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새
케빈 파워스 지음, 원은주 옮김 / 은행나무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우린 아프리카의 소년병에 대해 말한다. 어떻게 이런 아이들을 전쟁 도구로 사용하냐고? 그런데 이 소설을 읽으면 열일곱 살에 입대한 작가와 등장인물이 나온다. 아프리카의 소년병들(미군보다는 몇 살 어리다)은 나쁘고 미군은 좀더 나이가 많다는 것으로 올바른 것일까? 이런 생각이 먼저 든 것은 역자가 후기에서 말했듯이 주인공을 포함한 하사와 중위 등의 군인들이 모두 20대 초반이란 사실 때문이다. 이 청소년들은 전쟁을 영화나 게임으로 보았던 세대고, 그 참혹함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육이오나 월남 전쟁을 경험한 분들에 비하면 나도 그렇지만.

 

가상의 이라크 도시 알 타파르에서 전투가 벌어진다. 매일 미군이 죽는다. 야간 전투에서 어린 군인들은 각성제와 두려움 때문에 깨어있다.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은 바틀과 머프와 스털링 하사다. 화자인 바틀이 스물한 살이고 머프는 열일곱, 스털링은 많아야 스물다섯을 넘지 않은 어린 나이다. 이 어린 나이에 그들은 무더운 이라크의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한다. 이라크에 오기 전 그들에게 전쟁은 영화나 게임 그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두려움과 만용과 용기가 뒤섞인 이 선택은 그들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린다.

 

전쟁을 소재로 했지만 영화에서 나오는 멋진 전투 장면은 없다. 불시에 날아온 총알은 죽음을 부르고, 옆에 선 동료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 공포와 둔감해진 감각은 적군이 아닌 민간인에게 총알을 쏟아붓는다. 적은 시체를 이용해 함정을 파고, 갑작스런 공격에 주변은 늘 죽음으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들을 작가는 굉장히 건조하면서도 유려한 문장으로 그려낸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단순히 건조하다는 느낌이 들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왜 평론가들이 시적 언어란 단어를 사용했는지 공감하게 된다.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다. 과거의 한 시점에서 현재로 진행하고, 그 사이사이에 과거의 사건을 넣어서 무슨 일이 생겼을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다. 특히 머프의 죽음을 둘러싼 상황과 의문은 뒤로 가면서 더 커지는데 사실 이 장면을 보았을 때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의문이 생겼다. 독자가 느낀 의문이 이 정도라면 그 현장에 있었던 사람이 어느 정도일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다. 군에 입대한 청소년들이 뭔가 중요한 일을 하고 싶어 했겠지만 실제 전장은 그 중요한 무엇보다 생존의 본능이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 소설을 보면서 이라크 전쟁 이후 수많은 병사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렸다는 기사를 다시금 되살리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전쟁에 참가한 바틀과 머프 등에게 어떤 식으로 일어났는지 보여줄 때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머프의 기이하고 괴상한 죽음과 그의 사체를 두고 일어난 사건은 이 전쟁이 만들어낸 광기의 결과물이다. 이후 바틀이 집으로 돌아온 후 보여준 행동들은 이 결과의 파편이다. 이 두 순서를 바꿔놓아 이야기 속에 더 몰입한다. 단순히 시간 순서를 바꿈으로서 호기심과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부대에 온 대령의 연설 “대원들. 미국 국민이 제군을 믿고 있다. 대원들 평생에 이런 중요한 일은 다시는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119쪽)는 엄청난 거짓말이다. 바틀과 머프의 대화에서 이것이 잘 드러난다. 그들은 이 전쟁이 평생에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 전장에 있지 않고 게임처럼 이 상황을 보는 사람에게 이 거짓말은 자기를 정당화하는 최면이자 새로운 신병을 모집하는 광고가 된다. 정치인들 중 단 한명도 전장에서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고 싸우지 않는다. 그런 그들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청소년들을 죽음의 땅으로 내몰고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도 그렇게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라면 아직 남북이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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