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뿔 1
고광률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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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를 말할 때, 특히 80년대를 말할 때 절대 빼놓을 수 없는 두 사건이 있다. 하나는 80년 5월 광주고, 다른 하나는 87년 6월 항쟁이다. 시간이 지났으니 끝났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이 두 사건은 아직도 진행중이다. 왜냐고? 이 사건의 주모자가 마르지 않는 화수분 같은 29만원을 가지고 떵떵거리며 살고 있고, 그를 추종하는 인물들과 종북을 외치는 정치인과 그 언저리들이 아직도 힘을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올라가서 해방 후 친일잔재를 깨끗하게 처리하지 못한 역사와 맞물려 돌아간다. 수많은 친일파들이 독도에는 열을 내어 흥분하지만 그 시절은 이제 그만 잊자고 말하는 불편한 현실을 돌아보면 너무나도 분명하다.

 

작가는 80년대를 배경으로 이 소설을 썼다. 현재로 진행되는 것은 87년 6.29 선언 이후다. 아마 이때 민주화를 외친 대부분의 시민들은 이제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가 찾아왔다고 섣부른 판단을 했다. 체육관 대통령이 아니라 직선제를 쟁취하고 수감되어 있던 양김이 풀려나는 것을 보고 그 옛날 4.19혁명 때처럼 미래를 낙관적으로 본 것이다. 그 이후의 역사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대로 흘러왔다. 지금의 정치현실을 혹자는 유신보다 더하다는 말도 할 정도다. 물론 외형적으로 유신보다 더할 수는 없다. 하지만 민주정권을 한 번 맛본 사람들에게는 더욱 강하게 다가오는 것도 사실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웹툰이자 영화로도 제작된 강풀의 <26년>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80년 5월 광주와 복수가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강풀의 원작이 좀더 감성적이고 자극적이고 감동적이라면 이 소설은 좀더 진중하다. 피해 당사자를 중심에 놓고 직접 그 당시 계엄군 지휘자와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을 주변에 배치해서 다양한 시각을 담아냈다. 강풀의 원작보다 더 많은 인물을 담아내었다는 점과 악당의 심리를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은 소설이 지닌 힘이다. 하지만 가슴 울리는 감동은 사실 부족하다. 개인적으로 잘못 읽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등장인물 몇몇은 제대로 표현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박갑수. 그는 이 소설의 중심이다. 하지만 등장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죽는다. 그러나 이 죽음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왜 그는 죽었을까? 하는 의문에서. 이 의문을 가장 먼저 조사하는 인물은 친구인 양창우 기자다. 박갑수와 전날 술을 마셨고 자신도 모르게 단서를 가진 인물이다. 박갑수의 반대편에 선 인물이 있다. 광주 계엄군 장교였고 살인을 사주한 장상구 의원이다. 그의 아버지는 친일로 돈을 모았고 신분 세탁을 통해 다른 인물로 변신한 전력이 있다. 장 의원은 폭력배를 부리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못하는 짓이 없는 인물이다. 금력을 이용해 조폭을 부리고 권력과 금력을 통해 언론사 등을 주무른다.

 

장 의원과 박갑수 사이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나 하는 것이 주요한 미스터리다. 그런데 이것은 쉽게 앞에서 나온다. 이 미스터리를 끝까지 끌고 가면서 긴장을 심어주지 못한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여기에 장 의원의 과거와 관련되어 있고 또 다른 반대편에 선 두 사람이 등장한다. 장의원의 부하였던 서창수 중사와 북파요원이었던 구성도다. 이들이 과거의 부하였다면 현재 조폭인 박태춘이 있다. 그는 장 의원에게서 벗어나고자 하지만 쉽지 않다. 이권과 과거 등이 엮여 있기 때문이다. 이들뿐만 아니라 신문사 민 사장과 박갑수 마지막 술자리를 같이 했던 오 마담 등이 있다. 이들도 현재와 과거 속에 박갑수와 장 의원 등에 엮여 있다. 이런 관계들을 하나씩 보여주는 과정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과정이기도 하다.

 

거대한 현대사를 정치, 언론, 조폭, 교육계, 공권력 등의 다양한 유착과 처참했던 과거를 연결시켜 풀어낸 것은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시대 속에 개인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권력을 위해서라면 인간이 어떻게까지 변하는지, 양심이란 단어가 이권과 권력 앞에 얼마나 무력한지,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현실이 얼마나 지속적인지, 하나의 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너무 많은 인물을 등장시키고 그들의 삶을 담아내기에는 분량이 부족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특히 갑자기 비중이 줄어든 양창우 기자의 경우는 조금 당혹스럽다. 이야기의 중심을 잡아야 하는 사람이 축소되고 80년 광주로 가면서 균형을 잃었다고 해야 하나. 물론 이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상이다. 하지만 감상적으로 흘러가지 않고 인물들 속에 현대사를 제대로 담아낸 것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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