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 북멘토 그래픽노블 톡 2
박건웅 지음, 최용탁 원작 / 북멘토(도서출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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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데이트] 2015년 6월 2일 오후 1시 32분

 

우리에게는 만화로 알려진 그래픽노블의 리얼리티를 믿는가? 그렇다면 당장 박건웅 작가의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을 봐야할 것이다. 북멘토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발표 중인 역사물 2탄인 이 작품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그 중심에 두고 있다. 인류 역사에서 좋은 전쟁이 있었나 묻고 싶다. 충청도 어느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비극을 보면서 왜 우리에게 어떤 방식의 전쟁도 필요하지 않고, 오로지 평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은 어느 형제가 사이좋게 산으로 나무를 하러 와서 나누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시골에서 농사짓는 형은 이제 막 사내아이를 얻은 형편이고, 도회로 나간 동생은 대학에 다니고 있다. 대학에 간 동생이야말로 집안의 기둥이라고 말하는 형과 장손이라며 형님을 깍뜻하게 대하는 동생의 우애가 정겹기만 하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곧 이어질 비극의 전초전일 따름이다. 그래픽노블의 전개는 바로 제목에서 말하는 반세기도 더 넘게 산을 지켜온 물푸레나무의 재미난 ‘구경거리’에 대한 이야기로 옮겨간다.

 

무더운 여름으로 접어드는 7월 초순의 어느 날 저녁, 이백 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경찰들의 오라에 묶여 줄줄이 골짜기로 접어드는 것이 아닌가. 산속에서만 있어온 어린 물푸레나무에게는 진기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은 모두 남자들로, 손은 철사로 포박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한 무더기가 된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에게 닥쳐올 운명을 깨닫고, 손에 총과 탄창을 든 경찰들에게 이승만 대통령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제복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마냥 평범해 보이는 농투성이 모습의 아저씨들을 계곡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창주경찰서의 국민의 안녕과 치안을 책임진 책임자가 나서서 일장연설을 하며, 여기 모인 3개면의 보도연맹원들에게 그들만 죽는 것이 아니니 억울해 할 것 없다는 말과 함께 일제사격 명령을 내린다. 그 다음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그런 살육의 현장이었다. 그렇게 확인사살까지 마치 경차들이 물러가자, 산속의 온갖 집파리, 쇠파리, 똥파리, 종벌레, 총채벌레 같은 생령들이 벌이는 포만의 축제가 벌어졌다고 어린 물푸레나무는 증언한다. 그 뒤로는 몇 차례나 같은 일들이 반복되었고, 600여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골짜기에서 죽어갔다. 시쳇말로 ‘골로 간다’는 표현이 있는데, 어디선가 이 시절의 사건에서 비롯된 거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난다.

 

비극의 마무리는 생떼 같은 아들을 잃은 노파가 며느리와 이제 막 태어난 손자를 데리고 자신의 아들을 시체 더미에서 찾기 위해 나선 장면이다. 그야말로 생지옥에서 오로지 억울하게 죽은 자식을 찾기 위해 염천 가운데 부패하가는 시취도 마다하지 않고 사투를 벌이는 장면은 정말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훗날 미국의 기밀문서 해제로 세상에 공식적으로 알려지게 된 한국전쟁 당시 국군과 경찰에 의해 자행된 보도연맹원 학살 사건은 공산군에게 패퇴하기 직전, 공산군에게 협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양민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사건이다. 물론 죽은 사람 가운데는 좌익사상을 가지고 공산군에게 협력할 가능성을 가진 이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좌익이 무언지도 모르는 무고한 농투성이들이었노라고 어린 물푸레나무는 증언하고 있다. 작가가 구현한 판화 스타일의 그림체는 색채를 입힌 것보다 더 비극적으로 사실에 접근을 시도한다. 과연 컬러였다면 그 충격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이 시작된 지 반세기도 넘어 65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우리의 산하는 물푸레나무가 그랬던 것처럼 허리가 동강나 있는 상태다. 여전히 준전시상태에서 우리는 하루를 살고 있다. 그래픽노블로 재현된 비극을 읽으면서 어떠한 형태의 전쟁도 있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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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일 5Mile Vol 1. - 창간호, Made in Seoul
오마일(5mile) 편집부 엮음 / 오마일(5mile)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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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테마, 여행 그리고 음식이라는 주제와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사진을 전면에 배치한 <5 Mile>의 창간호와 만날 수가 있었다. 그의 너무나 유명한 캠벨 수프 작품만 있다는 게 아니라는 것도 이 매거진을 통해 처음 알게 됐다. 마릴린 먼로 작품은 1967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마릴린 먼로가 죽은 게 언제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1962년이라는데, 한 시대를 풍미한 대스타가 죽고 나서 5년이나 지난 뒤에 팝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녀의 이미지에 그렇게 변형을 준 걸까. 궁금하기만 하다. 그리고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또 어떻고. 어쩌면 이 시대의 모든 변형은 피카소와 앤디 워홀에서 비롯된 게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상상도 들었다.

그 다음 이야기 <당신이 몰랐던 서울>에서는 내가 아는 익숙한 모습의 서울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제목 그대로 전혀 몰랐던 모습의 서울에서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다. 문득 사진가들에게 서울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특정한 하루를 정해서 우리가 몰랐던 이모저모를 담는 기획도 재밌지 않을까 싶다. 위치를 알 수 없는 골목길, 도회의 노인이 사라져 가는 모습, 번화가의 모습들 그리고 상업화의 상징처럼 내겐 다가온 쌈지길의 모습들이 오늘의 서울이구나 싶었다.

책쟁이인 나의 시선을 가장 사로잡은 기사는 바로 <Hidden book stores: 숨겨진 동네 서점여행>이었다. 물론 초반에 나온 10가지 질문은 가볍게 패스 했으니, 당근 이 여행에 동참하고 싶다. 오늘 오후에도 중고서점에 들러 꼭 필요한 책이 아니더라도 무언가 사야 하지 않나 하는 강박에 시달리지 않았던가. 사실 김영하 작가의 추천 책인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을 사려고 했지만. 모두 세 곳이 소개되었는데 제목부터 범상치 않다. <스토리지 북 앤 필름>, <일단멈춤> 그리고 마포 상수동 부근의 <베로니카 이펙트>가 그 주인공들이다. 요즘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게 뜨는 장소라는 염리동 소금길에 있다는 <일단멈춤>에도 한 번 가보고 싶고(요즘처럼 바빠서는 내년에나 가볼 수 있을까 싶다), 파올로 코엘료의 책 제목을 떠올리게 하는 <베로니카 이펙트>에도 들러 보고 싶다. 짧은 인터뷰로만도 이 서점들이 내가 주로 찾는 그런 일반 서점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다. 그냥 책은 사지 않고 들러서 사진만 찍어도 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업주 입장에서는 아마 귀찮은 헛손님이겠지만. , <베로니카 이펙트> 내부의 조명 배치는 진짜 멋져 보인다.

리넨이나 천 같은 직물에 직접 그린 무늬를 프린트한다는 장인, 마이스터징거라고 불러야 하나,의 이야기에도 호기심이 생긴다. 얼굴을 공개하고 싶지 않은지, 묘하게 가린 주인공의 한땀한땀 어린 작업 순서도가 인상적이다. 진짜 천연의 풀이나 나뭇잎들을 재료로 사용하는 점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린 시절, 나뭇잎으로 종이에 물감을 묻혀 찍던 시절의 그 재미지던 시간들 말이다. 서울의 소소한 100가지 오브제 역시 주르르 넘기다 보면, 어떤 것들은 사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든다. 물론 딱히 필요는 없지만, 한가로운 여행길에서 만난 소품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내가 베를린의 벼룩시장에서 7유로 주고 산 솝스톤(soap stone)으로 만든 오렌지 컬러 하마가 아버지의 문진으로 쓰일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말이다. 어떤 물건이든 다 쓸모가 있는 법이다.

여행과 푸드를 주제로 삼은 만큼 요리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다만 난 만드는 것보다 먹는 것을 더 좋아하니 사진만으로는 당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사실 사진만 보면 다 맛있어 보이지 않는가 말이다. 역시 맛을 봐야 하는데, 그럴려면 시간과 노력 그리고 돈이 필요하다. 그러니 매거진에 실린 사진만으로 나의 흔들리는 식욕을 달래려면 상당한 내공이 소용될 것이다. 마지막의 바르셀로나 컷은 정말 당장에라도 모든 것을 접고 달려가고 싶은 충동일 생길 정도다. 몇 년 전에 여름휴가 때 바르셀로나에게 가볼까 하는 헛된 꿈에 젖어 직항편을 알아보다가 어마무시한 가격에 당장 포기했던 추억도 떠오른다. 그땐 그랬지.

뭐니뭐니 해도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5 Mile>에서 창간호를 맞이하여 독자들에게 야심차게 준비한 감사의 선물이다. 말미에 실린 두 개의 선물이 기다리고 있는데 하나는 앤디 워홀 전시회 티켓과 5 Mile 네 잔의 레드비어다. 난 볼 것 없이 두 번째 선물을 택할 것이다. 그런데 부욱~ 하고 해당 페이지를 찢어 가면 되는 게 아니라 꼭 창간호 책을 통째로 들고 가야 한다고 한다. 그 정도 수고야 감당할 수 있지 뭐. 그런데 유효기간은 언제지? 난 과연 네 잔의 레드비어를 마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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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 개정판
이창래 지음, 정영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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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창래 작가의 책은 <척하는 삶>만 읽으면 완독이다. <네이티브 스피커>로 시작된 이창래 작가를 탐험하는 나의 독서 여정은 <생존자>(그의 작품 중에서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신작 <만조의 바다 위에서>를 거쳐 마침내 <가족>에 도달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십년 전에 출간된 랜덤하우스 중앙 버전으로 구해서 읽었는데(절판됐다), 물론 작년에 재출간된 버전도 구입하긴 했다, 거진 읽는데 일년이 걸린 모양이다. 그 사이에 <척하는 삶>도 읽다가 말았는데, 이번 6월이 다 가기 전에 그 책도 마저 다 읽어야겠다.

 

<가족>의 주인공은 59세의 제리 배틀이다. 오십대의 마지막이자 이제 노년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시기에 접어드는 주인공의 주변은 온통 위기 투성이다. 사실 제리가 가진 재력이라면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평안한 노년을 보낼 수 있을 텐데 언제나 그렇듯 타의에 의한 내 삶의 퍼레이드는 고단하기만 하다. 우선 양로원에서 지내는 85세의 아버지가 있다. 위기가 겹치는 상황에서 양로원에 거주하는 아버지마저 실종되다니, 설상가상이다. 하나 있는 딸 테레사는 비호지킨 림프종이라는 암에 걸렸는데, 임신한 상황에서 아기를 낳겠다고 고집한다. 유산하고 당장 암 치료에 나서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이십년을 함께 산 푸에르토리코 출신 여자친구 리타는 잘 나가는 변호사 리치와 눈이 맞아 제리의 곁을 떠나겠다고 선언한다. 가장 큰 문제는 삼대를 이어온 조경가업회사인 배틀 브라더스를 맡은 큰아들 잭의 파산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사실이다.

 

가장의 자리를 아들 잭에게 물려주고 은퇴를 선언했지만, 우리의 까칠한 남자 제리 배틀의 삶은 그렇게 고달프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애기(愛機) 도니를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다. 그렇게 지상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진 창공에 있다 보면,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인단다. 남다른 취미생활인 그의 비행은 도저히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현실로부터 도주하는 완벽한 방법이다. 그런데 얽히고설킨 그의 가족사의 내면에는 수영장에서 익사한 채로 발견된 한국계 부인 데이지의 존재가 자리하고 있다. 모두가 알고 있듯이, 미국이란 사회는 이민자의 나라가 아니던가. 제리 배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유달리 가족애를 자랑으로 하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인 제롬 바타글리아(제리 배틀의 본명)는 배틀 브라더스라는 조경회사를 차려 근교 부자들의 조경에 대한 고상한 취미를 만끽시켜 주면서, 자신들도 성공한 아메리칸 드림의 대열에 합류했다.

 

게다가 한국계 아내인 데이지와 결혼하면서 다인종국가 미국의 본질에 다가선다. 완벽한 영어를 구사하는 자식들인 잭과 테레사는 각각 가업을 이어 받고, 이름난 학교를 졸업하고 문학평론을 하는 엘리트 계급으로 거듭나는데 성공한다. 그들의 성취가 모두 부모 세대의 자본 축적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어찌어찌해서 사업에 실패하고 재기를 위해서도 부모에 기대야 하는 상황은 우리가 어려서 줄기차게 들어온 자립적인 미국 청년들의 모습을 배반한다. 그들 역시 자립하기 위해 어느 정도는 부모의 조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민자 2세인 이창래 작가는 기존의 <네이티브 스피커><척하는 삶>에서 다뤘던 이민 1세대 이슈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오늘날 이민자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에 천착한다. 그리고 아마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 세대와의 소통과 화해라는 주제를 부상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가족소설이라는 형식이야말로 금상첨화였다.

 

주인공 제리 배틀의 시선에서 기술된 <가족>에서 이창래 작가는 굳이 미국 가족이 아니더라도 보편적 가족들이 마주칠 수 있는 상황의 일반화를 통해 가족이라는 사회구성체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제리 배틀은 아내 데이지의 죽음 이래, 핵심을 회피하는 전략으로 스스로 잭과 테레사로부터 멀어져왔다. 실질적인 새로운 아내라고 생각하는 리타와의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가장이자 아버지로서 자신의 역할을 제한하고, 그저 현상유지만을 목표로 하니 리타의 불만을 재울 수가 없는 것이다. 결국 암으로 죽어가는 딸 테레사는 아버지에게 랍스터가 먹고 싶다는 강력한 요청으로 비행을 함께 하면서, 파산한 아들 잭을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처럼, 이미 돌아온 한 명의 탕자는 아버지에게 온전하게 투신해서 자신의 사후를 부탁하고 더 나아가 가업을 말아먹은 두 번째 탕자와 화해하라고 강권한다. 죽어가는 딸의 이런 부탁을 어떻게 거절할 수 있단 말인가. 모든 문제의 해결은 역시 끈끈한 가족애의 재구성이라는 전통적 방식으로 소설을 끝을 맺는다. 소설의 어디선가 나온 표현대로 우리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계속해서 이어지는 삶이라는 퍼레이드야말로 이 소설에서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내가 체험한 이창래 작가 소설의 호흡은 길다. 노블도 아닌 노블라가 유행하는 시대에 꽤 두꺼운 분량의 책을 읽어내기란 솔직히 쉽지 않다. 책이 아니어도 우리의 눈과 귀를 유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묵직한 내용의 그가 저술한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만이 가진 독창적 매력에 빠지게 될 것이다. 게다가 계속해서 진화하는 작가의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반가울 뿐이다. 솔직히 최신작 <만조의 바다 위에서>는 작가가 그동안 보여준 스타일과 너무 달라서 좀 당혹스럽기도 했지만, 또다른 신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에 이번에는 또 어떤 도전을 보여줄지 기대가 된다. 완독의 만족스러움과 고단한 삶에 지친 나에게 작은 평안과 위로를 선사해주어 고맙다.

 

[리딩데이트] 2015531일 오후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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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베라는 남자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최민우 옮김 / 다산책방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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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딩데이트 : 2015531일 오전 1022

 

책을 읽다 보면, 읽기도 전에 재밌겠다는 감이 오는 책이 있다. 최근 내게 그런 책이 별로 없었는데, 오늘 막 읽은 프레드릭 배크만의 <오베라는 남자>는 읽기 전에 바로 그런 감이 왔다. 문제는 워낙에 할 일이 많아서, 신입직원 구직공고도 내야하고 인터뷰 일정도 잡아야 하고 또 월말 결산까지 겹쳐서 단박에 다 읽으려던 나의 계획은 일찌감치 물건너 가고 한가한 주말 새벽을 이용해서야 비로소 다 읽을 수가 있었다. 나의 감대로 59살 먹은 오베의 이야기는 정말 최고였다.

 

이야기의 시작은 스웨덴의 어느 아이패드 매장에서 시작된다. 책의 말미에 도착하면 최신 문명의 이기를 배척하는 우리의 오베가 외계의 암호 같은 아이패드 기기와 관련된 3G128기가바이트니 하는 사양 설명을 들으며 매장직원과 전투를 벌였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초짜 작가답지 않게, 아주 정교한 이야기 틀을 이용해서 매력적일 수밖에 없는 한 남자의 인생을 조심스럽게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했다.

 

우리의 오베는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기묘한 행동으로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우선 마을의 방범대원처럼 순찰을 돌며 평소와 다른 점들을 하나하나 체크한다. 그리고 자신의 집에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만들겠노라고 선언한다. 문제는 그 이유다. 얼마 전 암으로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내 소냐를 잃은 이 남자는 그녀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없다. 학교 교사로 말썽쟁이 아이들에게 셰익스피어 읽는 법을 가르쳤다는 소냐는 까칠하고 퉁명스러운 오베의 세상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추 같은 존재였다는 것이 소설의 전개와 더불어 양파껍질 벗기듯 하나씩 들어난다. 소냐 없이 살 수 없다고 판단한 오베라는 남자는 결국 스스로 삶을 마감할 것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그것이 바로 오베가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고리를 만들겠다고 결심한 이유다.

 

문제는 스웨덴 국민차라고 할 수 있는 사브 차만 타고, 자기 일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해야한다는 자수성가를 원칙으로 삼은 오베에게 난데없이 등장한 이웃 멀대 패트릭과 이란 출신의 그의 아내 파르바네 가족의 출현이다. 어디 그 뿐인가, IT 기술자라는 이웃의 지미라는 청년부터 시작해서 우편배달 일을 하는 아드리안, 길고양이, 아드리안의 친구 동성애자 미리사드 그리고 지역신문 기자 레나까지 총동원되서 오베의 죽음을 방해하기에 나선다. 물론 그들이 오베의 결심을 알고 그의 행동을 저지하려는 것은 아니고 하나 같이 우연에 바탕한 필연으로 오베의 삶 속에 풍덩 뛰어든 것이다.

 

소설에서 아주 유용한 플래시백 기법으로 배크만 작가는 오베라는 남자가 어떻게 해서 자신에게 과분하기만 한 소냐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는지를 그리고 40년 지기 루네와 무슨 이유 때문에 철천지원수 사이가 되었는지에 대해 마치 신문연재소설 아니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에서 궁금하면 다음주를 기대하시라는 기법으로 독자를 홀리기 시작한다. 물론, 그렇게 유혹된 독자는 오베라는 남자의 이야기에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술술 책장을 넘기게 된다. 도대체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 맞는 걸까? 책을 다 읽고 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베라는 남자는 타고난 사랑꾼이었다. 아내 소냐를 위해서라면, 그녀가 좋아하는 카페에 앉아 신문을 몇 시간이 읽을 수 있고 스페인 여행에서 당한 불의의 사고 때문에 휠체어를 타게 된 소냐의 출근을 위해 직접 휠체어 전용 레일을 깔 수 있는 그런 남자다. 소설은 중반에서 소냐와 오베의 과거사를 헤집으면서 온갖 다양한 캐릭터들이 연출하는 코믹한 상황에서 벗어나 감성을 자극하는 오베라는 남자의 진면모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다. 당연히 오베는 그런 남자라는 사실에 독자를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게 독자의 공감대를 얻는데 성공한 배크만 작가는 이제 마지막 고지에 기다리고 있는 피날레를 향해 감동이 전제된 마지막 플롯을 진군시킨다.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점차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캐릭터들을 <오베라는 남자>에 대거 등장시키면서 다양성을 받아들이라고 조용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동성애자나 비만이 우리가 가진 편견처럼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라고, 가치중립적인 점에서 바라보면 오베가 선택한 것처럼 공존가능하다는 증명해 보인다. 다문화 가족인 파르바네/패트릭 패밀리도 마찬가지다.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성장배경이 전혀 다르지만, 보편적 인류애는 어디에서고 통하기 마련이다. 아드리안이 대표하는 젊은 세대와의 소통도 불가능한 주제는 아니다. 사브만을 고집하던 오베가 아드리안이 도요타를 사는 것을 허용하는 장면은 세대 간의 타협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물론 그렇게 진중한 주제만으로 소설을 이끌어 가는 것만은 아니다. 퉁명스러운 오베라는 캐릭터를 이용해서 아드리안에게 블랙커피를 주문한 오베에게 우유를 넣느냐고 아드리안이 묻자, “우유를 넣으면 그게 블랙커피냐?”고 심퉁맞게 대꾸하는 장면으로 대변되는 유머는 정말 최고였다. 그렇게 프레드릭 배크만 작가는 비빔국수처럼 쉽게 구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해서 감칠맛나는 <오베라는 남자>라는 멋진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그가 발표한 다른 두 권의 책도 곧 소개될 예정이라고 하는데, 이 정도 실력의 작가의 책이라면 기대가 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이 좋고, 정의와 페어플레이, 근면한 노동 같은 전통적 가치들이 날로 퇴색해가고 있는 21세기에 19세기 스타일의 남자 오베는 어쩌면 돌도끼를 든 크로마뇽인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 이렇게 자신만의 스타일을 우직스럽게 고집하는 멋쟁이 사랑꾼 한 명 정도는 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사실 겉으로 보기에 까칠하고 퉁명스럽기 이를 데 없지만, 오베 같은 남자야말로 흔히 만나기 쉽지 않은 사랑을 제대로 아는 그런 멋진 남자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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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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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문학 작품의 영화화가 할리우드의 대세인 모양이다. 하긴 괜찮은 영화 각본 구하기가 쉽지 않으니, ‘올디스 굿디스라는 표현대로 영화의 영원한 타깃이라고 할 수 있는 소설 원작의 영화화에 목을 메고 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읽은 토머스 하디의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도 이번 주에 개봉을 한다고 하는데, 톰 롭 스미스의 스릴러 <차일드 44>도 같이 개봉한다.

 

<차일드 44>의 시작은 섬뜩하기 짝이 없다. 스탈린 시절 극심했던 기근으로 모두가 굶주려야 했던 시절 이야기는 <한니발>의 기원이 떠오를 정도였다. 그리고 소설은 20년 뒤로 점프를 해서 여전히 스탈린이 통치하고 있던 소비에트 소련 시절로 독자를 인도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레오 데미도프로 국가안보부 MGB(비밀경찰) 소속의 엘리트 요원이다. 나치 독일을 상대한 대애국전쟁의 전쟁영웅이기도 한 레오는 소설 초반에 두 개의 기묘한 사건에 엮어 고초를 치르게 된다. 하나는 동료 아들의 죽음에 관련된 미스터리이고, 다른 하나는 감시 중에 홀연히 사라진 수의사 추적 건이다.

 

전자는 완벽한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에서는 발생해서는 안되는 사건이라며 쉬쉬 하며 넘어가자는 분위기로 모종의 냄새가 나긴 하지만, 모두가 모두를 감시하는 경찰국가 체제의 모순을 드러내는 단초가 된다. 두 번째 사건인 반역자 추적은 레오의 의지와 약물을 힘을 빌어 간신히 해결하는데 성공하지만, 그 와중에서 앙심을 품은 하급자 바실리의 음모에 빠지는 계기가 된다. 어느 소설에서고 빠질 수 없는 악당 역을 맡은 바실리는 레오의 사랑스러운 아내 라이사를 음모의 핵심에 배치해서 결국 레오를 엘리트 국가안보부 요원에서 민병대원으로 추락시키고 만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레오가 동료의 아들이 사고사로 죽은 것이 아니라 살해당했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되면서 소설은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다. 톰 롭 스미스는 구소련에서 악명을 떨친 희대의 싸이코패스 시리얼 킬러 안드레이 치카틸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해서 <차일드 44>를 재구성했다고 한다. 소설의 한 축은 그렇게 연쇄살인범을 추격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담으면서 동시에, 완벽한 사회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두가 노력했던 소비에트 시절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인민을 위한 시스템이라는 국가가 실제로는 최고통치자(스탈린)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무조건 반역으로 규정되어, 관련된 사람들이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찰국가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렇게 반역자가 된 사람을 숨겨주는 것도 또한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라며 마구잡이 총질을 해대는 바실리의 모습과 연쇄살인법의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공인된 국가 폭력의 실상에 작가는 현미경을 들이댄다.

 

소설 초반의 구성을 좀 더 빠르게 진행하면서, 레오와 범인과의 관계에 대한 핍진성에 좀 더 공을 들였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남는다. 하지만 이 소설을 쓴 톰 롭 스미스가 소설을 쓸 당시 이십대였고 구소련을 한 번도 방문해 본 적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이 정도 수작을 만들어냈다는 점만으로도 높이 평가할 만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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