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 - 이제하 판타스틱 미니픽션집
이제하 지음 / 달봄 / 2012년 10월
평점 :
품절


참 오랜만에 이제하의 소설을 읽었다. 너무 오래되어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이상문학상을 받았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가 생각난다. 영화나 소설도 모두 봤다는 기억만 있는데 왠지 모르게 제목만은 기억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왜일까? 엄청난 걸작이라서? 아니다. 특이한 제목이라서? 역시 아니다. 그럼 왜? 사실 이유를 모른다. 이름과 제목은 학창시절 소크라테스와 ‘너 자신을 알라’를 같이 외우고 기억한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추측해본다.

 

사랑의 시작을 위한 서른아홉 개의 판타지란 부제가 보인다. 판타스틱 미니픽션집이란 설명글도. 특히 하성란의 허를 찔리고 말았다는 표현은 첫 작품이자 표제작 <코>를 읽을 때 그대로 느꼈다. 이 느낌이 좋아 다음 이야기도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졌다. 솔직히 말해 첫 작품과 같은 재미를 누린 이야기는 많지 않다. 콩트집에 가깝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하나의 이야기 분량이 달라서 호흡을 놓친 것도 적지 않다. 뭔 말이냐면 여기서 반전이나 이야기가 끝날 것이란 예상을 가지고 읽는데 계속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흐름과 재미를 놓치는 것 말이다. 거기에 좋지 못한 몸 상태에서 읽다보니 충분히 집중하지 못한 아쉬움도 있다.

 

분량과 예상이 다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아도 첫 작품 같은 소설들이 나오고 예상하지 못한 전개가 펼쳐지면서 재미를 준 경우도 많다. 황당한 이야기도 적지 않다. 곰을 길들여 생활한다거나 기차에서 만난 마술사의 엄청난 마술까지. 어떤 이야기는 나의 이해력 부족으로 충분히 재미를 누리지 못한 것도 있다. 문장이 나의 호흡과 어긋나면서 헤맨 이야기도 있다. 이런저런 경험을 했다는 사실에 어쩌면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지만 역시 개인 역량 부족으로 소화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어쩔 수 없다.

 

서른아홉 편이 분량이 제각각이듯이 다루는 소재나 설정 등이 모두 제각각이다. 이 다양함이 앞에서도 말했듯이 장점이자 단점이다. 가끔 이런 종류의 소설집을 읽을 때면 겪게 되는 내 개인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나의 내공 부족이 만든 장애다. 만약 이 장애를 넘어가게 되면 다양한 재미를 누릴 수 있다. 그때는 아주 큰 장점이다. 작가의 평가 중 ‘경계 없음의 미악’을 지녔다는 평은 아마도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책을 뒤적이는데 잠시 잊고 있던 이야기들이 새록새록 솟아난다.

 

콩트집으로 불릴 정도의 분량을 넘어 한 편의 단편소설로 분류해도 될 정도의 소설이 몇 편 있다. 개인적으로 이 때문에 호흡이 깨진 것도 적지 않다. 문체가 바뀌고 묘사 방식이 달라지면서 고생한 것도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 속에 그려 넣은 작가의 그림들은 자연스럽게 시선을 끈다. 작가의 이력을 잘 모르고 봤어도 그랬었겠지만 이력을 읽고 난 후는 더 자세하게 쳐다본다. 어떤 것은 장난같고 어떤 것은 그 단순한 선이 여운을 남긴다. 이것은 아마도 각각의 이야기에서 내가 느낀 것과 비슷할 것이다.

 

일독을 한 지금. 이 글을 쓰는 지금. 머릿속에서 가끔 이 책을 들쳐보면서 짧은 이야기를 읽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취향에 맞지 않는 행동이지만 지금 글을 쓰면서 뒤적이다보니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짧은 글일수록 더 강하게 이런 느낌이 다가온다. 일상의 뒤틀림과 판타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 조금 다른 감성을 발견할 때 아! 하고 감탄한다. 좀더 여유를 가지고 내공을 쌓은 뒤 읽으면 더 풍성한 재미를 받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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