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
단 T. 셀베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선과 악의 이분법을 아직도 믿고 있나. 나에게는 선일 수도 있는 부분들이, 상대방에게는 절대악으로 비출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웨덴 출신의 단 T 셀베리의 국제 첩보형 SF 스릴러 모나 (Mona)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나는 먼저 첫 페이지를 읽기 전에 스웨덴 말로 쓰인 원서 대신 영역본을 중역했다는 출판사의 설명에서 여전이 영미문학에 편향될 수밖에 없는 우리 출판계의 상황을 절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여전히 세계의 화약고로 불리는 중동을 선(이스라엘)과 악(헤즈볼라/하마스 테러리스트)로 규정하는 서구인들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회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비무장한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에게 잠정적 테러리스트라는 이유로 최첨단 미사일 공격을 하는 이스라엘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지 않은가.

 

소설 <모나>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복수를 위해 바이러스 공격을 준비하는 천재해커의 타깃이 바로 금융권이라는 사실이다. 천재해커를 후원하는 그룹이 이란과 사우디 오일머니를 가진 거부들이라는 사실은 911 테러의 케이스를 알고 있는 현재로서는 놀랍지도 않다. 모사드 그룹의 리더가 말하는 대로 보이는 적과 싸우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무형의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종래의 전쟁이 정치군사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면, 21세기의 새로운 전쟁은 정치군사 위에 서 있는 경제/금융이라는 보다 명확한 표적지를 갖게 된 셈이다. 정치에서도 항상 경제 살리기가 가장 중요하다는 프로파간다는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어오지 않았나.

 

소설 <모나>의 핵심 스토리라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억울하게 죽은 아내 나딤과 딸 모나의 복수를 위해 자신이 가진 세계적 IT 기술을 이용해 변화무쌍하고 대항할만한 안티바이러스조차 존재하지 않는 슈퍼바이러스인 모나를 창조해낸 사미르 무스타프의 이야기다. 복수의 근간에는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해묵은 갈등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다른 하나는 마인드 서프라는 BCI(대뇌컴퓨터 인터페이스)를 채용한 최첨단 기술을 개발한 스웨덴 출신의 주인공 에리크 쇠데르크비스트가 사랑하는 자신의 아내 한나를 구하기 위해 모나 바이러스의 창조자 사미르를 추적하는 일련의 이야기들이다. 단 T 셀베리 작가는 복수와 사랑이라는 전통적 주제에 세계의 화약고 중동세계의 갈등, 그리고 미국의 FBI를 능가한다는 이스라엘의 악명 높은 비밀 첩보 조직 모사드까지 동원한 그야말로 스펙터클 첩보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클래식 음악을 사랑하는 두 아이팟 카우보이들의 대결은 스웨덴의 스톡홀름에서 출발해서 프랑스 니스를 거쳐, 천년왕국의 실제적인 수도 텔아비브 그리고 가자 지구의 칸 유니스를 아우르는 세계적 스케일을 보여준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을 앗아간 이스라엘에 대한 복수를 알라에게 맹세한 사미르가 서방세계를 공격하는 창이라면, 어떤 특별한 군사훈련도 받지 못한 평범한 기술자 에리크는 방패로 슈퍼바이러스 모나를 막는 최전방에 나선다. 사미르가 실수로 니스에서 남긴 단서를 바탕으로, 그의 흔적을 추적해 접촉하는데 성공한 에리크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미르와 접촉하기에 이른다. 슈퍼히어로 같이 선을 위해 싸우는 무적의 캐릭터가 아닌, 고뇌하고 갈등하는 인간군상에 대한 초상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서로 다른 길에 서 있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다는 절박함에서 두 카우보이들 사이에 공감대가 형성된다.

 

이야기 구조를 더 흥미롭게 만들기 위해 단 T 셀베리는 모사드의 비밀 특수요원 라헬 파포와 이스라엘 권부의 핵심에서 헤즈볼라의 끄나풀로 활동하는 '시논'이라는 매력적인 캐릭터도 개발해냈다. 라헬 파포는 두바이 작전에서 이스라엘의 파멸을 목표로 한 모종의 음모가 진행되고 있다는 최초의 단서를 잡아내며 화려하게 등장하는데, 이후 이스라엘에 도착한 에리크를 도와 거의 성공할 뻔한 헤즈볼라의 공격을 막는데 수훈을 세운다. 트로이 목마에서 유래한 암호명 시논의 활약은 더욱 눈부시다. 외부의 공격만으로 이스라엘 국가를 전복시킬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헤즈볼라 조직은 이스라엘 최고권부에 시논이라는 이름의 스파이를 배치해서, 국가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에 대한 사전정보를 가지고 대응전략을 구사한다. 이 둘은 <모나>의 속편에 해당하는 <시논>에도 등장할 정도로 단 T 셀베리 작가가 애착을 가진 캐릭터가 아닐까 추정해 본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소설 <모나>는 무엇이 선과 악인지 독자에게 묻는다. 이스라엘 집속 폭탄으로 억울하게 죽은 한 남자의 복수를 악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어쩌면 자신이 개발에 몰두했던 마인드 서프의 성공에 빠져, 아내 한나를 위험에 몰아넣은 것이야말로 주인공 에리크의 치명적인 실수가 아니었을까. 확실하지 않은 가설을 가지고, 모나 바이러스의 치료제를 찾을 것이 아니라 혼수상태에 빠진 아내를 곁에서 간호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인 선택이 아닐까. 물론 에리크가 그런 선택을 했다면, 소설의 전개는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았겠지 말이다. 인간사가 그렇듯, 소설 속의 주인공들 역시 명확하지 않은 선과 악의 경계에서 위태로운 곡예를 펼쳐 보인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에리크와 사미르는 입체적 캐릭터에 도달하는데 성공한다.

 

소설 <모나>는 스릴러 독자들이 원하는 요소들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세계적으로 창궐하지만 어떤 방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컴퓨터 바이러스를 비롯해서, 비밀 첩보조직 모사드, 컴퓨터와 대뇌 사이의 인터페이스, 컴퓨터 바이러스에서 기원해서 생명을 위협하는 돌연변이 생체 바이러스, 억울하게 죽은 아내와 딸의 복수, 사랑하는 아내를 살려야 하는 절박함에 내몰려 세계를 누비는 천재과학자 등 이 정도면 블럭버스터급 할리우드 영화는 찜 쪄 먹을 정도의 스케일이 아니던가. 어쩌면 단 T 셀베리는 본 시리즈 같은 연작을 염두에 두고 시리즈(혹은 영화화)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아랍권에 대한 부정적인 서구세계의 시선이 곳곳에 담긴 것 같아 조금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다. 곧 출간 예정이라는 <시논>과의 재회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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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4-14 2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북유럽 스릴러 분야의 책은 우리나라에 나오는 경우가 드문 편인데 출판사가 엄청난 시도를 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