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나인 드림
데이비드 미첼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개봉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원작가 작품이다. 먼저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읽을까 하고 고민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볼 예정이라 책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어디에 두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다 우연히 나에게 온 이 소설은 며칠의 시간을 빼앗아 갔다. 분량이 적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고, 다른 하나는 평일에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여기에 처음 얼마간은 이 소설의 형식과 문장 등에 적응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 적응이 다 되기도 전에 끝에 도달했지만. 평소보다 조금 힘들게 읽었지만 작가의 매력을 알게 만드는 데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읽으면서 숫자 9때문인지 모르지만 김만중의 <구운몽>이 떠올랐다. 내용 상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꿈과 숫자 9밖에 없다. 아련한 기억 속에 자리한 소설이 떠오른 것은 첫 장면과 각 장마다 일어나는 사건과 환상 때문이다. 이 도입부 때문에 한동안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았다. 가독성이나 재미와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점점 진도가 나감에 따라 이야기 구성에 눈길이 갔고 주인공의 기묘한 경험에 빨려 들었다. 순간적으로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예고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아홉 장이라고 했지만 마지막 장은 백지다. 이 백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소설 전체에 대한 호불호와 해석이 갈라질 것이다. 내 경우는 어떻게 그 백지를 채워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8장의 마지막 문장과 상황이 이것을 더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 앞장에서 보여준 열아홉을 지나 스무 살이 된 미야케 에이지의 결코 간단하지 않은 대모험을 보면 그냥 무시하기는 힘들다.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한 시도가 어떻게 이런 혼란 속으로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 말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이 장면도 혹시 미야케의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솔직히 적지 않은 장면들이 그랬다.

 

소설은 미야케 에이지가 자신의 유전적 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어머니조차 그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변호사 이름이 전부다. 이 이름을 통해 아버지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장벽이 적지 않다. 변호사와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첫 장 첫 장면이 이 만남을 위해 액션 영화에서 빌려온 액션 등으로 가득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가 바란 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데도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들이 우선 눈에 들어와서 상황을 왜곡한다. 이 때문에 미야케의 도쿄 생활은 파란만장해진다.

 

이 파란만장한 삶이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나 넘기게 만든다. 특히 이런 순간들은 한 편의 액션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은 준다. 밤의 지배자 야쿠자들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결코 평범한 시골 청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도시 청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를 둘러싼 몇 명이 만들어내는 일상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순화시켜준다. 미야케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목덜미를 가진 웨이트리스 이마조 아이는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 있고, 미야케의 로맨스를 완성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둘의 순수한 감정 덕분에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한 이 소설에서 조금은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아버지 찾기에서 시작한 소설은 언제나 자신 찾기로 끝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안주라는 쌍둥이 누나가 있는데 그녀는 어릴 때 죽었다. 이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들을 비현실적인 폭력과 환상과 엮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다양한 장르를 사용한다. SF, 액션, 스릴러, 역사, 로맨스, 판타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가끔 다양한 장르의 사용이 흐름을 방해하고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각 장의 구분을 통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물론 잠시만 흐름을 놓치면 꿈과 현실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어쩌면 마지막 장이 백지인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읽으면서 어떻게 영국인이 이렇게 일본에 대해 잘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내가 일본 사람이다. 단순히 아내 탓이라고 하기에는 그 깊이가 대단하다. 역자가 후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말했는데 사실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라 기억이 연결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라면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만난다면 원작과 또 다른 재미를 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래된 지혜 - 공존의 가치를 속삭이는 태초의 이야기
김선자 지음 / 어크로스 / 2012년 12월
평점 :
품절


부제로 ‘공존의 가치를 속삭이는 태초의 이야기’가 붙어 있다. 제목과 연결시키면 신화나 전설과 관련 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그렇다. 이 책은 신화에 대한 이야기다. 지역은 동아시아 소수민족이 살고 있는 곳이고, 대상은 그 소수민족의 신화다. 이 신화를 17장으로 나눠 보여주는데 많은 부분에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단순히 신화를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현대의 영화나 현실과 연결시켜서 이해를 돕는다. 덕분에 예전에 영화를 볼 때 놓쳤던 부분에 대한 새로운 이해도 가지게 되었다.

 

이 책은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신화를 다루고 있지만 그 핵심은 바로 공존이다. 사람과 자연의 공존이다. 자연에 대한 최근의 담론이 너무 철학적이거나 실용적인데 반해 여기서는 가장 낯익은 방식인 신화를 통해 풀어내고 있다. 그리고 그 신화를 다르게 해석하거나 더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숨겨진 의미를 찾게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원령공주>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영화들이 품고 있던 철학이나 비전이 저자의 글을 통해 하나씩 가슴으로 다가왔다. 물론 예전에 알고 있었지만 알게 모르게 잊고 있던 것들도 있다. 삶은 배움의 연속이자 배우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처음 목차를 보았을 때 ‘4장 신화, 인간의 조건을 말하다’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그 조건들이 선량함, 지혜, 나눔, 성실함 등이다. 이 중에서 내가 가지고 있거나 실천하는 것이 과연 몇 개나 있을까 하고 스스로 묻는다. 한둘 정도는 말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족의 신이 인간에게 바란 것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이다. 이 부분이 오늘의 우리를 보여준다. 기본 조건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란 것 말이다. 그리고 우리의 탐욕을 말한다. 필요해서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탐욕 때문에 파괴하고 소유하고자 하는 우리를. 바로 여기서 공존을 말한다.

 

개구리 이야기에서는 인간과 개구리의 조화를 말한다. 공존은 조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여기서 4대강이 나오는데 곡선을 직선으로 만들면서 생기는 문제와 개발이란 이름으로 자행된 파괴가 그대로 적용된다. 기술과 가치를 놓고 풀어내는 이야기는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삶이 피폐해졌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개구리가 우레신의 딸이란 설정도 놀랍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가장 마음을 움직인 것은 ‘9장 돌도 옮기면 사흘을 아파한다’란 제목이다. 무심코 길을 가다 발로 차고 가벼운 마음으로 옮겨 놓은 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표석이 되고 의미가 된다는 말에선 더 신중한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생태와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룬다. 공존의 가치가 그 바탕에 깔려 있다. 동아시아 소수민족의 신화라고 하지만 어딘가에서 들고 본 것들도 상당하다. 신화가 지역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비슷한 것이 많은 것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이런 유사성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왜 이런 비슷한 신화가 세계 곳곳에 있을까 하고. 조금 비약된 생각인지 모르지만 지금 우리의 문명이 파괴되고 각 지역별로 소수만 살아남게 된다면 어떨까? 그들이 책을 남긴다고 하지만 과학이 발달하지 않고 기록된 것이 사라진다면 우리의 현재 문명은 신화로 변하지 않을까? 그럼 지금 우리가 지구 온난화나 자연 파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미래의 삶을 과거에서 재현한 것일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비레드 시간을 여행하는 소녀
케르스틴 기어 지음, 문항심 옮김 / 영림카디널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같은 이름의 소설이 있다. 재간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혹시 하고 찾아보니 다른 소설이다. 부제로 시간을 여행하는 소녀가 붙어 있다. 부제를 보면서 생각난 것은 쓰쓰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란 소설이다. 같은 이름의 다른 책이 심리동화인 것을 생각하면 사놓고 읽지 않은 책이 나를 압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지금 그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지만. 그리고 시간여행은 언제나 나의 관심사다. 시간여행을 다룬 소설들이 실제 나의 바람과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을 생각하면 이번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대로 이런 종류의 책은 시선을 끌고 목록에 항상 올려놓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연작이다. 처음에는 몰랐다. 한편으로 완결되지만 아직 본격적인 이야기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여주인공이 등장하고 그녀가 가진 능력과 이 능력을 이용해 하나의 목적을 이루려는 사람들에 대한 기초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인지 앞부분은 사실 약간 지루한 부분도 있다. 10대 여학생의 일상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웬돌린과 친구 레슬리의 대화는 그런 점이 더 강하다. 하지만 그웬돌린이 시간여행을 하고 새로운 사건이 펼쳐지면서 흡입력을 발휘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다음 편이 기대된다.

 

소설 속에서 시간여행자는 특별한 능력이고 극소수만 가진 능력이다. 사라진 두 사람 폴과 루시를 제외하면 모두 열두 명일 정도로 적다. 이들이 왜 크로노그래프를 가지고 다른 시간대로 도망갔는지 알려주지 않고 있는데 다음 이야기에서는 이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 열쇠이자 재미를 줄 것 같다. 그리고 이 도구에 열두 명의 시간여행자 피가 모아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도. 가장 유력한 가설 중 하나는 생제르맹 백작과 관련 있을 것 같다. 또 미래로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설정과도 연결될 것 같다. 이런 상상을 하는 재미가 이 소설에는 있다.

 

많은 판타지나 sf소설에서 유명한 철학자나 과학자를 이야기 속에 끌고 와 새로운 세계를 만든다. 이 소설에서는 뉴턴이다. 그가 계산한 것에 의해 열두 번째 시간여행자의 생일이 밝혀진다. 이 때문에 그웬돌린 친척들은 샬럿이 대상자일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딸이 이런 능력을 가지길 바라지 않은 엄마에 의해 그웬돌린의 생일이 하루 늦춰진다. 이 사실이 밝혀졌을 때 이 능력자를 보호하고 교육했던 사람들이 가졌을 의문은 당연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능력자가 바뀌지는 않는다. 이 사실은 앞으로 펼쳐질 다른 이야기와 함께 또 다른 재미를 줄 것 같다.

 

10대 소녀가 주인공이다 보니 소녀 감성이 곳곳에 묻어난다. 역사를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배우는 요즘 아이들의 삶도 그대로 녹여져 있다. 시간여행이 갑자기 오는데 그 시간대를 자기 마음대로 바꿀 수 없다. 시간을 조정하는데 필요한 도구가 크로노그래프이다. 그리고 재미난 설정 중 하나가 자신이 살았던 시대로 갈 수 없다는 제약이다. 시간여행을 하는 시간은 겨우 3시간이다. 3시간이 지나면 과거에 있던 곳에서 현재로 넘어온다. 시간은 바뀌어도 장소는 그대로다. 이 부분은 중요한 설정 중 하나다. 그웬돌린의 엄마가 그녀가 시간여행자가 아니길 바라면서도 그녀를 파수꾼들에게 데리고 간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다른 시간대로 간 그녀가 어떤 위험에 봉착할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 걱정을 해소하는 것이 바로 크로노그래프다.

 

소설에 대한 감상을 적다보니 대부분 현재보다 다음 이야기에 대한 기대가 더 많다. 아마 도입부란 설정 때문일 것이다. 기존의 시간여행과 다른 설정을 다루고 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다. 약간 도식적인 부분이 있을 것 같은 것 중 하나가 그웬돌린과 다른 멋쟁이 시간여행자 기디언과의 로맨스다. 살짝 그 낌새를 드리우고 있다. 열두 명의 시간여행자 피를 크로노그래프에 모두 담으려는 현재의 파수꾼 및 시간여행자들과 이것을 막으려고 사라진 폴과 루시의 대결은 이제 시작이다. 이야기가 흡입력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펼쳐질 다음 이야기가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봄에서 여름, 이윽고 겨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5
우타노 쇼고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정말 오랜만에 우타노 쇼고의 소설을 읽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 그녀의 대표작이자 우리나라에 이름을 알린 <벚꽃 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를 그렇게 좋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책이 나온 것에 비해 인연이 닿았던 것은 이번 책을 포함해서 <해피엔드에 안녕을>까지 총 3권이다. <해피엔드에 안녕을>을 읽고 다시 관심을 가졌지만 이번에는 다른 책들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았다. 미스터리 소설을 읽으면서 너무나도 좋은 작가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놓은 책이 거의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이번 작품은 소품이다. 소품이라고 하지만 짜임새는 만만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평범한 하나의 이야기 같지만 예상한 반전과 이것을 다시 뒤엎는 반전이 이어진다. 이 반전의 연속을 설정을 위한 설정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이 나에게 다가오면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인간사는 애초에 모순으로 차 있다.”(287쪽)란 문장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장인데 이 문장이 이 소설이 지닌 모순에 의한 반전을 가능하게 만들어준다.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루고자 하는 두 남녀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작은 한 여자가 마트에서 물건을 훔치다 걸려 보안실에 앉아 있는 장면이다. 남자 히라타는 묻는다. “배가 고팠나?”, “미안합니다”란 대답이 온다. 신분증을 본다. 출생연도에 생일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가 적은 전화번호로 전화를 하니 그녀가 받는다. 평소와 다르게 다시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그녀를 내보낸다. 이 장면이 이 소설에서 두 남녀가 인연을 맺는 시작이자 모순으로 가득한 인생의 시발점이다. 그리고 마트 앞에 그녀 스에나가 마스미가 그를 다시 만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히라타의 딸은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가다 뺑소니에 치여 죽었다. 이 사건 때문에 아내도 자살을 한다. 회사에서 임원을 바라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은 그가 마트 보안직원으로까지 내려오게 된 이유다. 단순히 몇 문장으로 그의 삶을 요약했지만 그 속에는 그와 그의 아내가 겪은 수많은 아픔과 고뇌와 후회와 절망 등이 섞여 있다. 스에나가와의 만남을 보여주는 그 사이사이에 이 이야기를 집어넣어 그가 겪은 삶의 흔적과 아픔과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다. 그에 대비해 스에나가는 히라타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 시선은 좋지 못한 남자 친구로 고생하는 한 여자의 이미지가 강하다. 그렇다고 그가 이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정도로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단지 그녀의 생년월일 때문에 죽은 딸의 이미지가 덧씌워져 약간의 금전적 도움을 줄 뿐이다.

 

이런 일상이 이어지는 와중에 이 둘을 오해하고 질시하는 사람이 생긴다. 그녀를 통해 푼돈을 갈취하려는 남자 친구까지 등장한다. 이런 상황이 뭔가 이야기를 복잡하게 만들 것 같은데 전혀 그런 기미가 없다. 딸과 아내를 잃은 남자에게 삶은 공허한 것이다. 그런데 삶에서 그가 가장 울었던 이야기가 나온다. 아내와 딸이 죽었을 때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이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다. 자신의 죽음을 마주한 그가 가장 솔직한 감정을 토해낸 것이다. 이런 감정과 인연과 일상이 차분한 문장으로 이어진다. 약간 밋밋한 것 같은데 흡입력을 가지고 읽게 만든다.

 

가볍게 읽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을 읽고 난 후 남은 여운은 무겁다. 철학적으로 이 하나의 사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각이 두 남녀의 행위를 분석해서 보여주지만 과연 그것이 정확한 분석인가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왜냐고? 제삼자조차도 이 둘의 관계를 정확하게 다가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숨겨진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자신의 위치에서 해석한 것뿐이다. 결과에 대한 분석이자 추정일 뿐이다. 비탄과 후회와 절망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이 작품으로 다시 우타노 쇼고의 작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옥상으로 가는 길, 좀비를 만나다 -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1
황태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2회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이다. 1회보다 나은 것 같다. 1회 대상이 <섬>인데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고립된 공간이 무대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옥상으로 가는 길>은 한 건물 1층에 갇힌 사람들 이야기다. 이들은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다. 밖은 좀비로 가득하다. 그럼 뭘 먹고 살까? 그것은 정부가 옥상에 내려주는 배급식량이다. 이 식량을 가지러 가는 방법이 내부 쓰레기통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이다. 성인은 갈 수 없지만 주인공은 왜소증환자다.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이 작은 사람은 생명줄이다. 단점이 장점으로 변하는 순간이다. 권력도 이동한다. 하지만 대체자가 등장하는 순간 그 권력은 너무 쉽게 무너진다. 짧은 단편 속에 비교적 이런 관계를 잘 녹여내었다. 설정에서 의문이 생기고 마무리가 도식적인 것은 조금 아쉽다.

 

<연구소 B의 침묵>은 어떻게 좀비가 세상을 덥게 되는가에 대한 답이다. 사랑과 집착과 우연과 환경이 만들어내는 종말의 씨앗은 낯익은 설정이다. 한 천재의 광기와 과학자의 호기심이 중심에 놓여 있고, 모든 원인이 잊지 못한 사랑이란 설정은 너무 도식적이다. 가독성은 좋지만 허술한 연구 환경과 문제의 근원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심사평에서도 지적했지만 어른이 된다고 해서 말투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 두 과학자의 광기를 좀더 부각시켰다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종말의 시작이란 것만 놓고 본다면 개인적으로 쓰고 싶은 부분이다. 분량에 비해 너무 무난한 느낌이다.

 

<나에게 묻지 마>는 가장 많은 분량이다. 시골을 무대로 이야기를 펼친다. 어쩔 수 없이 동네 이장이 되어야 했던 최동민의 좌충우돌 무시무시한(?) 좀비 이야기다. 솔직히 이 소설을 중반까지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다. 명확한 장면이나 설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간 느슨한 장면들이 이어지면서 좀비 소설에서 기대한 장면이 빨리 나오지 않은 것도 하나의 이유다. 가독성이 떨어지다보니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빨리 깨닫지 못했다. 불법 제초제 매립과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가축 살처분과 최근에 있었던 불산 누출사고 등을 하나로 꿰지 못한 느낌을 주었다. 마지막 장면은 왠지 모르게 우리의 천도제보다 왠지 모르게 중국 영화 속 강시가 더 떠오른 것은 왜일까?

 

<별이 빛나는 밤>도 사랑과 좀비에 대한 이야기다. 청소년의 사랑과 좀비로 가득한 세계를 그려내면서 희망의 빛을 보여준다. 이 희망의 빛은 별들이 사라진 뒤에 나타날 별에 대한 것이다. 자신이 사랑하는 한 여자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다. 강렬한 액션도 좀비의 무시무시함도 없다. 하지만 순수한 사랑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마지막 선택을 보면서 어쩌면 나도 그 상황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체적으로 완성도나 재미 측면에서 부족함이 더 눈에 들어온다. 지난 번에도 그랬지만 다음은 더 좋은 작품이 나올 것이란 기대를 가진다. 태동기에 있는 한국 종말문학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다. 양적으로 부족한 것도 이유 중 하나다. 얼마 전 기성작가 중 한 명인 한상운이 보여준 좀비와 종말의 세계도 그렇게 완성도가 높은 편이 아니었음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내가 아직 이런 종류의 문학에 대한 이해도나 취향이 부족할 수도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