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에게는 비밀이 있다 -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의학의 진실
데이비드 뉴먼 지음, 김성훈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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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전공은 응급의학이다. 그래서인지 각 장에 나오는 사례들이 대부분 응급실에서 벌어진다. 응급실에 한 번 다녀온 사람들은 그 현장이 실제 어떤지 알 것이다. 환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고 눈에 딱 봐도 빨리 치료해야겠다는 사람이 아니면 의사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개인적인 일로 몇 번 다녀온 그곳은 솔직히 말해 의사에 대한 신뢰를 산산조각내었다. 아픈 환자의 병을 제대로 찾지 못해서 쓸 데 없는 처방을 내리고 허둥지둥하면서 결국 환자가 시간만 보내다 돌아왔기 때문이다. 이 경험만 가지고 보면 응급실에 갈 것이 못 될 것 같지만 늦은 밤 혹은 공휴일에 찾아갈 가장 확실한 장소는 역시 응급실이다.

 

응급실에 대한 부정적인 글로 시작했다. 하지만 이것이 이 책 저자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은 아니다. 오히려 저자의 주장에 동의한다. 응급실의 경험에 부정적인 것은 그 현장에서 만난 의사들에서 비롯한 것이지 응급실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외상 사고가 났을 때 가장 효율적인 곳이 응급실이다. 가끔 뉴스에서 심한 환자를 거부해서 응급실을 다니다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열정적으로 치료에 전념하는 의사까지 매도할 마음은 없다. 다만 이 책 각 장에서 말하는 내용을 대부분의 의사들이 그대로 답습하는 문제가 답답할 뿐이다.

 

의사도 모르는 것이란 1장은 의사의 한계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저자 어머니의 사례인데 의사들은 환자가 왜 아픈지 모른다. 그래서 붙인 병명이 감응 불능 복통이다. 진단 불가가 다른 병명으로 대체되어 환자에게 알려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사례를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것이다. 스트레스성 위염이란 병명이다.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사례 중 요통에 대한 것이다. 한때 디스크 환자들에 대한 수술이 유행이었는데 이 수술 후 환자들이 모두 완치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자는 “의사들이 요통의 실제 발생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결국 우리는 완치법도 모른다”(33쪽)는 결론에 도달한다. 수많은 요통 전문 병원을 생각하면 놀랍기 그지없다.

 

심폐소생술. 이제는 영화나 텔레비전으로 너무나도 익숙해진 치료다. 실제 이것이 효과적인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실패율이 93에서 99프로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폐소생술은 할 수밖에 없다. 만약 하지 않으면 환자 가족들에게 소송당할 수 있고 마지막 가능성을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일어나는 원인은 환자와 의사 사이에 제대로 된 소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에서 히포크라테스의 사례는 좋은 예가 된다. 그가 의술은 예술이라 부르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예전보다 의사가 환자를 진찰하는 시간이 늘었다고 한다. 그런데 환자들은 그 시간이 줄어들었다고 말한다. 바로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년에 어깨가 아파 병원에 갔다. 진찰을 하자마자 MRI를 찍으라고 했다. 고가의 비용이 들어가는 검사다. 다른 방법으로도 가능했다. 그런데 그들은 수익이라는 것 때문에 이 과정을 거치게 만든다. 그리고 가장 놀라운 것은 고가를 치료를 하게 만들면서 병명을 나에게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간호사에게 물으니 검색해서 알려줬다 고가의 기계를 이용한 치료와 간단한 물리치료가 병행되었는데 과연 그 기계 치료가 꼭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 지금도 있다. 그리고 이 병은 완치되지 않았고 운동을 조금 등한시한 지금 다시 아파온다. 고액이 든 이 치료는 원인도 모르고 치료를 위해 환자의 지속적인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것은 나와 비슷한 병을 경험한 대부분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위약 효과에 대해 말하면서 현재 유통되는 것 중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한 약들을 지적한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바로 NNT(치료 효과 발현의 필요 증례수)다. NNT 수치가 1에 가까우면 효과가 100%고 그 숫자가 늘어나면 효과가 거의 없다. 그런데 의사들은 이 수치를 연구하지 않거나 무시한다. 상업적 목적이 우선이고 의료계가 폐쇄적이다 보니 이것은 더 심해진다. 유효성이 떨어지는 약이 환자에게 처방되어지고 환자의 부담은 더 높아진다. 환자와 의사의 유대감과 소통 부재가 만들어낸 현재 의료계의 현실이다.

 

인간의 신체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고 DNA수준까지 높아졌다. 그럼에도 우리는 감기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 외에 우리가 치료 못하는 병이 많다. 데카르트 이후 인간의 몸을 기계처럼 보는 경향이 있다고 했는데 일부분 인정한다. 이것을 보면 가끔 드라마에 나오는 동양의학이 더 대단한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동서양 의학 모두가 모든 병을 제대로 치료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이다. 또 과학이란 이름으로 의학의 성을 높이 쌓은 지금 그 성이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바로 오만과 폐쇄적인 환경 때문이다. 누군가가 현대 의학을 말하길 ‘실제 의학이 발전한 것이 아니라 의료 기계가 발전한 것이다’라고 했다. 하나의 데이터를 두고 다른 해석이 내려지고 그 차이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병이 생기면 병원으로 간다. 의사에게 진찰을 받는다. 이 수순은 변함이 없다. 의사를 신뢰하고 않고의 문제가 아니다. 대안이 없는 것도 하나의 이유지만 현실에게 그래도 그들이 가장 유력하고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의사와 환자의 소통과 신뢰는 환자의 치료를 더 손쉽게 한다. 물론 불치병도 난치병도 있다. 하지만 이 소통과 신뢰가 의학의 한계를 분명히 할 때 최대한 효과를 발휘한다. 이 책에 나오는 수많은 사례가 바로 그것을 증명한다. 다시 한 번 분명하게 말해 이 책은 의사나 현대 의학을 불신하자는 것이 아니다. 더 발전된 환경을 만들고 더 좋은 치료를 하자는 의도가 담겨 있다. 좋은 의사를 만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고 말하는 요즘 이 책은 그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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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사람 - 제142회 나오키상 수상작
시라이시 가즈후미 지음, 김해용 옮김 / 레드박스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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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다른 누구도 아닌 너에게>란 제목으로 출간된 적이 있다. 142회 나오키상 수상작이라 관심을 두고 있었는데 이번에 재간되었다. 세부적인 변경 사항은 모르겠지만 이 책에 담긴 두 편의 중편소설 제목이 바뀌었다. 제목 및 표지가 바뀐 것과 같은데 개인적으로 이전 것이 더 마음에 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변함없으니 만족한다. 그리고 작가가 말하는 운명의 사람에 대한 의문과 이야기는 더 만족스럽다.

 

사실 두 편의 중편소설로 구성된 책인 줄 몰랐다. 첫 편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너>를 읽으면서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상상하는데 다음 이야기로 넘어갔다. 조금은 황당했는데 차분히 되짚어보면 읽으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이 의문과 여운으로 남는다. 그것은 귀족 출신 아키오의 열등감과 사랑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그의 첫 결혼이 가족들과의 불화를 가져오지만 그 선택을 밀고 나갈 정도의 열정과 뚝심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삐거덕거리는 결혼에 대한 그의 선택은 우유부단하다. 거기에 직장상사이자 상담가로 등장한 도카이 씨는 은연중에 가능성을 열어놓는다. 이 가능성이 아내 나즈나와의 결혼을 더 흔들어놓는다. 아니 흔들리는 것은 아키오지만.

 

<그 누구보다 소중한 너>의 첫 장면은 혼란스러웠다. 분명 남자 친구 세이지가 있는데 다른 남자 구로키가 다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런 주인공 미하루의 연애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 세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만들어내는 감정의 소용돌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단순히 육체적 욕망에 의한 관계처럼 비쳐졌던 미하루와 구로키의 관계는 강한 절제와 인내가 없으면 결코 지속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이야기는 끝난다. 열린 결말로 독자에게 상상할 공간을 남겨놓았다. 보기에 따라서는 무책임할 수도 있지만.

 

두 중편 속 주인공의 성별은 각각 다르다. 첫 편은 남자고, 다음 편은 여자다. 이런 설정이 의도적인 것 같다. 아키오의 사랑이 굉장히 안정 추구적이라면 미하루의 사랑은 감성적이다. 아키오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느끼고 안정을 추구하는 과정을 다룬다면 미하루는 이미 그 열정의 감정에 빠져 있다. 결혼을 앞둔 남자 친구가 있지만 섹스가 주는 강렬함과 구로키가 주는 열정에 푹 빠져 있다, 아키오가 한 발 나가기 위해 수많은 과정을 거치지만 미하루는 이미 모두 경험한 후 빠져나가려고 한다. 빠져나오는 것이 감정의 문제라면 쉽지 않다. 이 둘에게 감정을 벗어나는 방법은 비슷하다. 한 명은 죽음이고, 다른 한 명은 떠남이기 때문이다.

 

운명의 사람이 정말 있는지 아직 모르겠다. 일상의 감정을 공유한다고 그 사람이 운명의 사람일까 묻지 않을 수 없다. 도카이나 구로키와의 일상이 지속된다고 해서 그것이 운명의 사람은 아니다. 끌린다는 것만으로 정의하기는 더 어렵다. 사랑의 지속 가능 시간이 불과 몇 개월에 불과하다는 정보에 의하면 아키오와 미하루의 사랑도 그 시효는 분명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이 영원히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것도 바로 그들의 죽음 때문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더 쉽다. 좀더 비낭만적으로 표현하면 그들의 사랑은 우리나 주변 사람들이 경험하는 수많은 사랑 중 하나다. 그렇기에 이 사랑이 여운을 남기는지도 모르겠다. 관계를 간결하게 만들고 좁혀 놓았는데 더 많은 가능성이 머릿속으로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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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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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 놓고 본다면 취향에 맞는 소설이 아니다. 하지만 작가를 생각하면 읽고 싶어진다. 왜냐고? <종료되었습니다>를 썼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한국 미스터리 소설을 쓴 작가의 여고 탐정단이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기발랄한 각 장의 제목은 기대감을 높여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기대감은 개인적으로 충족되었다. 은근히 다음 이야기가 빨리 나오길 기다린다. 원래 단편이었던 것을 연작으로 바꿨으니 시리즈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실제 학교는 수많은 미스터리를 품고 있는 공간이니까.

 

모두 다섯 문제가 나온다. 첫 문제는 원래 한국추리스릴러단편선에 실렸던 <무는 남자>다. 아직 읽지 않은 시리즈인데 언젠가 볼 예정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주 복잡한 제목으로 바뀌었다. 제목 때문에 머리가 복잡해졌다. 뭐 어떻게 보면 재미있는 설정이지만 여고 생활을 나름 운치있게 표현했다. 솔직히 말하면 잊고 있던 학창시절 수학공식의 아련한 기억을 불러오는 동시에 다시 망각의 늪으로 빠트렸지만 말이다.

 

첫 문제는 신종변태 무는 남자 이야기다. 하지만 이 문제가 의미 있는 것은 선암여고 탐정단이 첫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주인공 채율이 집에서 나오다가 학교에 떠돌고 있는 소문의 주인공인 무는 남자에게 물리면서부터다. 이 변태는 팔을 물고 달아나는데 바바리맨처럼 어떤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미 여러 명이 물린 상태인데 범인은 잡지도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이 발생한 날 채율에게 일단의 소녀들이 찾아온다. 그들이 바로 선암여고 탐정단이다. 이들은 학교 내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분류한 상태에서 탐정 활동을 한다. 그들에게 실제 변태 사건은 거부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인 일이다. 거기에 채율은 상당한 지력과 함께 천재 쌍둥이 오빠 채준이 있다. 그녀들이 채율에게 온 이유 중 하나가 쌍둥이 오빠이기도 하다.

 

학원 미스터리물이다보니 다루고 있는 것도 학교 관련된 일이다. 신종 변태의 행동 뒤에 숨겨진 비밀은 학력지상주의가 만들어낸 부조리고, 민감할 수 있는 두 학생의 사랑은 어른의 개입으로 비극으로 변한다. 최근에 가장 민감한 왕따는 진실에 의해서만 밝혀질 수 있고, 고등학생 사진작가의 작품전을 둘러싸고 벌어진 두 사건은 다음 사건을 위한 하나의 장치다. 그리고 선암여고에 있었던 몇 건의 자살 사건은 첫 문제에서 그 존재감을 드러낸 선생과 엮이면서 불행했던 과거사가 드러난다. 물론 이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 나오는 몇 가지 트릭이나 설정은 내 기준에서 아주 낮은 부분이 있지만 현실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쌍둥이 천재 오빠를 둔 채율을 중심으로 미도 등의 탐정단은 사건을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 미도 등이 학교 학생과 선생 등에 관해 수집한 정보들은 아주 방대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채율과 그 오빠에 관한 정보의 마지막 문장은 읽는 순간 빵~ 터지지 않을 수 없다. 미도 등의 아마추어 탐정들이 보여주는 활약이 어설프지만 그 열정은 대단하다. 실제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두뇌는 채율이다. 그녀의 직관과 추리력과 분석력은 미도를 비롯한 탐정단을 만나면서 활짝 핀다. 사실 이 작품이 시리즈로 나온다면 탐정단의 등장과 그 활약을 위한 기초 작업을 한 것이다. 작품 곳곳에 깔아둔 밑밥은 다음 이야기가 나오길 기대하게 만든다. 아직 그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지 못한 미도 외의 탐정단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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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비사 - 은이 지배한 동서양 화폐전쟁의 역사
융이 지음, 류방승 옮김, 박한진 감수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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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골드>라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금이 우리 생활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제대로 몰랐다. 금이라고 하면 단순히 금광이나 골드러시 같은 몇 가지 이미지가 전부였다. 물론 당시 금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던 시기라 비싸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금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를 잘 몰랐다. 경제사를 공부하면서 배운 금본위제 정도가 지식의 전부일 정도로 미천했다. 그런데 이번에 은에 대한 책이 한 권 나왔다. 바로 <백은비사>다. 이 책은 중국 명나라 이후 동서양의 은을 둘러싼 화폐전쟁의 역사를 다룬다.

 

은이라는 귀금속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잘 모른다. 한국사에서 은괴를 조공으로 바쳐졌다는 것과 중국 역사에서 은이 통화로 사용되었다는 것 정도다. 사실 통화로 은을 사용하는 것을 본 것은 아마 중국 소설이나 영화가 전부다. 역사는 늘 그 당시 발행된 동전이 더 비중 있게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가 은을 찾기보다 금을 찾는다. 당연히 은은 금에 비해 비중이 떨어지고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 당장 반지를 사러가도 금반지와 은반지의 가격차가 상당하다. 세공에 따라 다른 것은 논외로 하고. 이런 교육과 영화 이미지는 은연중에 금을 더 중시하게 만든다.

 

명 이후 중국 역사 속에서 은은 많은 굴곡을 거쳤다. 한 나라의 경제가 안정되기 위해서는 유통되는 통화가 안정적이어야 한다. 정권을 잡은 왕조는 경제를 안정시키기 위해 화폐제도를 바꿀 수밖에 없다. 이 개혁은 놀랍게도 지폐의 발행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세기 초에 이르면 수많은 지폐가 발행되었다는 정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는 인식으로 이어진다. 기준이 분명하게 잡히고 지속되지 않으면 사람들은 다른 대체물을 찾을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는 그것이 바로 은이다. 금은 더 귀하고 비싸 대체할 수 없었다.

 

은으로 동서양으로 연결하는 데는 정화의 대항해와 유럽의 아메리카 대륙 대착취가 있었다. 정화의 대항해가 아프리카 동부 연안까지 갔다고 하는데 그 여정 중간중간에 중국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여정이 세계사에 끼친 영향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그가 거쳐 간 지역에서는 다르겠지만. 스페인의 중앙아메리카 대학살과 엄청난 은의 착취는 나라에 엄청난 부를 가져다주었다. 이 부는 나중에 나라에 독으로 작용한다. 국내 산업과 경제를 좀먹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 돈이 넘쳐나니 필요한 것을 외국에서 사면 된다. 이런 과정이 지속되면서 스페인 제국은 몰락했다.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나라가 중국이다.

 

중국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한 명의 유럽인이 있다. 마르코 폴로다. 그의 여행기는 중국에 대한 환상을 품게 만들었다. 덕분에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지만 유럽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이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의 도시는 중국에 있었고, 중국은 엄청난 문화 경제적 지위를 누리고 있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중국 문화 중 하나인 차가 유럽에 퍼지면서 무역상들은 찻잎을 수입할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이에 대한 결제수단은 은이다. 기본적으로 쇄국정책을 펼치던 중국에서 차를 가져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은을 제공해야 했다. 세계의 은이 중국으로 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청 말에 이르면 이 은은 급속하게 빠져나간다. 아편과 전쟁배상금 등으로.

 

저자는 아편보다 무서운 것으로 금융무지를 꼽는다. 이미 화폐전쟁은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일본과 중국에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것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최근 몇 년 동안 한국경제가 발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통화의 가치가 평가 절하되면서 일어난 착시현상이다. 원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국민의 부는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세계의 공장이 되면서 엄청난 달러가 쌓여 있다. 하지만 달러의 가치가 떨어지면 그들의 부는 그만큼 사라진다. 숫자로 존재하는 화폐는 항상 이런 문제가 존재한다. 때문에 금을 다시 세계의 통화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최근 몇 년만 놓고 본다면 금값보다 은값이 더 많이 올랐다. 금은복본위제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은을 통화기준으로 삼으려는 노력은 많았다. 책 광고에서도 나왔지만 <오즈의 마법사>가 미국의 은화 자유주조 운동과 연관있었다는 지적은 재밌는 해석이다. 기축통화 논쟁은 이미 <화폐전쟁>에서도 다뤘지만 경제 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문제다. 최근 유럽의 경제문제도 바로 이것이 일정 부분 작용했다. 루즈벨트의 뉴딜정책마저 이것과 연결시키는 것에서 조금 과장되지 않았나 생각하지만 세계 경제는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이 늘 존재한다. 또 미국 서부의 골드러시와 은의 상관관계를 설명한 부분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만든다.

 

역사적 시간 순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동서양의 은이 차지한 위치와 어떤 경제적 역할을 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낯선 이름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그 중요성을 과소평가했거나 몰랐던 부분이다. 특히 13행은 그렇다. 강력한 중앙집권제도와 관료주의가 자리한 중국에서 무역상들은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다. 그들의 부는 정부에 귀속되고 수장은 관료에게 살해되었다. 실리보다 명분이 나라 경제를 망친 것이다. 이것은 금융무지로 이어지고 정치 혼란과 연결되면서 몰락의 길로 가게 된다. 앞에서도 말한 현재의 은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금보다는 아니다. 그렇지만 그 잠재력까지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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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이데올로기
마조리 켈리 지음, 제현주 옮김 / 북돋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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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가 주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을 산산조각 낸다. 회사의 주인이 주주고, 그들의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식회사가 운영된다는 그 인식 말이다. 물론 노조가 회사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최소한 한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다. 언론을 통해 나오는 노조의 경영참여에 대한 부정적인 논조만 보아도 그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외환은행 론스타 사태에서 보았듯이 주주들이 엄청난 배당금을 받아먹고 튀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한국 재벌의 이상한 기업지배구조도 주식회사에 대한 우리의 상식을 뒤흔들어 놓는다.

 

책은 모두 2부 12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경제 귀족주의고, 2부는 경제 민주주의다.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단어는 2부 경제 민주주의다. 그럼 경제 민주주의는 어떤 것일까? 이것을 알기 위해서는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설명을 다룬 장들이 바로 1부다. 여기서 저자는 현재의 주식회사 제도는 중세 왕권신수설을 그대로 닮았다고 말한다. 이에 대해 설명하고 논증하는 것이 바로 1부인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다룬 2부보다 재미있었다. 2부의 해법이 나의 뒤흔들 정도로 매력적이지 못한 것도 한 가지 이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의 숨겨진 의미를 그대로 드러내주었기 때문이다.

 

원제는 ‘The Divine Right of Capital'이다. 왕권신수설과 비슷한데 표지에서도 나온 주주 몫은 이익이고 왜 직원 몫은 비용이라 하는가에 대한 해설이기도 하다. 자본이 지닌 속성을 가장 노골적으로 풀어내면서 현대 주식회사의 자본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말한다. 이익극대화가 최상의 목표인 주주들에게 이것에 방해되는 것은 없애야 할 장애다. 그러니 환경이니 복지니 하는 것이 제자리를 찾을 수 없다. 딴나라 이야기 할 것도 없이 삼성반도체 직원의 백혈병 사건이나 최근의 삼성전자 불산 누출 사건 등만 보아도 너무나 분명하다.

 

2부로 나눈 후 각각 6가지 원칙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경제 귀족주의에서 다루는 것은 성구-세계관, 특권, 재산, 통치, 자유, 주권의 원칙 등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계몽, 평등, 공공선, 민주주의, 정의, 혁명적 진화의 원칙 등이다. 이 원칙들에서 헷갈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자유와 주권이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네가 아니라 나에게 자유를’을, 주권은 부유한 소수의 경제적 주권을 의미한다. 용어가 만들어낸 착각이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해악을 끼쳤는가 생각하면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쉽게 생각하면 자유무역이란 용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바와 얼마나 다른지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저자는 정치가 민중에게 권력을 이양했지만 경제 주권은 아직 그대로라고 말한다. 경제 주권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른 팟캐스트 ‘나는 꼽사리다’에서 주구장창 주장한 것이라 낯설지는 않지만 이미 10년 전에 나온 책에서 벌써 다뤘다는 사실에 놀랍기만 하다. 물론 여기서 다루고 있는 경제주권과 ‘나꼽살’이 다루고 있는 것이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한국의 경제 구조와 정치 구조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기저에 깔려 있는 경제민주화와 노동자 등을 감안하면 많은 부분에서 비슷한 점이 많다.

 

경제 민주주의를 다룬 2부 첫 장 제목은 깨어나기, 즉 계몽이다. 특히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 중 하나는 언어의 문제다. 주주와 소유주, 투자자와 투기꾼, 재산권과 부유권 등이 대표적이다. 또 이 책에서 주장하는 공식 하나도 머릿속에 담아둬야 한다. 직원 이익 + 자본 이익 = 매출 - 재료비. 현대 주주는 초창기 자본을 낸 주주들이 아니다. 주식시장이란 시장을 통해 자본 이익을 얻기 위해 투기한 사람들이다. 회사의 실질적인 자본 증가엔 특별한 도움을 주지 않고 이익을 빼내어가는 사람들이다. 실제 좋은 회사의 경우 그들이 투자한 돈의 몇 십 배 회수한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그들의 권리와 이익은 보전된다.

 

여기에 반대 생각으로 만약 회사가 망하면 투자자들이 모두 손해를 껴안는다는 의견이다. 물론 이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많지 않다. 초기 투자의 경우나 부실한 기업을 제외하면 그 경우는 더 줄어든다. 대부분 주식시장에는 해당 사항이 드물다. 그리고 이런 경우라 해도 주주의 재산 손실보다 직원의 생존권이 더 큰 문제다. 주식 투자에 올인한 주주들이 많이 있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되겠지만 역시 이런 일도 흔치 않다.

 

개인적으로 그냥 마구 사용하던 용어 중 하나가 ‘법인’이다. 저자는 주식회사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한다. 맞다.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법인(法人)이라고 말하면서 인간의 권리를 누리게 한다. 주식회사와 부자들은 법의 테두리를 자신들에게 맞게 조정한 후 이익을 극대화시킨다. 주주는 법인의 탈을 쓴 후 이익극대화를 위해 주변 환경과 상황을 변화시킨다.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치 민주주의가 아주 더디고 힘겨운 투쟁을 통해 쟁취했듯이 경제 민주주의도 곧 다가올 것이다. 여기엔 정치와 같은 힘겨운 일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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