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 나인 드림
데이비드 미첼 지음, 최용준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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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개봉한 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원작가 작품이다. 먼저 <클라우드 아틀라스>를 읽을까 하고 고민도 했다. 하지만 영화를 볼 예정이라 책에는 손이 가질 않았다. 어디에 두었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러다 우연히 나에게 온 이 소설은 며칠의 시간을 빼앗아 갔다. 분량이 적지 않은 것이 가장 큰 이유고, 다른 하나는 평일에 충분한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여기에 처음 얼마간은 이 소설의 형식과 문장 등에 적응하는 것도 필요했다. 그 적응이 다 되기도 전에 끝에 도달했지만. 평소보다 조금 힘들게 읽었지만 작가의 매력을 알게 만드는 데는 조금의 부족함도 없었다.

 

읽으면서 숫자 9때문인지 모르지만 김만중의 <구운몽>이 떠올랐다. 내용 상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은 꿈과 숫자 9밖에 없다. 아련한 기억 속에 자리한 소설이 떠오른 것은 첫 장면과 각 장마다 일어나는 사건과 환상 때문이다. 이 도입부 때문에 한동안 이야기 속에 빨려 들어가지 못하고 겉돌았다. 가독성이나 재미와 상관없이 말이다. 하지만 점점 진도가 나감에 따라 이야기 구성에 눈길이 갔고 주인공의 기묘한 경험에 빨려 들었다. 순간적으로 <클라우드 아틀라스>의 예고편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기도 했다.

 

아홉 장이라고 했지만 마지막 장은 백지다. 이 백지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이 소설 전체에 대한 호불호와 해석이 갈라질 것이다. 내 경우는 어떻게 그 백지를 채워야 하는지 고민이 되었다. 8장의 마지막 문장과 상황이 이것을 더 부채질했다. 하지만 그 앞장에서 보여준 열아홉을 지나 스무 살이 된 미야케 에이지의 결코 간단하지 않은 대모험을 보면 그냥 무시하기는 힘들다. 자신의 아버지를 찾기 위한 시도가 어떻게 이런 혼란 속으로 유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과 더불어 말이다. 어떤 장면에서는 이 장면도 혹시 미야케의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들 정도였다. 솔직히 적지 않은 장면들이 그랬다.

 

소설은 미야케 에이지가 자신의 유전적 아버지를 찾는 과정을 다룬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른다. 어머니조차 그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말해주지 않는다. 가지고 있는 정보라고는 변호사 이름이 전부다. 이 이름을 통해 아버지에게 다가가려고 하는데 장벽이 적지 않다. 변호사와 만나는 것조차 쉽지 않다. 첫 장 첫 장면이 이 만남을 위해 액션 영화에서 빌려온 액션 등으로 가득한 것만 봐도 그렇다. 그가 바란 것은 단순히 아버지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인데도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시선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보고자 하는 것들이 우선 눈에 들어와서 상황을 왜곡한다. 이 때문에 미야케의 도쿄 생활은 파란만장해진다.

 

이 파란만장한 삶이 아슬아슬한 위기의 순간을 몇 번이나 넘기게 만든다. 특히 이런 순간들은 한 편의 액션 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은 준다. 밤의 지배자 야쿠자들과 엮이면서 벌어지는 사건들은 결코 평범한 시골 청년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도시 청년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그를 둘러싼 몇 명이 만들어내는 일상은 이런 비현실적인 상황을 순화시켜준다. 미야케가 생각하기에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목덜미를 가진 웨이트리스 이마조 아이는 이런 변화의 한 가운데 있고, 미야케의 로맨스를 완성시키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 둘의 순수한 감정 덕분에 강렬한 이미지들로 가득한 이 소설에서 조금은 여유를 찾을 수 있다.

 

아버지 찾기에서 시작한 소설은 언제나 자신 찾기로 끝난다. 이 소설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안주라는 쌍둥이 누나가 있는데 그녀는 어릴 때 죽었다. 이 죽음을 극복해야 하는 것도 하나의 과정이다. 이런 과정들을 비현실적인 폭력과 환상과 엮으면서 이야기를 풀어내는데 다양한 장르를 사용한다. SF, 액션, 스릴러, 역사, 로맨스, 판타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가끔 다양한 장르의 사용이 흐름을 방해하고 가독성을 떨어트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소설은 각 장의 구분을 통해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물론 잠시만 흐름을 놓치면 꿈과 현실이 잘 구분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소설은 완전히 끝나지 않았다.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다. 어쩌면 마지막 장이 백지인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읽으면서 어떻게 영국인이 이렇게 일본에 대해 잘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내가 일본 사람이다. 단순히 아내 탓이라고 하기에는 그 깊이가 대단하다. 역자가 후기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영향을 많이 말했는데 사실 한두 가지를 제외하면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들이라 기억이 연결되지 않는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이라면 이 장면을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는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좋은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만난다면 원작과 또 다른 재미를 줄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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