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3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우리가 주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고, 그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식회사가 운영된다는 그 인식 말이다. 물론 노조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노조의 경영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외환은행 론스타 사태에서 보았듯이 주주들이 엄청난 배당금을 받아먹고 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한국 재벌의 이상한 기업지배구조도 주식회사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책은 모두 2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경제 귀족주의고, 2부는 경제 민주주의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2부 경제 민주주의다. 그럼 경제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설명을 다룬 장들이 바로 1부다. 여기서 저자는 현재의 주식회사 제도는 중세 왕권신수설을 그대로 닮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설명하고 논증하는 것이 바로 1부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룬 2부보다 재미있었다. 2부의 해법이 나의 뒤흔들 정도로 매력적이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의 숨겨진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원제는 ‘The Divine Right of Capital'이다. 왕권신수설과 비슷한데 표지에서도 나온 주주 몫은 이익이고 왜 직원 몫은 비용이라 하는가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 자본이 지닌 속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풀어내면서 현대 주식회사의 자본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한다. 이익극대화가 최상의 목표인 주주들에게 이것에 방해되는 것은 없애야 할 장애다. 그러니 환경이니 복지니 하는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딴나라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삼성반도체 직원의 백혈병 사건이나 최근의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건 등만 보아도 너무나 분명하다.

 

2부로 나눈 후 각각 6가지 원칙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제 귀족주의에서 다루는 것은 성구-세계관, 특권, 재산, 통치, 자유, 주권의 원칙 등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계몽, 평등, 공공선, 민주주의, 정의, 혁명적 진화의 원칙 등이다. 이 원칙들에서 헷갈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와 주권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네가 아니라 나에게 자유를’을, 주권은 부유한 소수의 경제적 주권을 의미한다. 용어가 만들어낸 착각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 생각하면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쉽게 생각하면 자유무역이란 용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얼마나 다른지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정치가 민중에게 권력을 이양했지만 경제 주권은 아직 그대로라고 말한다. 경제 주권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른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서 주구장창 주장한 것이라 낯설지는 않지만 이미 10년 전에 나온 책에서 벌써 다뤘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물론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경제주권과 ‘나꼽살’이 다루고 있는 것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 구조와 정치 구조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자 등을 감안하면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경제 민주주의를 다룬 2부 첫 장 제목은 깨어나기, 즉 계몽이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언어의 문제다. 주주와 소유주, 투자자와 투기꾼, 재산권과 부유권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책에서 주장하는 공식 하나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직원 이익 + 자본 이익 = 매출 - 재료비. 현대 주주는 초창기 자본을 낸 주주들이 아니다. 주식시장이란 시장을 통해 자본 이익을 얻기 위해 투기한 사람들이다. 회사의 실질적인 자본 증가엔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고 이익을 빼내어가는 사람들이다. 실제 좋은 회사의 경우 그들이 투자한 돈의 몇 십 배 회수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권리와 이익은 보전된다.

 

여기에 반대 생각으로 만약 회사가 망하면 투자자들이 모두 손해를 껴안는다는 의견이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초기 투자의 경우나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면 그 경우는 더 줄어든다. 대부분 주식시장에는 해당 사항이 드물다. 그리고 이런 경우라 해도 주주의 재산 손실보다 직원의 생존권이 더 큰 문제다. 주식 투자에 올인한 주주들이 많이 있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역시 이런 일도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 그냥 마구 사용하던 용어 중 하나가 ‘법인’이다. 저자는 주식회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맞다.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법인(法人)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권리를 누리게 한다. 주식회사와 부자들은 법의 테두리를 자신들에게 맞게 조정한 후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주주는 법인의 탈을 쓴 후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변 환경과 상황을 변화시킨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 민주주의가 아주 더디고 힘겨운 투쟁을 통해 쟁취했듯이 경제 민주주의도 곧 다가올 것이다. 여기엔 정치와 같은 힘겨운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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