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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꼬? ㅣ 단비어린이 그림책 15
김인자 글, 한상언 그림 / 단비어린이 / 2015년 4월
평점 :
절판
김인자 씨가 글을 쓰고 한상언 씨가 그린 <누꼬?>는 어린이 그림책이다. 어른이라면 몇 분이면 읽을 수 있는 분량의 그런 그림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절로 돌아가신 할머니 생각이 떠올랐다. 너무 어려서 몇 살인지도 모를 그런 시절에, 할머니 댁의 평상에 앉아 할머니가 비벼 주시는 콩가루밥을 정신없이 받아먹던 바로 기억이 내가 가진 할머니에 대한 최초의 기억이다. 정식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으신 우리 할머니의 한글쓰기는 이제 막 학교에서 글을 배우기 시작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은 그 모든 걸 다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만, 그 땐 그랬었다.
<누꼬>에는 인간이 체험하게 되는 생로병사 그리고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주인공 김입분(분명 이쁜이에서 유래한 이름일 것이다) 할머니는 척추가 휘셔서 키가 주셨다고 한다, 2cm. 김입분 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모으기 선수셨다. 지금은 돈을 써야 경제가 돌아간다고 다들 떠들어 대지만, 그 시절에는 아껴야 잘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무장한 세대가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신문지 한 장, 허투루 쓰는 법이 없었다. 할아버지 댁에 가보면, 안방의 한 구석에 잘 접힌 대로 차곡차곡 쌓여 가는 신문지 더미를 볼 수가 있었다.
그 시대를 산 여느 어머니/할머니처럼 우리 할머니도 살림의 선수셨다고 기억된다. 요즘에는 계량기가 없으면 양념 맛이 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항상 수치화된 정량보다 ‘적당히’ 버무린 손맛을 따라갈 수가 없는 것 같다. 고된 가사노동과 전투에 버금가는 육아 때문에 약을 입에 달고 사신 것도 김입분 할머니의 그것과 비슷하다. 약을 드시기 위해 위장을 보호하는 약을 따로 드셔야 한다는 사실을 아마 그 때 처음 알았나 보다. 감수성을 자극하는 텔레비전 드마라를 보면서 눈물지으시는 장면도 어쩌면 그렇게 똑같은지 모르겠다. 김인자 작가는 어쩌면 우리 할머니를 관통하는 공통점들을 그러모아 이 그림책에 담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접할 때는 미처 몰랐는데, 동료가 한 번 스윽 보고서 김입분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나 보다라고 말했을 때, 마지막으로 우리 할머니와 똑같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돌아가시기 전에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 첫손주를 알아보시지 못해 ‘집이’라고 부르시던 마지막 기억이 났다. 늘 자식과 손주들의 끼니 걱정, 비가 오면 집에 물이 새지 않나 하는 걱정, 때가 되면 자식들의 월사금 걱정 같은 다양한 걱정거리들을 껴안고 사신 할머니 세대의 단면을 어린 손주의 시선으로 풀어낸 작가의 따스한 시선이 정말 오래 전 기억을 떠올리게 해주었다. 이제 아무 걱정 없는 세상에서 편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