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숲
스가 히로에 지음, 이윤정 옮김 / 포레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본다. 번역된 책이 단 한 권 있다. 바로 이 책이다. 이 소설집은 연작이다.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되면서 동시에 이어진다. sf소설이다. 하지만 추리소설이다. 뛰어난 완성도를 인정받아 제54회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을 수상했다. sf팬클럽회의가 주관하는 그해 최고의 sf에 주어지는 세이운상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경력이다. 언제나처럼 이런 내역은 시선을 끈다. 추천글이나 작품해설은 읽기 전 어떤 선입견을 가지게 만든다. 이것이 상태 좋지 못한 나에게 살짝 독으로 작용했다.

 

아홉 편의 연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작품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 정보를 먼저 내놓는다. 단편에서 이 정보를 제대로 내놓기는 쉽지 않다. 그리스 신화를 이용한 오스트레일리아 크기의 거대한 박물관 행성 아프로디테는 기존 sf소설이나 영화를 자연스레 연상시킨다. 과연 이것과 비슷한 것이 있는지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 거대한 박물관 행성이 엄청난 동식물, 미술품, 음악, 무대예술을 모두 모아 두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그것은 이런 배경이 작가의 상상력을 증대하기 위한 하나의 설정으로 작용할 뿐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음악을 듣다>는 이 연작을 이끌어 나갈 주인공 다카히로를 등장시킨다. 그는 뇌수술을 받은 후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직접 접속할 수 있는 학예원이다. 그의 전문분야는 각 분야의 분쟁을 조정하는 일이다. 그런데 이 단편에서는 곤란한 일을 의뢰받는다. 그것은 한 음악가가 그린 음악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다. 일반인이 보기에 너무나도 졸작인 그림이 독설로 유명한 미술평론가에게 천상의 음악이 들린다는 극찬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을 본 병원의 환자들이 열광한다. 왜 일까?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이런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이 어떻게 보면 시시하고, 또 어떻게 보면 흥미롭고 새롭게 다가온다.

 

이후 이어지는 작품은 노부부의 황당한 의뢰를 다룬 <이 아이는 누구?>다. 이 아이는 바로 인형이다. 인형의 이름을 찾아달라는 황당한 의뢰다. 이름을 찾는 과정과 왜 이름을 찾고자 하는지 알려줄 때 잊고 있던 중요한 몇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리고 밝혀지는 사실은 가슴이 아리다. <여름에 내리는 눈>은 범인이 누군지 금방 드러난다. 중요한 것은 범인이 누군지가 아니다. 왜?에 있다. 그리고 진정한 연주자가 어떤 것인지 말한다. 이 단편에 나오는 수많은 기모노와 문화는 사실 너무 낯설어 몰입하는데 조금 방해가 되었다. 마지막 문장은 솔직히 이해하지 못했다.

 

춤으로 신성을 보여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떤 것일까? 이런 의문을 품게 하는 작품이 <꿈을 보여주는 사람>이다. 한 무용가의 삶을 통해 본질이 왜곡되는 현실을 비판하고 진한 여운을 남긴다. <포옹>은 이 소설에서 문제유발자 매튜가 처음 등장한다. 사실 매튜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뒤편부터고 학예원들이 뇌수술로 심어놓은 기계의 프로그램 버전을 처음으로 다룬다. 방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작품을 연구하는데 도움을 주지만 또 어떤 장애가 있는지도 같이 보여준다. 이것은 매튜에게서 더 심하게 일어나지만.

 

표제작 <영원의 숲>은 매튜가 본격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작품이다. 표절과 사랑을 다루는데 작가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마지막 장면은 감동적이다. 아마 영화로 만든다면 가슴 뭉클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라리사의 거짓말>은 인어를 찾는 소년과 다리를 잃은 조형가 이야기인데 예상하지 못한 엔딩에 놀란다. 그리고 인어전설을 작품에도 인용한 것은 재미있다. <반짝반짝 작은 별>에서는 황금비율과 짝사랑을 다룬다. 외계에서 날아온 씨앗과 오각형 채색조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마지막 작품 <러브 송>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왔던 97건반의 흑천사와 다카히로의 아내 미와코가 중심에 선다. 여기에 외계 씨앗에서 핀 연꽃이 연결된다. 일에 치인 사람이 잊고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가볍게 읽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용어와 설정 때문에 조금 고생했다. 무시하고 읽어야 하는데 주석에 눈길이 자꾸 간다. 덕분에 흐름이 깨어졌다. 여기에 좋지 못한 몸상태까지. 하지만 예술을 소재로 sf적 배경을 가지고 이런 작품을 썼다는 것은 놀랍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신선하다. 읽으면서 왜 다카히로가 상위버전으로 바꾸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계속 생기지만 이 때문에 생기는 갈등과 한계와 순수함이 재미있다. 이것을 세대차이로 풀어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이런저런 이유로 충분히 그 재미를 누리지는 흥미로운 작품집이고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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