 그 방법이 메신저라는 점이 참 신기했다. 확실히 요즘 아이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구나. 누구나 커가면서 부모님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모든 일들을 시시콜콜히 이야기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대화도 뜸해지고 비밀이 많아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효진이를 돌보는 다솔이처럼 특수한 상황에 있는 친구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어른/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해도 돌아오는 말이 자기의 예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구나 하는 마음에 속으로 삭여 버리지 않을까. 이것도 어느 의미에서 본다면 성장통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좋게 끝나 버리는 해피엔딩보다, 갈등해소를 위한 관계의 전진을 상징하는 오픈엔딩이 그래서 더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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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행동 심리 백과 - 1~3세 말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우리 아이 행동 이해하기
앤지 보스 지음, 신선해 옮김 / 지식너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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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키우고 있다. 이제 막 11개월이 되었는데, 아이와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어 너무 괴롭다. 그래서 심지어 어쩔 땐 이런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아이가 많이도 필요 없고, 딱 다섯 가지만 부모에게 알려줄 수 있다면 좋을까하고 말이다. 먹고 싶을 때, 자고 싶을 때, 아플 때, 싸고 싶을 때 마지막으로 놀고 싶을 때. 물론 어디까지나 나의 상상이다. 스스로 의사표현을 할 수 없는 아이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그래서 부모는 모름지기 아이가 보내는 싸인 랭귀지의 달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앤지 보스가 펴낸 내 아이가 보내는 비밀신호 205가지는 정말 유용한 정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물론, 모든 경우에 다 들어맞는 건 아니겠지만.

 

아이가 손발톱 깎는 걸 너무 싫어해서 항상 고민이다. 몸을 비틀고 난리 치는데, 당해낼 재간이 없다. 오늘도 외출해서 분수대로 유인한 다음, 물줄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간신히 깎을 수가 있었다. 손발톱을 제대로 깎아주지 않으면 언제 얼굴을 긁을지 몰라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다. <아이 행동 심리 백과>의 저자는 그런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손발톱의 뿌리가 촉각계의 일부이기 때문에 아이가 감각 과잉의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분산시키는 우리의 전략이 나쁘지 않다는 자부할 수 있지 않을까. 특정한 장난감에 집착하는 것(담요에 집착하는 만화 <스누피>의 라이너스가 바로 떠올랐다)도 비슷한 사례로, 억지로 타인과 공유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책은 말한다. 아직 다른 아이와 장난감을 공유할 기회가 없어서 몰랐지만 이 역시 유용한 정보라고 생각된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거나 할퀴고 긁는 증상에 담긴 의미를 설명해 주고, 그런 경우에는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방법론도 제시한다. 보통 우리는 아이가 그럴 행동을 보일 경우에 대뜸 어디 아프거나 가려운 게 아닐까 추정해 보지만, 자기 조절력 저하 때문에 그럴 수 있다는 설명이 인상적이다. , 역시 육아는 단순한 느낌이나 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축적된 선행 경험과 정보를 바탕으로 구성된 대응전략을 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스레 다시 느끼게 된다. 어쨌든 그런 행동 때문에 다치거나 얼굴에 상처가 생기거나 그러면 속이 상하는 건 부모로서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러기 전에 예방해야 하지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 아이의 행동이 번개 같아서 예방과 대처는 언제나 한 템포 느린 게 문제다.

 

우리 아이는 하지 않지만, 다른 아기들이 보이는 반응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했다. 사실 자신이 체험하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가. 촉각 수용기가 예민한 친구들은 씻을 때 물방울이 튀기는 걸 무서워 한단다. 놀랍군. 우리 아이는 특히 소리에 예민해서, 저 멀리서 싸이렌 소리가 들려오거나 아파트 윗집에서 무언가 톡 하고 떨어지는 소리에도 자다가 깰 정도다. 차타고 이동하는 걸 싫어할 정도는 아니지만, 카시트 진득하게 앉아 있질 못한다. 그것도 전정 감각과 고유수용성 감각 적응 훈련이 필요해서일까. 아직 어려서 모르는 반응들도 많지만, 어떤 반응들은 크면서 생겨날 수도 있으니 <아이 행동 심리 백과>를 통해 습득한 지식들을 곧 유용하게 참조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고마워요 앤지 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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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꼬? 단비어린이 그림책 15
김인자 글, 한상언 그림 / 단비어린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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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자 씨가 글을 쓰고 한상언 씨가 그린 <누꼬?>는 어린이 그림책이다. 어른이라면 몇 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그런 그림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어려서 몇 살인지도 모를 그런 시절에, 할머니 댁의 평상에 앉아 할머니가 비벼 주시는 콩가루밥을 정신없이 받아먹던 바로 기억이 내가 가진 할머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정식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으신 우리 할머니의 한글쓰기는 이제 막 학교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땐 그랬었다.

 

<누꼬>에는 인간이 체험하게 되는 생로병사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인공 김입분(분명 이쁜이에서 유래한 이름일 것이다) 할머니는 척추가 휘셔서 키가 주셨다고 한다, 2cm. 김입분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모으기 선수셨다. 지금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다들 떠들어 대지만, 그 시절에는 아껴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세대가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신문지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보면, 안방의 한 구석에 잘 접힌 대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신문지 더미를 볼 수가 있었다.

 

그 시대를 산 여느 어머니/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살림의 선수셨다고 기억된다. 요즘에는 계량기가 없으면 양념 맛이 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항상 수치화된 정량보다 적당히버무린 손맛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다. 고된 가사노동과 전투에 버금가는 육아 때문에 약을 입에 달고 사신 것도 김입분 할머니의 그것과 비슷하다. 약을 드시기 위해 위장을 보호하는 약을 따로 드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마 그 때 처음 알았나 보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텔레비전 드마라를 보면서 눈물지으시는 장면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김인자 작가는 어쩌면 우리 할머니를 관통하는 공통점들을 그러모아 이 그림책에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동료가 한 번 스윽 보고서 김입분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나 보다라고 말했을 때, 마지막으로 우리 할머니와 똑같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첫손주를 알아보시지 못해 집이라고 부르시던 마지막 기억이 났다. 늘 자식과 손주들의 끼니 걱정,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새지 않나 하는 걱정, 때가 되면 자식들의 월사금 걱정 같은 다양한 걱정거리들을 껴안고 사신 할머니 세대의 단면을 어린 손주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정말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제 아무 걱정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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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25 1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삭매냐 Jr.를 위해서 동화도 읽기 시작하셨군요. ^^

레삭매냐 2015-04-30 09:11   좋아요 0 | URL
열심으로 읽고 있습니다 :>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
피터 S. 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 / 문학수첩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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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하도 공동묘지에 대한 기묘하고 무서운 이야기들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공동묘지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공동묘지가 거주지에서 아주 멀찍하게 떨어진 곳에 있지 않은가. 미국이나 유럽에 갔을 적에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공동묘지가 주택가와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라면 죽음을 생래적으로 거부하기 마련이지만, 죽음 또한 피할 수 없는 우리의 운명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주기 위해 그런 것일까. 다시 한 번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생각해 본다.

 

1960523, 처음으로 세상의 빛을 본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는 피터 S. 비글 작가의 첫 번째 (판타지) 소설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자그마치 19년 동안이나 뉴욕 요크체스터의 어느 공동묘지에 사는 조너선 리벡이다. 그는 남부럽지 않은 약제사라는 직업을 버리고,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샌드위치 따위로 연명한다. 영화 <식스 센스>의 꼬맹이처럼 망자를 볼 수도 있고, 대화도 나눈다. 물론, 자신에게 먹거리를 물어다 주는 까마귀와도 대화가 가능하다. 뭐 이 정도면 판타지 소설로서 필요조건을 충족시킨다.

 

소설의 메인 캐릭터인 리벡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군이 등장한다. 변호사였던 부군 모리스를 잃은 클래퍼 부인,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법한 미모의 아내 샌드라에게 독살당한 대학교수 출신의 마이클 모건, 염세주의자 로라 듀런드 그리고 묘지지기 캄포스에 이르기까지 각자 사연을 갖고 있는 조연들이 비글 작가의 이야기를 다채롭게 만드는 데 한몫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면면에 현미경을 들이대고 살펴보자. 죽었지만,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남자 마이클은 사랑스러운 아내 샌드라가 쥐약으로 자신을 죽였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런데 변호사와 함께 묘지를 찾은 샌드라의 말을 들어 보면 그런 것만도 아닌 것처럼 들린다. 누구의 말이 진실일까? 이 장면에서 문득 구로사와 아끼라 감독의 <라쇼몽>이 떠올랐다. 누구나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주관적 신념이야말로 삶의 원동력이 아니던가. 단편적 정보와 마이클의 주장대로, 샌드라가 마이클을 죽였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긋한 나이에 모리스의 미망인 클래퍼 부인과 썸을 타는 주인공 리벡은 또 어떤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세상을 등지고, 공동묘지를 자신의 안식처로 삼은 산 사람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판타지적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자신의 결점을 충분히 알고 있는 리벡은 클래퍼 부인에게 끌려 자신의 상태를 고백하고 만다. 그것이 과연 사랑의 관문에 이제 막 들어서려는 한 남자의 실수였을까?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카니발을 더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사이드킥으로 흉조의 상징인 까마귀가 풀어놓는 독설은 또 어떤가. 변변한 이름 하나 없는 까마귀는 뉴욕의 상공을 배회하며, 리벡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세상에서 벌어지는 뉴스를 전달해주는 메신저 역할을 자처한다. 외부와 격리된 그들에게 샌드라의 재판에 대한 정보는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과연 샌드라는 마이클을 죽였을까?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의 원제는 <A Fine and Private Place>. 좋고 사적인 장소라는 뜻인데, 의외로 소설의 배경이 되는 공동묘지는 예상대로 죽음과 사랑, 갈등, 질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의 집합소라는 느낌이 들었다. 리벡 씨가 새로 사귄 친구인 거트루드 클래퍼 부인은 한 때 뉴욕의 약제사, 아니 주술사로 불리던 그가 공동묘지 생활을 접고 다시 세상으로 나와야 한다고 거의 강권하다시피 주장한다. 사실 이 소설의 고갱이는 리벡 씨의 귀환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될 것인가가 핵심이다. 그는 혼잣말로 세상이 품위를 갖추게 되면 돌아가겠노라고 말하지만, 언제 세상이 제대로 품위를 갖춘 적이 있었던가. 마이클의 죽음에 대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소설은 클라이막스로 치닫기 시작한다. 대학 교수였던 마이클은 점점 더 염세적인 경향을 띠기 시작하고, 그동안 자신이 사랑이라고 믿어왔던 것들이 모두 부질없는 사실이었노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 그렇다면 피터 S. 비글 작가가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 싶었던 메시지는 과연 무엇일까. 소설에 따르면 죽음은 우리가 그렇게 두려워하는 만큼 두려워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점에서 본다면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처럼 현재를 충분히 즐기면서 사는 게 이승의 복락이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이 책에서 다양한 철학적 질문들과 만나기도 하고, 다시 한 번 그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하는 대화들을 만나기도 했다. 망자들에게도 사랑과 질투 같은 감정이 허용된다는 설정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잊히고 싶지 않다는 갈망이 있다는 것도 확인할 수가 있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바로 그런 점에서 세상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표현이 절절하게 다가온 모양이다.

 

리벡 씨가 과연 세상에 나가서 재활에 성공했는지 궁금하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인다면, 클래퍼 부인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다시 뉴욕을 주름잡는 주술사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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